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65화 (65/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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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4)

"요괴...?"

나는 의아해져서 되물었다.

"제게 요단이 있다는 건 해룡왕께 들어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선 저를 인요의 혼혈이라 하셨습니다만. 어째서 제가 둔갑한 요괴라는 것인지..."

[내가 말하는 것은 육(肉)의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정신적인 부분이지. 신식(神識)에 대한 부분에서 너를 요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의식영역이?'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기에, 난 당황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이해를 못 하는 모양이군. 일단 의식영역의 눈으로 내 의식을 한번 보거라. 영통이 뚫렸으면 그 정도는 가능하겠지?]

"예, 그 정도야."

우웅-

나는 의념의 세계로 진입해 서란의 의식을 보았다.

그리고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의식영역의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

서휼 같은 경우야 의식의 크기가 너무 커서 의식영역의 형태 같은 건 확인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서란의 경우에는 의식영역이 구체의 형태가 아닌 본인의 몸 위쪽에 본인과 같은 현상으로 얇게 둘러져 있었다.

'저 무슨...!'

나는 서란의 의식영역의 기이한 형태를 확인하며, 동시에 그의 몸 곳곳에서 나타나는 색조를 보았다.

그의 뿔은 자긍심을 상징하는 색조로 빛나고 있었고.

그의 뒷다리는 어째선지 조금 슬픔의 색조로 물들어 있었다.

내가 그의 의식과 색조를 관찰할 때였다.

[역시, 그 '눈'. 넌 일반적인 인족 수도자 놈들과 완전히 다른 시야를 가지고 있구나. 인족 수도자 녀석들은 그저 내 의식의 형태를 보고 놀라는 것으로 끝이건만.

너는 역시 뭔가 다른 것을 보는 게야. 그러하지 않으냐?]

"...예. 그렇습니다만.."

[너는 내가 평소부터 가장 신경쓰고 있던 부위들을 차례대로 살펴보았다. 종족에 따라 시야에는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기본적으로 요족은 인족 수도자와 의식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지.]

서란의 설명이 이어졌다.

[요족과 인족이 가지는 신식(神識)의 차이는 주로 건곤(乾坤)의 차이라고 하지.

너희 인족은 하늘의 영성을 내려받아, 하늘을 보면 자신의 수명이나 기본적인 천기현상 등을 읽을 수 있다고 들었다. 운명에 대한 것 역시 어느 정도 조금씩 읽어낼 수 있고.

하지만 우리 요족은 하늘을 본다고 해서 운명 같은 건 읽을 수 없지. 가끔 특이한 요족 중에는 인족처럼 자신들에게 꼭 맞는 제사법을 찾아내서 천명을 읽는 놈들도 있다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절대 다수가 하늘을 읽지 못하고, 대신 이 땅 위에 흐르는 영력(靈力)을 읽는다.]

'영력?'

[요족은 그 안에서도 수많은 종족이 나뉘니 전부 똑같지는 않지만. 요족은 전부 기본적으로 영력의 음양(陰陽)을 읽어낸다.]

서란의 설명이 이어졌다.

[인족처럼 천기는 읽지 못하지만, 천지영기는 끝없이 음양(陰陽)의 이치에 따라 순환하고 있지. 우리는 그 음양의 순환을 시각화해서 보고 있지 않으냐? 그 음양의 순환을 읽어내고 읽어내다 보면 인족과는 또 다른 정보를 얻어낼 수 있지.

일반적으로 짐승들이 흉함을 감지하고 빠르게 도망칠 수 있는 것 역시 이런 이유이고. 인족보다 거대한 흐름을 읽는 능력은 떨어지겠지만, 직관적인 면에서는 음양을 시각화하는 이 시야가 요족과 인족의 의식에 가장 큰 차이라 할 수 있지.]

'어?'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기묘한 위화감에 휩싸였다.

나는 서란이 말하는 광경 같은 건 보고있지 않았다.

내가 보고 있는 건 일곱가지 색채를 기반으로 한 무수한 색채들.

무수한 존재의 의(意)를 시각화해서 보고 있었다.

서란이 말하는 영력의 순환 같은 건 시각화해서 본 적이 없었다.

[네가 둔갑한 요괴라 판단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네가 가진 그 의식의 특유한 기질(氣質)은 우리 요수선사들이 음양의 순환을 감지할 때에만 나타나는 기질이다. 음양의 이치에 맞추어 나타나는 그 특유의 의식파동이 네 의식에 존재하는군...]

도대체 뭘까.

내가 진입한 이 칠채(七債)의 세계가 서란이 말하는 영력의 순환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 광경은 아무리 보아도 음양(陰陽)의 순환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어 보였다.

[어째서 왕께서는 너를 혼혈이라 판단하였을까. 네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도 않고, 왕께서 잘못 보셨을 리가 없는데... 인요의 혼혈은 보통 인간의 신식을 따라가기에 음양의 흐름이 아닌 천기현상을 읽는 데에 특화되거늘.]

서란의 말대로라면 어째서 해룡왕이 나를 인요의 혼혈로 판단했을까.

보자마자 서란처럼 나를 둔갑한 요괴 쯤으로 봤어야 정상이 아닌가?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휼과 만났을 때는... 내 의식이 일반적인 인족과 같아서?'

어쩌면, 서휼과 만난 '이후'에 내 의식에 변화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내 의식에 그나마 가장 큰 변화를 주었던 것.

그것은...

음양(陰陽), 건곤(乾坤), 천지(天地)...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삼재(三才)의 이치를 깨달아 만들어낸... 검환(劍丸)의 분리!'

그것이 이번 삶에서 그나마 가장 크게 내 의식에 변화를 주었던 사건!

나는 무언가 실마리를 잡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놓치지 않고 바로 검환을 쪼개던 그 감각에 집중했다.

검환은 만들지 않은 채, 나를 축으로 천지가 순환하던 그 감각!

찌이이잉!

그 감각에 일정 이상 집중하자 머리가 깨질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오, 본인의 정체성을 몰랐던 건가. 정체성을 알려주니 바로 의식의 기질이 더욱 확립이 되는군.]

머리가 아파왔으나, 서란의 말에 나는 내가 옳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알고,

더욱 더 그 감각에 집중했다.

뭔가 막혀 있으나, 그걸 억지로 뚫는 느낌.

하지만, 이런 감각 같은 것은.

'절정경에 도착할때도, 오기조원에 도달할 때도 한번 뚫어본 감각이다!'

뚫려라!

뚫려라!

나를 인(人)으로.

그리고 두 개의 강환을 각각 천(天)과 지(地)로.

그렇게 천지가 순환한다는 것을 깨닫던 그 때.

나는 강환을 안정적으로 쪼갤 수 있게 되었었다.

그때의 감각을, 조금 더.

"흐아아아아아!"

머리가 빠개질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잇몸에서 피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며 꾹 참아내고 더더욱 그 감각에 집중했다.

코와 눈에서 피가 떨어진다.

귀가 멍멍하다.

오감이 멀어진 듯 하다.

그리고.

뻐엉!

절정에 이르러 의념을 감지했던 그 감각.

오기조원에 이르러 천지영기와 통했던 그 감각.

그 감각들과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른 새로운 감각이, 완전히 자리잡았다.

아니, 자리잡은 게 아니다.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감각을 제대로 깨웠다 해야 할 것이다.

'아아...'

천지(天地)가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었다.

아니, 음양이라고 해야 할까. 건곤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 태극(太極)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천지영력이 수많은 곳에서 태극을 그리며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나뭇잎에서도, 물방울에서도, 서란의 몸체에서도.

곳곳에서 음양이 순환하며 천지를 안정화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광경을 본 순간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장심에서 강환이 떠오른다.

그리고, 강환은 천지에서 순환하는 음양의 순환과 같은 이치로 둘로 분리가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왜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음양의 순환일진데, 어째서 나는 삼재의 이치에 의해 강환을 진화시켰었나.

천지를 순환하는 음양의 태극들.

그 태극들은 전부 일정한 형태가 아니었다.

간혹 음양이 순환하며 원형이 아닌 타원형으로, 넓적한 모습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그렇게 도저히 알 수 없이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영력을 지닌 '존재'들에게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제야 왜 내 깨달음이 삼재와 이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세상에는 천지와 음양이 있으나, 그 속에서 태어나 천지를 변화시키는 존재.

그것이 인(人)의 이치.

하늘과 땅 사이에서 태어나 살아나는 모든 존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변화 그 자체로 천과 지, 음과 양에 순환인 것이다.

파아아앗!

두 개의 강환이 꼬리를 물고 회전하던 때.

그 회전 사이로 희미한 빛무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두 개의 강환에서 한 개의 덩어리가 더 쪼개졌다.

세 개의 강환이 천지인의 이치에 따라 내 장심 위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등봉조극의 경지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었다.

치이이-

동시에, 나는 음양의 순환을 보던 그 감각에 더 이상 매달려 있지 못하고 그 감각에서 빠져나왔다.

의념의 세계를 처음 인지했던 그 당시와 같이, 더 이상 이 세계에 빠져있으면 뇌가 타버릴 것 같은 느낌이 내 뇌를 압박했다.

그러나 그 광경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던 덕인지 손 위에서 회전하는 세 개의 강환은 여전했다.

서란은 강환을 보며 눈에 이채를 띄었다.

[호오, 그건 뭐지? 네 종족 특성인가?]

"...뭐, 그렇다고 해 두지요."

인간 중에서도 등봉조극에 이른 이는 무림사상 나와 김영훈이 최초일 테니 그냥 그렇다고 치기로 했다.

"서란님께서 확실히 정체성을 알려주신 덕에 더욱 더 확실히 건곤의 세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하하, 되었다. 왕께서 보낸 녀석이면 이 정도는 해 주어야지. 지금 모습을 보니 왕과 만났을 때는 요족의 의식을 완전히 각성하지 못했나보군. 이제는 정말 요족과 의식에 차이가 없어졌구나. 헌데 기이하군. 인요의 혼혈이 어찌 인족의 의식이 아닌 요족의 의식을 지닌 게지? 그런 경우는 정말 없어서 모르겠군.]

"...흠 그게 절대적인 법칙 같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내 질문에 서란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절대적인 법칙이 맞다. 인족의 의식이 천명을 읽을 수 있는 건, 인족이 자신들에게 맞는 제사법을 발견해내어 하늘과 소통하는 종족이 되었다는 걸 의미하지.

너희 인족 수도자들의 식이 천(天)에 맞추어져 있다면, 요수선사들의 식은 영력의 순환을 보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이는 지(地)를 상징하지. 천(天)이 지(地)를 누르기 때문에 인요의 혼혈은 무조건 인족의 신식을 타고난다.

그런데 네놈은 뭐 천지가 거꾸로 된 놈인 것이냐? 어떻게 혼혈이 요족의 의식을 개화했지?]

"아하..."

나는 서란의 설명을 듣던 중, 한 가지를 또 다시 알아냈다.

'본디 수도자들은 하늘의 천기를 읽는 의식에 특화되었고. 요족은 영력의 순환을 읽는 의식에 특화되었다. 그런데, 오기조원에 달한 이들은 칠채의 의념을 기반으로 의(意)를 시각화한다.

그리고, 서란의 말에 의하면. 내가 지금까지 봐온 칠채의 세계는 인족 수도자와도, 요족 수도자와도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란 뜻이다.'

도대체 내가 인지하는 그 의식의 형태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람(人)? 그냥 단순히 인간이 가지는 종족 특성인건가?'

하지만 아니라면? 삼재에 이치에 따라 인(人)의 시야라면?

그러나, 천지인이라는 삼재는 굉장히 인간중심적으로 세워진 이치이다.

천지와 인이라니.

인간 따위가 무슨 하늘과 땅에 비할만한 존재라는 건가.

이 땅에는 인간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거늘.

'...모르겠군.'

일단은 인간의 종족 특성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추후에 다른 사실을 발견하더라도, 지금으로선 이 시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저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으니까.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강환을 없애버린 후 서란에게 포권을 했다.

"우선 눈을 뜨게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헛소리를. 내 말을 듣고 정체성을 확립한 것은 네가 아니더냐. 왜 감사인사를 하는거냐. 자기가 눈을 부벼서 떠놓고 남에게 감사인사를 하다니.

...그리고 어쨌든 왕께서 네놈을 내게 보냈단 것은, 날 더러 네게 요족어를 가르치란 뜻이겠지. 인족의 문화와 언어에 정통한 것은 나이니까.]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너는 요족과 완전히 같은 의식을 개화했으니 훨씬 요족어를 가르치기가 편하겠군. 인요의 혼혈은 요족어를 배우려면 따로 특수한 신통을 익혀야 하거늘.]

"...?"

언어를 익히는 데에 신통씩이나 익혀야 한다고?

[일단, 따라와라. 계속 서제단에 나와있으니 극란도민들이 이쪽으로 오려는 것이 느껴지는군. 괜히 나를 보면 또 공물을 바친다 할 테니, 우선 내 처소로 같이 가지.]

촤아아아!

서란은 그대로 등을 돌려 헤엄쳐서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서제단이 있는 절벽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촤악, 촤악, 촤악!

그리고, 나는 수상비(水上飛)를 펼치며 서란을 계속해서 쫓아갔다.

얼마나 서란의 뒤를 따라 바다를 가로질렀을까.

[내 처소는 바다 아래에 있다. 따라 내려오거라.]

촤아악!

서란은 수면에서 헤엄치던 것을 멈추고, 저 아래쪽으로 내려가 버렸다.

"......"

나는 시커먼 바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다음 삶 부터는 수월입도결도 몇 성까지는 조금 익혀놔야겠어.'

난 숨을 크게 들이쉰다음, 그대로 바다 아래로 뛰어들었다.

허공의 결을 느끼고 허공에서 거닐었던 것과 같이, 물살의 결을 느끼며 가장 빠르게 서란을 쫓아갈 수 있는 결을 따라 그를 향해 헤엄쳤다.

서란은 내가 쫓아오도록 천천히 가고 있는 듯 했지만, 물 속에서는 사실 그조차도 쫓아가기가 힘들긴 했다.

얼마나 점차 강해지는 수압을 느끼며 아래로 내려갔을까.

저 아래 무수한 산호밭이 보였다.

마치 바다 속의 정원 같은 양상.

그리고, 그 산호의 정원의 한쪽 틈새.

그곳에 한 수중동굴이 보였다.

서란은 그 수중동굴로 들어갔고, 나 역시 서란을 따라 수중동굴로 들어갔다.

수중동굴은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는 구조였는데, 얼마간 수중동굴에서 헤엄치며 올라갔을까.

촤아아아-

"파하!"

나는 시원한 공기를 들이쉴 수 있었다.

'청량하다?'

나는 수중동굴 안쪽의 땅으로 올라가며 내공을 일으켜 물기를 증발시켰다.

그러면서 굉장히 공기가 청량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 처소에 온 것을 환영한다. 내 처소에는 청호(淸瑚)라는 특수한 산호가 있어 늘 공기를 맑게 해 주지. 평범한 육상생물도 이곳에서는 지낼만 할 게다.]

"과연 공기가 어지간한 산골만큼 좋은 것 같군요."

우웅-

서란이 영력을 일으키자, 천장에 박혀있던 둥근 영석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서란의 동굴은 굉장히 크고 넓었으며, 또 이곳저곳에 다른 장소와 통하는 듯한 동굴이 나 있었다.

그는 그 거체를 공동에 뉘이며 말했다.

[왕께서 네게 나를 찾아가라고 명을 했다면, 나 역시 편하게 빨리 말을 알려주는 게 좋겠지. 거기다가 너는 요족의 의식을 지녔으니 내가 말한 특수한 신통을 익힐 필요도 없다. 우선, 요족의 언어에 대해 조금 설명을 해 주어야겠군.]

나는 서란의 설명을 경청했다.

[너희 인족은 성대란 것으로 소리를 내고, 그 파동을 통해 공기를 격하여 상대에게 말을 전달하고, 그것을 언어로 삼지. 그렇지 않은가?]

"맞습니다."

[우리 요족도 육성으로 소리를 낼 순 있다. 하지만 요족은 대부분 짐승이었던 존재들이 수련을 통해 영성을 얻는 이들. 그렇기에 각기 짐승이었을 시절 소리로 대화를 해 봤자 다른 종족들은 아무리 말해먹어도 못 알아듣지.

하지만, 다른 종족들일지언정 우리 요족들이 '요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이는 건 분명 우리들간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요족들에게만 있는 요단(妖丹). 그리고 음양의 순환을 인지하는 의식.]

우우웅!

서란이 앞발을 들자, 그의 앞발 위로 영력이 휘몰아쳤다.

난 그가 뭔가를 말하려 한다는 걸 깨닫고 아까의 감각을 다시 깨웠다.

머리가 타들어갈 것 같았지만, 나는 다시금 천지를 순환하는 태극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서란의 앞발 위에서, 음양이기의 영력이 순환하고 있었다.

[수많은 요족들이 그 공통점을 통해 합의했지. 요족들의 공통 언어는 앞으로, 이 의식에 기대어서 하자고.]

우우우웅!

서란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영력이 뿜어지며, 허공에 수많은 태극의 문양을 그렸다.

내 귀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영력을 통한 어떤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그냥 입으로 영력을 조금 내뿜는 행위.

그러나, 내 눈에는 보였다.

영력이 휘몰아치면서 어떤 형태로 변한다.

'그런가, 인간의 말은 공기를 매질로 전달된다면. 요족들의 말은 영력을 매질로 전달된다는 거군.'

영력의 순환을 보는 감각에 더욱 더 집중을 하자, 귀에도 그 영력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아니, 애초에 시각화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었지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애초에 시각화는 아니었다.

"*&%%^^$^..."

뜻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그것을 통해 서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대충 알아들은 거 같군. 이제 요족어의 단어나 조금 가르치면 문제없겠어.]

서란은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을 알자 씨익 웃으며 내게 요족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 * *

반년이 지났다.

나는 수많은 요족어의 단어와 어휘, 그리고 요족어를 말하는 방법.

그리고, 음양의 순환을 보는 그 감각에 완전히 익숙해 지는데에 성공했다.

"이젠 책 한권 정도는 문제없이 읽을 수 있겠군."

"고맙소. 서 형 덕분이오."

나는 내게 목소리로 말을 전하는 서란에게 감사를 표했다.

오늘 막 서란이 준 요족의 기본적인 문화에 대한 서책을 전부 읽은 참이었다.

"이제 왕께서 네게 주신 공법서도 문제없이 읽을 수 있겠지. 더 이상 헷갈리는 어휘도 없을 테니 안전하게 공법서를 읽어도 될 거다."

"감사드리오."

"하하, 아니다. 나도 왕께서 한 부탁을 들어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는 잠시 덕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러던 중, 서란이 내게 입을 열었다.

"...사실, 왕의 부탁을 들어드린 것은 왕의 부탁이기도 하지만. 내가 네게 원하는 것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혹시 너는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느냐?"

"음, 요족어를 가르쳐준 서 형의 부탁이라면 할 수 있는 한에서 들어드리겠소."

"고맙군. 사실 어쩌면 왕께서도 내가 현재 고민하는 것 때문에 너를 내게 보냈을지도 모르겠어... 사실 나는 30여년 전. 흑풍해 깊숙한 곳에 있는 커다란 결계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결계 내부에 내 수행에 필요한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하지만 그 결계는 인족과 요족이 힘을 합쳐야 깰 수 있는 것으로, 지금껏 믿을만한 인족 수도자를 만나지 못해 도전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내게 정중하게 부탁을 해 왔다.

"네가 왕께 받은 공법을 익히는 것에 도움을 줄 테니 부디 나를 도와주지 않겠느냐? 어쨌든 네 혈통은 분명 인족의 것도 있으니 결계를 부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도와드려야겠지요. 저도 서 형께 받은 가르침에 보답할 수 있어 기쁩니다."

"좋구나. 고맙다. 그렇다면 공법을 바로 익혀볼 테냐?"

나는 해룡왕 서휼에게 받은 공법서를 꺼내들었다.

공법서는 어떤 짐승의 가죽으로 장정되어 있었다.

서란의 말에 의하면 해리수라는 짐승이라는 듯 했다.

나는 이 요수공법서의 제목을 읽어내려갔다.

공법서의 이름은 호풍응룡변(呼風應龍變)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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