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95화 (95/185)

연(3)

쿠구구-

예상외로, 송진은 성급하게 덤비지 않고 나를 관찰했다.

[뭐냐, 노옴. 인족에게 요단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고, 그런 기괴한 의식법술이 있다는 말도 들어본 적 없는데...

네놈은 노부를 아는가 보구나.]

명백한 경계태세!

'이번에는 진법결계를 때려부수지 않고, 그냥 조용하게 들어와서인지 나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해 준비가 충분치 않나 보군.'

지난 생에서, 섭명함의 귀기를 다 빨아먹어 결단 대원만급의 실력을 보여주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섭명함의 귀기를 빨아먹지 않아 결단 중후기 정도의 기세밖에 드러나지 않았다.

"어찌 청색귀골곡의 위명을 들어보지 못했겠소. 하물며 청색귀골곡을 이끄는 천인기 수도자야 말할 것도 없지!"

[크흐흐, 노부가 괴군에게 죽었다는 것도 들어봤다는 말인데, 노부를 놀리는 것이냐?]

쿠구구!

그리고, 송진이 어느 정도 귀기를 모은 것인지.

그가 공격을 시작했다.

끼아아아아!

수천 마리의 백골들이 주변에서 파도처럼 일어오르며 내게 쇄도한다.

나는 무형검을 뻗었다.

단악검법, 첩첩산중, 능곡지변.

무형의 검기가 사방팔방으로 가시처럼 뻗어나가며, 주변의 공간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 상태에서 또 다시 검이 변화를 일으킨다.

단악검법, 단맥도법, 권법, 각법, 조법, 지법, 창법...

수많은 무공의 변화가 섞인다.

지난 삶의 김영훈과 함께 연구했던 모든 분야.

200년동안 내가 다시 추가하고 개량한 나의 무형검이, 1초에 수백 번의 변화를 동원하며 송진을 밀어붙였다.

그의 법술이 깨져나가며 그의 주변이 내 무형검에 완전히 장악당했다.

첫 격돌.

그리고 송진은 첫 격돌에서 나에게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끄아아아아!

송진의 몸 주변으로 귀기가 빨려들어가더니, 그가 귀조를 단 거대한 귀물로 변하였다.

지난번에 보았던 모습.

그러나 이번에는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건지,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단악검법, 용맥, 기산심천, 단애.

촤아아악!

무형검이 더욱 더 빠르게 움직이고, 크기가 거대해지며, 속도가 따라갈 수 없게 변하였다.

귀물의 전신이 삽시간에 난도질당했고, 귀물화가 풀린 송진이 다시금 법결을 맺었다.

쿠오오오!

푸른 빛 귀화가 그의 손 안쪽으로 모인다.

하지만.

단맥도, 산바람!

피잉!

극속의 찌르기가 정확히 귀화의 약한 지점을 반응할 수 없이 찔러버리자, 귀화는 그의 손 안에서 그대로 터져버렸다.

[크으윽...]

세 번의 격돌.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실력 차는 명백해졌다.

지난 200년동안 단련하고 또 단련해오며 극한의 숙련도를 계발한 무형검이다.

최초로 송진과 맞붙었을 때의 무형검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의 변화를 자랑한다.

만약 천인기 수준의 실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시절의 그라면 몰랐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는 나를 이길 수 없었다.

송진은 나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기색.

그러나 나는 그를 더 압박해 들어가는 대신, 조금 주제를 돌려보기로 했다.

"흠... 나 역시 괴군을 본 적이 있소만."

괴군과 서휼이 보이지 않는 구름 위에서 일전을 벌였던 것을 떠올렸다.

손짓 한 번에 등선향 전체를 물로 감싼 서휼.

그리고 그런 서휼과, 다른 해룡족들을 시종일관 압도했던 괴군.

"솔직히, 그런 괴물과 싸워서 잔혼을 남겼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 같소만."

[......]

내 말에 송진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의념이 수치심과 분노, 그리고 우울함과 한탄으로 뒤섞이는 것이 보였다.

[...맞는 말이긴 하지. 그 전쟁 당시의 괴군은 갑작스레 우리와 싸우겠다고 해서 준비도 없이 달려들었었고, 그 상태에서 본곡의 3분지 1을 궤멸시킨 거니까.

만약 그가 제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우리와 전쟁을 벌였다면 그 날 흑색귀골곡은 50만년의 역사가 끊겼을 거다.]

"......"

송진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서... 어찌하여 네놈같은 강자가 섭명함에 쳐들어왔고, 섭명함을 노리는 것이냐. 이 섭명함은 폐함이고, 너는 딱히 섭명함의 귀기가 필요한 공법을 익힌 것 같지도 않은데...]

"흠..."

나는 잠시 변명을 생각하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그 해룡족 반요 놈의 물건을 찾으러 왔다고?]

그의 말에 내 뒤쪽에 숨어있던 서란이 움찔거렸다.

송진의 눈에서 타오르는 귀화가 더욱 더 크게 일렁거렸다.

[본곡에... 네놈들 따위의 물건은 없다. 본곡의 것은 오직 본곡에만 보관되느니, 탐욕을 버리고 썩 꺼져라..!]

그러나, 서란은 침을 한번 삼키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선배님께 부디 자비를 청합니다. 제가 찾는 것은... 제 어머님의 유품입니다."

화르륵!

송진의 눈에서 더욱 더 시퍼런 귀화가 치솟았다.

[네놈 어미의 유품을 왜 본곡의 섭명함에서 찾느냐!]

"...그것은, 저희 어머니께서 흑색귀골곡의 제자셨기 때문입니다."

쿠구구구!

송진은 몸을 들썩거리는 듯 하더니, 나와 내 무형검을 번갈아 보았다.

방금 전의 세 번의 격돌을 떠올리며 나를 가늠하는 모양새.

나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았다.

지난 삶, 무형검을 얻은 직후 김영훈과 그를 사냥하고, 200년의 시간동안 다시 무형검을 참오했었다.

지금이라면, 그가 섭명함의 귀기를 다시 전부 빨아먹고 나와 한판 붙어도 크게 밀릴 것 같지 않았다.

하물며 갑작스레 내가 찾아와서 제대로 대비도 못한 지금이야.

'덤벼 봐라.'

나는 얼마간 그와 눈싸움을 했고, 잠시 우리를 가늠하던 듯한 송진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좋다. 정 그렇다면 반나절의 시간을 줄 테니 섭명함을 뒤져, 네놈 어미의 유품을 찾아봐라. 그 시간 안에 찾지 못한다면, 나는 흑색귀골곡의 원로된 입장으로서, 본곡에 무단으로 침입한 네놈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쫓아낼 것이야..!]

아무래도 나와 직접적으로 싸우는 것은 부담이 되는 듯, 송진은 결국 우리와 타협을 하였다.

쿠우우...

송진의 눈에서 끓어오르던 귀화가 가라앉았다.

나 역시 무형검을 거두어들였다.

[명심해라. 반나절이다. 반나절 안에 어미의 유품을 찾지 못하면 섭명함에서 나가야 할 것이니라..!]

"...알겠습니다."

서란은 송진에게 감사인사를 올리고, 나는 잠시 그를 쳐다본 후 그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약 반 각 후.

나는 섭명함의 최하층.

지난 삶에서 서란의 어머니의 유품을 찾았던 방을 찾아, 바로 서란에게 옥간을 찾아주었다.

"혹시, 여기 이거요?"

"아...!"

서란은 울 듯한 표정이 되어 손을 떨며 내게서 옥간을 받아들었다.

"감사, 감사합니다. 선배님..."

"별 것 아니오. 그나저나 저 귀신 놈은 조금 화난 것 같은데..."

나는 서란의 어머니의 방 바깥쪽.

그곳에서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며 서 있는 송진을 발견했다.

[이, 이 놈... 왜 그 아이의 방을 알고 있는거냐. 너...! 넌 그 아이와 무슨 관계지...!?]

그 말에 서란 역시 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그렇게 되나...'

하긴, 바로 서란의 어머니의 방을 찾아 들어가는 것을 보면 내가 그의 어머니와 어떤 관계가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귀찮아질 것을 예감하고는,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 그에게 변명을 하였다.

"나는 일전, 등선향 인근에서 흑색귀골곡의 원로원주 백골귀마 허곽 역시 만난 적이 있소. 그리고 그 분께서 한 가지 훌륭한 것을 얻어 기분이 좋아지시어 내게 원하는 것을 말하라 하셨소.

그리고 그 때에 옆에 있던 해룡왕 서휼이 나를 시켜 서란의 부탁을 들어주라 하였고, 나는 그 심부름을 수월하게 이행하기 위해 서휼에게 전말을 듣고 서란의 어머님의 처소 위치를 백골귀마께 여쭌 것이오."

[뭣...]

잠시 내 말을 듣던 송진은 믿기지 않는 기색이었으나, 이를 갈면서도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은 그렇다고 해 두지..]

"그나저나 문 앞에서 비키시는 게 어떻소? 나도 서란도 나가고 싶소만. 당신이 제안한 반나절 안에 찾지 않았소?"

[...잠깐.]

송진은 귀화가 불타는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 반룡 녀석아. 네놈 어미는 내게도 특별한 아이였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나와 함께 네 어미가 남긴 유서를 읽어라.]

"무슨..."

서란은 뭔가 탐탁치 않은 표정이었지만, 시퍼런 귀화를 흩뿌리는 송진이 으르렁거리자 어쩔 수 없었는지 자리에 앉아 옥간을 펼쳐들었다.

나는 서란의 가족사에까진 관여하고 싶지 않았기에 물러서 있었고, 송진 역시 서란의 뒤로 가 그와 함께 옥간을 읽어내렸다.

얼마 후.

"...크흑."

서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송진의 눈에서 타오르던 귀화가 약해졌다.

아니, 부드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멍청한 것. 해룡왕 하나를 제외한 해룡족은 전부 성품이 개차반이고 제놈들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것들이란 걸 몰랐단 거냐.]

그는 귀체로 된 팔을 들어올려, 부들부들 떨면서 서란에게서 옥간을 낚아챘다.

서란 역시 굳이 그것을 잡고 있지 않고, 송진에게 순순히 옥간을 건냈다.

[이 멍청한 것아...! 책임감도 없이 죽어버린 네 남편이란 놈이 뭐가 좋았단 말이냐! 이 아둔한 것..! 멍청한 것...!]

우드득!

송진의 손에, 옥간이 쪼개지려 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서란은 황급히 그에게서 옥간을 빼앗았다.

송진은 서란을 노려보았다.

[나는... 네놈이 원래부터 마음에 안 들었지만, 더욱 더 싫어졌다. 네놈 때문에 그 아이의 인생이 망해버린 게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파츠츳...

나는 문득, 송진의 두개골 위쪽으로 귀체가 새로이 얼굴을 덮는 것을 보았다.

귀기가 그의 두개골로 모이며, 얼굴을 만들었다.

지난번 보았던 장년인의 얼굴이었다.

시커먼 귀체로 구현된 그의 얼굴은, 푸른 색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일수에 쳐죽이고 싶으나...]

그는 나를 흘긋 돌아보며 뇌까렸다.

[서휼이 보냈다는 저 특이한 놈에게 감사하거라. 섭명함을 지키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죽을 것이 두렵고 두려워... 네놈을 가만히 놔 두는 것이니...]

"......"

서란은 가만히 그의 말을 듣다가, 문득 송진에게 절을 올렸다.

"...부디, 제 어머님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뭐라...]

"평생을 해룡족에서조차 반편이라며 멸시당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해룡왕께서도 이번 비승에 저는 따라갈 수 없다 하시면서 저를 내버려두고 가셨지요.

부디, 선배님. 어르신. 제 어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간청드립니다... 제 어머니에 대해 얘기해 주십시오."

[이 놈이 지금...]

쿠구구구!

검푸른 귀기가 선실을 채웠다.

하지만 내가 무형검을 드러내어 귀기를 걷어냈고, 송진은 나를 노려보았다.

"얘기가 뭐가 그리 어렵소?"

나는 그의 심상과 의념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당신도 정작 얘기를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것 같은데."

그는 귀기를 흘리는 귀신의 형상일지언정, 그의 심상은 맑은 바다위, 붉은 돛단배였다.

그는 분명, 맑은 사람이었다.

내게 속마음을 들킨 송진은 이를 악물며 잠시 몸을 떨더니, 두 팔을 늘어뜨렸다.

쿠우우...

귀기가 다시 가라앉는다.

[...서휼이 무서운 놈을 보냈군.]

털썩!

송진은 비틀거리는 듯 하더니, 선실에 있는 침상에 걸터앉았다.

잠시 그는 침묵했고, 서란도 침묵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선실 안에서는 약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송진의 심상을 읽고는, 선실 바깥으로 나왔다.

그는 더 이상 서란을 해칠 생각이 없어져 있었다.

얼마 후, 선실 안쪽에서 송진이 서란에게 뭔가를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느릿느릿,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던 송진이었으나.

어느덧 그의 말은 빨라졌고, 점차 말이 많아졌다.

그리고 서란 역시 그에게 호응해주며, 둘은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상상도 못했던 광경이군.'

서란과 송진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광경.

나는 잠시 무형검을 들어올리며 생각했다.

운명을 벗어나자, 더욱 더 새로운 것이, 더욱 더 많은 것이 새로이 다가온다.

전하지 못했던 말들도, 이해하지 못했던 인연들도.

새롭게 만나 새로운 미래를 그린다.

나는 다시 한 번 선실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의념을 읽은 후, 섭명함의 갑판으로 나갔다.

흑색귀골곡이 흑풍해에 숨겨놓은 진법결계.

원통형의 우물 형태의 결계의 중심부.

그곳에서는 뻥 뚫린 하늘이 보였다.

어느덧 하늘은 밤이 되었다.

저 구름 너머로 별빛이 언뜻언뜻 보이는 듯 했다.

"...강해지자."

더욱 더 강해지고 강해져서.

모든 운명의 인력을 벗어날만큼 커져서, 새로운 미래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내자.

나는 그렇게 결심하였다.

서란과 송진은 날밤을 새고 얘기를 했으며, 다시 해가질 때까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또 다시 날밤을 새고, 해가 뜰 때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둘 사이에서 어떤 대화가, 어떤 감정의 교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놈을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운명을 넘어선 인연은 상상도 못할 새로운 기적을 낳기도 하였다.

송진은, 서란을 제자로 들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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