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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修道者)(2)
벽라국(碧羅國)은 연국(鸢國)의 동남쪽에 위치한 국가로, 연국 너머 답천사막(踏天沙漠)에 자리한 비단길과 연국의 경계에 위치한 국가였다.
답천사막 너머 먼 국가들과 교류하는 비단길의 길목에 자리를 잡은 국가였기에, 벽라국의 부(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곳곳에 비단과 유리그릇이 돌아다닌다.
낙타와 말을 탄 상인들이, 사막 건너편의 나라에서 건너온 담배를 물고 물건을 판다.
생전 처음 보는 약초와 과일들이 시장을 떠돌아다녔다.
'여전히 활발한 동네로군.'
나는 이전과 전혀 변한 것이 없는 주변의 풍광을 보며 생각했다.
신마전을 꾸렸던 회차, 신마전을 창설하기 전 권태에 빠진 영훈 형님과 왔었던 곳이었었다.
그때 잠시 벽라국어도 배우기는 했었으나, 워낙 오랜만에 온 탓인지 영 단어들이 익숙치가 않았다.
'일단은 몇개월간 벽라국어를 다시 배워야겠어.'
청문세가를 찾아가든 말든, 일단 말이 통해야 수소문을 할 것이 아닌가.
다행히도 벽라국 국경 인근에는 연국어를 할 줄 아는 상인들이 굉장히 많았고,
나는 의약품을 주로 취급하는 약방에서 7개월간 일을 하며 벽라국어를 배웠다.
그렇게 7개월 후.
나는 제발 약방에서 더 일해달라고 사정을 하는 약방 주인을 내버려두고,
벽라국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자주는 오지 않았지만, 신마전을 꾸렸던 회차 이후로도 아주 가끔 와 보았기에 익숙한 곳들도 있었다.
하지만, 벽라국 역시 수도자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암약하는 것인지, 청문세가는 도무지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벽라국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기이한 지형이나 특이한 소문이 도는 지역을 찾아다녔고.
그렇게 찾아다닌 끝에, 나는 마침내 수도세가의 영지로 보이는 한 영지를 찾을 수 있었다.
파아앗-
"저건가."
오기조원에 이른 내 눈에, 천지영기로 이뤄진 결계가 한 협곡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찾았다, 수도가문의 영지!'
하지만 아직 저 영지가 청문세가의 영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당장 연국에도 진씨세가와 막리세가, 두 수도가문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벽라국 역시 둘 이상의 수도가문이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나는 며칠간 결계 앞에서 숙식하며, 결계 내부에서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열흘정도를 기다렸을 때였다.
'드디어 나오는군.'
청포를 입은 한 사내가 결계에서 걸어나왔다.
'청포라...'
막리세가 수도자들이 주로 청색의 장포를 입었었다.
나는 그 기억 때문인지, 조금 사내가 꺼려졌으나 내색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형장, 안녕하시오?"
"음, 안녕하시오?"
그는 나를 보고도 내색하지 않으며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것 참 소리소문없이 나타나는 형씨로군. 하하하, 범인(凡人)이었으면 수도가문의 영지를 들킬까 바로 없애버렸겠지만, 같은 수도자시니 다행이구려."
"하하..."
아무래도 오기조원에 올라 얻은 의식영역 탓인지, 아니면 내가 얻은 오영근 탓인지.
청포 사내는 스스럼없이 내게 다가와 껄껄 웃었다.
"그나저나 형씨도 국경 방향으로 가시는 거요? 나 역시 이번 달에 열린다는 영도회(靈圖會)에 참석할 예정인데. 형씨도 그쪽으로 가실 모양이외다?"
"영도회... 음, 형장. 미안하지만 제가 견문이 짧아 그러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실지..."
"흠? 영도회를 모른다고?"
청포 사내는 잠시 나를 촌뜨기를 보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어느 산골에서 수련하다 온 도우(道友)인지 참. 연국과 벽라국의 국경에서 벌어지는, 2년에 한 벌씩 열리는 최고 교류회를 모른단 말이오? 우리 연기기 저계 수도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수많은 수도물품과 영약, 법기, 공법, 법부(法符) 등이 잔뜩 풀리는 교류회건만..."
"허어, 제가 산골에서 수련에만 매진하느라 세상사에는 어두우니, 부디 세상사에 밝은 형장께서 조금 가르침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흠, 흠. 이거 필수지식도 모르는 도우로군. 어디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보시구려."
나는 그의 기분을 띄워주며, 그에게서 조금씩 정보를 얻어냈다.
사내의 이름은 벽문(碧雯)으로.
벽라국 삼대선가(三大仙家)인 청문세가(淸汶勢家), 벽씨세가(碧氏勢家), 공묘세가(孔昴勢家) 중 벽씨세가의 자제라고 하였다.
"뭐, 벽씨세가의 자제라고는 하지만. 방계 중 방계에 가깝네. 때문에 수도자원도 거의 지원을 못 받고, 마땅한 가르침도 없어서 지금까지 연기기 4성 초반에 머문 신세지. 병(丙)의 진식까지는 깨우쳤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려면..."
"하하하, 그나저나 저 같이 마땅한 가문이 없는 수도자들보다는 나은 수준이시지 않습니까."
"자네같이 적을 둔 가문이 없는 산수(散修)들 보다야 낫긴 하지만. 내게도 고충이 꽤 많다네. 수련 자원만 좀먹는 식충이라면서 벌레 보듯이 하는 어른도 있는가 하면..."
나는 벽문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며, 그가 진식이니 뭐니 등 자세한 수도지식을 말하려 할 때는 얼른 주제를 돌리며 여러 정보를 얻어내었다.
대표적으로, 나처럼 가문에 적을 두지 않고 홀로 수련을 하는 수도자는 산수(散修)라 불리는 듯 했다.
이런 산수들은 범인들의 귀족 가문이나 권세가의 뒤에서 숨어 그들을 지원해주며, 그들에게서 수련에 필요한 영초나 영단을 공급받는다고 했다.
혹은 수도가문의 일을 하청해서 해 주거나 그들의 일을 도우며 댓가를 받기도 한다 하였다.
'연국에서 주로 암약하던 연기기 1성 수도자들이 그쪽인가 보군.'
또한 기본적인 수도가문의 구성을 알 수 있었다.
가문의 직계인 본가.
그리고 본가에서 뻗어나온 방계.
그 방계들과 함께 일하는 수도가문의 외부 구성원.
여기까지는 기본적으로 '수도가문'으로 취급되었고.
이 아래로는 방계들이나 외부 구성원들이 하청을 맡기며 범인들을 영도해가는 하청산수들.
그리고 하청산수들과 함께 범인들의 국가를 운영해가는, 한 국가의 황조(皇祖).
여기부터는 반쯤은 범인들과 비슷하게 취급된다고 하였다.
황족은 수련자원이 썩 많이 지급되어 전반적인 실력은 뛰어나나, 워낙 범인들과 얽힐 일이 많으니 그리 취급되는 듯 했다.
그리고 아예 수도가문과 관계가 없는 그냥 산수들.
이들은 수도가문들로부터 크게 인정도 받지 못하고, 사실상 범인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고 했다.
체계적인 가르침을 받지도 않고, 연기기 1성을 벗어나는 경우도 많지 않기에 그냥 대다수의 수도가문에서는 없는 취급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물론 서 도우 같은 경우는, 의식의 크기를 보아 연기기 3, 4성쯤 되어보이는데. 자네 같은 산수들은 예외지. 아마 자네 정도 수준이라면 어떤 수도세가를 가더라도 하청산수로 쉽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이야."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흠흠, 그리고 또 수도종문에 대해서도 얘기해야지. 사실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는 '수도종문'이라는 개념도 있었다고 하더군. 몇 개의 수도가문이 모여서 수도종파를 탄생시키고, 전 대륙의 좋은 자질의 제자들을 끌어모아 그 성세를 누렸다지.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느 날 더 이상 제자를 받지 않고, 바람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네. 가문 어른들은 이유를 아는 것 같지만, 나 같은 방계한테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더군. 허허..."
"......"
아무래도 수도가문 말고, 그보다 큰 개념인 수도종문들은 9할9푼 이상이 등선향을 거쳐 승천문으로 가느라 갑자기 수도종문이 없어진 듯 했다.
벽문은 정말 쉴새없이 떠들어댔고,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가 내뱉는 정보 하나하나가 전부 내게는 필요한 정보였기에, 나는 아무말 않고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가문 안에서는 수련을 해야하는 분위기 때문인지 늘 마음껏 떠들수 없었던 벽문은, 나처럼 말을 잘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며 물 만난 고기처럼 끊임없이 수다를 떨어댔다.
'영도회라는 곳에 가면, 그때부터는 떨어져야겠어.'
쉴새없이 떠드는 벽문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수도자의 경지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수도자의 경지는 결단기가 끝입니까? 수도가문의 가주들은 대부분 결단기라고 알고 있는데..."
물론 그 이상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내가 무식한 산수인 척을 하며 떠보자, 벽문은 뭔가 또 아는 체를 할 건수를 잡았다 싶었는지 눈을 빛내며 떠들기 시작했다.
"저런, 저런. 서 도우는 정말 모르는 것도 많군. 수도자는 모두 기본적으로, 하늘에 올라 신선(神仙)이 되기 위해 수행을 하는 존재야. 신선이 되어 영생을 하기 위해 수도를 닦고, 그런 수도자들은 우선 크게 세 가지로 나뉘네.
수선삼계(修仙三界)라 하여,
신선의 경지에 도달한 대경계(大境界). 신선에 근접한 중경계(中境界). 그리고 인도(人道)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소경계(小境界)가 그것이네.
소경계의 6단계.
단수(丹修). 연기(練氣). 축기(築氣). 결단(結丹). 원영(元靈). 천인(天人)의 경지.
중경계의 5단계.
사축(四軸). 합체(合體). 쇄성(碎星). 성반(星槃). 개열(開涅)의 경지.
그리고 대경계는 진선(眞仙)의 단계라는데. 나도 잘 모른다네.
어쨌든 이런 경지들이 더 있지."
'단수(丹修)?'
연기기가 가장 낮은 경지가 아니었나?
하지만 이런 것을 물어보면 정체를 들킬 수도 있었기에, 그저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또한, 소경계의 수도자가 중경계에 이르면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또 다른 상계(上界)로 비승하게 된다는 말이 있더군. 뭐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냥 전설일 뿐이라네.
사실 나는 중경계부터는 그냥 전설이나 신화 같은 느낌이고, 사실 소경계의 천인(天人)의 경지가 수도의 끝이라고 생각하네. 그저 신화가 와전되다 보니 중경계니 뭐니 하는 허황된 그런 경지가 전해지는 거지."
"하하하..."
허황된 경지라.
하지만, 나는 도리어 천인경 이상이 실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내 동료들을 데려갔던 수도자들은, 모두 천인기의 수도자들이겠지.'
그들이 악을 쓰고 상계로 비승하려 하는 이유는, 분명히 천인기 이상의 경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흠흠, 그나저나 이제 영도회가 열리는, 영서산(靈緖山)에 거의 다 왔군. 자네는 이번 영도회에서 뭘 구매할 생각인가?"
"아, 구매요..."
"나는 영도회에서 좋은 단약들을 구하기 위해 영석(靈石)을 백이십여개나 가져왔다네. 허허, 나 같은 연기기 저계 수도자에겐 엄청난 지출인 셈이지."
"영석이라..."
나는 영석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듣자하니 영석은 수도자들 사이에서 화폐로 취급되는 물품이었고, 이것까지 몰랐다가는 정말 의심받을 것 같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연국과 벽라국의 국경에 위치한 영서산 산기슭에 도착했다.
'이건...'
나는 눈을 꿈틀거렸다.
뭔가 기이한 기운이 산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전까지봐왔던 수도가문의 영지의 결계와는 달리, 이 산을 감싼 기운은 오기조원의 시야로도 실체를 볼 수가 없었다.
내가 그에 대해 묻자, 벽문은 껄껄 웃었다.
"자네, 정말 시골 산수였군. 보통 이런 큰 교류회나, 혹은 수도가문 본가를 뒤덮은 진법은 방계나 외부 구성원들이 머무르는 영지의 하찮은 진법과는 차원이 다르네.
용맥(龍脈) 그 자체를 동력으로 삼기에 주변의 기운과 완전히 동화되어 의식이 뛰어난 수도자라도 찾기가 쉽지 않지."
"허..."
'그래서 내가 그토록 찾아다녔어도 진씨세가와 막리세가의 본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던건가.'
수도자들의 법술은 확실히 신통한 점이 많았다.
"자, 같이 영도회 안으로 들어가세나. 아, 잠시만. 자네 영도회를 몰랐던 것을 보니, 초대장은 없겠지?"
"초, 초대장 말입니까?"
"그래. 영도회에서는 괜히 범인들이 수도자들의 교류회에 섞여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수도자들에게만 초대장을 발부한다네. 그래도 뭐 폐쇄적인 교류회도 아니니, 영석 10개만 지불하면 입장권을 받을 수 있다네. 가지고 온 영석은 당연히 있겠지?"
"영석.."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작게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벽 형. 저는 사실 영도회 바깥에서 잠시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말입니다. 영서산 인근에 사는 벗인데, 그 친우와 만나서 추후에 함께 들어가보도록 하지요."
"허허, 그러게나. 그럼 나중에 봅세."
벽문은 영도회에 들어갈 것을 기대하자 신이 났는지, 산기슭의 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얼마 후,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대장을 보여주거나, 입장권을 구매해라.]
"여깄습니다!"
벽문은 품에서 작은 문양이 그려진 부적을 꺼냈고, 부적은 저절로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종이가 불타고, 문양만이 남아 벽문의 손등에 안착했다.
[영도회 참가를 환영한다.]
번쩍!
잠시 후, 주변 풍광이 일그러지는 듯 하더니 벽문의 모습이 사라졌다.
'쯧, 따라들어갈 수 있을까 했더니만.'
나는 혀를 차며 그를 따라들어가려던 계획은 포기했다.
목소리의 주인이 은연중 드러낸 의식의 크기는 축기기 후기, 막리황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지난 한달간 벽문과 함께다니며 수도계에 대한 기반지식을 어느 정도는 쌓았으니 손해보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교류회라는 것도 끝나기는 할 테니까. 추후에 저 진법결계 안쪽에서 나오는 청문세가 수도자를 찾아가 추천권을 보여주면 되겠지.'
유명한 교류회라면 청문세가의 수도자들 역시 잔뜩 올 테니, 나는 그냥 이 인근에서 대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였다.
번쩍!
허공이 일그러지더니, 빛무리와 함께 산기슭의 한 곳에서 청색 장포를 입은 수도자들 한 무리가 걸어나왔다.
7명 정도의 무리.
"하하하, 형님. 이번 영도회에서는 상당히 많은 영석을 만졌습니다."
"그래 그래. 분명 다른 가문 놈들도 하청산수를 시켜서 아닌 척 우리 단약(團藥)을 구매하더구나."
"그놈들도 내심 인정하는 것이겠지요. 우리 막리세가의 연단술(練團術)이 최고라는 걸 말입니다."
피냄새가 난다.
그들의 옷에는 익숙한 가문의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막리세가.
연국의 황실이자, 최악의 마도 가문.
"심지어 이번에는 축허단까지 가져왔으니까요. 인기가 없을 리 없잖습니까. 하하하, 연기기 수도자가 먹으면 수명을 8년이나 늘려주는 그 절세의 영약이..."
"흐흐흐, 이번에 영지로 돌아가면 더욱 더 단약을 많이 만들어야겠어. 생포조 놈들한테 단약재료를 더 많이 잡아오라고 닦달해야겠군."
"생포조 놈들도 요즘 깐깐해졌습니다. 막리정 그 방계 놈이 왠 괴인에게 살해당해서 진씨세가 놈들이 격렬하게 내외로 연국 황조를 찬탈하려 하는 것 때문에, 생포가 어렵다는 겁니다."
"쯧쯧,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월수궁무록으로 존재감을 지우고, 은식술로 의식을 집어넣으며 그들을 몰래 미행하였다.
그리고, 막리세가의 수도자들이 영서산에서 어느 정도 떨어졌을 때.
나는 은신을 풀고 막리세가의 수도자 한 녀석에게 다가갔다.
"하하, 그나저나 저번에 제게 할당된 재료가 얼마나 발버둥을 치던지. 정혈을 수급하기가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우선 팔다리를..."
부웅-
"잘ㄹ.."
내 일검에, 아까부터 역겨운 소리를 지껄이던 막리세가의 수도자 한 녀석의 목이 잘려나갔다.
"...어?"
막리세가의 수도자 놈들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인지, 당황한 눈빛으로 갑자기 나타난 나를 바라보았다.
"영서산 인근에서는 뭐가 있을지 몰라, 참아주고 있었다만."
나는 이를 갈며, 이 더러운 마두(魔頭) 녀석들을 노려보았다.
"더 이상 그 역겨운 얘기를 더 듣고 있기가 힘들구나. 금수(禽獸)보다도 못한 놈들."
생각해보니, 이 역겨운 것들에게 검을 쓰는 것조차도 낭비일 것 같았다.
나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전부 죽어라."
콰광!
허공에 맺힌 강기가, 황급히 법술을 쓰던 또 한 명의 막리세가 수도자의 육신을 박살내 버렸다.
골육과 선혈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뭐, 뭐냐! 감히 대 막리세가의 사람에게 이런 짓을.."
단맥도, 산바람!
피웅!
내 수도에서 뻗어나간 강기가, 바람보다도 빠르게 입을 놀리는 수도자의 머리통으로 날아갔다.
퍼벙!
해당 수도자는 방어법술을 펼친 듯 했으나, 내 강기는 수도자의 방어법술을 통채로 박살내고 수도자의 머리를 수박처럼 으깨버렸다.
순식간에 일곱 명 중 셋이 죽었다.
"이이익, 연기기 4성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것이 우리를 혼자 공격해! 막리세가의 저력을 보여주마!"
연기기 5성 수준의 의식영역을 가진 수도자가 법결을 맺었다.
이 수도자 무리의 우두머리인 듯한 그 녀석에게서 강한 음기(陰氣)가 풍겨져 나오더니, 음기의 환(環)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하하하, 막리세가의 음환법술에 맞은 놈은 전부 살이 썩어들어가며 결국 한줌 혈수로..."
단악검법, 등맥
내가 손을 휘둘러 올려베자, 음환은 그대로 쪼개져 양 옆으로 날아가 버렸다.
콰광, 콰과광!
내 뒤로 날아간 음환의 법술들이 각기 나무들에 적중했고, 나무 두 그루가 그대로 썩어버렸다.
"어, 어어..."
단악검법, 산수화!
양 손을 펼치고, 손가락 끝에 강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사방으로 난무(亂舞)한다.
콰광, 콰과과광!
사방에 검흔(劍痕)이 새겨지며, 내게 음환의 법술을 날렸던 녀석을 포함해, 세 명의 수도자들이 그대로 갈가리 찢겨나간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막리세가의 수도자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사, 사, 살려 주십시오! 가, 가진 건 다 드리겠습니다."
"...네 동료들의 사체에 남은 단약 같은 것이 있나?"
"예! 예! 있습니다! 저희 막리세가가 얼마나 단약으로 유명한 세가인지는 아실 겁니다. 여기, 다, 전부 다 드리겠습니다."
녀석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손을 벌벌 떨며 사체들에서 몇 개의 단약을 꺼내고, 자신의 품에서도 단약을 꺼냈다.
"흠, 이 단약들의 재료는 뭐지?"
"이, 이건 청아환이라고 하여, 여인의 팔 한쪽이 들어가는 피부미용 단약입니다... 산요초와 개진액. 또한... 그리고 이건..."
나는 그 단약들의 재료를 일일히 들은 후, 마지막 남은 녀석에게 물었다.
"단수(丹修)의 경지라는 것에 대해 설명해라."
"다, 단수 말입니까? 그걸 모르는 수도자가... 아, 아닙니다. 실언했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막리세가 수도자의 입에서 단수기(丹修期)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왔다.
"영질을 지닌 이는 모두 본격적으로 연기기에 들어가기 전에, 천지영력을 받아들일 법화단전(法化丹田)을 형성해야 합니다. 그 법화단전을 형성하는 기간을 단수기라 부릅지요.
사실 기(期)라 부르기에도 미약한 경지이고, 사실 몇십년 전에는 연기기가 14성이 아니라, 단수기까지 포함해서 15성이었던 적조차 있습니다. 최근에 조금 구분하자고 하여 단수기라고 따로 떨어진 것이지요."
"흠, 무림인들의 천지심법 같은 느낌인가."
무공도 역시 내공심법을 배우기 전 천지심법 등으로 단전을 활성화하는 단계가 있었다.
수도자들 역시 본격적으로 수도공법을 배우기 전 수선단전을 만드는 단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 정도면 확실히 경지라고 부를 이유도 없을 정도긴 하군..."
"예, 예. 그렇습니다. 천영근자는 하루 이틀이면 법화단전을 완전히 생성하고, 진영근자 이상은 한달이면 넘어가고, 잡영근자들도 수도공법에 대한 이해도가 좋은 이들은 1년이면 충분히 법화단전을 형성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자질이 극도로 안 좋은 이들은 3년에서 5년 정도 걸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둔재들이 수도자들의 전체 인구 중 8할 이상을 차지하니, 그런 이들을 위해 구분한 경지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벽문에게 묻지 못했던 몇몇 지식을 막리세가의 수도자에게 질문해서 수도계에 대한 기반지식을 더욱 더 보완하였다.
그렇게 질문이 끝난 후, 나는 이 녀석이 바닥에 늘어놓은 단약함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중 네가 직접 연단한 단약들이 있나?"
"예! 있습니다! 저는 이래뵈어도 나름 실력있는 연단사이고, 이 중 8할 이상의 배합법과 연단법을 알고 있습니다. 살려주신다면.."
"...이 중에서 직접 복용한 종류의 단약은?"
"저, 전부 복용해 보았습니다. 저를 살려만 주신다면 어떤 단약이 대인께 적합한지.."
나는 막리세가의 수도자를 노려보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연단을 하며, 무슨 생각이 든 적 없나?"
"예, 분명 연단을 할 때마다 실력이 느는 것에 뿌듯하고..."
"그렇군."
나는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수도자를 바라보며 손을 들어올렸다.
"왜, 왜... 질문에 다 대답..."
푸콱!
이 뻔뻔하고 더러운 것에게, 손이 닿는 것조차 싫다.
나는 강기를 쏘아내서 수도자의 머리를 터트려 버렸다.
"뭘 저질렀는지 자각조차 없군. 아예 사고 방식 자체가 틀린건가..."
제아무리 수도가문의 일원으로 자라나, 범인들과 다른 세계를 보며 살아왔다지만.
아무리 그럴지라도, 인두겁을 쓴 이상 같은 인간에게 저럴 수가 있는가.
나는 막리세가의 수도자들의 시체를 길에 내버려둔 후, 녀석들이 모아온 단약들을 끌어모았다.
그런 후, 나는 양지바른 곳을 찾아, 땅을 파고 단약들을 하나하나 나누어 묻었다.
얼마 후, 양지바른 곳에는 조그마한 봉분이 여러 개가 생겨났다.
"...시체를 찾을 수 없어 이렇게 묻어드렸습니다만.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
나는 위령의 제문을 짧게 읊어 명복을 빌어준 후, 다시 막리세가 수도자들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다.
"너희 영석은 내가 좀 가져가마. 불만 있으면 말해라."
수도자들의 봇짐을 뒤지자, 나는 한 무더기의 영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 막리세가의 수도자에게 영석의 값어치를 대충 들은 나는, 영석들을 잘 갈무리해 품에 넣었다.
약 1600여개의 영석이 단번에 내 품에 들어왔다.
'사람을 갈아넣어 만든 영석으로 돈 좀 만졌나 보군.'
수도공법 수련에 도움도 되고, 법력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는 귀한 자원이 내 손에 상당량 들어온 것이었다.
"그럼, 영도회라는 곳에 가 볼까."
나는 다시 영서산으로 향했다.
원래는 영서산 인근에서 청문세가의 수도자들을 기다릴 예정이었지만, 이렇게 되면 그냥 안으로 들어가서 찾아도 될 것이다.
나는 영서산의 산기슭.
벽문이 걸어갔던 방향으로 걸어갔고, 주변 공간이 이지러지는 것을 느꼈다.
방향을 알기 어려운 도중.
왠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왔다.
[초대장을 보여주거나, 입장권을 구매해라.]
나는 영석 10개를 건냈고, 그러자 일그러진 풍광의 틈새로 빛무리가 날아들며 내 손등에 안착했다.
[10일 입장권. 열흘이 지나면 나가야 한다.]
"영도회는 총 며칠동안 열립니까?"
[총 40일간 열리며, 현재 영도회를 연지 20일이 지났다.]
"10일 입장권을 한장 더 주십시오."
[영석 10개.]
나는 영석 10개를 더 내고, 총 20일을 머물 수 있는 입장권을 받았다.
[영도회에 온 것을 환영한다.]
번쩍!
얼마 후, 풍광이 더욱 이지러지며, 나는 어느새 진법의 안쪽에 진입해 있었다.
"이곳이... 영도회?"
나는 그곳으로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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