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96화 (96/185)

연(4)

"...무슨 바람이 든 거요?"

[외부인은 알 것 없다. 모르면 닥쳐라.]

"......"

순간 짜증이 났지만, 서란과 송진.

둘 모두 어느 정도 서로에게 기대를 하는 것이 보였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축하드리지."

"선배님께도 감사, 또 감사드릴 뿐입니다."

"되었소. 서 도우가 기쁜 것을 보니, 나 역시 해룡왕의 심부름을 잘 수행한 것 같아 마음이 놓이는구려."

서란은 싱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언젠가,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반드시 불러주십시오. 전부 선배님의 덕이니, 선배님의 부탁은 무조건 세 번은 어떻게든 들어드리겠습니다."

"호의는 고맙게 받지."

서란이 내게 인사를 했고, 송진은 불퉁한 눈으로 나를 보다가, 한 마디를 던졌다.

[어쨌든 내 제자를 도와주었으니, 나도 스승으로서 따로 보답을 해 주려 한다. 뭔가 원하는 게 있느냐. 세 가지만 들어주지.]

"세 가지라..."

나는 우선 그에게 내 상단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혹여, 내 상단전에 걸린 정신금제를 풀 수 있으시오?"

[흠?]

내 말에 송진은 나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누가 네게 정신금제를 건 거지? 그렇진 않겠지만 혹여 해룡왕이나 그런 자인가? 천인기 수도자의 금제는 풀 수 없다.]

"아니오. 혈목자 원립이라는 놈인데, 혹시 아시오?"

[아...]

송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고 있지. 답천사막에 사는, 특이한 법보(法寶)를 가지고 있는 그 결단기 수도자가 아닌가. 자질이 없어 원영기에 도달하지 못하고, 수명도 다 된 것을 단약으로 억지로 연명하고 있다 아는데.]

"특이한 법보?"

[그래, 흑색의 성 형태의 법보인데. 정확한 이름은 모르고, 그 성 안쪽에서 법보의 주인은 경지를 뛰어넘는 강함을 가질 수 있더군.

결단 대원만은 원영기의 강함을. 원영 초기는 원영 중기의 강함을. 원영 중기는 원영 후기의 강함을.

그렇게 경지를 뛰어넘는 실력을 지니게 해 주는 강력한 법보를 지니고 있어, 천인기 수도자들 사이에서는 나름 유명한 결단기 애송이지.]

오싹!

'만약 저번에 답천사막에서 바로 원립을 찾아갔다면...'

흑색의 성 안에서, 원영기의 실력을 발휘하는 원립을 상대해야 했을 터였다.

'찾아가지 않기를 잘했군.'

나는 속으로 작게 안도를 하며 물었다.

"그런 어마어마한 법보를 천인기 선배분들이 탐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오?"

[아, 그거...]

송진은 혀를 차며 말했다.

[천인기 이상한텐 효용이 없기 때문이지. 거기에다가 그 법보는 운명의 인력을 가진 강력한 선보(仙寶)라, 한 번 얻으면 그 인력에 이끌려 비승의 난이도가 훨씬 극악해진다네.

그래서 아무도 딱히 손대려 하지 않는 거야. 뭐, 듣기로는 특이하게도 해룡왕은 그 법보를 찾아다녔단 풍문이 있지만.]

"흐음..."

'혈목자가 굳이 봉명성을 때려 부수며 봉명인을 찾았던 건, 그 흑색의 성 때문이기도 했던 건가...'

"어쨌든, 내 정신금제는 그 혈목자 원립이란 자가 박아넣었소. 혹여 해체할 수 있으시오?"

[어디보자, 어떤 금제인지 알려면 내가 네놈의 상단전에 내 의식을 흘려봐야 알 것 같은데.]

"그걸 빌미로 내 의식에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이 놈이, 아무리 잔혼 상태로 영락했다지만 나를 염치도 모르는 놈으로 아느냐..!]

나는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섭명함에 대고 내게 위해를 가하지 않겠다 약속할 수 있소?"

[그래, 섭명함에 대고 나 송진은 네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 되었나!?]

"흠, 좋소."

난 고개를 끄덕인 후, 그에게 조심스레 내 상단전을 허락했다.

송진의 서늘한 의식이 내 의식영역으로 침투해왔다.

얼마 후, 내 상단전 안쪽, 그 안의 오행혈주번을 송진의 의식이 스치고 지나갔다.

잠시 오행혈주번을 관찰하던 그의 의식은 내 상단전에서 나갔고, 송진이 입을 열었다.

[생전이라면 아마 한 달쯤 연구하면 해체해줄 수 있었을 것 같군.]

"그 말은..."

[지금은 조금 힘들다. 원립에게 당한 금제라 했더냐? 그 놈도 나름 원영기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라, 지금 내 실력으로는 쉽지 않다.]

"그런가..."

[하지만.]

송진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의 얼굴을 뒤덮던 귀체가 풀려, 그의 얼굴이 해골 형상으로 돌아왔다.

[너 스스로 금제를 장악할 수 있는 법을 알려줄 수 있지. 이 방법이 조금 느리더라도 착실하게 금제를 해제할 수 있고, 완전히 해제하면 아예 그 금제를 네가 연화시켜, 네 고유한 법술로 만들 수 있을 것이야.]

"호오, 어떤 방법이오?"

[일정법(一情法)이라는 의식 공법이다. 하나의 감정에 끝없이 집중하며, 그 감정을 이해하고 네 정신금제를 그 감정으로 물들여 네게 속하게 하는 신통이지.]

우우웅!

송진은 섭명함의 망가진 부위를 뗴어내서 그곳에다가 일정법의 구결을 적어 건내주었다.

[자, 수작은 안 부렸으니 가져가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가지도 말 해라.]

"흐음, 고맙소."

나는 일정법의 구결을 의식으로 훑은 후, 그에게 공법을 요구했다.

'군마용갱권과 규토장성공 중 어떤 것이 좋으려나.'

나는 잠시 생각을 해본 후, 규토장성공을 요구했다.

[규토장성공이라... 익히기가 꽤 까다로운 놈인데 괜찮으냐?]

"상관 없소."

[흠, 대성한다면 용맥을 움직일 수 있는 공법인지라 적수가 없겠지만, 한 자리에 붙박혀서 그 대지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 공법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선각후통 류의 공법임은 물론이고, 심지어 원래 있던 자리를 벗어나면 힘이 급감하기에 반푼이 공법이다만...]

"그 말은, 원래 있던 자리에 붙박혀만 있다면 힘이 급증한다는 말이 아니오?"

나는 지난 삶을 떠올렸다.

'어차피 등선향이나 봉명성 한 곳에 틀어박혀 있을 듯 한데, 규토장성공을 익히고 수성(守城)을 하는 게 낫겠지.'

[뭐 네놈이 원한다면야.]

송진은 또 다시 규토장성공의 구결을 건냈다.

[마지막 부탁은 있느냐?]

"마지막 부탁은..."

나는 송진을 보며 서란을 가리켰다.

"서 도우를 잘 가르쳐 주시오. 그거면 됐소."

[......]

어차피 서란도 나를 도와준다고 했는데, 굳이 송진에게서 있는 힘껏 모든 것을 뜯어낼 필요야 없다.

송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잠시 당황한 기색을 흘리다가 말했다.

[그건 당연한 거다. 그 부탁은 어차피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니 무효로 치고, 나중에라도 따로 네놈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지.]

"고맙소."

나는 송진에게 허리숙여 인사를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란의 일도 잘 해결이 되었고, 일정법에 적힌 대로라면, 약 3, 40년 정도면 오행혈주번 문제도 전부 해결될 터였다.

'이제 남은건...'

김영훈의 수명을 늘릴 방안이었다.

나는 원립이 사용했던 비술의 틀을 떠올렸다.

'큰 틀은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그 세세한 방식을 내가 다시 새로이 정립해서, 장생과를 열리게 할 수 있을까.

일단 필요한 것은 강력한 힘.

원립이 빨아들였던 결단기 수도자들의 무궁무진한 생명력에 비할만한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강력한 힘.

'어떤 게 있으려나...'

문득, 나는 막 받은 규토장성공에 생각이 미쳤다.

시간을 들이면 끝끝내 용맥(龍脈)을 다루게 되는 공법.

'용맥이라면...'

나는 규토장성공을 빤히 쳐다보았다.

'용맥의 거대한 힘을 원립의 법술로 정제하여, 장생과를 열리게 할 수 있을까?'

대지에 흐르는 대자연의 거대한 힘이라면, 어쩌면 수천 수만 명어치의 생명력과 비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망상에 가깝긴 하다.'

사실 허황된 생각이었다.

그런 게 그렇게 쉽게 가능했다면 이 세상에 마도 가문은 왜 있고 인간 단약은 왜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허황된 법술이라도 계획해봐야 한다.'

가능성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투자하고 투자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했다.

그리고 그러려면 필요한 것은.

'진법, 그리고 지식.'

새로운 지식이다.

그리고, 진법에 대한 지식이라면...

'축기기 3대 위인. 연단의 막리운련. 법기의 공묘천색. 그리고, 진법의 청문령.'

청문령을 찾아가 보아야 할 것 같았다.

* * *

나는 송진으로부터 규토장성공을 받고, 흑풍해에서 빠져나가 김영훈이 기다리고 있던 곳으로 왔다.

"그 며칠 새에 또 성장하셨군요..."

김영훈은 벌써 또 다시 오기조원에 한 발짝 다가가 있었다.

"그래, 말이 안 통하다 보니까 여기 사람들의 의념을 읽는 것에 더 집중하다보니 삼화취정의 경지가 올랐다."

나는 그 성장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제아무리 오기조원에 대해 내가 쉽게 풀어서 가르쳐 줬다지만, 벌써 저 경지에 근접하다니.

'예상보다 더 빨리 경지에 오를 수도 있겠군.'

나는 잠시 생각해 본 후, 그에게 말했다.

"김 형, 그러면 이제 슬슬 저희는 헤어지는 게 어떻습니까?"

"뭐? 갑자기 그게 뭔 소리냐?"

"제가 볼 때, 김 형은 얌전히 제가 풀어서 정리한 깨달음을 받아먹는 것보단, 스스로 깨달음을 체화하며 응용할 때 더욱 더 성장속도가 빠른 것 같군요.

지난번에 오기조원은 물론이고, 등봉조극, 월도입천에 이르는 월도입천무의 깨달음도 전부 알려드렸지요?"

"그랬지."

"그럼 앞으로는 스스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월도입천에 도달해 보시지요."

그의 성향이라면, 괜히 나를 따라다니는 것보단 세상과 부딪히며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 훨씬 빠르게 경지에 이르는 것일 터였다.

그는 당황하는 듯 했으나, 내 이어진 설득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했다.

나는 김영훈과 헤어지고, 그에게 나중에 연국의 황제와 막리세가란 이들을 없애줄 것을 부탁한 후.

연국에서 나와 벽라국 청문세가로 향하였다.

* * *

'청문세가 본가로 바로 찾아가면 청문세가에서 놀라겠지...'

본래 수도가문의 본가들은 알 사람들은 알고있다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비밀이었다.

결단기 이상의, 가주, 원로급 수도자들은 다른 가문의 본가들을 알고 바로 본가로 찾아가도 실례가 되지 않지만.

기껏해야 축기기인 장로급 수도자들은 타 가문을 찾아갈 때, 가주의 명이 아닌 이상 수도가문의 영지를 거쳐서 가는 게 기본적인 예의였다.

물론 내 실질적인 전력이야 결단기 급이었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실력은 축기 극초기, 각수였으니 축기기 급으로 행하기로 했다.

투우웅!

나는 청문세가의 영지로 가, 그곳을 뒤덮은 진법결계에 법술을 사용해서 자극을 주었다.

내 정순지력에 결계가 잠시 반응하더니, 얼마 후 안쪽에서 연기기 12성의 수도자가 한 명 걸어나왔다.

"저는 청문세가의 자재, 청문전이라 합니다. 어느 가문의 선배님이신지요?"

그는 공손하게 내게 예를 갖춰 물었고, 나는 그에게 말해 주었다.

"저는 떠돌이 산수로, 귀 가문의 청문령 수사(修士) 께서 축기경 3대 위인이라 하여, 진법에 조예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분께 상의할 일이 있어 잠시 귀 가문을 찾아왔습니다."

"아! 그분을 찾아오셨군요. 잠시 기다리십시오, 영지의 장로님께 연락을 넣겠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전음부를 꺼내더니 법력을 불어넣고 내가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얼마 후.

영지 안쪽에서 축기기 수도자가 걸어나왔고, 나를 환대해 주었다.

"허허, 본인은 청문단이라 하외다."

일반적인 청문세가의 수도자 답게, 그는 근육이 우락부락한 거한이었고, 나를 영지 안쪽 그의 거처로 안내하였다.

"귀한 객께서 청문세가를 방문하여 주어서 감사하오. 청문령 형님을 뵙고자 한다 들었소. 진법에 대해 상의하고자 한다고?"

"그렇습니다."

"혹시 객의 성함을 여쭤도 되겠소?"

"서은현이라 합니다. 서 수사라 불러주시지요."

"알겠소 서 수사. 하하, 서 수사 같은 인재가 형님께 진법에 대해 묻고자 찾아오니, 본 가문에도 영광이오.

일단 서 수사같은 귀인이 찾아왔으니, 본인이 본가에 얘기를 넣어보고 말씀 드리겠소. 우선 차부터 한잔 하며 천천히 기다려 봅시다."

청문단은 축기기에 이른 나를 동급의 손님으로 예우해주며 극진히 대접해 주었고, 나는 그와 함께 차를 마시며,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수도공법에 대한 것은 얘기할 게 별로 없었지만, 청문세가는 전투에 대한 것에 관심이 많은 호전적인 가문인지라, 나와 그는 전투경험을 공유하며 실컷 대화를 나누었다.

며칠 후, 나는 청문세가 본가에 초대받았고, 드디어 청문령을 직접 다시 만날 수 있었다.

* * *

청문세가 본가.

그곳의 어느 객실.

드르륵!

미닫이 문이 열리며, 염소수염을 한 어느 깐깐해 보이는 노인이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공손히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위명은 익히 전해 들었습니다."

"안녕하시오. 과한 예는 차릴 필요 없소. 동급 수사끼리 뭘.. 서 수사라 부르겠소. 청문 수사라 불러주시면 된다오."

나는, 지나간 시간에 스승이었었던 이를 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한 표정으로, 억지로 입을 뗐다.

"알겠...습니다. 청문... 수사."

스승님은, 청문 수사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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