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30화 (30/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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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4)

1초.

내 주먹이 녹현의 안면을 파고들었다.

2초.

녀석의 의념이 뻗쳐오며 내 궤적에서 빠져나가려는 듯 했으나, 다리의 혈을 공격해서 땅을 구르게 했다.

3초.

땅에서 구르는 틈을 타, 녀석이 철편에 독을 묻혀 내게 휘둘렀다. 나는 암기로 철편을 쳐낸 후, 다가가 얼굴을 걷어찼다.

...

10초.

나는 녹현의 모든 무기를 빼앗고, 멱살을 잡은 채 들어올렸다.

"이 실력으로 지금 황실에 침입하겠단 말이냐?"

"...죽음을 각오하면."

"죽음을 각오해도 암중호위대한테는 안 된다. 가장 약한 녀석과는 동귀어진까진 노려볼 수 있겠지만, 둘 이상이 합격진을 펼쳐 너를 압박하면 그냥 죽은 목숨이야."

"......"

"돌아가자. 너는 아직 실력이 되지 않는다."

녀석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입술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수련만 해야 하는 겁니까."

"......"

"저희가 수련을 하면, 그 암중호위대라는 놈들은 잠만 잔답니까? 황제를 호위하는 놈들은 안 강해집니까? 그놈들은 전부 병신이랍니까?"

녹현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외쳤다. 녀석의 눈에서는 귀기가 흐르는 듯 했다.

"그놈들도 계속해서 강해질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언제! 언제 우리는 복수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분명 사부님이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저는 분명 그런 사람입니다. 제가 계화를 좋아하는 것도, 만호를 싫어하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 모든 삶을 버려서라도, 복수를 해야 한단 말입니다!"

나는 안타까운 눈으로 현이를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귀기를 흘리고 있지만, 녀석의 의념은 검푸른 빛.

슬픔의 의념이었다.

짙고도 짙은 색이었다.

녀석은 지금 눈물 없이 울고 있었다.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사사삿-

주변에서 기척들이 풍겨왔다.

나는 눈쌀을 찌푸렸다.

"...어떻게 나온거냐."

"총괄주님께서 진법을 열어주셨습니다. 가서 현이를 도우라더군요."

"...총괄주 개 같은 놈 같으니."

나는 짜증을 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만호, 해웅, 계화, 청야, 열오, 희아...

약 500여명의 내 제자들이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나를 잡아두겠다는 거냐? 녹현이 갈 수 있게?"

"예. 그리고 녹현뿐 아닌 몇 사람이 더 갈 겁니다."

뿌득-

나는 이를 갈며 제자들을 노려보았다.

"개죽음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너희는 너무 약하다."

"방금 녹현이 말했잖습니까. 우리만 강해지지 않습니다. 암중호위대라는 이들도 분명 계속해서 수련하고, 강해질 겁니다."

"...이렇게 해서까지 가겠다는 거냐."

"이렇게 손 놓고 세월아 네월하만 할 수는 없습니다."

"...좋다."

나는 살기를 품으며 말했다.

"내 입장을 밝히마. 난, 너희 중 한 명도 보낼 수 없다. 왜냐하면 너희는 모두 훈련 중 어느 한 곳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며칠간 요양을 하게 될 터이니 말이다.

요양을 하게할지언정, 절대로..."

검을 들었다.

"누구도 죽게 할 수 없다."

"누구든 죽더라도 한을 풀고 싶어합니다."

스릉-

내 검이, 허공을 갈랐다.

다음 순간, 제자들의 눈에 당혹이 어렸다.

월수궁무록!

이 무공을 익힌 자와 익히지 않은 자는, 어른과 어린아이 정도의 차이가 있다.

유치원생 500명이 달려든다고, 성인 장정이 이기지 못할까.

원래도 나는 내 실전경험과 검법, 독을 사용하면 삼화취정의 경지에 이른 수준에서 이만한 수의 절정고수들의 발을 충분히 묶어놓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월수궁무록의 무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모두, 연기기 중후반의 수도자를 상대한다고 생각하고 발악해 보도록."

나는 육합전성으로 사자후를 사방으로 날린 후, 인식(認識)을 잘라가며 모습을 감추고 다가갔다.

삼화취정의 경지가 깊어지며, 계속해서 다른 의념들을 발견할수록.

월수궁무록의 완성도는 계속해서 올라만 갔다.

이제, 절정고수 중에서도 삼화취정에 이른 이가 아니라면, 나를 상대할 가능성조차 없었다.

푸욱, 푹, 푹!

나는 마비산을 묻힌 암기들에 월수궁무록으로 의념을 벼려, 인식을 잘라가며 사방으로 흩뿌렸다.

일수(一手)에 수십명의 제자들이 자리에 쓰러졌다.

"당황하지 마라! 모두 밀집대형!"

만호가 소리를 치며 중심을 잡으려 했으나, 나는 그의 뒤로 다가가 검의 손잡이로 뒷목을 쳐서 기절시켜버렸다.

촤아아아악!

그런 후 독분을 흩뿌려 시야와 호흡을 점한 후, 나는 하나둘씩 제자들을 기절시켰다.

그렇게 500여명의 제자들을 전부 기절시키는 데에 걸린 시간은, 약 3각.

나는 그 안에 모든 제자들을 제압한 후, 아연한 표정으로 이 전투를 보고 있던 녹현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방금 뭘 어떻게 하는건지, 보기는 했느냐?"

"...못 봤습니다."

"그래. 그게 너의, 너희의 실력이다. 아예 인지 자체를 못 하지 않느냐. 너희 실력으로는 감히 상위의 고수에게 댈 수 없어. 알겠나?"

"......"

"일어나서 영지 내의 하인들을 불러와라. 이 놈들을 옮겨야겠다."

녀석은 잠시 분한 표정을 짓더니, 눈을 감았다.

"...알겠습니다."

얼마 후, 나는 하인들과 함께 제자들을 다시 훈련장으로 옮겼다.

사실 녀석들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김영훈이라는 절세천재가 수도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월수궁무록이라는 신기(神技)가 너무 말도 안되는 수준인 것이지.

녀석들의 수준이라면, 스무 명 정도만 모인다면 안전하게 황궁에 잠입해서 황제의 목을 따고 무사생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도가문에서는 절대 그렇게 대규모로 이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막리세가에게 진씨세가를 공격할 명분을 준다는, 멍청한 이유였다.

그래서 진씨세가는 암살자들이 얼마나 죽어나가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하루에 한명, 많으면 2, 3명을 보내고는 했다.

'진씨세가 놈들...'

사람 목숨을 뭘로 아는건지.

어쩌면 저들은 암살자들의 목숨 역시 막리세가와의 정치싸움의 도구로 보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저 도구.

'막리세가는 가축. 진씨세가는 도구인가.'

나는 원혼을 받아들여, 억지로 절정의 세계에 진입한 제자들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막리세가보다는 어쨌건 괜찮으리라고 여겼지만. 정도와 규모의 차이일뿐. 진씨세가도 똑같은 존재들이 아닌가...'

얼마 후, 제자들이 일어나자, 나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의 실력은 나도 잘 안다. 너희도 솔직히 지금의 상황에 불만이 있는 녀석들이 많겠지. 하지만, 그 정도 실력으로는 절대 암중호위대에게 맞설 수 없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불만이 있겠지. 너희 논리처럼, 너희가 강해지는데 황제의 호위대는 강해지지 않느냐고. 그래. 그 말이 맞다. 하지만."

파앗!

나는 녀석들의 눈 앞에서 또 다시 허깨비처럼 사라졌다가 나타나보이며 말을 이었다.

"방금 보았다시피, 내 무학은 일반적인 절정고수들과도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무학이다. 만약 너희가 이 무학을 익힐 수만 있다면, 너희의 살행을 허해주마."

물론, 월수궁무록은 삼화취정이 최소 입문 조건이니만큼, 절대로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원혼으로 인해 강제로 경지가 끌어올려진 녀석들이라면, 오히려 일반인보다도 더더욱 삼화취정으로 진입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제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며.

이룰 수 없는 희망으로 하여금, 녀석들이 죽지 않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이 무학의 입문 조건은, 나를 쓰러뜨리는 것이다. 너희 500명이 전부 덤벼도 좋다. 암습도 좋다. 밤에 독을 타도 좋다. 자고 있을 때 습격해도 좋다. 인질을 잡아도 좋다. 무슨 수를 써서든, 나를 한 명이라도 쓰러뜨려 제압한다면, 이 무공을 모두에게 전수하마."

나를 쓰러뜨리던, 쓰러뜨리지 않던.

삼화취정에 도달하지 못하면 절대로 월수궁무록에 입문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뤄질 리 없는 허황된 망상을 들고, 약속했다.

"너희가 나를 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차원이 다른 무학을 전수해주마!"

그 말에, 수많은 제자들의 의념이 요동쳤다.

분노, 설렘, 놀람, 기쁨, 기대...

'보인다.'

수많은 감정의 변화에, 나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몇 가지 색조를 더 볼 수 있었다.

'이래서, 삼화취정의 고수 중에는 은거기인이 별로 없나보군.'

재야에 묻혀있는 삼화취정의 고수는 거의 없다.

대다수가 대문파의 원로원에 들어서 문파의 대소사에 관여한다.

나는 왜 심산유곡에서 은거하며 폐관수련을 하는 기인이 없나 궁금해 했지만,

실은 요동치는 의념과 감정들을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삼화취정의 고수에게 가장 도움되는 것이기에,

그들은 대문파의 요직에서 끊임없이 의념을 관찰하는 것이리라.

내가 그렇게 제자들에게 약속을 하고, 하루가 지났다.

피잇!

변소에서 일을 보던 중, 분변 더미에서 검이 튀어나와 나를 찔러들었다.

"첫날부터 과감하군."

찰나, 나는 암기를 분변 밑으로 던져 검을 튕겨낸 후, 변소 아래로 마비독을 풀어넣었다.

그런 후 볼일을 마친 나는 일어나서 변소 밑으로 손을 뻗었다.

철퍽!

불쾌한 감각이 닿았지만, 나는 감각을 무시하고 그 아래에서 마비독에 당한 제자를 빼냈다.

"멍청하긴, 똥에 빠져 죽으면 어쩔려고 그랬느냐."

난 마비된 제자를 끌고 가 냇가에 던진 후, 혈을 짚어 천천히 마비가 풀리게 했다.

"진짜 고수한테는 분변 속에서 습격하는 건 안 먹힌다. 차라리 더 검에 집중하도록."

나는 분변 속에서 나를 습격한 제자, 우륙에게 충고를 준 후, 의념의 흐름의 제어에 대한 충고를 주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티잉!

훈련장에 도착하자, 암기술을 배운 두 명의 제자, 청야와 환형이 내게 각자 암기를 던져왔다.

촤악!

동시에 훈련장 모래 속에 숨겨져 있던 얇은 실이 드러나며 나를 묶으려 들어왔다.

타앗!

나는 허공으로 뛰어올라 암기와 실을 피한 후, 검을 뽑아들었다.

단악검법

능곡지변!

쿠과과광!

검기가 땅을 헤집는다.

땅 밑에 숨어서 나를 암습하려던 제자들의 모습이 드러났고, 녀석들이 만들어둔 함정들도 몇몇 개가 드러났다.

"오늘 아침은 이게 끝이냐?"

"쳐라!"

그러나, 만호를 중심으로 도검류를 쥔 제자들이 나를 포위하며, 합격진을 짜냈다.

합격진 속으로, 주변을 빼곡하게 덮은 의념이 나를 덮쳐왔다.

채 피할 구석이 없을 정도로 빼곡한 의념이다.

나는 씨익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희가 만든 검진이냐? 안쪽에 잡힌 이를 완전히 갈아버리는 좋은 진이군."

상대가 나만 아니라면, 훌륭하다.

능곡지변!

쿠과광!

나는 다시 한번 검기를 땅으로 날려 주변을 헤집었다.

검진의 형세가 어긋난다.

그러나, 다시금 만호의 지휘 아래 제자들은 순식간에 검진을 다시 애워쌌다.

하지만 부족하다.

"검진을 다시 에워쌀 그 틈새에, 너희는 전부 세 번씩 죽었다."

슈칵!

단악검법

산명곡응!

내가 파(波)의 형태로 날린 검기가, 어느새 제자들의 가슴 앞섬을 잘랐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실전에서도 그럴 거냐."

단악검법

심산

유릉

심산의 초식으로 검진의 틈새로 파고들어간 후, 유릉의 초식으로 찔러들어가며 길을 낸다.

단악검법

첩첩산중

동시에 자잘한 검기를 사방팔방으로 뿌려대며 난전을 유도한다.

그 난전 속에서, 나는 검진의 궤도를 바라보았다.

'세 군데를 부수면 무너지겠군.'

흐름이 읽힌다.

나는 단맥도의 초식까지 섞어쓰며, 검기와 검강을 난무했다.

약 1각쯤 지났을까.

결국 만호의 주도 하에 세워진 검진은 무너져 버렸고, 제자들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검진을 짜며 잡념이 있는 놈들이 많더군. 무리를 이루니 여유가 생긴 거냐? 무리를 이루고 집단을 이룰수록 더욱 더 자신의 위치에서 집중해야 한다. 검진을 짤 때도 일대일로 생사결을 벌인다 생각하고 짜라."

몇 가지 검진에 대한 충고, 그리고 몇몇 녀석의 의념과 잡념에 대한 충고를 해 주고 검진을 나왔을 때였다.

척, 척, 척!

이번에는 장검, 창, 월도 등 장거리 무기를 익힌 녀석들이 나를 애워싸고 자세를 잡았다.

"검진 다음은 장창진인 거냐."

내 기력을 빼겠다는 의도.

그러나 나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검을 들었다.

"어디 해 보거라."

월수궁무록은 커녕 독도 제대로 안 쓰고 있다.

이 정도의 나를 상대로도 고전하는 녀석들이었다.

감히 내 체력을 빼 놓을수나 있는가.

나는 검을 들어올리며, 제자들을 향해 싱긋 웃었다.

"오늘 내 옷에 스칠 수라도 있으면 앞으로는 나체로 훈련을 맡지."

농담을 하는 나를 향해, 수많은 창격들이 짓쳐들어온다.

나는 기수식을 잡고, 제자들에게 쇄도해갔다.

* * *

한 달이 지났다.

"내가 지나다니는 길에 독을 살포해 놓다니, 이건 썩 나쁘지 않군."

나는 해독제를 꺼내 씹으며, 나를 향해 비수를 치켜든 계화를 바라보았다.

"독을 좀 흡입한 덕에 손끝이 떨려오고, 호흡이 가빠오는구나. 네게 승산이 조금 있겠어. 어디 덤벼 보거라."

파앗!

계화의 비수가 날카롭게 나를 찔러왔다.

동시에 나와의 간합을 주고받으려, 의념이 뻗어나왔다.

아마 상대가 내가 아닌 일반적인 절정고수였다면 썩 해볼만 했으리라.

하지만.

"네 수준에선 나와 간합싸움을 하기에 버거울텐데."

삼화취정에 막 올라, 자색밖에 볼 수 없는 고수라면 몰라도, 나는 이제 수십개의 색조를 눈에 담는다.

내가 읽어내는 의념의 흐름은 다른 절정고수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나를 상대로 간합싸움이 성립이라도 하려면, 최소한 삼화취정에는 올라야 한다.

티잉, 티잉, 티잉!

나는 계화의 비수를 모두 쳐낸 후, 수십 갈래의 의념을 뻗어낸다.

그 의념 모두가 내가 행할 수 있는 최적의 동선.

그리고, 그 동선에서 또 다시 의념이 끝없이 뻗어나간다.

계화 역시 자신의 의념으로 내 의념의 기세를 떨쳐내려는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실시간으로 계화의 의념과 통하며 그녀의 의념을 읽어내는 중이었다.

파앗!

내 검이 그녀의 의념 사이를 뚫고 턱 끝에 겨눠졌다.

"집중하는 것도 좋고, 수련도 깔끔히 되어있다. 하지만 너무 경험이 없어. 다른 녀석들과 실전에 가깝게 대련을 해 봐라."

"...감사합니다."

그녀는 내게 포권을 올리는 척 하며, 얇은 실을 손가락 끝으로 조정해 내게 날려왔다.

슈칵!

난 손 끝으로 암기를 뻗어 실을 잘라냈다.

"좋군. 그렇게 정진하도록."

나는 계화를 칭찬해 주었다.

* * *

몇 달이 지났다.

월수궁무록을 알려주겠노라고 약속하지는 약 반년.

고작 반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제자들은 상당한 성장을 이뤄내었다.

합격진을 짜고, 나를 제압하는 것에 대해 연구하고, 불시에 기습하거나 암습하는 방법을 골몰하고 또 골몰한다.

동시에, 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실력 또한 받쳐주어야 하니 끊임없이, 쉬지도 않고 무공을 단련했다.

그 덕인지, 맞지도 않는 절정경에 억지로 도달한 괴리감이 서서히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이전까지는 솔직히, 절정고수와 같은 세계를 공유만 할 뿐 사실상 진짜 절정고수라기에는 다들 하자가 있는 수준이었지.'

하지만 이제는 점차 그 하자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원귀를 이용해서 재능을 극대화한 제자들이 절정경에 올랐을 때에는 감흥이 없었지만,

점차 제자들이 무공을 단련하며 움직임에 하자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니 차차 감격스러워지고 있었다.

또한 성장한 것은 제자들뿐이 아니었다.

'나 역시, 의념에 있어서 더더욱 많은 진보를 보이고 있다.'

여섯 개의 의념을 깨닫고 난 후.

나는 그 여섯 개의 의념을 기반으로 그에서 파생되는 수백, 수만가지의 의념의 색조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 급격한 성장속도는 이전까지는 결코 느껴본적 없는 속도였다.

'빠르군, 아니... 이것도 느린 건가.'

나는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인간의 색조를 관찰하고, 또 파고들며 생각했다.

어떤 색조는 무엇을 뜻하는 색조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으나, 어떤 색조는 아예 무슨 이름을 지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러나 그런 무수한 색조를 깨달으면서도, 나는 한 가지를 도무지 깨닫기 힘들었다.

칠정(七情) 중 마지막.

욕망(欲)의 정(情).

'욕망.'

나는 도무지 욕망의 색조를 볼 수 없었다.

아무리 관찰해도, 욕망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욕망은 뭘까...'

나는 찬찬히 제자들의 습격을 피해내며 생각에 잠겼다.

"욕망이 뭐냐라..."

오랜만에 만난 김영훈이 찻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는 최근 연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와 뜻을 같이할 무인들을 거의 모았다고 했다.

"욕망은 내면에 깊숙히 숨어있는 갈망(渴望)이지. 욕망이 없는 인간은 없네. 그렇기에 누구나 살아가며 저마다의 방법으로 욕망을 분출하는 거고. 어찌보면, 욕망이란 인간의 삶의 동력(動力)인 거지.

자네가 가진 가장 큰 갈망은 무엇인가? 그걸 계속 고민하다 보면 욕망의 색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거야."

"흠, 혹시 욕망의 의념은 무슨 색인지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그 색을 보려 노력이라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영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네도 그건 알고 있겠지? 삼화취정의 고수들이 보는 색은 전부 비슷하지만, 각각이 모두 다르다는 걸. 나도 자네도, 기쁨(喜)의 의념은 모두 금빛으로 보이겠지만, 자네와 내가 보는 그 의념은 약간의 색조차이가 있네. 나는 완전한 순금빛이고, 자네는..."

"황금빛으로 보이지요."

"그래, 그런 식으로 사람마다 볼 수 있는 의념의 색조에 미세한 차이가 있고... 특히나 욕망의 의념은 그 정도가 심하지.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갈망이 다르기 때문일세. 그러니, 자네의 욕망의 색이 어떤지는 오직 자네만이 안다는 뜻이야.

그러니, 자네가 자네의 갈망을 잘 관찰하는 수밖에는 없어."

"그렇습니까..."

나는 김영훈의 조언을 받으며 생각했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김영훈에게서 화두를 전해듣고도, 나는 며칠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관찰했다.

그 날도 여김없이 나는 제자들의 합격진 속에서, 그들과 분투하고 있었다.

챙, 챙, 챙!

수많은 의념을 읽어내리며, 제자들의 헛점을 알아내어 찔러들어가고, 쉼 없이 날아드는 독침과 암기들을 피하고 쳐내며.

나는 상념에 빠져있었다.

'내 갈망.'

이번 생의 내가 원하는 것.

우선은 오기조원에 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기조원에 도달하려면 일단 욕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욕망을 아는 것'이 욕망인 셈이었다.

'곤란한데.'

그럼 조금 기준을 넓혀보자.

내가 오기조원이 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도자가 되기 위해서이지.'

수도자가 되려는 이유는?

수도자가 되어, 승천문으로 진입해 원래 세계로 돌아가, 내 회귀 능력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회귀 능력을 없애려는 이유는?'

회귀 능력으로 인해, 내가 쌓아올린 모든 삶이 결국에는 부정당하게 될 테니까.

그러므로, 나는 내 회귀 능력의 근원을 알아내어, 결국 회귀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아, 그렇군.'

나는 어쩐지 내 갈망이 무엇인지 대략 알 것 같았다.

삶이 부정당하는 것이 싫다.

그 말은 즉슨, 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

'나는, 삶을 갈망한다.'

식욕도 성욕도 수면욕도 필요 없다.

이 세상 어떤 욕망과 욕구도 필요 없다.

나는 단지...

'살고 싶다.'

내가 이뤄온 그 모든 삶들이, 시간의 역류(逆流) 속에서 허망하게 없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비록 모든 걸 이루지는 못했을지라도, 많은 걸 이룬 내 소중한 삶이, 시간역행의 앞에서 부정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므로, 내 욕망은 삶(生)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하하, 하하하..."

제자들의 합을 파훼하며, 나는 욕망의 의념을 발견하지는 못할망정,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얘들아."

만호의 대검이 내 눈 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난다.

계화의 비수가 등 뒤에서 나를 찔러온다.

뛰어올라 피하니 청야가 허공에서 암기를 쥐고 나를 덮쳐온다.

나는 분명..

"나는, 너희가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자신의 욕망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내가 삶을 원하니, 죽으려 하는 이들에게도 삶을 강요하는 이기적인 놈.

하지만 그럼에도.

"왜냐하면, 너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죽음을 욕망하면서도, 분명 살아있다.

슈칵, 슈칵 슈칵!

허공에서 덮쳐온 청야를 떨궈내니, 양옆에서 만호와 계화가 나를 공격해오고, 아래로 열오가 무기를 뻗는다.

녹현이 철편을 휘둘러 상반신을 압박하고, 다른 아이들이 독분을 흩뿌린다.

훌륭하다.

의념의 흐름이 보여도 빠져나갈 수가 없다.

'월수궁무록 극의를 쓰지 않고서는 못 빠져나가겠군.'

파앗!

곧이어, 아이들의 무기가 내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내가 내밀었던 조건은 나의 '제압'이었지 내 '살상'이 아니니까.

'애초에 제압이 훨씬 어렵지.'

그리고 내가 죽으면 정작 누가 전수해 주겠는가.

"훌륭하구나. 다들 그 짧은 시간 안에 많이 컸어."

"...숨기고 있는 한 수가 있는 건 압니다. 아마 그걸 사용하시면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으실 테죠."

만호는 내가 발톱을 숨긴 것을 알았는지, 조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맞다. 이 한 수만으로도 너희를 전부 제압할 수 있어. 그리고 단악검법 오의인 22초식조차도 내게서 끌어내지 못했고. 23, 24초식은 두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짚어줄 헛점도 없다. 뭘 더 가르치거나 대련을 한다고 나아지지도 않겠지. 이후로는 너희 깨달음의 영역이니.. 너희는 나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다. 내가 숨겨둔 한 수를 꺼내도 그건 너무 높은 한 수라, 너희가 봐도 알아먹지 못할 터. 그러나 너희는 할 수 있는 한을 다해서 나를 여기까지 몰아넣는 데에 성공했다."

대애앵-

문득, 수도자들의 처소 방향에서 커다란 종소리가 울렸다.

[영지 내의 모든 범인들은 들어라. 절정경 이상의 무인들은 모두 운릉(芸陵)으로 모이도록. 중요한 하달 사항이 있다.]

종소리와 함께, 진씨세가의 영지 곳곳으로 총괄주 노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인지는 대략 짐작이 갔다.

"...너희가 나를 몰아넣는 데에 성공했으나, 제압하지는 못했기에 본래 가르쳐주기로 했던 무학이 아닌, 무학에서 파생되어온 진(陣)을 알려주지."

진의 이름은 월수진(越修陣).

신마전을 꾸렸던 회차에서, 영훈 형님이 월수궁무록에서 파생시켜 만든 합격진.

일류 후기경의 고수 이상이 펼치는 진으로, 그 위력은 능히 연기기 중후기의 수도자를 잡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앞으로 이 진을 익혀서... 반드시 살기를 바라겠다."

내 어조에 제자들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결국 녀석들을 한 명도 암살을 보내지 않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은 수도가문의 압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나마 김영훈을 이용해서 시간을 벌고, 압력의 방향을 바꾸는 것에 성공한 것이 그나마 얻은 소득이리라.

이제 내 제자들은, 황제 암살이 아닌, 막리세가의 영지를 습격하는 임무를 맡게 될 것이다.

황제 암살보다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임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내 제자들이 생존 가능성을 끌어올릴 것이다.

"...반드시, 살게 해 주마."

내 욕망은 삶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욕망의 의념은 볼 수 없었다.

어쩌면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 탓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삶을 모를 지언정 내 제자들이 살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너희는 살아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얼마 후, 나는 제자들과 운릉에 모여, 김영훈과 다른 축기기 수도자들의 작전계획을 경청했다.

앞으로 두 달 후.

우리는 막리세가의 영지 습격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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