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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 고수(4)
벤다!
벤다!
필생의 의지력을 쥐어짜 내며, 수도자의 다리를 향해 검을 내지른다.
여유롭던 수도자의 얼굴이, 내 검강이 그의 방어 법술을 파고 들어가자,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슈칵! 카각, 칵!
피잇.
내 모든 내력을 짜내 만든 검강이, 바람에 닿은 촛불처럼 싱겁게 꺼져 버렸다.
공력이 부족했다. 수십 년 어치의 내공을 일거에 쏟아부었을지언정, 깨달음이 없이는 검강을 1초 이상 구현하기 불가능했던 모양.
내 검은 방어 법술 안쪽, 수도자의 다리 어림, 그의 옷을 조금 잘라 내고 그의 다리에 작은 상처를 냈을 뿐이었다.
우그극···.
검강이 꺼지자 더 이상 검은 방어 법술을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동시에 모든 내공을 일거에 쓴 반동이 몰려오며,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전신에 힘이 빠져버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커헉! 컥!”
쿨럭, 쿨럭!
기침을 할 때마다 피가 튀어 나왔다.
내장이 진탕될 것 같았다.
“이, 이··· 더러운 범인 자식이···!”
그리고, 내 공격은 수도자를 제대로 분노하게 하는 데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푸콱, 푸콱!
그가 부적을 꺼내 흩뿌리자, 부적들은 적광이 감도는 비수로 변해, 내 팔과 다리를 찔렀다.
“끄···으윽···!”
나는 고통을 참으며 검을 잡으려 했으나, 수도자가 다리로 내 손을 짓밟았다.
“쓰레기 같은, 범인, 자식이!”
퍽! 퍽! 퍽!
그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주변으로 더더욱 강한 방어 법술을 펼친 후, 내 손을 마구 짓밟기 시작했다.
“감히, 감히 누구를 벤다는 말이냐! 네가, 네 따위가 감히! 이 몸은 너희 하등한 범인 놈들이 감히 손댈 수 없는 고귀한 수도일족의 핏줄이란 말이다! 감히, 감히 네 따위가!!”
얼마간 내 팔을 짓밟던 그는, 허리춤에 있는 주머니에서 다시금 부적을 한 움큼 꺼내더니 허공에 흩뿌렸다.
“막리가 방계 놈을 죽이기 전에 여흥으로 놀려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너희 범인 놈들을 모조리 벌레처럼 찢어 죽여 주마!”
화르르륵―
부적들은 모두 불타는 화탄(火彈)으로 변해, 호위대원들을 향해 하나둘 쏘아지기 시작했다.
“잘 봐 둬라, 벌레 놈. 너는 특별히 네 동료들을 전부 찢어 죽이는 모습을 전부 보게 한 후 잘근잘근 씹어먹어 주마. 너희 벌레 놈들 따위는,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감히 수도자들의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음을 보여 주마!”
“···크헉, 커억···.”
나는 피를 한 됫박은 더 토해 냈다.
내공을 한 번에 쏟아내며 내장이 진탕된 탓인지, 눈앞이 흐려왔다.
그러나, 청각은 멀쩡한 탓인지 몇 단어가 귀로 들어오는 듯 했다.
벌레 놈.
의미가 없다.
‘그래, 나는 벌레나 다름 없다.’
재능도, 실력도, 이 목숨마저도.
진정 재능 있는 이들이나, 수도자들에 비하면.
“···는, ···레···다.”
“응? 뭐라고? 살려 달라고 비는 거냐?”
하지만.
꿈틀.
수도자에게 짓밟힌 손에, 힘을 주었다.
내가 힘을 주려는 걸 얼아챘는지, 수도자는 더더욱 거세게 내 손을 밟았다. 그에게 거세게 짓밟혀 반쯤 으스러진 손이었지만, 나는 더더욱 힘을 주었다.
“···는.”
“뭐라고 하는 거냐. 좀 더 크게 빌어 봐라!”
“···나는, 벌레가, 맞다!”
우극, 우그극!
전신의 힘을 짜낸다.
공력은 한줌도 없고, 팔에는 비수가 박혀 있으며, 손은 수도자 놈에게 짓밟혀 으스러졌지만.
그럴지라도.
내가 단련해 온 세월.
그 인고(忍苦)의 시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덜걱, 덜걱, 덜걱!
팔에 힘을 주자, 점차 수도자의 발이 들리기 시작했다.
‘대강대강 은신을 펼칠 때부터 알아봤다.’
이 녀석은, 몸을 그렇게 단련한 적도.
검을 들고서 치열하게 간합을 재 가며 싸운 적도 없다.
그저 태어나기를 뛰어난 재능으로 태어나, 운 좋게 수도법술을 익혔을 뿐인 녀석.
그런 녀석 따위에게, 질 수는 있다.
그 앞에 쓰러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거쳐온 세월이.
우리가 노력해 온 모든 게, 그저 헛된 발악이라고.
아무리 해도 도달할 수 없다고.
우리의 인고를 짓밟는 것만은,
“나는, 벌레가, 맞다. 하지만···.”
콰득!
‘절대 참을 수 없다!’
다 으스러진 손으로, 그의 발목을 잡았다.
“벌레라도, 그 발버둥이,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이··· 더러운 게, 헛소리 하지 말고 내 몸에서 손을 떼라!”
화르륵!
수도자의 손 위로 또 다시 화탄이 떠올랐다.
저것에 맞으면 난 순식간에 재가 되겠지.
하지만.
‘시간이 됐다.’
화르르···.
피식···.
수도자의 손에 떠오른 화탄은 시간이 지나며 그대로 꺼져 버렸다.
“···어? 이게, 무슨···.”
녀석의 눈, 코,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독이 듣는다!’
일시적으로 검강을 써서 녀석의 방어 법술을 돌파한 것은 사실상 부차적인 것.
진짜는, 검에 발라 둔 맹독이었다.
나는 당황하는 녀석에게 히죽 웃어 보이며, 녀석의 발목을 잡고, 강하게 끌어당겼다.
휘청!
녀석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아, 안··· 해, 해독···.”
녀석의 손이 주머니로 향했다.
탁!
그러나,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의 주머니를 멀리 쳐 버렸다.
“끄, 끄륵···.”
점차 놈의 입에서 피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녀석이 두 손을 모아 무언가 결인을 맺으려는 듯했다.
‘그렇게 둘 줄 아느냐.’
어디, 그 무시하던 벌레 맛 좀 봐라.
철퍽, 철퍽!
나는 전신의 힘을 짜 내, 녀석의 몸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진언을 외려는 녀석의 입에, 으스러진 손을 집어넣었다.
“커, 커헉! 꺼억!”
놈은 주문을 욀 수 없다.
동시에, 나는 결인을 외려는 녀석의 손을 몸무게로 짓눌렀다.
“자, 법술을 써··· 봐라···!”
결인도, 주문도 욀 수 없게 된 수도자는, 꿈틀거리며 나를 떨쳐내려 했다.
그러나, 내공을 전부 소진했을지라도, 수년간 강인하게 단련된 내 몸은 녀석의 저항을 허락하지 않았다.
수도자는 목숨의 위기를 느낀 것인지, 입속에 들어간 내 손을 씹으려고 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필사의 의지로 손을 강하게 물어뜯자, 아릿한 고통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눈을 보며 씨익 웃어 주었다.
“이미 손을 버릴 각오쯤은 해 뒀다. 계속 해 봐라.”
“끄, 끄으읍···!”
얼마간 오공에서 피를 흘리던 수도자는,
그렇게 발버둥 치다가 죽었다.
수도자의 시체는 그가 평생을 벌레 취급하며 쉽게 죽여 왔을 범인들의 시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죽은 모습은 누구에게나 평등했다.
파스스···.
그의 방어 법술이 무너졌다.
그가 펼친 방어 법술 바깥에서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호위대주와 대원들이 빠르게 내게 달려왔다.
수도자가 쳐 놓은 흑색의 결계가 다시 사라졌고, 나는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었다.
***
눈을 뜨자, 내 방이었다.
그리고 대주가 내 옆에서 곰방대를 피우는 모습이 보였다.
“음, 일어났나.”
“···예. 그나저나 환자 옆에서 연초를 뻑뻑 피우셔도 됩니까?”
“무슨 소리인가. 연초는 건강에 좋은 약초라네.”
‘씨발, 저게 무슨 소리지.’
생각해 보던 중, 여기가 잠시 중세 수준이라는 것을 잊었었다.
“그나저나 어찌 됐습니까, 그 수도자는.”
“네가 죽여 놓고 뭘 묻나, 서은현 부대주. 깔끔히 죽었다. 네가 몸을 초개처럼 바쳐 가며 수도자를 죽였다는 것 역시 황제 폐하께 잘 보고드렸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오늘도 임무 완수로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몸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오른손은 아직 감각이 없었고, 몸 곳곳의 기혈은 조금 상해 있었지만, 안정되어 있었다.
수도자에게 비수로 찔렸던 곳도 전부 나아 있었다.
“폐하께서 너를 치료하라고 황실 어의를 붙여 주셨다. 성은에 감사하도록.”
“황실 어의가 깔끔하게 고쳐 놨군요. 의술 솜씨가 배우고 싶을 지경인데요.”
난 어의의 의술 실력에 작게 감탄하며 내공으로 일주천을 했다.
침상에 누워 있어 찌뿌둥하던 몸이 조금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네 오른손은···.”
잠시 내 오른손을 바라보던 대주가 말을 잠시 흐렸다.
그렇게 얼마간 침묵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쓸 수는 있겠지만, 예전 같지는 않을 거라고, 어의가 그러더군. 아직 완전히 낫지는 않았을 테니 무리하게 움직이진 말아라.”
하기야 수도자가 그렇게 밟아 대고 씹어 댔던 손이었다.
솔직히 멀쩡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상관없습니다. 사실 밟혔을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는 했는지라.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지요.”
“···그래. 긍정적이라 좋군. 그리고, 폐하께서 네 기개에 감탄하여 상을 내리시기로 결정하셨다. 암중 호위대는 공식적인 치하가 불가능하니, 내게 대신 전해 주라 하더군.
자, 황제 폐하를 대리하여 어좌 암중 호위대 부대주 서은현에게 상을 내리겠다.”
나는 그 말을 듣자, 침상에서 일어나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폐하께서 가로되, 암중 호위대 부대주 서은현은 신성한 어좌를 몸을 던져 수호하였으니, 그 막중한 책임감을 잊지 말라는 뜻에서 포상을 내리노라 하셨다.
전설 속 수도자들이 먹는다는 축기단과 같은 재료를 사용한 축허단(築虛團)을 내리노니. 서은현은 망극한 마음으로 받으라.”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곧 나는 대주에게서 작은 비단궤를 하나 받을 수 있었다.
비단궤 안에는 붉은빛이 도는 작은 단약 하나가 들어 있었다.
“흠, 듣기로는··· 연기기의 수도자가 축기기로 넘어갈 때 먹는 축기단이라는 단약에서 실(實)만을 빼서 만들어졌다 하더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는 대주의 말을 듣자, 이 약이 어떤 약인지 대강 알 수 있었다.
‘찌꺼기 약이군.’
의당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만큼, 나 역시 영약을 몇 번 만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영약을 만드는 연단사들이 일반적으로 영약을 만들고 난 후.
그 약효가 다 빠져나간 찌꺼기들을 모아 만드는 것을 찌꺼기 단약이라고 불렀다.
보통은 숙취 해소제로 팔거나, 사이비 차력사들한테 파는 것이 찌꺼기 약이었다.
‘그리고 그 찌꺼기 약을 고급스레 부르는 말이, 원본 영약에서 실(實)을 빼서 만든 단약이지. 연단사들의 은어라 모르나 본데···.’
아무리 수도자들이 먹는 영약이라지만, 약효가 다 빠진 찌꺼기 단약이, 대체 무슨 효력이 있을까.
‘황제도 은근 쪼잔한 면이 있군.’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듣기로, 그 약효는 범인들이 먹었을 때 약 십 년의 수명을 늘려 주는 효과가 있다 하더군.”
“···시, 십 년?”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되물었다.
고작 찌꺼기로 만든 게 수명을 십 년 늘려 준다고?
그러자 어쩐지 단약의 빛깔이 달라 보이는 듯했다.
‘어마어마하군···.’
나는 목궤를 받아들고 품속에 넣었다.
대주의 눈에 부러운 눈빛이 스치는 것을 보아 단약이 탐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단약이 아무리 탐난들 황제의 하사품을 어찌할 순 없는 법이었다.
“조금 더 경맥이 안정되면 그때 복용하겠습니다.”
물론 경맥이 안정되면 먹는 게 아닌, 수명이 거의 닳았을 때 먹을 예정이었다.
그래야 약효가 제대로 확인이 될 테니.
‘천천히 먹어도 아무 문제 안 될 테니.’
“그래, 항상 황은이 망극함을 잊지 말도록.”
말을 마친 대주는 내 방에서 나갔다.
‘하여간 황실이 복지는 좋다니까.’
10년이다.
무려 10년!
나는 앞으로 내 인생에서 10년의 시간을 더 벌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황실에 들어온 내 결정을 칭찬하며, 다시 침상에 쓰러져 눈을 붙였다.
어쩐지 이번 생은 잘 풀릴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가슴에 안으며.
***
‘···젠장.’
십 주야가 지났다.
몸이 다 낫고, 훈련을 위해 검을 쥐었을 때였다.
아프다.
검을 쥔 손의 감각이 전처럼 예리하지 않고, 검을 세게 쥘 때마다 손에서 끊임없이 통증이 울려 퍼졌다.
‘제길, 이 정도면 검법을 펼칠 때 심하게 영향이 갈 것 같은데···.’
나는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르며 단악검법을 펼쳐 보았다.
1 초식부터 24 초식까지 검초를 펼칠 때였다.
까앙!
나는 손에서 나는 통증을 참지 못하고 검을 떨어뜨려 버렸다.
‘젠장, 아프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검을 쥘 수 없는 건가?’
나는 눈앞에 떨어진 검을 노려보았다.
나는 검사다.
그런 검사가, 손의 통증 때문에 검을 쥘 수 없다.
그 말은 즉.
‘내 무(武)가, 여기까지라는 건가?’
물론, 앞으로도 싸울 수는 있을 것이다.
절정 고수의 시야는 여전하고, 가공할 내력도 여전하며, 나는 암기술도 상당 수준으로 익혔기에 암중 호위대 역할도 계속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이번 생에, 더 이상··· 검을 익힐 수 없다고?’
이제 검을 잡을 수 없다.
나는, 이제 검사로서는 끝이 난 것이었다.
“···아냐.”
나는 떨어진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건, 아냐.”
검의 손잡이를 쥐자, 다시금 끔찍한 통증이 손에서 느껴졌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하지만···.
‘검을 쥐지 못하는 건, 더욱 아픈 삶이겠지.’
나는 계속 검을 수련할 것이다.
왜냐하면, 검이야말로 내 무(武)의 근간이기에.
그리고, 나는 반드시.
‘다음 경지에 올라야 하기 때문에!’
나는 비명을 지르는 손아귀를 무시하고, 그대로 다시 단악검법을 펼쳐 보았다.
단악검법의 1 초식에서 24 초식.
이번에는, 검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절정 고수에 들어가기 위해 매일같이 검기를 유지했을 때도. 항상 정보 처리를 하는 능력을 단련했을 때도. 절정경에 들어 절정 고수의 세계에 익숙해질 때도.”
고통은 늘 나와 함께했다.
어차피 아픔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그런 삶에, 다시금 이 정도의 아픔이 추가된들 어떠리.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반드시 경지를 올릴 것이다!
***
수도자를 처리하고 세 달 후.
김영훈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용인즉슨, 내가 준 정보에 따라 수도일족이 사는 곳을 찾아가 비무를 벌이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알려준 수도일족들은 너무 실력과 계급이 낮은 탓인지, 빈민층 실종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니, 나는 내가 쓰러뜨린 수도일족에게서, 더 높은 수도일족이 사는 곳의 정보를 받아 더 높은 경지의 녀석들에게 도전해 보려 한다. 추후에 다시 연락하마.
나는 김영훈이 보낸 편지를 화로에 넣고 태워 버린 후 그의 경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김영훈은, 이번 생에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으려나.’
지난 삶들에서, 결단기 수도자의 손만을 자르던 그는, 내 바로 전 삶에서 결단기 수도자의 팔을 터트려 버리는 데에 성공했다고 했다.
‘이번 생에는, 조금 더. 조금 더 올라갈 수 있을까?’
그가 지닌 무재(武才)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나는 그것을 궁금해하며, 김영훈에게 보낼, 다른 수도자들의 위치에 대한 정보들을 편지에 옮겨적었다.
***
다시 10년이 흘렀다.
회귀한 지 30년 차.
이제는 손아귀의 고통도 익숙해졌다.
그리고, 검사를 다루는 능력도 완숙해졌으며, 암기술 역시 점차 몸에 익어 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수도자들이 숨기는 비밀에 거의 다가갔다.’
나는 김영훈이 보내 온 정보를 읽으며 생각했다.
‘수도 일족은 대다수가 강력한 신통을 품은 진법(陣法)에 자신들의 처소와 거주지를 숨기고 살아간다. 신통이 약한 극저계 수도자들은 일반인들의 세상에 장원을 짓거나 해서 살지만, 제대로 된 수도가문의 직계, 혹은 인재들은 수도가문의 진법 속에서 안전하게 생을 보낸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알아내 온 수도자들은 전부 연기기 1, 2성쯤 되는 극저계 수도자들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수도가문의 영지라고 수도자만 사는 것은 아니다.’
수도가문의 영지에도, 범인들이 살았다.
수도자들의 수발을 들거나, 잡다한 노동을 할 이들은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최근 김영훈이 보내온 정보에 의하면, 지금껏 황실에 절정 고수를 보내던 것은 수도자 가문 중 하나고, 그들은 자신들의 영지 안에서 재능 있는 범인들을 모아 절정 고수로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껏 몇 번의 삶을 살면서도, 그런 절정 고수들에 대해 들어본 게 없는 거였군. 전부 수도자들의 영지 안에서 육성된 무림인들이니까.’
그제야 지금껏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장부에서 삭제된 빈민층들 역시 수도자들의 영지 내로 갔을 가능성이 높겠군. 그리고 아마··· 암살자로 키워지거나 수도자들의 수발을 드는 생을 살아갔을 확률이 높아.’
나는 사건의 전모를 이해하며 김영훈이 보낸 편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수도자를 암살자로 보낸 전적으로 보아, 아마 수도 가문 사이의 암투가 지금까지 황제의 암살 전적이었던 거겠지.’
이제는 수도가문에 대한 의문보다는, 내 무공과 김영훈의 행적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떄였다.
턱!
“···!”
내 방 창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무슨··· 헛! 김 형?”
밤 중의 손님은 다름아닌 김영훈이었다.
“마침 김 형이 저번에 보낸 편지를 다 읽고 태운 참이었습니다. 수도 가문의 영지라는 게 있다는 걸 안 덕에···.”
“음, 그 내용의 편지는 저번 달에 보낸 편지인데. 이 세계의 운송 수단이 느려서 늦게 도착했나 보군. 그나저나 지난 한 달간 기함할 만한 것을 발견했기에 네게 찾아왔다.”
“무슨 말입니까?”
굳이 황궁에 침입할 정도의 중요한 정보란 말인가?
내가 의아해할 때였다.
덜걱.
그는 창문을 닫은 후, 도를 뽑아 허공을 향해 몇 번의 칼질을 하였다.
슉, 슉!
보이지 않는 ‘뭔가’를 자르는 듯한 모양새였다.
“뭔가 수상해 보이는 법술들이 있길래 잠시 끊어 놨다. 일단 할 말을 하자면, 이 연국에는 두 개의 수도가문이 있다.”
“예, 보내 주신 편지에서 봤습니다. 하나는 현 황실인 막리세가이고. 하나는···.”
“이 나라의 전(前) 황조, 진(蓁)가다.”
김영훈의 설명이 이어졌다.
“막리세가와 진씨세가는 수 세기 동안 이 나라를 독식하려 암중에서 암투를 벌여왔다고 한다. 그리고, 한 세기 전 오랜 시간 동안 연국을 다스려 왔던 진씨세가를 몰아내고 공식적으로 국가를 손에 넣은 것이 막리세가였다.
막리세가가 연국을 손에 넣고 난 후, 진씨세가의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고 하더군. 그리고 진씨세가는 근래에 들어 범인들을 데려다가 절정 고수로 키워 황제를 암살하려고 했다.”
“예, 거기까진 김 형이 보내 주신 서찰에서 보아 알고 있습니다.”
“그래, 중요한 건 이다음이다. 진씨세가가, 범인들을 데려다가 절정 고수로 키울 수 있던 이유가 무어라 보느냐? 어떻게 그렇게 양산하듯이 절정 고수를 찍어낼 수 있었을까?”
“음··· 뭔가 그들의 원기를 상하게 하는 방법으로 몸을 극한으로 밀어붙여 훈련시킨 게 아닙니까?”
내가 지금껏 보아 온 암살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았으나 죽인 후 그 몸을 검사해보면 하나같이 선천진기가 대량으로 소모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암살자를 보내오는 수도가문에서 범인들을 데려다가 선천진기를 강제로 촉발시켜 수명을 줄이면서까지 암살자의 재능을 극한으로 개화시키는 대법을 쓴다는 의미였다.
“그래, 그것도 있지. 하지만, 진씨세가는 암살자들의 육신에, 그들 가족들의 원혼(怨魂)을 집어넣어 그들이 가진 모든 생기와 의지력을 끌어모아, 재능을 극한으로 개화하게 했다.”
“가족의 원혼? 그들이 암살자들의 가족을 죽여 그들의 몸에 집어넣었단 말입니까?”
나는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김영훈을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진씨세가는 암살자들의 가족을 죽이지 않았다. 그들의 가족을 죽인 건, 현 황실. 황실의 뒤에 있는 수도가문, 막리세가이다.”
“예···?”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근 2, 30년간. 막리세가는 고아, 거지, 빈농들을 잡아들였다. 더러는 수도가문의 영지로 데려가 노역을 시키려는 의도 또한 있었으나. 그 중 9할 이상은 다른 곳에 쓰였지.”
“다른··· 곳?”
김영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잠시 머뭇거리던 김영훈은,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약(藥).”
그의 눈에 가공할 노기가 깃들었다.
“막리세가는, 범인들의 정혈(精血)과 선천진기(先天眞氣)를 모아, 수도자들의 수명(壽命)을 늘리는 금단의 영약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영약의 재료 수급을 위해,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 빈민층을 잡아다가 갈아 넣어 약을 만들고 있다!”
“···!”
나는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뭐, 무, 무슨···.”
범인들의 정혈과 생명력으로, 약을 만든다고?
“그건··· 그건, 식인(食人)이 아닙니까?”
“그래, 맞다. 놈들은 사람을 잡아먹고 있어!”
나는 아연해져 헛웃음을 터트렸다.
중세 수준의 문명이니만큼, 간혹 인간 젓갈을 담가 먹는 사파나 마두들도 가끔 있었다.
물론 그런 극악한 녀석들은 대부분 금세 토벌당하고는 했고, 정사파를 막론하고 금수 취급 받고는 했다.
그런데, 수도자들은 뭔가.
‘그들은, 자칭 하늘에 오르겠다며 도를 닦는다던 놈들이 아닌가?’
사파나 마두도 아니고, 수도자란 놈들이, 그런 역겨운 짓을 한다고?
욱, 우욱!
나는 갑작스레 치미는 토악질을 참지 못하고, 방 안에 있는 요강을 열어 구토를 쏟아 냈다.
“막리세가의 뒤를 캐던 내게, 진씨세가의 수도자들이 접촉해 왔다. 내게 기회를 줄 테니, 막리세가를 치는 일에 동참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
그는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그들의 말에 수락하기로 했다. 사람을 먹어치우는 더러운 놈들은, 더 이상 살아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놈들이 이 나라를 통치해서는 안 돼!
무림문파를 돌며 이 사실을 친한 몇몇에게 얘기하고, 나와 뜻을 같이할 고수들을 모았다.
은현아, 너도 함께하자. 진씨세가가 다시 연국의 황조로 올라선다면 이 더러운 막리가 수도자들보다는 조금이라도 낫겠지!”
나는 얼마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김영훈의 눈은 다시 없을 정도로 짙은 안광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가 저만큼 분노한 것을 본 적은 없었다.
“···좋습니다.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나는 내 방에서 중요한 것들을 챙겼다.
진실을 들은 이상, 이 끔찍한 황조에게 충성할 마음은 단 1푼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 날 김영훈과 함께 황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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