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23화 (2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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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단(1)

김영훈을 따라 황실을 나가, 서경성 외곽 작은 장원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김영훈을 따라왔다는 무림인들이 모여있었다.

“당신들은···.”

나는 김영훈이 끌어모았다는 무인들의 면면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사성삼마의 원로원···? 거기에 각 대문파 원로원 소속도 보이는군.”

무림맹주였던 그 인맥을 통해, 서경성 사성삼마 일곱 문파의 원로원들과, 연국의 대문파들의 원로원의 원로들 몇몇을 끌어모은 듯 했다.

모두 하나같이 절정 고수로, 검사(劍絲)를 못 쓰는 이가 없었으며, 삼화취정의 고수만 해도 열 명이 넘는 전력이었다.

‘수도자만 없었다면, 능히 황실도 뒤집어엎을 전력이다···!’

내가 그들의 전력에 감탄하는 새, 그 중 몇몇이 내게 투기를 쏘아 댔다.

붉은 의념이 내 목과 미간, 급소를 노려 대며 나를 자극했다.

‘뭐야, 시험이라도 하는 건가?’

피잇!

나 역시 내게 의념을 날리는 이들에게 의념으로 그들의 급소를 가리켜 주었다.

짧은 순간 나는 몇몇의 대문파 원로들과 간합을 겨뤘다.

“큼, 초대 맹주, 천하제일도께서 데려온 이는 누구요? 서경성에서 처음 보는 고수이오만.”

“아, 이 자는 서은현이라는 내 동생으로. 이십 년 전 창호성 일대에서 이름을 날린 절정 고수일세. 최근에는 황실의 어둠 속에서 활동하다가 내 제안을 듣고 따라 나왔지.”

그 말에, 몇몇 원로들의 눈에 불쾌감이 깃들었다.

“하필 관의 인물을 데려왔단 말이오? 그것도 하필 황실 사람을?”

“아직도 저자가 황제에게 충성하고 있다면 어쩐단 말이외까?”

“나는 관의 인물은 믿을 수 없소!”

아무래도 무림문파들은 기본적으로 관과 사이가 안 좋다 보니 자연스레 편견이 있는 모양이었다.

“잠깐, 다들 진정하시오. 그는 분명 황제의 밑에서 일하던 이였으나, 내 말을 듣고 완전히 황제를 배신했소이다. 그렇지 않나, 서 아우?”

“그렇습니다. 원하신다면 황제의 욕이라도 한번 해 보지요.”

나는 헛기침을 한 후, 그동안 황제에게 쌓아뒀던 울분들을 담아 터트렸다.

“황제! 막리정, 이 자라같은 놈! 부하들은 개같이 부려먹고 자기는 편히 잠만 처자는 후안무치한 놈아, 이제 네 일족의 만행을 천하에 까발려 주겠다!”

황제의 호위를 하며, 황제는 자기도 수도자면서 암살자가 오면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침소에서 방음 법술을 켠 채 실컷 자고만 있는 그 모습이 짜증 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거기에 나는 처음부터 연국의 백성으로 커서 황제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황제라는 존재에 대해 일정 부분의 반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내가 얼마간 황제에 대해 욕을 퍼붓자, 그제야 자리에 모인 절정 고수들의 눈에 경계심이 조금 옅어졌다.

“음, 하긴. 저 정도 욕설이라면 첩자로 들어왔다고 해도 사형감이로군.”

“황실의 첩자였다면 안전한 욕만 했겠지.”

나는 그렇게 절정 고수들의 인정을 받았다.

어느 정도 나에 대한 인정이 끝나자, 김영훈은 좌중에 모인 무림인들에게 말했다.

“들으시오. 전에 말했다시피, 현 황실. 그리고 황실의 뒤에 있는 수도가문, 막리세가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져버리고 수많은 민초들의 정혈을, 문자 그대로 빨아먹었소. 식인을 하는 마두들과 다를 바 없는 이들이란 말이오.

모으고자 하는 동료도 다 모았으니, 나는 오늘부터 막리세가의 반대파인 진씨세가라는 수도가문과 손을 잡고, 막리세가의 거점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릴 것이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진씨세가가 우리의 뒤를 받쳐 줄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인도하에 막리세가의 숨겨진 영지들을 찾아가, 그들이 민초들을 갈아 단약을 만드는 연단로를 부술 생각이오.

이곳에 모인 대협들께서, 이 영 모의 뜻에 동참해 주었으면 하는 바이오.”

모두 큰 대답은 없었다.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럼, 우선 하루라도 빨리 그 악랄한 마도(魔道) 수도자들의 거점으로 향해 그들의 단로를 하나라도 빨리 부숩시다!”

우리는 김영훈을 따라 서경성을 나섰다.

서경성에서 동북쪽에 떨어진 작은 산골.

임맥곡이라고 불리는 협곡.

그곳에, 한 무리의 적포 수도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자들은···.’

몇 년 전 황제 암살에 참여했던 수도자와 같은 복색이었다.

저들이 진씨세가 수도자들이리라.

“흠, 하나같이 쓸 만은 해 보이는군.”

그들 중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이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약속은 지켰소. 나와 동조하는 이들을 데려왔으니, 함께 저 간악한 수도자들을 처리할 수 있게 해 주시오.”

“그래, 그래. 맞는 말이네. 간악한 막리가 놈들은 전부 연국에서 없어져야 하지. 그럼, 막리세가의 영지로 향하는 문을 열겠네.”

우웅―

적포 노인이 수결을 맺자, 협곡의 모양이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우리를 잘 따라오게. 지금부터, 막리세가의 진법을 돌파할 예정이니.”

우리는 적포 수도자들을 따라, 이지러지는 길을 걸어 들어갔다.

얼마 후, 협곡이 일그러지던 풍경이 사라지고, 우리는 어느새 왠 마을에 들어와 있었다.

초가집들이 늘어서 있는 아주 자그맣고 향토적인 마을이었다.

‘이 냄새는.’

그러나 나를 포함한 수많은 절정 고수들이,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곳곳에서 피 냄새와,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침입자다! 진가 놈들이 쳐들어왔다!”

대앵, 대앵!

마을의 한 망루 위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초가집 곳곳에서 청포를 입은 수도자들이 나와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우웅!

마을 전체에 푸른 장막이 씌워지며, 우리가 진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하, 무림인 놈들 좀 데려왔나 보다만, 너희 진씨세가 놈들은 감히 이곳으로 들어올 수 없다!”

척 봐도 튼튼해 보이는 결계.

푸른 광막의 두께는 내가 저번에 강기로 깨부쉈던 수도자의 종잇장 같은 법술보다 몇백 배는 두꺼웠다.

그때였다.

저벅, 저벅···.

김영훈이, 앞으로 나섰다.

“장로님, 저 범인 놈은 뭡니까? 정말 믿고 맡겨도 되는 겁니까?”

뒤에서 적포를 입은 진씨세가의 수도자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적포 노인이 잠시 침음하다가 말했다.

“범인 놈이지만, 저놈은 별개다. 믿기지 않겠으나, 저놈은 범인의 몸으로 이 나와 겨루며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거기에, 놈이 쓰는 기술의 위력은, 간혹 내 방어력을 뛰어넘기도 했으니···.”

우웅―

김영훈이 기를 끌어올린다.

나와 절정 고수들, 심지어 삼화취정에 오른 노괴들마저, 김영훈의 일 초(招)를 눈에 담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우우웅―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허공에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기운은 점차 뭉치더니 강기의 형태로 뭉쳤다.

강기 속에서 느껴지는 가공할 힘에, 우리는 물론이고 진씨세가의 수도자들마저 움찔거리는 이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강기의 변화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저것은···!’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 김영훈의 초수를 바라보았다.

강기가, 뭉친다.

쿠구구구구!

‘저건···!’

지난 삶의 마지막.

김영훈이 미친 듯이 달리며 추구했던 경지.

꾸구구구구―

‘오기조원, 그 너머의 경지!!!’

그가 최후의 최후까지 바라왔던 경지가, 지금 또다시 김영훈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강기가 뭉치며, 작은 환(丸)의 형태로 변화한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저 환(丸)에 직격당하면, 무사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으리라는 것을.

지난 삶, 결단기 수도자의 팔을 터뜨렸던 일격!

축기기 수도자와 정면으로 힘 싸움을 벌일 수 있다는 초수!

저 강기의 환(丸)이, 김영훈의 손짓에, 수도자들이 펼친 결계로 떨어졌다.

쿠과과과광!!!

빛이 번뜩이며 광풍이 몰아친다.

수도자들을 저마다 광풍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무언가 법술을 펼쳤고, 우리 절정 고수들은 그저 다리 힘으로 버티거나 바람의 결을 베어 내며, 저 광경을 눈에 담았다.

보인다.

수백, 아니.

수천, 수만에 달하는 도강(刀罡)들이 저 환에서 폭발하듯 튀어나오며 결계를 난도질하는 것이.

절정 고수의 세계에서, 수천수만의 의념(意念)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궤도로 이지러지며 춤추는 것이.

“끄음···.”

진씨세가의 장로라는 적포 노인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어쩐지 저 환에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듯이.

광풍이 잦아들었고, 빛이 꺼졌다.

눈앞에 드러난 것은, 결계의 한가운데에 대문짝만하게 뚫린 바람구멍이었다.

“모두, 진입하라!”

“예, 장로님!”

진씨세가 수도자들이 각자 비행법기를 타고 김영훈이 뚫어놓은 바람구멍으로 들어갔다.

우리 역시 각자 병장기를 들고 결계의 구멍을 향해 들어섰다.

“마, 막아라! 진가 놈들을 막아!”

“자, 잠깐! 저 무림인 놈팽이들부터 막아라! 무림인들···.”

슈칵!

삼화취정에 오른 절정 고수의 검강이, 앞에서 떠들던 수도자의 방어 법술을 그대로 뚫고 그의 목을 갈라 버렸다.

“버, 범인이 수도자의 법술을!”

“무림인 중에서도 최상위층이다! 연기기 일, 이성 수도자들은 후방으로 물러나고, 강시를 풀어라!”

동시에, 마을의 이곳저곳에서 시커먼 강시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파앙!

강시들이 절정 고수들에게 달려들었다.

녀석들의 속도는 우리보다 빨랐고, 힘은 한참을 앞선다.

그러나.

‘보인다.’

강시들이 내지르는 최적의 경로가 훤히 드러났다.

‘기이하군.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지만··· 저 선은 의(意)를 뜻한다. 그렇다면, 이미 죽어 고혼이 된 강시들에게도, 의(意)가 있다는 말인가?’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강시의 손을 피한 후, 심산의 초식으로 파고들어 대각선으로 베며 생각했다.

‘단순히 조종하는 이들의 의념인가? 아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강시들에게 의념이 있다면, 어째서 강시들은 검기를 못 쓰는 건가.’

나는 강시들을 베어 넘기며 생각했다.

강시 너머로, 한 수도자가 법술을 준비하는 것이 보였다.

피슛!

나는 빠르게 손을 놀려, 수결을 맺는 수도자를 향해 암기를 날려 주었다.

까강!

암기는 수도자의 방어 법술을 맞고 튕겨 나갔으나, 수도자는 전투 경험이 없는 모양인지 암기소 리에 준비하던 법술을 그만 취소해 버렸다.

‘식(識)의 크기로 보아··· 연기기 일 성 정도군.’

나는 상대하던 강시를 베어 넘겨 버리고, 수도자의 품으로 파고들어 가 검사(劍絲)를 내질렀다.

까앙!

검사에 적중당하자, 수도자의 방어 법술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지난번 싸웠던 연기기 이성 수준의 수도자가 쓰는 법술보다, 형편없이 약하다.’

물론 그 수도자는 부적으로 인해 실력이 뻥튀기된 점도 없잖아 있었으나, 방어 법술만은 그의 실력으로 펼친 것이었다.

까강, 깡!

검사로 얼마나 내리쳤을까,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그 수도자의 법술을 그대로 꺠져버렸다.

“흐, 흐이익··· 사, 살려. 살려주십시오.”

나는 내게 비는 수도자의 멱살을 잡은 후, 녀석이 나온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토속적인 초가집이었지만, 모든 집들에서 각각 끔찍한 피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벌컥!

집의 문을 열자, 눈에 보인 것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참혹한 풍경이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죽어 있었고.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정혈이, 방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진법에 흘러들고 있었다.

“···이건 뭐냐.”

“제발 살려 주십시오. 쇤네는 그저 가문에서 시키는 일만 했을 뿐입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아니었고, 저는 사실···.”

“뭐냐고 물었다. 말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히익, 말하겠습니다.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이건 일차 정제입니다.”

나는 미간을 꿈틀거렸다.

“일차, 정제?”

“예. 범인들의 정혈과 선천진기를 일차적으로 뽑아낸 후, 진법에 모아서 일차적으로 정제를 해 원혈(原血)로 만듭니다. 그 원혈을 이제 가문의 윗사람께 전달하면 그분이 더 높은 영지로 가져가, 원혈들을 한데 모아 섞은 후 다시 이차 정제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삼차, 사차, 오차 정제까지 한 후, 범인들의 피와 선천진기 수천 개 분을 합친 선혈(鮮血)로 정제한 후, 그것으로 연단(燃丹)을 하면 결단기 태상 장로님들이 잡수실 복명단(復命團)이 완성됩니다.

아이고 대협, 저는 정말 잘못이 없습니다. 워, 원하신다면 제가 정제한 저 원혈들을 전부 대협께 드리겠습니다. 원혈들은 나름 강력한 기운의 덩어리인지라 대협이 잡수시면 내공 증진은 물론이고···.”

“고맙다.”

나는 녀석을 쳐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너희를 망설임 없이 죽일 수 있겠구나.”

“예, 예···?”

푸콱!

나는 검으로 목을 베지 않고, 주먹에 내공을 불어넣어 수도자 놈의 머리를 터트려 버렸다.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마도 수도자들이라도, 그저 이곳에서 평안하게 수련하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마을의 생김새와 같이, 순박한 수도자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

‘이 마을에, 선한 놈은 없다. 아니,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모든 망설임을 떨쳐 버리고, 강시들을 부리는 청포 수도자들을 향해 검을 뽑아 들었다.

“너희들 전부, 살아있을 이유가 없는 놈들이다.”

단악검법.

기산심천!

전신 경맥을 크게 열어젖히며, 한껏 강화된 검사를 뻗어 내게 달려드는 강시들을 일거에 베어 넘기며, 나는 청포 수도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전부 죽어라!”

***

전투는 빠르게 끝이 났다.

마을 중앙에 있던, 막리세가의 축기기 수도자는 진씨세가의 장로와, 김영훈의 합공을 받아 순식간에 죽어 버렸고.

축기기 수도자를 족쳐 버린 김영훈이 돌아다니며 강시들과 다른 수도자들을 강기 다발로 썰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흐하하, 좋다, 좋구나! 역시 막리세가 수도자답게 주머니가 두둑하군!”

“이번 토벌에 오기를 잘 했어!”

진씨세가 수도자들은 하나같이 막리세가 수도자들의 시체를 뒤지며, 그들의 주머니를 털고 있었다.

심지어 진씨세가의 장로마저도 막리세가 축기기 수도자의 시신을 뒤지고 있었다.

“···수도자 놈들은 조금 너무하는군.”

“어떻게 사람을 죽여 놓고 주머니 뒤질 생각이나 한다는 말인가.”

“크흠, 흠.”

그에 반해 나와 다른 절정 고수들은 조금 불편한 눈치였다.

나 역시 사파무림인들을 죽인 후 그들의 무기나 재산을 갈취한 경험은 있었으나, 저런 식으로 시체를 적극적으로 뒤지는 짓은 한 적이 없었다.

“험험, 승자가 전리품을 챙기는 건 당연한 걸세. 자네들은 범인이라 수명이 짧아 잘 모르겠지만, 전리품을 챙긴다는 것은 패자의 명예를 지켜 주는 일이기도 하다네.”

한 진씨세가 수도자가, 절정 고수들이 쑥덕이는 소리를 들었는지 조금 얼굴이 붉어진 채로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을수록 우리의 표정은 더욱 굳어질 뿐이었다.

“큼, 됐네. 어차피 수도자들의 생각을 범인들이 이해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 그리고, 자네들은 챙길 게 없으면 슬슬 마을을 뜰 채비나 하시게나.”

그때, 김영훈이 우리에게 걸어오며 말했다.

“먼저 기다리고 계시구려. 우리는 할 일이 있소.”

“흠? 뭔가. 아, 역시 자네들도 전리품을···.”

김영훈은 수도자의 말을 무시하고, 우리를 향해 말했다.

“수도자들의 집에는, 각기 희생당한 범인들의 사체가 있소. 그들의 시체가 계속 저렇게 방치되지 않게 최소한 묻어 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대협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맞는 말이오.”

“그래, 그들을 잊었군.”

우리는 각자 막리세가 수도자들이 살던 집으로 들어가, 범인들의 사체들을 끌고 나와, 하나하나씩 땅에 묻어 주었다.

“쯧, 가만히 놔두고 오게나. 어차피 죽은 이들일세. 빨리 떠나는 게 낫지 않나?”

전리품을 다 챙긴 진씨세가의 장로가 짜증 난다는 듯, 땅을 파고 있는 김영훈에게 말했다.

그러나 김영훈은 물론이고, 우리 중 누구도 그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묵묵히 땅을 파고 시신들을 묻었다.

몇 시진이 지났을까.

우리는 기어코 수많은 시신들을 전부 묻어 준 후, 김영훈의 주도로 짧게 제문(祭文)을 읊어 원귀가 되지 않게 빌어 준 후 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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