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풍(1)
요단?
'설마, 내단(內丹)을 말하는 건가?'
서휼이 말하는 단(丹)이라고 말할만한 것은.
현재로썬 내단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어째서 요단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이것은..."
나는 문득.
내단에 대해서 설명하려 하다가, 이것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말문이 막혔다.
내단은 등봉조극에 오른 무공고수인 나와 김영훈 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었고.
오기조원조차 몇백년에 한 번 나올만한 천재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등봉조극에 이른 무림인은 아마 무림사에서 나와 김영훈 둘 정도밖에 없을 터였다.
그런데 그런 등봉조극의 고수만 만들 수 있는 이 내단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제가 생각해보니 견문이 짧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해룡왕께서 요단이 무엇인지에 대해 짧게나마 가르침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단이란, 나와 같은 요수선사(妖獸仙士)들이 형성하는 영성(靈性)이며. 동시에 일반적인 요수나 요괴가 최초로 지성(知性)을 가지게 되어 수행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라네. 자네들 인족은 날때부터 지성을 타고나지만,
대부분의 짐승들은 그저 본능으로 천지영성을 흡입하다가, 어느순간 그 천지영성이 체내에 핵(核)을 형성하면 그것이 곧 요단이 되어 점차 지성을 가지게 되고 수행을 할 수 있게 된다네.
우리 용족을 포함해서 몇몇 기타 종족은 요단을 전승하는 것이 가능해서 아주 어릴 때부터 지성을 가지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요수나 요괴들이 형성하는 단을 요단이라 하는 듯 했다.
그리고 나는 서휼이 어째서 내단을 요단이라고 칭하는지 알 것 같았다.
'천지영성을 응집해서 지성을 얻는다면, 요수들의 요단이란 결국 요수들 자기 자신의 지성의 응집체. 내 내단은 강환이 단전의 기운과 섞이며 만들어졌다.'
그리고 강환은 결국 또 다른 나 자신의 응집체.
일종의 지성의 응집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즉, 수렴진화였다.
전혀 다른 조건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지만.
겉보기에 그 결과물은 비슷해보이는 양상.
그것이 내 내단과 요수들의 요단인 듯했다.
[인족은 보통 지성을 가지고 태어나기에, 지성을 따로 응집시키는 요핵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지. 자기 뇌를 단전에 욱여넣어서 응집시키는 인족은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보통 요단, 요핵은 요수들만이 응집하거나.
요수선사와 인족의 혼혈들 정도만 드물게 응집한다네. 그런데 자네는 요단을 응집하고 있었으면서도 스스로가 혼혈인 줄은 몰랐던 건가?]
해룡왕은 내 정체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한 것인지, 나를 어떤 요족과 인족의 혼혈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물어왔다.
[흠, 무슨 혼혈인지가 궁금하지만, 슬슬 시간이 되어가는군. 승천문에 가 봐야겠어.]
얼마간 내게 몇 가지를 물어보던 해룡왕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그는 김영훈을 공간 균열 너머로 밀어넣고, 내 설득에 의해 김연 주임 역시 데려가기로 한 후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인요 혼혈은 거의 천 년 만인가. 이것도 인연이니 여기, 요수공법(妖獸功法)을 수록한 요족 수도공법서라네. 본 해룡족에 전해져 내려오는 썩 쓸만한 공법 중 하나지.]
"...! 어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나는 손을 부르르 떨며 해룡왕이 품에서 꺼내 건낸 서책을 받아들었다.
서책은 왠 짐승의 가죽으로 장정되어있었고, 서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하나, 죄송하온데 이 글자는 무슨 글자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 그건 요족어라네. 생각해보니 자기한테 있던 게 요단인지도 모르고, 무슨 혼혈인지도 모르는 자네가 요족어를 알 리가 없지.]
"......"
그럼 어쩌라는 거지.
'지식을 전송하는 술법으로 요족어를 알려주지는 않으려나..?'
내가 그를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서휼은 내 눈빛을 알아냈는지 고개를 저었다.
[요족과 인족의 의식은 그 파동이 상당히 달라서 억지로 지식을 전수하면 보통 의식이 약한 쪽이 미쳐버린다네. 안타깝지만, 자네가 요족어를 따로 배워야 할 것 같군.
어디보자... 흑풍해(黑風海)의 극란도로 가면, 서란이라는 축기 후기경의 내 후손이 있는데. 그 아이는 인족어와 요족어에 정통하니 댓가를 주고 요족어를 가르쳐달라고 하면 가르쳐 줄 걸세.]
"제가 견문이 넓지는 못하나, 인요가 다른 것이 명백한데 저를 공격한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자네는 혼혈 요족이라니까. 요단까지 응집했는데, 지성있는 요족이라면 자네를 감히 함부로 대하지 않을 걸세. 그럼 나는 이만 가 보지. 그 공법서는 썩 괜찮은 요수공법이니 요수혼혈인 자네에게 도움이 될 걸세.]
서휼은 김연과 오혜서를 안아들고, 그렇게 말한 후 동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얼마 후 다시 서휼이 먹구름 속을 헤치고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날아가는 서휼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요수공법이라...'
문득, 나는 무공(武功)의 연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대다수는 무공의 연원을 수도자들의 수도공법에게서 찾았다.
그들이 운용하는 수도선법에서부터 내공심법(內功心法)이 탄생했다고들 하였다.
하지만, 무공은 단순한 심법과 기공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초식(招式).
무림인이 그 몸을 움직이는 기(技)는 어디에서 왔는가?
'짐승들의 움직임에서 무수한 무공초식의 연원을 따 왔다.'
범의 움직임에서, 말의 뜀박질에서, 벌의 날갯짓에서, 거북이의 단단함에서.
인간은 자신보다 강한 이를 모방하며 그렇게 무공을 완성시켜 나갔다.
수도자들을 모방하여 심법을 만들고, 짐승들을 모방하여 초식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기공과 초식이 합쳐지며, 수천년이 흐르고 완전히 통합되었다.
그렇게, 이 세상에는 '무림인'이란 존재들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내가 만든 검환(劍丸)은 기(氣)인가 기(技)인가.
기운의 덩어리라 해도 될 것이었고.
기술의 집합체라 해도 될 것이었다.
수도자들의 그것과도 닮았으나, 동시에 짐승들의 그것으로 탄생한 것.
그렇기에, 나의 내단은 요수들의 요단과도 비슷한 형질을 지닌 것일 터다.
그리고, 그 말은 즉.
'어쩌면, 요수공법을 연구하여, 무공의 다음 단계를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수도자들의 수도공법은 수천, 수만, 수십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이어져 내려오며 진화했다.
요수들의 요수공법 역시 모르긴 몰라도 그 정도의 역사는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무림인의 무공은 그에 비하여 아무리 잘 쳐 주어도 그 정도의 역사를 가지진 못했다.
그렇기에 무공은 약하고, 그 경지 역시 한정적이다.
김영훈이 삶을 갈아넣으며 계속해서 새로운 경지를 만들어가는 것이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로 무공은 새로운 경지에 도달할 수 없을 테니까.
'만약, 내가 요족어를 배워 요수공법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것을 김영훈에게 알려준다면...'
어쩌면 그는 훨씬 빨리 그 너머의 경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일단 결심을 다졌다.
'그래, 우선 등선향에서 최대한 빨리 지난 삶의 경지를 회복한다.'
그런 후 흑풍해 극란도라는 곳에 사는 서란이라는 용족을 찾아가, 요족어를 배운다.
이것이 이번 삶의 목표였다.
* * *
연기기 7성까지의 경지를 회복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지난 삶보다도 훨씬 빨랐다.
고작해야 7년.
거의 1년에 1성씩 경지를 올린 셈이었다.
선각후통으로 경지를 올리는 것을 처음부터 몇 번을 반복하니, 점차 경지에 대한 깨달음이 깊어지며 경지를 회복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칠성제의의 의식을 치뤘다.
하늘에게서 영성을 부여받는 의식.
그리고, 나는 이번에도 익숙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김없이 나타나는 천거 현상.
먹장구름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파아아앗!
빛이 터져나오며, 하늘에 구멍이 뚫린다.
하늘에 뚫린 구멍으로 별빛이 쏟아져 내려오며, 내게 천지영성을 부여하였다.
나는 굉장히 순조롭게 연기기 8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 * *
연기기 8성에서 다시 11성 삼재규일에 도달하는 데에는 약 3년이 걸렸다.
그리고, 나는 최근 삼재규일의 단계에 이르러 강환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눈치챘다.
"천(天), 지(地), 인(人)..."
지난 삶에도 삼재규일의 단계를 밟을 당시 강환에 변화가 생겼었다.
하지만 그때는 느낌이 명확하지 않아 잘 몰랐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느낌이 온다.
물론 아직도 필설로 설명하기는 힘들었지만.
우우우웅!
강환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파아앗!
강환이 두 개로 쪼개졌다.
좌환을 지(地)로, 우환을 천(天)으로.
그리고 두 개의 환 사이에 있는 나 자신을 인(人)으로.
그리하여 나를 중심으로 천지가 순환하게 한다.
웅, 웅, 웅!
두 개의 강환이 내 주변으로 빙글빙글 회전하며 안정화되었다.
나는 양손에 두 개의 강환을 올렸다.
'삼재의 원리가 적용되니 강환이 쪼개졌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강환에는 삼재의 원리가 이리 딱 맞게 적용되는 것일까.
붕, 붕!
나는 두 개의 강환을 한 손에 올렸다.
각각 천과 지를 대표하는 두 강환이 서로 공전하며 돌더니.
어느덧 하나의 강환으로 합쳐졌다.
'삼재의 이치란...'
난 삼재의 이치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 강환을 쪼개 보았다.
지금으로선 강환을 쪼개는 갯수는 아직까진 두 개.
거기에 제대로 된 깨달음이 아니어서인지, 두 개의 강환은 힘을 풀면 다시 하나로 합쳐져 버렸다.
난 잠시 강환을 바라본 후 다시 지월입도결 수련을 이어갔다.
그 후 약 1년.
난 연기기 12, 13성을 완공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의합일과 일원일응.
파아아앗!
모든 영맥이 하나의 영맥으로 통합되고, 단전에는 하나의 영기의 점이 모였다.
연기기 14성, 무극영운(無極靈雲)의 단계를 완공하면, 이제 축기기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진다.
아니, 사실 연기기 14성 무극영운의 단계는 일원일응을 통해 축기기에 도달하기 쉽도록 만들어진.
축기기와 연기기의 중간다리 같은 느낌의 단계였다.
그러므로, 일원일응을 완공하여 14성에 진입한 나는, 사실상 연기기의 극한에 이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드디어."
약 11여년 만에.
연기기 14성의 경지를 전부 회복했다.
쿠그그극!
내가 손을 쥐자, 수결이나 진언을 맺지 않아도 주변의 대지가 우그러지며 진도를 형성한다.
이제는 간단한 진도형성 정도는 무영창으로 바로 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14성을 완공하고 축기기에 드는 것.
'하지만 축기기에 드는 건, 조금 천천히 생각해야겠어.'
당장 내 재능으로는 평생을 고련해도 안 될지도 몰랐다.
그러니, 당초 생각했던 대로 경지를 전부 회복했으니 흑풍해에 사는 서란을 만나, 요족어를 배우고.
서휼이 주고 간 요수공법을 배우는 것이 나을 것이다.
회귀 11년차.
나는 그렇게.
모든 경지를 회복하여, 연기기 14성에 이른 채 등선향에서 뛰어내렸다.
이제, 요수공법에 대해 알아보러 갈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