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20화 (20/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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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 고수(2)

나는 김영훈과 함께 창호성으로 가, 수적들에게서 약탈한 돈으로 호패를 만들고, 장원을 하나 샀다.

그런 후 그에게 문자와 무공을 가르쳤다.

그렇게 약 2달 후.

우우웅―

‘더 빨리 성장하는군.’

나는 살짝 어이가 없어져, 눈앞에서 황주삼을 먹고 삼화취정에 접어드는 김영훈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절정 고수에 오른 내가 단맥도법이라는 일류 무공을 성심성의껏 붙어서 전수해 주어, 이렇게 빠른 성장률을 보인 듯했다.

‘조금 허탈할 지경인데.’

하기야 늘 이런 식이었다.

누구는 평생을 걸쳐 절정경에 올랐지만, 누구는 절정 고수의 가르침과 일류 무공만으로, 절정지경을 아예 건너뛰어 버리고 삼화취정에 바로 진입하는 것이다.

곧이어 세 개의 꽃 형태의 기운이 그의 코와 입으로 빨려 들어가고, 김영훈이 눈을 반개했다.

그의 눈에서 정광이 맴돌았다.

“···삼화취정에 오른 걸 축하드립니다. 문자도 다 배우기 전에 삼화취정부터 뚫으시다니···.”

“흠, 나도 내가 신기하군. 나한테 이런 무재(武才)가 있을 줄이야···.”

나는 담담히 김영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일말의 호승심이 이는 것을 느꼈다.

‘지금껏, 김영훈이 삼화취정에 이른 후에는, 한 번도 그와 대련다운 대련을 해 본 적이 없지.’

늘 내가 그의 아래에서 지도 대련을 받는 것뿐이었다.

지금이라면 어떨까.

절정 고수에 이른 나와, 삼화취정에 막 이른 김영훈.

“···일단 축하드리고, 그럼 한번··· 대련을 해 보시겠습니까?”

“하하, 대련 좋지. 이번에는 왠지 자네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가 자신의 도를 뽑아 들며 호승심을 불태웠다.

나 역시 검을 뽑아 들었다.

장원 내의 비무장에서, 두 절정 고수가 대련을 시작했다.

피잉―

나는 김영훈에게 살기를 쏘아 올렸다.

수십 개의 푸른 선들이 그에게 달라붙었다.

수십 개에 달하는 최적의 경로들이 그를 노린다.

그때, 김영훈이 기수식을 다시 잡았다.

“···!”

수십 개에 달하는 푸른 선들이 모조리 사라진다.

그의 허점이 사라지고, 내가 시도할 수 있는 최적의 공격들이 모조리 소용없는 것으로 변했다는 의미.

우웅―

동시에, 수백 가지의 붉은 실선들이 내게 뻗쳐 있었다.

나는 기수식을 바꿔 잡으며 내 허점을 없애고, 김영훈의 공격에 반격할 준비를 했다.

그러자 그에게서 뻗어 나온 붉은 선들이 밀려나는 듯하며 사그라든다.

서로의 붉은 선과 푸른 선이 얼마나 얽혔을까.

처음 공격을 시작한 것은 김영훈이었다.

“단맥도, 산바람.”

피잉!

가공할 속도를 가진 찌르기!

그러나 저 찌르기에서 또다시 수백 갈래의 붉은 선이 파생되는 것이 보였다.

뒤이어 올 연계기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뜻.

“단악검, 괴암.”

붕, 붕, 붕!

나는 그 자리에서 회전하며 공방 일체의 태세를 취하며 그의 찌르기를 막아섰다.

“단맥도, 태백!”

그의 찌르기가 허공에서 꺾어지며 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참격을 날렸다.

“단악검, 월악!”

나는 그의 검에 맞서 가로로 베어 들어간 후, 다시금 수십 가지의 경로를 계산해 냈다.

내 푸른 선이 그의 머리, 허리, 다리를 겨냥한다.

“단악검, 입산.”

부웅!

나는 하단세로 전환해 그의 다리 어림을 베어 갔다.

짧은 찰나, 둘 사이의 푸른 선과 붉은 선이 수십 가지는 오간다.

“단맥도, 용릉!”

단악검의 유릉과 비슷하지만, 더욱더 기기묘묘한 변화를 품고 있는 초식이 나를 내리찍어 온다.

그 짧은 찰나, 나와 그의 사이 허공에서 또다시 수십 가지의 실선이 오간다.

우리는 이미 가상의 영역에서 수십 합의 간합을 주고받았다.

‘피할까? 아니, 피하면 계속 뒤로 밀릴 터.’

그러다가 패배할 거다.

상관은 없다.

어차피 대련이니까.

하지만···.

나는 어쩐지, 지기 싫다는 호승심이 피어올랐다.

왜일까.

‘아, 그렇군. 이번 생에서, 이제 김영훈을 이길 수 있는 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테니까.’

앞으로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며 폭주 기관차처럼 성장해갈 것이다.

다음번에 또 겨루면 이제는 내가 쳐다보지도 못할 만치 올라가겠지.

이번이.

삼화취정에 막 올라 있는 이번이, 그를 쓰러뜨릴, 이번 인생의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그래, 이기자.

내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나는 빠르게 손을 놀려, 소매 속에 숨겨 놓았던 암기를 잡았다.

“투괴암기술(鬪怪暗器術), 직사(直蛇).”

피빗!

내 손에서 뻗어 나간 작은 암기가 김영훈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그의 얼굴에 당황함이 어리며, 빠르게 회피했다.

그러나 그 틈새로 기수식에 균형이 인다.

티잉!

나는 그의 검을 쳐 내고, 반격에 들어갔다.

“단악검, 유릉.”

피잇!

구불구불한 검기가 그에게 쏘아졌다.

‘막힌다.’

붉은 실선이 내 검을 쳐 낼 수 있는 각도로 그어져 있다.

동시에 그 실선에서 새로운 가지가 뻗어 나와 내 어깨를 노린다.

‘쳐 낸 후, 반격.’

슈칵!

그와 동시에, 나는 다시금 소매에서 암기를 꺼내 쥐었다.

암기를 쥔 것만으로, 내가 이용할 수 있는 푸른 선이 배는 많아졌다.

그의 붉은 실선의 궤도가 수정된다.

내 검을 향했다가 어깨로 뻗어 나갔던 붉은 가지가, 내 검에서 내 암기 쪽으로 수정되었다.

그리고 내 암기를 쳐 낸 후에야 다시 내 쪽으로 붉은 가지가 뻗어 온다.

‘좋군.’

하지만 아직 무르다.

‘실전 경험으론 내가 앞선다!’

“단악검, 용맥, 기산심천, 단애.”

세 가지 초식을 일수(一手)에 담아낸다.

용맥의 초식으로, 용맥기공의 내력을 일순간 빠르게 돌리며 검기를 강화한다.

동시에 기산심천으로 전신 경맥을 열어젖히며 검기를 다시 강화한다.

단애의 초식으로 검속(劍速)에 차이를 두어 반응을 어렵게 한다.

슈칵!

검 끝에 검사(劍絲)가 맺히며 기가 유형화된다.

그러나 한껏 강화된 검기를 흩뿌렸으나, 김영훈은 그 찰나에 보법을 펼쳐 뒤로 물러났다.

그 덕분에 내 검 끝은 그의 가슴께를 훑어 작은 생채기 하나만을 냈을 뿐이었다.

‘됐다. 기세를 잡았다.’

산군무, 월악보.

산군의 기세로 달려들며, 월악보로 접근해 월악을 펼친 후, 산중호걸의 초식으로 수 개의 참격을 때려 넣는 척하며 산수화를 사용해 난투를 벌였다.

동시에,

피잉! 피잉!

다른 한 손으로 암기를 날려 대며 그와 검을 마주했다.

내가 기세를 잡고 그를 몰아붙이고 있었으나, 김영훈은 그 와중에도 수 개의 붉은 선을 뻗쳐 오며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나는 실전이라고 생각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바닥의 모래를 뿌리고, 입속에 숨겨 둔 침을 발사하는 등 기회를 잡을 때마다 기오막측한 공격을 해 갔고, 점차 수세에 몰리던 김영훈이 짜증이 났는지 도에 더더욱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우웅―

기세가 변한다.

‘위험하다.’

큰 게 온다.

“삼화취정의 경지를 보여 주마!”

우우웅!

점차 그의 도에 실린 기운이 변화한다.

무형의 아지랑이 같았던 도기가 응축되며, 마치 실과도 같은 형태의 도사(刀絲)가 되고, 다시 한번 기사(氣絲)가 진화했다.

‘저건···!’

도에 씌워진 기운이 완벽하게 유형화되며, 새하얀 빛을 발한다.

“도강(刀罡)!”

“타아앗!”

새하얀 빛이 내 앞을 뒤덮는다.

아마 저것과 맞붙으면 내 검은 그대로 잘려 나갈 것이다.

어떤 절정 고수를 이 자리에 데려다 놔도 마찬가지.

하지만.

내가 익힌 단악검법은, 오기조원에 이르렀던 세기의 천재가 창안한 절세 무공.

“단악검, 공곡전성(空谷傳聲)!”

지난 생, 오기조원에 이르렀던 김영훈의 강기마저 떨쳐 냈던 초식!

아직 삼화취정에 막 올랐을 뿐인 그의 강기라면.

부웅!

‘검 속에 담긴 의(意)를 빼고, 공(空)의 상태로 만든 후, 그대로 상대의 힘을 받아들여···.’

되친다!

콰아앙!

나는 김영훈의 강기를 받아 그에게 되쳐 버렸다.

폭음이 울려 오며, 김영훈이 세 발자국을 뒤로 물러섰다.

“허, 허허··· 대단하군.”

투웅―

김영훈의 도가 반으로 갈라져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경악하는 중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내 되치기를 다시 강기로 받아쳤다고?’

내 계산대로라면, 공곡전성으로 되쳤을 때 그는 몇 발자국 물러나는 것이 아닌, 도신이 박살 나 산산조각이 나고 저 너머로 날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찰나, 다시 도를 회수한 후 다시금 강기를 사용해서 되치기를 받아친 것이었다.

“내 패배일세. 병장기가 망가졌으니 무인으로서 수치라 할 수 있겠군. 자네, 굉장히 노련하던데?”

“···걱정 마십시오. 이제 앞으론, 저는 절대 당신을 이길 수 없으니.”

나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후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의 대결을 마지막으로, 나는 다음 생까지, 김영훈을 이길 수 없다.

그는 싸우는 와중에도 실시간으로 성장했고, 싸움을 마치고 깨달음을 갈무리하면 더 강해질 것이며, 나와 싸우며 실전에 가까운 대련 경험까지 얻었으니 단숨에 삼화취정 중에서도 상위의 강자가 될 터였다.

거기에.

“사실 절정경에 오르셨으니, 축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오, 이 대련이 축하 선물 아니었나? 뭔가 더 준비한 건가?”

“예, 여기···.”

나는 집으로 들어가 그동안 준비해놓은 여섯 권의 서책을 그에게 건냈다.

“이건···.”

“조수월무경(眺修越武經)이라는 무학서입니다. 어떤 노인에게서 산 서책인데, 최소 입문 조건이 삼화취정이라 하더군요. 저도 읽어 봤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드리겠습니다.”

“오오, 그야말로 기연이로구만. 내 감사히 읽겠네.”

조수월무록에서 얻은 깨달음을, 지난 삶의 김영훈이 극대화시키며 여러 심득으로 정리해 놓은 것.

나는 그 책자들을 록(錄)이 아닌 경(經)으로만 바꾸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앞으로, 조수월무경을 익히며, 그는 내가 감히 상대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터였다.

나는 그에게 한 달 정도 더 문자와 언어를 가르친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창호성 인근에 있는 산채와 사도방파들을 학살하고, 수배가 된 사파의 마두들을 잡아들였다.

내게 문자를 전부 배운 후, 김영훈은 조수월무경 6권을 쳐다보며, 반쯤 혼이 나간 표정으로 넉 달 정도 미친 듯이 수련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넉 달이 지났다.

“영훈 형, 돈 벌고 왔습니다.”

나는 창호성 인근 유명한 일류 후기의 마두를 잡고 그 현상금을 받아 집에 왔다.

그러나 김영훈이 집에 없었다.

‘뭐지? 나갔나?’

그동안은 계속 미친 듯이 조수월무록을 읽고 비무대에서 수련만 하는 듯싶더니, 오늘은 장원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기척도 없는 것이 아예 집을 나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휙!

“헛···!”

갑자기 김영훈이 허깨비처럼 허공에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무, 무슨···!”

“하하, 조수월무경에 적힌 기술 중 하나를 사용해 보았는데, 정말로 발견을 못 하는군. 과연 이 서적은 엄청난 무공 서적이다···!”

“김 형, 그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저 기이한 기술은, 지난 삶의 김영훈이 오기조원에 이르고 나서야 사용했던 기술.

그런데 지금의 김영훈이, 회귀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지금의 김영훈이 사용한 것이었다.

“아하, 이거 말인가? 조수월무경에 적힌 기술 중 하나라네. 본래 오기조원에 도달하면 훨씬 간단하게 쓸 수 있다고 하지만 지난 며칠간 이것 하나만 파고들어서 삼회취정의 경지임에도 이 기술 하나만은 어찌어찌 쓸 수 있게 됐지.”

“허어··· 아직 오기조원은 아닌 겁니까?”

“하하하, 오기조원이 무슨 장난인 줄 아나? 조수월무경에 적힌 깨달음만 따라가도 5년은 족히 걸린다네. 그나저나 이 기술은 정말 무시무시하군. 절정경인 자네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니,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암살이 가능하겠어.”

나는 그의 재능에 말문이 막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참, 그나저나 이제 앞으로 실전을 쌓으러 강호를 돌아다닐 터인데, 혹시 서 동생은 안 따라올 텐가?”

“음, 강호를 말이지요.”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전 됐습니다, 김 형.”

“응? 무슨 말인가?”

“저는 절정의 경지를 조금 더 안정시키려 합니다.”

“흠, 하긴. 자네는 아직 검사(劍絲)도 못 쓰는 절정 초기니까.”

“예, 다녀오는 것은 김 형 혼자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와 잠시 헤어져 있기로 했다.

이유는 말 그대로였다.

절정 초기인 나는 실력을 안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그를 따라다니며 고수들의 대결을 눈에 담는 것 역시 좋지만, 지금의 내게는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절정 중기까지는 대련과 실전이 아닌, 참오와 반복 수련만이 답이었다.

‘일단, 하루 종일 절정 고수의 시야에 진입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김영훈이 장원을 나가 인근 문파들에 가서 도장 깨기를 하는 동안, 나는 우선 절정 고수의 시야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했다.

연습 상대는 창호성 인근의 사파 무리들이었다.

녀석들은 수도 많고 끈질기며, 무엇보다 죽여도 상관이 없었기에 연습 상대로는 제격이었다.

‘전방의 놈이 독침을 쏘려 한다.’

‘후방에서 창을 찔러 오고.’

‘대각선 오른쪽 뒤에서 채찍으로 내 발목을 감으려는 놈이 있다.’

수많은 붉은 실선들이 내게 쇄도한다.

나는 내게 쏟아져 오는 사파들의 온갖 잡다한 공격을 전부 피하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사파 무인들을 전멸시켰다.

나는 사파 무림인들과 싸울 때는 항상 눈을 감고 귀마개를 한 다음 녀석들을 찾아가 덤볐다.

어차피 감각 따위는 없어도 전부 절정경의 세계에서 죽일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창호성 인근의 사파 무림인, 수적, 산적 떼들을 잡아대며 수련을 하기를 약 3년.

나는 마침내, 온종일 절정경의 세계에 진입해도 뇌가 타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뇌가 이 세계에 완전히 익숙해진 것이었다.

심지어 절정경의 세계에 진입하는 요령을 얻어,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도 하루 동안 절정의 세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3년의 시간 동안 사파 무림인들을 상대로 ‘연습’을 한 결과.

나는 드디어 완전히 절정지경의 세계에 진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동시에 창호성에서 현상금을 두둑이 받으며 주머니 사정도 풍족해졌고, ‘무한투괴’라는 내 별호 역시 다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제자로 받아 달라는 이들이나, 나를 추종하는 무림인들도 생겼을 정도였다.

‘물론 이 역시 김영훈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근 3년.

김영훈은 연국제일도의 칭호를 받고, 연국무림의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올랐다.

무림 최강!

무공을 배운지 3, 4년밖에 되지 않는 자가 도달한 경지였다.

김영훈의 추종자와,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이의 숫자는 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았다.

‘그리고 아마 지금쯤이면···.’

김영훈의 무림맹주 병이 도질 때가 되었다.

언제나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오르면 오르는 자리였으니.

아니나 다를까, 김영훈이 다시 내게 찾아와 무림맹 부맹주의 자리를 건의했다.

물론 나는 소처럼 일하게 될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단칼에 거절한 후, 적당한 핑계를 대었다.

“김 형, 저는 이제 황실에 들어가 보려 합니다.”

“뭐, 뭐? 황실?”

“예. 김 형의 제안을 거절하려는 이유도, 황실에 몸을 담으며 관아의 입장에서 김 형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허어, 서 동생. 정말 고맙네.”

물론 내가 황실에 몸을 담으려고 마음먹은 것에는 조금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황실에 몸을 담으면, 수도자 일족과 더더욱 접촉할 일이 많을 터다!’

무림맹주의 책사, 그리고 정보 단체 귀영각의 각주로 지낸 삶.

그때 당시 알아냈던 정보에 의하면, 황실은 연국의 그 어떤 집단보다도 수도일족과 깊게 얽혀있다고 했다.

들리는 말로는, 연국 황실이 수도일족의 방계라는 말조차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었다.

나는 우선 연국 군부에 지원을 했다.

군부는 무림에서 유명한 절정 고수인 내 지원을 달갑게 받아들였고, 나는 군부에 들어가 빠르게 실력을 인정받아 장군의 자리까지 올라갔고,

그 시점에서 황실 근위대에 지원하여, 무리 없이 통과하였다.

회귀 햇수 5년 만에 도달한 결과였다.

“자네의 임무는 황제 폐하를 암중에서 호위하며 목숨을 걸고 수호해 내는 것일세. 절정 고수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겠지?”

“옛,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황실 암중 호위대로 들어가, 4개월간 은신술과 귀식대법 등을 훈련받은 후 황제 호위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황제가··· 수도자였다니!’

우웅―

나는 황제의 미간을 중심으로, 그를 둘러싼 붉은빛의 영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도자의 식(識)이다! 황제는 본디 수도자였던 거야.’

그러한 사실은 황실의 인원, 황태자와 황녀 몇몇을 만난 후에 더더욱 확실해졌다.

황가의 일원 중 절대다수가 수도자의 식을 가지고 있는, 수도자였다.

‘그래도 고위 수도자는 아닌 것 같군. 다들··· 그 여우에조차 한참 미치지 못해.’

아마 기껏해야 다들 연기기 수도자일 것으로 보였다.

‘연기기 수도자를 절정 고수인 내가 도대체 왜 호위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황제가 은연중에 드러내는 기세는, 절대로 연기기 1성 정도가 아니었다.

저 정도 실력이면 차라리 황제가 암중 호위대를 전부 합친 것보다 강할 수도 있었다.

‘아마 암중 호위대는 그냥 자기가 자객들을 처리하기 귀찮아서 부리는 건가.’

황제는 슬프게도 황실에서 가장 암살 위협을 많이 받는 이였다.

거의 매일 밤 자객이 찾아왔고, 나는 매일 밤 자객들과 싸워 그들을 제압해야 했다.

‘실전 경험은 거의 매일 쌓을 수 있어서 좋은 건가?’

그렇게 황제의 호위로 실전 경험을 쌓으며, 암중 호위대로 지내기를 5년이 흘렀다.

***

“무림맹주는 하실 만합니까?”

작은 밀실, 나는 그곳에서 김영훈과 대작을 하며 물었다.

황제의 호위인 나는 공식적으로는 무림맹주인 그를 만나는 게 금지되었으므로, 이렇게 몰래 만나야 하는 것이었다.

“머리가 너무 아프지 뭔가? 하하, 자네가 함께했으면 조금 덜 아팠을 텐데.”

“곧 저보다 젊어지실 것 같은데, 뭐가 문제입니까?”

“하하, 뭐···.”

내 물음에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맘때쯤이면 그가 슬슬 반로환동을 할 때도 되었다.

아니, 오히려 시기를 생각하면 조금 늦은 감도 있었다.

“오기조원이 코앞이긴 하지. 자네 역시 기도가 남달라진 것 같은데. 축하한다 해야겠군.”

“하하··· 황제 옆에서 계속 칼질하다 보니 실력이 안 늘 수가 없긴 하겠더군요.”

황제를 암살하러 오는 자객은 최소가 일류 후기의 고수였고, 최대가 삼화취정의 고수였다.

평균적으로 나와 비슷한 경지의 절정 고수가 자객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기에, 나는 동급 경지의 강자들과 마음껏 실전을 벌일 수 있었다.

“자네야말로 황제 호위는 할 만한가 보지?”

“말도 마십시오. 왜 하고 있어야 하는지, 황제 실력을 가늠할 때마다 회의감이 듭니다.”

“으하하, 황제가 수도자라니. 거 참, 지킬 맛도 안 나겠구만.”

그는 지난 몇 년간 무림맹주직을 하며 수도자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그들과도 붙어 보고 싶어 하는 듯 했다.

“그나저나 김 형은, 수도자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래 이쯤이면 김영훈은 수도자들을 찾아다니며 붙고 싶어 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김영훈은 어쩐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내 질문에 그는 잔을 들이키며 말했다.

“흐, 물어 뭘 하나. 당연히 싸워 보고 싶지. 하지만···.”

“하지만?”

“나는 아직 조수월무경 6권의 모든 걸 깨우치지 못했네. 특히 조수월무경 6권 마지막에 적힌 구결들은···.”

내가 조수월무경 마지막에 써 놓은 구결들은, 지난 삶의 김영훈이 막바지에 얻은 깨달음들이었다.

“조수월무경을 완벽히 익히기 전에는 도전할 수조차 없는 깨달음이야. 그래서 나는 그 구결들까지 전부 파헤친 후에, 그 후에야 수도자들을 한번 찾아다녀 보려고 하네. 그때쯤이면 무림맹주직도 내려놓을 수 있을 테니···.”

“그렇군요···.”

“그나저나 자네, 조금 실력이 는 것 같은데?”

김영훈이 씨익 웃으며, 술잔에 술을 따랐다.

‘술잔에 술과 함께 공력을 같이 불어넣고 있군.’

이 인간이 진짜.

나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어디 한 번 받아 보게나.”

부웅!

그가 술잔을 날렸다.

기이하게도 술잔에 들어 있는 술은 한 방울도 넘치지 않았다.

가벼워 보이는 술잔, 그러나 나는 전신의 내력을 끌어올리며 술잔을 향해 집중했다.

지난 5년간, 나는 끊임없이 실전을 치른 결과, 절정 초기에서 절정 중기로 넘어가는 데에 성공했다.

절정 초기가 막 절정의 세계에 진입해 선 하나를 보는 경지라면.

절정 중기부터는, 붉은 선과 푸른 선을 ‘동시에’ 보는 것이 가능했다.

지금까지는 붉은 선을 보기 위해서는 푸른 선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푸른 선을 보기 위해서는 붉은 선을 보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절정의 세계에 진입하는 것이 심화되며, 붉은 선과 푸른 선을 동시에 보는 게 가능해진 것이었다.

촤아악!

절정의 세계에 진입하자, 술잔에서 뻗어 나오는 무수한 개수의 붉은 선들이 보였다. 동시에, 그 술잔을 받아칠 수 있는,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적의 경로들이 푸른 선의 형태로 나타난다.

김영훈은 저 술잔을 통해, 자신의 궤도를 드러내며 나와 수십 합의 간합을 주고받는다.

월악으로 후려치려 하자,

붉은 선의 궤도가 세로로 내리꽂히듯이 바뀌고.

등맥으로 올려치려 하자,

붉은 선의 궤도가 종횡무진하며 따라잡을 수 없게 바뀌며.

산수화로 난무하려 하니,

붉은 선은 난무의 틈새를 정확히 짚고 내 약점을 노렸다.

그 찰나, 김영훈과의 간합 싸움을 한 끝에, 나는 그의 간합을 뚫고 들어가는 단 하나의 경로를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했다.

“단악검, 유릉!”

쩌엉!

검 끝과 술잔이 부딪쳤건만, 광풍이 불며 밀실이 덜걱거렸다.

나는 유릉으로 술잔에 담긴 내력이 해소된 것을 알자 빠르게 검을 거두고 팔을 뻗어 떨어지려는 술잔을 잡았다.

다행히 술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후우, 먹을 걸로 장난을 치면 됩니까?”

“뭐, 어떤가. 그나저나 상당히 늘었군. 검사(劍絲)의 경지도 코앞이야.”

검사(劍絲).

검기가 실처럼 압축되며, 본디 무형인 검기가 유형화되는 첫 단계.

지난 삶의 김영훈은, 내가 검기의 이해도가 높으니 절정경에 오르기만 하면 검사의 단계에 오르는 건 빠르리라고 했으나, 그는 내 재능을 너무 얕보았다.

나는 회귀 햇수로 1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검사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절정 중기에 오르고서는 조금 실마리가 보였다는 거지만.’

일류 후기에서 절정으로 넘어갈 때만큼 난이도가 높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음, 그나저나··· 내가 오기조원을 목전에 두었다 했잖나.”

“그랬지요.”

“사실 나는 언제든지 오기조원에 도전할 수 있는 수준이라네. 다만 오기조원에 도전하는 중 누군가가 습격하면 답이 없으니, 믿을 만한 이를 불러 호법을 시켜야겠는데···.”

“호법을 서 달라는 거로군요.”

“하하, 그래.”

나는 김영훈의 폐관 수련실로 함께 갔다.

“동향 사람만큼 믿음직한 이는 없지.”

“아무렴 그렇겠습니까. 빨리 시작이나 하시지요.”

“그럼···.”

김영훈은 수련실 가운데에 앉아, 연공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기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음?’

나는 문득, 절정의 세계로 진입하여 그의 붉은 선을 관찰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절정 고수들의 붉은 선은 평소에는 절정 무인의 팔과 그의 무기 사이에 이어져 있다.

그러나, 김영훈의 손과 그의 도 사이에 있던 붉은 선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건···.’

붉은 선에서 수십 개의 가지가 뻗어 나온다.

동시에 그의 붉은 선이 김영훈의 사방팔방을 뒤덮는 듯했다.

저 안으로 들어간다면 김영훈의 공격에 의해 당장이라도 썰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절정 고수라면 누구든, 미치지 않는 이상 저 간격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익숙한 변화에 동공이 바싹 졸아드는 것을 느꼈다.

김영훈의 사방팔방을 덮은 붉은 선은, 점차 그 사이사이를 메워 가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이 점차 붉은 영역이 되어 갔다.

그 모습은 마치···.

‘수도자들의 식(識)!!!’

수도자의 미간을 중심으로 나 있는, 그들의 붉은 영역!

그들의 식(識)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파아앗!

김영훈의 식이 완전히 또렷해지며, 단 하나의 틈새조차 없어졌다.

그리고 식의 형태가 김영훈의 미간을 중심으로 반경 반 장 정도 원구(圓球)의 형태로 안정되었을 때였다.

우우웅―

주변의 기(氣)가 빨려 들어가는 듯하더니, 그의 식 안에서 어떠한 흐름을 형성하는 듯했다.

그 흐름들은 서서히 뭉치더니, 그의 머리 위에서 다섯 개의 원구를 형성해 내었다.

오기조원으로 넘어갈 때에 일어나는 저 현상!

나는 지금껏 이 정도로 오기조원으로 넘어가는 현상을 자세히 관찰한 적이 없었다.

아니, 일류 시절에는 저 미세한 기의 흐름을 관찰 자체가 불가능했었다.

절정 고수가 된 후, 상대의 기세를 읽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지금에서야 보이는 현상이었다.

‘아, 아쉽다.’

나는 문득 아쉬움이 느껴졌다.

내가 만약 삼화취정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면, 나는 어쩌면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지금 저 상태만이라도 자세히 관찰하자.’

나는 다섯 개의 원을 미친 듯이 노려보았다.

저 안에서 흐르는 어떠한 흐름.

저 다섯 개의 원들이 서로 공전하는 그 법칙.

김영훈의 머리 위에서 원들이 떠 있는 원리.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깨달음의 편린만으로도 나는 검사(劍絲)에 대한 어떤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스르르―

다섯 개의 원들이 부스러지며 오색의 기운으로 변화했다.

오색의 기운은 김영훈의 코와 입으로 들어갔고, 동시에 그의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득!

그의 몸이 비틀린다.

김영훈의 뼈와 살이 바뀌며, 그의 피부의 주름이 사라졌다.

동시에 휑하니 비어 있던 그의 머리에 풍성한 모발이 자라났다.

우드득, 우득!

파아앗!

일순간, 수련실의 모든 기운이 그에게 빨려 들어가는 듯하더니 그가 눈을 반개하였다.

“무사히 오기조원에 도달했군.”

“···축하합니다. 반로환동했군요.”

그의 모습은 나보다도 어린 20대로 돌아가 있었다.

지난 삶에서도 보았던 광경이었으나, 이번 삶에서는 특히 얻은 것이 많았다.

“자네에겐 참 아쉽게 됐어. 서 동생이 삼화취정만 되었어도 훨씬 더 많은 걸 볼 수 있었을 텐데.”

“저도 마침 그 생각을 했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제 경지가 일천한 잘못이지요.”

“그래도 아예 도움이 안 되지는 않았을 테니, 한번 돌아가서 곱씹어 보게나.”

그는 풍성해진 자신의 모발이 마음에 드는지, 모발을 만져 보았다.

나는 문득,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 형도 지금껏 수도자들을 한둘 만나셨겠지요?”

“흠, 그렇지.”

“지금 제 눈에는··· 그들이 가진 식과, 당신이 형성한 영역이 매우 비슷해 보입니다. 혹시 관계가 있으리라 보십니까?”

“흠···.”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있으리라 보네. 나는 이 영역 안에서라면, 연기기 수도자들이라는 놈들과 동등하게 싸울 수 있을 것 같아. 조수월무록의 무학을 사용하면 더 높은 경지의 수도자와도 어느 정도 싸울 수 있겠지. 어쩌면, 오기조원에 이른 이는 수도자와 비슷한 시야를 공유하는 걸지도 모르겠군.”

“그렇군요···.”

그의 대답을 통해, 나는 어째서 오기조원에 이른 무림인이 수도자와 같은 영근을 얻는지 대략 상상이 가능했다.

‘수도자와 똑같은 식을 얻으니, 그를 통해 수도자와 같은 수련이 가능한 걸지도···.’

일류는 절정과 보는 세계가 다르고.

절정과 삼화취정 역시 보는 세계가 다르다.

삼화취정과 오기조원 역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를 보며 살아갈 것이다.

오기조원이 수도자들의 수도법술을 수련 가능한 이유 역시,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영역을 볼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경험은 훗날 오기조원에 오를 때 도움이 되겠지.’

나는 그날 김영훈에게 무공 지도를 조금 받은 후, 잡담을 조금 하고 다시 황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날 그가 보여 준 오기조원으로의 등극 상황을 곱씹으며 깨달음을 갈무리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

나는 그날도 어둠 속에서 황제의 침소를 지키고 있었다.

스르르―

저 멀리 어둠이 꿈틀거리며 누군가가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암살자였다.

‘절정경 고수.’

기세를 보아 막 절정지경에 오른 자다.

그러나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내가 조금 더 강하기야 했지만, 절정 중기와 초기는 일류와 절정만큼 차이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상대는 감히 황제를 암살하러 올 만큼의 암살의 귀재.

슈칵!

어둠 속에서 붉은 선이 생겨나더니, 황제의 침소를 지키던 내게 비수가 뻗쳐 왔다.

채앵!

나는 검으로 비수를 쳐 낸 후, 암기를 던져 암살자의 발목을 노렸다.

암살자는 황급히 내 암기를 피하더니 다시 내게 비수를 찔러 왔다.

나와 암살자의 간합이 얽혔다.

내 푸른 선과 그의 붉은 선이 허공에서 교차한다.

‘이상하군.’

분명 싸움에 집중해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김영훈이 오기조원에 등극할 당시의 상황이 눈앞을 떠나질 않는다.

동시에, 나는 검기(劍氣)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검기란, 검신합일의 도달하기 시작했다는 증거.’

‘일류 중기에 검기를 발현하여, 검신합일의 초입에 도달한다.’

‘일류 후기에 완전한 검신합일에 도달하여 제대로 된 검기를 사용 가능하다.’

어째서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눈앞의 상황이 아닌, 검기에 대한 고민과 오기조원에 이르던 김영훈의 모습이 떠오르는 걸까.

‘절정지경에 오르며, 항상 최적의 경로를 볼 수 있기에 그 최적의 경로를 따라가는 이상, 검기는 절대 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난 삶의 김영훈이 내게 하루 종일 검기를 유지하는 훈련을 조언했던 것이리라.

‘내가 보는 최적의 경로란 결국 내 검법이 가리키는 극한(極限). 검기는 결국 내 검법의 특질을 검신합일로 인해 극한으로 발현시켰을 때 나오는 것.’

검법(劍法)은 곧 검기(劍氣)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무공 수련하며 느낀 것이었다.

‘잠깐, 아니다. 뭔가 아니야.’

그러나 나는 문득 내 생각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암살자가 비수를 연달아 세 번 찔러 왔고, 나는 산수화의 초식으로 비수를 쳐 낸 후 다시 입산의 초식으로 그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그의 붉은 선이 내게 뻗어 오며 다시 갈라진다.

비수를 찌른 후 변초를 줄 것이다.

나는 내 푸른 선으로 그의 의도를 차단하고, 서로의 간합을 겨뤘다.

‘검법이 곧 검기라면, 무인(武人)의 존재 의의는 뭐지? 그냥 수도자들이 강시나 움직이는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검법을 익히게 하면, 그것들도 검기를 써야 하는 게 아닌가?’

난 어째서 수 번의 생을 반복하며 무기물이 검기를 쓴다는 말을 못 들어 본 걸까.

‘검기는, 단순히 검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검기는 무엇일까.

암살자와 수십 합의 간합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주고받던 중, 암살자의 붉은 선이 내 푸른 선 사이를 꿰뚫었다.

그의 비수가 정확히 내 미간을 향한다.

‘검기는···.’

김영훈이 오기조원에 진입할 때, 그의 미간을 중심으로 붉은 영역이 생겨났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아, 그렇구나.

검기가 검법에 의해 만들어질지언정.

그 중심은 결국 인간.

그 검을 펼치는, 무인(武人)의 의(意)!

동시에, 나는 내가 지금껏 보아온 붉은 선과 푸른 선의 정체를 아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단순한 최적의 경로, 적의 의도가 아니었다.

무를 펼치는 무인의 의(意)!

의념(意念)의 향방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나는 어째서인지 검을 쥔 손에 기묘한 감각이 드는 듯 했다.

마치 검에서 혈관이 자라나, 내 피부를 뚫고 손으로 들어온 기분.

단순한 검신합일이 아닌, 그 이상의 더욱더 끈적한 합일(合一)!

나는 무심코 더욱더 깊은 합일을 이룬 검을 향해 검기를 밀어 넣었다.

지금껏 검법이 곧 검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검법은 그를 펼치는 무인과 함께 완성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무인의 의(意)가 향하는 곳이라면, 그것은 검법에 얽매이지 않더라도 검법일 것이다.

부웅!

나는 일 검을 내질러 암살자에게 휘둘렀다.

지금까지는 단악검법의 검로를 벗어나면 검기의 위력이 크게 약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검로를 벗어나, 아무렇게나 검을 휘둘러도 검기의 위력이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

‘아니, 이게 끝이 아니다.’

나는 내가 방금 얻은 깨달음이 고작 이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계속해서 검기에 의식을 집중했다.

지금까지는 검기를 진화시키려면 기산심천 등으로 기운을 일순간 강화시켜야 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검의(劍意)를 계속 불어넣는다!’

절정의 세계에서, 내 검이 점차 푸른 빛에 휩싸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넣자, 내 검은 푸른 빛에 휩싸이는 것을 넘어, 검 자체가 푸른 실로 화해 버렸다.

현실에서 나는 검을 쥐고 있었지만, 절정의 세계에서 나는 푸른 실을 쥐고 있었다.

‘아, 이게···.’

검사(劍絲)!

절정 중기 완숙의 증거!

키이잉―

현실에서도 무형에 불과했던 내 검기는 마치 실처럼 얇아지며 은은하게 유형화되어 있었다.

절정에 오른 지 약 10년.

나는 절정 중기에 이르러, 검사(劍絲)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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