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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기(練氣期)(2)
시작은 우선 각각 단악검법과 단맥도법의 1초식이었다.
월악(越岳), 그리고 뫼얼의 초식이 부딪힌다.
중단세로 가로를 베어들어가자, 상대는 똑같이 가로를 벤 후 바로 하단세로 들어온다.
그러나, 내 의념이 하단세를 짓밟고 다시 김영훈의 얼굴을 베어넘길 수 있는 형식으로 전환된다.
시작은 절정경 수준.
붉은 선과 푸른 선이 허공에서 교차한다.
티잉, 팅, 팅, 팅, 팅!
동시에 맑고 경쾌한 검명과 도음이 비무장을 울렸다.
일합에 수십 번의 공격이 부딪힌다.
단애, 산수화, 용맥, 유릉, 입산, 등맥...
올려베고 난무하며 다시 내려베고 찔러간 후 하단세. 그리고 올려베기.
그러나 단애의 초식은 산지기의 초식으로 회전하며 쳐내고, 산수화와 용맥은 산능성이의 유함으로 흘려버린 후.
산새의 초식으로 유릉을 피한 후 접근하며.
입산과 등맥의 초식으로 떨쳐내려 하니 산허리의 초식으로 지반을 흔들어 중심을 흔든다.
단악검, 사십구광일출봉(四十九光日出峯)!
마흔아홉갈래의 검기가 김영훈에게 날아들었고.
단맥도, 산열림!
산수화보다 더욱 흉폭한 김영훈의 난무가 내 검기를 모조리 쳐내었다.
나의 검과 그의 도가 부딪히며, 수십 갈래의 붉고 푸른 의념이 허공을 교차한다.
그 짧은 틈새로 어마어마한 간합이 오간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절정경 수준.
나와 그의 시선이 오갔다.
말은 필요 없었다.
우리는 약속한 듯이 서로의 의념을 통하게 하며, 자색(紫色) 이상의 세계로 발을 딛었다.
이제 삼화취정 수준!
방금 전까지는 그저 한 수 주고받는 인삿말.
이제부터가 그나마 할만한 전초전인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의념을 읽어내리며, 일보(一步)를 딛을 때마다 몇 번이나 자세를 바꿨다.
삼보를 걸으며 일곱 번을 자세를 바꾸고, 다시 여덟번의 기수식을 가다듬으며 최후에 도달한 한 초식으로 손속을 겨룬다.
김영훈이 산바람의 초식을 취하는 체 하다가 바로 자세를 바꾸어 산울림의 기수식을 취한다.
나 역시 산명곡응의 초식에서 공곡전성의 기수식으로 자세를 바꾸며, 산울림의 경력을 전부 내 검에 담아 되쳐버렸다.
의념의 교류 속에서, 우리가 뿜어내는 의념의 색조가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일검을 내지를 때마다 일념을 주고받는다.
[잘 지냈느냐.]
부웅!
괴암(塊巖)의 초식으로 공격을 쳐내고, 입산(入山)으로 하단세의 기수식을 취하는 척 하며, 유릉(流陵)의 초식으로 위로 부드럽게 찔러들어간다.
[잘 지냈습니다. 무탈하셨는지요.]
서로가 드러내는 의념의 색조가 오간다.
[무탈하다. 나야말로, 네가 잘 지내는 걸 보니 마음이 편해지는구나.]
김영훈의 보법이 경쾌해진다.
그는 순간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듯 하더니, 어느새 내 품 속으로 파고들어와 검을 올려베고 있었다.
산새의 초식!
[그나저나, 슬슬 제대로 놀아볼까요.]
[좋지.]
전초전은 끝낸다.
우리 둘은 약속한듯이 오기조원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서로의 의식영역이 서로에게 겹쳐진다.
첩첩산중(疊疊山中)의 초식으로 사방팔방으로 검강을 흩뿌리며 김영훈의 일격을 막아낸다.
직후, 산중호걸(山中豪傑)의 초식을 사용하여 흩뿌려진 검강을 김영훈에게 일점으로 쏟아붓는다.
[전부터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구름을 뚫고 용의 머리가 치솟는다.
백두(白頭)의 초식으로 수십 갈래의 도강을 올려베며, 승룡이 산중호걸을 물어뜯어 집중된 강기를 찢어발긴다.
[단맥도법은 네가 내게 기연을 얻었다며 알려준 것이지.]
단맥도, 대간(大干)의 초식이 백두에 이어 바로 연계된다.
그의 도강이 모두 한 갈래로 이어지며, 천년고송조차 베어낼 일참(一斬)이 되어 내게 쏘아졌다.
[혹, 이 무공은 기연이 아닌, 네가 만든 무공이 아니더냐?]
단악검, 능곡지변의 초식으로 맞선다.
그의 도강에 내 검강을 흘려넣어, 마치 지진을 일으키듯이 뒤흔들어 강기를 흩어버린다.
또 다시 둘의 사이로 간합이 오간다.
오기조원의 간합싸움은 이미 절정과는 차원이 달랐다.
다순한 의념의 궤도를 통한 예측이 아닌, 하나하나가 미래예지나 다름없는 아득한 환영을 내뿜는다.
김영훈의 도가 내 수급을 베어나간다.
내 검이 김영훈의 심장을 꿰뚫는다.
하지만 전부 서로가 서로에게 쏘아보내는 의식영역에서의 살기로 인한 환영.
동시에, 오기조원에서의 수싸움이기도 했다.
콰앙, 콰앙, 콰앙!
단순한 수싸움에, 허공에 강기가 덧입혀지며 사방팔방으로 검강과 도강이 튀겨나간다.
그저 간합을 벌이는 와중이었지만, 오기조원에서는 단순한 살기에 강기가 입혀지니, 수싸움이 그대로 현실화되어 사방으로 검흔(劍痕)과 도흔(刀痕)이 난무하였다.
청강석으로 된 비무장의 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어느새 비무장의 경계에는 연기기 14성 이상의 공격을 막아내는 법진이 작동하며 우리의 강기를 막아내는 중이었다.
하나 그마저도 강력한 강기의 충돌에는 뒤흔들렸다.
빛이 번쩍인다.
이젠 아마 나와 김영훈의 움직임은, 의식이 약한 연기기 저계 수도자들은 완전히 놓쳐버렸을 터.
비무장의 끝에서 끝까지를 수 번이나 오간다.
비무방의 허공에 우리가 뿜어내는 강기의 궤적이, 채 사라지지도 않고 그대로 남는다.
그리고, 그 사이로 우리 둘이 부딪혔다.
[왜 그리 생각하십니까?]
검광과 도광이 허공에서 교차하며 각기 용호(龍虎)의 기세를 수놓았다.
[알지 않느냐? 나에게 이 무공을 가르친 너라면, 이 무공에 깃든 의(意)가 무엇인지 잘 알 텐데.]
무공에 깃든 의.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아니, 애초에 김영훈이 단맥도법을 창시할 때 그 옆에서 지켜본 것이 나이니.
단맥도법은 신마전을 꾸렸던 2회차 당시.
김영훈이 내 단악검법 12초를 몇 달 동안 개량해서 만들어낸 절세무공.
애초에 둔재를 위해 만들어진 단악검법에서, 둔재를 상승의 경지로 이끌기 위한 친절한 초식은 전부 빼버리고, 각기 초식들을 통합(通合)하여.
그 요체만을 뽑아 만들어낸 도법.
그것이, 단맥도법이었다.
단맥도법은 김영훈이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들어낸 천재용 무공이었으며.
동시에 도법을 만들 당시 그의 생각이 녹아들어간 무공이었다.
아직 회차 초반이었던 당시.
그는 무를 수련하면서도, 헤어진 동료들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였다.
초식명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단맥도, 환향(還向)!
그의 도 너머로, 단악검 사십구광일출봉과 흡사한.
그러나 훨씬 기오막측한 변화를 품은 도강들이 쏟아져 나온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 천재가 아닌 인간 김영훈이 만들어냈던 초식들이 내게 쏟아진다.
김영훈이 내게 묻는 이유 역시 이런 이유일 터였다.
무공 그 자체에서, 집을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한 한 인간의 의(意)가 절절히 풍겨졌으니까.
그는 지금.
내게 집을 그리워하느냐고.
그리 돌려묻는 것이었다.
[물으시는 이유는, 제가 집을 그리워함을 물으신 것이겠지요.]
그러나 지금 회차의 김영훈은, 단맥도법을 내가 만든 무공으로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내가 고향을 그리워하느냐고 묻는 것일 터다.
[분명 그립습니다. 간혹, 사무치게 그리워 검을 들고서 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산팔해의 초식으로 수십번 회전하여 김영훈의 공격을 튕겨낸다.
그런 다음 수십번의 공격을 일점으로 귀일시키며 그를 압박해갔다.
콰앙, 콰과광!
우리의 싸움에 이미 비무장은 완전히 흙밭이 되어버렸다.
파앙!
다시금 서로의 도검이 부딪히며, 부숴진 청강석의 파편이 둘의 사이로 튀어올랐다.
오기조원에 달한 의식이, 더욱 극한으로 집중된다.
파편 하나뿐이 아닌, 주변으로 튀어오른 수많은 파편.
강기의 궤적들. 먼지구름 사이로 우리를 쳐다보는 수많은 경악의 시선.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의 모든 면이 전부 뇌리에 들어온다.
나는 그 전지에 가까운 상태에서,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하나 아시지 않습니까. 단맥도법의 오의. 도묘(刀墓)의 의미를.]
그와 나의 의념이 오고갔다.
[그런가...]
그는 약간 서글프게 웃으며, 기수식을 잡았다.
나 역시 그의 뜻을 알아채고, 기수식을 제대로 잡았다.
[네가 이 무공에 남겨놓은 마음이, 처음에는 사무치게 공감되었다.]
사실 내가 남긴 것은 아니었고, 그저 지난 삶의 김영훈이 남겨놓은 마음.
하지만 나는 그의 의념을 들으며, 그와 동시에 초식을 펼쳤다.
월악, 입산, 등맥...
[하지만 무공을 익히고, 경지를 높여나가며. 마침내 월수월무록을 접하던 그 때. 나는 맹세했다.]
김영훈의 도가 허공을 가른다.
뫼얼, 산지기, 산능성이...
[반드시... 반드시 경지를 높여. 수도자를 넘고, 무의 극한을 넘어서...]
극속을 넘어선 공방이 둘 사이에서 벌어진다.
더욱 더 빠르게 초식을 펼친다.
유릉, 괴암, 기석, 산수화, 용맥, 단애, 사십구광일출봉
...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방도를 찾을 것이라고!]
산바람, 산열림, 산새, 산울림, 산소리, 산허리...
도검의 사이로 일어나는 폭발에,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
감각이 마비될 듯한 전투 속에서, 나는 그의 의지를 느꼈다.
'허황되다...'
그의 도법이 끊임없이 연이어진다.
용릉(龍陵), 백두(白頭), 대간(大干), 월산(越山), 환향(還向)...
나와 그의 기수식이 이어지며, 마침내 단악검법과 단맥도법의 오의(奧意)가 뻗어나온다.
단악검법(斷岳劍法)
제이십이초(第二十二招)
"단악(斷岳)!"
김영훈의 의념이 흘러나오며, 초식명이 허공으로 흘러나온다.
단맥도법(斷脈刀法)
제십오초(第十五招)
"도묘(刀墓)!"
천재를 위한 무공과, 둔재를 위한 무공의 극의가 서로를 향해 광휘를 터트렸다.
뫼얼의 정신으로, 산을 넘고 또 산을 넘어.
용이 고개를 넘듯이(龍陵), 백두대간(白頭大干)이 있는 우리의 고향으로.
그 어떤 산을 넘더라도(越山), 너무도 돌아가고 싶었다(還向).
하지만 그것은 불가하니, 이 생애에는 그저 이 칼 아래를 내 무덤 삼으리(刀墓).
아스라이 빛살 너머로 단맥도법으로 흘려지는 김영훈의 의지가 들리는 듯 하다.
강기가 부딪히며, 충격파가 일어났고, 비무장을 뒤덮은 진법이 깨져나간다.
동시에 축기기 수도자 몇이 일어나 황급히 새 결계를 덧씌운다.
본래라면, 단악검법 오의 단악(斷岳)과 단맥도법 오의 도묘(刀墓)는 동등한 무학이다.
그렇기에, 부딪힌다면은 양패구상, 혹은 무승부여야 옳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김영훈은 월수월무록(越修越武錄)을 펼치고 있었다.
생을 이어가며 전승되는, 한 명의 천재가 만들어낸 새로운 무학의 역사!
그것이, 그의 손에서, 아주 천천히.
마치 나에게 풀어서 해설하듯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아, 그런가.'
이것이, 오기조원의 [다음 단계].
그는 집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저 마음을 바탕으로, 언제고 경지를 올려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맹서를 보여주었다.
허황되고 또 허황되다.
우리는 승천문과 관련하여 이 세상에 온 것일 확률이 높았고, 결국 돌아가고자 한다면 승천문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하지만 승천문은 1000년에 한 번씩 열린다는 문. 이번에 한번 열렸으니.
무림인의 짧은 수명으로는, 이번 생 안에 절대로 승천문에 도달할 수 없다.
내 목적도 수도자가 되어 긴 수명을 바탕으로 더더욱 강해져 승천문에 도전하려는 것이었는데, 그는 나와 같은 목적을, 순수한 자신의 재능과 의지로 헤쳐나가겠노라.
그리 말하는 것이었다.
'칼 아래에 뼈를 묻겠다던, 그 삶의 김영훈을...'
넘어선다!
도묘(刀墓)의 초식을 넘어 보여지는 월수월무록.
그 너머에서 펼쳐지는, 강기압환!
나는 그가 펼치는 상세한 월수월무록의 구결을 보며, 어떻게 하면 오기조원을 넘어설 수 있는지.
그 조건을 이해하였다.
[...나는 앞으로, 끊임없이 무의 경지를 개척하며. 언젠가 진씨세가의 도움을 받아, 승천문이라는 곳으로 가 볼 것이다. 진씨세가의 수도자들에게 듣기를, 우리가 있던 곳은 승천문으로 향하는 등선향이라 했으니.
그곳으로 가 볼수만 있다면...]
허황되고 또 허황되다.
하지만, 나는 감히 진실로 그의 희망을 짓밟을 수 없었다.
이번 승천문은 이미 닫혔으니, 일천 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어찌 말한다는 말인가.
나는 그에게 그런 잔인한 진실을 말하는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어째서 제게 그런 것을 알려주십니까.]
[...너도. 희망을 가졌으면 해서다.]
그렇습니까.
나는 그가 펼치는 강기압환을 두 눈으로 똑똑히 새기며, 내 검이 검강째로 갈갈이 찢겨나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강대한 반탄력에 튕겨나가 버렸다.
콰아아앙!
나는 매섭게 뒤로 튕겨나가, 진법에 등을 부딪혔고, 피를 한 움큼 토했다.
"...그 경지는. 이름이 뭡니까."
의념으로 대화하던 것을 멈추고, 그에게 씨익 웃으며 물었다.
어차피 무림 역사상, 저 경지에 이른 것은 그가 최초일 테니.
이름 짓는 것도 그의 뜻대로 지음이 맞으리라.
그는 이미 훨씬 빠르게 저 경지에 도달하였다.
어쩌면, 이번 생 안에 월수월무록을 또 진화시킬수도 있는 일!
김영훈은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등봉조극(登峰造極)."
"하, 하하하... 당신다운, 이름입니다."
나는 그렇게, 무의 깨달음을 되새기며 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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