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9화 (9/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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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재능(2)

4개월 뒤.

김영훈 부장은 순조롭게 절정 고수의 경지에 이르렀다.

우적, 우적 우적···.

그는 내가 준 황주삼을 먹더니,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했다.

우우웅···.

그와 함께 그의 머리 위에서 삼화취정이 일어나고, 그는 절정 고수에 도달했다.

“하하, 완전히 세상이 달라 보이는군.”

“···정말 몇 번을 봐도 엄청난 재능이군요.”

원래는 절정에 이르기까지 6, 7개월은 걸리던 김영훈 부장이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아예 일류 무공인 단악검법을 익히자 훨씬 절정에 이르는 난이도가 낮아진 건지, 그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도 2개월 앞서 절정에 이르러 버렸다.

심지어 단악검법을 수련하며, 단악검법의 형이 마음에 안 든다며, 단악검법의 형을 모조리 도법(刀法)의 형태로 뜯어고치며 단맥도법(斷脈刀法)이라는 새로운 무공을 창시하기까지 했으니.

누가 봐도 기함할 무재(武才)였다.

“그러게 말일세. 나도 내가 신기한 것 같기는 해.”

“···부장님께 드릴 게 있습니다.”

나는 그 가공할 재능에 감탄하며, 품에서 한 권의 서책을 꺼내 그에게 건냈다.

월수궁무록(越修窮武錄).

지난 생의 김영훈 부장이 오기조원에 이른 후 나머지 일생을 바쳐 만들어 낸,

대(對) 수도자용 무공.

그가 절정에 오를 4개월 동안 서책의 형태로 다시 정리해 놓은 것이었다.

“저번에 책방에 갔을 때 발견한 무공서인데. 책방 주인이 엄청난 무공서라고 해서 샀습니다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만 적혀 있곤 해서, 사기당한 게 아닌가 부장님을 찾아왔습니다.”

“흐음, 보지.”

나는 그에게 월수궁무록을 건냈다.

얼마 후, 그의 눈이 커지며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무공인가?”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 그래. 그렇겠군.”

김영훈 부장은 머리를 꾹꾹 누르며 내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건 절정··· 아니, 절정에서 삼화취정에 오른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무공서야. 무시무시하군. 이런 무학 체계가 존재할 줄 몰랐어. 그야말로··· 이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자는 누구라도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을걸세. 자네, 엄청난 기연을 또 가져왔군!”

“하하,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뿐인지라 사기당한 줄 알았다만 아니었군요. 그나저나··· 삼화취정은 절정과 같은 경지가 아니었습니까?”

절정에서 삼화취정에 오른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무공서라니?

“아하, 내가 절정에 이르는 걸 보고 착각했나 보군. 하지만 나도 내가 특이케이스라는 걸 안다네. 절정에도 단계가 있고, 절정 초기, 중기, 후기가 있네. 삼화취정은 그 중에서도 후기에 도달한 이들만 깨닫는 경지야.”

“그렇군요···.”

이건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기이하게도, 무림맹 책사 자리까지 올라간 나였으나, 절정 이상의 무학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무림의 기준으로, 무인의 수준을 분류하는 단계.

일류, 이류, 삼류를 나누는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무공(武功)을 익히기 시작한 자는 모두 기본적으로 삼류(三流)였다.

초식(招式)과 내공(內功)을 하나라도 익혀, 전투에 활용이 가능한 이들은 삼류 초기.

초식과 내공을 둘 다 익힌 이들은 삼류 중기.

초식과 내공을 익히고, 둘을 동시에 사용하는 이들은 삼류 후기로 분류되었다.

기본적으로, 초식과 내공을 동시에 운용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축에 속했다.

몸을 움직이는데, 동시에 몸 안에서 흐르는 기운을 동시에 통제한다? 심지어 잘못 기운을 통제하면 기혈이 꼬여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거나, 주화입마를 겪는다. 한 치의 실수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처음 무공을 익힐 때는 머리가 두 쪽으로 쪼개지는 것 같았지.’

그리고,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무공에 숙련되기 시작한 자는 이류(二類)로 취급되었다.

초식과 내공을 둘 다 동시에 사용하며, 그걸 전투에 활용할 줄 아는 이는 이류 초기.

초식과 내공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숙련되어 전투에 활용하는 것에 어색함이 없는 것이 이류 중기.

초식과 내공을 사용하는 것이 무의식에 인이 박여, 의식하지 않더라도 초식이 묻어나오고, 준비나 연계 없이 내공을 사용 가능한 것이 이류 후기로 불렸다.

나는 지난 몇 개월간의 훈련으로, 지난 삶에서 도달했던 이류 중기의 무위를 다시 찾는 데에 성공했다.

‘이제 실력이 이류 후반에 도달하는 것도 곧이다···!’

그렇게 무공의 숙련을 넘어, 무공이 완성(完成)되는 것이 일류(一類)의 경지였다.

초식과 내공을 사용하는 무공이 무의식에 인(印)이 박이는 걸 넘어, 완전히 몸에 체화되어 무공 안에서의 자유(自由)를 얻는 것이 일류 초기.

완전히 자유를 얻은 무공을 펼치며, 무공이 가진 의(意)를 깨달아 기(氣)의 사용이 능수능란해지며, 검기(劍氣)의 발출이 가능해진 경지가 일류 중기.

자신이 익혀온 무(武)와 의(意)가 완전히 녹아들며, 검사들이 검신합일(劍身合一)의 깨달음을 얻어, 검기의 사용 시간과 검기의 준비 시간이 훨씬 짧아지는 것이 일류 후기로 불렸다.

이렇듯, 삼류 초반부터 일류 후반까지의 정보는 무림맹의 책사 역할을 하던 지난 삶에서 전부 수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절정의 경지에 대한 정보는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

심지어, 영훈 형님은 측근인 내가 물어봐도 어색하게 웃으며 답을 회피했다.

‘말해 봤자 어차피 못 알아듣는다고?’

심지어 일류 후기 극한에 이른 이에게나 간혹 화두를 던질 뿐, 그 어떤 절정 고수도 절정경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준 적은 없었다.

“···그나저나 부장님, 혹시 절정의 경지는 대충 어떤 경지인지 말씀해 주시면 안 됩니까?”

나는 혹여나 싶어 김영훈 부장에게 절정에 대한 단서를 질문했다.

그러나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지난 생과 똑같은 답을 던져 줄 뿐이었다.

“아, 미안하네만. 어차피 말해 줘도 이해가 안 될 걸세.”

“···.”

“자네를 놀리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절정에 대한 정보를 미리 가지고 있으면, 헛된 망상과 공상에 사로잡혀 주화입마에 걸릴 수 있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자네가 보는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니까 말이지···.”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기왕 절정에 올랐으니,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나 알아볼 겸 도장 깨기를 하고 다닐 건데··· 혹시 따라올 텐가?”

“···뭐, 그러지요.”

그리고, 한 달 후.

김영훈 부장은 용혈성의 모든 중소문파를 헤집고 다니며, 모든 문파의 간판을 따내 버렸다.

지난 삶에서 처음 주거지를 잡았던 서경성에는 사성삼마 같은, 세가 커다란 대문파가 일곱이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연국의 수도라는 특수성 때문이었고, 보통의 성에는 보통 대문파가 하나나, 많으면 둘 정도밖에는 없었다.

용혈성의 대문파는 가천보(茄川堡)라는 이름의 대문파가 하나 있었고,

김영훈 부장이 성내의 모든 중소문파의 간판을 뗀 탓에, 그들은 도장 깨기를 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긴장해 있었다.

“소문이 자자한 영 대협을 뵙게 되어 광영이올시다.”

우리가 가천보에 찾아가자, 가천보의 장문인이 직접 나와 그를 반겨주었다.

“성내에 존재하는 소문파 쉰셋. 중소문파 서른둘. 중견문파 열하나. 도합 아흔여섯 문파의 간판을 떼어내신 걸걸한 대협께서 가천보를 찾아 주시다니, 허허···.”

“원래 그렇게 많은 문파를 찾아다니며 간판을 뗄 생각까지는 없었소···.”

김영훈 부장은 조금 싱겁다는 표정으로 장문인에게 말했다.

“한 문파에서라도 패배하거나, 무승부. 아니, 최소한 호적수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그대로 비무행을 끝낼 생각이었소만···.”

“···한 명도 당신의 맞수가 되지 못했다는 거로구려.”

맞는 말이었다.

일류 무공인 단악검법을 개조한 단맥도법을 극성으로 익혀 절정에 오르고.

타고난 재능을 극한까지 개화시켜 단번에 삼화취정에 도달한 그가,

오기조원에 이른 천하제일인이 남은 생을 바쳐 만들어 낸 천하일절의 무공.

월수궁무록을 익혔다.

용혈성 중소문파들은 물론이고.

나름 중견문파라고 취급받는 열한 개의 문파 중 어느 곳에서도,

그의 삼 초(招)를 받아 내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여, 대문파라고 취급받는 가천보에서는 조금 다를 것이라 기대하겠소.”

“하하, 물론이라오. 본문에는 그야말로 기라성같은 고수들이 즐비하니, 영 대협의 눈높이에 맞는 이들이 있을 터···.”

우리는 장문인을 따라, 가천보 내의 비무대로 향했다.

비무의 형식은 삼연전이었다.

가천보 내의 고수 중 세 명이 차례대로 나와 김영훈 부장을 상대할 예정이었고, 그는 세 명을 모두 쓰러뜨리면 가천보의 현판을 가져가는 식이었다.

김영훈 부장에게 한참 불리한 비무 형식.

그러나···.

“하하하, 상관 없네.”

김영훈 부장의 눈에는 자신감이 한가득 차 있었다.

“월수궁무록은 무적(無敵)이야! 이걸 익힌 순간부터 나는 어른이고, 저들은 세 살배기 아이들이네. 꼬꼬마 셋이 연달아 덤벼 온다고 내가 왜 무섭겠나.”

그리고, 가천보에서의 삼 연전이 시작되었다.

그의 삼 연전에서의 첫 상대는 가천보 장문인이었다.

“···허. 시작부터 당신이 장문인이 나올 줄은 몰랐소만···.”

가천보 장문인, 문예익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에 답했다.

“본문의 장로 중, 용혈성 중견 문파의 최정상들을 삼 초 안에 제압할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소. 필시··· 당신이 절정지경에서도 최정상에 있는 고수라는 것이겠지. 당신은 나를 비롯한, 가천보 원로원(元老院)이 상대해 줄 것이오!”

징―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징이 울렸다.

가천보 장문인 문예익.

그는 성내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절정 고수였다.

‘빠르게 해치우고 온 중견문파 열한 곳의 최정상 고수인 절정 고수들도, 문예익에 비하면 한 수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던데···.’

나는 두 고수의 대결을 지켜보며,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지켜보았다.

스릉···.

김영훈 부장이 도를 꺼내 들었다.

가천보의 장문인 역시 그의 병기인 연검(軟劍)을 꺼내 들었다.

타앗!

먼저 움직인 것은 김영훈 부장이었다. 그는 일직선으로 장문인에게 달려들었고, 가천보 장문인이 연검을 휘두르자, 김영훈의 사방(四方)이 그대로 연검의 검세에 갇힌 형국이 되었다.

파밧!

그러나, 김영훈 부장의 몸이 순간 일곱 갈래로 분영(分影)을 일으켰고, 일곱 갈래의 분신들이 연검의 결계 중 허술한 곳을 향해 움직였다.

“흠!”

하지만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가천보 장문인의 연검이 뱀처럼 분신들을 쫓았다

슈칵!

슈칵, 슈칵!

연검이 수천 갈래로 갈라지며, 분신들을 베어 가르는 듯했다.

하지만 분신 중 실체는 단 하나도 잡히지 않았고, 연검의 결계 속에서 그의 그림자는 전부 사라져 버렸다.

그때였다.

부웅!

허공에서 김영훈 부장이 날듯이 뛰어내리며, 한 바퀴를 회전하며 장문인에게 쇄도해 갔다.

일곱 개의 분영을 아래쪽에 남겨 놓고, 실체는 허공으로 도약했던 것이었다.

“허억···!”

스릉!

그의 검날이 장문인 문예익의 목젖에 닿았다.

징―

김영훈 부장의 승리였다.

그가 승리하기까지 쓴 초식은, 2초식에 불과했다.

“도전자는 연전을 속행하시겠소이까!”

비무의 심판 역을 맡은 장로가 굳은 안색으로 그에게 물었다.

김영훈 부장은 비무대에서 내려오지조차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상대로 나온 것은 머리가 반질반질하게 벗겨진, 흰 수염의 노인이었다.

“가천보 태상 장로. 현 원로원 소속, 익천배라 하오.”

대머리의 노인은 짧게 자기소개를 한 후, 바로 자세를 잡았다.

징―

징이 다시 울리고, 이번에는 익천배라는 노인 쪽에서 김영훈 부장에게 달려들어 갔다.

촤라락!

그 역시 연검이 무기였다.

하지만···.

징―

그 역시 십 초를 넘기지 못하고 김영훈 부장의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그래도 삼 초는 넘겼군.’

월수궁무록을 익힌 그를 상대로 삼 초를 넘겼다는 것 자체로, 어마어마한 강함을 증명했으나, 김영훈 부장은 여전히 조금 실망스러운 표정이었다.

“···연전을 속행하시겠소?”

이젠 비무를 진행하는 장로의 얼굴은 숫제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속행하겠소.”

삼 연전의 마지막 상대는 수수한 무복을 입은, 긴 수염과 흰 머리를 가진 깐깐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가천보 태상 장문인, 현 원로원주, 팔직태라 한다. 보아하니, 세 번째는 넘겼군.”

“호오···.”

그리고, 가천보의 태상 장문인이라는 노인을 보고서야 김영훈 부장의 눈빛에 흥미가 돌았다.

“삼화취정의 고수시로군. 나 말고 이 성에서 삼화취정에 이른 자는 처음 보는구려.”

“세 번째에 이른 놈들이 흔하지야 않지. 절대다수가 평생을 빨갛고 파란 그 안에서만 살아가니. 나 또한 자네 같은 고수를 만나는 건 오랜만이군.”

“허어··· 나 말고 다른 삼화취정의 고수는 몇이나 만나셨소?”

“대부분 대문파의 원로원 소속 고수 중에는 한 사람쯤 꼭 세 번째에 이른 고수가 있지. 뭐 그 외에도 재야의 고수도 한둘쯤은 있고···. 정 궁금하면 연국의 성들을 돌아다니며 대문파를 들러보게. 그리고 듣자 하니, 중견문파들을 찾아가서 도장 깨기를 했다 하는데, 우리 경지에서 그런 잔챙이들은 도움이 안 될 걸세. 명심하게나.”

“선배의 충고를 고맙게 듣겠소이다.”

‘세 번째? 빨간색, 파란색?’

나는 노인이 내뱉는 단서들을 정리하며 의문을 느꼈다.

‘왜 삼화취정을 세 번째라고 표현하지? 빨간색이나 파란색은 또 뭐고?’

주변을 둘러보니, 비무대 주변에 있는 가천보의 다른 장로들이나 제자들 역시 눈을 부릅뜨고 둘의 대화를 귀담아듣고 있는 듯했다.

“그럼··· 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냐~”

징―

징이 울렸다.

그러나, 방금 전과는 달리 둘 중 아무도 먼저 달려들지 않았다.

둘은 그저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든 후 기수식을 잡고, 상대를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척!

처억!

기이하게도, 김영훈 부장이 자세를 바꿔 잡자, 가천보 태상 장문인 팔직태는 화들짝 놀라며 그 역시 기수식을 바꿔 잡았다.

이후 얼마간 둘은 서로 부딪히지 않고 기수식만 바꿔 잡기를 몇 번이나 이어 나갔다.

‘이게 뭐야. 싸우는 건가? 수 싸움, 그런 건가?’

나는 둘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천보의 다른 제자들이나, 장로들도 지금 상황이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비무대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어째 김영훈 부장에게 패배해서 비무대를 내려간 장문인과 원로는 경악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일어나고 있긴 한 거 같은데··· 절정 고수가 아니면 알아보는 게 불가능한 건가 보군.’

그때였다.

“허억! 헉···.”

팔직태가 숨을 들이쉬며 외쳤다.

그에게는 어느새 식은땀이 잔뜩 돋아 있었다.

“무슨··· 무슨 무공을 익힌 거냐!”

“···이 무공은, 월수궁무록(越修窮武錄)이라 하오.”

“월수궁무록··· 나는 살면서 그런 괴물 같은 무공을 본 적이 없다···. 애초에, 인간을 상대하라고 만든 무공이 맞긴 한가?”

“···?”

뭐지?

부딪힌 적도 없지 않나?

그때, 김영훈 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선수(先手)는 양보하겠소.”

“···정말 부럽구나. 가천보의 삼백 년 역사를 한 번에 부정할 만한 무시무시한 무공을 익힐 수 있다니···.”

말을 마친 팔직태가, 기수식을 새로 잡았다.

부웅!

팔직태가 연검을 휘두르며 초식을 펼쳤다.

연검이 허공에서 낭창낭창하게 휘몰아치며, 김영훈 부장의 사방을 감쌌다.

장문인 문예익이 처음 사용했던 것과 같은 초식으로 보였다.

그러나, 김영훈 부장은 장문인을 상대했던 것과 달리 분영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사방 외의 유일하게 뚫려 있는 공간, 허공을 강하게 노려보며, 도를 들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쐐애액!

그때, 팔직태의 연검 끝이 화살처럼 허공으로 쏘아져 갔다.

부웅!

챙!

김영훈 부장은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연검의 끝을 쳐 내고,

연검의 결계에서 빠져나왔다.

다음 순간, 그는 쏜살같이 팔직태에게 달려들어 도를 휘둘렀다.

콰앙!

거대한 폭음이 들리며 비무장 바닥이 갈라진다.

둘의 무기가 허공에서 부딪히며 불꽃을 토해 냈다.

“어엇···.”

나는 순간, 둘의 모습을 시야에서 놓쳐 버렸다.

파앙, 파앙, 파앙!

파공음이 터지며 김영훈 부장의 신영이 흘깃 비췄다.

검세로 보아 찌르기를 한 것 같았는데, 팔직태는 눈으로 좇기도 힘든 그 찌르기를 모조리 피해내며 김영훈 부장과 간합을 주고받았다.

콰광!

팔직태가 흘려 낸 연검이 비무장의 귀퉁이를 폭발시켜 버렸다.

째앵!

김영훈 부장이 날린 도기 다발에 비무대 옆에 있던 징이 그대로 깨져 버렸다. 징 옆에서 심판을 보던 장로가 기겁을 하며 몸을 굴려 도기를 피했다.

파바밧!

김영훈 부장이 삼 보(步)를 밟으며 팔직태에게 달려들었다.

그 삼 보 안에서, 그의 기수식이 열 번은 더 바뀐 것 같았다.

하지만 기수식의 전환 역시 너무 빨라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였다.

차라리 영상의 화면이 뚝뚝 끊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젠장··· 여전히 절정 고수들은 괴물 같군.’

지난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림맹주의 최측근으로 지내며, 절정 고수들의 비무를 몇 번 볼 기회도 있었다.

‘그때도 뭐가 뭔지 단 하나도 알아먹을 수 없었지.’

그나마 그때 비무를 많이 본 덕분에, 눈으로 쫓아갈 수라도 있는 것 같았다.

나와 경지가 비슷해 보이는 가천보의 제자나 사범, 호법들은 아예 눈이 풀려서 멍한 표정으로 비무대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들 중 두 사람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고 있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슈칵, 슈칵, 슈칵!

팔직태의 연검이 허공을 가르며, 허공에서 세 번의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가 한 번의 변화를 줄 때마다 오히려 팔직태의 몸 곳곳이 베여 나가며 도흔(刀痕)이 새겨졌다.

팔직태가 세 번의 변화를 일 초식에 담는 새, 김영훈 부장은 세 번의 공격을 가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쐐앵, 챙강!

김영훈 부장의 도가, 팔직태의 연검을 그대로 베어 버렸다.

연검이 잘려 나가 비무대 바깥으로 떨어졌다.

스릉―

김영훈의 도가 팔직태의 목에 닿았고, 팔직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패배다. 가천보의 현판은 떼어 주마. 본문은 삼 년간 봉문(封門)할 것이야!”

“···용혈성 어떤 문파의 무공도 가천보의 것만은 못함을 견식했소. 나 역시 배워 가는 게 많은 대결이었소이다.”

두 무인은 서로에게 정중하게 포권을 한 후, 비무대에서 내려왔다.

“자, 돌아가지, 서은현이.”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감을 잡으셨습니까?”

“···내 실력이 아니네.”

그러나, 김영훈 부장의 안색은 어째서인지 조금 침울한 듯했다.

“월수궁무록, 나는 그 무공의 가르침대로만 무공의 형(形)을 잡았을 뿐. 나는 그 무공을 장악하고 완전히 그 안에서 자유를 얻고, 월수궁무록의 의(意)를 얻지 못했어.”

“···.”

“이 무공을··· 누가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네만. 나는 이 무공의 창시자의 안배를 뛰어넘지 못했네. 내가, 이 무공의 창시자보다 한참 애송이라는 걸 알았네. 이 무공을 깊게 익히고, 펼칠수록 더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군···.”

나는 자신이 자신의 무공을 자화자찬하며 우울해하는, 이 상황을 보며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오늘의 비무로 내 실력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알게 되었네. 저 선배의 말대로, 앞으로 여러 성을 돌아다니며 절정 고수들을 찾아 비무를 할 것이야···. 자네는, 따라올 건가?”

“···물론입니다.”

어차피 이번 생은 무(武)에만 몸을 바치기로 마음먹은 몸.

“저도 부장님, 아니, 형님을 따라다니며 절정 고수가 되기 위해 수련하겠습니다.”

“하하, 기대하겠네. 그나저나 형님이라니, 조금 부끄럽군. 자네랑 내 나이 차가 얼마인데. 허허···.”

“같은 동향 사람끼리 호형호제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번 생 안에, 반드시 절정 고수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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