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77화 (77/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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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命)(1)

[오호라, 그나저나 이건 또 누구야? 그 삼인방이 아닌가? 자네들 원영기였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컸군!]

[괴군!!!!!!]

백골귀마가 눈을 뒤집으며 시커먼 귀기를 흩뿌렸다.

그의 일갈에 사방천지에서 귀곡성이 들끓으며 천지가 진동하였다.

[네놈, 네놈...!!!]

"참게, 비승 전에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 건가?"

"어차피 저 늙은이도 비승 전에 쓸데없는 일을 만들고 싶진 않을 거야."

발작하려는 백골귀마를, 금벽호와 창호자가 어깨를 잡고 말렸다.

괴군은 그런 그들을 보며 끌끌 웃더니 괴뢰 위에서 폴짝 뛰어내려 우리 앞에 내려섰다.

[맞는 말이지. 하늘길이 열리는 지금같은 상서로운 시기에 쓸데없는 일을 만들고 싶진 않다. 그러니 저 범인을 내게 준다면 본로는 그냥 물러가도록 하지.]

그 말에 세 천인이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금벽호가 괴군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다들 하나같이 상상을 뛰어넘는 재능인지라 넘겨주긴 힘들겠군."

"욕심은 그만 부리시지, 늙은이. 본곡의 섭명함, 그 핵심까지 뽑아갔으면서 뭘 더 탐내는 건가?"

그 말을 듣던 괴군은 클클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아, 그렇지. 자네들 배에서 가져온 동력장치 말인데, 성능 확실하더군. 개조해서 [그녀]의 심장으로 달아놨다네. 덕분에 [그녀]가 한층 완성되었어. 자네들 흑색귀골곡한테는 늘 고마운 마음일세.]

창백하던 백골귀마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이... 섭명함의 동력원을 고작 꼭두각시 하나에 박아놨다고..! 대형 종문 하나의 영맥을 전부 합친 것보다 강한 그것을 고작 꼭두각시에..!"

[고작 꼭두각시..?]

그리고, 괴군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시 말해봐라. [그녀]가 고작 꼭두각시라고..? [그녀]는 살아있다. [그녀]는 완전해질 존재다. [그녀]는 내 인생의 전부다..! 네놈, 나머지 섭명함도 다 박살내달라는 게냐..!]

쿠웅!

괴군이 품 속에서 나무상자를 꺼내 던지자, 나무상자의 크기가 커지며 괴군만한 크기로 변했다.

괴군이 커다란 나무상자의 뚜껑에 손을 얹었다.

'저물법기인가..?'

저물법기들에서 나던 영력파동과 똑같은 파동이 상자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동시에, 일반적인 저물법기보다 훨씬 많은 것이 들어있는 듯 훨씬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덜걱-

괴군이 나무상자의 뚜껑을 들어올리려 할 때였다.

"그걸 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괴군..!"

촤아악!

백골귀마가 허리춤에 있던 저물법기를 열자, 시커먼 어둠이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뭔가를 뿜어냈다.

쿠과아앙!

거대한 뭔가는 허공에서 형체를 갖추더니, 이내 약 십 장 크기의 거대한 문(門)으로 변해서 우리의 뒷편에 떨어졌다.

문의 문짝에는 거대한 귀왕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끼이이익!

귀왕의 문이 열렸다. 그 문의 안쪽에는 시커먼 어둠이 가득했으며, 어쩐지 바닷바람 냄새가 나는 듯 했다.

찰랑, 찰랑..

동시에 문 뒤쪽에는 물들이 가득 차있는 공간인듯, 물이 찰박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안력을 돋워서 문 안쪽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문의 안쪽에는, 살이 애릴 듯한 귀기와 음기를 내뿜는, 거대한 전함(戰艦) 두 대가 시커먼 암해(暗海) 위쪽으로 떠올라 있었다.

'섭명함..!'

비록 문 안쪽에 있는 것이라 확실하지는 않았으나, 저 섭명함 두 대에서 느껴지는 귀기는 지난 삶에 보았던 다 박살난 섭명함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소름끼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저 배 두 척 안쪽에서는 어쩐지 백골귀마와 비슷한 정도의 기세를 가진 존재들도 몇몇이 느껴졌다.

'자기 종문을 압축해서 가지고 왔단 말이 정말이었군..'

백골귀마는 두 대의 섭명함을 내보이며 괴군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걸 열면 여기서 다시 전쟁을 하겠단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경고하건데, 그걸 열지 마라..!"

[흐음..]

끼이익..

그러나 괴군은 백골귀마를 의미심정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상자의 뚜껑을 조금 더 열었다.

그러자 창호자와 금벽호의 안색 역시 굳었다.

"괴군, 금신천뢰문 역시 경고컨데, 그걸 열지 마시오. 아무리 당신이 일인군단(一人軍團)이라지만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소?"

"나 창호자도 경고하겠소. 그것들을 꺼낸다면 나 역시 좌시할 수 없소! 정녕 등선향을 지워버릴 작정이오!?"

파지지직!

금벽호가 양손을 모으자, 뇌기가 모이는 듯 하더니 뇌기 속에서 작은 모형 전각(殿閣) 같은 것이 나타났다.

그 전각 안쪽에서는 굉장히 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동시에 창호자 역시 허리춤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 펼쳤다.

두루마리는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저절로 펼쳐졌고, 두루마리 안쪽에는 하나의 산수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산수화 안쪽에서도 수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괴군이 입꼬리를 올리며 히죽 웃었다.

[흐으으으음.....]

끼이이익...

상자의 뚜껑이 더 들어올려졌다.

[네 이놈..! 정말 우리와 전쟁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군!]

[너무 우리를 얕보는 게 아닌가!]

쿠릉, 쿠르르릉...

맑던 하늘에 먹장구름이 끼며, 천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 천인이 영력을 끌어올리며 괴군을 압박하였다.

그러나 괴군은 그들의 기세를 받아내면서도 태연한 기색이었다.

[목숨이 아깝지 않으냐고? 당연히 아깝지 않지. 이미 한참 전에 내 마음이 죽어버렸는데, 더 살아서 무얼 한다는 말인가? 네놈들이야말로 내 심기를 더 건드리지 말고, 그 범인을 남겨둔 채 빨리 승천문으로 꺼지는 게 좋을 거다.]

[흐, 본 곡과 싸울때도 겨우겨우 섭명함 한대를 박살내고 도망친 주제에... 금신천뢰문과 창천개벽문까지 합세한 지금 상황에서 우리 세 종문이 네게 밀린다는 게냐?]

[흐하, 그때 네놈들을 아예 망문(亡門)시키지 않고 조금만 손봐준 게 자비를 베푼 것이었다는 걸 모르는게냐? 그리고 그나마 네놈들과 싸운 직후가 내가 제일 약해졌을 때였다. 나를 상대하려면 그때 합심해서 상대했어야지.

지금은 [그녀]의 심장도 완성됐기에 오히려 그때보다 상대하기 힘들 게다... 잘 생각하거라.]

끼이이익..

괴군이 상자의 뚜껑을 더 열었다.

동시에 상자의 틈 사이로 수많은 속성의 영기(靈氣)가 뿜어졌고, 세 천인이 더욱 더 긴장을 끌어올리며 괴군을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쏴아아아-

주변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허억.. 헉.."

동시에, 오혜서 대리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쓰러졌다.

쿠릉, 쿠르릉..

원래부터 천인들과 괴군의 기세싸움에 먹장구름이 있었으나, 더욱 더 먹장구름의 흐름이 빨라졌다.

'뭣, 오늘 힘을 각성했다고..?'

나는 그녀가 뭣 때문에 저러는 것인지 짐작을 하며 흠칫 놀랐다.

이 역시 예정보다 하루는 빠른 일이었다.

동시에 세 천인과 괴군의 눈길이 오혜서 대리에게 향했다.

[호오, 저건 또 뭔가.. 신기한 혈맥인걸?]

괴군이 눈빛을 번뜩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세 천인 역시 오 대리를 보며 눈을 빛냈다.

[내 생체괴뢰들의 기운에 반응하는 건가..? 아, 그렇군. 해룡족 왕족들로 만든 괴뢰도 있었는데 그 영수(靈獸)의 혈통에 반응하는 것이로구나? 하하, 이거 해부해보고 싶어지는 걸?]

괴군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오혜서 대리에게 성큼 다가갔고, 세 천인이 기세를 끌어올리머 앞을 막아섰다.

[이 자리에 있는 놈들 중 누구 하나라도 네놈에게 넘겨줄 것 같으냐, 괴군!]

[비키지 않으면 전부 죽여 생체 괴뢰로 보충시켜주마.]

끼이이익...

괴군이 상자의 뚜껑을 더욱 들어올럈고, 세 천인의 얼굴이 더더욱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들의 기세만으로 천지가 부숴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콰르르릉!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더니, 어느새 장내에 새로운 인영이 나타났다.

푸른 장포를 입은 푸른 머리의 청년.

이마에는 작은 뿔이 돋아나 있었고, 점잖은 기운이 느껴지는 이였다.

[이거, 천지가 비틀리며 뭔가가 내 혈맥을 부르길래 예정보다 서둘러 와봤소만. 익숙한 얼굴들이 있을 줄이야..]

해룡왕 서휼.

결국 저 자까지 지난 삶과는 다른 시간에 나타나버렸다.

[오랜만이시구려, 금 태상문주. 허 원로원주. 청문 문주. 그리고...]

서휼은 눈웃음을 지으며 괴군에게도 인사를 했다.

[괴군 노야께서도 와 있으셨구려. 멀리서 급히 오면서 바람결에 듣자하니, 노야와 세 분들께서 갈등이 있으신 듯 한데... 본 왕이 중재를 해도 되겠소?

다들 이 상서로운 시기에 이 등선향에서 싸우다니, 서로 원하진 않을 게 아니외까. 특히 노야께서는 등선향을 부수려 하시지 말고 그것을 닫아 주시지요.]

서휼의 등장에, 괴군은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씨익 올렸고, 세 천인은 반색하였다.

[하하, 점잖은 서 용왕께서 말하신다면 믿을만하지.]

[그래, 서 용왕께서 지금껏 얼마나 많은 분쟁을 중재하고 갈등을 평화로이 해결하셨소이까. 저 늙은이에게 정도를 지키라고 얘기를 해 주셨으면 하외다.]

[나 역시 서 용왕이라면 믿을만 하오.]

금벽호, 백골귀마, 창호자는 서휼을 반기며 그에게 신뢰를 보냈다.

그러나, 괴군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푸흑, 푸큭큭큭.. 푸키킥.. 뭐? 저 놈이 분쟁을 중재하고 평화롭게 해결을 해? 저 놈은 그동안 분란의 씨앗을 퍼트리고 갖은 계교와 모략으로 전 대륙에 수많은 전화를 불러일으킨 놈이건만. 네놈들은 뇌가 없는 것이냐?]

그 말에 금벽호가 말했다.

[괜히 서 용왕을 음해하지 마시오, 괴군! 인망이 없는 당신과는 다르게 서 용왕은 지금껏 수많은 갈등 사이에서 중재를 해 왔소.]

[푸흐하하하하! 하나같이 다들 자기 문파에만 틀어박혀 업무만 보니 저 놈의 본질을 모르지. 나처럼 자유로이 다니면서 이것저것 보고 다녀야 눈이 트이는 법이다.

저 놈이 선하고 인망이 많으며 점잖은 놈 같더냐! 저놈은 마음이 망가진 놈이다. 나조차도 짐작할 수 없을만큼 두꺼운 가면을 얼굴에 박아놓고, 속내를 숨기는 놈이다.]

[흥, 누구나 자기 속내는 어느 정도 숨기는 게 당연한 게 아니오?]

[크흐, 네놈들은 아직 어려서 그런 거냐. 아니면 우리처럼 마음이 망가지지 않아서 그런 거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마음이 망가진 이들끼리만 통하는 게 있다. 나 역시 마음이 망가졌기에, 썩어들어갔기에 동류를 잘 알지! 저 놈은 나와 같은, 아니 나 이상으로 마음이 비틀리고 썩은 괴물이다!

서휼아, 네가 가면을 아무리 쓰고 있다고 해도 아무도 그 속내를 못 들여다볼 것 같았느냐? 나는 볼 수 있다. 나는 네놈과 같이 마음이 망가진 사람이니 말이다.]

[......]

서휼은 괴군의 말에 답하지 않고 점잖게 웃을 뿐이었다.

[서휼아, 서휼아. 이미 썩고 죽은 마음이라고 해서 그렇게 가면 속에 가둬놓으면 더욱 더 마음의 병이 도질 뿐이다. 차라리 나처럼 시원하게 가면을 벗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게 낫지 않으냐.]

[...하하, 본 왕은 평생 마음 가는대로 하며 살았습니다. 마음 가는대로 했음에도 거리끼며 부끄러울 것이 없으니, 이 어찌 감사한 삶이 아닙니까.]

[흐흐, 그 많은 분쟁과 고통을 낳은 게 네가 마음가는 대로 한 거라... 정녕 괴물이 되어가는구나. 네 사정이야 잘 모르지만 잘 선택하거라.]

서휼은 말없이 싱긋 웃으며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그에게 말하였다.

[충고 고맙소이다, 노야.]

[나보다 나이도 많은 게 노야는. 가식적이기도 하구나.]

[배울 게 있는 분이라면 누구든지 삶의 선배로 삼는 게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백골귀마가 혀를 찼다.

[서 용왕께서 고생이 많소이다. 이렇게 훌륭한 분을 저 노망난 괴물이 음해하다니. 마음의 병은 무슨 병! 오히려 저 미치광이 늙은이가 마음에 병이 난 거겠지.

저만 아는 미친 논리로 멀쩡한 인간들을 괴뢰로나 만들어 다니는 미치광이가 누구를 욕한단 말이오!]

[나만 아는 미친 논리가 아니다 멍청한 놈. 나는 세상의 이치 중 하나를 깨달았고, 그를 실현시키려 다른 이들을 진화시켜준 것이니라!]

백골귀마는 역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더 상대하지 않고 서휼을 바라보았다.

[저딴 미친 늙은이와는 더 싸우고 싶지 않군. 해룡왕께 중재를 부탁드리오.]

[알겠소이다. 노야, 그리고 세 분이 다투시는 근본적인 사유가 저 인족들 때문이지요?]

[그렇소. 저들은 우리가 분명 먼저 발견했고, 제자로 삼아도 우리에게 우선권이 있소. 그런데 저 막되먹은 늙은이는 무조건 우리에게 꺼지라고 하고 있소이다!]

[흐, 네놈들이 저 녀석들을 가르치면 얼마나 잘 가르칠 수 있울 것 같으냐. 저 녀석은, 특히 저 의식을 가진 녀석은 내가 제일 잘 가르칠 수 있다. 내 안목으로 볼때 해룡족의 혈맥을 빌려 호풍환우를 부린 저 여자는 영수인 네가 제일 잘 가르치겠지.]

괴군은 김 주임을 가르키며 다시 자신을 가르켰고, 오 대리를 가리키며 다시 서휼을 가리켰다.

[무슨 미친 소리! 우리 청색귀골곡에는 없는 속성 공법이 없다. 본곡의 역사가 얼마나 되는지 아나!]

[네놈 흑색귀골곡이 얼마나 늙었는지는 내 알 바 아니고. 공법이야 썩어터질 정도로 많은 건 안다만 제대로 가르칠 스승이나 있냔 말이다. 특히나 나는 의식에 관련된 공법을 많이, 다방면으로 익히고 있어 의식을 통제하는 신통은 훨씬 많이 가르칠 수 있다만?]

서휼은 둘을 보며, 찬찬히 입을 열었다.

[일단. 세 분께 먼저 묻고자 합니다. 현실적으로. 현실적으로 세 분께서는 현재 두 명씩이나 더 추가해서 데려가시면 공간 압력을 버티실 수 있으십니까?]

그 말에, 세 천인의 안색이 굳었다.

서휼이 말을 이었다.

[아마 세 분도 이번에 문파를 비승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현재 각 문파의 건물이나 전함 안쪽에서, 문파에서 선별하고 선별한 최중요 제자들이 각자 문파 원로들의 인솔에 따라 공간압력에 대항할 진법을 펼치고 있을 것으로 압니다만.]

[...맞소.]

세 천인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한명 정도를 추가하는 거야 본인이 한명분의 압력을 더 견디면 되니 문제가 없겠지만, 두 명 이상씩이나 추가를 한다면 아예 진법이 흐트러질테고, 비승에 실패할 확률도 올라가지요.

게다가 이번에는 승천문이 가장 크고 넓게 열리는 시기를 골라 문파의 명운을 걸고 비승에 도전하는 것이니, 절대로 실패하면 아니되지 않습니까.]

서휼의 차분한 설명에 세 천인들의 얼굴에 아깝다는 빛이 잔뜩 묻어났다.

[하지만. 분명 세 분께서 이 인족들을 먼저 발견하신 것도 맞지요. 노야께서도 그 점은 인정하시지요? 노야의 논리가 일반적인 범주와는 다르다는 건 알지만, 그 논리 속에서 시간의 서순마저 바뀌진 않는 것으로 압니다.]

괴군은 서휼의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단 맞다고 해 두지.]

[하면, 노야께서는 세 분께 합당한 보상을 해 드리는 게 맞지 않습니까. 어찌 보면 노야께서는 세 분이 발견한 보물을 무턱대고 가로채려는 것이니, 세 분께서도 마땅한 보상을 받으시면 납득하실 것입니다.]

그 말에 세 천인의 안색이 밝아졌다.

[역시 서 용왕께선 명판관이시오!]

[참으로 훌륭한 답이신 것 같소.]

[해룡족의 미래가 밝소이다.]

그러나 괴군이 눈을 희번뜩하게 뜨며 상자의 뚜껑을 더욱 들어올렸다.

[그런데, 내가 싫다면?]

그 말에, 해룡왕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렷고, 세 천인 역시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나는 소속된 곳도, 데리고 갈 생명체도 없는 산수인지라 내가 부담해야 하는 압력도 거의 없으니만큼. 네놈들을 전부 이 자리에서 등선향과 같이 박살내 버리고, 아예 네놈들이 고른 그 특이체질 녀석들도 다 잡아가, 전부 해부하고 '진화'시켜서 내 세계에 들이고 싶은 심정인데, 내가 왜 협상 따위를 해야 하는 거지?]

그 말에, 해룡왕이 깊은 한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쿠웅!

그의 주변에서 바람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본 왕은 최선의 제안을 해 드렸소. 자꾸 이리 본왕의 제의를 무시한다면, 본왕과 해룡족 역시 세 문파에 가세하여 노야를 공격하고, 지난날 노야가 납치했던 본왕의 혈족들의 시체를 다시 받아갈 것이오.]

[흐, 제 혈족도 장기말로 아는 놈이 괜히 혈족을 아끼는 척은. 네놈 혈족을 운운하며 명분을 확보하려는 밑밥이 아니더냐?]

얼마간 서휼과 괴군이 눈싸움을 하였고, 잠시 후.

괴군이 미소를 지으며 상자를 덮었다.

[그래. 오늘은 조금 양보해주지. 셋이면 몰라도 그 해룡왕까지 끼어든다면 본노가 질 수도 있겠어. 이번에 상계로 올라가 [그녀]를 완성시켜야 하니, 오늘은 네 제안에 따라주마.]

그는 한 발 물러서며 김연 주임을 가리켰다.

[저건 내가 제자로 데려가마. 배상은 추후에 하지. [그녀]의 앞에서 맹세하마.]

통통통-

괴군은 나무 상자를 통통 두들겼고, 그 표면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들었느냐? [그녀]도 내 맹세를 증언했다.]

세 천인은 그런 괴군의 모습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 무슨... 꼭두각시가 무슨 말을 했다고..]

서휼은 한숨을 쉬며 세 천인에게 말했다.

[노야의 논리가 일반적인 논리와 다른 것은 알지 않소. 하지만 본왕이 관찰한 바로, 노야의 [그녀]의 앞에 맹세한 맹세는 전부 지켜졌소. 그건 본왕이 보증할테니 믿어주시오.]

그 말에 세 천인은 혀를 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녀석은 내가 제자로 데려가고 추후에 배상을 논의할 것이고... 저 녀석은 어찌할까.]

괴군이 오 대리를 가리켰다.

[본노의 통찰로 볼 때 서휼 놈이 제일 저 녀석의 잠재력을 잘 끌어낼 것 같긴 하다만. 본노가 보기에 한참 어린 범인이 서휼 놈한테 못된 놈만 배울까봐 걱정이구나. 저 녀석도 본노가 데려가는 게 어떠냐?]

그 말에 서휼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회복한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오혜서 대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세 천인 분께서도 두 명을 데려가시는 건 현실적으로 너무 부담스러우시고, 그렇다고 노야에게 두 명씩이나 맡기는 것은 마음에 안 드실 듯 한데.

이 여인은 제가 데려가게 허락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저 역시 제 명예를 걸고 추후에 배상을 하겠다 약속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세 천인은 괴군을 노려보며 말했다.

[해룡왕께서 중재도 해 주셨는데, 그렇게 하시지요.]

그들은 괴군이 더 이득을 얻는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그리고, 서휼이 오 대리에게 다가간다.

동시에, 나는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내가 그들에게 김 주임의 재능을 각성시켜달라고 하고, 김 주임의 재능을 느낀 괴군이 날아와 세 천인과 으르렁대며 싸울 준비를 하고.

괴군이 꺼낸 상자의 틈 속으로, 해룡족 왕족의 생체 괴뢰들이 뿜은 기운에 오 대리가 각성하고.

오 대리의 능력을 느낀 서휼이 예정보다 빠르게 날아와 그들을 중재하고, 원래대로 인원을 배분해서 가져갔다.

원래대로.

모든 것이, 기묘할 정도로 원래 그랬어야 할 역사대로 딱딱 흘러간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그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선배님들께, 부디 말씀을 올립니다. 사실 이들은 제 동료들입니다. 제 동료들을 그냥 저와 함께 있게 해 주실 수 없으십니까?"

그 말에, 괴군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군. 네놈은 뭐냐. 왜 인족 주제에 뱃속에 요단을 품고 있지? 이런 건 또 처음보는데... 네놈도 해부해보고 싶군.]

뿌드드득!

"끄..으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내 단전 안쪽의 내단이 뽑혀나갈듯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괴군의 의지에 따라 내 내단이 바깥쪽으로 뽑히려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배가 찢어질 것 같다!

그때였다.

파아앗!

부드러운 기운이 나와 괴군 사이로 밀려들더니 괴군의 기운을 막았다.

놀랍게도, 기운의 주인은 서휼이었다.

[어찌 노야께서는 힘없는 생령을 괴롭히시오. 상서로운 시기에 그런된 짓은 자제하는 게 어떨지요.]

[...흥! 가식적인 놈 같으니. 좋다. 어차피 축기경 정도 영성을 지닌 요단이니 연구해봤자 별 도움도 안 되겠지. 더 안 건드리마.]

"쯧쯧, 미치광이에게 걸려 고생이 많군."

창호자가 내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그의 손길에, 괴군에게 내상을 입었던 내 단전이 깨끗이 치유되었다.

서휼은 괴군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가 간 이후에도 이 힘없고 불쌍한 이들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맹세하십시오.]

[...뭐? 서휼 네놈 미쳐버린 거냐?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지금처럼 상서로운 시기에 굳이 힘없는 이들을 괴롭혀 부정을 탈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말에, 잠시 멍하니 서휼을 바라보던 괴군이 폭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하하! 역겹고 역겹고 또 역겹구나. 다들 제 문파에 틀어박혀 있느라 서휼이 벌여온 참극을 모르는 게 아쉬울 지경이야. 너무 역겨워서 토악질이 나올 듯 하군.

좋다! 네놈의 역겨움에 감탄하여 더 안 건드린다고 맹세하지. [그녀]도 네 역겨움에 대해 반박하느니, 그냥 적당히 공감하고 넘기라고 하는구나.]

괴군은 [그녀]라는 것에게 맹세하며 더 이상 우리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한 후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서휼은 나를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준 후, 세 천인에게도 말했다.

[오면서 세 분께서도 등선향의 생령을 많이 해한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상서로운 시기에 부정을 타지 않게 자중하여 주십시오.]

금벽호, 백골귀마, 창호자는 떨떠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룡왕의 앞에서 부끄러운 꼴을 보였습니다.]

[자중하지요.]

[어찌 그리 의로우시오, 서 용왕.]

서휼은 허허 웃으며 그들과 덕담을 주고받은 후, 오 대리를 들쳐업고 단전의 고통을 다스리던 내게 다가와 내 어깨를 짚어주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자네는 인요의 혈통을 타고난 게 틀림없네.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인데, 혹시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는가?]

"...무엇, 입니까?"

서휼이 품에서 묵빛 구슬을 꺼냈다.

[이번에 이 여인의 기운을 느끼고 급하게 온 것인지라 사실 못 처리하고 온 게 있다네. 원래는 바다에 남아있을 내 후손 중 하나에게 이 구슬까지 전부 전달하고 왔어야 하는데 못 전해주었네.

혹여 극란도 인근에 사는 서란이라는 내 후예에게 이 구슬을 전달해줄 수 있는가?]

"......"

[만약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보상으로, 자네같은 인요 혈통이 익힐 수 있는 좋은 공법서도 하나 선물로 주겠네.]

서휼은 품에서 한 권의 요수 가죽으로 장정된 공법서를 꺼내서 내게 주었다.

공법서의 제목은 호풍응룡변이었다.

'아, 이럴려고 나를 구해준 거군.'

서휼의 의도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나는 역겨움이 치솟는 속마음을 가리고, 서휼의 앞에서 가면을 쓰며 감사하다는 듯 그가 준 것들을 받았다.

"해, 해룡왕..선배께서 주신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네. 참 그리고...]

쿠구구구!

그의 눈빛이 세로로 찢어졌다.

[아까와 같이 의견을 피력하는 건 용기이기도 하지만, 만용이기도 하네. 부디 자네보다 높은 이 앞에서 처신을 잘하기를 바라네.

그리고. 자네의 말에 답을 해 주자면, 자네와 저 자는 자질이 애매해서 데려갈 수 없고. 그렇다고 자네 동료들을 남겨두면, 자네 동료들은 그 신화적 재능에 스스로 잡아먹혀 죽어버릴 확률이 높네.

자네에게 그 자질들을 억누를 방법이 있다면 좋은 의견이지만, 방법이 없다면 조용히 있는 게 좋으니 알아두게나.]

쿠구구구!

그의 기세에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해룡왕은 내게 담담히 충고를 한 후 용으로 변해서 승천문으로 날아갔고, 나머지 천인들 역시 동료들을 데리고 승천문으로 날아갔다.

장내에 남은 것은 도망치려는 김연 주임을 기절시킨 괴군과, 나와 김영훈 뿐이었다.

나는 망연하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모든 것이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나와 김영훈을 바라보던 괴군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공간균열이 열렸다.

[쯧, 가식적인 용 같으니. 그런 말을 지껄일 거면 등선향 바깥으로 내보내라도 줄 것이지..]

"하, 하..."

지난 삶에 기지를 발휘하여 서휼의 손으로 김영훈을 내보냈지만.

이번 삶에선 고무줄에 묶인 공이 돌아오듯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마, 괴군은 나와 김영훈을 또 다시.

똑같이.

연국으로 보낼 것이다.

"선배님."

나는 허탈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며 괴군에게 물었다.

"운명(運命)이란 것이 실재합니까?"

내 물음에, 괴군은 흥미로운 질문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실재하지. 네가 특이한 공법을 익힌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만. 연기기 칠성제의를 치루면 모두가 천명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가 하늘을 가리켰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일어난다. 그것이 천명이지.]

"...그렇다면, 인간은 운명을 바꿀 수 없는 겁니까?"

그 말에, 괴군이 히죽 웃었다.

[운명의 구조가 이해되지 않나보군. 그렇지 않다. 모든 생령은 운명을 바꿀 수 있어.]

"...예?"

[너, 지금까지 의문을 가져본적이 있느냐? 왜 수도자들의 경지의 칠십이지살, 삼십육천강, 칠성제. 그리고 축기기 때에 만드는 영기의 별 등. 하늘의 별들을 담은 이치를 익혀가는지.]

그의 손가락이 허공 끝을 찔렀다.

[수도자들이 '왜' 역천의 존재인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느냐?]

"그건... 그냥 당연한 게 아닙니까? 하늘이 부여한 수명을 거스르니까..'

[그럼 '왜' 수도자들은 하늘이 부여한 수명을, 운명을 거스를 수 있지?]

"그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괴군이 손가락으로정순지력을 뿜으며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가여운 네놈에게, 위대한 이 몸께서 운명의 구조에 대해서 특별히 설명해 주지. [그녀]도 그러라고 하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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