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72화 (7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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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4)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서란과 약조한 기일이 다가왔고, 나는 감았던 눈을 반개했다.

"후우우..."

입김을 내뿜자, 단전에서부터 지월입도결의 영운이 올라왔다.

황갈색의 구름이 주변을 덮는다.

하지만 동시에.

싸아아아아-

새카만 구름이 황갈색 구름에 섞여들며, 쌍색(雙色)의 구름이 내 주변을 맴돈다.

검은 구름과 황색의 구름.

검은 구름은 수월입도결의 수기(水氣)와 음기(陰氣)가 형상화된 기운이었다.

후우웁-

다시 숨을 들이쉬자, 두 구름이 내 코와 입으로 다시 빨려들어왔다.

"수월입도결, 연기기 14성 무극영운(無極靈雲) 등극."

당초 지월입도결로 영맥을 전부 뚫어놓았기에 전신혈맥을 추가로 뚫는 과정은 필요 없이, 그저 법력을 쌓기만 하면 되었다.

거기에 추가로 선각후통으로 각 단계에서의 깨달음은 전부 꿰고 있으니 그저 오행의 차이만을 생각하며 천천히 뚫으면 될 뿐.

'물론 그것조차도 굉장히 오래 걸리긴 했지만...'

이 정도야 그냥 체질에서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차이라 생각해야 할 듯 했다.

'하지만 계속 이 속도라면 결국... 이번 생에서 오행공법을 전부 익히지는 못하겠어.'

어쩌면 다음 생까지도 봐야 할 것 같았다.

우우웅-

나는 눈을 뜨며, 장심으로 강환을 뿜어냈다.

강환은 허공에서 다섯개로 쪼개지며 내 주변을 맴돌았다.

'이제야 강환도 다섯 개...'

깨닫기야 예전에 깨달아 다섯 개의 강환을 다룰 수 있게 됐지만, 다섯 개의 강환이 완전히 안정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이번 생 안에 김 형처럼 9개의 강환을 다룰 수나 있으려나.'

다음 강환에 대한 실마리를 잡고, 강환을 파고들고.

또 다시 강환을 겨우 만들어내고.

만들어낸 강환을 다시 안정화시킨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것을 반복해서 겨우겨우 5개의 강환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김영훈은 한두개의 강환을 만들어내는데에 길면 1년, 짧으면 몇달.

그 안에 내가 거쳐온 과정들을 전부 거치고 강환을 안정화시켜 얻었다.

'아직도 이 정도 속도인데.'

김영훈을 따라잡으려면 멀었다.

그는 매우 힘들어하고, 또 등봉조극이 무의 끝이라고, 인간의 한계라고 말은 했으나.

'어차피 그라면 또 다시 경지를 개척해 낼 것이다.'

등봉조극의 다음은 무엇일까.

나 역시 그것이 매우 궁금했다.

그러나 내가 그 경지에 이르려면 얼마나 있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강환을 9개 다루어서 등봉조극의 극한에 이르면, 또 다시 아득한 벽을 느낄 터.

"김 형.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리라 믿습니다."

나는 김영훈을 쫓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저 김영훈의 앞날을 축원해줄 뿐.

난 법술을 써 김영훈에게 남기는 서한을 쓰고는, 서란을 만나기 위해 흑풍해로 향했다.

* * *

촤아아-

흑풍해의 물살은 그 어느때보다 잔잔하고 투명했다.

특히나 서란의 처소 쪽으로 갈수록 더욱 더 바다가 잔잔해지고 고요해졌으며, 청명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서란의 처소쪽에서 느껴지는 가공할 영기의 밀집에 기함해야만 했다.

'도대체, 이 힘은!'

말 그대로 섬 하나쯤은 작살내버릴 수 있을듯한 힘이었다.

'축기 후기경의 존재가 10년동안 축적한 힘이라면...'

촤악!

나는 물 속으로 들어가 서란의 처소를 향해 헤엄쳤다.

수월입도결을 대성한 탓인지, 물 속에서 움직이기가 한결 편했다.

그리고, 나는 저 아래쪽에서 피어나는 황금빛 잔향을 볼 수 있었다.

황금빛 기운이 서란의 처소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름답군..'

차라리 신성해보이기까지 하는 그 기운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월입도결이 없었다면 아마 공기가 다 빠져나가 익사했으리라.

나는 서란의 처소로 들어갔다.

촤악!

그의 처소로 들어가, 공동에 들어가니, 말 그대로 황금빛 천지였다.

그리고 그 황금빛 광휘의 중심에, 서란의 방울이 있었고 서란이 그 방울 아래에서 기운을 불어넣는 중이었다.

파아아앗!

내가 들어오는 것을 눈치챘는지, 서란은 기운을 불어넣는 것을 중단하고 방울을 삼켰다.

그러자 방울에서 뿜어지던 황금빛 서광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왔느냐?"

"예, 서 형.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힘이로군요.."

"어마어마하기는.."

서란이 자조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잡스런 귀신이야 쫓아낼 수 있겠으나, 우리는 그 존재의 본거지인 섭명함 내부에서 싸워야 한다. 거기다가 결단기급 귀신이라면, 아무리 법보에 힘을 축적했어도 잠시 발을 묶어놓는 것 외엔 방법이 없겠지."

그의 얼굴에 결연한 표정이 깃들었다.

"...하지만, 나는 꼭 그 안에 있는 것을 손에 넣어야 한다. 그러나 내게는 너 하나쯤은 탈출시킬 비술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서 형.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함께하기로 했으면 나가도 같이 나가는 거지요."

내 말에, 서란이 잠시 미묘한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의념의 색상은 너무 복잡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복잡한 기분인가 보군... 그런데 나한테 왜 저런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는 건지...'

차라리 뚜렷한 감정이면 그의 의도를 알 수라도 있겠지만.

저건 당최 읽기가 힘들어 그가 내게 호의를 보이는건지 아니면 다른 감정을 보이는 건지 알기가 힘들었다.

'뭐, 호의면 어떠하고 아니면 어떠하리.'

해룡왕의 후의를 갚는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함께하자.

"...그래. 네 말이 맞다. 함께하기로 했으면 같이 나가야겠지."

그는 고개를 작게 끄덕인 후, 처소의 입구로 향했다.

"나가자꾸나."

* * *

나와 서란은 이전처럼 흑색귀골곡의 결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만 이전까지와는 달리, 나는 그의 목에 타는 것이 아닌 내가 수 속성 법결을 맺어 물 위에 떠서 빠르게 이동하였다.

"그 사이에 수 속성 법술도 익히다니. 엄청난 재능이로군.."

"하하, 아닙니다. 시간을 쏟아부었을 뿐인데요."

촤아아아!

어느새 우리는 다시 폭풍이 치는 해역에 진입하였고, 저 멀리 영기의 비틀림을 통해 결계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다시 내 목에 붙어라."

"예."

촤아악!

내가 그의 목에 붙자, 서란은 다시금 날아올랐고, 결계를 관통하였다.

그리고 다시금 뿌연 해무가 우리를 둘러쌌다.

익숙한 귀곡성이 들려온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란이 힘을 쓰기 시작했다.

파아아앗!

그의 체내에서부터 황금빛 서광이 빛을 발하였다.

그가 체내에 보관하던 법보가, 미약한 힘을 뿜어낸다.

번쩍!

끼아아아아!

싫어! 싫어!

저 빛을 알아! 저 빛을 알아!

귀신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팔방으로 도망쳤고, 우리가 나아가는 진행방향으로 거대한 통로가 뚫렸다.

촤아아악!

그리고 우리는 다시금 두 번째 결계를 완전히 돌파했다.

그리고 또 다시 섭명함이 있는 지대에 진입하였다.

'여전하군.'

섭명함은 우리가 막 떠났을 당시와 완전히 똑같은 기색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시커먼 색의 을씨년스러운 폐함.

나와 서란은 천천히 폐함에 가까이 갔다.

아직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전함 위로 올라갈 때까지, 섭명함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조용하군요."

서란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말했다.

"귀신들은 본인들의 한이나 귀기, 혹은 특정 사물에 매달려 황천에 가지 않고 버티는 것이기에 힘을 아끼기 위해 오랜시간 수면에 빠지는 경우가 많지. 어쩌면 그 천인기 분혼도 수면에 빠졌을지도.."

우리는 머뭇거리다가 섭명함 내부로 들어갔다.

여전히 어둡고 거대한 전함.

"여전히 반응이 없습니다."

"다시 그 층에 내려가도 반응이 없기를 바라야지..."

솨아아아..

서란이 끌고들어온 약간의 해류가 서란의 몸을 띄우며, 섭명함의 내부에서 그가 미끄러지듯 헤엄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덕분에 그의 발걸음소리는 아예 나지 않았다.

나는 보법과 귀식대법을 쓰며 완전히 걸음소리를 죽이고 그를 따라갔다.

전함의 상층부는 이미 지난번에 왔을 때 서란과 전부 조사했으니, 오늘은 저층부까지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우리는 조용하게 섭명함 저층부로 향하였다.

* * *

지난번 들어갔던 그 층.

여전히 지난번과 다를바 없이 귀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잠시 서로를 쳐다보던 우리는, 섭명함의 저층부인 해당 층에 진입하였다.

우리는 서로와 눈짓으로 뜻을 주고받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 때였다.

후우우우-

음풍이 불어오더니, 우리가 내려온 층의 출구를 완전히 귀기로 틀어막아버렸다.

"...!"

"...!!"

[섭명함에 네놈들이 발을 들일 때부터 깨어있었다. 본좌는 현재 섭명함의 귀기와 음기에 빌어 황천의 흡입력을 견디는 것이니... 섭명함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알 수 있지.]

다시금 귀기섞인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다시 올 줄 알았다. 이 놈들... 그리고 너, 사생아 놈이 섭명함에 도대체 뭘 찾으러 왔을까 그것을 고민해 보았고, 결국 이유를 찾을 수 있었지.]

딸랑-

저 멀리에서, 방울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딸랑, 딸랑..

어둠 속.

그 허공에, 새빨갛게 잔뜩 녹이 슬어버린 방울 하나가 떠올라 울리고 있었다.

우웅-

동시에, 그 방울 옆으로 한 권의 옥간(玉簡)이 떠올랐다.

옥간이란, 수도자들의 의식으로만 읽을 수 있는 특수한 옥으로 된 책자를 뜻했다.

의식이 깊고 클수록 더욱 더 빨리 옥간을 읽고 옥간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 옥간과 방울을 본 서란의 눈빛이 흔들렸다.

옥간에서는 일전 서란이 내게 기억하라면서 알려준 기운이 묻어있었다.

[내 친히 네가 찾던 것을 찾아서 준비해 놓았으니, 이 어찌 고맙지 아니하느냐. 옥간을 읽어보니 정말 눈물 없이는 못 읽을 사연이더군. 하하하하...]

콰드드득!

그리고, 목소리가 울리던 곳에서 하나의 귀수가 뻗어져 나와 옥간을 박살내어 버렸다.

옥간의 부스러기가 땅에 떨어져 굴렀다.

[자, 이제 어쩔 거냐. 이제 네놈이 여기에 온 이유가 없어졌군. 흐하하...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라. 어떠냐? 응?]

서란의 의념의 색상이 변화하였다.

새빨갛게 그의 의념이 달아오른다.

그가 분노하고 있었다.

"서 형. 침착하시지요. 저 존재는 서 형이 가져온 법보의 기척을 느끼고 서 형을 동요시키기 위해 저러는 것입니다."

귀신이었지만, 그 역시 의념에 색상이 있었다.

나는 그 색상을 읽어내고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는 서란을 비웃으며 농락하려는 것 같았으나, 서란을 향해 어마어마한 경계심을 발산하고 있었다.

내가 그의 심경을 찌르자, 어둠 속에서 시뻘건 광망이 떠올랐다.

두 개의 새빨간 눈동자, 그 안에서 타오르는 귀화가, 나를 향해 타닥거렸다.

[이 놈, 의식을 분석하는 특수한 공법을 익힌 게냐..? 괴군 그 놈처럼..?]

나는 그에게 대답하지 않고 법력과 내공을 끌어올릴 뿐이었다.

"...그래. 알겠다."

서란은 분노를 꾹 눌러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오히려... 고맙군. 내가 찾던 것을 미리 찾아주어서."

그가 입을 벌리자, 녹슨 방울과 똑같은 형태의 황금빛 방울이 그의 체내에서 튀어나왔다.

"네놈만 없애버리면, 당장 내가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로구나!!"

번쩍!

황금빛 서광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동시에 귀기와 어둠에 가려져있던 섭명함 저층부가 환하게 밝아지며, 함내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공간압축 법술에 의해 광활한 함내의 공간이 눈에 띄었다.

함내의 이곳 저곳에는 박살난 귀신 석상들과 공간균열이 보였고, 이전에는 기관괴뢰였을 것 같은 부스러기들이 이곳 저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공간의 중심부.

새카만 돌로 만든 옥좌 위에, 시커먼 장포를 쓴 하얀 두개골 하나가 앉아있었다.

두개골의 눈두덩이에서는 시뻘건 귀화가 흐르고 있었고, 나머지 몸체는 전부 귀기로 이루어져 있는지 일렁일렁거리는 중이었다.

[이 반편이 용 따위가 감히... 청색귀골곡의 신물 내에서 함부로 제귀령(制鬼鈴)을 발동시켜? 본곡의 제자들도 감히 그런 짓을 하면 한달간 귀곡산의 형장에서 노역을 하는 중벌을 받았거늘...

이 반편이 따위가!]

흑색귀골곡의 결단기급 원로 귀신은 황금빛 방울이 못마땅한지 노한 기색을 드러내며 귀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미 괴군에게 다 박살난 폐함 따위가 신물이라니, 웃긴 소리로군."

그리고, 서란의 말이 원로 귀혼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그의 주변의 귀기가 마구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내 앞에서!!! 괴군의!!! 그 일을 입에 담지 마라!!!]

쿠구구구!

황금빛으로 밝아졌던 함의 내부가, 귀기가 휘몰아치며 다시 어둡게 변하였다.

[죽여 버리겠다!!!]

그의 귀기가 사방으로 휘몰아치며 황금빛 방울의 빛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란은 긴장하는 기색 없이 방울에 의식을 집중하였다.

"걱정 마라. 10년간 힘을 축적했다. 황천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망가진 섭명함의 힘이나 빌어 겨우겨우 연명하는 잔혼 따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쿠구구구구!

황금빛 방울에서 더욱 더 거친 황금의 서광이 밀어닥치며, 원로 귀혼을 향해 뿜어져갔다.

[기껏해야 축기경 버러지들이 결단기 수사의 법보를 다루려 하느냐!]

귀혼의 귀기가 순간 황금빛 파도를 몰아내는 듯 했으나, 서란이 피식 웃었다.

"허세부리지 마라! 이 늙은 귀물아. 제귀령은 너희 흑색귀골곡에서 직접 만든, 귀신을 제압하기 위해 만든 법보가 아니더냐!

너희가 직접 만든 법보인만큼 귀물에 효과적인 법보는 없다!"

[끄으으윽!]

방울에서 뿜어져나오는 폭발적인 빛에, 귀혼은 눈을 뜨지 못했다.

"이때다, 상극의 법보에 밀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할테니 공격하자꾸나!"

나와 서란은 그 자리에서 반대방향으로 갈라졌고, 각자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촤아아아!

서란이 입을 벌리자, 그의 입에서 청색의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퍼엉!

푸른 빛이 번뜩이며, 원로 귀혼이 신음을 흘렸다.

파츳, 파츠츠츳..

허공에 떠 있던 황금빛 방울이 점차 귀혼의 위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황금빛 태양이 움직이며, 정오에 맞춰 머리 위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

번쩍!

황금빛 방울은 귀혼의 위쪽으로 이동하여 더더욱 밝은 빛을 뿜어냈고,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딸랑-

방울에서 소리가 울리자 원로 귀물은 더더욱 힘이 약해진 모습이었다.

마치 황금빛 결계가 그를 가두고 힘을 제약하는 듯 했다.

"됐다, 몰아붙이면 이길 수 있어!"

서란이 다시 입으로 기운을 모을 때였다.

[이... 버러지들이...]

쿠구구구구!

방울의 빛을 직격으로 쬐며, 귀혼이 몸을 일으켰다.

[이런 몸이라 제귀령에는 손을 댈 수가 없어 당해주는 것이, 우스워보이느냐..?]

찌릿, 찌릿..

[네놈들 따위가 감히 결단기급인 나를 넘봐? 네놈들 따위가..?]

황천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힘을 쓰며, 그 상태로 상극인 법보의 기운에 맞서면서도.

그가 귀기를 일으키자, 시커먼 귀기의 구름이 퍼져나가며 주변을 물들였다.

[헛된 꿈을 접어라...!]

쿠과과광!

검은 구름 사이에서 시꺼먼 귀조(鬼爪)가 튀어나와 나와 서란을 휘쓸었다.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귀조를 피했다.

'빠르다!'

물리적인 실체가 없어 공기저항을 받지 않는 탓인지, 귀조의 속도는 기함할 정도였다.

꽈광, 꽈과과과광!

사방으로 시꺼먼 귀기가 흩날린다.

꿈틀, 꿈틀..

동시에 먹장구름 안쪽에서 검은 촉수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강기..!'

아니, 정순지력이라 하는 것일 터.

그런 것이, 수천 줄기가 뻗어나오더니 귀수(鬼手)의 형태로 맺혀, 우리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가속, 6배.'

파앙!

주변의 사물이 느리게 보이며 움직임이 더욱 더 빨라졌다.

나는 허공을 걷어차며 수많은 귀수들을 전부 피해냈다.

'공격은 들어가나.'

붕, 붕, 붕!

카아앙!

나는 허공에서 세 번 회전하며 수도로 검강을 뿜어 귀수 하나와 부딪혔다.

'저릿저릿하군.'

내 검강은 크게 상했으나, 귀수에는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서 형! 큰 일격을 준비하십시오!"

나는 기수식을 잡으며 수결을 맺었다.

쌍색의 영운이 뿜어지며, 그 안에서 수 개의 법결들이 맺혔다.

나는 체내에서 강환을 하나 분리한 다음, 허공에 강기를 씌우고 그 강기와 강환을 연결했다.

'강환을 더 분리할 수는 없다.'

귀수들은 물론이고, 귀조가 너무 빨라서 맞을 수 있었다.

서란이야 비늘이 단단한 탓인지 몇 번 맞아도 죽지 않았으나, 나는 호신강기고 뭐고 바로 반으로 쪼개져 죽을 게 분명했다.

단악검법, 이십삼초, 산외산부진!

나는 월악(越岳)의 태세로 기수식을 잡고 강기와 이어진 강환을 휘둘렀다.

콰앙!

강환과 부딪힌 귀수가 박살이 나며 쪼개졌다.

십일초, 단애(斷崖)!

촤아악!

강환이 바닥을 긁으며 귀수들 안쪽에 있는 먹장구름을 갈랐다.

먹장구름 중심에서 법결을 맺던 귀혼과 내 눈이 마주쳤다.

쩌억!

귀혼이 두개골의 입을 벌리자, 커다란 적색(赤色)의 해골 형태의 법술이 내게 날아왔다.

나는 다시 월악의 자세로 돌아가며 기운을 거두어들여 낭비를 없앤 후, 극하단세로 전환하여 입산의 초식을 펼쳤다.

촤악!

해골의 아래쪽으로 내 검강이 늘어나더니, 귀혼을 노렸다.

[흥!]

쿠웅, 쿠웅, 쿠웅!

그러나 허공에서 귀기가 뭉치며, 시커먼 비석을 응결하더니 비석들이 떨어져 내리며 내 강기를 막아냈다.

[이까짓 장난질로 감히 나와 겨루겠다는 게냐!]

쿠구구구구!

귀혼이 법결을 완성했다.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잿빛의 두개골들 수천개가 떠올랐다.

'하나하나가 강환과 동급의 위력!'

끼야아아아!

귀곡성이 울리며 잿빛의 두개골들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한대만 직격해도 죽는다.

'침착하자, 나는 산외산부진의 초식으로, 몸이 버티는 한 끊임없이 초식을 쓸 수 있다.'

거기에 강환과 검강을 연결했으니, 나와 연결된 강환 역시 몇 번을 부딪혀도 기의 소모도가 없이 계속해서 유지될 터.

'두 개 이상의 백골을 동시에 마주하면 안 된다.'

한 번에 하나씩 쳐서 없애버려야 한다.

수천개의 두개골들.

수천개의 강환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귀혼은 뒤쪽에서 또 다시 수결을 맺고 있다.

저만한 법술을 연이어서 쓸 요량인 듯 했다.

'놈이 법술을 완성하기 전에, 두개골들을 전부 하나씩 쳐서 박살낸다.'

정말 간단하지 않은가!

전방에서 3체, 상방에서 16체, 아랫쪽에서 22체의 두개골들이 입을 벌린다.

산외산부진을 유지한 상태로, 월수궁무록을 사용해 순간 인지를 자르고 백골들의 앞에서 사라졌다.

백골들이 멈칫한 찰나의 틈새, 나는 순간의 세계에서 등맥, 입산, 단애, 용맥, 유릉의 초식으로 전방 3체의 백골, 상방과 하단에서 각각 1개씩의 백골들을 박살냈다.

'내단이 흐름에 도움을 주고 있다.'

내단이 힘을 써 주니 산외산부진의 흐름이 예전만큼 부담스럽지 않았다.

훨씬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월악, 첩첩산중, 능곡지변의 검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백골들과 하나하나 부딪힌다.

수십개의 검기가 휘날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내가 찰나의 세계에서 백골들을 하나하나 쳐내며 바스라뜨리는 중이었다.

월악, 능곡지변, 산명곡응, 유릉, 입산, 단애, 등맥, 용맥, 칠십이광일출봉..

수십 개의 절초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그 흐름에 거대한 힘이 담긴다.

이십일초, 천지(天池)!

하늘을 비추는 못처럼, 내 강환이 이 거대한 흐름을 전부 담아내었다.

강환 하나에 그 수 배에 달하는 힘이 모여들었다.

본래 단악검법 오의, 단악은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어 검에 담고, 그 힘을 일점으로 집중시켜 본래는 낼 수 없는 위력의 초식을 사용하는 절초였다.

하지만, 등봉조극에 이른 나는 단악의 초식을 역(逆)으로 돌리는 법 역시 체득하였다.

일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잔뜩 모인 힘을 사방팔방으로 난사(亂射)한다.

단악검법, 오의, 단악(斷岳)!

강환이 품고 있던 것의 수십, 수백에 달하는 거대한 힘이 사방팔방으로 쏘아지며, 정확히 두개골들에게 직격했다.

수백의 해골들이 일거에 박살나며 사라졌다.

나는 귀곡성을 무시하며 다시 월악의 태세로 돌아왔고, 빠져나가려는 힘을 산외산부진으로 억지로 부여잡으며 기수식을 유지했다.

'강환의 힘이 조금 상했군.'

아무리 산외산부진을 유지했다지만, 동급의 공격을 거의 천여개에 가깝게 박살냈다.

이상이 없을 리가 없었다.

나는 검강을 잡고 기운을 일으켰다.

황갈색과 흑색의 구름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쌍색의 구름은 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회전을 시작했다.

동시에, 그 안에서 지계 법술과 수계 법술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응결되어 쏘아져 나갔다.

하나하나는 백골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했으나, 백골 하나당 수십개에 달하는 법술을 쏘아서 기세를 죽이고, 기세가 죽은 백골을 강환으로 바스라트린다.

그리고, 다시 수 개의 해골들을 향해 그 행위를 반복한다.

* * *

귀혼은 법결을 맺으며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어리석기는, 연기기 수도자 주제에 어찌 축기기급의 일격을 쓸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축기기 수도자도 감히 내게는 댈 수 없을진데 내 앞에서 감히 시간을 끌 생각을 하다니.]

이미 다음 법술도 전부 완성되었다.

서은현은 아직도 그가 날린 해골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는 입가에 기를 모으고 있는 서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해룡족의 숨결은 무섭긴 하다만, 결단기급인 내게 상처라도 입힐려면 훨씬 더 기운을 모아야 할 거다!]

그가 새로운 법결을 완성했다.

시커먼 귀기가 뭉치더니, 수만 마리의 귀충(鬼蟲) 무리를 토해내었다.

귀충들이 귀곡성을 내며 서란에게 날아갔다.

마치 검은 구름이 그에게 이동하는 모양새!

그때였다.

'잠시만.'

귀혼의 시선이 서은현에게 향했다.

'저놈이, 원래 저렇게 빨랐나?'

원래부터 일반적인 축기기 수도자는 커녕, 결단기 수도자의 기초 비둔술(飛遁術)에 버금가는 속도로 해골들을 쳐내던 서은현의 움직임이,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무슨...!'

그리고.

콰아앙!

빛이 번뜩이는 듯 하더니, 서은현의 주변에 있던 해골들이 전부 박살이 났다.

귀혼 역시 그 장면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놓쳤다.

'황천에 저항하느라 의식을 분산시키고, 제귀령에 저항하는 중이라지만, 이 내가 놓쳐!?'

그리고 찰나.

서은현의 신형이 사라졌고, 귀충떼를 맞닥드린 서란의 앞에 나타났다.

비록 개체 하나하나가 방금 날린 백골의 법술보다는 훨씬 약했으나, 그 물량은 백 배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개체 하나하나가 정순지력으로 펼치는 법술 하나에 맞먹는 비술!

분명 귀충 무리에게 뜯어먹혀 죽으리라!

그리 예상했을 때였다.

붕, 붕, 붕붕붕!

서은현이 한 손으로 검강을 뿜으며, 검무(劍舞)를 추기 시작했다.

그의 검강 하나가 귀충 한 마리와 부딪히며 귀충을 소멸시킨다.

[하하하, 아무리 네놈이 빠르더라도 수만개의 비술을 전부...]

그리고, 서은현의 주변으로 쌍색의 구름이 회전한다.

흑색과 황색의 구름.

구름 속에서 수천 개의 기초법술들이 튀어나오며 사방팔방으로 난사된다.

기초법술들은 귀충보다는 조금 약했지만, 귀충을 유의미할 정도로 약화시켰고, 약화된 귀충들을 서은현의 검강이 쓸고 지나간다.

귀충 한 마리, 또 한 마리를 계속 쳐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서은현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더니. 마치 빛의 폭풍처럼 변화하였다.

[이런...미친.]

귀혼은 턱뼈를 벌리며 어이없는 눈으로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수만개의 귀충무리를, 전부 쳐내서 없애버린 것이었다.

[이... 요괴 같은 놈...! 이제보니 네놈이 반편이 용보다 강하구나! 기껏해야 축기경 벌레 주제에 도대체 어찌 그런... 네놈은 무슨 요괴냐! 무슨 요괴냔 말이다!]

귀혼이 발광을 했고, 서은현은 원래의 자세로 돌아오며 그를 담담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우우웅!

그의 주변으로 빛 덩어리, 강환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강환의 갯수는, 여섯 개였다.

"...역시, 무인(武人)은 생사(生死)의 경계를 넘어야 성장하는 법이지."

푸콱!

동시에 서은현이 유지하던 산외산부진이 풀렸고, 그 반동으로 서은현의 눈, 코, 입에서 피가 철철 쏟아졌다.

* * *

털썩!

단전의 법력과 내단 속의 내공을 전부 소모했다.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져 죽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새로 쪼개는 데에 성공한 여섯 개의 강환을 움직였다.

번쩍!

여섯 개의 공격이 날아갔으나, 귀혼이 손을 휘두르자 내 강환은 그대로 스러져 버렸다.

기껏해야 축기경 수도자의 일격급.

그에게 제대로 먹히진 않으리라.

하지만...

"서 형. 시간은 벌어드렸소."

인간의 공격이 아니라, 용(龍)의 공격이라면 다를지도 모른다.

입가에 푸른 빛의 영력을 잔뜩 모은 서란이 안광을 번뜩였다.

서란이 입을 벌렸다.

푸른 섬광이 그의 입에서 뻗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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