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51화 (51/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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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차의 첫날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직도 가슴이 아렸다.

지난 삶 죽기 전에 심장을 쥐어짠 탓인지.

그도 아니면 심장을 거세게 때린 환통(幻痛)인지.

그조차 아니면, 이젠 나와 인연을 쌓았던 그 스승님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아릿함인지.

'제자는, 스승님을 마음 속에 새길 것입니다.'

시간선이 갈라져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 마음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짧게 맹세를 한 후.

나는 법결을 맺었다.

체내엔 법력이 한 줌도 없었으나, 선각후통으로 완벽히 체화한 법결들은, 체내에 흐르는 미약한 기(氣) 만으로도 얼마간 발동이 가능했다.

파아앗!

법결이 발동하자, 막 일어나려던 주변의 다른 동료들은 손댈것도 없이 다시 전부 잠들어버렸다.

나는 법결을 사용하고 나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느낌... 상단전이 이상하다..?'

뭔가, 상단전 안쪽으로 거대한 뭔가가 꽉 들어찬 느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연기기 7성 수준에 달했던 내 의식이군..!'

사실 오기조원 무림인들의 의식의 크기가 연기기 3, 4성쯤 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 상태에서 또 수도공법을 익혀 연기기 7성까지 올라선 내 의식의 크기는 연기기 10성 정도의 크기였다.

그 크기의 의식이 상단전에 꽉꽉 압축된 상태인데, 상단전이 멀쩡한 것이 이상한 것이었다.

'일단 몸이 오기조원에 이르러 환골탈태를 하기 전으로 돌아와서 상단전이 버티기 힘든가보군.'

나는 우선 이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근처에서 황주삼을 캐내어 먹고, 바로 환골탈태에 들어갔다.

다시금 천지영기의 오행이 내 몸으로 흘러들어왔고, 난 다시금 오영질을 얻고 수도자의 자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환골탈태를 하여 의식을 버틸 수 있는 조화력을 가진 육신을 손에 넣은 후에야.

나는 머리가 아픈 현상이 멈춘 것을 알아냈다.

동시에 상단전에 압축되어 있던 의식이 오기조원에 이른 후에야 제대로 풀려서 그 형체를 드러내었다.

지난 삶의 의식과 그 크기가 같았다.

나는 그를 보며 미약한 감회를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전승되는 것이 또 하나 생겼군...'

동시에, 나는 회귀의 법칙 중 하나를 파악할 수 있었다.

회귀하는 것은 내 영혼과 의식뿐이며.

의식이 성장한 다음 회귀한다면, 그 의식의 크기는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우선 동료들을 동굴로 데려가 수면술로 계속 잠을 재워 놓았다.

그런 후, 나는 이번 삶에 대해 고민하였다.

"하늘이, 나를 허락하지 않는다...라."

어찌해야 하는가.

수도자가 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승천문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삶 청문세가에서도 청문세가 내 서고를 이용하여 승천문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과 크게 다를 바는 없는 정보였지만...

여하튼 승천문은 천 년에 한 번씩 열리는 공간균열이며.

한번 열리면 육개월에 걸쳐 점차 작아지며 다시 닫힌다고 하였다.

그리고, 승천문 내부의 공간 압력을 버티려면 최소 천인경 수도자급의 방어력은 갖춰야 하며.

한 번 승천문이 닫히면 다시 그 승천문을 구경하기 위해선 1000년을 기다려야 한다.

천 년.

그 긴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선, 최소한 원영기 수도자급의 수명과 힘이 필요했다.

그랬기에 수도자가 되기로 한 것.

'무공은 아무리 익힌다 한들 육신을 전성기의 상태로 만들어줄지언정, 수명이 늘어나진 않는다.'

내가 직접 지난 삶에 확인했던 사실.

그러나, 나는 수도자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

스승님이 내 뇌리에 축기기 공법과 연기기 후반에 대한 지식을 넣어주셨다 할지라도.

정작 연기기 7성을 절대 넘을 수 없건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한번, 매달려 보아야겠군."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며칠 후 찾아올 천인기의 노괴들.

금신천뢰문, 흑색귀골곡, 창천개벽문.

그리고 해룡왕과 꼽추 노인.

그들에게, 매달려보자.

발을 핥아서라도 방법을 물어보자.

난 이를 악물고, 잠든 동료들 옆에서 수도공법의 기초.

단수(丹修)의 단계를 다시 밟기 시작했다.

다섯 영질을 균일화시키고, 단전에 안착시킨다.

그런 후 음양이기로 조화를 맞추어 혼원지력으로 닦아낸다.

지난 삶에 이미 이룬 경지인 탓일까.

나는 이틀 밤을 새워 바로 단수공법을 완공하고 법화단전을 완성했다.

이젠 언제든지 연기기 1성에 진입할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이 찾아왔다.

또 다시 금신천뢰문의 태상문주, 흑색귀골곡의 원로원주, 창천개벽문의 개파조사.

세 명의 천인경 수도자가 우리에게 내려왔다.

[영근을 가진 건 이렇게 넷인가?]

금신천뢰문 태상문주, 금벽호가 우리를 끌어당겼다.

그러자 천지영기가 자연스레 감응하며 나, 오현석 차장, 전명훈 과장, 강민희 대리를 앞으로 끌고갔다.

그리고 또 다시 이전 삶과 비슷한 반응들이 터져나왔다.

[천상금뢰지체...! 전설상의 체질이라니!]

[귀, 귀도음화선근..!]

[일문성체! 하하하,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구나!]

그리고, 셋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남은 내게 향하였다.

[흠? 단수기 완공의 단계로군. 보아하니 본래 수도자였던 것 같은데... 호오? 이것 봐라. 의식의 크기는 연기기 10성 급인데?]

금벽호가 내 의식의 크기를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그러자, 나머지 인원들의 시선들에 다시금 탐욕이 어렸다.

[어디, 자질을 검사해볼까.]

동시에, 천지영기가 내 몸으로 강제로 스며들며 몸 곳곳을 헤집었다.

뿌드득, 우드득...!

"크윽..끄으으읍!"

나는 이를 악물고 그의 악랄한 자질검사를 거쳤고, 얼마 후.

내 영질이 오영질인 것이 판명났다.

다섯 영기가 광채를 내뿜자, 세 수도자는 단번에 실망한 기색이 되어버렸다.

[쯧, 단수기인 녀석 의식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기에 기대했건만...]

[이 녀석은 별볼일이 없나보군.]

[흠, 그래도 아무런 영맥도 할성화되지 않은 걸 보면 막 수도공법을 익히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 정도 의식의 크기면 썩 나쁘지 않은 자질이로군.]

창호자만이 그나마 내 의식의 크기에 대해서 조금 호감을 보이는 태도였다.

이대로라면 또 다시 창호자만이 내게 추천권을 넘겨주고 전부 가버릴 상황.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크게 외쳤다.

"천인경의 대선배들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무공으로 오기조원에 올라 영통을 강제로 뚫었으며, 수도자가 되고자 간절히 바라왔습니다! 하오니 부디 이 천것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파아앗!

나는 허공에 강기를 덧씌우며 휘둘러보여 내 가치를 증명했다.

"축기기 수도자들이 쓰는 정순지력 역시 다룰 수 있습니다. 제 전력(戰力)은 연기기 14성 이상, 축기기 미만입니다. 저를 데려가시면 바로 연기기 14성 급의 전력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부디 대선배들께서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흠...]

[오기조원이라... 분명 그런 게 있긴 했었지...]

금신천뢰문의 금벽호와 흑색귀골곡의 백골귀마는 어쩐지 시큰둥한 표정이었고.

창천개벽문의 창호자는 굉장히 흥미가 동한 얼굴이었다.

"오, 벽라국어를 할 줄 아는구나. 벽라국 사람이냐?"

그는 의식을 통해 말을 전하는 심언(心言)이 아닌 육성으로 벽라국어를 쓰며 물어왔고, 나 역시 그에 맞춰 대답하였다.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벽라국에 내 방계 가문이 있는데..."

그러나, 그는 내게 일정 이상의 흥미는 없었고, 이번에도 그저 추천권으로 끝낼 생각인 듯 했다.

나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어째서 제게 기회를 주지 않으십니까! 저를 데려가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흠... 아마 승천문이 열릴 시기가 아닐 때, 네가 창천개벽문을 찾아왔으면. 아니, 본문뿐이 아닌 저 금신천뢰문이나 흑색귀골곡으로 갔어도, 너는 충분히 내당제자로 들어갈만한 자질이다. 하지만, 승천문이 열리는 지금은 다르지.

이미 우리는 문파 내의 최중요 인원 전체를 압축해서 비승할 예정이고, 한 명씩 추가될 때마다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은 곱절이 된다. 이 녀석들의 자질, 천상금뢰지체니 귀도음화선근이니, 일문성체니 하는 것들이 워낙에 전설적이다 못해 신화적인 자질이기에 그 부담을 각오하고 데려가려는 것이다."

그런가.

내가 지닌 자질 정도로는 날 데려갈 수 없단 것인가.

나는 이를 악물고, 세 명의 천인기 수도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면,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감히, 조금 상대해줬더니 우리가 한가한 것처럼 보이더냐!]

쿠릉!

금벽호가 노갈성을 지르자, 천지영기가 그에 호응하며 한 줄기 벼락이 하늘에서 떨어져내렸다.

콰아앙!

"크으으윽...!"

나는 벼락에 직격당하며 비명을 내뱉었다.

전신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주, 죽는...'

"거 참. 성질머리 한번 더럽군."

부웅-

그러나 창호자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목 속성의 영기가 치유의 힘을 품고 나를 뒤덮었다.

내 체내에 있는 뇌기가 밀려나며 전신이 바로 회복되었다.

"커, 커헉...! 허억...!"

[흥, 고향 사람이라고 챙겨주는 거냐.]

"네놈들이 너무 성질머리가 더러운 게 아니냐. 후배가 궁금한 게 있을 수도 있지. 말 한 번 했다고 벼락을 떨구기는."

창호자는 혀를 차며 말했다.

나는 창호자를 믿고, 일단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질문을 물어보기로 하였다.

"선배들께 여쭙습니다. 선배들께서 저를 데려가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혹여 하늘에게 수선(修仙)의 길을 불허(不許) 받은 이가 어찌하면 그를 극복할 수 있는지 여쭙고자 합니다.

연기기 7성에 이르러 칠성제(七星祭)를 지내고자 하는데, 제를 지낼때마다 하늘에서 먹구름이 일어나 천지영성을 막는 현상이 일어난다면 어찌해야 하나이까!"

내 질문에, 백골귀마가 일단 불쾌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가리켰다.

푸콱!

그와 동시에 내 양팔이 그대로 터져나갔다.

[창호자가 네 재롱을 봐준다 해서 지나치게 방만하구나. 진짜 네게 우리에게 말을 걸 권한이 있다고 믿은 것이야?]

"쯧쯧, 모르면 모른다 할 것이지. 미친 놈 같으니라고."

창호자는 혀를 끌끌 차며 다시 내 양팔을 회복시켜 주었다.

백골귀마는 강민희 대리를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기며, 더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허공으로 떠올랐다.

[흠, 천거(天拒) 현상이라. 본문의 문헌에서 봤던 기억이 나는군.]

금벽호는 그나마 내 질문이 흥미로운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했다.

[타인이 도와주면 칠성제의 의식이 깨어지니, 내 알기로 제의를 치루는 본인이 천거 현상에 생기는 이상현상을 밀어내면 될 것이다.]

"하하하, 이 친구 얼굴이 썩어들어가는 게 보이는군. 하기사 아무 도움도 안 되는 해답이긴 하지 않나? 칠성제를 치루는 수도자는 연기기 수도자인데, 연기기 수도자들이 무슨 힘이 있답시고 천거 현상을 본인 힘으로 막나? 세살배기 어린애도 할법한 답안이군!"

[...쯧, 어쩌라는 거냐. 짜증나는 놈이군! 난 이만 가겠다!]

쿠릉!

콰아앙!

금벽호는 애꿎은 화를 내게 다시 벼락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풀고는 허공으로 떠올랐다.

"크아아악!"

이번에도 역시 나는 육신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다가, 창호자의 치유법술에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청문세가 시조, 창천개벽문 개파조사 창호자께 감사드립니다."

"별 것 아니다. 쯧쯧... 천인기쯤 되면 다들 오래 살아서 그런지 성격이 모두 한 부분쯤은 맛이 가 있으니 그러려니 하거라. 그럼 네게는 일단 청문세가의 추천권을 줄 테니 그곳으로 가 보거라. 너 정도의 의식크기면 승천문이 열리기 전에는 어디서든 환영받았을 텐데, 아쉽군."

그러나, 나는 그의 앞에 읍을 하며 말했다.

"말씀은 감사하오나, 저는 승천문이 열리는 이 시기에 등선향을 지나실 많은 분들께 계속 청을 올릴 작정입니다."

"흠? 청을 해도 다들 우리처럼 자기내 문파 최중요 인원과 후기지수를 바리바리 싸 들고 가는터라 너를 챙길 여유는 없을텐데?"

"하지만... 자문파가 없이, 그저 홀로 가시는 분도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알기로 등이 굽고, 괴뢰를 부리시는 한 분께선 문파가 없는 것으로..."

내 말에, 창호자가 얼굴을 팍 찌푸렸다.

[뭣! 괴군(怪君), 그 미치광이한테 청을 올린다고!]

그는 무언가 당황을 한 것인지, 육성이 아니라 영언으로 외쳤다.

그의 영언에, 허공에 떠올라 비둔술을 쓸 채비를 하던 금벽호와 백골귀마가 다시 이곳을 내려다 보았다.

[괴군? 그 정신나간 노인네 별호가 왜 나오지?]

[그 소름끼치는 미치광이 얘기는 또 왜 꺼내는 건가?]

'어...?'

어째 반응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하늘로 올라갔던 두 천인기 수도자들이 다시 이쪽으로 내려올 정도였다.

금벽호의 얼굴은 어쩐지 시뻘개져 있었다.

[네놈, 설마 괴군 그 미치광이 새.. 아니, 그 미친 작자에게 우리와 똑같은 청을 올리려는 건 아니겠지!?]

"...맞습니다만."

[뭐! 네가 어떻게 그 미치광이를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 아니, 하도 유명한 인간이니 모르기 힘들겠지 그래.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충고하건데, 그 정신이상자한테는 접근도 하지 말아라!]

"예...?"

나는 의아하게 되물었다.

지난 삶에서 만났을 때는 내가 오기조원의 무인이라는 것을 알자 꽤 호감가게 대해줬던 것이 생각이 났다.

심지어 의식공법인 은식술까지 선물받지 않았던가?

그러나, 백골귀마 역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내게 충고를 하였다.

[괴군은 알고 있으면서 그가 뭐하는 작자인지는 들어보지 못한 것이야? 그 작자는 가끔은 멀쩡해 보여도, 수시로 광증(狂症)이 도지고 발작을 하는 미치광이야. 그 어떤 마도(魔道) 종문이나 세가의 수도자들보다도 그 자가 더 소름끼치고 무시무시하다.

혹여 그에 대한 멀쩡한 기록 같은 걸 읽고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 미치광이가 멀쩡한 시기는 애초에 별로 많지 않고, 대부분 미쳐있으니 상대를 하지 말아라!]

창호자 역시 내게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하였다.

"너는 심지어 오기조원의 무림인이라 하지 않았더냐? 그 자가 무림인에게 보이는 기묘한 집착은 유명하지. 젊은 시절 연인이었던 무림인이 오기조원이었더랬나? 자기 연인이 죽은 후부터, 그 미친 작자는 무림인들을 잡아들여 산채로 개조해 꼭두각시로 만들기로 유명했다!

충고컨데, 절대 그 작자에게 다가가지도 말아라! 너는 괴군에게 잡혀서 생체괴뢰로 개조(改造) 당할 수도 있어!"

"......"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여하튼, 삶을 함부로 버리고 싶지 않다면, 그와 말도 섞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나타났을 때 바로 숨어서 들키지 않게 빌어야 할 것이다! 내 말을 명심하거라!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은 말고 청문세가의 추천권을 줄 테니 그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멍하니 창호자에게 추천권을 받았고, 창호자는 몇 번이나 더 꼽추 노인, 괴군이라는 자와 마주해서는 아니된다고 경고를 한 후 떠나가 버렸다.

'...도대체 뭐지, 그 자는?'

난 나름 멀쩡해 보였던 꼽추 노인을 떠올리며, 심히 마음 속으로 갈등이 이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 이전에...'

나는 내가 벽라국어로 수도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광경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바라보던 김연 주임을 바라보며 고민하였다.

'김 주임을...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저 자들의 말대로라면 김연 주임이 괴군이라는 노인에게 잡혀가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어찌 막아도 김 주임은 그 거대한 의식을 각성할 것이고, 괴군이 잡으러 올 터...'

천인기 수도자의 힘은, 의식을 제대로 가지고 수도법술에 대한 이해가 생긴 지금에서야 이해가 가능했다.

생각만으로 천지영기가 자연스레 감응한다.

그런 괴물들을 어찌 상대한다는 말인가.

비유가 아니라, 그들은 실제로 연국을 일격에 나라째로 가루로 만들어버릴 수 있으리라.

* * *

걱정과 불안이 교차하는 가운데.

다시금 오혜서 대리가 호풍환우의 힘을 각성했다.

그리고 해룡왕 서휼이 그 힘의 발원지를 느끼고, 그녀를 데리러 왔다.

나는 그녀를 데리러 온 서휼에게 무릎을 꿇고 질문을 하였다.

"해룡왕께 미천한 범인이 질문을 올리고자 합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질문을 받아주소서..."

[흠, 마음대로 하게나.]

"혹여, 해룡왕께선 괴군이라는 수도자 분을 아십니까?"

그러자, 지금까지 한 번도 근엄함과 점잖은 표정을 잃지 않았던 해룡왕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 찢어죽일 미치광.. 흠흠. 그 정신이상자는 뭣 때문에 물어본 건가?]

"......"

이로써 확실해졌다.

꼽추 노인.

괴군이라는 자는, 모든 이들이 꺼리는 확실한 미친 놈인 것이다.

'그 점잖던 해룡왕이 이런 반응이라니...'

"...괴군이라는 분이 어떤 짓을 하셨길래 그리 다들 좋아하시지 않는지 알고싶습니다."

[그 자식에 대한 존칭은 집어치우게. 그 정신이상자는 매우 변태적인 교미욕구를 가지고 있어, 자기 괴뢰에다가 박는 자이지. 천인경쯤 되면 1000년 이상 살아왔기에 다들 한 부분쯤 정신에 이상이 있지만...

괴군은 한 부분만 빼고 모든 정신이 이상이 있는 자일세. 절대 상대하거나, 말을 섞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네! 그 자가 자기와 말을 섞은 이를 놓아주는 경우는 매우 기분이 좋거나,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이고.

보통 그 미치광이는 자기와 한번 이상 말을 섞은 자는 잡아다가 생체괴뢰로 개조해 버리기로 유명하지.]

"......"

나는 그에, 할 말을 잃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지금까지 나는 굉장히 운이 좋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운이 아니라 그 자가 김연 주임을 제자로 맞아서 매우 기분이 좋았던 건가..?'

하기사, 생각해보면 다른 이들은 성정이 흉포하다고 해도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고 갔지만.

괴군이라는 노인은 김연 주임에게 속세와 연을 끊느니 뭐니 하며, 늘 나와 김영훈을 죽이려 했었다.

'늘 김 주임이 말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매번 죽었겠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는 미치광이였다.

그리고, 그런 미치광이에게 김 주임이 납치당하게 두는 것은... 너무 잔인한 처사였다.

털썩!

나는 해룡왕께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해룡왕께 부탁드리나이다... 부디, 여기 김연이라는 여인 역시 해룡왕의 제자, 혹은 혈족으로 받아주소서..!"

[...뭐라? 본왕이 왜 그래야 하지?]

괴군의 얘기로 잠시 흥분하는 듯 하던 서휼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내게 되물었다.

나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우리는 이계인이며, 각자 이 세계로 오며 특이한 능력을 손에 넣었으며.

김연 주임은 천인경을 뛰어넘는 크기의 의식을 얼마 지나지 않아 각성할 예정이고.

그 자질을 괴군이 탐내어 그녀를 제자로 잡아갈 것 같다고.

[흐음... 사정을 듣게되니 딱하군. 괴군의 눈에 들다니...]

하지만 아무래도 해룡왕은 우리가 갑작스레 이계로 떨어졌다는 얘기보다는, 괴군이 김 주임에게 눈독을 들인다는 말이 더 딱한 듯 했다.

[그런데, 자네는 그런 걸 어찌 아는 거지?]

"...이것이 제가 얻게 된 능력입니다."

[흠, 예언 같은 것인가? 혹여, 자네도 데려가 달라는 말은 사절하겠네. 경지에 이른 이들은 운명에 대한 감이 생겨, 앞날에 대해 대략적으로 아니까. 예언 능력만큼 쓸모없는 것이 없거든.]

"...전 상관이 없나이다. 부디 해룡왕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그녀를 데려가주십시오."

[흠...]

서휼은 잠시 고민을 하는 듯 싶더니 말했다.

[본왕으로서도 한 명을 더 데려가는 것은 큰 부담이네. 사실 이 처자를 데려가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지만, 그녀의 능력이 본 종족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데려가려는 것이고...

거기에 한명을 더 데려가라니...]

"......"

[하지만, 괴군에게 어떤 꼴을 당할지가 너무 걱정되고, 또 자네가 말한대로라면 그녀의 의식은 썩 쓸모가 있겠지...]

그는 얼마간 고민하는 듯 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생각해보니, 자네가 말한 게 거짓일 가능성도 있지 않나? 저 처자가 아무런 능력도 각성하지 못한다면, 나로서는 아무런 매력이 없는데...]

"...하면, 해룡왕께서 제가 거짓을 말했다고 판단되시면 저를 씹어 잡수셔도 됩나다, 제 예지... 능력에 의하면, 그녀가 능력을 각성하는 것은 오늘 하루 안쪽이니, 그때까지만 확인하면 될 것입니다."

[흠...]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싶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 자네의 말이 거짓일 경우, 난 그녀를 그냥 승천문 근처에 버리고 갈 예정이네. 어차피 자네가 말한 능력이 거짓이면 괴군이 눈독도 들이지 않을테니 상관이 없겠지. 하지만... 괴군의 능력은 너무 강대하여, 만약 그녀가 그 능력을 각성할 때 알아차린다면, 나도 어쩌면 당해내기 힘들 순 있겠지만...]

"...!"

[그래도 자네가 말한대로의 능력이라면 도움이 썩 될테니, 최대한 지켜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해룡왕이시여!"

말을 마친 해룡왕은 김연 주임에게 다가가 그녀의 팔목 역시 붙잡았다.

김연 주임은 무슨 일인지 몰라 깜짝 놀라며 발버둥쳤다.

[흠, 반항이 심하군. 잠시 자고 있으시게나.]

투웅-

해룡왕에게서 나긋한 의식파동이 뿜어졌고, 의식파동을 맞은 김연과 김영훈, 오혜서는 전부 정신을 잃고 잠에 들었다.

[...어쩌다보니 말을 많이 나누게 되었군. 인연이 이리 되었으니, 자네를 데려가진 못해도, 등선향 바깥으로 내보내줄수는 있네. 어떤가?]

우웅-

해룡왕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동굴 안쪽으로 공간균열이 벌어지며 시커먼 입을 벌렸다.

'...하긴, 김 주임이 해룡왕에게 간다면 괴군 노인이 굳이 이쪽으로 올 일도 없으니...'

난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일단 잠들어있는 김영훈에게 다가갔다.

그런 후, 법결을 맺었다.

내 의식과 그의 상단전이 연결되었다.

난 그의; 이마를 짚고, 지난 삶, 스승님이 내게 지식을 넘겨주었던 법술을 사용하였다.

김영훈의 뇌리로 연국어와 벽라국어, 그리고 성제국어 약간의 지식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단맥도법과 단악검법, 기타 등등의 무공.

월수궁무록과 조수월무록, 월수월무록, 월도월무록 등의, 지난 삶의 김영훈이 쌓아올렸던 구결들을 불어넣었다.

'...이번 삶의 김 형은, 괜히 저와 연관되어 위기에 처하시지 마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김영훈의 뇌리에 막리세가의 잔혹무도한 짓과.

황제 막리정을 죽이면 막리세가의 무도한 짓이 조금 줄어든다는 정보를 불어넣어 주었다.

김영훈이 황제 막리정을 죽이면, 진씨세가에서는 괜히 암살부대를 운용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제자들 또한 자연스럽게 진씨세가의 밑에서 일을 하는 일반인으로 돌아갈 터였다.

나는 김영훈에게 일단의 지식을 불어넣어준 후, 그를 들어 공간 균열에 집어넣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김 형."

이번 삶에서는 볼 일이 없을 것이다.

[호, 자네는 가지 않겠는가?]

"...예."

나는 등선향의 공기를 들이마시었다.

등선향 바깥.

연국이나 벽라국보다, 몇 배는 더 농밀한 천지영기가, 이곳에 즐비했다.

어차피 바깥으로 나가도, 연기기 7성을 뚫지 못하는 건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번 삶은 등선향 안쪽에서, 이 농밀한 영기 속에서 수련을 하며.

끊임없이 하늘에게 제의를 치룰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스승님이 내게 불어넣어준, 연기기 후반의 깨달음들, 축기기 공법을... 무의미하게 만들쏘냐?'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지겨워 미쳐버릴 때까지.

이번 생을 다 바쳐서라도, 하늘에게 허락을 구해낼 것이다.

등선향은 영기가 훨씬 짙으니, 어쩌면 조금은 다른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소인은 등선향에서 머물고 싶습니다."

[흠... 등선향의 영기 속에서 수행을 하겠다는 건가? 나쁘지는 않군. 하지만 이곳은 최소 원영기 수도자가 아니면 들어오기도 힘든 곳이고. 천인경 수도자들이 재료로 쓴답시고, 등선향의 축기, 결단 이상의 생령은 모조리 잡아갔으니... 자네는 이곳에서 수련한다면 몇십년동안 엄청난 고독 속에서 머물게 될 텐데?]

"...그 정도는 각오했습니다."

[뭐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행운을 빈다네.]

서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간균열을 다시 닫아버리고, 김연과 오혜서를 안고 동굴 바깥으로 나섰다.

번쩍!

푸른 빛이 눈 앞을 뒤덮었고, 잠시 후 저 하늘로 한 마리의 청룡이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동굴 바깥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번 삶은, 등선향에서 끊임없이 하늘에 허락을 구할 것이다.

50 평생을 끊임없이 제의에 바친다면, 하늘도 감히 나를 허락하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스승님, 이 제자...'

반드시 당신이 준 지식을 헛되지 않게 할 것입니다!

난 이번 삶에서의 맹세를 다지며,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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