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85화 (85/185)

임종(臨終)(2)

폭음이 울리고 사방이 진동한다.

콰아아앙!

황금빛 빛살이 번뜩이자, 결계가 출렁이며 미친 듯이 흔들린다.

꽈아아앙!!!

무형의 검강이 휘둘러지자, 출렁이던 결계가 점차 버티지 못하고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나와 김영훈은 질새라 서로 무형검과 능광도를 휘두르며 결계를 때려 부쉈다.

서란은 옆에서 아연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그냥 들어가셔서 깃발만 뽑으면 되는데.."

그러나, 몸이 좋으면 머리가 고생할 필요 없는 법이다.

꽈아아아앙!

나와 김영훈이 동시에 무형검과 능광도를 내리쳤다.

그리고, 결계에 균열이 일며 결국 완전히 박살나 버린다.

파캉!

결계 내부에 있던 진법 깃발들이 버티지 못하고 망가져 버렸다.

나와 김영훈은 결계 너머로 들어갔고, 서란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우리를 따라왔다.

"이 정도면 된 거요?"

"예, 예... 그렇습니다. 선배님. 한데 선배님께서는..."

서란은 계속 요족어로 대답을 하는 나를 보며 조심스레 물어왔다.

"선배님께서도 반요... 이신 겁니까?"

요족어는 영기에 흐르는 음양의 이치를 볼 수 있는 요족만이 익히고 배울 수 있었다.

의미를 전달하는 구조가 공기를 진동시켜 말을 하는 인족과 완전히 달랐기에, 요족어를 쓴다는 것은 요족이란 말과 다를 바 없었다.

"흠, 반요는 아니고 그냥 좀... 특이한 인족이라고 생각해 주시오. 이 정도 특이성은 있어야 해룡왕께 인정받아서 당신을 도우라 명을 받은 것이지."

"아, 그렇군요... 그럼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결계는 돌파했으니, 이후부터는 제가 도전하겠습니다. 추후 제 거처로 오시면 배상도 따로 해 드릴테니.."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나도 같이 가 드리지."

"예?"

"나도 역시 명성이 자자한 흑색귀골곡의 섭명함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어서 말이오."

"아..."

서란은 명백한 결단기급 전력으로 보이는 나와 김영훈이 같이 가겠다고 하자, 조금 부담스러운 기색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그와 함께 섭명함으로 향했다.

부담스러운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리고, 나와 김영훈.

서란이 흑색귀골곡 섭명함의 갑판에 막 올라갔을 때였다.

쉬이이이-

"...?"

"무슨..."

갚판의 귀기와 음기가, 갑자기 사그라들었다.

섭명함 전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귀력이 잦아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서란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나는 대충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김영훈에게 심어(心語)를 보내어 상황을 설명했다.

김영훈은 내 말을 알아듣고, 도신을 더욱 꽉 움켜잡았다.

우리는 섭명함의 내부로 들어갔다.

역시나.

섭명함의 내부 역시 지난 삶의 왔었을 때와 달리 귀기와 음기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

"뭐 어찌되었든 다행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귀기와 음기가 심하지 않다면 안쪽을 살펴보는 것 역시 어렵지 않을 터입니다."

"...흠. 이보시오, 서 도우."

나는 서란을 보며 말했다.

"일단 바로 섭명함의 하층으로 가 봤으면 좋겠소만."

"하층부터 내려가서 탐색을 시작하자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아무래도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드는군. 섭명함의 귀기가 옅어진 이유가 하층에 있을 것 같소."

"음, 선배님들이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앞서나가며 그들을 섭명함의 하층부로 데리고 갔다.

지난 삶에는 하층부로 내려갈수록 귀기가 짙어졌다.

그러나, 오늘은 하층부로 내려가도 귀기가 짙어지지 않았고, 도리어 옅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지난 삶에 도착했던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섭명함의 저층부.

그곳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귀기가 넘실거렸던 이전 층과는 달리, 완전히 귀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긴장어린 표정으로 자세를 잡았다.

뒤늦게 따라온 김영훈도 긴장을 끌어올리며 능광도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서, 선배님들 무슨... 헛!"

주변에는 귀기가 옅었다.

그러나, 귀기는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섭명함의 저층부에 붙박힌 지박령이, 섭명함의 귀기를 빨아들이고 먹어치워 꾹꾹 눌러담은 것이었다.

쿠구구구구!

흑색의 옥좌 위.

그곳에, 완전히 시커먼 어둠으로 물든 존재가 앉아 있었다.

이전에는 두개골의 윤곽이라도 드러나 있었으나, 이제는 완전히 어둠으로 휩싸여 그림자 그 자체가 된 듯한 존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결단기 수도자가 둘씩이나 쳐들어왔나 싶었는데... 축기기 둘에 연기기 하나?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섭명함의 보호결계를 박살내려면 최소 결단기는 와야하니. 뭔가 특이한 공법을 익혔나 보구나.]

시꺼먼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우리를 쳐다보았다.

파츠츳...

그림자의 눈두덩이에서는, 청색(靑色)의 귀화(鬼火)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떤 놈이건 상관은 없다. 승천문이 열릴 시기에 붙어서 따라가지도 못했을 쓰레기놈들 따위가, 감히 청색귀골곡의 귀도법술을 받아낼 수 있을 듯싶으냐.]

찌릿, 찌릿..

나는 귀혼에게서 풍겨지는 기세에 침을 삼켰다.

지난번에 느꼈던, 어줍짢은 기세가 아니었다.

우리의 전력을 눈치채고 독이 바짝 오른 상태였다.

[네놈들이 뭘 원해서 섭명함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청색귀골곡에서 그 무엇도 가져갈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킬 것이다!]

쿠구구구!

끼야아아아-

까아아-

끄아아아아아-

귀혼의 몸에서부터 귀기가 끓어오르며, 그 그림자 안쪽에서 수십 수백의 귀곡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귀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 저벅

그가 옥좌에서 완전히 떨어졌다.

동시에, 옥좌와 그 사이에 미묘하게 있던 어떠한 연결이 끊어지는 것이 보였다.

'섭명함에서 공급받던 귀기를 끊었다?'

그러나 오히려 섭명함에 남은 귀기를 잔뜩 빨아서 저 상태가 되었다.

더 이상 귀기를 공급받을 이유도 없었고, 또한 귀기를 공급받느라 옥좌에 앉아서 수동적으로 공격에 대응하던 약점도 사라졌다.

지난 삶보다 훨씬,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것이다.

다음 순간.

귀혼이 손을 움직이는 가 싶더니, 칠 장 크기의 거대한 귀조(鬼爪)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왔다.

콰과광!

귀조는 내가 휘두른 무형검에 맞고 상쇄되었고, 김영훈이 앞으로 나섰다.

파앗!

황금빛이 번뜩였고.

콰아앙!

김영훈의 도가 귀혼의 목을 후려치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뚝 끊겨버린 듯한 속도!

귀혼은 김영훈의 속도에 전혀 대응을 하지 못했으나, 김영훈의 능광도도 귀혼의 목을 자르지 못했다.

귀혼이 능광도를 맞고 튕겨나갔다.

그리고 귀혼이 법결을 맺자, 귀혼에게서 무수한 귀수(鬼手)들이 뿜어져 나와 김영훈을 노린다.

파앗!

다시 한번 금빛이 번뜩였고, 김영훈은 내 옆으로 돌아와 있었다.

"흠, 아까 그 귀조처럼 특수한 몇몇 술법의 속도는 네 무형검과 비슷하지만, 저 놈 본인이 특수한 술법의 속도에 못 따라간다.

한 마디로 우리보다 한참은 느려. 다만 능광도의 출력으론 결단기급 저 귀혼의 귀력을 뚫을 수가 없다."

그가 나를 흘긋 보며 말했다.

"내가 주의를 끌마. 네가 정면에서 놈과 맞서며 놈을 공략해라."

"예."

"저는 저 귀물에게 효과가 있을 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공격을 하려면 기(氣)를 끌어모아야 하니 시간을 끌어주십시오."

서란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나와 김영훈은 서로 고개를 끄덕였고, 서란 역시 우리의 뜻을 전달받고는 인요 형태에서 용형(龍形)으로 변화하였다.

파아아앗!

서란의 입속에서 금빛 방울이 튀어나왔고, 서란은 입을 벌린 채로 금빛 방울에 기운을 끌어모았다.

콰과과과!

다시금 귀조가 몇 개씩이나 날아온다.

지난 삶에서는 피하기에 급급했던 무시무시한 공격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나서며 무형검을 휘둘러 귀조들을 잘라내어 버렸다.

콰아앙, 콰아아앙!

빛이 번뜩이며 귀조들이 터져나갔고, 다시 한번 황금빛이 번뜩였다.

파앗!

김영훈이 빛살이 되어 다시금 귀혼의 어깨 아래쪽에서 나타났다.

막 법결을 맺으려던 귀혼의 한쪽 팔을 타격하며, 그가 맺던 중인 법술을 무효화시킨다.

[이 놈...!]

촤아아아!

다시 수십개의 귀수들이 김영훈을 쫓았으나, 귀수들은 김영훈을 따라가지 못했다.

촤아악!

귀혼은 아예 귀수들로 자신을 뒤덮었으며 그 안에서 법술을 맺기 시작했다.

저렇게 하면 김영훈으로서도 역시 안으로 파고들기 힘들 터.

그러나, 나는 자세를 잡고 무형검을 일으켰다.

단맥도, 산바람!

피우웅!

무형검을 잡은 채로 사고를 극한까지 가속시키며 귀혼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그 상태에서 가속을 한 상태로 무형검의 공능으로 바로 초식을 바꾼다.

단악검법, 유릉!

직선으로 쏘아지던 산바람이 구불구불하게 휘며, 귀수들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모든 귀수들을 자연스레 피해내며 그 가운데에 있던 목표물에 제대로 명중했다.

콰아아앙!

파공성과 폭음이 울리며 귀수들이 일거에 터져나갔고, 귀기 너머로 내 무형검이 가슴에 박힌 귀혼이 눈에 들어왔다.

귀혼은 괴로운 듯 했으나, 맺고 있던 수결을 계속 맺었다.

'이미 죽은 몸이라 이걸로는 안 죽나?'

아무래도 일반적인 육신이 아닌 귀체(鬼體)이기에 심장에 구멍 하나 뚫린 건 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대로 찢어발긴다.'

물론, 모조리 갈갈이 찢어버리면 될 뿐. 문제는 없다.

단악검법, 첩첩산중!

촤아아악!

귀혼의 가슴에 꽂힌 무형검이 변화하며, 순식간에 사방팔방으로 가시처럼 뻗어나간다.

그 인근으로 무색의 가시철조망이 공간을 뒤덮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귀혼이 수결을 완성하였다.

[비둔(飛遁).]

촤아아악!

그 찰나.

귀혼은 묵광(墨光)으로 변하여 한 줄기 빛이 되어 무형검의 변화 속에서 빠져나갔다.

촤아악!

물론 무형검에서 일어나는 수천수만가지의 변화를 전부 피하지는 못했는지 상당히 귀체가 찢겨나가긴 했지만, 어쨌든 귀혼은 벗어나는 것에 성공했다.

'결단기 수도자의 비둔술이로군.'

결단기 수도자쯤 되면 단전에 형성한 별빛들을 이용하여 둔광(遁光)에 몸을 숨겨 이동하는 비둔술이라는 것을 쓸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비둔술은 장거리 이동용이었으며, 그 속도는 축기기 이하의 존재들은 쫓아갈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다고 했다.

아주 예전.

스승님의 밑에서 죽을 당시, 막리세가의 막리운련이 결단기 수도자의 비둔술을 몇 번 쓸 수 있게 해주는 구명법기를 통해 한참을 나와 김영훈의 추격에서 도망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무형검을 회수해서 다시 손에 쥐며 귀체를 수습하는 귀혼을 쳐다보았다.

"그게 끝이오?"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다시 사고를 가속시켰다.

"당신이 쏜 귀조보다도 속도는 약간 떨어지는데..."

저 정도라면, 무형검으로 충분히 쫓아갈 수 있는 속도였다.

"아마 제대로 반응이라도 하려면 그걸 계속 발동해야 할 거요."

단악검법, 입산!

나는 다시 무형검을 휘둘렀다.

무형검이 허공에 뜬 귀혼에게로 올라가며 그를 노린다.

귀혼은 노한 기색을 드러내며 다시 비둔술을 사용했다.

파아앗!

귀혼은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무형검을 피했지만, 다음 순간 다시 그의 곁에 나타난 능광도에는 미쳐 반응하지 못했다.

콰앙!

황금빛이 부채꼴처럼 퍼지며 귀혼을 후려친다.

콰아아앙!

[이 놈들... 내가 법보와 제귀(制鬼)만 멀쩡했어도...!]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김영훈의 능광도는 다시금 그의 전, 후, 좌, 우, 상, 하에 나타나며 그를 도합 서른 여섯번 후려쳤다.

"잘 잡고 있으십시오..!"

단번에 쪼갠다.

단악검법, 기산심천!

쿠구구구!

무형검의 기세가 더욱 더 흉폭해졌고, 나는 용맥의 초식과 함께 섞어 그대로 무형검을 내려베었다.

사방에서 귀혼을 몰아붙이며 발목을 잡던 김영훈은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물러났고, 귀혼은 한껏 부풀어 오른 내 무형검을 보며 손을 뻗었다.

콰아아앙!

귀혼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흑색의 귀골(鬼骨)이 내 무형검을 막아섰다.

"이걸 막아?"

내가 찬탄을 터트릴 때, 귀혼은 황급히 다시 법결을 맺었다.

[다 죽여주마!]

쿠구구구!

귀혼의 주변으로, 하나하나가 강환급인 수천개의 두개골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서 수많은 귀수가 뿜어져 나왔고, 귀충(鬼蟲) 무리들이 주변을 휩쓴다.

'시간 끌기로군.'

그러나 나는 귀혼이 저 수많은 법술 가운데에서 귀력을 끌어올리며, 더 큰 법술을 준비하는 것을 알아챘다.

쿠구구구!

나는 무형검을 손에 쥔 채 천변만화 시켰다.

단악검법, 월악!

무형검이 단악검법의 수많은 무리(武理)들을 구현하며 가로로 휘둘러졌다.

일격!

촤아아아!

단 일격에, 내 앞을 가리던 무수한 두개골들과 귀충 무리가 전부 파도처럼 쓸려나가 버렸다.

남은 것은 귀혼을 둘러싼 귀수들.

단악검법, 괴암!

무형검이 나를 휘감는다.

무형검은 사방을 둘러싸며 마치 작은 폭풍과도 같이 되었고, 나는 공방일체의 기세로 귀수들을 파고들었다.

무형검이 회전하며 귀수들을 찢어발기고 안쪽으로 진입한다.

촤악!

마치 폭풍의 핵과 같이, 귀수들의 중심은 고요했고, 그 정중앙에서 귀혼이 법결을 완성하고 있었다.

쿠구구구!

귀혼의 눈에서 타오르던 푸른 귀화는 한창 약해진 상태였다.

동시에, 귀혼의 손 위에는 희미한 청백색(靑白色)의 두개골이 하나 떠올라 있었다.

두개골은 당장이라도 허공으로 흩어질 듯 일렁이며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안쪽에 담겨있는 힘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고, 저것을 맞으면 절대 무사치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단악검법, 첩첩산중!

무형검강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며 쪼개진다.

다시금 일대를 무색의 가시철조망이 뒤덮었다.

퍼어엉!

귀수들이 모조리 찢겨나갔고, 중심에 있던 귀혼 역시 무형검에 전신이 꿰뚫리며 벌집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귀혼은 법결에 법력을 불어넣으며 법술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단악검법, 산중호걸

나는 사방으로 뻗어나간 무형검을 일점으로 집중시켰고, 가시철조망이 걷혀나감과 동시에 그 너머로 황금빛 능광도가 들어왔다.

"하아아아압!"

김영훈은 지난번에 보여준 체외 내단을 구현시키며 능광도를 휘둘렀고, 내 무형검의 위력이 일점으로 집중되며 폭발한다.

번쩍!

새하얀 빛이 터져나가며, 귀기가 폭발했고, 나는 귀혼의 귀체 중 8할 이상이 찢겨나가는 것을 확인하였다.

솨아아...

빛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청백색의 빛이 사방으로 뻗어나왔다.

[완성... 했다.]

오싹!

전신이 넝마가 되어 당장이라도 흩어질 듯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귀혼이 우리를 노려보았다.

이제 귀혼의 안광은 더 이상 청색의 귀화로 불타지 않았다.

일반적인 귀신들처럼 적색의 안광을 흘리고 있었다.

[같이... 가자!]

'동귀어진!'

나와 김영훈은 귀혼의 의념을 읽어내며 안색을 굳혔다.

청백색 두개골이 부풀어 올랐다.

저 안쪽에 담긴 가공할 죽음의 힘에, 섭명함의 해당 층 전체가 얼어붙을 듯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서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하십시오, 선배님들.]

"...!"

나와 김영훈의 얼굴에 희색이 맴돌았다.

서란은 금빛 방울을 물고, 입 안쪽에 어마어마한 기운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다음 순간, 서란이 입을 벌렸다.

번쩍!

제귀령의 힘이 서란의 숨결과 합쳐진다. 청색이 아닌, 황금빛의 광휘가 쏘아지며,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쿠구구구구!

[으오오오오!]

귀혼이 청백색 두개골을 폭발시키려 했으나, 그는 두개골과 함께 동채로 황금빛 숨결에 갇혀버렸다.

귀력이 제귀령의 힘에 제압당하며, 자폭의 힘이 깎여나갔고, 푸른 빛의 폭발은 황금빛의 광선 안쪽에서만 힘을 발휘하였다.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었던 폭발은, 황금빛 광휘 안에서 점차 깎여나가며 힘을 잃고 있었다.

"허, 저게 용족인가?"

김영훈은 법보의 힘을 빌어 광휘를 토해내는 서란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저런 공격을 매 번 할 수 있는건가? 그런 거라면 한번 붙어보고 싶은데..."

"아마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서 형.. 아니, 서 도우는 아까부터 계속 힘을 모으고 있었잖습니까."

"쩝..."

그때였다.

파아아앗...

황금빛의 빛줄기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서란의 힘이 약해진다.

그리고, 결단기급 귀혼이 힘을 잔뜩 모아 부풀린 청색의 폭발은, 기세가 한참 꺾였을지언정 아직도 무시무시한 힘을 담고 있었다.

"아무래도 서 도우의 힘만으론 안 되는 듯 합니다. 그래도 저 정도면 기세가 많이 꺾였으니..."

"그래, 우리가 해 보지."

촌각 후면 서란의 힘이 다할 터였고, 폭발이 다시 빠져나올 것이다.

나와 김영훈은 각자 귀혼의 양옆으로 이동하며 자세를 잡았다.

각자가 무형검과 능광도를 붙잡는다.

다음 순간.

서란의 숨결이 완전히 꺼졌고, 서란은 탈진한 듯 바닥으로 엎어져 켁켁거렸다.

푸른 광휘가 금빛의 감옥을 넘어 폭발하였다.

그리고, 광도와 무검이 휘둘러졌다.

단악검법 1초, 월악

단맥도법 1초, 뫼얼

우리는 각기 반대방향에서 폭발을 향해 각자의 무공을 휘둘렀다.

입산, 등맥, 유릉..

산지기, 산능성이, 산바람..

무형의 검이 천변만화하며 초식의 위력을 극대화시켰고,

휘광의 도가 극속으로 찰나를 토막치며 빛을 터트렸다.

무형의 폭풍과 황금의 폭풍이 푸른 빛을 양쪽에서 잡아먹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각자의 무공, 그 오의(奧意)가 펼쳐진다.

공곡전성, 구산팔해, 천지...

대간, 월산, 환향...

파아아앗!

단악검, 오의(奧意)

단맥도, 오의(奧意)

[단악(斷岳).]

[도묘(刀墓).]

무형검의 천변만화가 일검에 담기며 산마저 끊어낼 일격을 날렸고.

능광도의 극속이 일격에 담기며 빛조차 도 아래에 묻어버린다.

콰아아아앙!

금광과 무광이, 청색의 폭화(爆花)를 잡아먹으며, 중심에서 법술을 유지하던 귀혼의 잔해를 완전히 갈아버렸다.

촤아아아...

우리는 마지막 초식을 뻗어낸 후, 무형검과 능광도를 회수하며, 빛무리 사이를 노려보았다.

빛이 잦아들었고, 그 안쪽에서 한 명의 인영이 서 있었다.

"아직도 안 죽었군요."

"끈질긴 놈 같으니. 한번 뒈졌으면 얌전히 황천에나 갈 것이지..."

김영훈이 혀를 차며 다시 긴장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내 빛무리가 걷히며 그의 모습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흠칫 놀랐다.

눈 앞에 있는 것은 방금 전의 악귀같던 귀혼이 아닌, 반투명한 상태의 흑포 장년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흑포 장년인은 양 손에 검푸른 귀화를 풀어올리며 법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남은 귀력으로 보아, 저 법술이 그의 마지막 법술 같아 보였다.

[암혼빙의대법(暗魂憑依大法)!]

파아앗!

검푸른 귀화가 귀혼을 뒤덮었고, 검푸른 불꽃을 두른 그가 내게 쇄도해 왔다.

[본곡의 것을 탐하려 들어온 죄를 알아라!]

슈아악!

무형검으로 베어내려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무형검마저 그를 관통했고, 귀혼이 내 상단전으로 빨려들어왔다.

시커먼 악의가 내 영혼을 물들인다.

영혼이 잠식된다.

귀혼은 내 상단전을 들어가, 혼백에 닿았고, 혼백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었다.

나말고 누구도 들어오지 못했던 의식의 안쪽으로, 그가 파고들어왔다.

삽시간에 그가 내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고, 나와 그의 심상이 서로 얽혔다.

그가 살아오며 느낀 감정과 그의 의식이 내게 들어오고, 역으로 내 감정과 의식 역시 그에게 스며든다.

그리고.

[크아아아아악!]

내 영혼 속에 들어온 귀혼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흐으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내, 내보내 줘! 그만!]

[끄아이아아아악!]

[제발, 제발!]

하지만, 나는 되리어 내 의식 깊숙한 곳으로 들어온 그를 의지력으로 더욱 더 꽉 옥죄었다.

[흐아아아! 뭐냐, 뭐냐 네놈은! 왜, 왜 인간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있는 거냐! 너는, 너는...]

공포와 절망에 잠식된 목소리로, 귀혼이 흐느꼈다.

[너는, 인간이 맞는 거냐..?]

* * *

귀혼이 암혼빙의대법을 이용해 서은현의 의식에 침투했을 때만 해도, 그는 썩 자신만만했다.

흑색귀골곡의 귀물들이 사용하는 회심의 한 수!

상대의 의지력과 자신의 의지력, 살아온 삶을 정면으로 겨루어 상대의 몸을 차지하는 비술.

심지어 심상공간에서는 귀도공법을 익힌 그가 훨씬 유리했다.

상대의 정신 깊숙한 곳의 심상을 제압하기만 하면 끝난다!

그렇게 생각하며, 서은현의 영혼 깊숙한 곳, 그의 정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심상을 건드렸을 때였다.

파아아앗!

맑은 빛살이 그를 둘러쌌고, 다음 순간.

귀혼은 기이한 공간에 진입해 있었다.

[어...?]

푸콱!

그리고, 귀혼의 전신이 삽시간에 벌집이 되었다.

[아, 아아...]

맑고 투명한 검신(劍身)들이 역으로 꽂혀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꽂힌 무색의 검들이, 바닥에서 그를 빽빽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아아아아아...!]

그가 비명을 질렀다.

맑고도 투명한, 무색의 검들이, 천지사방에 빽빽히 꽂혀있다.

검들은, 저 멀리 하나의 거대한 산(山)을 이루고 있었다.

투명한 도산지옥!

그것이, 그가 도달한 심상세계였다.

[이, 이게 뭐야... 사람이, 이런 정신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일반적으로, 수도자든 요수든, 정신의 핵이 되는 심상은 크기가 작았다.

어떤 이의 심상은 어린아이이기도, 어떤 이의 심상은 작은 풀이기도, 어떤 이의 심상은 바위이기도 했다.

하지만 심상은 기본적으로 객체(客體)였다.

대상이 평소에 골몰하는 물체일수도, 대상이 생각하는 이상일수도 있는 객체이자 단일개체.

일반적으로 그것이 정상적인 심상이었다.

하지만 이건 뭔가.

[세계(世界)...?]

심상이 이렇게 거대하고 뚜렷한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것은 듣도보도 못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시무시한것은.

[설령 세계가 이 자의 심상이라 할지라도, 왜 이 자는 이리도 고통스러운 세계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전신이 바닥에 빽빽히 돋아난 무색의 검들에 꿰여,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무색의 검들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통증을 야기했다.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잃기만 했던 삶.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했지만, 거부당하고 불허당했다.

-이 삶의 모든 것이 결국 스러진다.

-나는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검들에선 서은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하나하나가 서은현의 삶이었다.

[너는, 인간이 맞는 거냐..?]

삶을 상징하는 검들.

그 검들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귀혼은 공포에 떨며 외쳤다.

[너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이럴 수 없다... 너는, 망인(亡人)이다! 이미 죽은 나보다도 더 죽음에 가까운 놈이다!

어찌, 어찌 인간이 이런 정신세계를 가지는 게 가능하단 말이냐!!!]

쿠구구구!

그리고, 도산검림이 움틀거렸다.

그리고 귀혼은 자신이 맑은 검들의 안쪽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서은현이 자신의 심상을 조작하여, 그를 가두고 있다.

귀혼은 그 말도 안되는 광경을 보며 미친듯이 웃고, 또 웃을 뿐이었다.

* * *

"은현아, 괜찮으냐?"

"...괜찮습니다."

나는 무의식의 한켠에 귀혼을 완전히 가둬버리고 말했다.

"완전히 제압했습니다. 문제는 없습니다."

후우우...

내가 법결을 맺으며, 입에서 영기를 뿜어냈다.

영기 속에는 내 의지에 갇힌 귀혼의 얼굴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네놈들은, 뭐냐?]

"그냥 사람이지. 뭐겠소?"

[흐... 너 같은 게 사람이라.]

귀혼은 클클 웃었다.

"어쨌든 정말 끈질겼소. 이제 귀력도 전부 떨어졌을 테니 이대로 놓아주면 알아서 황천으로 가겠지?"

내가 그렇게 말하며 귀혼을 묶은 의식을 풀려 할 때였다.

[잠깐...]

"흠? 뭐요?"

[...네놈들이 강하다는 걸 알겠다. 발악해봤자 못 막는다는 것도, 내가 패배했다는 것도 알겠다. 그러니 승자의 자비로 부디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가?]

스아아-

내 의식에 잡혀있던 귀혼이 모습을 바꾸었다.

아까 보았던 반투명한 흑포 장년인의 모습.

장년인은 굉장히 씁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너희들에게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다. 만약 이렇게 죽어야 하는 것이라면, 마지막으로 해 보고 싶은 게 있다. 부디 승자의 자비로 내 마지막 부탁을 들어다오.]

나와 김영훈은 잠시 그를 쳐다보며 그의 심상을 읽어냈다.

거짓말도,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순수하게 우리에게 자비를 청하는 것이었다.

그에겐 더는 전의가 남아있지 않았다.

"흠, 다 좋다만. 우리가 왜 그래야 하오? 난 당신을 이대로 얌전히 황천에 보내주는 것도 상당한 자비라 보는데."

[...확실히 그렇겠지. 그렇기에 너희가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나 역시 너희에게 보상을 해 주마.]

그리고, 이어진 말에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괴군에게 살해당하고 잔혼인 상태가 되었지만 본디 청색귀골곡의 천인기 원로였으며, 공법서고를 지키는 서고지기였기에 온갖 공법을 알고 있었지.

원영기 공법, 결단기 공법, 축기기 공법... 오행속성 어떤 것이든 원하는 건 다 말해봐라.

내 부탁만 들어준다면 한둘쯤 보상으로 주마.]

우리는 그의 심상을 읽었다.

역시, 거짓이 아니었다.

[내 임종(臨終)에 관한 부탁을 들어준다면, 알고 싶은 건 전부 알려주겠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