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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차의 첫날
번쩍!
"허어억!"
나는 숨을 들이쉬며 눈을 떴다.
살아있다.
그리고, 익숙한 산내음이었다.
나는 다시 회귀한 것이었다.
"서 대리.."
"흠, 잠시 조용히 하지."
파밧!
나는 전명훈이 뭐라 말하기도 전, 빠르게 움직여 전명훈의 수면혈을 짚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려는 김영훈, 오현석, 강민희, 오혜서, 김연의 수면혈을 일시에 짚어버렸다.
풀썩, 풀썩, 풀썩!
나를 제외한 6인은 전부 그대로 잠들어서 쓰러져 버렸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빠르게 수면초들을 캐냈다.
그런 후 능숙하게 즙을 짜내어 각각의 입으로 흘려보내주었다.
이제 앞으로 서너시진은 깰 수 없을 것이다.
"...조금 뻐근하군."
아무런 기(氣)도 없는 몸으로 억지로 기혈을 끌어올리느라 그런 것인지, 팔다리가 조금 뻐근하였다.
나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빠르게 황주삼을 캐 내어, 얼른 입에 넣었다.
와드득, 와득-
흙조각이 조금 입에서 씹혔지만 그 정도야 참을 수 있었다.
얼마간 황주삼을 씹어삼키고 나니, 뱃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대로 자리에 앉아서 운공을 하며 용맥기공을 우선 경맥에 안착시킨다.
앉아서 대주천을 몇 번이나 했을까.
"후우..."
나는 기본적으로 몸의 피로가 전부 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틀이 잡혔으니, 이제 제대로 시도해 볼까..."
지난 삶의 마지막.
그 때에 막리황신과 싸우던 중, 제자들의 영혼이 이끌어준 새 경지.
"후우우..."
심호흡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 순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단악검법을 잡은 자세를 취했다.
김영훈이야 가부좌를 틀고 깨달음을 얻었었지만, 나는 아무래도 기수식을 잡는 것이 조금 더 마음이 편한 탓이었다.
부웅- 붕-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으로, 그때의 기억과 감각을 되살린다.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欲)...
일곱 가지의 기본적인 의념.
그 기본 의념을 바탕으로, 총천연색의 색조들이 천지간에 가득 차오른다.
모두 전부 나 하나에서만 나오는 무지막지한 의념들이었다.
'통합한다.'
하지만 많아보일 지언정 주체는 결국 하나.
모두 본디 하나의 색조에서 뻗어나왔다.
총천연색의 색조들이 얽히고설키며, 통합된다.
그리고, 완전한 무색(無色)이 되어 허공으로 스며든다.
무한한 색조들의 변화가 극한에 다다르며, 아무것도 없는 무(無)와 같이 변한다.
그렇게, 내 의념은 의식(意識)의 형태로 진화하며 주변의 공간을 잠식한다.
'들어온다.'
눈을 완전히 감고 있음에도, 주변 공간의 모든 정보들이 뇌리로 들어왔다.
단순히 의념을 읽는 게 아니었다.
모든 의념을 통합하여, 세계(世界) 그 자체를 감지한다!
색색거리며 잠을 자는 6인의 동료들.
풀 내음들.
땅 밑을 기어다니는 작은 벌레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나뭇잎들.
모든 정보가 한 손아귀에 잡힐듯이 들어온다.
그리고, 나는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을 개화(開化)하였다.
단순한 의념의 흐름이 아닌, 세계의 흐름.
세상 그 자체를 운행하는 천지간의 흐름!
천지영기(天地靈氣)!
'이것이... 영기(靈氣)...'
삼라만상 모든 것에는 영기가 있다.
인간과 같은 의념은 없을지언정, 각기 고유한 기(氣)를 가진 것이었다.
그 기(氣) 각각 사물의 흐름과 운행에 맞춰 자연스레 흐르고 있었다.
나는 땅 밑을 기어다니는 작은 개미의 기의 흐름을 인지하며, 그동안 궁금했던 의문 중 하나를 풀 수 있었다.
의념은 생자(生者)만이 가진 것이다.
그렇기에 강시는 검기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왜 나는 강시에게서도 의념을 감지하는가.
'인간의 의념이 아니었던 거로군.'
그저, 강시에게도 당연하게 흐르는 기의 흐름을 읽어내었을 뿐이다.
우우웅-
수천 가락의 천지원기의 흐름을 인지하던 중.
나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머리가, 아프다.'
마치 터질것만 같았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현재 실시간으로 머리가 조금씩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이 비슷한 기분을 아주 오래전 느낀 적이 있었다.
일류에서 절정으로 넘어가려던 시절.
하루 종일 절정 고수가 보는 의념의 세계를 모방하던 그때!
그때에 뇌가 과부화되었을 때, 잠시 이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뇌가 과부하되고 있다!'
압도적인 정보량에 당장이라도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비유가 아닌, 실제로 상단전이 주변의 기를 조금씩 흡수하며, 머리가 실제로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맞아, 그때도 그랬었군.'
지난 삶의 막바지에서도, 생각해보니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저 그때는 뇌 속의 귀곡성과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을 뿐.
실제로 수도자와 같은 의식을 갖추게 되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지난 삶의 깨달음을 참오하며, 그 당시 했던 것과 같은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내 몸을 관조한다.
상중하단전의 균형이 비틀려져, 부조화스럽게 어긋나 있었다.
상단전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있었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점차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머리가 결국 상단전의 성장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 버릴 터.
'육신을, 진화시킨다!'
천지영기는 삼라만상을 조화롭게 이루고자 하는 본질을 가졌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극심한 부조화를 호소하는 나를 향해 천지원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천지영기 중 가장 기본적이며, 천지만상 모든 기운의 운행의 시초.
오행영기(五行靈氣)!
다섯 가닥의 기운이 내 상단전 방향으로 모여들며, 상단전의 위쪽에서 뭉쳤다.
이윽고, 오행영기는 부스러지며 하나로 얽히더니 내 코와 입을 통해 내 신(身)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후우우...'
전신에, 천지만상의 균형을 이루는 데에 가장 근간이 되는 다섯 영기가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육신을 진화시킨다!'
이 다섯갈래의 영기를 기반으로, 육신이 이 상단전의 성장을 견딜 수 있게, 완전히 개조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환골탈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예전에는 그저 체내로 스며드는 영기가 알맞게 몸을 진화시킨다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영기는 몸을 진화시키지 않는다. 그저 몸을 개조시키는 데에 쓰이는 재료가 될 뿐.
환골탈태를 이루는 주체는, 결국 나 자신이었다.
'내가, 직접!'
우득, 우드득!
'내 몸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의지로 근골을 빼내며 다시 짜맞춘다.
경맥을 이리저리 끌어올리며, 다시금 최적화된 경로로 흐르게 한다.
오행영기는 비록 도움은 주지 않았지만, 어떻게 다시 근골을 짜 맞추는 것이 '옳은' 길인지를 알려주었다.
거기에 의원이었던 나의 의술지식이 더해지자, 나는 아주 쉽게 육신을 개조할 수 있었다.
근골이 뒤바뀌고 피부가 벗겨진다.
쓸모없는 지방질이 전부 바깥으로 밀려나며, 혈맥 곳곳에 스며든 니코틴과 콜레스테롤 등 독기(毒氣)가 빠져나갔다.
전신의 근골이 천지의 흐름을 받아들이기에 최적화된 신체로 개조된다.
무(武)를 수련하기에도 최상의 신체.
경맥이 넓어지고, 근골이 더욱 튼튼해지며 단전이 훨씬 넓어졌다.
동시에 전신의 모든 미세혈도가 활짝 열리며 천지원기를 조금씩 빨아들였다.
코로 숨쉬지 않고 순수한 피부호흡만으로도 살 수 있을 지경.
지금의 나는, 평범한 인간이라기보단 아예 완전히 새로운 신인류(新人類)나 다름없었다.
번쩍!
눈을 뜨자, 눈에서도 정광(正光)이 흘러나오는 듯 했다.
"후우..."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으로, 기수식을 펼치며 단악검법의 월악(越岳)을 펼친다.
발 밑, 풀 끝에 달려있던 작은 이슬이 내 기수식에 튕겨오른다.
내 동작에, 이슬방울은 허공으로 더욱 더 튕겨올랐고, 내 눈에는 그 이슬방울의 동선 하나하나가 훤히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이슬방울에 맺힌 한 인영을 볼 수 있었다.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 썩 잘생기지는 않았어도 군더더기가 없어진 얼굴.
그리고 많이는 아니지만, 상당히 젊어진 얼굴.
환골탈태를 하며, 반로환동(返老還童)한 나의 모습이, 이슬방울에 비치고 있었다.
슈칵!
나는 손으로 허공을 갈랐고, 그 날카로운 기세에 허공에 퉁겼던 이슬방울이 반으로 갈라졌다.
끊임없이 검법을 펼치며.
천지간에 떠다니는 기(氣)의 흐름.
그 흐름 자체에다가 나의 의념을 흘려넣으며 내공을 불어넣는다.
우우웅-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강기(罡氣)가 맺히기 시작했다.
이제는 허공을 흐르는 그 '흐름' 그 자체를 무기로 삼을 수 있다!
콰악!
허공에 맺힌 강기를 잡고서, 단악검법의 일 초부터 22초까지의 초식을 다시 사용한다.
그리고, 나는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던 일을 해 보기로 했다.
타앗!
산군월악비를 펼치며, 근처에 있던 가장 높은 나무로 뛰어올라간다.
순식간에 나무의 정상에 오른 나는, 그곳에서 다시 한번 나뭇가지를 박찼다.
보인다.
새로이 얻은 식(識) 안쪽으로.
새로이 얻은 새로운 육신의 감각 안으로.
창공을 흐르는 무수한 바람의 결들이.
그 바람 사이로 흐르는 천지영기의 흐름들이.
'이렇게 하면 되는건가.'
머릿속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어떤 곳을 '밟을' 수 있는지가 떠올랐다.
나는 최적화된 동작으로, 어떤 낭비도 없이, 바람의 결과 천지원기의 흐름을 '밟았'다.
파앙!
내 발이, 허공을 박찬다.
허공답보(虛空踏步)!
비록 아직 익숙하지는 않은 탓인지, 내공이 썩 많이 소모되었지만 나는 전신을 관통하는 짜르르한 쾌감을 느끼며, 계속해서 허공을 밟았다.
파앙, 파앙, 파앙!
허공을 밟으며, 끊임없이 하늘로 치솟는다.
더욱 더 높이.
더욱 더 멀리!
점차 지상이 까마득해지고, 하늘이 가까워졌다.
나는 더욱 더 빠르게 발을 놀리며, 허공의 흐름을 밟고 하늘을 향해 쇄도했다.
어느 순간.
푸확!
나는 하늘을 흐르는 구름을 뚫고, 구름 너머에 올라가 있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
전신에 묻은 물방울들을 털어내며, 새하얀 운해(雲海)를 발 아래에 두고, 나는 그렇게 웃었다.
드디어, 도달했다.
바라고 또 바랐던 그 경지에.
내가 목표로 하던, 최소한의 경지에.
나는 어째선지 눈물이 나는 것을 느꼈다.
눈물은 구름에서 묻은 물방울들과 섞이며, 하늘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맙다."
나는 지난 삶의 제자들에게, 이젠 다시는 볼 수 없는, 시간선 너머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 덕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나는 너희를 마음으로 키웠건만.
이제는 영원히 너희를 볼 수 없겠지.
되돌아온 시간의 너희는 내가 키운 제자들이 아닐 테니까.
이젠 다시는 볼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마음을 다해 감사하는 것 뿐.
고맙다, 제자들아.
그리고, 미안하다, 제자들아.
어찌되었건, 나는 너희를 돌보며, 너희의 바람을 들으며, 그리고 너희에게 어리석은 아집을 부리며... 그 아집을 베어내며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단다.
한없이 도달코자 했던 경지.
"오기조원(五氣朝元)에."
허공답보를 유지하지 않고, 바람의 결을 맞으며 나는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시원한 창궁의 바람을 맞는다. 동시에 나는 내 제자들의 기억을 가슴 속에 묻었다.
이전까지의 추억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나는 내가 이제야 제대로 된 출발선에 섰다는 것을 인지했다.
푸확!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겠지...'
구름 속에 파묻히며, 나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래, 이제부터가 진짜 출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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