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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7)
결전 당일.
황성 바깥에서의 대기 시간.
나는 책을 한 권 펼쳐들고,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흠, 그런데 그건 왜 달라고 한 거냐?"
김영훈이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며 의아한듯 물었다.
내가 읽는 서책은 제목이 없었다.
그야, 김영훈이 쓴 서책이었으니 말이었다.
오기조원에 다다른 천하제일인 김영훈이 만들어낸, 수도자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만든 무공, 월수궁무록.
그런 월수궁무록을 다음 회차의 김영훈이 이어받아 한층 진화시킨 조수월무록.
그리고 그런 조수월무록을 전승받은 김영훈이, 조수월무록으로 응용할 수 있는 모든 길을 파헤치며, 그 모든 심득을 적어낸 조수월무경.
그리고 다시 조수월무경을 익힌 김영훈이 6권의 조수월무경을 통합시키고 간략화시킨 조수월무결.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이번 생의 김영훈이 조수월무결을 익히고,
또 다시 수도자들과의 끝없는 전투를 통해 다시 한번 진화시킨 조수월무결이었다.
조수월무경과 조수월무결이, 오기조원에서 그 다음의 경지로 넘어가는 방법과 깨달음을 논했다면.
조수월무결을 진화시킨 이 서책은, 오기조원 너머의 경지에서, 그 경지의 극한(極恨)을 보는 것에 대해 기술된 서책이었다.
물론.
'봐도 이해가 안 되는군.'
조수월무결을 또 다시 진화시킨 무학체계인 탓인지, 나는 또 다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해 되지 않는 것을 붙잡고 끙끙대는 게 눈에 보인 탓인지, 김영훈은 혀를 차며 말했다.
"억지로 이해하려 할 필요 없다. 그건 완성된 무학이 아니야."
"완성된 게 아니라니요?"
"흠, 무학이란 건 전승되는 게 아니냐. 내가 고금제일인이 되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고 스러지겠지. 하지만 내가 남긴 무학이 남음으로써 나 자신이 증명되는 것이야. 그러므로, 무학의 완성은 전승이란 말이지."
그는 내 손에 들린 서책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런데, 그 무학의 최소 입문 조건은 오기조원이야. 일류가 절정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듯이. 절정 초기가 삼화취정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듯이... 오기조원 이하는 그 무학체계를 이해할 수 없어. 그런게 제대로 전승이 될 리가 없으니 미완성인 게지."
"흠, 한 마디로 완성은 됐으나, 입문조건이 너무 극한인지라 미완성이란 겁니까?"
"그래. 그 무학을 이제 삼화취정 정도만 되어도 이해할 수 있게 완화(緩化) 시키는 작업이 필요한데..."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씨익 웃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제 생각에, 그냥 오기조원에 이를 무인이나. 김 형 급의 재능을 가진 이에게 주면 완화도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흐흐, 은현아. 나 같은 무공 재능은 이전에 천 년. 이후에 천 년. 그 안에 절대로 나올 수 없다. 내가 장담하지. 내 재능은, 차라리 작위적일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다..."
"흠, 그렇긴 하지요."
매 생마다 무학을 진화시키며 다음 경지로 더더욱 빠르게 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저 재능은 정말로 말도 안되는 것이다.
하나.
'걱정 마시지요. 김 형. 이 무학은, 제가 다음 생의 당신에게 다시 전승해드리겠습니다.'
그의 무학은 굳이 완화시키지 않아도 전승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니까.
"...그나저나, 한번 이 무학의 이름을 정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흠, 이름이라."
잠시 고민하던 그가 씨익 웃었다.
"수도자를 바라보며(眺修), 결국 무공의 틀을 뛰어넘은(越武) 구결(訣). 그것이 조수월무결이지. 이 무공의 창시자는, 평생을 수도자를 바라만 보다가, 그렇게 끝났을 것이야. 결코 수도자를 넘을 수 없었겠지.
하지만, 나는 조수월무결을 다시 한층 진화시키며, 수도자를 넘어설 가능성을 발견해냈다... 지금의 내 경지라면 축기기 후기 수도자와 힘싸움으로 밀리지 않아! 결단기 수도자 역시 암습하면 상당히 유의미한 부상을 남길 수 있으니..."
그가 허공에 글자를 썼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강기가 허공을 맑게 수놓았다.
"수도자를 뛰어넘고(越修), 무학의 틀을 뛰어넘어(越武) 도달할 기록(錄)!"
월수월무록(越修越武錄)
그것이, 새로 진화한 무학서의 이름이었다.
'월수월무록...'
마치, 월수궁무록과 조수월무록을 합친 듯한 이름.
나는 어쩐지 그 이름을 보며, 1, 2회차의 영훈 형님을 떠올렸다.
그들이 이루지 못한 비원이, 천천히 완성되어가고 있다.
나는 찬찬히 웃으며, 전부 읽은 월수월무록을 품에 집어넣었다.
구결을 외우는 데엔 성공했으니, 또 다시 전승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오늘 설령 죽더라도.
"갑시다, 김 형."
"그래, 슬슬 시간이군."
오늘, 연국의 황조(皇祖)가 바뀔 것이다.
파아아앗!
서경성(西京城) 상공.
그곳에서 푸른 빛과 붉은 빛이 번뜩였다.
진씨세가와 막리세가의 협의가 완전히 끝났다는 뜻.
'이제 진입하기만 하면 된다.'
번쩍!
서경성 동문, 서문, 남문, 북문.
사방문 방향에서 청색의 빛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서경성 남동, 서남, 북서, 동북 방향에서도 적색의 빛이 터져나왔다.
막리세가와 진씨세가의 축기기 수도자들이 내는 빛.
그 빛은 서경성의 상공에서 얽히고설키더니, 서경성 전체에 법술(法術)의 영향력을 드리웠다.
쿠구구구-
두 수도가문이 합의해서 펼친, 수도자들의 결계가 성을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서경성을 드나들던 일반 행인들이 모두 비틀거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일류 중기 이하의 무인은 모조리 정신을 잃고 길가에 드러누웠으며, 일류 후기의 무인 정도만이 각자 병장기를 잡고 결계의 영향에 간신히 저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검신합일 등의 집중을 잠시라도 해제하면 그대로 결계의 영향력에 잠식되어 쓰러지고는 했다.
이제 서경성 내에서 의식을 가진 것은, 의념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절정경 고수들뿐.
그마저도 절정경에 든지 얼마 되지 않아, 상시 의념의 세계에서 활동할 수 없는 무인은 의념의 세계에서 활동할 집중력이 모두 사라지면 다시 기절할 터였다.
'무시무시하군.'
수도자들의 무서움은 단순히 개개인의 강함이 아니었다.
그들이 모여서 펼치는 진법과 신통!
성(城) 하나를 한순간에 장악할 수 있는 법진을 축기기 수도자 단 여덟 명이서 펼친 것이었다.
그마저도 진씨세가와 막리세가의 수도자들이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8명이 펼친 것이지, 실상은 축기기 수도자 4명만 있어도 이 진을 펼치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거기에 절정경 이하는 저항조차 제대로 못할 정도이니, 범인의 군대는 아무리 모여도 수도자들을 이길 수 없다.'
이러니, 저들이 범인들을 벌레 취급하는 것일 터.
우리가 아무리 외쳐봤자 수도자들이 인간 취급을 하지 않으며, 들은 채도 하지 않는 이유일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가 있지 않은가.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도리가 있지 않은가.
나는 막리세가의 만행을 떠올리며, 이를 부득 갈았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네놈들을 막을 것이다.'
타닷!
결계가 펼쳐짐과 동시에, 나는 황성 쪽으로 신법을 펼쳤다.
동시에 서경성 곳곳에서 잠복하던 내 제자들과 김영훈의 추종자들 역시 병장기를 집어들고 나섰다.
또한, 결계 너머로 적포를 입은, 100여명의 진씨세가의 연기기 수도자들이 비행법기를 타고 날아오고 있었다.
우웅!
결계가 펼쳐진 서경성 안쪽.
그 안쪽의 중심부, 황성(皇城)의 주변으로, 황궁을 뒤덮는 짙푸른 결계가 펼쳐진다.
한 눈에 보기에도 두꺼워보이는 결계진.
그 안쪽으로 청포를 입은 막리세가의 수도자들이 법결을 맺으며 진법을 강화하고, 법술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견고해 보이는 수성(守城)!
그러나, 김영훈이 날아올랐다.
파앙, 파앙!
그가 허공을 밟고 날아오르며 손을 뻗는다.
"모두, 진입을 준비하라!"
그의 목소리가 서경성을 뒤덮는 듯 했다.
허공에 뜬 김영훈이, 나직하게 장심(掌深)을 뻗는다.
그의 장심에서 동그란 환(丸)이 흘러나왔다.
'저것이...'
나는 그가 이룩한 경지를 눈에 담았다.
그의 손 위로 떠오른 강환(罡丸)이, 환한 빛을 내뿜는다.
그가 이번 생애에 또 다시 개척한 경지.
월수월무록을 쓴 심득!
빛의 환이, 세 갈래로 쪼개졌다.
세 개의 강환!
그러나, 세 개의 강환은 김영훈을 주변으로 공전하는 듯 하더니, 또 다시 세 개로 쪼개졌다.
아홉 개의 강환!
아홉 강환이 김영훈의 등 뒤로 도열했다.
직후, 강환들은 김영훈의 앞으로 하나, 그의 양 옆으로 네 개가 늘어섰다.
꽈과과과광!
아홉 개의 빛이 황궁을 덮은 진법에 떨어졌다.
푸른 결계진에 아홉 개의 바람구멍이 뚫렸다.
"진입!!"
촤라락!
진씨세가의 연기기 수도자들이 부적을 날리자, 부적들은 결계의 바람구멍에 날아가 붙었고, 결계의 수복을 막아냈다.
김영훈의 일격(一擊)에 이만큼의 구멍이 생길줄은 몰랐던지, 막리세가의 수도자들이 당황하는 것이 눈에 띌만큼 보였다.
타앗!
나는 산군월악비를 펼치며 날듯이 황궁 외벽을 타고 올라가, 김영훈이 뚫어놓은 구멍으로 들어갔다.
"범인 놈이 들어왔다! 막..."
단맥도, 산바람!
푸콱!
강기를 담은 내 찌르기가, 막 소리치려는 막리세가 수도자의 입을 꿰뚫고 그의 연수에 바람구멍을 내 놓았다.
단악검법, 구 초.
'산수화(山水畵).'
콰과과광!
검강(劍罡)이 실린 내 검이 사방팔방으로 난무된다.
대각선으로 그저 마구 흩뿌려지는 것 같았으나, 하나하나가 모두 최적의 동선!
최적의 동선으로 그어진 일검 일검이 연기기 저계 수도자들의 방어법술을 그대로 박살내고, 그들의 몸을 찢어발겼다.
황궁 외벽에 생긴 한 쪽의 구멍.
내가 있는 곳에, 삽시간에 혈무(血霧)가 일었다.
"크윽, 최상승 무림인이다! 모두 강시를 앞세우고 후방에서 법술을 준비해라!"
키에엑, 키에에엑!
시커먼 강시들이 시독(屍毒)을 흩뿌리며 내게 달려들었다.
이 초, 입산(入山)
십사 초, 기산심천(氣山心天)
연계기(連繫技)
기산입로(氣山入路)!
부웅!
하단세로 전환하며, 경맥을 열어젖혀 강기의 폭을 넓히며 그대로 넓게 베어간다.
슈콰광!
일초(一招)에, 사방에서 달려들던 강시들의 다리가 잘려나가, 쓰러진다.
'심산(深山). 등맥(登脈).'
산군월악비를 펼치며, 후방에서 진언을 외던 수도자의 품으로 들어가, 그대로 올려벤다.
콰드득!
내 검강이 수도자의 방어법술을 그대로 파고들며, 수도자의 육신을 대각선으로 쪼개버렸다.
"어, 어어...이, 이 범인 따위가..!"
당황하던 다른 수도자들이 무언가 법결을 썼다.
촤아악!
피유웅!
쿠우우우-
수구(水球)와 풍인(風刃), 음환(陰環)의 법술들이 내게 각기 다른 방향에서 쏘아져온다.
'유곡(幽谷).'
나는 유곡에 더불어 조수월무록의 구결을 운용하며, 법술들의 안쪽에서 느껴지는 의념을 그대로 파고 들어가, 법술들의 힘의 방향을 비틀었다.
한 바퀴를 그대로 회전하며, 세 가지의 법술들을 모조리 무화(無和)시킨다.
법술들은 내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무, 무슨..."
'괴암(塊巖).'
붕, 붕, 붕!
콰가가각!
나는 그 자리에서 회전하며, 당황하는 수도자들에게 원형의 검강을 쏘아냈다.
채 다음 법술을 사용할 틈도 없이, 수도자들은 방어 법술이 으스러진 채 내 검강에 휘말려 갈려나갔다.
사방으로 육편이 비산하며 혈향이 코를 찔렀다.
내 엄청난 소란에, 수도자들의 이목이 전부 내 쪽으로 쏠렸다.
"저 무림인부터 막아라!"
"강시를 전부 투입해!"
"쫓아내라!"
수백 마리는 될 법한 강시군단이, 시독을 풀풀 풍기며 달려든다.
그리고, 내 뒤쪽의 구멍으로 다른 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바바밧!
314명의 제자들이 각자 병장기를 들고, 내 뒤쪽으로 도열한다.
"정리해라. 나는 안쪽에 먼저 들어가 있으마."
나는 짧게 말한 후, 외벽 아래로 향했다.
만호를 필두로 한 제자들 역시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강시 무리와 부딪혔다.
타앗!
나는 외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서늘한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파아앙!
파공음이 터지며 한 자루의 투창(投槍)이 내게 쏘아져 왔다.
'피하긴 애매하고, 허공에서 받아치면 내가 조금 손해다.'
빠른 판단.
그리고 찰나, 나는 검을 외벽에 휘둘렀다.
콰각!
검사를 뿜어 외벽에 검을 박아넣은 후, 박아넣은 검의 위로 날듯이 올라가 검을 지지대로 삼고, 그 자리에서 다시 뛰어오른다.
그런 후, 다리에 내공을 불어넣고 회전하여 창을 올려찼다.
카아앙!
최적의 동선으로 이뤄진 반격에 창이 다시 퉁겨나갔고, 나는 빠르게 외벽에서 검을 뽑아 천근추를 사용하여 바닥으로 떨어지며 착지했다.
그리고, 내게 창을 던진 이를 비롯해, 주변으로 속속들이 절정고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호오, 다들 오랜만이군."
"닥쳐라, 역도 놈! 우리는 너 같은 놈을 본 적이 없다!"
암중호위대 시절 보았던 면면들이었다.
황성 외곽수비대 대주와 부대주, 금군 제독과 부주들, 연의위 총사와 좌하 합관들.
오며가며 가끔 보았던 얼굴들.
물론 암중호위대는 그림자 속에 숨어있어야 했기에, 서로가 서로를 소 닭 보듯 한 밋밋한 사이였으나.
'죽이기는 조금 껄끄럽지.'
명령받은 대로 하는 저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하나같이 그저 충(忠)을 교육받고 행하는 것 뿐.
"걱정 마시지. 죽이지는 않을 테니."
수도자들이야 방어법술 때문에 힘 조절이 되지 않아, 죽이지 않는 쪽이 어렵지만.
이들은 훨씬 쉽다.
피잉!
투괴암기술, 직사(直蛇)!
빠르게 날아간 암기가 외곽수비대 대주의 어깨에 꽂혔다.
독을 발라놓았으니 얼마 후 마비될 터.
나는 품에서 해독단을 꺼내 입에 문 후, 주머니에 든 독분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투괴암기술, 환무사(幻霧蛇)!
독분 너머로 몇 개의 암기가 정확하게 수비대 부대주와 연의위 합관의 몸을 스쳤다.
나는 빠르게 검 끝에 독을 묻힌 후, 심산의 초식으로 연의위 총사와 금군 제독의 품으로 파고들어 그들의 피부를 살짝 베었다.
남은 것은 금군 부주들.
투괴암기술, 쌍살사(雙殺蛇)
슈칵, 슈칵!
두 자루의 암기가 서로 다른 궤도로 그들을 향해 날아갔고, 그 찰나 기수식을 다시 잡았다.
단맥도, 산바람!
피잉!
극속의 찌르기가 암기를 막는 부주들을 찔러들어갔고, 검끝에 맺힌 독이 주입당한 부주들은 곧이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전부 즉사독은 아니니, 추후에 황궁 의당에서 해독해줄 수 있을 거요. 황실 어의가 나보다 조금 나으니까 배합은 알아서 해석하겠지."
나는 거품을 물며 자리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절정고수들을 뒤로하고, 주변의 건물 배치를 살폈다.
'황제가 비상시 숨는 대피소는 용엄전(龍奄殿). 대외적으로는 그곳이지.'
하지만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수호했던, 암중호위대 부대주인 나는 알고 있었다.
'실제로 대피하는 장소는 근경각(瑾景閣). 근경각의 위치가 황성 서북쪽 장원 너머였었지...'
암중호위대 시절에는, 수도자인 황제를 왜 호위해야하는지도 몰랐고.
왜 저런 대피소가 존재하는지도 몰랐었다.
어차피 범인들의 반역이나 군대는 상대도 되지 않을 터인데 어째서 굳이 저런 대피소가 필요하단 말인가.
하지만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다른 수도가문이 협의하에 황조를 찬탈하러 올 때를 대비한 장소인거로군.'
키에에에엑!
외벽 위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많아보이는 강시떼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족히 수백 마리는 되어보이는 수.
딱히 조종하는 수도자는 없는 것으로 보아, 그냥 침입자들의 발을 묶기 위해 대거 풀어놓은 듯 했다.
뿌득-
저 강시들을 만들기 위해, 몇 명이나 되는 인간이 희생되었단 말인가.
나는 이를 악물며 검을 잡았다.
'이제 슬슬 됐을 텐데...'
타다닷!
생각한 순간, 외벽 아래로 내 제자들이 뛰어내렸다.
"사상자는?"
"전무(全無)."
"고맙다. 전부 정리하고 온 건가?"
"강시들만을 정리하고, 남은 막리가 수도자들은 영훈 님이 데려온 무림고수들과 진가의 수도자들이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좋다, 이제부터 전원 날 따라온다. 황제가 있는 곳으로 진입한다."
"옛!"
내 말에, 제자들은 흥분한 기색으로 외쳤다.
"우선 강시떼를 뚫는다. 어차피 발을 묶기 위한 놈들이니, 전부 해치울 필요는 없다. 전원, 쐐기대형!"
나를 선두로, 뒤쪽으로 제자들이 삼각형의 형태로 늘어선다.
"돌파한다!"
"예!!!!!"
절정고수쯤 되면, 그 내공으로 인해 그 개개인이 하나하나가 기마병과 동급의 전력이다.
수가 적을 뿐, 위력과 속도는 전혀 뒤지지 않는다.
나는 제자들이 따라올 수 있게 달려나가며 검강을 불어넣었다.
단악검, 사 초.
"유릉(流陵)!"
훈련을 할 때 연습했던 것과 같이 내가 초식명을 외치자, 제자들은 각기 적합한 태세를 취하며 연계하여 자세를 잡았다.
일반적인 진형은 무기를 통일하는 것이 맞으나, 의념을 읽어내는 절정고수들에게 그런 것은 큰 흠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각자가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며 돌파한다!
쿠과광!
본디 간결하게 찌르는 목적의 초식이었으나, 돌파력과 합쳐지자 전차가 충돌한 것마냥 폭음을 내며 눈 앞의 강시를 터트려 버렸다.
기산심천!
나는 다시금 경맥을 크게 열어젖히며 검강을 더욱 더 끌어올렸다.
쿠구구구구!
선두에서 강시들을 그대로 갈아버리며 저 앞을 향해 돌파한다.
좌우익의 제자들 역시 각자 병장기에 기를 불어넣으며 강시들을 떨쳐내고 돌파했다.
시커먼 강시떼들의 사이로 수백의 절정고수들이 파고들어가며 길을 열었다.
'끝이다!'
강시들의 파도를 찢어가르고 나아가자, 저 앞으로 황궁의 구역을 나누는 담벼락이 보였다.
단악검, 능곡지변(陵谷之變)!
검기를 날려, 주변의 지형과 함께 담벼락을 통채로 무너뜨린 후, 나는 선봉에 서서 그대로 담벼락을 통과했다.
좌우익의 제자들이 일순간 쐐기형태에서 서로 가까워지며 ㅣ 자 형태로 진세를 잠시 변형한다.
내가 뚫어낸 구멍으로 제자들이 줄줄이 꼬리처럼 따라들어온다.
담벼락을 뚫고 들어가자, 황실의 정원인 구화원(構花園)이 눈에 띄었다.
'이 앞으론 진법이 펼쳐져 있다.'
물론, 다행히도 그리 강한 진법은 아니었다.
거기에 더불어, 나는 진법의 생문을 전부 알고 있다.
"전원 내 뒤를 정확히 따라오도록!"
나는 구하원 곳곳에 펼쳐진 진법의 생문들을 떠올리며 이곳저곳을 밟아가며 진법을 풀어헤치고 나아갔다.
제자들 역시 내 뒤를 정확히 따라왔고, 이지가 없는 강시들은 제멋대로 구화원에 발을 들였으나 진법의 흐름에 따라 안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바깥을 빙빙 돌 뿐이었다.
구화원의 끝자락.
다시금 담장이 보인다.
강시들은 이미 전부 따돌렸기에, 나는 급하게 담벼락을 부수는 대신 산군월악비를 펼쳐 담벼락으로 뛰어올라가, 그 너머에 착지했다.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한 작은 누각이, 작은 호수 위에 떠 있었다.
내 뒤쪽으로 제자들 역시 밀려들어왔다.
"...스승님, 아무도 없습니다만..."
나는 말없이 검강을 끌어올려, 누각을 향해 날렸다.
콰아아앙!
동시에, 내 검강은 누각의 주위에 펼쳐진 투명한 벽에 부딪혀 스러져 버렸다.
"이곳이 맞다! 계화, 신호탄을 쏴라!"
내 말이 끝나기도 전, 뒤쪽에서 치직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신호탄이 하늘로 쏘아졌다.
피이잉- 퍼벙!
오색의 구름이 하늘에서 폭발한다.
그와 동시에, 적포를 입은 진씨세가의 수도자 다섯 정도가 비행법기를 타고 빠르게 이곳으로 날아왔다.
"이곳에 황제가 있소!"
"잘했다! 진을 해제하겠다!"
진씨세가의 연기기 수도자들은 각기 비행법기를 타고 누각의 다섯 방위를 점한 후, 각기 법결을 맺었다.
번쩍!
새하얀 빛이 터지더니, 보이지 않던 벽이 깨져나가고, 아무도 없던 누각 위로 황제와 황실근위대가 생겨나 있었다.
누각 위에는 청포를 입은 막리세가의 수도자들 수십 명이 대기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막리정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어떻게 찾은 거냐! 근경각은 근위대와 암중호위대만 아는 곳인데!"
퍼어엉!
막리정이 고함을 칠 때, 진법을 해제한 진가의 수도자 중 하나가 다시 신호탄을 터트린다.
이번에는 백색의 연기구름.
황제를 확실히 발견했다는 신호였다.
그와 동시에.
파바바밧!
외벽에서 막리세가의 수도자들을 밀어붙이던 전력 중 수십의 연기기 수도자들이 다시 이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누각이 있는 호수로 날아온 진씨세가의 수도자들이 각기 방위에 자리를 잡는다.
동시에 빛이 터져나오며, 그들이 진법을 이루었다.
"열(熱)!"
화르르르르!
허공에 십 장 크기의 화구(火球)가 생겨난다.
"거(去)!"
동시에, 진씨세가의 수도진으로 만들어진 화염구가 누각을 향해 떨어져내렸다.
꾸구구구구!
모습을 보이지 않게하던 환영진 말고도, 다른 결계진 역시 수십 개가 중첩되어 있는 듯, 누각을 감싼 청구(靑球) 형태의 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치이이이-
그러나 진씨세가의 수도진이 만들어낸 화염구에, 누각 주위에 있던 호숫물이 모조리 증발해 날아가버렸다.
삽시간에 주변이 수증기로 휩싸인다.
그리고, 수증기 너머로 푸른 풍인(風人)과 음기(陰氣)의 법술들이 하늘에 떠 있는 진씨세가의 수도자들을 향해 쏘아져갔다.
결계 안쪽에 있던 막리세가의 수도자들이 결계 너머로 나서기 시작한다.
한 진씨세가의 수도자가 법결을 맺으며 내게 외쳤다.
"이봐, 범인! 우리가 수도자들을 상대할테니, 너희들은 범인 호위들을 뚫어라! 방금의 공격으로 결계도 처참할만큼 상했으니 너희의 검망으로도 뚫을 수 있을 것이야!"
"알겠소!"
나는 진씨세가의 수도자에게 답한 후, 호숫물이 말라버린 호수로 뛰어들어 누각으로 향했다.
그리고, 누각에 가까이 접근하려던 순간.
파앙!
누각 밑의 그림자에서 한 자루의 극(戟)이 뻗어나왔다.
카앙!
나는 극을 쳐낸 후, 상대를 보며 씨익 웃었다.
"어좌 암중호위대 대주. 도호극(屠虎戟) 곽일국. 오랜만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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