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26화 (26/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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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차의 첫날

눈을 뜨자, 익숙한 내음이 풍겨왔다.

등선향의 숲 속.

'다시 회귀했군.'

나는 우선 내게 뭐라고 하려는 전명훈에게,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수면혈을 눌러 푹 재워버렸다.

'황태자는 베는 데에 성공했는지 모르겠군.'

몸이 움직였던 것 같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런지...'

수도자들이 그런 것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기사, 내가 경지에 올랐답시고 너무 안일했던 것이리라.

무림인도 평소에는 3할의 실력을 숨기고 다니고, 구명절초를 숨기는 이들도 많았는데 수도자라고 그 비슷한 것이 없을리는 없었다.

'끝의 끝까지 안 썼던 것을 보아, 아마 본인의 실력이 아닌 외물(外物) 같았다. 아마 법기(法器)의 한 종류겠지.'

다음부터는 수도자를 참할때는, 그런 구명법기가 있는질를 확인한 후 참해야 할 터였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몸 곳곳에서 느껴지는 새로운 생명력을 느꼈다.

회귀한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지난 삶에서... 삼화취정에 올랐다.'

계속해서 꿈꿔왔던 성취였다.

동시에 반드시 저번 생에 이루고자 했던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빨리 죽었어.'

여태까지의 삶들에서는, 모두 내 수명에 맞게 죽었다.

전부 약 50년에 달하는 일생을 살며 차근히 성취를 정리하고 올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생에서는 처음으로 내 수명 이전에 죽었었다.

'아쉽군.'

몇 십년을 더 살며 내 깨달음을 더욱 더 참오했다면, 어쩌면 오기조원으로 향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됐다. 아쉬워 해 봤자지.'

난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지금 또 다시 생을 얻은 것 역시 기적같은 일이었고, 나는 다시 얻은 이 생(生)에 작게 감사를 표했다.

"이, 이 보게 서 대리. 전 과장이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질 않는군. 여기는 또 어디고..."

김영훈과 오현석 차장이 전명훈을 붙잡고 안색이 하얘진 채 말했다.

"음, 제가 이전에 한의학을 배운 적이 있으니 한 번 진맥하게 해 주시죠."

"저, 정말인가? 믿겠네!"

나는 전명훈의 맥을 짚는 척 하며 다시 혈을 짚어 깨웠다.

"으음...? 여긴..."

난 녀석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시 수면혈을 짚어 재워버렸다.

"음, 방금 깨어난 걸 보면 그냥 잠든 것 같습니다. 평소에 피로감이 쌓이셨던 것 같군요."

"그, 그런가? 다행이군."

"아니, 그럴 게 아니라 깨워야 하지 않나?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나는 전명훈을 깨우니 마니 하는 김영훈과 오현석을 보며, 근처에 있던 큰 나무를 가리켰다.

"저는 잠시 저 나무 위로 올라가서 주변에 뭐가 있는지 보고 오겠습니다."

"으응?"

두 사람의 대답은 듣지 않은 채, 나는 나무를 향해 다가가, 지난 생에 깨달은 무공.

산군무와 월악보의 진체(眞體).

산군월악비(山君越岳飛)를 펼쳐보았다.

파아앗!

말 그대로 범이 큰 산을 넘으며 날아오르듯, 나는 겅중겅중 나뭇가지들을 뛰어올라 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허어... 서 대리. 엄청나군."

"언제 그런 걸 배웠나?"

"하하..."

나는 적당히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설명을 해 주며, 사람들을 설득시켜 동굴로 끌고 갔다.

그리고 동굴에 바람막이를 만들고, 모닥불을 준비하며, 나는 계속해서 삼화취정의 깨달음을 갈무리했다.

'상대와 끊임없이 통(通)한다.'

삼화취정에 막 진입했을 때는 전투를 치루는 상대방과만 통하겠지만,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적이 아닌 주변의 동료, 혹은 키우는 동물의 의념과도 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능력이 극대화되면...'

결국에는 식물이나 무기물은 물론이고, 세계에 흐르는 수많은 의념을 읽어내어, 세계(世界) 그 자체와 통(通)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아마, 오기조원의 경지겠지.'

나는 오기조원의 경지를 어렴풋이 추측해 보며 싱긋 웃었다.

문득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핫, 하하하핫!"

함께 모닥불에 쓸 나뭇가지를 모으던 오현석 차장이 의문어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웃는건가?"

"아, 아닙니다. 조금 웃긴 일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지금껏 삼화취정이 절정의 끝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삼화취정은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기조원으로 향하는 시작일 뿐이었다.

'오기조원도 마찬가지겠지.'

끝은 곧 다음으로의 시작일 뿐이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미약하다.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도달할 것이다.'

시작이라는 건, 언젠가는 끝에 도달한다는 의미였으니까.

이번 생애의 목표는 당연하게도 오기조원!

이제, 수도자가 되기까지 한 걸음 남았다.

* * *

밤이 되었다.

회사 동료들은 모두 잠에 들었고,

낮동안 실컷 잠을 자던 전명훈이 일어나려 했지만, 내가 뒷목을 치자 다시 기절해 버렸다.

나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동굴 바깥으로 나가 황주삼들을 캐어먹고 내공을 찾았다.

그런 후 적당한 나뭇가지를 골라 깎아 목검으로 만들었다.

우우웅-

기와 의를 불어넣자, 목검에는 새하얀 검강이 맺혔다.

분명 평생을 단련해온 저번 생의 단단한 육체는 아니었다.

그러나, 더 이상 검을 쥐어도 손아귀가 아프지 않았다.

'좋군, 새로운 삶이란.'

항상 마지막 순간에 덮쳐온 죽음 직후, 그 다음에 느끼는 삶이란, 이리도 감사한 것이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내 몸을 관조했다.

그리고 검강을 바라본 후, 바람결에 실려오는 냄새를 맡았다.

'저쪽이군.'

타닷!

산군월악비를 펼치며, 나는 나무 위로 올라가 나무들을 건너뛰며 냄새가 느껴지는 쪽으로 달려갔다.

슈슈슉!

한 번 발을 디딜 때마다 나무들이 순식간에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듯 하다.

잊을 수가 없는 이 냄새.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의식 영역.

저곳에.

여우가 있었다.

찌릿, 찌릿!

여우의 영역을 육안으로 확인하자, 전신에 긴장이 맴돌았다.

여우의 영역은 여우를 중심으로 반경 30장이 넘는 크기였다.

'결단기 수준...!'

이제는 의식영역의 크기를 통해서 어느 정도 상대의 경지가 가늠이 가능했다.

지난 삶에서 스치듯이 한번 본 진씨세가 결단기 수도자의 의식영역이 딱 저 정도 크기였었다.

우웅-

나는 절정고수의 시야를 유지하며, 자색빛이 도는 여우의 영역을 관측하였다.

그때, 여우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눈을 떴다.

슈칵!

나는 황급히 의를 벼려내어 여우의 인식(認識)을 잘라내며, 귀식대법으로 존재감을 지워버렸다.

여우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이상함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영역 밖에서 한참 떨어져 있었으니 망정이지.'

여우의 영역 안이었다면 택도 없었을 것이다.

연기기 저계 수도자의 의식과는 달리, 결단기에 준하는 존재의 의식은 훨씬 빽빽하고 농밀했다.

저 틈에서 결을 찾아내서 몰래 자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역시, 아직 내 수준으로 여우는 상대할 수 없다.'

말이 안 될 정도로 체급차이가 컸다.

'여우를 죽이기는 커녕, 도망치기라도 하려면 오기조원에는 도달해야 한다.'

그 전에는 저 빽빽한 의식의 틈을 감히 비집을 수도 없을 터.

'...일단, 삼화취정의 경지를 조금 연습해 봐야겠군.'

나는 눈 앞에 떠오르는 거대한 자색의 의식영역을 바라보며, 의식을 집중했다.

그러자, 얼마 후 자색의 영역은 적색으로 바뀌어가며 나와 여우의 의가 구분되었다.

삼화취정의 경지에서는 단순히 의념이 자색으로 보일수도 있었으나, 이런 식으로 의념을 통제해서 다시금 의가 적색과 청색으로 나뉠 수 있게도 인식할 수 있었다.

얼마간 자색의 의념과 청색, 적색의 의념을 통합했다 분리했다 해 본 나는, 천천히 땅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여우가 있는 쪽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슈칵!

한 걸음을 내디디며, 동시에 다시 여우의 인식을 베어낸다.

다시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나는 차츰차츰 여우의 의식영역에 가까워지며 끊임없이 내 의념을 날카롭게 벼려내었다.

'의식영역의 안쪽에 들어갈 수는 없다. 하지만... 최대한 가까이 가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나는 여우에게 얼마나 도달할 수 있을까.

의식은 어느 정도의 경계를 기준으로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그 경계라는 것은 명확하지 않았다.

절정고수의 시야로 보기에 경계가 나뉘어 있는 듯이 보여도 사실 그 너머로도 끊임없이 미약한 의식이 흐르는 것이었다.

나는 그 미약한 의식을 자르며, 여우에게 접근해보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어느 위치에 있는가!

나 자신을 시험할 기회이자, 동시에 월수궁무록을 이해하고, 단련할 기회였다.

부웅! 부웅!

내 목검이 허공을 가르며, 아주 미약하게 뻗쳐 있는 여우의 식(識)의 결을 베어나갔다.

한 걸음을 걸어갈 때마다 전신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무수한 의식의 결을 갈라낼 때마다 긴장감에 가슴이 두근댄다.

'아니, 더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한 걸음을 더 걸어갔다.

여우의 의식영역까지의 거리는 이제 서른 보가 남았다.

다시 의식의 결을 베어가며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우우웅-

여우의 의식이 거세졌다.

뭔가 위화감을 느낀 것이었다.

나는 황급히 그 자리에서 온 집중을 쏟아 의식의 결을 베어내며 여우의 인식범위에서 벗어났다.

'멀다...'

지난 생의 김영훈이었다면, 이 정도 거리는 단숨에 스쳐지나고, 그대로 여우의 의식영역 안쪽에 진입할 수 있었겠지.

그러나, 나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제대로 된 의식영역의 안쪽까지 스물 아홉 걸음. 이것이 현재의 내 수준인 셈이었다.

'아니,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었다.

'더 갈 수 있다.'

혼신의 집중력으로, 더더욱 많은 결을 본다.

그리고,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휘익!

검에 맺힌 의(意)에 다시 결이 잘렸다.

'이게 내 한계라고?'

그렇다면 어쩌란 건가.

내 한계는 원래 훨씬 비천했다.

여우에게 가까이 오기는 커녕 항상 동굴에서 기다리다가 팔이나 뜯기는 처지.

한계의 한계를 계속해서 뛰어넘어 이 자리까지 왔다.

이번에도 내 한계를 뛰어넘을 것이다.

'뇌를 짜내라!'

뇌가 불타버릴 때까지!

절정경에 익숙해진 지금이야 편하지만, 원래 절정경에 처음 올랐을 당시에는, 뇌가 타는 듯한 기분을 상시 느껴야만 했다!

뇌가 타오르는 것 같다.

더욱 더 많은 의식의 결이 자세하게 보였다.

나는 다시 한 걸음을 디뎠다.

여우의 영역 안쪽까지의 거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스물 일곱 걸음.

스물 다섯 걸음.

스물 두 걸음.

스무걸음.

열다섯 걸음.

그리고...

'열 걸음!'

과도하게 뇌를 과부하시킨 탓인지, 내 뇌가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한도를 초과한 긴장감에 근육과 몸이 한껏 수축해 있었다.

'한 걸음을 더 걸으면, 정말로 들킨다.'

이 다음 걸음은, 여우의 의식의 색조가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곳.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여우에게 들킬수도 있다.

'...뭐, 어떤가.'

전신에서 식은땀이 비오듯 흘렀으나, 나는 오히려 히죽 웃었다.

'한 걸음을 더 내딛을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

내 육신이 미친듯이 비명을 질렀다.

뇌에서 연기가 날 것만 같았다.

'살고 싶으면, 능력을 더 짜내라!'

나는 둔재다.

그러니, 기회가 될 때, 죽을만큼 능력을 짜내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죽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뇌에 피가 몰렸다.

동시에, 나는 반 보를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반 보.

본래는 일 보를 더 딛어야 했으나, 육체가 이 이상은 더 나아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막아섰기에 생긴 현상이었다.

하지만...

'한계를, 넘었다.'

들키지 않았다.

여우는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고, 내 육신은 내가 한계라고 생각했던 곳을 한참 넘어와 있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기척을 죽이고, 다시 인식을 베어가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번 생에는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다음 생에는, 조금 더 깊숙히 들어갈 수 있겠지.

여우의 의식이 미치는 영향권을 완전히 벗어나, 나는 다시 동굴로 달려가며 생각했다.

'다음에는, 더욱 더...'

더욱 더 깊이 들어갈 것이다!

주륵...

동굴에 도착하자,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뇌를 하도 과부하시킨 탓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쓰러질 것 같은 피로감에도,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하하, 하하하하하!"

이번 생.

일어난지 첫 날!

나는, 또 한 번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에 성공했다.

계속해서 한계를 넘어서서, 반드시 다음 경지에 이르리라!

다섯 번째 회귀.

오기조원(五氣朝元)이 이제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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