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27화 (27/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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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1)

다음 날의 일은 여태까지와 비슷했다.

여우가 나타나 내 팔을 물어뜯고, 다음 날에는 뱀이 나타나 피를 달라고 했다.

또 다음 날에는 수도자 삼인방이 나타나 내 팔을 회복시켜준 후 동료들을 납치해갔고,

다음 날에는 해룡왕이 강 대리를,

곱사등이 괴인이 김 주임을 데려갔다.

그리고 나와 김영훈은 여느 때와 똑같이 공간 균열로 떠밀려 정신을 잃었다.

* * *

"...여기는."

눈을 뜨자, 모르는 천장이었다.

'천장?'

나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서 주변을 살폈다.

김영훈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균열에서 빠져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연국 어딘가에 무작위로 전송되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방으로 전송되는 경우는 또 처음이군.'

나는 살짝 어이가 없어, 김영훈을 들쳐업고 방을 나가려 문을 열었다.

벌컥!

그리고, 나는 방문 앞을 지나는, 딱 봐도 시비로 보이는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꺄아아아악! 도둑이야!"

"...이런 젠장."

난 시비의 수면혈을 짚고 빠르게 방을 나왔다.

'여기는, 저택?'

그것도 상당한 권세가의 저택으로 보였다.

"저, 저기! 괴한들이 저쪽으로 도망갔어요! 그 괴한이 저를 잠재우고...아니, 어쨌든 괴한이 마님 방에서 나왔습니다!"

멀리서 내가 기절시켰던 시비의 목청이 울려왔다.

아무래도 우리가 떨어졌던 곳이 이 저택의 안주인 방이었던 듯 했다.

'젠장, 미치겠군.'

떨어져도 왜 하필 이런 곳에 떨어지는건지.

그렇게 생각하며 김영훈을 업고 빠져나가려 할때였다.

"감히 허세민 대감의 집에 숨어들다니, 정신이 나간 도둑놈이로구나!"

호위무사로 보이는 일류고수 두엇이 내게 달려오며 말했다.

'잠깐, 허세민?'

나는 그 이름을 듣고 멈칫했다.

그 이름인즉슨, 지난 생에서 황실의 몇몇 정보들을 들춰보며 본 정보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허 대감. 연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탐관오리. 민초들에 대한 수탈이 심해서 몇 번이나 중앙에서 감사가 내려갔지만, 감사에게 뇌물을 먹이고, 연줄들을 이용해서 요리조리 빠져나간다는 망나니.'

어찌나 그 수탈이 심한지, 허세민은 권세를 이용해서 남의 집 신부를 빼앗아 첫날밤을 대신 치루기도 하며, 지주들의 땅을 온갖 트집을 잡아 빼앗아 소작농으로 만들어도 아무도 말을 못할 정도라고 했다.

'음, 그렇지. 인상깊은 쓰레기라서 기억에 남는 이름이었다.'

나는 도망쳐 나가려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저택의 안채로 향했다.

'이런 쓰레기라면 평생 다 써도 재산이 부족할만큼 많을 테니, 내가 조금 빌려가도 아무 문제가 없겠어.'

나는 냉큼 허세민의 안채로 들어가 집을 마구 뒤졌다.

도중 허세민의 사병들이 들이닥쳐 나를 위협하려 하는 듯 했지만, 나는 전부 수면혈을 짚어 재워버린 후 허세민의 집을 계속해서 뒤졌다.

얼마나 그의 집을 뒤졌을까, 나는 허세민이 숨겨놓은 목궤에서 금두꺼비 열두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음, 이 정도면 쓸만하겠군."

나는 금두꺼비가 든 목궤를 품에 넣고, 주변을 뒤져 금전 몇 푼을 더 챙긴 후 허세민의 집을 빠져나왔다.

이후 허세민의 저택이 있는 철륭성에서는 내 얼굴이 그려진 수배지가 나돌았지만, 나는 역용술로 얼굴을 바꾸고 장원을 사서 그 안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장원 안에서 김영훈에게 말과 무공을 가르쳤다.

그렇게 한 달이 되었다.

슈우우우-

나는 김영훈의 머리 위에 떠오른 세 개의 꽃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젠 한 달이군.'

삼화취정에 오른 내가 직접 김영훈을 지도한지 한 달.

김영훈은 내공을 어느 정도 쌓자마자 나와 같은 경지에 올랐다.

'가르치는 쪽의 경지가 올라갈수록, 배우는 쪽의 시간도 줄어든다...'

심지어 무공을 배운지 막 한 달이 된 차였기에, 살조차 채 빠지지 않은 김영훈이었다.

"하하, 나한테 이런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구만. 이거 살도 다 빠지기 전에 이렇게 되니 원..."

"...삼화취정에 오르셨으니, 드릴 선물이 있습니다."

"음? 뭔가?"

지난 생의 김영훈이 만든, 조수월무경 6권을 통합한 1권의 비급.

조수월무결!

'이번 생의 김영훈은 더욱 더 높은 곳에 이르르겠지.'

그리고 다시 비급을 진화시킬 것이다.

나는 그에게 비급을 전해주고, 연국의 언어를 전부 가르쳐준 후, 장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번 생에는 어찌할까.'

무림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해 봤고, 단체를 세우기도, 김영훈을 따라다니기도, 황실에 들어가보기도 해 봤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무공수련을 조금 진득히 하고 싶은데.'

그러나 그렇다고 막리세가의 무도한 짓을 두고만 볼 수도 없었다.

막리세의 무도한 짓을 막으며 무공수련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얼마간 고민하던 나는 금세 답을 알 수 있었다.

'진씨세가.'

그렇다.

막리세가를 연국에서 몰아내려 하는, 진씨세가의 수도자들이 있었다.

'이번 생에서는, 진씨세가에 협력해 봐야겠어.'

지난 생의 후반부처럼, 진씨세가를 도운다면 간접적으로 막리세가의 활동을 막을 수 있을 터다.

나는 진씨세가를 찾아가보기로 정한 후, 김영훈에게 찾아갔다.

"저는 이제부터 따로 다니겠습니다."

"음!? 아니, 무슨 일인가?"

"...조금, 돌아다니고 싶어서 말입니다."

김영훈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금 불안해하는 듯 했으나, 나는 그를 진정시켜주고 철륭성을 나섰다.

5년에 한 번씩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으니, 앞으로 다시 만나는 데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나는 진씨세가의 영지가 있는 곳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 * *

진씨세가의 비지(秘地)는 연국의 동쪽지역, 벽라국 국경과 인접한 창호성 북쪽에 있는 수로곡이라는 계곡에 위치해 있었다.

지난 삶에도 몇 번 와 본적이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내가 듣기로 아마...'

진씨세가의 저계 수도자들이 머무는 곳이라고 들었었다.

나는 적당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은 후, 수로곡에서 누군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며칠을 기다렸을까.

마침내 수로곡에서 붉은 장포를 입은 사내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내의 주변으로는 그의 의식 영역이 공간을 장악하고 있었다.

'진씨세가의 수도자다!'

나는 그에게 몰래 따라붙어 그를 따라갔다.

얼마 후 창호성에 도착한 사내는 주루에 들어가 술과 음식을 시키기 시작했다.

'좋아, 적당히 붙어 볼까.'

나는 은근슬쩍 그와 합석해서 좋은 술을 하나 더 시켰다.

"으음? 자네는 뭔가?"

"하하, 형장이 적적해 보이길래 대작이나하러 왔습니다. 술값은 제가 내지요."

"허 뭐. 정말 본인이 내겠다면야..."

나는 그에게 상다리가 부러질만큼 음식과 술을 시켜준 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가 어느 정도 취하자, 은근슬쩍 그가 수도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했다.

얼마 안 있어, 술기운에 취한 진씨 수도자는 내게 자신이 수도자라는 사실을 털어놓았고, 임무를 위해 속세에 나왔다고 말을 했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수도자시라니, 저도 위대하신 수도자 일족과 일할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텐데 말입니다."

"흠흠, 뭐 하지만 본가에는 이미 자네같은 범인들은 넘쳐나는데 말일세..."

나는 은근슬쩍 내 제안을 거절하려는 그에게, 허 대감에게서 훔쳐온 금두꺼비 열두개를 보여주었다.

"제가 수도가문의 밑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형장께 두꺼비들을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흠, 흠...!"

잠시 멍하니 금두꺼비들을 바라보던 진씨 수도자는 헛기침을 하며 내가 건낸 목궤를 받아들였다.

"뭐, 내 가문의 어르신께 말씀은 올려보겠네. 험험..."

"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형장만 믿고 있겠습니다."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에게서 약속을 받아내었다.

그리고 다음날, 술이 깬 그는 조금 곤란해하는 듯 했으나, 결국 금두꺼비의 탐욕을 이기지 못했는지, 나를 가문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척 하며 내게 화염술법을 날렸다.

금두꺼비는 가지고 싶고, 나를 가문에 소개하기는 싫고 한 모양이었다.

'연기기 1성정도 되어보이는 놈이...'

나는 눈쌀을 찌푸리며 검을 휘둘러 화염술법을 쪼개버리고, 검강을 뿜어내어 진씨 수도자의 방어법술을 박살내 버렸다.

"형장,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아, 아니 나는..."

"나를 가문에 소개하기 싫으면 싫으시다고 말을 해 주시지요. 왜 이러시는 겁니까. 형장은 내가 범인따위라고 우습게 보이시나 봅니다."

"히, 히끅..."

나는 진씨 수도자에게 살기를 쏘아대며 그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오히려 잘 됐지. 이걸 빌미로 잡아서 나를 가문에 데려가게 해야겠군.'

나는 진씨 수도자에게 눈치를 주어, 그가 받아먹은 금두꺼비 여섯 개를 토해내게 했다.

"형장, 어찌되었든 금두꺼비 여섯 개는 받아드셨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안내를 해 주시겠지요? 이번에는 제대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알겠네. 수, 수도가문의 어른들에게 자네를 소개시켜 주겠네. 사, 삼화취정의 무림고수일줄은 정말 몰랐네!"

그는 말을 더듬거리며 나를 안내했다.

듣자하니 그가 맡은 임무는 다른 성에 있는 진씨가문 영지에 편지를 전달하는 임무였다.

나는 그와 함께 연국 용호성 인근에 있는 진씨가문의 비지에 도착했다.

그는 가문의 어른이라는 나이 많은 연기기 수도자에게 서한을 전달한 후, 그에게 나를 소개했다.

연기기 후반의 수도자는 내가 삼화취정의 고수라는 설명을 듣고,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마침 잘 됐네. 자네 정도라면 충분히 수도일족에게 봉사할 자격이 되지. 하하, 안 그래도 범인들에게 무공을 가르칠 무공교관이 필요했는데. 삼화취정이면... 음, 범인들 기준에서 높은 경지였던 걸로 안다만, 맞는가?"

"...예. 감히 수도일족에게 비할 순 없으나, 그래도 제가 범인 중에서 높은 수위까지 무공을 익히기는 했습니다."

"좋군 좋아. 따라오게."

나는 수도일족의 영지, 한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열대여섯살 즈음 되어보이는 아이들이 수련을 하고 있었다.

무공을 가르치는 무공교두는 절정 초기의 경지쯤 되어보였는데, 아이들의 수가 너무 많아 힘들어하는 것이 보였다.

"최근 범인 아이들의 교육은 저치가 맡고 있네만. 영 잘 가르치는 것 같지 않아서 말일세. 자네라면 음, 저치보다는 무공수위가 높아보이니 더 잘 가르칠 수 있겠지?"

"예, 맡겨주십시오."

나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란 말에 작게 만족했다.

이 정도라면 나 역시 무공수련시간을 많이 뺏기지 않을 수 있었다.

특히나 삼화취정에 경지에 이른 후로는, 의념에 대한 탐구가 더욱 많이 필요했으므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이들의 의념을 탐구할 수도 있으리라.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어떤 이유로 무공을 배우는 아이들입니까?"

"아, 그건 말이지."

연기기 수도자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최근, 수도가문의 위에서 군림하던 수많은 수도종문들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하네. 뭐 나도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지만, 결단기 이상의 경지의 수도자들이 갑자기 대거 사라졌다지?

그래서 현 수도계는 폭풍전야나 다름없다네. 결단기 너머로 최대한 빨리 향하는 수도자가 수도계의 권위자가 될 테고, 그가 속한 수도가문이 대가문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여 현 수도계는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뒤로는 엄청난 암중혈투가 벌어지고 있네. 저 무도한 막리세가 놈들은 금단의 비약으로 결단기 수도자들의 수명을 늘려, 결단기 후기의 태상 장로들이 그 이상의 경지로 향할 발판을 닦는다지."

'그런 거였나...'

나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련의 사건의 인과관계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천 년에 한번 열린다는 승천문.

수많은 고위 수도자와 수도종문이, 승천문에 도전하기 위해 등선향으로 몰려들었고, 현재 그 탓에 현 수도계에는 결단기 수도자만이 남은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하루빨리 다음 경지로 가는 수도자가 수도계를 지배할 수 있었기에,

막리세가는 범인들의 정혈을 빨아, 가문에 남은 결단기 수도자들의 수명과 수행을 늘리려는 것이었다.

'그 괴물들이 상계로 비승하든지 말든지, 별 일 아니라 생각했었지만... 의외로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그것에 있었었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기기 수도자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막리세가, 그 마도 가문은 금단의 비약을 만드는 공정으로, 막대한 범인들의 생혈을 필요로 한다네. 그 덕분에 연국 곳곳에서 실종자가 늘어나고 있고... 저 아이들은 우리 진씨세가가 구출한 생존자들이지.

저 아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친지를 죽인 막리세가, 현 황실에 막대한 분노를 품고 있어. 그리고 본 진씨가문은 막리세가가 범인들의 정혈을 마구 갈취하며 금단의 비약을 완성해, 막리세가의 결단기 수도자들이 경지를 뛰어넘지 못하게 막고 싶지."

'수도가문과 저 아이들의 이해가 일치한 건가...?'

그렇다면, 저 아이들은 설마.

"...그래서 우리는 일단 연국을 막리 놈들한테서 탈환해, 막리 놈들이 마구잡이로 범인들을 잡아들이지 못하게 할 작정이네. 그 일환으로, 우선 현 연국의 황제인 막리정 놈을 암살할 생각이고."

나는 이어지는 설명에, 무언가 섬칫한 기분이 들었다.

"저 아이들은 모두 암살자로 자원한 아이들이라네. 자네가 저 아이들에게 무공을 가르칠 수 있겠나?"

그제야 나는 이어지던 섬칫한 기분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지난 삶에서 손수 목을 잘랐던 아이들을 내 손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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