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42화 (4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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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기(練氣期)(1)

연기기(練氣期)는 총 14성으로 이뤄져있다.

예전에는 단수기를 연기기에 포함하여 15성이었다고 하나, 그 때에도 연기기의 근간이 되는 단계는 법화단전을 형성한 이후였었다고 한다.

나는 오월입도경을 읽어내리며, 연기기에 대한 정보들을 탐독해 나갔다.

연기기는 1성부터 14성이라고 편하게 불리우지만, 그 하나 하나의 단계를 이루는 경계는 상당히 복잡하였다.

연기기 1성은 칠십이지살진언(七十二地地煞眞言)의 칠십이 가지 진언구결을 모두 이해하고, 체내에 칠십이지살에 대응하는 영맥(靈脈)을 활성화해야 하며.

연기기 2성은 삼심육천강법결(三十六天罡法訣)의 법결을 모두 이해하고, 칠십이지살맥을 뼈대로 삼십육천강에 대응하는 영성(靈性)을 응집해야 한다.

연기기 3성은 십이지율(十二地律)에 해당하는 열두 종류의 영력을 받아들이도록 72영맥과 36영성을 진화시키고.

연기기 4성은 십천간도(十天干圖)에 해당하는 10가지 영력의 변화를 전부 수용하여야 한다.

연기기 5성은 구궁(九宮)의 이치에 따라 108가지 영맥영성과, 60가지 영력의 변화를 아홉 점으로 귀일시켜야 하며.

연기기 6성은 팔괘(八卦)의 운행에 따라 영력의 길을 전부 완성한다.

연기기 7성은 칠성(七星)에게 제사를 지내어 천지영성(天地靈性)에게 수선(修仙)의 길을 걸어가겠다 고하며 더욱 많은 영력을 받아들이도록 허락받는 경지라 하였고.

연기기 8성은 육합(六合), 천지사방(天地四方)에 대응하는 영기를 완성된 영력의 길로 운행시키며 전신 영맥을 가득 채운다 하였다.

연기기 9성은 오행(五行) 속성과 상징을, 지금까지 익혀온 공법의 주 속성에 보조시키며, 공법의 속성을 완전히 각성하는 경지였으며.

연기기 10성은 사상(四象)의 이치로 하여금 지금껏 완성하고 채워오며 결국 속성을 특화시킨 팔괘의 영맥을 완전히 이어, 음의와 양의의 양맥(兩脈)으로 만드는 경지였고.

연기기 11성은 삼재(三才)에 대응하는 상중하단전을 영력으로 하여금 완전히 관통하여 천지인(天地人)을 합일하는 경지라 하였다.

연기기 12성은 쌍극(雙極)의 음맥과 양맥을 끊임없이 순환시키며 결국 음양맥을 전부 통합하고 무결(無缺)해지며.

연기기 13성은 일원(一元)으로 변한 맥(脈)을 통해 영력을 가속시켜, 영력을 단전 안에 일점(一点)으로 귀일시킨다.

연기기 14성은 무극(無極), 일점으로 귀일시킨 영력 덩어리를 폭발시켜 단전 안쪽을 진화시킨다.

단전이 완전히 진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단전 안에 영운(靈雲)이 생겨나며 그 안쪽으로 영성(靈星)이 탄생하면 그렇게 축기(築氣)에 도달하는 것.

그것이 연기기의 시작과 끝이었다.

'...이번 생 안에 끝을 볼 수는 있는가.'

일류에서 절정, 절정에서 삼화취정, 삼화취정에서 오기조원은 그래도 일생(一生)을 파고들면 그래도 성취는 있었다.

하지만 연기기는 연기기라는 단계 내에서도 어마어마한 단계와 경지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왜 지금껏 연기기 수도자들이 겨우 1성 차이로 어마어마한 실력차를 보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군.'

무림인들은 경지 안에서의 차이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

절정 초기도 절정 중기를 이길 수 있고.

절정 중기도 삼화취정 초입 정도는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연기기 수도자는 1성만 높아도 감히 대항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나는 동시에 왜 수많은 연기기 수도자들이 평생 1성을 벗어나지 못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법술에 대한 오성이 뛰어나지 않으면 평생을 수련해도 칠십이지살진언의 구결도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쉽지 않군그래...'

나는 연기기 14성의 경지들을 보며 혀를 내두르고, 우선 오월입도경에 적힌 공법들을 찾았다.

지월입도(地越入道), 수월입도(水越入道), 목월입도(木越入道), 금월입도(金越入道), 화월입도(火越入道).

다섯 가지의 공법이 수록되어 있었고.

나는 그 중에서 지월입도(地越入道)의 공법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본래 익힌 무림의 내공심법인 용맥기공은, 수도자들의 천지영력을 구분하는 분류에 따라 토(土) 속성에 속하는 내공심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익숙한 쪽을 수련하는 게 낫겠지.'

나는 지월입도경의 적힌 구결을 읊으며, 칠십이지살진언을 읊었다.

칠십이지살진언은 칠십이개의 영맥을 활성화시키는 주문이자, 동시에 그 자체로 기초법술이었다.

예를들어 지각(地角)의 진언은 처음부터 끝까지 외면 지각성(地角星)에 대응하는 영맥에서 기운이 뻗어나와 땅에서 흙으로 된 송곳이 솟구치는 식이었다.

'거기에 수인(手印)까지 맺어야 하는군.'

물론 연기기 상위경지로 갈수록 수인이나 진언은 생략이 가능했지만, 지금으로선 수인과 진언을 전부 읊어야 법술을 시전 가능했다.

'일단... 지괴성(地魁星)에 해당하는 영맥부터 활성화시켜야겠군.'

어쨌든 영맥을 하나라도 활성화시키면 연기기 1성에는 진입하는 것이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지괴(地魁)의 진언을 외워 영맥을 활성화시켰다.

* * *

두 달이 지났다.

나는 석실에서 나와, 바깥 공기를 맡았다.

어찌어찌 첫 번째 영맥인 지괴의 맥은 활성화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지괴의 맥을 활성화시키기까지, 100개에 달하는 영석을 소비해야만 했다.

'너무 효율이 극악하다.'

이래서야 남은 영석을 전부 써도 언제쯤 72지살맥을 전부 활성화시킬지 모른다.

'...그래, 어차피 수도가문에 들어온 이유도 이런 것 때문이 아닌가.'

사실 청문세가에 들어오지 않고 혼자 산수가 되어 수도를 이어가는 방법도 있었다.

수도공법이야 막리세가 수도자 한둘쯤 죽이고 빼앗으면 될 일이었으니, 사실상 굳이 이곳에 올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굳이 내가 청문세가에 온 이유.

그것은 바로 이렇게 막막할 때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닌가.

나는 우선 청문목을 찾아가, 내가 연기기 수도자가 되었음을 밝혔다.

축기기 장로인 청문목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나를 바라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내 맥을 짚어, 영맥이 활성화된 것을 보고서야 믿었다.

"허, 허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오영질을 가진 놈이 세 달만에 단수기에서 영력의 균일화를 모두 이루고 연기기에 올라? 이 무슨 미친... 허, 그래. 과연 가문의 어른이 네게 추천권을 준 이유를 알겠구나. 허허..."

그는 신기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내가 영맥을 활성화한 공법을 물었다.

"무슨 공법을 써서 연기기에 입문한 거지?"

"오월입도경이라는 공법인데, 그 중에서 지월입도결을 사용했습니다."

"아, 오월입도경. 그거 말인가."

저잣거리 공법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닌듯, 청문목도 바로 알아채는 모양이었다.

"그 공법은 확실히 기본 중의 기본 공법이긴 하지. 말 그대로 연기기에 필요한 기본이 정확하게 수록되어 있으니. 하지만 말 그대로 기본만 수록되어 있다보니.

영맥에 대응된 진언으로 펼치는 기초 법술을 제외하면 특별한 속성법술을 펼칠 수는 없을 거다."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기다리거라, 흠..."

그는 자신의 저물탁을 만지작거리더니, 저물탁에서 한 권의 서책을 꺼냈다.

"지주원법(地住院法)이라는 토 속성 공법서다. 청문세가의 기본공법 중 하나로, 단단한 방어력에 특화되어있지. 지월입도결 대신 이걸 익혀도 되고, 같이 익혀도 된다. 어차피 같은 속성을 병행해서 익히는 것이니 수행 속도가 크게 둔화되진 않을 것이야."

"감사합니다."

"그리고 공법의 성취가 느리다고 했지? 그건 오영질을 지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래도 공법의 성취를 빠르게 할 방법이 있다."

나는 눈을 빛내며 차분히 청문목의 말을 경청했다.

"기본적으로, 선통후각(先通後覺)이라 하여. 영맥을 뚫으면, 성취를 올리면, 경지를 올리면, 그 아래에 있는 깨달음들은 본능적으로 이해가 되기 마련이야.

너도 지괴성에 대응하는 영맥을 활성화시켰으니 알겠지만, 어떻느냐. 지괴진언(地魁眞言)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대강 이해가 되지 않더냐?"

"예, 그렇습니다."

"앞으로 연기기 1성에서 2성이 되면, 연기기 저계에서 고계가 되면. 연기기에서 축기기가 되면. 그 이전에 배웠던 진언과 법결들이 의미하는 바가 훨씬 더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이해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영근이나 진영근을 가진 이들은 빨리빨리 영맥을 뚫고 경지를 돌파하여 아래의 깨달음들을 이해한다. 하지만, 너 같은 잡영근자들은 빠르게 수행을 돌파하고 싶다면 반대로 해야지."

"반대라면..."

"선각후통(先覺後通)! 먼저 진언과 법결이 의미하는 것을 전부 깨닫고, 체화하여 혼에 새기는 것이다. 네가 진언을 완벽히 이해한다면 엄청난 수도자원이나 좋은 자질이 없어도 저절로 진언에 따라 영맥이 활성화되고, 경지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야."

'선각후통이라...'

나는 대강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엄청난 자질을 타고난 천영질, 진영질의 수도자들은 가만히 앉아 운기만 해도 경지를 돌파하고 진언들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질이 한참 뒤떨어지는 잡영질의 수도자들은 먼저 진언들을 이해해야만이 영맥을 활성화하고 경지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와 똑같은 경험을 해 본적이 있었다.

'수도자들은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의식과 영질을 얻기위해, 무림인이 오기조원에 도달해야 하는 것과 같은 거로군.'

수도자들이 숨쉬듯이 사용하는 의식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무림인은 의념을 깨닫고, 의념 속에서 삶을 깨달으며, 결국 삶의 모든 의념을 각성하여 의식에 이르는 것.

천재가 한 번에 깨닫고 펼치는 기술을.

둔재는 그 기술에 도달하기 위해 몇 번이나 노력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천재와 같은 눈높이에 서는 것.

그런 경험은 이미 수없이 해 보았다.

"조언, 감사합니다."

그러니 두려울 것도, 어려워할 것도 없다.

그저,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 똑같이.

똑같이 노력하면 될 뿐.

"그래. 그리고 영지 내에선 열흘에 한번씩 영지내 방계들과 외부 구성원들이 모여 토론을 하며, 진언과 법결에 대해 깨달음을 나누는 토론회가 있으니 참여하면 도움이 될 터다.

그리고, 방금 네게 해준 조언들과 네게 준 공법서는 네가 연기기에 오른 선물로 준 것이고, 내 조언을 듣고 싶다면 다음부터는 공적치를 모아 헌납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럼 가 보거라."

"감사합니다."

나는 청문목에게 감사인사를 한 후, 그가 머무르는 석굴에서 나왔다.

며칠 후.

나는 청문세가의 영지 내에서 벌어지는 토론회에 참여하였다.

영지내의 연기기 1, 2, 3성 수도자들이 모여 깨달음에 대해 토론하는 토론회였다.

토론회에는 방계뿐이 아닌, 나 같은 외부 구성원이나, 혹은 공적치를 많이 쌓은 하청산수들도 꽤 들어와 있었다.

연기기 3성까지가 최대 경지인 토론회는 1성, 2성, 3성 수도자들이 저들끼리 모여 모임을 구성하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연기기 1성 수도자들의 모임에 끼여 토론회에 참석하였다.

"우선, 최근에 제가 막힌 벽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려 합니다."

토론회는 연기기 수도자들이 가부좌를 틀고 빙 둘러앉아, 한명한명씩 자신의 깨달음과 최근에 느낀 벽을 설명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나 역시 지괴성의 영맥에 대해 몇 마디를 했고, 나는 그날 청문세가의 다른 수도자들과 어느 정도 교류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청문세가의 토론회에서 토론을 하고, 임무를 수행하기를 한 달.

나는 청문세가의 수도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썩 충격적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안 보인다는 겁니까?"

"그렇소만. 서 도우는 뭔가 특이한 의식공법을 익힌 거요?"

"아... 뭐, 그런 셈이지요."

나는 얼떨떨하게 웃으며, 나와 대화를 나누던 청문세가의 다른 외부 구성원에게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오늘,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수도자는, 의념의 색(色)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저 형태를 인식하는 정도는 가능한 것 같았지만, 그 이상은 그저 투명한 의식과 의념을 볼 뿐인 셈이었다.

'썩 충격적인 사실이군. 수도자들은 전부 나처럼 의념의 색을 볼 수 있는줄 알았더니만... 하긴, 지금껏 비교 대상도 없기야 했지. 애초에 오기조원에 이른 무인이 흔한 것도 아니니...'

나는 오기조원의 무인이 갖는 의식의 크기를 생각해보았다.

약 연기기 3, 4성쯤 되는 크기.

나는 은식술을 써 의식의 크기를 연기기 1성 수준으로 낮춰보이게 하고 있었지만, 본디 내 의식영역은 훨씬 거대했다.

거기에, 얘기를 들어보니 연기기 3성은 물론이고 축기기 수도자들 역시 나처럼 의념의 색조를 보는 이는 없다고 했다.

간혹 특이한 의식공법을 익힌 수도자가 아니고서야.

'무림인이 각성해서 얻는 의식영역은, 기본적으로 수도자보다 우월하다.'

어찌보면, 무림인이 수도자를 이기는 유일한 분야인 셈이었다.

그리고 나는 토론회에서의 교류로 인해, 청문세가의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투도(鬪道)를 숭앙하는 가문이라... 창호자의 영향인가? 그리고, 그 영향으로 매년 투선회(鬪仙會)라는 경기를 연다라...'

투선회는 청문세가의 혈통들이 1년에 한번씩 모여 치룬다는 비무회라고 하였다.

청문세가의 직계, 방계 등 청문씨를 달고 있는 이는 모두 투선회에 강제로 참여해야 하고, 투선회에서의 성적에 따라 청문씨들간의 서열이 정해진다고 하였다.

때문에 청문씨들은 매 투선회가 열릴 때마다 죽기살기로 싸워댔으며, 1년동안 투선회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하였다.

'왜 청문씨들이 성격이 더럽다고 소문이 났는지 알 것 같군.'

가문 내에 투선회라는 경기가 있으니 그를 준비하며 성격이 거칠어진 것 같았다.

'아쉽군, 청문씨가 아닌 이도 참여할 수 있으면, 서열을 올려서 수도자원을 잔뜩 받을 수 있을텐데.'

나는 나직히 입맛을 다셨다.

그때였다.

"급보일세! 급보야!"

토론회가 열리는 석굴로, 한 청문세가의 방계가 황급히 뛰어들어오며 외쳤다.

"진씨세가가 결국 연국 황조를 찬탈하고, 막리황조 대신 진씨황조를 세웠다고 하네! 진씨세가가 연국의 정세를 움켜쥔 거지.

때문에 본가에서 진씨세가의 승리를 축하하며 진씨세가에 사절단을 보내기로 하였는데, 그 사절단은 굳이 청문세가 사람들뿐이 아닌 외부 구성원도 전부 지원 가능하다네. 그리고, 사절단은 진씨세가가 막리세가의 황조를 찬탈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축기기급 인물과도 대면하여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

"허어, 진씨세가의 장로급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고? 어떤 장로시지?"

"그게... 처음듣는 분이었네. 이름이, 영훈이었던가.."

문득, 나는 입가에 미소가 이는 것을 느꼈다.

김영훈이, 이번 삶에서도 성공한 것이었다.

"...사절단에 지원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청문세가의 법도야 늘 간단하지. 강자존!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사절단의 자리 20여개를 두고 지원자들을 전부 싸움붙여, 최후까지 남은 20명에게 기회를 부여할 걸세.

자네는, 그냥 포기하게나. 연기기 1성 정도나 되는 것 같은데 괜히 무리하지 말고."

그러나 나는 은은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지원신청은, 다른 것들과 비슷하게 청문목 장로님께 신청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렇긴 하다만, 이번 사절단에는 투선회를 준비하던 쟁쟁한 후기지수들이 많이 참여할 걸세. 괜한 생각 버리게. 축기기급 인사 하나 만난다고 인생이 뒤바뀌는 것도 아니잖나?"

나는 그를 지나치고, 청문목이 있는 석실로 걸어갔다.

'인생이 뒤바뀌지는 않지. 그저... 옛 고향동료를 만나러 가 보는 것일뿐.'

진씨세가를 도와 막리황조를 찬탈했다면, 분명 그의 무공경지는 최소한 오기조원에는 도달했을 터.

그는 과연, 이번 생에 어디까지 도달했을까.

그의 무(武)는 또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동급 이상의 무인(武人)과 검을 겨루고 싶었다.

* * *

사절단에 참여하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다른 이들이 전부 한 자리에 모여 싸울때, 나는 월수궁무록으로 존재감을 감추고 숨어있다가 최후에 남은 20인 중 가장 지친 자를 기습해서 기절시키고 승자가 되었다.

누구는 나를 보며 비겁하다고도 손가락질했으나, 사실 나는 그날 그 자리에 모였던 연기기 5, 6성 수준의 중저계 수도자들은 전부 몰살시킬수도 있었다.

'안 싸워주고 얌전히 있어준 걸 고마워해야지.'

그저 튀고 싶지 않아 조금 얌전히 있었을 뿐이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나는 사절단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나는 청문세가의 축기기 장로 중 한 명과 함께 진씨세가의 사절로 향하였다.

"모두 탑승하라!"

사절단 출발일.

축기기 장로는 커다란 배 형태의 법기 뱃머리에 올라가서 우리에게 소리를 쳤다.

나는 청문세가의 영지 중 요지라 여겨지는 곳에서 다른 사절단 참가자들과 함께 배에 올랐고, 곧이어 배가 하늘로 떠올랐다.

'봐도봐도 신기하군.'

나도 하늘을 걸어다닐 수는 있었지만, 천지영기와 공기의 결을 박차고 뛰는 허공답보는 이 법기와는 전혀 원리가 달랐다.

천지영기 자체가 배에 흡수되며, 기이한 부력을 발한다.

그리고 배는 그 부력 속에서 둥실둥실 떠오르더니, 이내 빠르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촤아아아아!

배는 순식간에 하늘로 떠올라 구름을 뚫고 치솟았으며, 배의 용골이 운해(雲海)를 스쳤다.

법기의 속도로 보아, 약 하루 정도면 연국에 도착할 것 같아보였다.

'비행법기가 인기가 많던데, 그 이유를 알겠어.'

단순히 허공답보를 사용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쾌적한 비행기를 탄 느낌이었다.

나는 뱃마루에서 구름을 스치는 배의 아랫부분을 감상하며 생각에 잠겼다.

'무인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가.'

그리고, 김영훈은 이번 삶에서 월수월무록을 과연 진화시켰을까?

무림인의 경지는 삼류, 이류, 일류, 그리고 절정.

절정의 극한이라 일컬어지는 심화취정.

그리고 삼화취정을 넘어선 오기조원.

그것이 끝이다.

오기조원까지는 그래도 전설상의 경지로, 수백년에 한 명씩 도달하고는 하는 모양이었지만, 그 너머를 본 무인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김영훈을 빼면 말이지.'

김영훈이 만들어낸 강기압환의 경지.

그건, 여태껏 무림사에서 한 번도 없었던 기적과도 같은 경지였다.

'그래, 작금의 무(武)의 경지는, 계속해서 개척되고 있다.'

무림인에겐 더는 위가 없다.

그렇기에, 무림인이라는 존재는 스스로 그 '위'를 만들어가야하는 존재인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허리춤에 찬 검을 쓰다듬었다.

수도자의 길에 들어서도, 수행을 하면서도, 한번도 이 검을 몸에서 떼어놓은 적은 없었다.

진언을 외면서도 끊임없이 검을 동시에 수련했고, 다음 단계에 대한 실마리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래봤자 아직도 오기조원 초창기였지만.

'하지만, 나는 아직 위로 가지 못할지언정.. 김영훈은, 그 너머를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내게 말해줄 것이다.

무공을 수련해온 시간들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라고.

나는 이제 수도자였다.

하지만 동시에 무인이었다.

무인으로서도, 수도자로서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달려나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삶이니까.

'올라가고 올라가서. 반드시... 이 회귀를 끝내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주마.'

나는 그렇게, 굳세게 다짐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위에서 보는 하늘은,

높고도 아득했으나, 티없이 맑고 창명했다.

* * *

하루 뒤.

우리는 진씨세가의 본가에 도착하였다.

'이곳이... 진씨세가의 본가(本家)!'

그곳은 화산(火山)이었다.

그것도 아직도 살아서 활동이 되는듯, 밑에서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활화산!

그곳의 중심부에, 진씨세가의 본가가 위치해 있었다.

'연국에 화산이 있었나?'

하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왜냐하면 몇 번의 삶을 살며, 화산 지형은 이번 삶에서 처음 보기 때문이었다.

"이보시오, 혹시 진가의 본가가 있는 위치가, 연국의 지리상 어느곳인지 아시오?"

나는 함께 사절로 온 동료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저 밑으로 보이는 진씨세가 본가의 위용에 침을 삼키면서도 내 말에 선선히 답을 해 주었다.

"연국 균강성의 인근이라 하더군. 나도 잘은 모르네."

'균강성? 이전에 와봤던 곳인데, 화산 같은 건 없었다. 아니, 설마...'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냈다.

'저 화산 전체를 환영결계로 덮고 있어,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건가!?'

나는 진씨세가의 본가에 쳐진 진법의 아득한 규모에 기함하며 본가를 쳐다보았다.

"내려간다!"

청문세가의 축기기 장로가 배 법기를 하강시켰고, 우리는 진씨세가에 진입하였다.

우리는 진씨세가로 들어가, 축기기 장로를 필두로 본가에 가 청문세가 가주의 친서를 진씨세가 가주에게 전달하였다.

나는 그 덕에 여태껏 살아온 삶 중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결단기 수도자를 볼 수 있었다.

'저게... 결단기...'

찌릿, 찌릿

그 여우와도 비슷하다.

30여장에 달하는 광대한 의식영역이 주변을 뒤덮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적포를 입은 장년인이 가주의 가좌에 앉아 청문세가 가주의 친서를 읽었다.

찌릿, 찌릿..

결단기 수도자가 숨기지 않고 뿜어내는 기세에, 사절단으로 함께 온 청문세가의 연기기 수도자들은 모두 나를 제외하고는 기가 눌려 죽을려하는 안색이었다.

나 역사 결단기 수도자가 뿜어내는 영력에 피부가 찌릿거리기는 했으나, 그 정도였다.

'오기조원의 경지라면, 이 정도 압박은 충분히 흘려낼 수 있다.'

나는 의식을 이용해 내게 가해지는 압박을 눈에 띄지 않게 베어내며 압력을 흘려넘겼다.

얼마간 의례적인 인사가 진행되었고, 마침내 내가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이번 황조 교체전에서 공을 세운, 진씨세가의 최고 외부 구성원을 소개하겠소!"

김영훈이 작은 단상 위로 올라갔고, 우리에게 인사를 하였다.

"다른 세가에서 와 주신 귀빈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무림인인 영훈이라고 합니다."

역시, 그는 이미 오기조원에 올랐는지 의념이 의식의 형태로 진화해 있었고, 외모 역시 젊어져 있었다.

"무림인??"

"무슨 소리지, 저 자는 수도자가 아닌가?"

"우리를 놀리는 건가?"

그때, 진씨세가의 장로 중 한 명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분명 극성에 이른 무림인이외다. 그리고 분명 이번 교체전에서 큰 공을 세운 자요. 이전에도 사절 분들께 공지했듯, 각 가문의 친선을 위해 무림인인 그와 각 가문의 인재들의 수준을 재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나는 대강 상황을 이해했다.

진씨세가는 황조를 찬탈하고,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저력을 주변 수도가문들에게 자랑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문에서 키우는 무림인이, 다른 가문의 수도자들을 때려잡는 것만큼 자신들의 콧대를 높이기에 좋은 기회는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찌 무림인 따위가 수도자와..."

"진가는 농이 심하시구려.."

청문세가의 사절단은 물론이고, 다른 세가에서 온 사절들도 조금 불쾌한 안색을 지었다.

그리고, 진씨세가의 가주가 입을 열었다.

"그의 실력은 본 가주가 보증하지. 비무를 하기 싫은 자는 먼저 숙소로 가도 좋다."

"......"

"......"

그렇게 되자, 아무도 항변하는 자는 없었다.

결단기 가주가 보증한 인물을 무시한다면, 이제는 가주 본인을 무시하는 격이 되니 말이었다.

"연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여흥의 형식으로 간단한 친선비무를 벌여볼 생각이다만. 마음에 안 드는 자가 있나?"

가주의 물음에, 누구도 답하는 이가 없었다.

"싫은 소리가 없는 걸 보니 다 긍정하나 보군. 그럼 한번 친선비무를 시작해보지."

첫 타자는 벽라국 공묘세가의 연기기 방계 중 하나였다.

김영훈과 공묘세가 수도자의 대치를 보며, 이곳저곳에서 불만스러운 소리가 터져나왔다.

"축기기급의 인물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사절로 참여한 건데.."

"어찌 무림인 따위와 손속을 겨루게 되다니.."

"무림인이 축기기급의 인물이라고? 의식의 크기도 연기기 저계 정도로 보이는데... 차라리 길가에 사마귀가 연국의 고관대작이라고 하는 게 더 신빙성이 있겠군."

"모두 조용! 가주님의 앞에서 그 무슨 망발이냐!"

청문세가의 장로 역시 말은 그렇게 했으나, 그 역시 얼굴에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그리고, 비무가 시작되었다.

투쾅!

김영훈의 신형이 번뜩였고, 뭔가 법술을 시전하려던 공묘세가의 연기기 수도자는 그대로 튕겨져 나가떨어져버렸다.

"....!"

"무슨..."

"저, 저.."

김영훈은 여유롭게 손을 털며 말했다.

"비무 끝."

그리고, 앉아있는 사절단들의 얼굴에 경악이 가득 퍼져나갔다.

"어, 어찌..."

"방금 제대로 본 자가 있나?"

순식간에 주변이 시끄러워졌고, 어느새 다음 세가에서 도전자를 보냈다.

벽씨세가의 연기기 10성 정도의 수도자였다.

저쪽에서도 나름 후기지수를 보낸 것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고, 다시 비무가 시작되었다.

타앗!

김영훈이 벽씨세가 수도자에게 달려들었고, 벽씨세가 수도자가 손을 움직여 법결을 쏘아냈다.

푸른 법결이 김영훈에게 쏘아지는 듯 싶었으나, 그는 유려한 몸놀림으로 법술을 전부 피해내고, 벽씨세가 수도자에게 접근하여, 일수에 그의 방어법술을 박살내버리고 그를 던져버렸다.

"끝이오."

다시금 수도자들이 기함했고, 객석이 떠들석해졌다.

"어찌 저런..."

"분명 무림의 무공이었소."

"범인 따위가 어떻게.."

이제는 누구도 가주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분위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각 가문에서 너나할것없이 김영훈에게 도전자를 내보냈다.

이제 김영훈에게 이기는 것이 각 가문의 자존심 싸움이 된 듯 했다.

청문세가에서도 몇 명인가 후기지수를 내보냈으나, 전부 김영훈에게 5초 안에 패배했다.

고작 진씨세가의 무림인에게 연이어 가문의 후기지수가 패한 것 때문인지, 뜨거워지는 듯했던 분위기는 점차 침울해져 갔고,

그와는 반대로 진씨세가 수도자들은 콧대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벽씨세가의 수도자가 김영훈에게 패배하고, 청문세가의 차례가 돌아왔을 때였다.

"...누가 갈 거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는 누가 나가든 청문세가의 체면만 구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후. 아무도 없으면.."

"제가 나가지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이럴려고 온 것이 아니던가.

나를 보던 청세가의 장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연기기 1성이면 져도 다들 그러려니 하겠지."

나는 비무대로 내려갔고, 김영훈과 눈을 마주쳤다.

흠칫!

나를 본 김영훈이 몸을 흠칫 떤다.

마치 나를 이곳에서 볼 줄 몰랐다는 듯.

스릉-

나는 검을 뽑아들었다.

"어디, 한번 신명나게 놀아보았으면 하외다."

김영훈은 과연, 이번 생에 어떤 경지까지 개척했는가.

어떤 무(武)에 도달했는가!

김영훈은 당황하는 듯 했으나, 씨익 웃으며 처음으로 도(刀)를 뽑아들었다.

"그래, 한번 놀아보지."

파앗!

서로의 의념이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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