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64화 (6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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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3)

지난 삶에서는 생애의 막바지에서야 겨우 등선향에서 나와 김영훈을 찾았었다.

그 때 당시 김영훈은 등봉조극의 극한에서 벌써 그 너머를 추구하고 있었었다.

그렇다면, 약 10여년차인 지금의 김영훈은 어떤 경지일까.

'흠, 아직까진 보아하니 막리세가가 황조를 잡고 있나보군.'

아무래도 아직 진씨세가와 김영훈이 황조를 찬탈하진 않은 듯 했다.

그러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황제와 황태자가 왠 괴인에게 참살당했다고 했다.

그것은 김영훈일 터였다.

'아직 보아하니 김영훈은 진씨세가와 접촉하진 않았고,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진씨세가에는 멀쩡한 방법으론 못 들어갈 것 같다.

'그래도 어쨌든 녀석들 얼굴은 봐야지.'

나는 진씨세가의 영지를 찾아가, 강환을 날렸다.

꽈아아앙!

아무것도 없는 허공.

그곳에 펼쳐져 있던 진법에 바람구멍이 뚫렸다.

나는 월수궁무록과 은식술로 존재감을 완전히 없애버린 후 그 안쪽에 들어갔다.

경보가 울렸는지 진씨세가의 수도자들이 사방으로 튀어나와서 경계를 하는 중이었지만, 나를 발견하는 이들은 없었다.

나는 수도자들을 뒤로하고, 제자들이 훈련하던 훈련장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군.'

훈련장은 물론이고, 제자들의 숙소 역시 아무도 없이 먼지만 쌓여 있었다.

아무래도 황제와 황태자가 죽으니 진씨세가에서 암살부대를 운용하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기억을 되살려 지난 삶 제자들이 영지내에서 살던 곳을 찾아갔다.

아니나다를까.

제자들은 영지 곳곳에서 범인들의 일을 배우고 있었다.

이전 삶보다는 확연히 젊은 얼굴들.

풋풋한 청년들의 모습을 한 녀석들이 곳곳에서 일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얼마간 하염없이 그들의 모습을 바라본 후.

작게 웃은 후 신법을 펼쳐 다시 들어왔던 구멍으로 나가 버렸다.

* * *

진씨세가를 나온 나는, 우선 김영훈을 찾아보기로 했다.

'김영훈의 성격. 막리세가의 추적. 연국의 지리적 특성을 생각하면...'

나는 지난 삶의 정보들을 종합해, 김영훈이 현재 숨어있을만한 후보지를 좁혀나갔다.

얼마 후, 나는 김영훈이 숨어있을 후보지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연국 박주성 인근 산릉곡.

그곳에 있는 산채에 숨어있을 확률이 높았다.

탓, 타닷!

나는 산릉곡에 있는 교룡채가 있는 방향으로 허공답보를 밟으며 갔다.

웅장한 산세가 드러나고, 저 아래에서 꼬물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역시, 여기 있었군.'

나는 안력을 높이며 꼬물거리는 사람들이 뭘 하는지를 알아보곤 피식 웃었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전부 익숙함이 느껴지는 무공들이었다.

단악검법이나 단맥도법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김영훈의 냄새가 묻어나는 무공들.

내가 천상제를 시전하며 저 아래를 내려다볼 때였다.

파아아앗!

빛살이 허공에 번져나가며 내게 쇄도해온다.

토옹-

그러나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빛살은 그대로 분해되어서 사라져 버렸다.

'이건...'

나를 중심으로 상, 하, 전, 후, 좌, 우 천지육합에서 허공이 강기(罡氣)로 물든다.

'어검이군.'

나는 손 위로 강환을 띄워올렸다.

그리고 강환에 깃든 또 다른 나 자신의 의식을 내게 쇄도하는 빛무리들에게 그대로 옮긴다.

강기들의 통제권을 빼앗는다.

우우우웅!

허공에 맺힌 강기들이 내 의지 아래에 움직이며 도열한다.

그리고, 그 찰나 분명히 느껴진다.

내 의식영역을 은밀하게 베어가르며 내 인지를 베는 무공이.

나는 의식영역을 더욱 더 촘촘하고 오밀조밀하게 응집시키며 은밀하게 다가오는 이를 향해 빼앗은 강기를 날렸다.

콰과광!

허공에서 한 명의 신형이 허깨비처럼 튀어나오며 내가 날린 강기다발들을 쳐냈다.

"뭣, 네놈 정체가 뭐냐! 수도자 놈들이 어떻게 내 강기를..."

"하하, 수도자라니. 섭한 말입니다."

아직까지 딱히 수도공법의 신통 같은 건 쓰지도 않았건만..

"순수한 무(武)의 기예였습니다만."

우우웅!

내가 손 위로 수천 개의 강기다발을 응집하여 강환을 만들자, 그의 눈이 커졌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김 부장님."

"너, 너는...!"

그리고, 그제야 내 얼굴이 기억이 난 것인지 김영훈의 눈이 커졌다.

"서 대리..?"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다.

그러나 나는 호칭보다는 김영훈의 시선에 더 집중했다.

과연, 이 시점의 김영훈은 어느 시야에 도달했는가.

과연 어느 경지에 왔는가.

'알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확인은 필요할 것이다.

부우웅!

손 위의 강환이 두 자락으로 쪼개진다.

나는 하나를 흡수해서 사고를 가속하고, 하나를 손 끝에 올렸다.

파앙!

그대로 허공을 찢어발기며 김영훈에게  도달해 강환을 올린 손을 내민다.

그리고, 김영훈은 내 손 끝이 거의 닿기 직전에서야 황급히 반응을 하며 간신히 내 공격을 피해냈다.

사고를 가속하지 못한다.

부웅, 부웅, 부웅!

허공에 강기가 덧입혀진다.

하지만 잡다하다.

우우웅!

내 강환을 중심으로 강력한 통제력이 일어나며 김영훈의 강기들의 통제력을 완전히 빼앗아버린다.

허공에 씌워진 수천 자락의 강기들이 전부 내 의지하에 움직인다.

"뭣...!"

수천 개의 어검술이 내 의지 하에 일사분란하게 상하전후좌우 천지육합을 봉쇄하며 김영훈을 압박한다.

김영훈은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내가 빼앗은 강기들의 통제권을 되찾으려 끊임없이 의념을 입력했다.

동시에 내게 접근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건지, 조금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강기를 늘려 휘둘렀다.

'전투감각은 훌륭하군.'

만나서 겨룬지 10여초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등봉조극 강자와의 전투에 익숙해지고 요령을 깨닫고 있었다.

거기에 강기의 통제권을 되찾으려 계속 다양한 시도를 하며 의념의 운용 역시 점차 완숙해진다.

하지만.

파아앙!

허공이 찢어진다.

파공성이 울리며, 나는 어느새 김영훈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경지 차이는 어쩔 수 없군요."

파아앗!

강환을 담은 손을 휘둘렀다.

그러나, 김영훈은 이번에는 황급히 피하지 않고 물 흐르듯 움직이며 내 공격을 피하고 내게 반격을 가해왔다.

'저 움직임은...'

체계가 잡혀 있다.

그런데 또 못 보던 움직임이다.

답은 하나였다.

'방금 나를 상대하기 위해 무공을 만들어냈다.'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는 말이 나오겠지만.

무공을 익힌지 두세달도 되지 않았을 때 단악검법을 보고 단맥도법을 창시한 자가 김영훈이다.

산군월악비도 나와 대련하는 도중에 즉석으로 내게 짜맞춰서 만든 무공이다.

김영훈이라면 정말로 상황에 맞는 무공을 바로 창시해서 내게 대적할 수도 있었다.

흥이 나기 시작한다.

나는 새하얗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장심을 뻗었다.

'이래야 김영훈이지...!'

그러나 이번 역시 갑자기 김영훈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가속되더니 내 속도에 반응하여, 내 강환이 아닌 내 손목을 쳐내어 공격을 튕겨냈다.

"허!"

등봉조극에 이른 내 눈에는 대강 어떻게 한 건지 원리가 짐작되었다.

순간적으로 체내 내공심법의 흐름을 가속시켜서 움직임을 흐름에 맞게 최적화시켜 짧은 찰나 순간반응속도를 올린 것이다.

그런 무공을 그 찰나 만들어내서 내게 써먹은 것.

'첫 초수에는 피하기 급급했다가, 두 번째에는 물 흐르듯이 피하고, 세 번째에는 내 팔을 쳐냈다.'

1초식을 교환할 때마다 성장하고 있다.

찌릿, 찌릿...

전신에 오싹한 감각이 맴돈다.

김영훈의 경지는 짐작이 갔다.

10년 정도인 지금은 오기조원의 경지.

아직은 등봉조극인 내게 경험치로도 순수한 실력으로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저 정신 나간 재능은 나와 부딪히며 나에 대적할 무공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저...

"절로 찬탄이 나오는군요."

김영훈이 찰나 두어개의 무공을 섞어서 내게 쇄도해왔다.

역시 못 본 무공이다. 동시에 나를 노리고 만들어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역시 방금 만든 것일 터.

그럼에도 자신보다 더 빠르고 더 강한 이를 몰아넣기 위한 준비가 훌륭히 된 무공이었다.

하나.

콰앙!

나는 강환으로 사고를 가속시키지 않고, 양 옆에 두 개의 강환을 띄워놓고 김영훈에게 달려들어, 순수한 기(技)로 김영훈의 무공을 파훼해 버렸다.

그런 후 김영훈의 머리에 손을 뻗어 잡은 후.

그대로 무릎을 올려찍었다.

김영훈은 짧은 찰나 턱에 호신강기를 펼쳐 충격을 막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균형을 잃은 틈새를 이용해 그대로 그를 엎어서 아래로 던진 후, 천근추를 이용해 떨어져 내리며 김영훈의 윗쪽에서 그를 밀어붙였다.

우리 둘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김영훈은 허공에서 움직이며 나를 떨쳐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나는 끈덕지게 김영훈의 위쪽을 점했다.

김영훈이 수도를 휘두르자 톱날 모양의 강기가 나를 향해 휘둘러진다.

그가 허공에서 순간 가속을 하며 세 번을 회전한다.

얇은 실의 형태로 강기가 뿜어지며 허공에서 은밀하게 나를 노린다.

전부 못 보던 무공들.

그리고 전부 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티가 나는 무공들.

김영훈은 실시간으로 무공을 만들어내며 나를 떨쳐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지상이 가까워진다.

저 아래 산채에서 무공을 수련하던 산적들이, 떨어지고 있는 우리 둘을 보며 혼비백산하는 것이 보였다.

"하아아앗!"

짧은 찰나, 그가 또 다시 만들어낸 무학이 발동된다.

김영훈의 강기가 일점으로 모이며 순간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보였다.

강환은 아니었고, 원리도 전혀 다르며 형태만 비슷한 일종의 모조품.

그러나 그 폭발력에 나는 잠시 김영훈에게서 떨어졌다.

그 사이, 김영훈은 몸을 회전시키며 빠르게 가속하더니 월수궁무록과 함께 허깨비가 사라지듯 허공으로 녹아든다.

그리고 다음 순간, 김영훈이 내 위쪽을 점하고 내 옷가지를 잡았다.

지상이 코앞!

나를 그대로 지상에 처박으려는 심산.

하지만 순간.

나는 김영훈의 체내에 흐르는 기의 흐름을 전부 읽어낸 후 그대로 흐름을 이용해서 역전(逆轉)시켰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김영훈이 나를 땅바닥에 처박으려던 형세는 반대로 뒤집혀 다시 내가 그를 처박으려는 형국이 됐다.

동시에.

꽈아아아앙!

흙먼지가 비산하며 사방이 흔들린다.

고요한 산골에 산새들이 우수수 날아오르고, 주변이 시끄러워진다.

찌릿!

나는 김영훈을 잡고 있던 손에 저릿한 통증이 이는 걸 보고 입가를 씰룩였다.

오기조원의 고수인지라 호신강기로 보호할 건 알고 있어서 땅에 처박은 거였지만.

그 짧은 순간에 하강의 충격을 내게 일부 전달할 수 있는 무공을 만들어 그 순간에도 내게 썩 저릿한 반격을 한 것이었다.

'이런 미친 재능이니 이전에 고작 오기조원의 경지에서도 축기기 수도자를 기습해서 죽이곤 했던 거겠지.'

순간순간 어떤 상대를 상대하기 위해 최적화된 무공을 창시해낸다.

괴물 같다, 말도 안된다, 경이롭다 등의 수식어를 넘어서 그냥 다른 차원의 재능이었다.

'이전에 천년, 이후에 천년 다시없을 재능이라고?'

헛소리다.

이전에 만년, 이후에 만년.

김영훈의 재능을 뛰어넘을 무재 따윈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못 나올 것이다.

나는 김영훈의 위에서 내려와 손을 툭툭 털었다.

"일어 나시지요, 부장님. 대련하면서 얻은 건 많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대련? 그게 대련이었나? 죽으라고 공격을 퍼부어댄 게 아니라? 난 죽기 싫어서 미친 듯이 발악한 거였다만."

"하하, 원래는 적당히 대련 느낌 나게 상대해 드리려 했습니다만. 워낙에 재능이 말이 안 되셔서 몇 수 정도는 진심을 넣긴 했습니다."

김영훈은 허리를 두들기며 콧웃음을 치고 일어났다.

"진심을 넣긴 무슨. 마지막에는 그 덩어리를 흡수해서 가속하는 것도 안 하고 순수한 기(技)로 나를 몰아붙였으면서.

날 놀리는 거냐."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 주변으로 도망쳤던 산적 녀석들이 하나둘 빼꼼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김영훈이 얼굴을 찌푸리며 외쳤다.

"이 놈들아! 손님이 오셨는데 뭘 미적거리고 있느냐! 썩 손님 맞을 준비를 해라!!"

"예, 예! 두령!"

"흠, 저것들은 뭡니까?"

"별 거 아니다. 근처에서 숨어살던 와중에 내가 숨어지내던 마을에 내려와서 약탈을 하려 하길래, 전부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패서 갱생시키고 부려먹는 중이다."

"좋은 일을 하시는군요."

우리는 서로 잡담을 나누며, 10년만에 만난 회포를 천천히 풀었다.

* * *

며칠이 지났다.

나는 며칠동안 김영훈에게 무공 지도를 해 주고, 등봉조극으로 올라가는 열쇠를 알려주었다.

'이 속도로 가면 반년 내에 등봉조극에 오르겠군.'

아무리 봐도 정신 나간 성장속도다.

거기에 아직 10년차.

내가 죽을 때까지 대략 40년은 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동안, 과연 이번 삶에는 월도월무록을 넘어설수 있을까.

'...그래, 김영훈에게 도움을 주자.'

나는 김영훈의 재능을 보며, 요수공법을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더 굳혔다.

인간의 무공이라는 것이 요괴의 그것과 비슷하다면.

어쩌면 우리가 올라설 경지도 요수들에게서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무공초식을 짐승들에게서 배웠던 것과 같이.

이 앞의 경지도 요수들에게서 배울 수 있을지 아는가.

어차피 등봉조극의 깨달음과 실마리는 전부 넘겨주었다.

그의 재능이라면 이젠 내 지도가 없어도 알아서 반년 내에 등봉조극에 오르고 내단을 만들어낼 터.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끄음, 내가 등봉조극에 이르는 건 안 보고 갈 게냐?"

김영훈도 같이 데려갈까 생각도 했으나, 김영훈은 오히려 등봉조극에 제대로 들어가서 깨달음을 갈무리하고 싶다면서 제안을 거절했다.

"...어차피 김 형의 재능이면 반드시 도달할 건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전 등봉조극 너머의 경지에 대해 정보를 얻고자 다른 곳으로 가보려 합니다.

추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다음에 뵀을 땐..."

난 포권을 하며 김영훈에게 웃어보였다.

"오히려 김 형이 제게 가르침을 주셨으면 좋겠군요."

"...그래. 다음 번엔 반드시 너보다 높은 경지에 이르러 주마."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나는 짧고도 강렬했던 김영훈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서휼이 말했던 흑풍해(黑風海)를 찾아갔다.

* * *

흑풍해(黑風海) 극란도(棘蘭島)

흑풍해는 성제국, 연국, 벽라국의 남쪽에 위치한 바다로써, 정말 시시때때로 폭풍이 불어닥치고, 깊은 곳에는 수많은 요수떼가 서식하는 흉악한 바다였다.

수많은 요족의 터전이라고도 불리우며, 흑색귀골곡의 본거지가 흑풍해 인근에 자리했다고도 했다.

흑풍해에는 수많은 섬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 극란도를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해룡(海龍)이 지배하는 섬.

극란도는 해룡의 지배로 유명한 섬 중 하나였다.

나는 극란도에 선박을 타고 와 극란도 현지 주민들에게 해룡, 서란(瑞蘭)에 대해 물어보았다.

서란은 일종의 섬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신봉되는 모양이었으며, 매해마다 적당한 공물을 받고 선박을 폭풍으로부터 지켜주거나 요수 무리로부터 섬을 보호해주는 모양이었다.

'선량한 해룡인 것 같군.'

애초에 공물이라고 해도 그냥 극란도에서 바치는 음식 몇 점이 다였다.

처녀 제물을 요구하는 사악한 요괴도 아니었고, 말 그대로 섬의 수호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극란도는 가시나무밖에 없던, 사람 살기는 별로 안 좋은 땅이었슈. 원래 이름도 극란도가 아니라 극요도(棘妖島)였고. 근디 수호신께서 이 땅에 오신 우리 선조분들을 불쌍히 여겨서 땅을 개척해 주신 것이구.

그래서 이후로는 수호신님의 이름을 따서 극요도가 아닌 극란도(棘蘭島)라고 부르는 게유. 솔직히 이 섬 어디에 난(蘭) 같은 게 나서 극란도라 부르겠슈?"

극란도의 촌로 중 한 명이 극란도의 이름의 유래를 말해주며 수호신 서란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서란은 10장 크기의 거대한 해룡이었으며.

인간의 문화에 관심이 많고 그 언어에 박식한 지혜로운 용이라고 했다.

동시에 그를 보려면 극란도 서쪽.

매 해 공물을 바치는 서제단(瑞祭壇)에서 며칠을 기다리면 간혹 저 바다 너머로 서란이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혹시 수호신님을 뵐 때 주의해야 할 게 있습니까?"

"음, 주의해야 할 건... 수호신께선 날붙이를 안 좋아하셔서 그 앞에 검 같은 걸 패용하고 가면 안 된다네."

"감사합니다."

나는 촌로의 말을 듣고, 극란도의 서쪽 서제단이라는 곳을 향해 갔다.

서제단은 극란도의 서쪽 절벽 위에 있는 곳이었는데, 삼 장 높이의 절벽 위에 새워진 소박한 제단이었다.

'여기서 기다리면 서란을 볼 수 있다는 거지.'

그를 보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서휼이 보내서 왔다?

그러나, 채 잡생각을 다 끝마치기도 전.

촤아아아아!

거대한 그림자가 내 머리 위로 드리웠다.

파아아앗!

동시에 내 품 속에 있던.

서휼이 내게 준 요수공법서가 푸른 물 속성의 영기를 내뱉으며 진동했다.

동시에, 의식을 통해 서란의 영언이 울려왔다.

[너는 뭐냐. 뭐길래 인족의 모습을 하고 요족의 품 안에서만 반응을 보이는 해리수(海璃獸)의 가죽을 가지고 있는 게지?]

그는 푸른색 비늘을 가진, 길쭉한 몸체를 지녔으며, 은청색의 뿔을 가졌고, 바다거품 같은 새하얀 수염을 지닌 용(龍)이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공법서를 꺼내며 내 소개를 했다.

"저는 서은현이라는 놈이고, 해룡왕께서 저를 인요의 혼혈이라 하시며 서란님께 가서 요족어를 배워 요수공법을 익혀보라 하시더군요."

이제 요수공법에 대해 공부할 시간이다.

"위대한 해룡왕의 후예께서 제게 가르침을 주옵소서."

그리고, 서란이 기이하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왕께서 너를 인요의 혼혈이라 하셨다고...?]

"예, 그렇습니다만."

[이상하군. 왜 내 눈에는 네가 인족의 모습으로 둔갑한 요괴처럼 보이는 거지?]

그리고 이어진 서란의 말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요족의 피가 진하다는 느낌이 아니다. 넌 그냥 요괴 그 자체가 아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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