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50화 (50/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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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목(巨木)

"억지 부리기는! 무어라 해도 당신이 진가와 막리가의 땅인 연국에 침입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내 친히 네놈을 심판해주마!"

"심판..? 천둥벌거숭이가 감히... 누가 누구를 심판한다는 것이야. 말하지 않았느냐. 용맥이 이곳에 드리운 이상 이곳은 삼가의 땅이다.

용맥과 진법, 기초법결에 한해서는 벽라국, 연국, 성제국을 전부 합쳐도 나, 청문령만한 이가 없거늘. 네놈이 뭘 안다고 나불대는게냐."

"하! 억지는... 그래. 청문령. 그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긴 하지."

막리준이 이죽이며 말을 이었다.

"축기기 수사 중. 3대 위인이 있는데, 연단의 막리운련. 법기의 공묘천색. 진도와 기초법술에 청문령이라지? 한때 당신이 뭣 하는 위인인가 싶어 알아본 적이 있다.

감히 웬 놈들이기에 본가의 운련 노야와 비견되는지. 공묘천색은 천박한 자이나, 실력만은 확실하다던데.

당신은 몇백년을 수련해놓고 아직도 축기 초기더군. 그조차 기(箕)가 아닌 미(尾)의 단계? 얼마나 아둔하고 멍청하고 게으르면 축기 초기조차 극성에 달하지 못했단 건가?"

녀석이 낄낄 웃으며 살기를 드러냈다.

"그 스승에 딱 그 제자로군. 청문세가 본가에는 왠 밥만 축내는 식충이가 도움도 안 되는 기초법술, 선각후통이니 뭐니나 연구하며 눌러앉았다고 하던데. 그런 식충이에게 가르침을 청한 저 놈도 멍청하고, 아둔하고, 게으르며. 또한 쓰레기 같은 놈일 것이 분명하구나.

이곳이 이제 삼가의 땅이라고? 그럼 당신을 죽이면 다시 용맥이 물러가며 본가의 땅이 되겠군."

쿠구구구구!

그의 머리 위로 먹장구름이 움틀거렸다.

음기가 그에게서 충천하며, 사방을 물들였다.

나는 그 먹장구름을 바라보았다.

먹구름.

하늘을 막는 장막.

하늘이, 나를 거부하였다는 의지.

"...스승님."

"말하거라."

"제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스승님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일단은 내 말을 들어보겠다는 듯, 잠시 침묵하였다.

"하지만... 스승님. 제자는 스승님의 실력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축기기 수도자와 부딪혀보며, 더더욱 확실히 알았나이다."

비틀, 비틀...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스승님에게 다가갔다.

"스승님은 비록 축기 초기이시지만, 저 자는 충분히 이기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말은... 스승님이 해온 것은, 의미가 없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까?

스승님께서 노력해온 세월의 가치가, 의미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스승님. 제자는 이 수명이 거의 닳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감히 스승께 청하겠습니다."

털썩..

나는 그의 뒤로 무릎을 꿇으며, 청하였다.

"제자에게 주었던 가르침이... 당신이 평생을 고련해온 모든 것이,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부디 저 무뢰배 놈이, 스승님께 막말을 한 것을... 후회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은 저런 말을 들어서는 아니되지 않습니까."

"...그래."

스승님이, 드디어 등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한번 안아준 후 내 손을 잡았다.

자글자글하고, 굳은살이 잔뜩 배긴.

평생의 고련(苦練)이 담긴 늙은 살갗이 느껴졌다.

"진즉 그럴 예정이었다. 제자야."

쿠우우!

하늘에서 운룡이 우리에게 떨어져 왔다.

"신파는 죽어서 실컷 하거라!"

번쩍!

퍼엉!

그리고, 스승님이 손을 들어올리자, 운룡이 그대로 터져나갔다.

스승님은 등을 다시 돌리고, 막리준을 노려보며 말하였다.

"우선, 네놈의 헛소리엔 정정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구나."

쿠구구구!

스승님의 주변으로 다시금 녹빛의 영기가 뿜어져 나왔다.

목(木) 속성의 영력이었다.

"우선, 첫째. 나는 네가 말한대로 아둔하고, 멍청하고, 게으른 식충이가 맞다. 하지만... 내 제자는 아둔한 녀석이 아니다. 아둔한 녀석들은 자신들이 타고난 자질을 가지고도 노력을 게을리하는 멍청한 놈들이지."

수목(樹木)의 영력(靈力)이 움직이며 스승님의 주변으로 진도(陣圖)를 그렸다.

"둘째, 내 제자는 멍청하지 않다. 자질이 조금 좋지 않을 뿐, 멍청한 이가 어찌 무공을 익혀 영통을 뚫겠느냐."

대지가 녹빛으로 꽉 차올랐다.

그리고, 대지 곳곳에서 빛무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셋째, 내 제자는 게으르지 않다. 목이 쉴 정도로 진언을 연습하고,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수결을 연습했다. 그 와중에도 자기 특기인 어검을 끊임없이 연습했다. 이 녀석은 절대 게으르지 않다."

녹빛의 영력들이 곳곳에서 뭉치며, 대지에 영력으로 이뤄진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반경 10장이 스승님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가며, 대지 곳곳에서 무수한 영기의 싹이 돋아간다.

하늘의 어둠이 대지에서 피어나는 빛에 밀려가는 듯 했다.

"넷째, 내 제자는 쓰레기가 아니다. 좋은 자질을 타고난 본가의 똥오줌 못 가리는 자제들보다도 훨씬 노력하고 노력하며 스승인 나를 공경하였다. 이런 녀석이 쓰레기라면 이 세상 누가 쓰레기가 아니란 말이냐."

"하, 누가 식충이 아니랄까봐 같은 식충이인 제자를 열심히 변호하는구나."

"다섯째..."

파아아아-

스승님의 주변으로 영기로 이뤄진 녹빛의 나무들이 생장하였다.

영력으로 이뤄진 수림(樹林)이 새로 생겨나고 있었다.

"너는 나를 식충이라고 무시하는 것 같지만... 본 청문세가는 오직 좆대가리를 놀려 얻는 혈통으로만 서열을 정하지 않는다.

청문가는 투도(鬪道)를 숭앙하는 가문이며. 몇 년에 한번씩 열리는 투선회(鬪仙會)로 하여금 가원들의 서열들을 정한다. 서열이 낮은 이는 가문 바깥 영지로 밀려나가고, 서열이 높은 이는 본가에서 머무를 권한이 주어진다. 그리고... 나는 근 150년간 본가에서 머무르며 법술 연구를 이어갔다."

"...그게 어쨌단 거냐. 네놈은 그래봤자 축기기 제 1수(宿). 축기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나는 축기기 제 2수(宿)! 축기 중기이다. 거기에 막리군 숙부께서 저 진가 외당장로 놈을 제압하신다면 축기 제 3수(宿)의 경지에 오른 수도자 역시 합세할 터. 넌 절대 이길 수 없다!"

"여섯째."

번쩍!

대지를 채운 영기의 수림이, 급작스럽게 거대화하기 시작하였다.

쿠구구구구!

"내가 평생을 다해 온 선각후통(先覺後通)은. 내가 제자에게 가르친 가르침은... 결코 틀리지 아니하였다!"

수많은 수목이 합쳐져, 하늘에 닿을 듯한 거대한 거목(巨木)이 되었다.

"제자야, 나는 부족한 스승이었다. 그렇기에 네게 뭔가를 해 준 것도, 해 줄 수도 없었다. 그저... 내가 네게 가르친 것이, 네가 배워온 그 모든 것이..."

쿠오오오!

운룡이 뭉치며 거목을 향해 포효한다.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결코 의미가 없지 않았음을... 단지 그것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구나.

제자야... 너는, 그리고 나는.

우리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거목(巨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그걸 증명해주마."

콰과과과!

거목의 가지가 뻗어나간다.

갑작스레 하늘로 뻗쳐간 나뭇가지에서 또 가시 잔가지들이 뻗어나오며, 운룡을 가둬버렸다.

'지수(地囚) 진언의 원리..? 아니, 저건...'

나는 문득, 거목을 자세히 바라보며 경악하였다.

거목은 단순한 영기의 덩어리가 아니었다.

수백, 수천, 아니... 수천만은 물론이고 수억에 달하는 무수한 진언(眞言)과 주문(呪文)들이 거목을 이루고 있었다.

가히 헤아릴 수 없는 주술문자들이 거목을 이루었다.

그리고, 동시에 거목으로부터 법술(法術)들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빛의 폭류(瀑流)가 휘몰아친다.

거목에서부터 발사되는 수천 수만개의 법술들이 하늘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먹장구름이 찢어지며 사이사이로 별빛을 드리우는 밤하늘이 비춘다.

"크윽, 이 무슨..."

"선각후통이니, 선통후각이니 하며 많은 이들이 떠들어대지. 마치 그 둘이 동등한 것마냥 말이다... 선통후각. 말은 멋져 보이지만 그저 타고난 자질에 기대어 편히 경지를 높인다는 걸 고급스레 표현하는 게 아니더냐!"

막리준이 황급히 법술과 신통을 사용하였다.

음기가 응집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목이 빛을 발한다.

스승님은 거목의 위에서 눈에 차마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빠르게 수결을 맺으며 외쳤다.

"손에 피고름이 맺힐 정도로 진언과 법결, 수인을 맺으며 간신히 도달하는 것. 그것이 선각후통이다. 그저 지성없이 높은 경지에 기댄 본능만으로 법술을 사용하는 네놈들과,

모든 법술을 꿰고 간신히 그를 바탕으로 경지에 오르는, 모든 선각후통의 수도자들이, 감히 동일선상일 듯 싶으냐!!!"

거목의 법술과, 먹장구름의 신통이 몇 번이고 부딪힌다.

그럴때마다 공기가 진동하고, 영기의 파동이 천지간을 휩쓸었다.

"선각후통으로 경지에 오른 나는, 동 경지라면 압도(壓倒)할 자신이 있다!"

거목이 한 번 먹장구름과 부딪힐때마다.

점차 거목의 생김새가 변하기 시작했다.

거목은 점차 사람의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거대한 목인(木人)이 팔을 휘두른다.

하늘에서 음기로 뭉쳐진 운룡(雲龍)이 아래로 쇄도한다.

쩌어엉!

광풍이 휘몰아치며, 구름이 둥글게 파문을 그렸다.

막리준이 만들어낸 운룡이 찢어지며, 목인이 더욱 더 또렷한 형상으로 변화하였다.

목인(木人)은, 스승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깊고 깊은 뿌리를 대지에 박고, 하늘에 닿을 듯한 모습을 취한 거인(巨人).

그것이, 스승님이었다.

스승님은 거목(巨木)이었다.

두근, 두근...

아아, 아름답다.

동시에, 나는 심장이 기묘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내가 죽을 날.

죽을 시가 다가온다.

'살 수 없는가.'

아직 스승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눈에 채 다 담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찌 벌써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

억울하다.

'하늘이시여, 내게 준 것은 없으면서도, 어찌 이리 야속하게 시간을 지켜 내 명을 앗아가려 하십니까...'

두근, 두근..!

그리고, 나는 갑작스레 내 심장이 이상현상을 보이는 것을 알아챘다.

'심장마비...!'

몸은 오기조원에 이르러 환골탈태를 하였기에 아직 생명력이 팔팔했고.

내장이 조금 으스러지긴 했지만 아직은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늘이 어찌 나를 죽일 것인지 궁금했으나.

내 이번 사인은 급사(急死)인 듯 했다.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나는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조금이라도 더 스승님의 분전을 눈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스승님. 이 못난 제자는...'

문득, 나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께서는 저리 나를 위해 열심히 분전하는데.

나는 뭐란 말인가.

단순한 천명(天命).

그것 때문에 스승님이 내게 주는 마지막 선물을, 전부 받지도 못하고 가야한다는 말인가!

정말로, 인간은 천명을 거스를 수 없단 말인가!

'아니, 아니야!'

그럼 수도자는 뭐란 말인가!

막리세가 놈들이 만드는 단약은 뭐란 말인가!

'쓰레기 같은 단약으로도 수명을 늘리는 것이 가능할진데... 나는! 정녕 이 수명에 그대로 굴복해야한단 말인가!!!'

그럴 순 없다.

죽을 때 죽더라도.

오늘 이 장면만은.

스승님이 마지막까지 분전하는 이 모습만은!

이 두 눈에 새기고 가겠다!

파아아앗!

내 손에 강기(罡氣)가 서렸다.

축기기 수도자들은 정순지력이라고 부르는 힘.

나는, 그대로 강기를 머금은 손을 내 가슴으로 가져가, 우악스레 심장으로 강기를 밀어넣었다.

"끄으으으으읍!"

고통스럽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하나, 강기가 주는 자극에, 심장은 그대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하늘이여! 어쩔 텐가! 내 심장은 다시 뛴다!'

나는, 지금 죽지 않을 것이다!

쿠구구구!

갑자기 내 뒤편에 있던 나무가 부러지더니, 내 쪽을 향해 쓰러졌다.

"끄읍..!"

나는 고통을 호소하는 심장을 무시하고, 몸을 굴려 가까스로 나무를 피했다.

콰악!

"...!"

손을 땅에 집자, 갑작스레 땅굴에서 뱀이 나타나 내 손끝을 물었다.

뱀의 무늬로 보아 강력한 독사였다.

'죽을 인간은, 반드시 제 명에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

어림없다.

이대로... 죽을쏘냐!

치이이익!

나는 내공을 조종해 혈류에 침입한 독기를 전부 몰아내어 손끝으로 뿜어내었다.

두근, 두근, 두근!

그리고, 몇 가지 방법으로도 내가 죽지 않자.

하늘은 다시 내 심장을 멈추었다.

하지만 나는 강기를 흘려넣어, 끊임없이 심장을 자극했다.

'심장이... 말을 안 듣는다..!'

심장은 이제, 강기의 자극이 없으면 아예 뛰려고 하지를 않았다.

내가 한순간이라도 고통스러운 강기의 자극을 멈추면 바로 멈춰버릴 터였다.

하지만!

'지금이다!'

두근!

심장이 뛴다.

이 날, 이 시, 이 때.

지금 이 순간!

나는 죽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다!'

강기로 심장을 자극하며 억지로!

비록 내공이 전부 소진되면 그대로 죽겠지만...

난 아직도, 아직도 이대로 살아있었다.

'하늘이여... 난 살았다. 비록 얼마 후 죽겠지만... 이 순간만은 눈에 담고 죽겠다!'

나는 심장이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을 계속 견디면서도, 계속 스승님의 분전을 눈에 담았다.

거목은 점차 스승님을 완전하게 닮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번쩍!

거목의 모습이 완벽하게 스승님의 형상으로 화하였다.

"내 진도(陣圖)가 완결되었다."

그리고, 스승님의 형상으로 변한 거목이,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파아아앗!

거대한 목인은, 그 크기에 맞지 않게 어마어마한 속도로 수결을 맺는다.

스승님이 평소에 수결을 맺는 속도와 비슷하다.

그리고, 목인의 주변으로, 어마어마하게 거대해진 법술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 무슨... 그게 끝이 아니었다고...!"

쿠구구구!

다시금 수천개의 법술들이.

이번에는 거대해진 상태로 막리준에게 날아든다.

그가 필살기마냥 펼쳐대는 운룡의 술법들 하나가, 거대한 목인이 사용하는 기초법술에 고작 맞먹을 뿐.

절대 뛰어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휘광이 번뜩이며, 스승님의 술법으로 불려나온 거대한 목인의 주변으로, 그 크기에 비례하는 진도(陣圖)가 깔리기 시작했다.

인근의 산(山) 전체가 그 진도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간다.

"이, 이게 뭐야... 이 법술 범위는, 결단기가 아닌가...!"

"활(活)!"

스승님이 결인을 맺자, 목인도 결인을 맺었다.

동시에, 그 주변으로 아까와 같이 영기의 싹이 돋아나더니, 거목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다시 거목들이 합쳐지며, 그대로 하늘로 치솟았다.

거목(巨木)이 구름을 뚫는다.

푸확!

"배(排)!"

동시에, 까마뜩한 높이의 거목에서 거대한 항력(抗力)이 느껴지는 듯 하더니, 원형으로 막리준의 먹장구름을 찢어발겼다.

먹장구름에 가려져있던 아름다운 별하늘이 모습을 드러낸다.

"결(結)!"

동시에, 거목의 가지 끝에서 새순이 돋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었다.

열매는 마치 별과 같이 빛나고 있었다.

대지에서 자라난 작은 새순들이, 어느새 저 하늘의 별과도 같은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거(去)!"

그리고, 열매가 떨어진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열매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법술들의 응집체라는 것을!

"아, 아아아..."

막리준은 아연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떨어져내리는 열매들의 세례를 보며 알수 없는 침음성을 흘리고 있었다.

콰과과광!!

빛의 폭풍이 몰아쳤다.

거대한 원구 형태의 폭발이 일어났고, 그게 끝이었다.

그 폭발의 안쪽에는, 막리준은 물론이고 그의 저물대나 옷가지조차 흔적도 없이 소멸해 있었다.

"거(去)!"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남은 열매들이, 둥실둥실 떠오르더니, 저 멀리서 분전을 벌이고 있는 막리세가의 축기 후기 수도자.

막리군에게 날아간다.

"무, 무슨...!"

콰아아앙!

막리군이 손짓을 하자, 거대한 녹류의 파도가 일며 열매를 막아내는 듯 했으나.

그 틈을 타 그에게 날아든 김영훈이 강환을 뿜어냈다.

"아, 안..."

그리고, 찰나.

김영훈이 쏘아보낸 한 자락의 강환에, 막리군은 그대로 심장을 관통당해버리고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남아있는 열매들 몇몇이 그가 떨어진 곳을 향해 더 떨어졌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그 주변을 휩쓴다.

두근, 두근...

그리고, 하늘을 뚫을 듯이 높이 치솟아 있었던 스승님의 술법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동시에, 나는 내 내공이 거의 다 닳았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스승께, 마지막 인사는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내공이고 법력이고 전부 끌어올려 강기로 변환시키며, 심장을 억지로 뛰게 만든다.

기혈이 꼬이고 단전이 만신창이가 되어갔으나, 나는 피를 토하면서도 스승님을 맞이하였다.

다시 땅으로 내려온 스승님의 안색은 파리하였다.

"...조금 무리하긴 했지만. 네게 보여줄 것은 다 보여주었다."

난 그의 안색을 보며 물었다.

"진원을... 소모하셨군요."

"흥! 저런 놈 정도는 장기전으로 가면 피를 말려 죽일 자신이 있었다. 목인의 술법을 완성하고 그 상태에서 두 번째 변형을 시도하는 게 아닌 기초법술 폭격을 해 줬다면 충분히 안정적으로 이겼다. 다만 네놈이 못 버틸 것 같았기에 일부러 빨리 끝내느라 그런 것 뿐이다."

"하하... 감사합니다, 스승님."

"......"

두근, 두근...

"...제자야, 너는 내 자랑이었다. 가문의 자제들이 내게 가르침을 청하긴 했으나. 그 중 한 놈도 내 독설과 잔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

하지만... 너는 끝까지 악착같이 남아 내 선각후통의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스승님은 내게 걸어와, 내 어깨를 잡고, 한 손으로 내 이마를 짚었다.

"이것밖에 해 주지 못하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네가 배우지 못한 법결을 네게 주는 것 뿐이다..."

우우웅!

뇌리로, 지식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서로의 의식에 간섭해서 바로 지식을 흘려넣는 법술이었다.

내 뇌리로, 스승님이 방금 사용한 신통술과, 그가 익힌 축기기 공법의 내용이 흘러들어왔다.

"곧 죽을 제자에게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이게 내 마음이구나. 짐이 아니라면 받아다오."

"...스승의.. 은혜가."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찌, 제게 짐이겠습니까."

저 멀리.

밤이 지나고 동이 트고 있었다.

결국 나는 질긴 집념으로, 심장을 강제로 움직이며.

내 수명보다 무려 하루나 더 살았다!

무려 하루나!

하지만 이젠 그것도 끝인듯.

내 내공과 법력이 모두 닳은 상태였다.

이제 끝이다.

새벽의 햇살이 산 너머로 비춰온다.

두근....

이젠 정말 끝.

'...하지만, 제자로서, 이리 끝낼 수는 없다.'

스승에게 받기만 하고 감사 인사조차 올리지 못한다면.

어찌 참된 제자라 할 수 있으리오!

콰앙!

내공은 전부 다 닳아 없어졌지만.

난 주먹으로 억세게 가슴을 후려쳤다.

가슴에 주먹 자국이 패였다.

내 주먹질에, 다시 멈추려 하는 심장이 다시 강제로 뛴다.

콰앙, 콰앙, 콰앙!

'어차피 죽을 것, 조금 더 아프게 죽자.'

스승님은 내가 무얼 하려는 지 알았는지,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나는 가부좌를 튼 스승님께, 절을 올렸다.

한번, 두번, 세번...

다시 심장이 멈췄으나, 나는 다시금 가슴이 패일 정도로 가슴을 두들겨 강제로 심장을 움직였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뚝, 뚝...

왜 먹구름이 사라졌는데도 주변이 검푸른 빛인가.

왜 아직도 비가 내리는 것인가.

'아, 먹구름이 아니군.'

스승의 슬픔이며, 스승의 눈물이었다.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구배지례를 올렸다.

구배지례는 본디 스승에게 올리는 아홉 번의 절이 아닌.

아홉 가지의 절하는 방식을 뜻한다.

무협지에서 시작되어 왜곡된 이 사제의 예.

그러나, 비록 왜곡된 예법일지언정.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아홉 번조차 부족했다.

예법에 근본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 마음을 표하기에 족하면 그것으로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열 번의 절을 올린 나는, 쉰소리로 스승께 인사를 올렸다.

"지금까지, 더할 나위 없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안녕히 계십시오."

"...오냐. 잘 가거라."

물이 떨어진다.

스승님의 얼굴에서 떨어지는 줄 알았더니, 내 눈에서도 떨어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쉬어라, 사랑하는 제자야."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 * *

새벽빛이 하늘을 물들인 와중.

제자의 절을 받은 스승은, 눈물을 흘리며, 이젠 차게 식어가는 제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내 마음의 거목(巨木)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귀찮게 구는 작은 싹이었으나.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고.

싹은 자라나, 나무가 되고.

자라나고 자라나.

이젠 무시할 수 없는 거목이 되었다.

그 거목은 청문령의 마음을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거목은 없었다.

"편히 쉬어라."

평생을 노력해온 제자.

청문령은 제자가 사후에나마 편하기를 빌어주며, 절을 한 채로 죽은 제자의 시신을 제대로 눕혔다.

청문령은 저물대에서 한 씨앗을 꺼내 제자의 가슴 위에 얹었다.

그가 목 속성의 법력을 불어넣자, 씨앗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파아아앗!

쿠구구구!

씨앗이 싹을 틔우며, 빠르게 자라난다.

이윽고 씨앗에서 나온 뿌리가 제자의 몸을 뒤덮으며, 거목(巨木)이 되어 자라났다.

어느새 인근 숲에서 그 어떤 나무들과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무가 거대하게 자라나자, 그제야 청문령은 손을 떼었다.

나무는 모과나무.

청문령은 제자와 똑 닮은 그 나무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너를 잊지 않으마."

휘이이잉!

직후, 서은현의 영혼이 승천하기라도 하는 듯, 모과나무의 밑동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와 하늘로 올라갔다.

청문령은 모과나뭇가지 사이로 비추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것이, 서은현의 일곱번째 회귀(回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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