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78화 (78/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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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命)(2)

[운명(運命)은 곧 인력(引力)이다.]

괴군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가장 기본적인 예시로 들면, 인간은 태어난 순간 '죽음'이라는 운명의 인력을 향해 끊임없이 끌려가게 되는 것이지.]

괴군이 허공에 두 개의 점을 그리고, 그 점 사이로 선을 그었다.

[이게 기본적인 삶의 골자이다. 이곳에서 시작해, 저곳에서 끝나는 것. 그리고, 모든 존재들의 수명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에서부터 운명에 변혁이 생기지.]

괴군은 두 개의 점을 이어 그린 선 위쪽과 아랫쪽에 몇 개의 선을 더 그었다.

그 선들은 최초의 선과 위치가 조금씩 달랐다.

[이 선 하나를 삶이라 쳤을 때, 다른 선들의 삶이 끝나는 이 때가 이 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운명은 인력을 가지고 있고, 그 인력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른 운명들 역시 조금씩 끌려가게 되어있다.

그렇기에 운명은 삶에서 죽음까지 평탄하게 직선이 아닌, 다른 존재들의 삶의 운명에 끌어당겨지며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것이지.]

최초의 선은 다른 선들이 끝나는 점에 맞춰서 조금씩 삐뚤빼뚤 해졌다.

[우리는 이것을 운명의 장난이라고도, 또는 인연(因緣)이라고도 한다. 이 인연과 운명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이 결정되고, 일어날 일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지.]

"...일어날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말은 즉.."

[친한 벗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벗은 나와 다른 수명과 운명을 지니고 있어, 나보다 일찍 죽음이라는 운명을 맞는다. 그 운명은 나와 밀접하게 붙어있고, 또한 인력을 갖고 있기에 벗의 죽음에 나 역시 무조건 휘말리게 된다.

이렇기 때문에 일어날 일은 '반드시'일어난다는 것이다.]

"하면, 죽음과 관계되지 않은 사건 역시 반드시 일어나는 일입니까?"

[아니, 이 세상에 생멸(生滅)과 관계되지 않은 사건은 없다. 우리가 숨을 쉬는 이 공기 중에도, 찰나 안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나고 죽는지 아느냐? 나는 편하게 선 몇개로 운명을 설명했지만, 운명에서 일어나는 생멸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끝이 없어 절대 간단히 표현할 수 없다.]

"그렇군요..."

[삼라만상 모든 존재는 생명과 동시에 죽음을 품고 있으니, 기실 그 존재들이 벌이는 모든 사건에는 결국 인력(引力)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

괴군이 허공에 나 있는 선들을 지워버리고, 허공에 마구 점을 찍었다.

[이 삶에 존재하는 인력을 따라, 모든 존재는 길고도 짧은 여행을 하는 것일지도...]

괴군은 최초의 점부터 시작해, 점들을 하나하나 잇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점들이 다 이어졌고, 굉장히 난해하고 복잡한 궤적의 그림이 탄생하였다.,

[어떠냐, 이걸 보면 뭐가 생각나느냐?]

'어린 아이가 마구 그린 낙서?'

나는 올라오려던 말을 삼키고, 그에게 말했다.

"제가 미욱해 잘 모르겠습니다."

[점과 점이 인력을 뻗고, 그 인력을 향해 선이 이어진다...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 같지 않으냐?]

"아..."

총, 총, 총, 총...

괴군은 선으로 이어진 곳 외에도 계속 정순지력으로 점을 찍었다.

정말로 그 모습은 밤하늘의 별과도 같아 보였다.

[나는 밤하늘의 별들이 존재한다는 성계(星界)에는 도달해본 적이 없지만, 먼 옛적 성계를 돌아다녔다는 고대 수도자들의 문헌을 보면, 밤하늘의 별들 역시 인력을 발휘한다는군.]

괴군이 턱을 쓰다듬으며 설명을 이었다.

[마치 별들은 운명 같지 않느냐? 아니, 그 문헌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운명이 별자리를 닮은 것이겠지. 운명은 별자리를 닮았다.

삶이란 이렇듯, 자신에게 가까운 운명의 인력들을 찾아서 별들의 바다를 헤엄치는 여정인 게지...

그리고, 자신에게 가까이 있는 사건. 그러한 운명의 인력에 잡혀서 그 사건은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고...]

뭔가를 떠올린 것인지, 괴군은 씁쓸한 기색이었다.

[...어쨌든. 운명을 별자리로 보고, 삶이 별바다를 헤엄치는 여정이라고 할 때.

수도자들이 천기를 보고 자신의 명을 읽는 원리는 대략 그런 것이다.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온 운명의 인력을 감지하는 것이지.

또한 수도자들이 운명의 인력을 벗어나는 법 역시 간단하다. 일반적인 삶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라 할 때.]

괴군이 허공의 점을 이었다.

점을 이어 그린 별자리는, 어느 지점에서 끝이 났다.

다음 점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선은 더 이어지지 못할 것 같았다.

[이 별과 별 사이에, 적당한 별을 하나 더 만들어서 다음의 별을 향하는 것이지.

수도자들의 경지에 칠십이지살, 삼십육천강, 칠성제의, 축기기의 영기의 별, 결단기의 별의 영역 등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체내에 별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 그것으로 인위적인 운명의 흐름을 만들어내어서 어떻게든 자신의 운명을 더 늘리는 것이지.

이것이 수도자들이 수명을 늘리는 방식이며, 수도자들이 역천의 존재라 불리는 이유이다.]

괴군이 히죽 웃으며 설명을 이었다.

[그렇다면 운명은 반드시 일어날 일은 일어나지만, 운명을 벗어나려면 어찌하는가? 이 운명의 궤적을 벗어나려면 어찌하는가? 간단하다.]

괴군은 별자리를 다시 그렸다.

[이 운명에서 가장 가까운 것이 이 다음 운명이지만, 삶의 주인이 그 운명이 아닌 다른 운명을 원한다면...]

그는 별에서 별로 이어지는 선을 그으며, 그 선이 원래 이어지려던 별자리가 아닌, 다른 별자리로 이어지려 하는 모습을 그렸다.

[다음 운명의 인력이 존재를 빨아들이기에 쉬이 다른 운명으로 갈 수 없지.]

선은 다른 별자리로 가려 했으나, 정해진 운명의 인력에 붙잡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방법은 간단하다. 운명의 인력을 벗어나면 된다.]

포옹!

선은 정해진 별자리의 인력을 벗어나, 그대로 다른 별자리에 안착했다.

"...그걸 어떻게 하는 겁니까?"

[뭘 어떻게 하느냐. 힘! 인력을 벗어날 힘이 있으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지!]

그가 주먹을 쥐자, 그가 허공에 그동안 그려왔던 모든 별자리와 그림들이 단박에 사라졌다.

[운명을 못 바꾸면 내가 나약하다는 증거다. 운명의 인력을 벗어날 압도적인 힘! 그리고 인력을 벗어날 뼈를 깎는 노력! 두 가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우리는 정해진 운명이 아닌 다른 운명에 도달할 수 있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지만, 존재의 노력에 따라 그 반드시 일어나는 사건에 내가, 혹은 우리가 고통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괴군은 설명을 이어가면서 어쩐지 흥분한 모양인지, 그의 눈은 광기에 번들거리고 있었다.

[운명이 나를 괴롭힌다면 운명보다 강해지면 된다! 이만큼 단순명쾌한 해결책이 어디 있느냐! 나 역시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했다...]

괴군은 옆의 상자를 꼭 껴안으며 숨을 헐떡였다.

[그녀와 만날 수 없다는 운명에서 벗어나, 그녀와 다시 만나고 말 것이야. 반드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반드시 그녀와 만날 수 있을 거야. 반드시 그녀와...]

괴군은 희번뜩한 눈으로 상자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아아, 사랑하오. 당신을 사랑하오. 제발 제발 다시 나와 함께 말을 하고 부채를 들고 그때의 춤사위를 같이. 당신을 못 본다는 건 내가 원하는 운명이 아니야. 당신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내 모든 운명을 내팽개치고 힘을 모아 다른 운명으로 도약하겠어. 당신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그러니 제발...]

그는 상자를 마구 긁으며 정신 나간 듯이 상자 안쪽의 뭔가를 향해 읇조렸다.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군.'

나는 괴군에 의해 기절한 김 주임을 바라보았다.

'힘...'

운명을 벗어날 힘.

그리고 노력.

그렇다.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부족할 뿐이었다.

지금의 상황을 내 힘으로 바꿀 능력이 없는 것 뿐이었다.

그렇기에 일어날 일이 반드시 일어나며, 동료들을 미치광이와 위선자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하는 것이다.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덕분에 운명이란 것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한 느낌이었다.

'그래, 운명은 반드시 일어나지만, 바꿀 수는 있다.'

이번 생에는.

누구도 여우에게 팔을 뜯기지 않았다.

내가 여우의 주의를 끌고, 며칠간 여우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기 때문.

'더 강해진다면, 여우 따위는 패대기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다면. 아예 여우라는 운명의 인력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강해지자.

더욱 더 강해지고 강해져서, 수련을 통하여 수명을 늘려, 모든 운명에서 벗어날 별자리를 만들자.

'언젠가는, 천인기 수도자들의 손아귀에서마저 벗어날만큼 강해지면, 그때는 정말 모든 운명을 다 벗어날 수 있겠지...'

얼마간 상자를 벅벅 긁으며 발작하던 괴군은, 나와 김영훈을 번갈아보며 손을 까딱였다.

"오늘 가르침에 정말 감사드리고, 또 몇 가지 질문드릴 게 있습.."

[이쯤 하면 충분히 답해줬다. 이만 가 봐라. [그녀]가 나를 부르고 있다. 그녀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어. 관절에 기름칠이 필요하다고 말이야. 그녀가 날 부른다, 그녀가..]

휘이이익!

나와 김영훈은 뭐라 반응할 틈새도 없이, 괴군의 손짓에 공간균열로 떠밀려 가 버렸다.

나는 상자의 뚜껑을 열고, 상반신을 그대로 상자 안쪽으로 파묻는 괴군을 마지막으로 어둠 속에 잠겼다.

* * *

이번에도 역시 우리는 연국에 떨어졌다.

'운명의 인력이라...'

운명에 정말로 인력이라는 것이 있다면, 괴군이 우리를 아무리 무작위로 보낸들 연국에 떨어지는 것 역시 인력이 우리를 끌어당기기 때문일 터였다.

나는 괴군의 말을 곱씹으며 운명에 대해 고민하였다.

그의 말로 인해 축기기의 영기의 별에 대한 감도 얼핏얼핏 떠오를 것만 같았다.

나는 김영훈이 일어나기 전, 법술로 그의 머릿속에 지식을 전승시켜 주었다.

그리고 김영훈이 일어나서 머릿속의 지식에 혼란스러워하며, 내가 천인들과 대화를 나눴던 것에 대해 묻자, 나 역시 머릿속에 지식이 들어있었어서 그것으로 천인들과 대화를 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김영훈을 적당히 설득시키고, 그를 연국에 자리잡게 해준 후, 그를 삼화취정까지 끌어올려준 후 월도입천무의 존재와 기타 월수궁무록 등을 가르쳐주며 그가 언젠가 등봉조극을 넘어, 새로운 경지에 안정적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응원하며 그와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진씨세가에 몰래 숨어들어가 제자들의 삶을 살폈고, 스승님 역시 이번에도 먼발치에서 한 번 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흑풍해로 향하였다.

* * *

"흠..."

흑풍해에 있는 서란의 처소로 향하기 전, 나는 서휼이 내게 준 묵빛 구슬을 바라보았다.

지난 삶, 서란과 함께 자폭하며 섭명함을 완전히 파괴시켰던 구슬.

"전달 같은 소리 하는군."

나는 피식 웃으며 묵빛 구슬을 바다 속에 그대로 던져버렸다.

구슬은 심해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누구도 찾지 못할 것이다.

"서란은 당신을 좋은 왕이자 시조로 기억할 것이오."

자신을 섭명함과 공멸시키려 한 인면수심의 악인으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거면 되었다.

나는 잠시 호풍응룡변 공법서도 쳐다보다가, 이 정도는 서란을 만날 때의 증표 정도로 쓰기로 하였다.

'어찌할까. 서 형을 바로 만나러 갈까.'

나는 흑풍해를 앞에 두고 고민하였다.

내가 지금 가면, 서란은 내게 호풍응룡변을 익히라 권하며 몇 년 후에 섭명함에 다시 도전하자고 할 터였다.

"...안 되겠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섭명함에 있는 결단기급의 분혼은, 우리 둘로는 절대 못 이긴다.

'아마 서 형은 내가 그를 찾아가지 못하면, 섭명함을 지키는 마지막 결계를 뚫지 못하니 몇 년이고 기다릴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그는 찾아가지 말자.

'모든 것이 부족하다.'

서란의 죽음이 운명이라면, 그를 막을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니, 운명을 바꿀 힘을 얻은 후에 찾아가자.'

몇 년이 걸리든.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든.

"축기기에 들고, 서 형을 찾아간다."

나는 그렇게 정하고, 성제국 대산맥 쇄천봉.

금신천뢰문이 있던, 영맥이 좋은 봉우리로 향했다.

* * *

회귀 후 5년이 지났다.

쿠그그극...

"후우..."

황갈색 구름이 내 주변에서 회전하더니, 내 코와 입으로 빨려들어왔다.

선각후통으로 깨달음을 얻고, 매 생마다 깨달음을 반복하며 익숙해지니, 점차 지월입도결에 대한 이해도가 늘어갔다.

그리고 그에 따라 매 삶마다 지월입도결을 익히는 속도도 상승하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5년만에 대성했군.'

그리고 지난 삶에 대성했던 수월입도, 화월입도, 금월입도결은 깨달음을 생각해보면, 각각 약 8년정도 걸릴 것이다.

이 기세라면 30년 안에 네 공법을 대성하고, 목월입도결도 10년 정도 걸린다 치면, 40년이면 오월입도경을 전부 대성할 수 있었다.

'가능하다...!'

어쩌면, 이번 생에는 정말로 축기기에 이르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우우우웅-

나는 눈을 뜨고, 강환을 뿜어냈다.

이젠 아홉 개의 강환도 안정화되어, 안정적으로 아홉 강환을 다루는 것에 성공했다.

"등봉조극 극한에 완숙해졌군..."

이제는 이 너머로 가야할 시간.

하지만, 여전히 의식을 실체화시키는 일은 난감했다.

'강환을 의식에 녹여내는 건, 그때의 흐름을 떠올려 흉내는 낼 수 있다.'

우우웅-

내 주변에서 회전하던 강환들이 의식에 녹아든다.

그러나 의식은 강환들의 기와 의를 잡아두지 못했고, 얼마 후 강환에 담겨있던 공력들은 그냥 의식영역 속에서 증발해 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강환의 힘을 의식 속에 잡아둬서 실체화 시킬 수 있는거지...?'

월도입천무를 되뇌고 되뇌도, 너무나 복잡하고 김영훈의 주관성이 짙어서 어려웠다.

나는 월도입천무를 연구하고, 수월입도를 익히며 세월을 보냈다.

* * *

8년이 지났다.

나는 다시 수월입도결을 대성했다.

하지만 아직도 월도입천무는 깨치지 못했다.

김영훈의 시행착오들을 떠올리면서도 월도입천무를 연구했지만,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쯤.

김영훈이 쇄천봉에 찾아왔다.

"...어쩐 일이십니까?"

그리고 나는 그의 성장속도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도대체, 등봉조극의 끝에 벌써 오른 겁니까?"

말도 안된다.

이제 회귀 13년차인데.

벌써 그 사이에 오기조원을 넘고, 등봉조극에 도달해, 그 끝에 도달했다고?

내가 어안이 벙벙한 채로 묻자, 김영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등봉조극의 끝에 이르고, 진씨세가라는 수도가문을 도와 막리세가라는 마도 가문을 연국의 양지에서 쫓아냈다. 모든 걸 다 얻은 줄 알았지만... 등봉조극의 극한에서야 깨달았다. 이곳에 안주하고 있으면,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그가 진중한 기색을 지었다.

"그래서 진씨세가의 장로 자리고 뭐고 전부 때려치우고 네게 왔다. 너와 함께, 머릿속에 들어있는 이 월도입천무에 대해 토론하며 다음 경지로 넘어가기 위하여."

"......"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이상 타고난 재능만을 믿고 나댈 수 없다는 것을. 피를 깎고 몇십년간 고련에 고련을 해야, 간신히 얻을만한 경지라는 것을... 월도입천무를 제작한 제작자가 느낀, 그 피고름 섞인 고통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주변으로 아홉 개의 강환을 띄웠다.

"극한에 이르렀지만, 다음 경지로 어떻게 가야할지 솔직히 엄두도 안 난다. 선인(先人)이 월도입천무라는 길을 피를 깎아서 만들어두었지만, 나 혼자서는 도저히 그 길을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 암울한 기색이 떠올랐다.

"수십 년간 고련해야 한다. 아무리 나라도! 그러니, 나와 함께 길을 걸어다오... 나와 함께 이 경지에 도달해다오."

그러나, 그는 암울한 와중에도 포기 따위는 생각도 않는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김 형...'

인간이 운명을 바꾸려면, 운명의 인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피를 깎는 노력과, 그럴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면 인간을 운명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은, 힘보다는 그 의지가 아닐까.

"...알겠습니다."

나는 그와 눈을 맞추며, 이번 생의 의지를 다시금 다졌다.

"우리 함께, 명(命)을 뛰어넘어 보지요."

그날부터, 나와 김영훈은 쇄천봉에서 동시에 수련을 시작했다.

* * *

"....허억!"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거의 꿈인가.'

김영훈과 쇄천봉에서 함께 수련하기로 했던 날의 꿈이었었다.

나는 고개를 부르르 떨며 정신을 차렸다.

'꿈까지 꿀 정도로 기절했었군.'

툭, 툭..

나는 몸에 묻은 흙먼지와 돌가루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쇄천봉 인근은 난장판이었다.

이곳 저곳에 검흔과 도흔들이 난무해 있었고, 강환의 흔적들로 인한 구덩이들이 사방팔방에 패여 있었다.

쿨럭, 쿨럭!

나는 장풍으로 주변의 흙먼지를 날리며 김영훈을 찾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수련 도중 나와 김영훈이 서로를 후려치고 서로 반대편으로 날아갔을 터였다.

나는 김영훈의 수도에 맞고, 잠깐 정신을 잃고 예전 꿈을 꾼 것으로 끝났지만.

김영훈은 내 발차기는 물론이고 수도법술들 역시 수십 격은 맞았기에, 상태가 어떨지 몰랐다.

"김 형! 김.. 허억!"

나는 김영훈을 찾던 와중, 저 아래쪽 계곡에 상반신이 쳐박혀 있는 김영훈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젠장, 그러게 처음부터 무공 대 무공만으로 대결했으면 나름 안전했을 것을...'

김영훈이 쓸데없이 생사를 건 사투속에서 깨달음을 얻겠답시고 고집을 부리며, 나더러 수도법술까지 같이 써서 붙자고만 안 했어도 이렇게는 안 됐을 터였다.

"김 형, 김 형!"

나는 계곡으로 허공답보를 써서 내려가, 상반신이 박혀있는 김영훈을 뽑아냈다.

"커헉, 쿨럭..."

계곡에 박히는 순간 호신강기를 쓴 것인지, 김영훈은 머리부터 쳐박혔음에도 다행히 중상은 아닌 듯싶었다.

"쿨럭, 꺼르륵.."

피거품을 토하기는 했지만, 일단 머리부터 박살이 나서 죽지는 않았으니 어디인가.

"기다리십시오, 일단 응급처치부터 하겠습니다."

나는 대련 전에 준비해놓았던 약초들과 침통을 가져와서 김영훈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톡, 톡, 토옥, 톡...

나는 김영훈의 몸에 침을 꽂으며 그의 생명력을 활성화시켰다.

얼마 후, 김영훈이 의식을 차렸다.

"김 형, 괜찮으십니까? 이게 몇 개로 보이지요?"

"...두 개.."

"...상태가 안 좋군."

나는 검지손가락을 접어 주먹을 쥐며 혀를 찼다.

"일단 처치를 해 놓고, 수도자들의 시장에 가서 치유 부적이라도 사오겠습니다. 일단..."

"아니, 두 개란 말이다."

김영훈이, 몽롱한 목소리에서 깨어나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에 얻은 깨달음이 두 개란 소리였다..."

뿌드득...

김영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쿨럭, 쿨럭..

그가 피가 섞인 기침을 토했다.

"...생사의 경계에서 다음 경지에 대한 실마리. 월도입천무의 깨달음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가 입가의 피를 닦으며 씨익 웃었다.

"일단 한 가지. 월도입천무는, 월도입천무를 만든 이의 주관성이 짙은 무학이다. 그 이유는, 월도입천무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경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예...?"

"등봉조극 너머의 경지부터는, 각자 다른 깨달음으로 도달하는 경지란 소리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무기와 무공의 종류만으로 갈렸다면, 이 너머부터는 그 '사람'에 따라서 갈린다는 의미다."

나는 김영훈이 얻었다는 깨달음을 들으며 점차 입을 벌렸다.

회귀 35년차.

김영훈이, 월도입천무를 통해 다음 단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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