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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 고수(3)
나는 내가 각성한 검사를 쳐다보았다.
검사(劍絲), 혹은 검망(劍芒)이라고도 불리는 경지.
검기의 유형화는 모든 검객들이 꿈에도 그리는 경지였다.
물론 검망의 압도적인 상위 호환인 검강(劍罡)이란 게 있었지만, 검강의 경우는 삼화취정에 이른 고수가 아니면 구경하기도 힘들었기에 무림에서는 반쯤 전설처럼 칭해졌고,
검강보다는 훨씬 보기 쉬운 검망의 경지가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내 검망을 보자, 암살자는 당황한 듯 기세가 위축되었다.
나는 그 틈을 파고들어 가 암살자와 다시금 간합을 겨루었다.
푸른 선과 붉은 선이 허공에서 교차한다.
나와 그의 의(意)가 서로를 시험했다.
암살자의 비수가 내게 뻗쳐 온다.
동시에 그의 비수 끝에서 붉은 선이 다섯 갈래로 뻗어 나온다.
저 공격에서 파생될 수 있는 연계기가 다섯은 된다는 의미.
그러나, 나는 검사를 쥐었다.
절정 고수의 세계에서, 내 검은 마치 실과도 같이 변한 상황.
암살자의 시야에도 내 검이 붉은 실처럼 보일 터였다.
검기가 검사가 되었다는 건, 단순히 위력이 증가했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피잇!
푸른 실로 화한 검 끝에서, 다시금 수 개의 푸른 실이 뻗어 나가며 경로를 점한다.
이전의 내가 만들었던 경로보다도 훨씬 많은 수였다.
동시에, 내가 손목을 조금 꺾어 검 끝을 수정하자, 푸른 실들의 위치가 같이 움직인다.
정해진 경로였던 푸른 실선들이 움직인다.
그 광경을 보는 암살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난번에, 김영훈과 싸울 때는 그가 삼화취정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망정이지.’
그가 나와 같은 방식으로 싸운다는 것을 생각해 냈으면 나는 바로 그에게 패배했을 터였다.
내가 뻗어 낼 수 있는 경로가 훨씬 더 많고, 자유분방하다.
그는 비수로 내 검을 얼마간 쳐 내는 듯했지만, 결국 내 쪽에서 뻗어 나가는 경로가 훨씬 많았고, 내 경로를 보며 계산을 하다가 점차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산군무(山君武).
산군의 기세로 몰아붙이며.
월악보(越岳步).
다시 1 초식으로부터 시작해 끊임없이 초식을 연계하여,
상대의 피를 말려 죽인다.
챙, 챙, 챙, 챙!
얼마간 그와 나의 검과 비수가 부딪혔다.
암살자는 끝까지 분전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검망을 다루며 의를 다루는 데에 훨씬 능숙해졌고, 결국 암살자는 나와의 간합 싸움에 패배해, 내게 일격을 허용해 버렸다.
퍼억!
내 다리가 암살자의 허리를 가격했다.
암살자는 옆으로 나가떨어지며 비수를 놓쳤고, 암살자의 복면이 벗겨졌다.
“호오, 익숙한 얼굴이군.”
암살자는 최근 새로 들어왔다는 황제의 시비 중 하나였다.
약 20대 정도의 외모의 시비를 보며 나는 작게 감탄했다.
“그 나이에 절정 고수라니, 살 수만 있다면 능히 삼화취정에 도달할 재능이로구나.”
“···내 동생은 더 재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황제 놈 때문에···.”
“오, 감성에 호소하는 건가?”
“당신, 무한투괴지? 당신 실수하는 거야. 황제의 명에 민초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는···.”
슈칵!
나는 암살자의 말을 더 듣지 않고 그녀의 목을 잘라 버렸다.
“미안한데, 이 자리는 원래 많은 걸 들으면 안 되는 자리라.”
나는 뛰어난 재능을 내 손으로 거둔 것에 작은 안타까움을 느끼며, 다른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시신을 정리했다.
방금 전까지 바깥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건만, 황제는 침소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듯 했다.
듣기로는 한 수도자가 잠귀가 밝은 황제를 위해, 황제의 침소에 방음(防音)의 술법을 걸어주었다고 했다.
그 덕분에 암중 호위대는 자객들과 다소 시끄러운 소리로 싸워도 문책을 받지 않았다.
‘근데, 저 술법 수도자가 와서 걸어 준 게 아니라 황제 본인이 걸어 놓은 것 같은데.’
사실 암중 호위대의 사람 중에 황제가 수도자인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절정 고수의 눈에는 수도자의 영역이 두 눈으로 식별이 되니까.
다만 다들 주어진 임무이기에 군말 없이 황제를 호위하는 것뿐이었다.
‘그나저나, 원래 이렇게 황제 암살 시도가 많았나?’
사실 우리 같은 암중 호위대가 세워진 것 역시 최근의 일이라 했다.
듣자 하니, 이렇게 황제에게 자객을 보내는 횟수가 많아진 것도 근래의 일이라고.
무림맹 책사나 귀영각주로 살 때는 몰랐던 정보들이었다.
그야, 황실이 미쳤다고 최근에 자객이 많이 들었다 광고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왜 최근에 황제 암살 미수가 더 많아졌을까.’
근래 연국은 더없이 천하태평을 누리고 있었다.
물론 못 사는 이들은 여전히 못 살았지만, 최소한 멀쩡한 양민들이 도적 떼로 변모하거나 하는 일은 없는 정도였다.
‘그리고 중세 중국 수준 정도 문명에 그 정도면 양호한 거지.’
더불어 연국의 권신들은 수도자 황실이라는 막강한 황권 앞에 모두가 고개를 얌전히 조아리며 복종하는 형태였기에, 중앙집권적인 힘이 굉장히 강했다.
그렇기에 감히 황제를 암살 시도할 만한 정신 나간 조직이라면.
‘무림문파?’
관과 사이가 좋지 않은 무림문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내가 지난 삶 무림맹 책사 및 정보 집단의 수장으로 있을 때는 그런 일은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무림문파가 아니라면, 어떤 놈들이 황제를 위협하는 자객을 이렇게 꾸준히, 그것도 많이 보내는 건지. 그리고 방금 그 암살자처럼, 내 별호를 아는 자도 있었다.’
거기에 연국어도 상당히 능숙하게 했다.
그 점을 보아, 벽라국이나 성제국의 자객 역시 아니었다.
‘연국 사람이다. 연국의 사람이 황제를 암살하러, 주기적으로 자객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자객들을 심문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자객들은 그들이 무어라 떠들기 전에 즉결 처형이 원칙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뭐, 천천히 알아보면 되겠지.’
황실에 몸을 담고, 천천히 황제의 신임을 받아 가며, 필요한 정보들을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알고 싶었던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며, 생각을 정리했다.
***
황제의 곁에서 그를 호위하기를 10년.
나는 꾸준히 호위를 하며 황제의 신임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 권한을 이용해, 황실 곳곳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물론 핵심적인 정보들은 알아낼 수 없었으나, 관청에서밖에 알아낼 수 없는 정보들 역시 많이 알아낼 수 있었다.
가령.
‘해연력 33년. 황상 폐하의 은덕으로 고아와 거지들의 숫자가 크게 줄었으며, 이로 인해 도적 떼로 유입되는 이들이 없어졌다. 그 덕분에 연국 곳곳에 폐하를 찬탄함이 끊이지 않으며···.’
관아에서 행하는 호구 조사.
호구 조사는 세수와 직결된 문제였기에 관아에서만 통제하던 정보였고, 무림맹주나 정보단체의 수장으로 있던 시기에는 나 역시 제대로 알 수 없었던 문제였다.
그러나 황제의 호위대가 된 지금은 호구 조사에 대한 기록을 열람할 권한이 허락되었다.
‘거지는 물론이고 빈농의 숫자도 줄었다.’
지난 삶들에서는 고아, 거지, 빈농들의 숫자에 대해서는 알아보지 않았으나, 황실의 안에서 호구 조사의 기록을 보자,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고아, 거지, 빈농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거지?’
단순히 빈층들을 구휼하여 그들에게 생계 수단을 만들어 준 게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이 그대로, 그냥 사라져 버렸다.
‘굶어 죽었나?’
그러나 장부에 적힌 숫자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이 정도의 숫자가 집단 아사했다면 결코 내가 지난 삶에 그 정보를 몰랐을 리 없었다.
‘아사가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이들이 [삭제] 되었다.’
도적 떼가 들었다는 기록 역시 없었고, 나 역시 정보 단체를 운영했을 당시 도적 떼가 못 사는 이들을 굳이 찾아가서 죽였다는 기록 역시 들은 바 없었다.
그런 악랄한 도적들이 즐비했다면 내가 모를 리 없었으니까.
나는 몇몇 정보들을 더 알아보며, 차근히 지난 삶의 정보들을 취합했다.
‘무림맹에서 책사를 할 시, 나와 김영훈은 연국 곳곳의 사파 무리를 척결하고 정도천하를 이룩했다.’
‘또한 정보 단체 귀영각을 설립할 시, 나는 이상할 만큼 쉽게 암중 혈투에서 다른 어둠 속의 정보 단체들을 빨리 해치울 수 있었다.’
두 삶의 공통점은, 삶의 후반부로 갈수록 사파들을 더 빨리 해치울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삶의 후반. 회쟁파 등, 갑자기 사도방파에서 정도문파로 탈바꿈한 문파도 상당히 많았다.’
사파란 기본적으로 불법 조직이다.
산적이나 수적 같은.
그리고 그런 사파들은 주로 거지, 고아, 빈농들이 굶주림을 이기기 힘들어 남들을 약탈하는 것에서 주로 시작된다.
비적 떼나 산적 떼가 점차 경험과 무력, 자금을 쌓으며 덩치가 커지면, 성안으로 잠입해 불법적인 일을 손에 대기 시작하며 제대로 된 사도방파가 생겨나는 것이었다.
‘어쩌면, 지난 삶에서 사도방파들을 쉽게 척결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호구 조사의 내용대로라면, 사도방파에 새로운 피가 될 빈민층이 갑자기 대량으로 [삭제]되어서 규모가 축소된 사도방파들을 제압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삭제]된 빈민층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나는 정보를 취합해 보며,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수도일족.’
이 사건이, 수도일족과 연관되었으리라는 것이었다.
‘몇 년 전부터 갑자기 황제를 노리는 자객이 많아진 것도. 암중 호위대가 생겨난 것도···.’
무언가 빈민층이 삭제되는 일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몇 년 전 만났던 여자 암살자처럼, 암살자 중에는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마지막에 입을 털다 죽는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암살자들은 대부분 똑같은 말을 하며 죽었다.
―황제에 의해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죽었는지 아느냐!
이상했다.
지금의 황제는 성군까지는 아닐지라도, 평균 정도의 재목은 되는 이였다.
그의 통치로 연국이 어려워진 것도,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간 것도 아니었다.
전쟁조차 없어 평화로운 이 나라일진대, 어째서 암살자들은 그런 말은 하는 것일까.
‘수도일족. 이건··· 수도 일족과 관련됐다.’
내가 이렇게까지 파고들었는데도 답이 나오지 않은 것은, 수도가문에 대한 것들뿐이었다.
‘아무래도, 이 너머에 대한 조사는···.’
김영훈에게 맡겨야 할 것 같았다.
***
초대 무림맹주 김영훈의 퇴임식이 거행되었다.
그는 많은 이들의 축하와 아쉬움 속에서 무림맹주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많은 이들이 그의 퇴임을 아쉬워했으나, 오히려 그의 눈에는 상쾌함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그럴 것이다.
그가 무림맹주의 직위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그가 조수월무경 6권을 전부 이해하고, 최후의 구결들마저 이해했다는 뜻이었으니까.
“상쾌하신가 봅니다?”
나는 김영훈의 방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마주하며 물었다.
“어이쿠, 누가 몰래 들어와 있길래 자객인 줄 알았더니 자네였나. 암중 호위대라더니, 점점 어째 기척이 자객하고 비슷해지는군.”
“뭐, 자객 놈들하고 서로 닮아 가는 거겠죠. 그나저나 무림맹주에서 그만두셨으면 이제 뭘 하실 겁니까?”
“알면서 뭘 묻나? 조수월무경을 모두 이해했으니, 이제 수도자 놈들을 찾아가서 겨뤄 보고 깨달음을 갈무리해야지.”
“흠, 조수월무경에 있는 성취를 모두 대성하신 겁니까?”
내 말에 김영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닐세. 조수월무경은 사실 무공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무학 체계야. 뭐 삼류, 이류, 일류, 절정 등을 ‘무공’이라고 하진 않잖나. 무공에 대한 일종의 기준이자 단계이지.
조수월무경은 오기조원의 ‘다음 단계’에 대해서 설명하는 무학서야. 그 ‘다음 단계’에 이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기조원에서 어떤 수련을 하는 게 맞는 수련인지 등이 기술되어 있다네.
그리고 나는 조수월무경을 전부 ‘이해’하기는 했으나, ‘체화’하여 오기조원의 너머로 향하지 못했네. 앞으로 수도자들과 싸워 보며 전투 경험을 얻고 오기조원 너머로 향할 예정이지.”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에게 물었다.
“사실, 요즘 황실에서 일하다 보니 굉장히 수상한 게 보입니다.”
나는 내가 취합해 낸 정보와 결론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해서, 저는 황실 뒤의 수도자 일족이, 황실과 관아를 이용해서 빈민층을 납치, 혹은 학살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흐음···.”
“하지만 저는 황실 암중 호위대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휴가 신청을 하고 나오거나 하는 게 아니면 서경성 바깥으로 나가기도 힘들뿐더러, 나온다고 해도 자유롭게 수도자 일족을 조사할 수 없습니다. 해서··· 김 형이 수도자 일족을 찾아다니며 조사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거 확실히 조사해 볼 만하군. 하지만 나도 수도자 일족들 같은 게 어디 있는지는 솔직히···.”
“그런 건 제가 알려 드리지요.”
황실에서 일을 하며, 지난 생에서 몰랐던 수도 일족들이 살아가는 몇몇 장소를 알아낼 수 있었다.
“정보는 제가 드릴 테니, 김 형은 찾아가셔서 놈들에게 정보를 얻어 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그러지. 놈들이 과연 뭘 하고 있는지 나도 한번 알아봐야겠어···.”
그렇게 나는 김영훈을 통해 수도일족의 꿍꿍이를 제대로 파헤쳐 보기로 했다.
***
‘최근에는 자객의 수가 조금 줄었군.’
근 10년간은 거의 끊이지 않고 자객들이 찾아왔지만, 최근에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였다.
거기에 찾아오는 자객들 역시 절정경에서 일류 정도 수준으로 많이 실력이 격하되었다.
‘일류 고수 정도야, 막 들어온 신입들 연습 상대나 시켜 주면 될 정도고···.’
하긴, 생각해 보면 자객을 보내는 쪽 역시 절정 고수를 무한히 양산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젠 보내는 족족 살해당하다 보니 슬슬 저들이 쓸 수 있는 패도 떨어질 것이었다.
15년 동안 암중 호위대로 근무하다 보니, 이제는 직급도 상승해서 부대주까지 상승했다.
대주가 노화로 은퇴하면 내가 다음 대주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저급 암살자들만 오기 시작하면, 우리 암중 호위대는 쓸모가 없는 게···.’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저 멀리서 어둠이 꿈틀거린다.
암살자다.
‘이번에는 어느 정도 경지의 암살자려나··· 일류쯤 되면 신입들 시켜야···.’
그렇게 생각하며, 암살자의 무공 경지를 가늠하기 위해 절정의 세계로 진입했을 때였다.
“···!”
붉은빛이, 원형으로 안정된 채 공간을 메우고 있다.
원구 형태의 의념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수도자! 이런 미친···.’
이 미친놈들이, 절정 고수가 떨어져 가니, 수도자를 암살자로 보내온다!
파바밧!
다른 이들 모두 수도자의 영역을 확인했는지, 순식간에 암중 호위대 전원이 황제의 침소 앞에 집결했다.
“수도자다, 모두 만전을 가하도록!”
암중 호위대주가 긴장에 찬 목소리로 그의 독문병기인 극(戟)을 들어 올렸다.
암살자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수도자가 쓰는 은신술과 귀식대법은 무림의 기준으로 엉망이었다.
아무리 봐도 대충 배운 티가 팍팍 나는 기술들.
그러나,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더욱 긴장했다.
‘저 대충 배운 기술들로, 어떻게 황궁에 잠입한 거지?’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다는 얘기다.
그때, 암중 호위대를 발견했는지 이쪽으로 다가오던 수도자가 멈춰섰다.
“흠, 다 절정 고수들인가. 귀찮군. 절정 고수 놈들은 하나같이 은신법술이 제대로 안 먹힌단 말이야. 그 짜증 나는 시야인지 뭔지 때문인가.”
스르르―
수도자는 우리를 발견하자 숨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지, 은신을 풀고 대놓고 걸어 나왔다.
“그래도 그 눈을 가지고 있으면 알아보겠지? 내가 수도자라는 것쯤은. 목숨을 부지하고 싶으면 썩 꺼져라.”
그의 말에 반응하는 이도, 대답하는 이도 없었다.
“쯧, 나와 해 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냐? 머릿수만 믿고? 개죽음만 당할 거다. 마지막으로 경고하겠다. 너희 절정 고수라는 놈들이 싸워볼 수 있는 한계는, 연기기 1성 수도자들이다. 나는 무려 연기기 2성이란 말이다.”
우웅―
그가 부적을 꺼내 들자, 주변의 공기가 요동쳤다.
“너희들이 일류와 절정이 상당히 차이가 나는 것처럼, 연기기 1성과 2성 역시 아주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지. 당장 꺼지지 않으면···.”
파밧!
우리는 놈이 더 떠들게 두지 않고, 빠르게 녀석을 향해 쇄도해 갔다.
티잉!
내가 쏘아 보낸 암기가 수도자의 앞, 허공에 부딪히며 튕겨져 나갔다.
보이지 않게 방어 법술을 치고 있었던 듯했다.
내 공격을 시작으로, 절정 고수들이 그에게 달려들며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흥, 버러지 같은 것들이. 오늘의 암살을 위해 내가 지원받은 부적이 몇 장인 줄 아느냐?”
촤악!
그러나, 수도자가 허공으로 수 장의 부적을 뿌리자 강력한 반탄력이 느껴졌다.
나와 대주는 각자 검과 극에 기사(氣絲)를 불어넣으며 반탄력을 잘라 내어 버텼고, 나와 대주를 제외한 다른 대원들이 전부 떨어져 나갔다.
“흐음, 너희가 가장 강한 놈들인가?”
다시금 수도자가 부적을 꺼내 들었다.
화르륵!
뜨거운 화탄(火彈)이 그의 손 위로 떠오른다.
‘맞으면 재가 된다!’
나는 생존 본능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 수도자의 영역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저 영역 안에서는 수도자의 의념을 읽는 게 불가능했기에, 그의 공격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피잇!
수도자의 영역 바깥으로, 한 줄기 붉은 실선이 빠져나왔다.
곧이어 실선을 따라 화탄이 내게 쏘아졌다.
‘빌어먹을!’
나는 화탄을 막지 않고 피했다.
수도자의 근거리에 접근하려 하면, 그의 의식 영역 안쪽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공격의 궤도를 예측할 수가 없다.
반대로 원거리로 피하면 원거리 공격수단이 넘쳐 나는 수도자에게 유리하다.
‘자신에게 유리한 싸움을 강제하는군.’
무림인과 수도자의 상성 자체가 극렬하게 나빴다.
퍼석!
내가 피한 화탄은 뒤쪽 기둥에 맞았으나, 크게 불이 옮겨붙지 않고 그대로 꺼져 버렸다.
‘수도자가 법술을 취소한 거다. 녀석도 일이 크게 번지기를 원친 않는다.’
나는 암중 호위대 중 발이 빠른 몇몇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들은 내 신호를 알아듣고, 수도자의 너머로 빠져나가 다른 근위병들을 부르러 움직였다.
“어딜 가느냐. 너흰 못 빠져나간다.”
파앗!
수도자가 은은한 빛이 어린 부적을 한 장 꺼내자, 시꺼먼 그림자가 터져 나오며 우리와 수도자를 가두는 결계가 되었다.
“바깥으로는 소리도 안 새어 나갈 터. 빛조차도 바깥으로 새어 나갈 수 없다. 너희를 모두 죽인 후 황제, 막리가(家) 방계 놈을 죽일 것이야.”
수도자는 주머니에서 다시금 수십 장의 부적을 꺼내 들었다.
‘젠장, 개 같은 놈 같으니.’
연기기 2성이니 뭐니 뻐기듯 말했지만, 아마 저놈의 원래 실력이면 우리가 달려들어 죽일 수 있을 터였다.
아마 나와 대주만 합공해도 손쉽게 죽을 터였다.
그러나 저 녀석이 바리바리 싸 들고 온 부적 때문에, 녀석은 지금 본 실력 이상을 발휘하고 있었다.
‘삼화취정만 됐어도.’
삼화취정에 올라 강기만 사용할 수 있었어도, 수도자 놈의 방어 법술을 박살 내 버리고 반으로 갈라 죽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나는 절정 중기일 뿐.
아직도 삼화취정은 감을 잡지 못했다.
‘···아냐, 어쩌면.’
“···대주님, 드릴 말이 있습니다.”
“뭔가.”
“제가 놈에게 접근할 한순간만 만들어 주십시오. 딱 한순간만 만들어 주시면, 수도자에게 치명상을 입혀 보겠습니다.”
“···믿겠다.”
대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극을 잡은 채 수도자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허리춤에서 독액을 담아 두던 병에서 독초즙을 꺼내, 면포로 검에 발랐다.
‘방어 법술을 깨고, 이 검을 저놈에게 스치기만 한다면.’
이쪽의 승리다.
타닷!
나는 호위대의 공격에 가담하며, 수도자에게 달려들었다.
수도자가 부적들을 허공에 흩뿌리며 주문을 외자, 부적들은 전부 새하얀 빛을 발하는 비수가 되어 우리에게 쏘아졌다.
나는 수도자의 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새하얀 비수가 내 미간을 노리고 달려든다.
부웅!
까강.
대주의 극(戟)이 회전하며 내게 날아오는 비수를 쳐냈다.
화르륵!
수도자가 나를 보며 화탄술을 사용해서 내게 날린다.
“하아압!”
신입 중 하나, 쌍검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녀석이, 내게 달려드는 화탄을 향해 쌍검을 교차하며 검기를 날렸다.
화탄은 검기에 휘말려 궤도가 바뀌었다.
이제 나와 수도자의 거리는 3장 안팎이 되었다.
‘이제 수도자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저 안쪽으로는 내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사방이 적색이기에 수도자의 의념을 볼 수 없으니까.
“흥.”
푸화악!
수도자가 손을 까딱거리자, 강인한 바람이 불어오며 나를 밀쳐 내려 했다.
단악검법.
월악, 등맥.
나는 두 가지의 초식에, 검사를 덧씌워 휘둘러 십(十)자로 바람의 결(缺)을 잘라 내고 그의 의식 영역 안쪽으로 접어들었다.
적의 의념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키이잉―
지난 삶, 상시 공간의 형태, 청각, 촉각, 후각 등으로 오감을 극대화하여 적의 공격을 간접적으로 계산해 냈던 그 오감의 극대화를 더더욱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양옆.’
좌우에서 공기의 파동이 느껴진다.
무언가가 온다.
“부대주님, 가십시오!”
“놈을 잡아라!”
호위대의 한 사람이 오른쪽의 법술에 달려들어 법술을 막고, 대주가 극을 던져 왼쪽의 법술을 박살 내 버렸다.
그리고.
‘앞!’
나는 바로 앞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감지했다.
앞쪽의 온도와 습도가 달라진다.
수도자의 결인에, 새하얀 얼음이 허공에서 응결되며 화살의 형태를 취한다.
단악검법.
‘하단세!’
입산!
나는 빠르게 하단세로 전환하여 아슬아슬하게 피한 후 검을 내질렀다.
그러나, 바로 앞에는 수도자가 쳐 놓은 방어 법술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불의의 일격을 날리는 와중에도, 수도자는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절대적인 여유!
‘그 나른한 표정을 싹 지워 주마.’
하지만, 나는 씨익 웃으며 입산의 초식에 다른 초식을 담아냈다.
단악검법.
용맥, 기산심천, 단애!
용맥으로 검사의 흐름이 빨라지며 강화된다.
기산심천으로 전신 경맥이 잠시 열리며 다시 검사가 강화된다.
단애로 검속이 순간 더 빨라진다.
그리고.
‘전신의 내공을 일거에 짜낸다!’
나는 의원으로서의 지식으로, 기경팔맥에 정신을 집중해 전신의 내공을 남김없이 짜냈다.
수백 년 묵은 황주삼 8개를 한 번에 먹어치운 나의 무식한 내공이, 내 검에 담겼다.
파아아앗!
검사(劍絲)가 일순간 진화한다.
번쩍!
검강(劍罡)!
찰나.
간신히 1초나 될까.
그 짧은 촌경에, 내 검에 맺힌 빛이 수도자의 방어 법술을 두부처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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