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68화 (68/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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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7)

"무슨 깨달음이냐니, 음. 생각해보면 등봉조극에 이른 건 무림사상 어차피 너와 내가 유이할테니 뭐라 말할수가 없군."

그는 난감해하는 듯 하더니 손바닥 위에 강환을 띄워놓고 말을 이었다.

그의 손 위에선 두 개의 강환이 끝없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일단, 강환에 '자기 자신'을 불어넣은 건 너도 마찬가지겠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 또 다른 내 의식의 일부를 불어넣었기에, 의념의 세계에서 강환은 마치 분신처럼 보이고. 강환을 흡수하며 사고를 가속하는 것도 가능하지. 너도 강환을 쪼갠 시점에서 아는 것일 테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꼭 자기 자신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

'뭐지? 여기까지는 똑같다.'

그러나, 바로 다음 김영훈의 설명부터, 나와의 차이점이 나오기 시작했다.

"타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사람이라는 것이 완성된다. 그렇다면, 결국 강환의 깨달음은 관계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하겠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관계는 무엇이겠느냐."

우우웅!

그의 손 위에 올라간 강환들이 진동했다.

나는 어쩐지, 그 빛무리에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온다고 느꼈다.

"부모(父母)."

어쩐지, 그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말할 수 없는 향수가 깃들어 있었다.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 준 가장 직접적인 원인...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으니, 나는 그제서야 태어났고. 그분들로부터 삶을 받았다. 나는, 단지 나로만 이뤄진 것이 아닌 내 어버이로도 이뤄져 있더구나."

우우웅-

깨달음을 입으로 정리하며 뭔가 더 얻은건지.

아니면 나와의 전투에서 뭔가를 얻은건지, 그도 아니면 계속 내 손 위에 올라가 있는 세 개의 강환을 관찰한 것인지.

저 천무(天武)의 화신의 강환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시어, 나를 낳고..."

파아앗!

두 개의 강환이 회전하며, 그 회전 속에서 세 번째 강환이 탄생하기 시작한다.

"나는 삶을 살아가며, 마누라를 만나고. 또 자식들을 보겠지. 어쩌면 손주손녀도 볼 것이고.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무수한 인연과 관계들이...

그 중 가장 소중한 것들이,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아, 그렇구나.'

나는 삼재(三才)의 이치로 강환을 해석하였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땅의 수도공법을 익힌 내게는 하늘과 땅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영훈의 이치는 가족(家族)이었던 모양이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김영훈은 등봉조극에 오를 때마다, 거의 항상 9개의 강환을 다루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립고 또 그리운 이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 때문이었을지도...

꽈악...

세 개의 강환.

놀라운 성취이자 깨달음이었지만, 김영훈은 주먹을 쥐어서 강환을 없애버리고는, 주먹을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이런 무공 따위, 필요도 없다. 그냥, 내 가족만... 다시, 보고 싶구나."

"......"

우리는 둘 다 강환을 흩어버리고, 잠시 말없이 서있었다.

나도 그도 얼마간 생각에 잠겼다.

얼마 후.

김영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됐다. 여기서 이래봤자 무슨 소용이겠느냐. 미안하다. 무공 얘기나 해보자꾸나."

그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강환을 띄워올렸다.

"여하튼, 나는 가장 소중한 관계를 떠올리며, 그 관계를 가진 이들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강환과 의념 역시 끊임없는 교류와 순환 속에서 나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지.

'끊임없는 순환'. 그것이 내가 찾은 이치였다."

"그렇습니까..."

나 역시 상념에서 빠져나와 그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었다.

끊임없는 순환.

그것은 내가 보는 태극의 세계에서도 통하는 의미였다.

어찌되었든 세계의 음과 양은 끊임없이 순환하고 교류하고 있었으니까.

그와 나의 깨달음의 방향은 다르지만, 상통하는 면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의념의 순환을.

나는 영기의 태극을.

하지만, 통하는 부분이 있을지언정 우리의 것은 분명 다른 깨달음이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서로의 깨달음으로, 보완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김 형. 이제는 제 깨달음을 알려드리지요. 우선... 정신을 집중하고, 태극이 움직이는 것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십시오."

"음, 했다."

"그 상태에서, 의념의 흐름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느껴지는 천지원기의 흐름에 집중하십시오."

나는 김영훈에게 천천히 지(地)의 감각.

요족의 감각을 가르쳤고, 얼마 후.

김영훈이 눈을 부릅떴다.

"....!!!"

그 역시 나와 같은 시야에 진입하였다.

천지 곳곳을 흐르는 음양과 태극들.

끊임없이 순환하는 힘.

그리고 물질의 반응에 의해 형태가 찌그러지기도, 기이하게 변하기도 하는 태극들.

건과 곤.

그리고 인.

세 가지 이치가 담긴 삼라만상의 새로운 풍경에, 김영훈은 넋이 나간 듯 얼마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김 형. 괜찮습니까?"

나는 그가 계속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

본래라면 새로운 감각을 깨친지 얼마 되지 않으면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그러나 김영훈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새로운 감각을 깨치고서도, 그냥 아무런 고통도 없는건가. 나와는 잠재력 그 자체가 다르단 거군.'

그는 이 감각에도 어느 정도의 재능이 원래부터 있었던 듯 했다.

얼마간 허공을 바라보던 김영훈의 주변으로, 자연스레 세 개의 강환이 떠올랐다.

부우웅!

세 개의 강환이 회전한다.

'완전히 안정되었다.'

방금 막 세 번째 강환을 만들어냈을 때엔 세 번째의 강환은 상당히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불안정한 모습은 전부 사라졌고, 안정적인 형태의 세 강환이 그의 주변을 회전할 뿐이었다.

심지어, 강환이 더욱 쪼개질 듯한 낌새마저 느껴진다.

어쩐지 당장이라도 강환이 네 개, 다섯 개, 여섯 개로 더 쪼개질 것 같다.

그러나.

"허억... 허억..."

김영훈은 정신을 차린건지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돌던 세 개의 강환을 흩어버렸다.

그는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그렇군... 너는 의념의 순환이 아니라. 저 음양과 태극 속에서 건곤과 인간의 이치를 깨달았던 거로구나."

"...그걸 바로 맞추시는군요. 저는 아직 의념의 순환이 무엇인지 감도 안 잡히는데..."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듯한 김영훈은, 나를 보며 말했다.

"아니,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예?"

"최초로 의념의 순환을 느꼈던 그 날. 나는 어렴풋이 강환의 한계가 느껴졌다. 아마정확하진 않지만,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강환의 수는 8~10개 사이가 끝이 아닐까 싶다.

또한 이 의념의 순환만을 깊게 파는 것으로도 충분히 그 끝자락에 도달할 수 있다고 느껴졌으니, 너 역시 네가 깨달은 그... 태극의 감각? 그것을 꾸준히 파면 그 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야."

그는 지의 감각을 일으킨 채 허공에서 순환하는 태극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당연히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닌지라, 그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8~10개가 인간의 한계이니. 서로의 깨달음을 공유해도 그 갯수가 81개로 곱해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다. 깨달음이 많으면 더더욱 그곳에 빨리 도달할지언정, 뭔가 강환이 더 강해지거나 하진 않을 터..."

"...그런 걸 어찌 아십니까? 김 형은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도 못했을 텐데."

저런 사실은 월도월무록에도 수록되지 않았었다.

"천재의 직감이다."

"......"

할 말이 없군.

하지만 무(武)에 한해서 김영훈의 말이 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니, 아마 맞을 터였다.

'매 삶마다 김 형의 강환 갯수가 9개에서 끝난 건, 그게 인간의 끝이었어서였단 말인가.'

인간의 끝.

나는 그 말을 듣자 어째선지 조금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저 말은 즉슨, 무인(武人)의 끝은 축기기라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인으로서 조금 안타까웠다.

"어쨌든 좋은 깨달음 정말 고맙다.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더더욱 빨리 성장해 보이마. 네가 알려준 것은 내게 엄청난 영감을 가져다줄 것이야."

영감이라.

무인으로서의 안타까움.

김영훈의 언급.

그리고, 약간의 오기.

나는 가슴 속에서 그러한 것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김 형. 만약 영감이 있다면, 월도월무록을 넘어설 수 있습니까?"

"음?"

그는 눈을 찌푸렸다.

월도월무록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만나서 며칠간 이야기를 나눴을 당시 했었다.

누군가 자신의 머릿속에 그런 무공구결을 집어넣었다고 말하는 김영훈에게, 나 역시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했고, 우리는 월도월무록에 대해서도 토론을 나누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저는 그동안 지내며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월도월무록을 생각하며. 그 구결을 넘어설 수는 없는걸까. 등봉조극의 너머로 갈 수는 없는걸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요족(妖族)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방금 보여드린 태극의 감각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저는 인간의 무공이 요족에게서 파생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만약 김 형이 원한다면, 제가 배운 요족 공법을 알려드리고, 연구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내 말이 이어졌다.

"만약. 이렇게 해서 제가 돌아다니며 얻은 깨달음과 정보를 드린다면... 당신은 월도월무록을, 넘어설 수 있습니까?"

월도월무록.

그 무학서는 월수월무록이던 시절에서, 틀은 변하지 않은 채 시행착오의 경험만 추가된 무학서였다.

그렇다면.

이번 삶의 김영훈은 과연, 이 월도월무록을 넘어설 수 있는가.

월수궁무록이 조수월무록으로.

조수월무록이 월수월무록으로.

세 번의 커다란 진화 이후, 월수월무록에서 시행착오만 추가될 뿐이었던 월도월무록을.

다시 한번 진화시킬 수 있는가?

내 물음에, 김영훈은 한참을 생각하는 듯 했다.

"...장담은 못 하겠구나. 하지만!"

그의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네가 말한대로 인간의 무공이 요괴에게서 파생된 것이라 하면. 원류라 할 수 있는 요족공법을 연구하는 것은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고, 어마어마한 시행착오를 줄여줄 것이다."

"...그렇습니까."

시행착오를 줄여준다.

어쩌면, 그것이면 족할지도...

"그렇다면 당신에게도 호풍응룡변의 구결과 요족 공법의 전반적인 특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날부터, 남은 시간동안 김영훈에게 호풍응룡변과 요족공법의 특징에 대해 가르쳤다.

* * *

시간이 되었다.

서란과의 약속을 지킬 시간이었다.

"김 형. 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없습니까?"

"없다. 구결에 대해서는 다 이해했고, 나도 한번 최대한 연구해 보마."

"알겠습니다. 김 형만 믿겠습니다."

김영훈은 요족공법을 보고, 또한 요족의 감각을 깨우치면서 훨씬 가파른 속도로 강환의 갯수를 늘려갔다.

현재 그의 강환은 총 7개.

지난 삶에 거의 근접해가고 있었다.

'김 형의 무학을 따라가며, 등봉조극의 극한으로 무공 경지를 올리고. 10배 이상의 사고 가속을 통해... 축기기에 도전한다.'

그렇기에, 김영훈이 더더욱 빠르게.

더더욱 높이 날아올랐으면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운을 빌어주며, 그렇게 헤어졌다.

* * *

촤아아아!

나는 서란의 처소 위쪽으로 날아갔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서란은 바로 고개를 드러내며 나를 맞이했다.

"어서 와라. 기다리고 있었다."

"서 형이 말씀한 결계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우선 결계쪽으로 가면서 설명하지. 아 그래. 내 목 위에 올라타거라. 이제부터 갈 해역은 굉장히 비바람이 거세니 꽉 잡는 게 좋을 거다."

"예."

나는 서란의 목 위로 올라가 앉고, 그의 목을 붙잡았다.

"내가 말하는 그 결계는, 왕께서도 나에게 은밀히 진입해보라고 하였던 것이다. 결계 내부에 우리 해룡족에게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지."

"결계가 둘러싸고 있는 건 정확히 무엇입니까?"

촤아아아!

그가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바다의 한 곳을 향해 헤엄친다.

저 멀리, 해류가 급격히 변하는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쩐지 스산한 귀기(鬼氣)가 느껴지는 듯 했고.

저 멀리 먹장구름이 우릉거리며 바다를 어둡게 가리고 있었다.

"인족의 수도종문 중. 흑색귀골곡(黑色鬼骨谷)의 폐기된 신물(神物)."

쿠구구구!

저 멀리 거대한 파도가 치고 있다.

"명계도 건널 수 있다는 전함. 섭명함(涉冥艦)이다."

우리는 폭풍이 불어닥치는 해역으로 진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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