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45화 (45/185)

────────────────────────────────────

연기기(練氣氣)(4)

"흠, 네가 그 오기조원의 무림인이라는 녀석이냐?"

청문령은, 나를 처음 만나고는 콧웃음을 쳤다.

"무림인들은 하나같이 다들 비슷비슷하지. 무식한 놈들이 대다수야. 네가 감히 내가 연구하는 진언과 법결들에 대한 이해를 따라올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은 무슨. 사람은 죄다 타고난 주제란 게 있다. 네 주제를 잘 알고 적당히 처신해라. 난 딱히 제자 같은 건 필요 없다만, 네가 진씨세가에서 청문세가의 체면치레를 했다고 가주님께서 명하시니 어쩔 수 없이 받은 것 뿐이다."

그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책자를 한 권 던져주었다.

"연기기 1성. 칠십이지살의 단계에 있는 모양인데. 거기에 활성화한 영맥도 지괴영맥 하나밖에 없는 모양이고. 난 너 같은 모지리는 제대로 가르칠 생각 없으니, 거기 적힌 거나 보고 익혀라."

책자의 제목은 칠십이지살령언해(七十二地煞令言解)였다.

청문령(淸汶令)의 이름이 들어간 것으로 보아 그가 직접 작성한 칠십이지살진언의 깨달음들이 적혀있는 듯 했다.

책자를 던져준 청문령은 콧김을 내뿜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내게 경고를 주었다.

"참고로 말한다만, 네 녀석은 내가 방 안에 있을때는 절대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고, 밖에서 말하거라. 네놈의 얼굴을 보기도 귀찮으니!"

나는 짜증스럽게 경고하는 그에게 인사를 한 후 내 방으로 돌아가 책자를 읽었다.

비록 내 성취는 연기기 1성이었지만, 내 순수 전력은 연기기 14성 이상, 축기기 이하라는 사실이 알려진 터라.

내게 지원되는 수도자원들 역시 상당히 많아졌다.

한 달에 영석 30개를 지원받을 수 있었고, 청문세가 본가의 영맥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동시에 청문세가 본가의 서고 중 하급서고(下級書庫)를 이용할 권한도 생겼다.

거기에 내가 해야 하는 필수임무 역시, 한 달의 네 번이 아닌 한 달에 한번으로 줄었다.

물론 그만큼 임무의 난이도가 높아졌지만, 충분히 감당할만한 것들이었다.

나는 임무를 수행하여 공적치와 시간을 번 후.

방에 틀어박혀, 청문령이 준 칠십이지살령언해를 끊임없이 들여다보았다.

동시에, 끊임없이 칠십이지살진언을 외고, 수결 맺는 연습을 하였다.

간혹 답답할 때는 연국으로 건너가 김영훈에게 연락을 넣어 그와 무의 깨달음을 겨뤘고,

끊임없이 진언을 외고, 수결을 맺으며, 공법을 수행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 * *

'연기기 1성... 그 절반에 올랐다.'

칠십이지살진언 중 서른 여덟개를 깨치고, 서른 여덟 영맥을 활성화시켰다.

심지어 이조차 끊임없이 영석을 사용하며, 청문세가 본가의 용맥을 활용하며, 칠십이지살령언해를 보며 청문령에게 가르침을 받은 결과였다.

"...스승님. 지리성(地理星)의 진언이 뜻하는 바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런 멍청한 놈! 칠십이지살령언해까지 줬건만, 아직도 그조차 못 깨닫는 거냐! 이 아둔하고 속 터지는 놈 같으니!"

내가 방문 바깥에서 청문령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청문령은 욕설을 한 바가지로 내뱉으며 한동안 내게 잔소리를 하였다.

그러나 잔소리가 끝난 후, 청문령은 결국 내게 진언의 뜻을 풀어서 설명해주고, 자신의 주석을 알려주었다.

처음 1년 동안에는 아예 내가 물어도 답조차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그의 방문 앞에 앉아 가르침을 청하기를 일 년.

그는 결국 이를 부득부득 갈며, 나를 독한 놈이라 부르고는 욕설을 하면서도 내게 가르침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한 것이, 지리진언에 대한 내 해석이다. 이제 됐느냐? 이 아둔하고 독하기만 한 놈! 내 가주님의 명이 아니었다면 네놈을 진즉 일수에 쳐죽였을 것이야!"

"제자, 스승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물러가겠습니다."

나는 방문 너머에서 욕을 내뱉는 청문령에게 읍을 한 후,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가 진언을 읊고, 연구했다.

다른 청문세가의 자제들이 벽라국을 관광다닐 때에도.

다른 이들이 잠자며 쉴 때에도.

다른 이들이 서로 교류하며 즐겁게 지낼 때에도.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칠십이지살진언을 외고, 수결을 맺으며 깨달음을 갈구했다.

어느 날은 목이 말라 찻잔을 집었더니, 찻잔이 그대로 미끌어진 날도 있었다.

다행히 내 반응속도로 빠르게 다시 잡아 깨뜨리진 않았지만, 나는 왜 찻잔이 미끄러졌는지 알 수 있었다.

내 지문(指紋)이 지워진 것이었다.

수결(手結)을 매분, 매초, 매순간 쉬지않고 맺어댄 탓이었다.

밥 먹을 때조차 속으로 진언을 읊고 칠십이지살령언해를 볼 정도였으니.

물론 진언을 읊으면서도 나는 무공 역시 끊임없이 닦았다.

부웅, 붕, 붕!

검이 허공을 난다.

내가 잡고 휘두르는 것이 아닌, 그저 허공을 알아서 유영하며 날 뿐이었다.

월수월무록으로 이기어검을 사용하게 된 이후.

나는 끊임없이 월수월무록을 운용하며, 진언을 읊고 수결을 맺는 와중에도, 방 안에서 의식으로 검을 조종했다.

의식을 떼어내고, 의념으로 검에 행동을 입력하는 일도 익숙해지자, 이제 내 어검은 살아있는 것처럼 썩 자연스러워 졌다.

하지만, 아직도 오기조원은 넓고도 깊은 경지였으며.

나는 아직도 연기기 1성이었다.

* * *

하루는, 십주야간 연속으로 쉬지도 않고 이기어검과 칠십이지살진언, 그리고 수결을 맺어댄 탓인지.

손에서 피가 흘렀다.

말 그대로, 수결을 맺고, 맺고, 또 맺다 보니 살갗이 까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피가 난채로 계속 수결을 맺고 진언을 읊었다.

그래, 어찌 보면 '이제야' 피가 난 것이었다.

검을 잡고 휘두를 당시.

얼마나 이 손에서 피가 많이 흘렀는가.

얼마나 많이 손이 까지고 찢어졌는가.

그런데, 수도의 길에서는 이제야 손이 찢어진 것이었다.

뚝, 뚝...

나는 피가 떨어지자, 이기어검을 사용하는 동시에, 배운 법술들을 응용해서 방에 떨어진 핏자국들을 지웠다.

내공을 운용하며 지혈을 하고, 그 상태에서 계속 수결을 맺자, 상처는 결국 하루 정도 후 딱지가 앉았다.

그러나 딱지가 앉은 후에도 수결을 미친 듯이 맺는 탓인지, 손에 딱지가 다시 떨어져 다시 피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시간이 없었으니까.

둔재에게는.

자질이 부족한 자에게는.

모든 시간이 천금(千金)보다도 소중한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다시 5년이 흘렀다.

척, 척, 척, 척, 척...

"웅얼웅얼..."

나는 칠십이지살진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읊고, 수결을 맺었다.

그리고, 마지막 진언.

지구성(地狗星)에 대응하는 진언을 외웠을 때였다.

'드디어, 칠십이지살진언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마지막 영맥이 활성화되었다.

그와 함께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법력이 크게 늘어나며, 의식의 크기가 조금 더 커졌다.

"연기기(練氣期) 제이성(第二成)!!!"

드디어, 연기기 2성에 도달한 것이었다!

십 년에 걸려!

혀에 쥐가 날 정도로 진언을 읊고,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수결을 연습하며!

나는 기쁨에 차서 바로 청문령의 방 앞으로 달려가 말했다.

"스승님! 제자, 연기기 2성에 도달했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과 칠십이지살령언해를 통해, 칠십이지살진언을 전부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이 선각후통의 길을 열어주시지 않았으면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감사,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청문령의 방문 안쪽에서, 의념의 결이 조금 요동치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청문령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아니, 이런 병신 같은 놈을 보았나. 십년이나 걸려 이제 연기기 2성이 돼? 내, 도저히 안 되겠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이 내 제자라니. 이 빌어먹을 놈! 가주님께 말씀드려 네놈을 쫓아내고 말테다!"

"...어찌되었든, 스승님의 은혜에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자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딱히 청문세가의 가주가 내게 무어라 하는 일은 없었고, 청문령 역시 방 안에서 딱히 나오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오월입도경, 지월입도결을 읽으며 연기기 2성을 탐독했다.

"칠십이지살(七十二地煞) 다음은 삼십육천강(三十六天罡)이라..."

이제 삼십육천강법결을 읊고, 그에 대한 수결을 익히고 깨달아.

서른 여섯 가지의 영성(靈性)을 영맥 곳곳에 응집시켜야 했다.

나는 우선 바깥으로 나가, 삼십육천강법결 중 첫번째.

천괴성(天魁星)에 대응하는 법결을 읊고 수결을 맺었다.

쿠구구-

그러자, 천괴진언의 법결에 따라 눈 앞의 흙들이 떠오르더니 내 눈높이까지 올라와 토구(土球)의 형태로 뭉쳤다.

아마 지월입도가 아닌 수월입도, 화월입도였다면 수구(水球)나 화구(火球)의 법술이 만들어졌을 터.

그러나 아직 천괴성에 대응하는 영성도 제대로 응집시키지 못한 채 법결로만 법술을 사용한 탓인지.

흙덩이는 이내 우수수 무너지며 흩어져 버렸다.

'지살진언과 천강진언의 차이는, 지살진언은 체내 영맥에서 뻗어나온 기운이 주가 된다면. 천강진언은 체내 영맥에서 뻗어나온 법력이 천지영력과 섞이며 법술이 발휘되는군.'

나는 지살진언과 천강진언의 차이를 가늠하며, 천강진언 서른 여섯가지 종류를 전부 펼친 후.

그 다음에 청문령에게로 찾아갔다.

"스승님, 제자가 미욱하여, 천강법결에 대하여서도 스승님의 가르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흥! 이 빌어먹을 놈, 내가 가주님께 말씀드리기 전에 눈치껏 알아서 꺼질 것이지. 아직도 남아있었느냐. 아둔한 놈 같으니. 이걸 받아라."

청문령의 방문이 조금 열리더니, 문틈으로 한 권의 책자가 던져졌다.

책자의 제목은 삼십육천강령언해(三十六天罡令言解)로, 칠십이지살령언해와 마찬가지로 삼십육천강법결에 대한 청문령의 주석이 들어간 서적이었다.

나는 다시금 감사인사를 한 후.

다시금 삽십육천강법결을 공부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잠깐, 아둔한 놈아. 최근 소식을 아느냐?"

"예? 최근 소식이라니요..?"

"쯧쯧, 방에 틀어박힌 나도 아는데, 네놈은 아예 모르는구나. 아둔한 녀석. 최근들어 가주님과, 청문세가의 원로님들이 자리를 비우셨다."

"어인 일이시지요..?"

"흠, 듣자하니 벽라국 동쪽. 답천사막과 붙어있는 곳에 있는 부족들과, 벽라국의 도시 몇 개. 그리고 답천사막 쪽에 위치한 국가들. 그리고 답천사막 너머에 자리한 국가들의 도시.

그런 곳곳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대학살(大虐殺)이 벌어졌다고 하더구나. 나도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청문세가의 가주님과 결단기 원로분들은 물론이고,

진씨세가, 막리세가, 공묘세가, 벽씨세가... 그리고 기타 등등 수도가문의 결단기 수도자들이 모두 답천사막 쪽으로 향하셨다. 아무래도 심각한 일인 듯 하니 앞으로 청문세가가 조금 혼란스러워 질 수도 있을 터. 행동에 조심하거라."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주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방 안에서 수행만 하겠나이다."

"돌아오실 때까지는 무슨. 네놈이야 매 날 그러고 있지 않으냐. 그리고 가주님이 돌아오시면 반드시 청원해서 네놈을 쫓아버릴 것이니 그리 알거라."

나는 청문령에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가 법결을 외우며 삼십육천강령언해를 읽었다.

* * *

청문세가의 가주가 돌아온 것은, 6개월이 지나서였다.

그 날, 본가(本家)에 거하는 모든 청문세가의 원로, 장로, 직계는 물론이고 방계와 주요 외부 구성원들까지 전부 가주의 앞으로 모여 긴급회의가 열렸다.

나 역시 주요 외부 구성원 자격으로 긴급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전력이군...'

나는 청문세가의 대전을 꽉 채운 연기기, 축기기 수도자들과 그들이 내뿜는 영기의 압박.

그리고 의식의 크기를 보며 작게 탄성을 흘렸다.

이 정도라면 결단기 수도자를 빼더라도 능히 일국(一國)을 물리적으로 갈아버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리고, 6개월만에 돌아온 청문세가 가주, 청문중진(淸汶仲珍)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져 있었다.

"본 가주와 원로회가 오늘 이리 긴급회의를 결정한 것은, 근 이백년 안에 커다란 전쟁이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이, 이백년?'

나는 그 말도 안되는 시간 감각에 흠칫하며, 청문세가 가주의 말을 경청했다.

"자세한 사정은 밝히기 어렵지만, 오늘부로 청문세가는 이백년 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대전쟁에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오늘부터 직계, 방계에 대한 차별보다는, 이전보다도 더욱 더 실력 위주로 가문을 운영할 것이니라. 몇 년에 한 번씩 열렸던 투선회(鬪仙會)는 이제 반 년에 한번씩 개최할 것이다.

또한 청문씨들이 아닌 외부 구성원들 역시 1년에 한번씩 그들을 위한 대회를 개최해줄 것이니. 하나같이 자신들의 실력을 키우는 데에 열중하도록.

이제 원로와 장로들만 남고 나머지는 나가보라."

우리는 청문중진에게 인사를 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청문세가에서 친한 이들은 저들끼리 무슨 일인가 하며,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나는 방에서 수련만 하느라 아무도 친한 이들이 없었기에 혼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늦은 시간에서야 청문령이 처소로 돌아왔고, 나는 그에게 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스승님, 어인 일로 가주님께서 그런 예측을 하셨는지 알 수 있을지 묻고 싶습니다."

"...흥! 네가 뭘 그런 걸 궁금해 하느냐. 어차피 너나 나나 이백년 후까지 살아있지도 못할 텐데. 그냥 평소 하던대로 수련이나 하거라."

하긴, 그도 맞는 말이었다.

내 수명은 약 30, 40년 정도나 남은 정도였고.

그 정도를 살고 나면 죽을 터인데, 이백년 후를 결정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나 잘 하자.

"그나저나, 이 놈. 너 삼십육천강법결 중 몇 개나 깨쳤어? 지금 몇 개의 영성을 응집했느냐?"

"제자, 미욱하여 세 개의 영성만을 응집한 상황입니다."

"답답한 놈 같으니! 네놈 칠 주야 후까지 이 서책을 전부 읽어와라!"

드륵-

문 틈 너머로 또 한권의 서책이 떨어졌다.

책은 강명공록(罡明功錄)이라는 제목이었고, 삼십육천강법결에 대한 전반적인 주석을 담은 서책이었다.

삼십육천강령언해의 심화판인 듯 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나는 청문령에게 읍을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서책을 읽었다.

* * *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다.

12년.

나는 12년만에 삼십육천강법결을 전부 깨우치고, 서른 여섯 개의 영성(靈性)을 응집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칠십이지살영맥을 뼈대로, 삼십육천강영성이 붙어 전신세맥에 영성이 퍼트린다.

우우웅-

전신의 영맥과 영성을 통해, 천지영기가 빨려오며 법력이 더더욱 늘어난다.

동시에 영맥이 영성을 흡수하며 굵어지고, 튼튼해졌다.

22년에 걸쳐 연기기 2성(成)에 도달한 것이었다.

'휴, 쉽지 않군.'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내 방에 비치된 동경(銅鏡)을 바라보았다.

구리거울 안쪽으론 수염이 잔뜩 자란 내가 보였다.

물론 오기조원에 이르며 환골탈태한 덕인지, 도무지 주름살은 없었다.

아마 당장 수염을 깎기만 해도 이십대 중반 나이로 보일 터.

하지만, 나는 초조해지고 있었다.

이미 이번 삶은 상당히 많이 지나가고 있다.

이대로면 죽기 전에 연기기 4성은 도달할 수 있을까.

이 속도조차 내가 청문세가의 영맥을 이용하고 과분한 수련자원을 지원받으며, 청문령의 가르침을 집중적으로 받았기에 도달한 것이었다.

아마 일반 산수로 살았다면 연기기 1성을 완성하기까지 30년은 걸렸을 터였다.

지난 12년간.

청문령은 내 진도가 느릿느릿하게 나가는 것이,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던지.

결국 방문 너머에서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결국 방문을 열고 구체적으로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방 안으로 넘어가는 것은 금지됐지만, 그래도 얼굴을 마주보고 가르침을 받을 정도는 된 것이었다.

나는 서른 여섯개의 영맥이 응집된 것을 보며, 연기기 3성(成)으로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냉큼 청문령에게 달려가, 성취를 고하였다.

"스승님, 제자 연기기 3성에 드디어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개뿔. 내가 12년동안 가슴이 답답해 죽는 지경이었다. 멍청한 놈! 그리고 또 무슨 그딴 걸 자랑이라고 나한테 말하는 거냐!"

방문이 열리며, 꼬장꼬장한 염소수염을 기른 청문령이 눈쌀을 찌푸렸다.

"이 아둔한 놈! 일단 들어와라, 삼십육천강법결을 얼마나 이해한 건지 봐야겠다."

나는 흠칫하다가, 싱긋 웃으며 청문령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방에는 온갖 서책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청문령의 방은 좁지 않았으나, 서책들이 쌓여있는 탓에 발 디딜곳이 많지 않았다.

그는 서책의 산 한 가운데에 앉아 한 책을 넘기며 열심히 붓으로 무언가 주석을 남기는 중이었다.

"앉아라. 그리고, 네놈은 도대체 그 정신사나운 짓은 도대체 언제쯤 그만할 거냐?"

그는 내게 방석도 권하지 않고, 주석을 달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현재, 방 바깥에서는 내 검이 내 의식과 강기에 따라 허공에서 단악검법을 펼치는 중이었다.

지난 22년간, 수도공법과 진언, 법술 등을 수련하며 한 번도 무공수련을 멈춘 적은 없었다.

이젠 자는 도중에도 이기어검을 펼칠 정도였으니.

그러나 청문령은 내가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혀를 차며 말했다.

"네놈 천성이 칼잽이라는 건 안다만. 네놈 같은 쓰레기같은 재능이라면 한 가지에 몰두해도 부족하다. 그런데 언제까지 저 정신사나운 짓을 수행과 병행할 게냐?"

"...송구합니다. 하나..."

"그래, 그래. 안다. 무는 네놈 삶이었지? 이젠 나도 그만 좀 듣고 싶다. 똑같은 말밖에 반복 못하는 멍청한 놈 같으니. 시끄럽고 법결들이나 읊어라."

나는 청문령의 앞에서 법결들을 읊고, 청문령이 법결들에 대한 내 이해도를 살피기 위해 하는 질문들에 답을 하였다.

얼마 후, 청문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법결의 이해도가 준수하군."

"감사합니다. 하면..."

"이제 연기기 3성(成)에 걸맞는 가르침을 내려야겠지. 자, 이걸 받거라."

그는 내게 십이지도설록(十二地導說錄)이라는 서책을 건냈다.

"십이지율(十二地律). 황종(黃鐘), 대려(大呂), 태주(太簇), 협종(夾鐘), 고선(姑洗), 중려(仲呂), 유빈(蕤賓), 임종(林鐘), 이칙(夷則), 남려(南呂), 무역(無射), 응종(應鐘). 열두가지 종류의 영력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칠십이 영맥과 삼십육 영성을 진화시키는 작업이 연기기 3성의 핵심이다.

영력에는 다섯 속성이 있고, 다섯 속성이 열두 종으로 갈라지니. 60가지 변화가 또 다시 파생되는 것이지. 뭐, 그래도 십이지율에 해당하는 영력의 종류만 알아도 나머지 48개의 변화는 충분히 계산이 가능하다.

이 영력의 변화를 전부 깨닫고, 영력이 세상에 미치는 운행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예, 새겨듣겠..."

"아니. 새겨듣지 말고. 여기서 읽어라."

"예...?"

"지금까지는 네놈이 내게 책을 받으면 네놈 방으로 가서 읽다가, 다시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는 식이었다면. 이젠 내 속이 답답해서 못 살겠다!

그냥 여기서 읽고, 바로바로 모르는 건 물어봐라! 아니, 그냥 여기서 살아라!"

나는 잠시 당황했으나, 그에게 읍을 하며 감사를 표했다.

"스승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시끄럽다! 허례허식 차리지 말고 빨리 책이나 완독해라!"

청문령의 호령에, 나는 황급히 서책을 읽어갔다.

연기기 3성.

십이지율의 단계는 열두 영력의 종류를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또한 수도자는 이 단계에서부터는 영력의 종류에 따라 수도자의 수도진법(修道陣法)을 펼치는 것이 가능했다.

본격적으로 영력을 통해 환영진, 혹은 기이한 기문진법을 펼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또한 영력의 열두 가지 기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진법을 펼쳐보며 영력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였기에, 나는 청문령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에는 항상 바깥으로 나가서 청문령이 조언해준대로 진도(陣圖)를 펼쳐보며 실습을 하였다.

다행히 나는 공간각은 뛰어났기에 진법을 펼치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었고.

또한 먼 옛날, 김영훈의 아래에서 무림맹을 운영할 당시 기문둔갑과 기관장치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기에 진법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었다.

열두 개의 영력의 종류는 일종의 파(波)의 형상을 띄고 있다고 하였다.

파장의 진동수가 일정부터 일정 이하인 구간의 영력을 황종(黃鐘)의 영력.

그 너머의 파장을 가진 영력을 대려(大呂)의 영력이라고 부르는 듯 하였다.

나는 열두 종의 영력을 익히고, 깨닫기 위해 청문령의 바로 옆에서 답답하고 아둔하다는 둥.

온갖 욕설을 들어먹으며 깨닫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 6년이 흘렀다.

우우웅!

나는 내 전신의 영맥이 하나의 진도(陣圖)라 생각하며, 십이지율의 영력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영맥을 진화시켰다.

영맥 하나 하나, 영성 하나하나에 십이지율 각각의 영력을 모두 각인시킨다.

그리고.

번쩍!

"하아아..."

나는 연기기 3성(成)을 완공(完功)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제, 십이지율의 너머로 향하기만 하면 바로 연기기 4성이었다.

나는 눈을 떴다.

눈 앞에선 청문령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공했군. 답답한 놈 같으니. 이제야 십이지율을 깨치고 연기기 3성이야! 전력은 연기기 14성이라면서 왜 이리 깨닫는 게 늦어!"

"하하, 스승님. 제가 익힌 무공과 수도선술은 완전히 분야가 다르지 않지 않습니까."

"흥, 됐다. 이래서야 네놈 생전에 경지를 얼마나 더 나갈 수 있겠느냐! 답답해서 안 되겠구나. 따라와라! 내 속이 터져 죽기 전에 네놈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르쳐야지, 안 되겠군."

그는 몇 권의 서책을 싸들고, 나를 데리고선 바깥으로 나갔다.

"칠십이지살로 영맥을 깔고, 법술을 몸에서 뻗어낼 수 있게 되었으며.

삼십육청강으로 영성을 응집하고, 법술로 천지영력을 감응시키는 법도 깨달았다.

십이지율로 영력의 종류를 깨달아, 천지영력의 흐름을 모방하여 수도진을 펼칠 수 있게 되었지."

청문령의 주변으로 칠십이지살, 삼십육천강, 십이지율을 상징하는 고대문자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너는 앞으로 십천간도(十天干圖)에 입문하게 될 것이다. 수도자의 진법이 천지의 흐름을 모방한 것이라면, 십천간의 십천문(十天文)을 익혀 앞으로 진법의 힘을 제대로 끌어올릴 수 있게 해야 할 것이야.

십천문이란, 먼 옛 사람들이 하늘에 떠 있던 열 개의 이치를 모방해서 만든 문자로, 문자 하나하나에 하늘의 이치가 담겨있다.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의 열 가지 이치를 알게 되면 연기기 4성을 완공(完功) 할 수 있다."

십천간도를 해당하는 십천문이 청문령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수목(樹木)의 기운이 일며, 수목의 진식(陣植)이 펼쳐졌다.

십이지율을 기초로 한 진식에, 십천문이 깃든다.

우우웅!

열 가지 변화가 열두 영종에 곱해지며, 수십 가지의 변화를 이룬다.

그 수십 가지의 변화의 중심에서, 청문령이 기운을 거두자 수십 가지의 변화가 전부 청문령의 안쪽으로 흡수되었다.

"자, 이게 네가 도달해야 할 경지니라. 이번에는 제발! 3년안에 4성을 완공해 보거라! 답답한 네놈에게 뭘 더 바라지도 않는다!"

그날부터, 나는 청문령의 지도 아래에서 십천문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했다.

"갑(甲)은 대림목(大林木)으로 시작하여 계(癸)는 우로수(雨露水)로 끝난다. 각각 천문에는 음양과 오행의 이치 또한 깃들어 있으니..."

"열 가지 영력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천지오행의 변화를 음양으로 나눈 것에서 시작된다. 음양오행이 세계를 이루는 열 가지의 이치라고 해석한 것이..."

"음양오행을 십이지율에 대입해 보아라. 십이지율에도 양률(陽律)과 음려(陰呂)로 하여금 음과 양의 해석이 들어있으니, 둘을 대입하면..."

나는 청문령에게서 십천문에 대해 배우며, 지월입도결과, 청문목이 준 지주원법(地住院法) 공법서 역시 익히며 지주원법에 수록된 신통 또한 익혔다.

"토주원(土住院)!"

수결을 맺고 진언을 외자, 내 주변의 흙들이 뭉치더니 진식을 형성한다.

나는 진식에 열두 가지 영력의 종류와 열 가지 영력의 변화를 부여하여 진식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쿠웅!

육각형의 흙 방패가 여섯 개 생겨나며 내 주변을 둘러싼다.

지주원법에 수록된 방어신통이었다.

나는 영력을 인도하며, 흙 방패를 회전시켰다.

쿠구구구-

묵직한 소리를 내며, 흙 방패가 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회전한다.

흙방패는 한 개의 무게가 상당했고, 회전 속도도 썩 무시무시하여 인간이 맞으면 그대로 갈려나갈 위력을 자랑하였다.

강도 또한 무시할만한 것이 못 되는게, 흙방패는 법력을 잔뜩 머금고 있어 검기로도 자르는 것이 불가능한 정도였다.

'연기기 4성...'

이제, 연국 황제 막리정과 그 아들 막리현과는 비슷한 경지인 셈이었다.

'연기기 4성부터는 주변의 공간을 장악하고 싸운다.'

영력으로 진도(陣圖)를 깔고, 십천문으로 위력을 증대시켜 주변의 공간을 완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장악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이제는 지난 삶, 연국 황태자 막리현이, 주변을 풍(風) 속성 영력으로 아예 장악한 것과 같이 내 주변 공간을 토(土) 속성으로 장악하고 싸우는 것이 가능했다.

"스승님, 이것 보십시오! 이제 진도(陣圖)의 구현화에 성공했습니다..!"

"...멍청한 놈 같으니. 이제서야 진도를 구현한 게 자랑이느냐! 시끄럽고 더욱 더..."

물론 청문령에게는 여전히 내가 답답해 죽을 지경인 듯 싶었지만 말이었다.

* * *

5년이 지났다.

청문령이 내 곁에 꼭 붙어서 노발대발하며 가르친 탓인지.

나는 5년에 걸쳐서 겨우 십천문의 변화를 전부 깨우치는 데에 성공했다.

우우웅-

법력이 펼쳐지며, 주변에 진도(陣圖)를 구현화한다.

열두가지 영종과, 열 가지 영변이 섞이며 60여가지의 변화를 구현하였다.

'이 60가지 영력의 변화를...'

내 경맥과 동화시킨다!

쿠구구구!

주변으로 흩어져 진도를 그렸던 토(土) 속성의 영력이 내게 돌아오며, 각각의 변화에 대응하는 영맥과 합쳐진다.

'동화!'

쿠구구구구구구-

영맥에 노도와 같은 기세로 무수한 변화가 생겨난다.

나는 십천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영맥에 변화를 차근히 흡수시켰다.

영맥이 진화한다.

더욱 더 영맥이 넓어지고, 영맥이 수용할 수 있는 변화가 많아졌다.

그리고, 영맥이 모든 변화를 전부 수용하였을 때.

나는 드디어 고대하던 벽을 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연기기 4성 완공(完功)!

이제, 연기기 5성(成)이었다!!!

"드디어...!"

눈을 뜨자, 귀가 아플 정도로 큰 환호성이 들려왔다.

스승님이었다.

"드디어, 이 빌어쳐먹을 놈이 연기기 5성이구나! 흐하하하하!"

그는 환호성을 지으며 미친듯이 낄낄 웃었다.

"이 망할 둔재놈...! 내가 이겼다...! 네놈의 빌어먹을 자질을 가지고, 네놈을 연기기 5성까지 인도하는 데에 성공했어!!! 크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스승님..!"

"흐하하, 멍청한 제자놈..!"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환호성을 질렀다.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