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90화 (90/185)

생화(2)

'장생과...!'

나는 손을 떨며 아직 어린 수원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얼마 후, 서란이 이곳으로 달려왔고, 열매가 맺히려는 수원목을 보았다.

"이, 이건..."

"어, 어떻소..?"

서란은 진중한 눈으로 장생과를 바라보았다.

"장생과가... 맞습니다...!"

"...! 그렇다면..."

"하지만."

서란의 안색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완전히 과실이 맺히지 않은 이 상황이라면, 장생과를 복용해도 수명이 크게 증가하지 않습니다. 장생과는 완전히 과실이 열리고 나서야 안에 함유된 천지생력(天地生力)이 활성화되어 수명을 크게 늘려주니까요."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면, 혹 조금은 수명이 증가한다는 거요?"

"예, 아마 제가 알기로 이 상태의 장생과라면, 약 반 년 정도 수명이 늘어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허."

반 년.

완전히 열렸을때와 아닐 때가 너무 차이가 나지 않는가.

"서 도우가 보기에, 이 장생과는 완전히 맺히려면 얼마나 걸리외까?"

"...장생과는 꽃에서 열매가 되기까지, 약 6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형태를 보아하니 약 400년은 된 것 같군요. 200년만 더 기다리면 이 장생과가 맺히고, 다른 과실들도 하나둘 열릴 터입니다."

"...그렇구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200년.

내가 다시 회귀를 하고 바로 봉명성을 뚫어서 장생과를 따서 김영훈을 먹여도, 반 년 정도 수명을 더 늘리는 것 외엔 답이 없다.

나는 눈 앞의 수원목을 쓰다듬었다.

문득, 나는 내 단전에서 움틀거리는 목(木) 속성의 법력을 떠올렸다.

목(木)은 오행에서 생명력을 관장하는 속성이기도 했다.

때문에 목 속성 공법을 익힌 이들은 강력한 자가치유능력이나 재생능력을 장기로 삼았고.

그 중에서도 특수한 법술을 익힌 수도자는 목 속성의 생명력을 끌어올려 급속도로 식물 등을 생장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천린수해성은 그런 특수한 공법 중 하나였다.

"...서 도우."

우우웅!

나는 천린수해성의 정순지력을 끌어올려 그의 눈 앞에 보여주며 물었다.

"나는 목 속성의 공법을 익히고 있소. 만약 목 속성의 법력을 꾸준히 수원목에 불어넣는다면, 장생과의 결실을 조금 촉진시킬 수 있지 않겠소?"

"흐음..."

그러나 서란은 썩 좋지 않은 안색이었다.

"선배님의 말씀대로, 목 속성 법력이 영초의 생장을 촉진시킬 수 있는 건 분명 맞습니다. 하지만... 장생과 같은,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야 결실을 맺는 영초나 영과류는, 아마 선배님이 법력을 불어넣으셔야 하는 정도가 상상을 초월하실 겁니다."

"대략 어느 정도일 것이라 생각하오..?"

"저도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천인기 수도자들도 영초를 생장시키겠다고 목 속성 법력을 영초에 쏟아붓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사축기 수도자들은 되어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사축기..."

중경계급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서 도우."

"예, 선배님."

나는 장생과를 보며 말했다.

"이 장생과가 열리려면 200년은 있어야 한다고 했지 않소?"

"분명 그렇습니다만..."

"그럼, 200년의 시간 동안, 난 계속 여기에 남아 목 속성 법력을 장생과에 꾸준히 불어넣어 보겠소."

"서, 선배님..?"

서란이 흠칫 놀란 듯 되물었다.

"그게 어쩐 말씀이십니까..?"

"그래도 이 장생과는 거의 다 열린 셈이니, 어쩌면 사축기 수도자만큼의 법력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않소? 나는 계속 법력을 불어넣으며, 장생과가 원래보다 얼마나 더 빠른 속도로 열릴지 관찰해볼 생각이오."

장생과가 열리게 할 정확한 법력의 양을 알아두면, 추후에 외부에서라도 그 법력을 충당해서 장생과를 피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번엔 법력을 더더욱 쥐어짜내서 장생과를 열리게 하면 된다.'

장생과는 비록 열리지 않았을지라도, 이대로 손 놓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수명을 하늘이 부여해주었을지라도, 인간의 노력에 의해 운명의 인력을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다.

'반드시, 장생과를 맺히게 할 것이다!'

나는 장생과를 노려보았고, 서란은 착잡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먼저 가신, 아니. 등선하신 그 친우분 때문이시군요."

서란은 내가 이러는 이유를 짐작한 듯, 옅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저는 봉명성의 몇몇 군데를 더 뒤져보고 오겠습니다. 정말 천인기 수도자들이 비승 전에 봉명성을 싹 털어갔는지... 뭔가 발견한다면 선배님께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소. 수명에 관련한 것이 아니라면 서 도우가 다 가지셔도 되오."

"...알겠습니다."

서란은 내게 인사를 한 후 수목원에서 나갔다.

나는 며칠동안 가만히 앉아 천린수해성을 수련하며 수원목에 목 속성 법력을 불어넣었다.

며칠 후.

서란이 다시 수목원으로 돌아왔다.

"...선배님, 봉명성에서 몇 가지 자료와, 천인기 수도자들이 남겨놓고 간 것들을 찾아냈습니다."

"수명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오?"

"음...아닙니다."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부분 일회성 부적이나 선주(仙酒), 혹은 향초 같은 것들 뿐이더군요, 그도 아니면 그냥 평범한 짐승에게 영성(靈性)을 부여해주어 요족으로 진화시키는 법보 등이 남아있었습니다만..."

서란이 혀를 찼다.

"그조차도 대부분 결단기 수도자 대다수가 달려들어 붙어야 깰 수 있을만한 가공할 금제들이 쳐져 있어, 깔끔히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천인기 수도자들도 굳이 안 챙기고 버린 것들이니만큼 사실 그렇게 쓸만한 것도 없고 말입니다."

"일회성 부적이나 선주 같은 것들은 무엇을 말하는 것들이오?"

나는 문득 그가 말하는 것들이 궁금해져 물었다.

어쩌면 그것 중에서도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는 것은 없을까.

그러나 이내 들려온 서란의 말에 나는 조금 실망해야 했다.

"일회성 부적은 몇 시진 동안 천인기급 방어력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봉천부(封天符), 진법미궁을 형성하여 적을 순간 가두는 홍조부(弘曺符), 순간 요수로 변할 수 있는 변요부(變妖符) 등이 있더군요.

그리고 선주 같은 것은, 이름은 모르지만 바깥에서 선주들의 효과가 쓰인 옥간을 발견했는데... 마신 후 일순간 능력이 향상되거나 수행속도가 일순간 빨라진다거나, 향을 맡으면 의식이 맑아진다거나 하는 선주들밖에 없었습니다."

"흠..."

"부적과 선주 역시 전부 단발성으로 능력을 강화하는 것들이 대다수이고, 남아있는 법보 같은 것들은 전부 말씀드린, 짐승에게 영성을 부여하는 법보나, 먹은 음식을 빠르게 소화시켜주는 법기 등. 해괴한 것들만 남아있는지라... 이게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군요."

나는 서란의 설명을 다 듣고는 피식 웃었다.

"말 그대로, 이 장생과 말고는 다 쓰레기들뿐이란 소리군."

"그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 장생과도 아직 안 열린 장생과이니, 천인기 수도자들이 가치가 없다 여겨 버리고 간 것이겠지요."

그가 옅게 한숨을 쉬며 내게 옥간을 하나 내밀었다.

"이 봉명성을 돌아다니며 만든 봉명성의 구조도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부적과 선주들, 그리고 법보들의 위치도 적어놨습니다.

솔직히... 하나하나가 결단기 수도자도 여럿이나 모여야 깰만한 금제로 보호되어 있기에 위치도 큰 의미는 없겠습니다만. 선배님께서 이곳에 오래도록 머무를 작정이라 하시니..."

"흠, 사실 나도 수명을 늘려주는 기물이나 영약 외엔 별 관심이 없어서, 굳이 찾으러 갈 것 같진 않을 것 같군. 하지만 어쨌든 서 도우의 호의는 고맙게 받겠소."

알아놓으면 어쨌든 추후에 쓸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나는 서란에게 옥간을 받아 봉명성의 구조를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서란은 옥간을 내게 건낸 후 내게 말했다.

"그럼 선배님.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이 폐성(廢城)에서 시간만 낭비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그러시오. 참, 나갈 때는 어찌 나갈 작정이오? 내가 섭명함으로 일단 공간의 외곽에서 나가게 해 주지."

"아, 감사드립니다."

나는 서란과 함께 봉명성에서 잠시 나와, 봉명성 옆에 세워둔 섭명함을 조종하여 서란을 허공간 바깥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나저나 선배님. 제가 아는 바가 맞다면, 봉명성은 몇백년에 한번씩 대륙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마... 선배님께서 장생과를 지키실 동안 봉명성이 현계에 모습을 드러내면 다른 결단기 수도자들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소. 결단기 수도자들은 내 선에서 물리칠 수 있을 듯 하니."

"하하,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서란을 말을 하고는, 용의 형태로 변해서 바다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름 의리있게 할 말은 다 해주고 간 것이었지만, 나는 그가 나를 어려워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는 걸음이 빠르군.'

하기사, 왠 결단기급 인족 수도자와 함께 있는 게 어찌 달갑기만 하겠는가.

나는 약간의 씁쓸함을 느끼며, 서란의 가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어찌되었든, 그는 이번 생에는 살아남았다.

요족은 인간보다 기본 수명이 훨씬 긴 편이었다.

특히나 용족은 더더욱.

아마 서란의 수명과 의지, 그리고 자질이라면 충분히 추후에 결단경 요족이 될 터였다.

'잘 된 것이지.'

나는 서란을 잠시 바라본 후, 섭명함을 조작해 다시 봉명성이 있는 허공간으로 진입했다.

서란이 봉명성에서 나올 때 파훼했던 봉명성 금제가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그리고...

쿠구구구!

지금껏 타 왔던 섭명함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지금껏 머금고 있던 잔여 동력이 모조리 바닥난 것이었다.

"...잘 버텨줬다."

나는 섭명함에서 뛰어올라, 봉명성의 금제가 전부 재생되기 이전에 봉명성을 파고들었다.

뒤쪽에서는 섭명함이 산산이 부숴지며, 허공간의 공간기류에 흩어지는 것이 보여졌다.

나는 잠시 무너지는 섭명함을 바라본 후, 봉명성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제부턴, 또 다시 고독의 시간이었다.

* * *

나는 음혼귀주문보다는, 천린수해성의 수행에 더 집중했다.

수원목에 불어넣을 천린수해성의 법력이 더욱 더 많이 필요한 것도 있었지만.

우선 천린수해성은 목 속성 공법이었고, 수원목이 있는 곳은 봉명성의 수목원이었다.

'농밀하군.'

천인기 수도자들이 다 뽑아갔다지만, 봉명성에는 아직도 수많은 영초들이 남아있었다.

물론 약성이 있는 부분은 다 뜯겨나갔단 점에서 큰 쓸모는 없었지만.

영초들은 그 자체로 목 속성의 영기를 발산했다.

수목원은 등선향보다도 더욱 더 목 속성의 영력이 가득 차 있었다.

'천린수해성을 수행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군.'

나는 스승님이 준 천린수해성을 수련하며 시간을 보냈다.

선각후통의 원리에 따라 끊임없이 법결을 연구하고, 연습했으며.

동시에 무형검을 늘 관조하고 참오하며 무형검을 수련해갔다.

김영훈이 남긴 실마리는 무엇일까.

그는 마지막에 어떤 무공을 펼친 것일까.

어떻게 상대방이 없이 허공에다가 우공이산을 펼친 걸까.

몇 년을 수련해도 그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저 무형검을 수련하며, 무형검에 점차 익숙해지고 무형검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가짓수를 더욱 더 완전하게 장악하는 것 정도가 내가 얻은 것들이었다.

뭘 어떻게 해서 공간을 자른 건지는 감도 안 잡혔다.

* * *

150년.

회귀햇수, 어느덧 150년이 되었다.

그러니까, 봉명성에 들어온지는 약 50년째.

우웅!

영기를 들이쉬며 단전의 별들을 감지했다.

농밀한 목 속성의 영력이 가득한 수목원에서, 끊임없이 수원목에 법력을 불어넣으며 공법을 사용한 결과.

천린수해성은 쭉쭉 발전하여 어느덧 각(角), 항(亢), 저(氐), 방(房), 심(心).

다섯 개의 영기의 별을 형성한 채였다.

'이제, 곧 있으면 스승님도 따라잡겠군.'

얄궂겠지만, 사실이었다.

스승님은 각항저방심미(角亢氐房心尾).

여섯 개의 영기의 별을 형성하고 일곱 번째 영기의 별을 완성하기를 앞두고 있었으니까.

목 속성의 영력이 농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곳에서 수련을 한 덕분이었다.

나는 나름 괄목상대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냈다.

하지만...

'여전히, 장생과는 거의 변화가 없는 것 같군.'

50년간 법력을 퍼부어댔음에도 장생과가 열리는 속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법력을 쏟아부어야 변화가 있단 말인가.

나는 옅게 한숨을 쉬며, 수목원을 떠나 봉명성을 돌아다녔다.

가끔 정 답답할 때는 봉명성 곳곳을 돌아다니곤 했다.

서란이 준 봉명성의 구조도를 보며 돌아다니며 봉명성 곳곳의 구조를 더욱 더 확실히 익혔고, 뭔가 정말로 더 숨겨진 건 없나 확인을 하곤 했다.

그러나 봉명성의 복잡한 기문진법이나 미로 같은 구조를 8할 이상 꿰게 됐음에도, 딱히 더 숨겨진 영약이나 보물 같은 건 더 없었다.

'물론 아직 남은 금제들이 있긴 하지만...'

금제 안쪽으로 얼핏얼핏 보이는 것들은, 서란의 말대로 일회성 부적들이었다.

거기다가 금제들도 하나하나가 결단기 수도자들이 여럿은 모여야 겨우 깰만한 강력한 금제였기에, 나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런 곳은 지나쳤다.

'저게 괴군의 괴뢰인가.'

그런 금제들 안쪽의 쓸모없는 것들보다 흥미가 가는 것들은, 봉명성 이곳저곳에 굴러다니는, 괴군의 괴뢰의 잔해들이었다.

괴군도 봉명성을 약탈하는 데에 일조했던 모양인지, 이곳저곳에 괴뢰의 잔해들이 마구 굴러다녔다.

"그나저나, 이 괴뢰들은 전부 어느 정도 수준의 법기이려나..."

하나하나가 나름 강력해보인다.

거기다가 상당히 수도 많았다.

안타까운 것은 대다수가 산산히 부숴져 있는 상태라 원래는 어떤 위력이었는지 잘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괴군의 괴뢰들의 잔해, 그리고 여기저기 다른 천인기 수도자들이 남긴 흔적을 보고 다니던 중.

내 눈에 문득 독특한 것이 띄었다.

'저건...'

나는 주변의 잔해들을 헤치고 다가갔다.

'괴뢰...?'

괴군의 괴뢰.

그 중에서도 썩 멀쩡한 형태의 괴뢰였다.

벌을 닮은 형태의 괴뢰는 외형상의 문제는 거의 없어보였다.

'안쪽의 세세한 부품 같은 게 망가진 것 같군.'

사람 정도 크기의 벌 괴뢰는, 들어올리자 그 안쪽에서 쩔그럭 소리가 나며 뭔가가 굴러다니는 소리가 났다.

'이건 한번 고쳐볼 수 없으려나.'

괴군의 괴뢰는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문득 그의 힘을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이길래 일개 개인이 종문 세 개를 동시에 상대가 가능한 건지.

'아마 괴뢰들을 통해 인해전술식으로 싸우는 게 괴군의 특기인 모양인데...'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괴군과 맞서야 할 때도 있을 터였다.

그때에 괴군과 맞서기 위해 그의 괴뢰들을 조금 연구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나는 벌 괴뢰가 있는 위치를 기억해두고, 다시 돌아와 수련을 시작했다.

* * *

쿠구구구구!

"후우..."

나는 눈을 반개하며, 정순지력을 운용했다.

단전에는, 일곱 개의 영기의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축기 제 1수(宿).

각항저방심미기(角亢氐房心尾箕)

완공하였다!

'90년... 걸렸다.'

심지어 이것조차 봉명성의 수목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영지에서 수련했기에 겨우겨우 도달한 것이었다.

'거기에 스승님이 남겨준 심득도 한몫했지.'

회귀햇수 190년.

나는 그제서야 축기 1수, 즉 축기 초기를 벗어나 축기 2수, 축기 중기에 진입할 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의 시간이 더 걱정되었다.

'지금까지는 청존칠수에게 지낸 칠성제의의 힘을 빌어 각항저방심미기를 완성했다. 하지만, 두우여허위실벽, 규루위묘필자참, 정귀유성장익진은 칠성제의의 힘을 빌릴 수 없었기에... 수행 속도가 더 느려질 거야.'

물론 그래도 목 속성의 영기가 그득그득한 곳이니만큼, 어느 정도 진도는 나갈 터였다.

그리고 장생과도 역시 아직도 제대로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언제쯤 피어날 것인가...'

나는 옅게 한숨을 쉬며 장생과에 법력을 불어넣었다.

어찌되었든, 나는 축기 제 2수, 두우여허위실벽(斗牛女虛危室壁)의 수행을 시작했다.

* * *

축기기 제 1수에 이르고 약 30년.

회귀햇수로는 2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아직도 수명이 130년은 남아있다니, 신기하군.'

원래 수명에 하늘로부터 300년의 수명을 내려받은 것이니, 아직도 살 날이 어마어마하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축기기 2수는 두(斗). 한 개의 별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

30년을 투자해서 겨우 한 개의 영기의 별이었다.

'봉명성에 들어오기 전엔 등선향에서 음혼귀주문을 수련했고, 들어와선 등선향보다 농밀한 목 속성 영력에 기대서 천린수해성을 수련해, 140여년에 걸쳐서 축기 1수를 완공했다.'

엄청난 영력에 기대어 20년에 하나 꼴로 영기의 별을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칠성제의의 축수를 받지 않은 이후 경지부터는 30년에 영기의 별 하나 정도가 끝.

'재능없는 이는, 일반적으로는 300년 평생을 수련에 바쳐도 결단기에 이를까 말까겠어.'

꽃이 피려면 얼마나 많은 인고(忍苦)의 시간을 지새야 하는가.

아무리 법력을 불어넣어도 장생과는 피지 않고, 아무리 수련을 해도 이 자질로는 한참을 가도 부족했다.

후우-

목 속성의 영기를 불어, 수목원에 흔히 핀 잡초에 불어넣었다.

사르륵!

잡초는 목 속성의 영기를 흡수하자 부르르 떨더니 바로 꽃을 피웠다.

나는 잠시 잡초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영초라면 이 정도 영력으로는 턱도 없고, 끊임없이 법력을 먹여줘야 생장할 테지만.

잡초란 이렇다.

조금만 법력을 먹여줘도 바로 꽃이 피지만, 거기까지가 잡초의 끝이다.

나는 어쩌면, 잡초의 처지가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까지는 회귀로 인해 빠르게 성장하지만, 그 이상은 압도적인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여기까지가 나의 끝이다.

'어쩌면 100여년을 더 살아도, 기껏해야 영기의 별 두, 세 개 만들고 끝이겠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오래 지내서일까.

최근 우울한 생각이 더욱 많이 들었다.

하기사, 오래도록 수련을 하다가 광증이 도진 게 어디 한두번이던가.

나는 혀를 차며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봉명성은 총 일곱 개의 층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곳, 수목원은 봉명성의 1층에 있는 곳으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곳이었다.

하지만 사실 지금 상태에서는 1층이나 7층이나 차이도 없었다.

어차피 천인기 수도자들이 전 층에 있는 물건들을 싹 다 털어갔기 때문.

어쩌면, 1층에 있는 이 어린 장생과 나무만이 봉명성에 남은 유일한 보물일지도 몰랐다.

우우웅!

나는 수원목에 법력을 불어넣으며, 수원목이 자라고 자라, 봉명성의 모든 층의 천장을 꿰뚫고 거대해져 이 성 전체를 박살내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나는 진지하게 그 망상에 대해 고민했다.

나무가 자라는 것은 그냥 시간이 흐른다고 되는 게 아니다.

땅이 영양가가 있어야 하며, 뿌리를 깊게 내리고, 물줄기를 빨아들여, 싹을 틔우고, 줄기를 기르고, 가지를 뻗어나가야 한다.

보는 사람은 그저 나무가 크는 것만을 보겠지만, 나무는 매 순간 굉장한 노력을 한다.

뿌리를 내리는 것도, 잎을 틔우는 것도, 가지를 뻗는 것도.

전부 나무가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이니까.

그뿐인가.

'계절마다 달리 옷을 바꿔입어야지.'

봄에는 형형색색의 옷을.

여름에는 녹빛의 옷을.

가을에는 샛노란 옷을.

겨울에는 모든 옷을 벗고 잠시 잠을 잔다.

나는 수원목에 손을 얹고, 법력을 불어넣으며 천린수해성을 계속해서 수련하였다.

* * *

쿠구구구!

'매 계절이 한 번 지날때마다, 나무는 한 겹씩 커진다.'

서은현의 주변으로, 목 속성의 영기가 몰려들었다.

그의 주변으로 녹빛 나무 형태의 형상이 아른거렸다.

'나무의 나이테는 세월이 흐를때마다 하나씩, 조금씩 생겨난다.'

서은현은 어느덧 녹빛을 뿜는 나무가 되어 있었다.

'쌓고, 쌓고, 쌓고... 세월을 쌓아...'

녹빛의 나무와, 어린 수원목이 연결되어 무언가를 교류하는 것 같다.

그랬다.

서은현은 스스로도 모르게 수원목과 연결되어 있었다.

수십 년간 하나의 나무에 집중하며, 법력을 나누고 또 나눈 결과, 수원목 자체가 서은현의 법력에 반응하고, 또 서은현의 천린수해성이 수원목에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느릿하게 거대해진다...'

쿠구구구!

"...아."

어느덧, 서은현은 눈을 떴다.

그리고, 서은현의 주변에 나무 형상으로 쌓여있던 거대한 목 속성의 영력의 덩어리들이, 서은현의 체내로 들어갔다.

서은현은 홀린 듯이 눈 앞의 수원목을 보며 중얼거렸다.

"천린수해(千璘樹海)."

* * *

축기, 제 2수.

두(斗), 우(牛), 여(女), 허(虛), 위(危).

파아아아앗!

천린수해성의 공법.

그 본질을 깨닫자,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영기가 빨려오며, 영기의 별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다섯 개의 영기의 별이 빛을 발했다.

'아아...'

총 12개의 영기의 별이 단전에서 빛을 발했다.

'지금, 지금이 대략 몇 년이 지난 거지...'

어느 순간 수원목에 법력을 주고, 또 주던 중, 확 시간감각이 사라졌었었다.

나는 수원목에 다시 손을 가져다 댔다.

'나이테...'

수원목으로 법력을 흘려넣어, 수원목에 생긴 나이테를 읽어냈다.

그리고,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30년.

고작 30년만에, 축기 중기 완공에 거의 다 다다른 것이었다.

"하, 하하하..."

나무(木)

나무에 대한 관조와 고찰로 인해 천린수해성에 담긴 심득을 이해하였다.

그 덕에 이렇게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성장한 것일 터.

방금 것은 일종의 기연이었다.

아마 이런 류의 빠른 속도로 수행을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은 다시는 없을 터.

하지만, 나는 눈 앞에 달린, 점차 눈에 띌 정도로 익은 장생과를 보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장생과는, 내 법력을 먹어오며, 느리지만 꾸준하게 거의 결실을 맺고 있었다.

'...그래.'

나는, 틀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회귀햇수 250년.

나는 축기 중기, 완공에 가까워지고, 천린수해성의 심득을 얻었으며, 장생과의 결실을 거의 눈 앞에 두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잘 풀리는 듯 했다.

쿠구구구궁!

"...무슨!"

봉명성이 흔들린다.

동시에, 봉명성 곳곳에 영기가 더더욱 활발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나는 황급히 봉명성의 수목원에서 나와, 봉명성의 정문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끼이이이-

봉명성의 옥빛 대문.

대문이, 열리고 있었다.

쿠웅!

휘이이이!

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대문의 바깥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

그랬다.

공간 외곽.

허공간을 부유하던 봉명성이, 다시금 현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휘이이-

"큼, 콜록, 콜록!"

나는 먼지가 섞인 바람에 얼굴을 찌푸리며, 황급히 공기를 정화하는 법술을 펼쳤다.

어째, 바깥에서 불어오는 먼지가 많았다.

나는 눈쌀을 찌푸리며 대문의 바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답천사막...?"

봉명성은 현재 답천사막의 상공에 나타나서 부유중이었다.

'허공간을 부유하다가 몇백년 꼴로 무작위로 나타난다는데, 이번에는 답천사막인가...?'

등선향과는 얼마나 가까우려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였다.

"음...!?"

나는 문득, 하늘을 보고 몸을 흠칫 떨었다.

천기(天機)가 흉(凶) 하고 혼란(混亂)에 차 있었다.

축기기 제 2수에 이르고 나니, 조금 더 읽을 수 있는 천기가 많아졌다.

'이런 제길, 그나저나 이 흉(凶)함은 대체..."

내가 천기를 자세히 읽으려 할 때였다.

쿠구구구!

답천사막 한 곳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건, 피비린내!?'

나는 눈을 찌푸리며 코를 틀어쥐었다.

그리고 문득, 나는 저 피비린내를 맡아본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싹!

'저건...'

폭발의 너머.

먼지구름이 젖혀지고, 그 뒤쪽에는 예전에 내가 스쳐지나가며 보았던 것이 언뜻 보였다.

거대한 흑색(黑色)의 성(城).

찌릿, 찌릿!

전신에 오한이 든다.

그때 느꼈던 불길함이, 최대치에 이르렀다.

그리고 문득, 나는 한 가지를 떠올렸다.

'200년 후의 대전쟁.'

생각해보면, 200년 후라는 기준은 내가 4, 50년은 지낸 후의 기준이었다.

즉, 회귀햇수 250년차인 지금.

'지금이, 대전쟁이 일어나는 시기란 말인가...?'

그리고, 그때였다.

파아아앗!

폭발이 일어난 곳에서, 누군가들이 빠른 속도로 봉명성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저건, 비둔술!?'

수십 명의 인영들이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었고, 한명 한명이 수도가문의 가주, 원로급 결단기 수도자들이었다.

"봉명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안쪽으로 피해!"

"노괴(老怪)가 쫓아오기 전에 어서!"

파바밧!

비둔술을 써 봉명성의 입구에 도착한 수십 명의 결단기 수도자들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각자 수결을 맺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그들 중 한명에게 물었다.

"이,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넌 뭐냐! 축기기 주제에 어떻게 아직 살아있는 거지!? 됐다, 말 시키지 말고 비켜 있어라!"

그들 중 수염이 긴 백의의 노인이 수결을 맺으며 소리쳤다.

"봉명성을 닫아라!"

"폐문!"

쿠구구구!

옥색의 대문이 점차 닫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폭발이 있었던 곳에서 아직 봉명성에 도착하지 못한 몇몇 결단기 수도자들이 이쪽을 향해 소리지르는 것이 들렸다.

"잠깐, 도우들! 기다리시게!"

"아, 안 돼! 아직 문을 닫지 마!"

"잠깐, 잠깐!!!"

끼이이익- 쿵!

그러나 봉명성에 들어온 결단기 수도자들은 사색이 된 채로 더더욱 더 수결을 빠르게 맺었고, 이내 봉명성의 대문은 닫혀 버렸다.

"허, 허억..."

"다, 닫았다..."

그리고, 그제야 결단기 수도자들은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일인 겁니까?"

나는 그들이 숨을 돌린 것 같자 그 중 한 사람을 다시 잡고 물었다.

"넌 무슨..."

그때였다.

쿠구구구!

옥빛의 문 뒤로, 혈광(血光)이 번뜩인다.

그 모습에, 장내의 결단기 수도자들의 모습이 다시 하얗게 질렸다.

"노, 노괴가 문을 두드리고 있소!"

"뚫, 뚫리는 건 아니겠지...?"

"빨리! 전원 문에 법력을 불어넣어 버티시오! 봉명성이 다시 허공간에 진입할 때까지만 버티면 노괴도 허공간까지 쫓아오진 못할 터!"

콰과과광!

그러나, 다시 한번 혈광이 문 뒤쪽에서 번뜩이자, 옥빛의 대문이 들썩거렸다.

당장이라도 문이 열릴 듯 했다.

"흐, 흐아아아아!"

"이런 미친, 저게 저 노괴의 힘이란 건가.."

"모, 모두 모이시오! 모두 힘을 합쳐 문을 막으면..."

"나, 난 싫어! 다 죽을 거야!"

"봉명성으로 흩어지자! 성 안쪽에 숨어있으면 노괴도 굳이 다 찾아 죽이진 않겠지..!?"

흰 수염의 백의 노인이 결단기 수도자들을 규합하려 했으나, 결단기 수도자들은 사색이 된 채 봉명성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 안돼! 돌아와! 힘을 합치면 막을 수 있다고! 힘을 합치면..."

그리고, 다음 순간.

꽈아아앙!

혈광이 폭발하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푸콱!

결단기 노인은 한줌 혈수가 되어 터져나갔고, 옥빛의 문 너머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나는 우선 은식술과 월수궁무록으로 허깨비처럼 허공에 녹아들었다.

그가 새하얗게 웃으며 뇌까린다.

"폐급 놈들. 다 같이 힘을 합쳐 본좌를 막진 못할망정, 다 봉명성에 숨어버린 건가. 큭큭... 깊은 곳에 숨으면 못 찾을 것 같았나보지.

어리석긴..."

싸아아아-

코가 마비될 정도의 피비린내가 자욱하다.

동시에, 나는 구토가 치밀어 오를 것 같았다.

월도입천에 오르면서 볼 수 있게 된 타인의 심상.

저 자의 심상은, 그야말로 토악질이 나오는 역겨운 심상이었다.

"지금부터 봉명성을 다 때려부술 예정이거늘. 무얼 숨느냐."

저벅, 저벅...

나는 월수궁무록과 은식술, 그리고 귀식대법과 은신술법을 잔뜩 펼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자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찌릿, 찌릿!

'뭐냐, 이 압박감은...!'

숨이 턱 막힐 정도다.

'이 힘은, 결단기 따위가 아니다.'

저벅, 저벅...

그 자는 나를 지나쳐 수목원 방향으로 향하였다.

'이 자, 분명...'

그리고, 다음 순간.

"그나저나, 네놈은 상당히 독특한 법술을 쓰는구나."

우득!

그 자가 목을 정반대로 꺾어 나를 돌아보았다.

'원영기(元靈期) 수도자다...!'

"놈, 도망도 안 치고 얼굴도 균형잡히게 반반한 게 마음에 드는군. 내 제자가 되지 않으려냐?"

화아아악!

혈의(血衣) 장포를 입은 자가 손짓을 하자, 월수궁무록과 기타 은신술들이 전부 풀려버렸다.

동시에, 나는 그 자에게서 느껴지는 역겨운 심상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구토를 했다.

"왜에에에엑! 우욱!"

'원영기 수도자, 그것도, 지금껏 어마어마한 사람을 잡아먹어온 괴물이다...!!!'

눈 앞의 존재가 내 추태를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것이 보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