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야(7)
눈을 뜨기가 힘들다.
아니, 단순히 눈을 뜰 수 없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태양을 직시하면 눈이 아픈 것처럼, 너무나도 과다한 의념의 흐름을 마주하자, 내 상단전이 지끈거렸다.
눈뿐이 아닌, 의념의 지각이나 요족의 지각으로 보더라도, 직시하는 것만으로 고통스럽다.
'저건 도대체, 무슨 깨달음이란 말인가..!'
그러나, 나는 그 고통을 이겨내며, 기어코 김영훈의 모습을 직시하였다.
그는 황금빛 물결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단맥도법(斷脈刀法)의 무리(武理)가 김영훈의 도 끝에서 올올이 풀려나온다.
총 1초부터 17초의 단맥도법.
산을 넘고 넘어, 집에 돌아가고픈 김영훈의 마음이 만들어낸 무학.
그러나, 단맥도법의 16초와 17초는 단악검법의 23초, 24초와 그 깨달음을 공유하는 같은 오의였다.
단악검법 23초, 단맥도법 16초 산외산부진(山外山不盡).
그리고, 단악검법 24초, 단맥도법 17초.
우공이산(愚公移山).
산 바깥에 산이 다함이 없듯이.
인생에 아무리 고난과 역경이 닥칠지라도.
우직하게 자신의 무를 믿고 나아가는 우공(愚公)이라면.
반드시 모든 산을 전부 밀어내어(移山)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산외산부진에 이어지는 단악검법과 단맥도법의 최종오의.
우공이산에 담겨진 지난 삶의 김영훈의 의지였다.
그러나, 지금껏 김영훈은 우공(愚公)인 적은 없었다.
우공은 어리석은 둔재를 뜻하는 것이었으니.
무학의 천재인 그에게는 맞지 않는 말.
그러나, 어쩌면 단악검법과 단맥도법을 창시한 지난 삶의 김영훈은, 수도자들의 앞에서 절망을 맛보며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천재라도 우공(愚公)이 되지 않으면, 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그리고..
김영훈은 우공이 되었다.
아무리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길일지라도.
태산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전승하고 또 전승한 그 끝에, 비로소 산을 뚫는 데에 성공하였다.
푸확!
화르르륵!
김영훈의 상단전으로, 강기(罡氣)가 피어오르며 그의 상단전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저것은...'
법술과 무공을 동시에 익힌 내 눈에, 저것의 흐름이 보였다.
'진씨세가의 비술(祕術)!'
이전, 내 제자들의 상단전에 친지의 원혼을 집어넣어 상단전을 각성시켜 재능을 강제로 활성화시키는 비법.
김영훈은 진씨세가의 비술을 무학(武學)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이 만들어낸 모양이었다.
원혼이 아닌 자신의 강기로 상단전을 불태워, 지닌 바 무공 재능을 극한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그아아아아아!"
김영훈의 상단전부터 시작하여, 그의 상반신 전체가 강기에 불타기 시작했다.
그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도법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회광반조(回光返照).
지기 전의 노을이 가장 불타오르듯이, 그는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하지만, 나는 그 광경을 놓칠 수 없었다.
김영훈의 무학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우우웅-
의념의 세계.
불타는 김영훈을 중심으로, 그의 주변에 서 있는 아홉명의 김영훈들.
아홉 개의 강환들이, 빛을 발하며 변화하였다.
강환(罡丸)이, 허공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아니, 허공이 아니었다.
강환은 김영훈의 의식영역에 녹아드는 것이었다.
아홉 개의 강환이 차례대로 녹아들며, 점차 김영훈에게서 뿜어지는 황금빛은 진해져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피싯, 피싯-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 그 예기(銳氣)에 전신 곳곳이 베여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김영훈의 의식영역이 강환과 합일하여 실체화(實體化)되기 시작한다.
김영훈의 의식영역은, 완전한 황금빛으로 화하였다.
"도...달...한..다...!!"
쿠구구구구!
황금빛으로 실체화된 의식영역이, 일순간 마치 선(線)처럼 얇아졌다.
"반..드..시.."
황금빛의 선은, 그대로 김영훈의 도신(刀身)에 깃든다.
"하늘... 너머에...!!!!!"
강기에 스스로를 불태우면서도, 김영훈은 빛무리가 깃든 황금빛의 도를, 하늘로 휘둘렀다.
일순간 그의 도는, 빛살조차 넘어서(凌光) 하늘에 도달하였다.
번쩍!
하늘에 휘광(輝光)이 몰아치며 하늘을 지나던 구름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아아...'
내 눈에서 나온 무엇인가가,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손으로 그것을 훔치니, 그것은 붉은 색이었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동시에 이해를 불가하는 깨달음에.
순간 상단전이 버티지 못하여 피눈물을 흘렸던 것이리라.
화르르...
그리고, 김영훈은 하늘을 향해 도를 휘두른 그 자세 그대로.
선 채로 죽었다.
그는 강기에 불타면서도, 마침내 도달했다는 듯.
비로소 이곳에 왔다는 듯.
웃고 있었다.
투둑, 툭...
솨아아아..
김영훈의 몸에서 강기들이 빠져나오며, 김영훈은 자신의 강기에 휩쓸려 그대로 산화(散華)하였다.
그는 빛무리가 되어, 그렇게 하늘로 날아갔다.
그가 그토록 도달코자 했던, 그곳으로.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김영훈이 있던 자리를 향해, 절을 올렸다.
이는 무학의 한계를 다시 한번 초월(超越)한 대종사(大宗師)에 대한 예였다.
방금 전, 등봉조극을 넘어서는 깨달음을 목도한 탓인지.
내 주변으로 어느덧 여섯 개의 강환이 떠올랐고, 회전하며 일곱 개로 쪼개졌다.
이제 남은 강환은 두 개.
두 개만 채우면, 등봉조극의 극한.
김영훈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 그 너머의 경지에 도전할 자격을 충족하게 될 것이다.
나는 김영훈이 남긴, 새로운 깨달음.
월도입천무(越道入天武)의 책자를 살펴보았다.
뭔가 갈피가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다.
아마 등봉조극의 극의에 이르면 이를 통해서도 갈피를 잡을 수 있을 터.
'그곳까지.'
반드시 도달해보이겠습니다.
김영훈의 도광(刀光)이 하늘을 사른 탓일지.
저 멀리서 여러 수도가문의 사람들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토둔술을 써 흙 속으로 도망쳤다.
김영훈의 마지막 모습을 되뇌고 또 되뇌며.
* * *
죽을 날이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숨결을 뱉었다.
후우우우..
황색, 흑색, 적색, 백색의 구름이 나타나서 내 주변을 맴돌았다.
지월입도, 수월입도, 화월입도, 금월입도.
죽기 전, 네 가지의 공법을 대성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결국 목월입도는 익히지도 못하고 죽는가..'
나무(木)의 공법.
목 속성의 공법은 사실 일부로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다.
내 스승님을 떠올리게 하는 공법이었으니까.
나 자신이, 나무가 깊이 뿌리를 내릴 좋은 토양이 될 수 있을지 잘 몰랐으니까.
수명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곱 개의 강환도 전부 깨달음을 갈무리해서 안정화시켰다.
다음 삶에서도 10년만 용맹정진하면 등봉조극의 극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리라.
일곱 개의 강환.
그리고 네 개의 오행공법.
전부 한두개씩만 남겨두고 아쉽게 완성하지 못한 것들.
'이쯤 되었으면, 나는 나무가 자랄 좋은 토양이 된 것일까...'
다음 삶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일까.
'아무것도 모르지.'
나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내 주변에서 회전하는 구름들을 다시 빨아들였다.
서란의 희생으로.
김영훈의 산화로.
그리고 나 자신의 정진으로, 이 삶 전체를 다음으로 향하기 위한 밑받침으로 만들었다.
이 삶 전체가 다음을 위한 자양분.
'고요하군...'
나는 단전에서 휘몰아치는 네 가지 색의 구름을 관조하며 생각했다.
마치 폭풍전야와도 같다.
'그래, 이번 삶은 마치 폭풍전야...!'
다음 번의 삶에, 나는 진정 폭풍이 되어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이 생에서 자양분이 되어준 이들에게, 부끄러울 수 없으니까!'
두근, 두근...
수명이 다 되어간다.
쿠구구구!
나는 동시에 다시 한번 축기기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네 개의 구름이 휘몰아치며, 압축된다.
동시에 중심부에서 사색(四色)으로 빛나는 영기의 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축기에 도전했더라..?'
이젠 나도 몰랐다.
많이 도전했을 터였다.
쿠구구궁!
흔들리며, 부서지려는 영기의 별에 네 개의 구름이 끊임없이 회복을 가하며 별을 유지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변화가 너무 많았다.
네 가지 속성으로는 부족했다.
꾸웅!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축기기의 문턱을 두드린다.
그러나 그 때였다.
두쿵!
내 심장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작되었군.'
나는 강기를 심장으로 보내, 강제로 심장을 주무르며 수명의 끝에 저항했다.
두근, 두근, 두근...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렇게 된 것.
'아예 끝을 보지.'
김영훈은 자신의 남은 시간 안에 극한을 초월할 수 없을 것을 알고, 스스로를 불태웠다.
천재조차 스스로를 불태웠는데, 어찌 감히 둔재따위가 죽음을 앞두고서 망설인단 말인가.
쿠구구구!
내단에서 공력이 빠져나왔다.
그리고, 공력은 체내에서 강기화(罡氣化)되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푸확!
화르르르르!
"끄...으으아아아아!"
강기를 제어해주고 영맥을 완결시켜줄 영기의 별이 없어서.
아직 축기기가 아닌 연기기 따위라서.
내 몸은 강기에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불타올랐다.
그러나 동시에 강기는 심장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날뛰게 했고, 하단전의 내단에서 뿜어진 강기가 중단전의 심장을 자극시키고 올라가 상단전에 도달했다.
김영훈이 펼쳤던 무공.
나 역시도 등봉조극이자 연기기 극성이었기에, 그 정도는 보고 따라할 수 있었다.
강기로 상단전을 불태워, 얼마 되지 않는 내 재능을 최대치로, 아니 그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꾸웅!
꾸웅!
꾸웅!
몇 번이고 그렇게 축기기의 벽을 두드린다.
동시에 나는 주변으로 강환을 띄우며, 여덟 번째 강환의 감각을 잡으려 의식을 집중하였다.
떠나보내기만 했던 삶.
제자도, 스승도, 벗도.
이 실패를 자양분삼아 다시는 잃지 않으리라.
쿠릉, 쿠르릉...
하늘에 먹장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나는 강기 속에서 불타면서, 히죽 웃었다.
"왔...나..?"
얄궂게도, 이젠 저 먹장구름도 슬슬 정겨워지고 있었다.
감히 미물이 어디 하늘이 정해준 수명을 벗어나냐는 듯.
노한듯이 번개를 머금은 구름이, 저 하늘을 완전히 뒤덮었다.
나는 의념의 지각과 요족의 지각을 켜고, 동시에 금신천뢰문의 터에서 발견했던 예뢰안(預雷眼)의 법술을 발동했다.
천기를 보는 감각을 집중시켜 낙뢰의 위치를 예견하는 법술.
'아니, 법술이랄 것도 없고 그냥 요령이지.'
칠성제의로 얻어냈던 천기의 감각을 그냥 낙뢰에 조금 집중시키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번개를 머금은 구름을 보면서도, 역시 이 법술은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번개를 예견하고 피할 수 있는 실력자면 그냥 번개를 막아버리거나 맞고 버텨도 된다.
반대로 번개를 예견해도 막을 수도 없는 잔챙이라면 어차피 피할 수도 없다.
빛의 속도로 내리치는 저걸 무슨 수로 피한단 말인가?
나는 강기의 휩싸여, 담담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꾸궁!
꾸구궁!
영기의 별은, 지금까지 내가 유지한 시간 중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네 속성의 법술을 대성한 결과.
역시나 오행을 대성하면 축기에 이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거욱 거세졌다.
그리고.
꾸과광!
영기의 별은 버티다 말고 결국 폭발해 버렸다.
동시에, 하늘에서 청뢰(靑雷)가 떨어졌다.
하늘의 벼락이 대지에서 태어난 인간에게 떨어진다.
나는 강기에 휩싸인 채.
그대로 벼락을 맞았다.
그리고 벼락을 맞는 그 순간이었다.
내 주변에서 회전하는 일곱 개의 강환들.
나는 죽음의 순간, 하늘의 기운이 땅에 내려온 이 순간에 강환(罡丸)의 이치를 어쩐지 알 것만 같았다.
'하나가 천(天), 지(地), 인(人)으로 쪼개지고. 인간이 그 혼자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듯이... 하늘도, 땅도, 인간도 모두 혼자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닐지도.'
하늘도 땅도 사람도.
각각의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하늘 역시 땅, 사람, 그리고 하늘 자신의 영향을 받아 그 안에 천지인이 또 있고, 땅 역시 하늘, 사람, 땅 자신의 영향을 받아 그 안에 삼재가 있으며.
인간 역시 그 내면에 천지인이 다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아, 김영훈은 순환(循環)의 이치로 강환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지.'
인간은 자신을 낳아준 이들, 자신과 함께하는 이들, 자신이 낳은 이들에게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그 안에서 순환한다.
어쩌면 세상의 이치도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순환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청뢰(靑雷) 속에서 불타며, 그 찰나간에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늘이 수명을 넘어서는 인간에게 벌을 내리는 것도, 결국에는 인간 역시 하늘에 영향을 미치기에 최대한 그 영향을 줄이려 하는 것일지도...'
김영훈이 내게 영향을 미친 것처럼.
서란이 내게 영향을 미친 것처럼.
내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천지인 속의 또 다른 천지인.
삼재가 다시 삼재로 쪼개진다.
강환의 갯수가, 늘어난다.
일곱, 여덟...그리고 아홉!
그 깨달음 속.
푸른 번개 속에서 재가 되어가는 와중에도, 나는 일곱 개의 강환이 아홉 개로 늘어난 것을 확인하며, 그렇게 눈을 감았다.
그것이, 나의 아홉번째 회귀(回歸)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