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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뢰(天雷)(2)
결정은 길지 않았다.
'북쪽으로 가 봐야겠군.'
사람이 매우 그립기는 했지만, 북쪽에 있을 석조건물이 더욱 궁금했다.
나는 우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밤이 되고 별들이 떠오르자, 별자리를 읽어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벽라국의 위치를 대강 파악한 후.
법결을 맺어 모래로 흙원판을 만든 후 그것을 타고 사막을 헤쳐나갔다.
촤아아아-
나는 북쪽을 향해 가면서도, 끊임없이 지하를 향해 지청술(地聽術)을 펼쳤다.
석조건물이 있다면, 모래사막에 파묻혔으리란 생각에서였다.
'석재긴 했지만, 처음 보는 광석이었다. 상당히 단단하고 견고했어. 설령 몇천년 전의 건물이더라도 아직까지 풍화되진 않았을 터.'
그렇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터였다.
* * *
콰아아아-
며칠이 지났다.
모래폭풍이 불어왔다.
나는 토 속성의 법력을 내 주변에 구부려서 모래들이 원판 위쪽을 비껴나가게 했다.
'며칠 동안 북쪽으로 가면서 지청술로 지하를 탐지해도 뭔가 잡히는 건 없군.'
아무래도 더 북쪽에 있거나, 그도 아니면 내가 지청술로도 탐지할 수 없을만치 지하에 파묻혔거나.
둘 중 하나 같았다.
'솔직히 답천사막을 다 뒤지려 하는 것도 조금 멍청한 짓 같기는 한데...'
언제 이 사막을 다 뒤진단 말인가?
어쩌면 슬슬 포기하고 벽라국 쪽으로 가서 그리운 얼굴들이나 보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었다.
'하루만 더 북쪽으로 가 보고 아무것도 없으면 그냥 벽라국쪽으로 방향을 틀어야겠어.'
휘이이이-
모래폭풍 속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사방이 모래, 모래, 모래 천지였다.
그 때였다.
"....!"
저 앞에, 무언가가 보였다.
작은 돌 같은 것이 모래사장 위쪽에 빼죽 튀어나와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 돌의 색깔이 석조 건물의 색과 똑같다는 것이었다.
'저거다...!'
나는 황급히 원판을 움직여 돌로 미끄러져갔다.
"이건, 대부분이 아래쪽에 파묻혀있군."
이 조그마한 부분조차도 사실상 모래폭풍때문에 모래가 많이 쓸려가서 간신히 고개를 드러낸 듯 했다.
나는 지청술을 써서 파묻힌 부분의 범위를 파악해냈다.
아무래도 석조 건물과 같은 자재인 것은 맞았지만, 석조 건물의 일부분인 듯 했다.
이건 마치...
'현판(懸板) 같군.'
법결을 맺어 석재를 모래더미 속에서 파내었다.
네모낳게 생긴 석재 현판에는, 예스러운 글씨체로 갑골문이 써져 있었다.
또한 뒷부분이 깨진 것인지 훼손된 것인지, 뒷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현판의 훼손된 부분을 보던 중, 훼손된 부분의 모양이 마치 내가 일전 등선향의 석조건물에서 본 글자 파편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뒤에 뢰(雷) 자가 오는 거겠군."
그럼 이 갑골문은 무슨 뜻일까?
나는 석재 현판에 써진 갑골문을 해석하며, 천천히 그 뜻을 해독했다.
"이건... 쇠? 아니, 빛나다란 뜻인가? 황금색? 금(金)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고..."
이전 무림맹 책사 시절 공부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차근히 갑골문을 해독하던 중.
나는 뭔가 기묘한 위화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이건... 귀신? 신령한 존재? 신(神)으로 해석하면 되는 듯 하고... 마지막, 훼손되기 직전의 문자는..."
나는 석재 현판에 새겨진 세 개의 갑골문 중 마지막 문자를 해석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늘(天)...?"
그리고, 이 뒤에는 등선향 근처 석조건물 옆에 있던 파편이 딱 맞으니.
뢰(雷)자가 온다.
금신천뢰(金神天雷).
내 눈이 커졌다.
"금신천뢰문(金神天雷門)...?"
그 석조건물이, 금신천뢰문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건가?
하기사, 생각해보면 뇌운 아래에서 그토록이나 번개를 흡수하는 비석을 생각하니,
벼락을 다루던 금신천뢰문과 상당히 잘 어울리긴 했다.
하지만 기묘한 것은 석조건물의 취급이었다.
금신천뢰문과 관련된 건물 내지는 사당으로 보였었다.
금신천뢰문의 태상문주가 승천문으로 갔는데, 왜 금신천뢰문의 건물이 그렇게 뜯어져서 내팽개쳐져 있는가?
그리고 청문세가의 서고를 드나들며, 이전에 있었던 유명한 수도종문의 위치에 대해서 읽은 적도 있었다.
창천개벽문은 벽라국 북쪽 대초원에.
흑색귀골곡은 연국 남쪽 대해(大海)의 섬 중 한 곳에.
금신천뢰문은 성제국 서쪽 대산맥에.
연국을 기준으로, 동쪽이 벽라국, 그 너머 동쪽이 답천사막이었고.
연국의 서쪽이 성제국이었다.
그 성제국의 서쪽 대산맥에 위치한 종문의 현판이, 왜 정 반대쪽인 답천사막 한 가운데에 떨어져 있는가?
'이전에는 이곳이 금신천뢰문의 영역이었는가?'
하지만 내가 읽었던 어떤 서책에도, 금신천뢰문은 근 3천년동안 성제국 서쪽에서 활동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금신천뢰문이 이곳에 자리했던 일은 최소 3천년 전의 일이란 건데...'
"......"
수도자들은 하도 수명이 길고, 역사가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아득히 길어서 그 긴 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추후에 알아보거나... 아니면 다음 생에 금벽호에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엔 없을 것 같지만...'
그 자의 성격을 생각해 볼 때, 내가 질문을 했다가는 감히 연기기 따위가 자신에게 함부로 말을 거냐면서 벼락을 떨어뜨려 나를 죽이려 할 터였다.
문득 그걸 생각하니 기분이 나빠졌다.
'수도자들은 어찌된게 다들 그리 포악한지...'
잡생각을 할 때였다.
쿠구구구구-
모래폭풍이 더더욱 짙어진다.
"음...?"
문득, 저 모래폭풍 너머로 무언가가 보인다.
안력을 돋워서 보아하니, 저 너머로 흐릿흐릿하게 보이는 뭔가는 성(城) 같아 보였다.
시커먼 성이 모래폭풍 너머에 있었다.
"누가 있는 건가..?"
호기심이 생기려는 그 찰나.
흠칫!
'피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나는 저 성에서 나는 묘하게 흉(凶)한 기운을 느꼈다.
수 번의 삶을 반복하며 누적된 내 경험과 직관, 그리고 하늘에게서 부여받은 일말의 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위험하다.
일단 멀어지자.
나는 금신천뢰문의 석재 현판을 내려놓고, 원판을 돌려 다시 왔던 길을 향해 남쪽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모래폭풍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화악!
"후우... 엄청나군."
모래폭풍도 모래폭풍이었지만, 모래폭풍 너머로 얼핏 본 그 성에서 느껴진 흉험함은.
가히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
'답천사막... 모래밖에 없는 곳이라 해서 안심하고 있었다만. 상당히 위험한 곳이었던 건가.'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맘때즈음, 답천사막 부근에서 대학살이 일어났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답천사막과 인접한 청문, 벽씨, 공묘 삼가를 포함한 연국의 막리세가와 진씨세가, 성제국의 수도가문. 그리고 답천사막 동쪽의 나라에 있는 결단기 수도자들도 신경이 잔뜩 곤두섰다고 하였다.
'방금 본 그 성과 관련이 있는건가?'
그 성에서 은연중에 느껴지는 흉험함과 피의 기운은 절로 오한이 들 정도였었다.
나는 십중팔구 그 성이 답천사막 인근에서 일어났다는 대학살과 연관되었으리라 예상하였다.
아마 멍청하게 그 성이 궁금하다고 그쪽으로 계속 향했으면 나는 바로 다음 삶으로 넘어갔으리라.
얼마간 몸을 떨며 왔던 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던 중.
다시 밤이 되었다.
별자리를 통해 다시금 내 위치를 확인하려 할 때였다.
'어...?'
뭔가 이상하다.
모래폭풍때문에 사막의 지형이 다 변했어서 지형에 대해서는 생각은 않고 있었다.
때문에 주변의 모래언덕들의 위치가 많이 변했어도 그러려니 하였다.
하지만, 별자리를 본 나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나는 성을 보자마자 남쪽으로 도망쳤는데, 왜...'
도착한 곳이 훨씬 서쪽인 벽라국 인근이지?
오싹!
수도진(修道陣)!
필시 그곳은 높은 수도자가 살던 곳이고, 어마어마하게 넓은 범위로 수도진이 펼쳐져 있던 것이리라.
수도진의 외곽에 접근했던 나는 그냥 방향이 틀어진채로 나올 수 있었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더 접근했었더라면...
'섬칫하군. 최대한 빨리 답천사막에서 벗어나고 싶어.'
나는 원판의 방향을 조종하며,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벽라국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 * *
이십주야가 지났다.
"...답천사막이 넓기는 하군."
나는 혀를 차며 주머니에 들어있는 열매씨앗을 꺼내서 먹었다.
이젠 슬슬 등선향에서 가지고 온 식량과 물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음식을 안 먹고 오래 버틸 수 있는 건 축기기에 오른 괴물들부터고.
나는 고작해야 연기기 나부랭이였기에,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필요로 했다.
물론 내단이 생긴 이후부터는 일반인들보다는 훨씬 오래 버틸 수 있기는 했으나.
이렇게 끊임없이 법력을 소모하고 이동을 하며 버티는 것은 또 얘기가 달랐다.
'그래도 이제 거의 다 왔다.'
하루이틀 정도만 더 가면 벽라국 동쪽부근.
공묘세가의 영역이었다.
공묘세가의 영역에는 사막부족들이 많이 결집해 있었으니 식량과 식수를 구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하루 뒤.
휘이이이
바싹, 바싹...
목이 마른다.
이제 식수도 전부 떨어졌다.
식량 역시 어제 나무열매를 하나 먹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배고픈 것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목이 마른 것이 문제였다.
목이 마치 타는 것 같다.
'물, 물 한모금만 마셨으면 소원이 없겠군...'
내단을 형성하고 연기기에 올랐어도 아직 인간을 초월한 것은 아니기에, 나는 타는 듯한 갈증을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그 개 같은 막리세가 놈들이 그리워질 줄이야...'
정확히는, 녀석들이 쓰는 음계법술과 수계법술들이 간절히 고팠다.
지월입도결은 매우 편리했지만, 이런 극한상황에서 물을 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수도공법이었다.
'제길, 목말라 죽겠군. 설마 이번 생은 아사(餓死) 하는 건가?'
내가 여러 번 죽어보았다지만, 별로 하기는 싫은 경험이었다.
그때였다.
"...!"
저 멀리, 새하얀 백의(白衣)를 입은 누군가가 보였다.
'사람, 사람이다!'
어쩌면 물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황급히 법결을 맺어 원판의 속도를 높였다.
백의를 입은 이는 흑발의 여성이었다.
새하얀 백의와 새카만 흑발이 대조적이었고, 손목에는 오색 유리팔찌를 차고 있었으며, 허리춤에는 옥색 노리개를 차고 있었다.
생긴 것은 예쁘다기 보다는 대체적으로 순하게 생긴 인상이었으나, 왠지모를 고집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의식이 미간을 중심으로 원구를 그리고 있었다.
수도자였다.
"이, 이보시오..."
나는 말을 더듬으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너무 오랜만에 타인과 말을 하다보니 제대로 말이 안 나온다.
"호, 혹시.."
"목이 말라 보이시네요. 목을 축이세요."
"가, 감사.."
난 그녀가 건내준 물주머니를 받아들고 미친 듯이 물을 삼켰다.
'물이다! 물!'
미적지근했지만, 여지껏 마셔본 어떤 음료보다 황홀했다.
꿀꺽, 꿀꺽, 꿀꺽...
"하아...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저."
"아니에요. 어차피 성(城)도 이곳에서 멀지 않은걸요. 동쪽에서 오시는 걸 보니, 여행자이신가요? 한데 그 옷차림은..."
"흠흠. 사정이 있습니다. 이 근처 성 이름이 무엇이지요?"
"천색성(天色城)이라고 하지요. 동남쪽으로 한 시진 정도만 걸어가시면 나올겁니다. 보아하니 같은 도우(道友)이신 듯 한데, 방금 이곳까지 오실 때 쓰신 법술을 사용하시면 일각 안에 도착하실 거에요."
"아, 정말 감사드립니다. 혹 소저의 성함을 알려주신다면 추후에라도 보답하겠습니다."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막에서 길손을 돕는 거야 당연하죠. 보답은 되었고, 살펴 가시길 바랄게요. 저는 이 근처에서 법기(法器) 재료를 찾아야 해서 이만."
그녀는 법결을 맺더니 모래를 움직여 파도처럼 타고 저 멀리로 가버렸다.
"연기기 13성 정도군. 감사한 소저야."
난 내게 물을 준 소저가 간 방향으로 읍을 하여 예를 차린 후.
그녀가 가리켜준 방향으로 원판을 몰아 이동했다.
그녀의 말대로 정확히 일각 후.
나는 벽라국 동쪽 끝에 있는 성인 천색성(天色城)에 도착하였다.
천색성은 공묘세가의 축기기 수도자인 공묘천색의 이름을 딴 성으로.
청문세가에서 들은 바로는 온갖 법기가 거래되는 장소로 유명하다 하였다.
또한 성의 유리공예품이 예술이라, 많은 곳에서 이곳의 유리공예품을 사가려 한다 했다.
물론 나는 그런 것엔 별 관심이 없었고, 천색성 내부에서 적당한 사파를 때려잡은 후 관청에 잡아가 현상금을 받았다.
그런 후 현상금으로 기본적인 옷가지와 식수, 식량을 사서 먹은 후.
벽라국 서쪽, 청문세가의 영역으로 향하였다.
내 수명은 이제 약 9년 정도가 남은 상태.
비록 40여년간 악을 써가며 제의만 치루느라, 많이 늦었지만.
지난 삶의 인연들이 어찌 지내는지는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스승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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