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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6)
쿠과과과과광!
검은 음기가 몰아치며, 압축되어 있던 공간이 터져나왔다.
쿠구구구!
나는 휩쓸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뒤로 물러났다.
섭명함 내부에 있던 내부 갑판들이 끝없이 커지며 결계를 박살냈다.
해무의 결계가 박살났고, 환영결계가 박살이 났다.
해무결계에 갇혀있던 수많은 귀신들이 허공으로 승천하며, 원혼들의 음기가 걷혀나갔다.
음기의 근원이 사라지자, 근방의 먹장구름과 폭풍이 눈 녹듯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촤아아아-
파도가 잔해들을 뒤덮었다.
나는 금신천뢰문이 있던 대산맥의 산 하나 분량의 잔해를 보며, 말없이 내 친우를 애도하였다.
* * *
서란은 시체도 찾을 수 없었다.
공간 폭풍에 휘말린 탓일까.
나는 며칠간 서란의 시신을 찾다가 포기하고, 결국 그를 위해 작게나마 천도제를 지내준 후 그의 처소로 갔다.
촤아아아
수월입도결로 물 위에 서서, 물살을 가르며 그의 처소로 향하며, 나는 많은 상념에 잠겼다.
서란의 죽음 말고도, 그가 알려준 여러 진실에 머리가 복잡했다.
'나는, 사람을 가축처럼 사육하고 단약을 만들어먹는 용에게 두 동료를 넘긴 건가?'
서휼은 겉으로 보아서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되는 이였다.
괴군만큼 안좋은 소문도 없었고, 가장 점잖은 이기도 했다.
'창호자 다음으로 가장 호감가는 이라고 생각했어서 동료를 맡긴 것이었는데...'
결국은 최악의 선택이 된 것이었다.
'젠장...'
내 손으로, 가장 끔찍한 죄악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나는 이를 악물며, 한참을 복잡한 의념 속에 잠겨있었다.
'내 무지로, 동료를 최악의 존재에게 넘겼다...'
더는 무지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알아야 한다.
더욱 더 정보를 모아야 한다!
나는 그리 다짐하며, 서란이 지내던 수중동굴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가 지내던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촤아아악!
서란이 내게 준 푸른 구슬이 빛을 내며, 사방으로 빛을 퍼트렸다.
'이건...'
푸른 빛이 닿는 자리에서, 숨겨진 동굴의 입구들이 보였다.
나는 조심스레 숨겨진 입구들에 들어갔다.
입구는 총 세 개.
하나는 서란의 생활공간이었다.
인요 형태로 생활하던 공간이었는지, 그곳에는 단단한 침상이 놓여있고, 인간 수준의 생활기구들이 놓여있었다.
또 하나는 수많은 재료들이 모여있는 공간이었다.
수많은 요수들의 뼈, 가죽, 특이한 목재와 석재가 잔뜩 모여있었다.
마지막은 서고(書庫)였다.
서고 안에는 수많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요족 공법서 및 서적들이 잔뜩 꽂혀있었다.
내가 익혔던 호풍응룡변, 아니 호풍응단변 같은 노예나 가축용 공법서가 아닌, 진짜 해룡족들이 익히는 요수공법서가 가득했다.
나는 천천히 요수공법서들을 살펴보며, 서란에게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를 전하였다.
'고맙습니다, 서 형...'
나는 요수공법서들을 빼냈다.
또한 요수공법서뿐이 아닌, 다른 몇 권의 서적 역시 빼내어 읽어내려갔다.
서란은 인요의 혼혈인 탓인지, 연국, 벽라국, 성제국은 물론이고 그 외의 여타 다른 인족 국가의 서적들 역시 잔뜩 가지고 있었다.
나는 서적 중 손때가 많이 묻은 서적들을 뽑아보며 읽어보았다.
그 중에는 요수공법서도, 해룡족의 역사서도, 인족 국가에 대한 서적도 있었다.
[연국의 문화]
난 서책을 읽고 다른 책을 다시 읽었다.
[성제국의 문화]
'성제국의 문화 중 성제국 산간 지역의 문화로는, 산간 지역 사람들이 1년에 한 번씩 벌이는 축제들이 있으며...'
'축제의 종류는 몇백년을 전해 내려온 쌍선무, 위뢰제, 경술제 등이 유명하고..'
나는 다음 책을 읽었다.
[벽라국의 문화]
'벽라국은 사막과 접해있어, 유리 공예품이 많이 만들어지고, 또한 죽은 이에게 유리 공예품을 바치는 문화가 있을 정도로 유리에 대한 벽라국인들의..'
또한 상계(上界)에 대한 문화를 담은 서적도 있었다.
[상계인들의 삶]
서란은 이 서적을 이 서적엔 특히 재미있게 읽은 듯 손때가 많이 타 있었다.
'상계의 선사들은 부부의 연을 맺기 전, 두 잔의 술을 서로에게 따라주고 마시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상계의 술 중에는 모령주, 계령액, 쌍화주... 그리고 백홍주라는 것이 유명하다.'
'모령주는... 계령액은... 백홍주는 백연화와 홍리화, 두 선화(仙花)를 사용하여 만든 술로 부부의 연을 상징하는 주류이다..'
'상계의 문화 중에는 또...'
승천문 너머, 저 아득한 상계의 문화와 풍습들.
나는 책장을 넘기며 상계에 대한 서적을 읽던 중, 유난히 손때가 많이 탄 한 장을 펼쳤다.
'상계에서는 가족이 모이는 행사가 있을 때, 자색(紫色)의 띠를 전부 두르고 모인다고 한다...'
가족.
유난히 그 부분은 책을 읽던 이가 많이 어루만진 것인지, 잔뜩 헤져 있었다.
서란이 책을 읽는 모습이 연상이 되었다.
그는 어쩌면 수 년동안 이 곳에서 책을 읽어왔을 것이다.
그가 서고 곳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연상이 되었다.
해룡족에 대한 서적 역시 그의 손때가 많이 타 있었다.
특히, 해룡족과 인족의 혼혈에 대한 기록에는 어마어마한 손때가 타 있었다.
그리고, 그 기록의 바로 뒷면에는 서란이 쓴 듯한 문장이 기록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혼혈은 인족의 장점과 요족의 장점을 두루 갖추지만, 나는 요족의 피가 너무 진하기에 인족의 장점도 살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요족으로서의 야성도 완전하지 못한 반편이이다. 다른 해룡족원들은 그래서 나를 싫어하는 것일까.'
'그래도 왕께서는 내가 해룡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왕께, 서휼 할아버님께 충성을 다할 것이다.'
"......"
아무래도 서란이 섭명함의 결계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요족의 피가 훨씬 진한 이유였던 듯 했다.
나는 서휼에게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문장을 보다가, 더 이상 서란이 남긴 몇몇 기록을 보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렸다.
'...부디, 저승에서는 평안하기를. 서 형.'
나는 그의 처소에서 요수공법서들을 챙겨서 나와 연국으로 향했다.
'힘이 없고, 약할 뿐인지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에 도달하겠습니다.'
김영훈은, 요수공법서들을 바탕으로 또 다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다음번 삶에는, 할 수 있는 한 그가 죽지 않게 할 것이다.
* * *
"이건...!"
김영훈은 내가 가져온 요수공법서들을 보며, 반쯤 눈이 뒤집어져 공법서들을 읽어내려갔다.
"고맙다..! 이를 기반으로 시행착오를 한참은 줄일 수 있을 것이야!"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김영훈은 내가 가져온 공법서 무더기를 보며 얼굴에 화색이 돈 채로 그것들을 읽어내려갔다.
'이 정도라면, 김 형은 과연 이번생에... 등봉조극 너머를 볼 수 있을까?'
그는 희희낙락하며 공법서들을 들여다보고, 그가 그동안 호풍응룡변만을 가지고 시행착오를 거쳤던 수많은 무학을 정리하였다.
* * *
나는 김영훈에게 수도공법을 수련해야 한다고 말하며, 성제국 대산맥 쇄천봉에 있겠다는 말을 한 후 쇄천봉 인근으로 갔다.
'지월입도결과 수월입도결을 대성했으니, 이제 화월입도, 금월입도, 목월입도결도 전부 대성해야겠어.'
어떻게든 다른 속성의 구결들도 구결에 익숙해지면 다음번 삶에는 더더욱 빠른 시간 안에 익힐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내가 쇄천봉 주변에 도착했을 때였다.
'저건, 결계..!'
나는 인근에 멈춰서 결계를 살펴보았다.
얼마간 기다리니, 결계 안쪽에서 몇몇 인영이 빠져나왔다.
'제길, 하긴 생각해보면 금신천뢰문도 이제 없겠다. 성제국의 수도가문들이 금신천뢰문이 있던 자리를 차지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겠지..'
나는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끼며 주변을 탐색해 보았다.
쇄천봉은 단순히 하나의 봉우리가 아니었다.
금신천뢰문이 자리잡았던 전체적인 산지 대부분이 쇄천봉이라 불리웠고, 그러한 수많은 쇄천봉 중에는 영맥이 옅어 수도가문에서 차지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좋아, 저 곳에서 수련을 하면 되겠군.'
나는 영맥이 적당하나, 썩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봉우리로 가 가부좌를 틀고 수련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화월입도결을 익힐 생각이었다.
* * *
십수년이 흘렀다.
나는 십수년 끝에 화월입도결을 대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쿠구구구-
단전에서 삼색(三色)의 구름이 휘몰아친다.
'회복력이... 어마어마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말도 안되는 수준의 회복력이었다.
축기경에 도전하고 수행이 12성으로 떨어져도, 하루이틀이면 수행을 전부 회복하는 게 가능할 정도.
그러나, 남은 수명은 이제 10여년.
'아무리 익혀봤자 오행공법을 전부 대성하기는 요원하다.'
해봤자 4개가 한계.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이번 생의 시간을 바탕으로.
이번 삶의 인연을 거름으로, 다음 삶의 싹을 틔울 수 있을 테니까.
아니, 틔워야 하니까!
꾸궁!
나는 다시 한번 축기기에 도전했다.
역시 이번에도 영성의 별은 깨져 버렸고, 내 수행은 다시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단전 내에서 삼색의 영기가 회전하며 회복되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이면 전부 회복된다.'
솔직히 이정도 회복력이라면, 아마 수행을 회복한 상태에선 연기기의 실력만으로도 축기기에 막 오른 축기 극초기 수도자와는 해볼만 할 것 같았다.
쿠구구구구-
나는 단전에서 휘몰아치는 영력을 관조하며, 수행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틀 후.
나는 연기기 14성의 수행을 전부 회복하고, 멈추지 않은 채 금월입도결의 수행에 들어갔다.
시간을 허비할 틈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경지를 높여야 할 터였다.
* * *
촤아아악!
내 주변으로 백색(白色)의 금(金) 속성 영기가 퍼져나갔다.
내 수명은 거의 남지 않았다.
금월입도결은 현재 9성, 오행진의에 막 도달하였고, 단전 안에서는 네 가지 색의 영력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황갈색의 지기(地氣), 흑색의 수기(水氣), 적색의 화기(火氣), 백색의 금기(金氣).
세 가지 색의 구름 사이로, 백색의 기운이 조금 휘도는 형태였으나, 그것만으로도 나는 회복력의 증감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젠, 축기에 도전해서 수행이 떨어지고도 반나절만에 대성한 모든 속성의 법력을 전부 14성까지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
만약 금월입도결도 대성하면 반나절이 아니라 한두시진만에 전부 법력을 화복하는 게 가능할지도 몰랐다.
'이제... 얼마 안 남았..'
그 때였다.
파아앗!
"...?"
내가 김영훈에게 주었던 전음부가 하얗게 빛났다.
[지금 성제국에 와 있다. 대산맥 바깥 성제국 경주성에서 만나자꾸나.]
그 말을 끝으로 전음부는 꺼져 버렸으나, 나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대산맥 바깥으로 나섰다.
'방금 그 목소리는, 뭔가를 각오한 목소리였다.'
도대체 무엇이지?
김영훈은 성제국 경주성의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구나."
"김 형."
"일단 사람이 없는 곳에서 얘기를 좀 해볼까.."
"예, 원하신다면."
나는 김영훈과 함께 대산맥 안쪽,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계곡으로 들어왔다.
"어쩐 일이십니까?"
그간 요수공법을 연구하느라 바빴는지, 단 한번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던 그였다.
반갑기도 했으나, 어쩐지 오늘 그의 안색은 조금 이상했다.
나는, 저 얼굴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이들에게서 봐왔던 얼굴, 그리고 그 의념의 색상.
저것은, 죽음을 앞둔 이의 것이었다.
"김...형?"
"...은현아."
김영훈이 쓰게 웃었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예...?"
"아마, 10년. 20년 정도는 더 살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수도자가 아닌 그냥 범인일 뿐이다. 오래는 살 수 없어..."
그가 허리춤에서 도를 뽑았다.
"네가 준 요수공법들로 인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줄였음에도 여전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고.
그 시행착오를 거치며, 시간을 잡아먹었을지언정... 나는 '진짜 길'을 발견하는 것에 성공했다. 단순히 인간의 의식을 인간 형태로 바꾸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발견했어..."
"....!"
"하지만, 너무나도 늦었다."
뚝, 뚝뚝...
김영훈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처음부터, 이 경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정확히 이곳을 향해서 수많은 고련을 하였다면 모를까... 지금. 고작 10년, 20년 안에 도달하기에는 너무나도 시간이 부족하다..!
아무리 나라도... 시간이 필요해.."
"김 형.."
김영훈의 수명은, 일단 나보다는 조금 더 길었다.
그러나 그 역시 범인이라는 틀 때문인지 딱 그 정도가 끝이었다.
"도달할 자신은 있다. 하지만, 도달할 시간이 없어.."
그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들었다.
"무공을 익히고 익혀서 가족에게 돌아가기를 꿈꿔왔다만... 전부 허망한 일이었던 모양이지.
그런 만큼. 가족에게 돌아가진 못할지언정, 이 무공만은 완성되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보고 죽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눈에는 기이한 광기(狂氣)가 서려 있었다.
"은현아, 나는 오늘 이곳에 죽으러 왔다! 이 목숨을 불살라서, 내 모든 재능을 불살라서, 단 한 순간만이라도 다음 경지에 도달하고, 그리고 죽을 것이다!"
그는 품속에서 한 권의 서책을 꺼냈다.
그의 시행착오가 잔뜩 추가되었던 월도월무록과는 다르게, 책자의 두께는 얇았다.
책자에는 아직 제목이 없었다.
'모두, 내게서 떠나가는가...'
서란도, 김영훈도.
나는 착잡한 기분으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를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저 지켜봐줄 수밖에.
지켜보고, 다음의 삶에 전승할 수밖에.
휙!
그가 책자를 내게 던졌고, 나는 그 책자를 받아들었다.
"...이것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월수궁무록.
조수월무록.
월수월무록...
그리고 월도월무록(越道越武錄).
수많은 김영훈들의 피가 서린 집념으로 쌓아올려진 무의 새로운 역사.
"이것은, 무엇을 담은 기록(錄)이지요?"
김영훈이 웃었다.
어쩐지 그 웃음에는 피고름이 맺혀있다고, 그렇게 느꼈다.
"기록이 아니다."
"예..?"
"무(武)... 그것은, 무학(武學)이다..!"
처억!
김영훈이 도를 잡고 자세를 잡았다.
"내가 삶을 갈아넣어, 때려 부수고 재탄생시킨 그것은..."
그의 기세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김영훈의 주변으로 아홉 개의 강환이 떠올랐고,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월도입천무(越道入天武)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다음 순간.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은 황금빛이 주변을 밝혔다.
김영훈이, 다음 경지를 향해 목숨을 불사르며 도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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