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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재능(1)
“이 상황에 그런 건 할 생각 없네.”
“아, 예···.”
그러나 영훈 형님은 그런 것보다는 지금 상황이 더 신경 쓰이는지, 딱히 내 호흡법과 건강 체조법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시간이야 많으니···.’
다음 날.
나는 여우를 마주하고, 그에게 한쪽 팔을 뜯겼다.
여전히 아픈 건 비슷했으나, 이번에는 내 정신력의 상승과 더불어 지난 생에 쌓았던 의술 지식으로 혈을 눌러 고통과 출혈을 멈추고, 약초를 씹어 그 자리에 발랐다.
우리는 여우에게 이 땅에서의 거주권을 허락받았다.
전명훈이 지난번 삶과 마찬가지로 수작을 부리며, 내게서 배울 것을 전부 배운 후 나를 여우에게 바치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지난 번 삶과 마찬가지로 전명훈을 부려먹고, 다음 날에는 붉은 뱀에게 피를 뽑아 주게 하는 등 그를 열심히 괴롭혀 댔다.
그리고 사흘째.
지난번 삶과 똑같은 이들이 와서 전명훈 과장, 강민희 대리, 오현석 차장을 납치해서 가 버렸다.
그리고 나흘째.
[이 처자는 내가 데리고 가지.]
해룡왕 서휼이 도착해 오혜서 대리를 안아들고 일어섰다.
“해룡왕께 불초 범인이 한 가지를 여쭙사옵니다.”
[흠, 무엇인가?]
서휼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해룡왕께서, 저희 오혜서 대리를 데려가신다는 것 같은데··· 저희 오 대리는 영근이 없는 범인(凡人)입니다만, 범인은 아무리 살아 봤자 100년을 채 살지 못합니다. 하온데 그녀를 어찌 쓰시려 데려가시옵니까?”
[하하, 상당히 수도자의 생태에 대해 잘 아는 범인이군. 하지만 걱정할 것 없네. 그녀는 본왕의 피를 주어 해룡족으로 받아들일 것이니. 해룡족의 피를 받아들이면 그녀는 적합한 영질(靈質)을 각성할 게야. 그렇다면 그녀 역시 수선의 길을 걸을 수 있다네.]
“···!”
영질!
영근의 다른 표현이었다.
한 마디로, 해룡왕의 피를 받으면 한번에 수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혹여··· 저희에게도 기회를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녀는 저희와 같은 동향 사람이옵니다. 어쩌면 저희에게도 독특한 능력이 있을수도 있으니···.”
[하하, 자네 말일세.]
번뜩!
내 제안에, 서휼의 눈이 파충류의 것처럼 쭉 찢어진다.
[승천문이 열릴 기간에는 등선향에 고위 수사들이 많이 지나갈 터이기에··· 노파심에 한 마디 하겠네만.]
쿠구구구구!
“커억! 어억!”
나는 심장을 붙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 같은 고위 수사에게는 함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 게 좋다네. 우리는 수백 수천년을 살아가며, 감히 자네가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알지 못한 것을 알고, 얻지 못한 지혜를 얻는다네. 나는 성격이 좋아서 넘어간다만, 성격이 괴팍한 이들은 자네들이 그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 하여 벌레처럼 찍어 죽이는 경우도 있지.]
“허억, 허어억···!”
[본왕은 이 처자의 능력이 본 해룡족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데려가는 것이고, 자네들은 영근도 없고, 특이 능력도 없으며, 설령 특이 능력이 있더라도 이 처자만큼 도움이 되지 않기에 데려가지는 않을걸세. 안 그래도 승천문을 넘을 때 동행자가 많아질수록 비승의 난이도가 높아지는데, 자네들까지 데려가는 건 내게 상당한 부담이니 그리 알게나.]
말을 마친 그는 동굴 바깥쪽으로 걸어갔다.
콰르릉!
동시에 천둥 소리와 번갯불이 비치며, 그의 모습이 입구에서 사라졌다.
어느새 하늘 위로는 한 마리의 청룡이 비구름을 뚫고 유유히 날아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영훈 형님과 김 주임은 허탈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날 저녁, 나는 특별히 좋은 버섯을 캐 와, 불에 구워 김 주임과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그리고, 그녀가 능력을 각성한 후, 괴뢰를 탄 괴인이 우리를 찾아왔다.
지난 삶과 마찬가지로, 괴인은 김 주임을 데려가기로 했다.
나는 그 괴인에게 엎드려 절하며 물었다.
“존경하는 수도자이시여. 저희의 동료인 김 주임은 영근이 없는 범인일진대, 어찌하여 수도자님의 제자가 될 수 있겠나이까!”
내 말에, 곱사등이 노인은 피식 웃으며 답해 주었다.
[세간에는 분명 귀하기는 하지만, 범인(凡人)에게 영통(靈通)을 뚫어 주는 영약, 혹은 그러한 기물이 존재한다. 일개 일반인도 그런 기회를 손에 넣으면 수선(修仙)의 기회가 열리는 게지.]
“···!”
엄청난 정보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도자가 되는 길이, 또 하나 있었다!’
[뭐어··· 또한 너희 범인들이 익히는 무공 역시 극한으로 다듬으면 오행영근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 길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정작 그 방식으로 영질을 각성시켜 봤자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으니 난 영약을 구해서 제자에게 먹일 것이다. 자아, 알겠느냐? 나를 따라오면 수도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내게 말을 하던 중 자연스럽게 김 주임에게 시선을 돌리며 그녀를 유혹했다. 그러나 수도자가 뭔지, 영근이나 영통이 뭔지 알 턱이 없는 그녀는 멀뚱멀뚱하게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얼마간의 실랑이를 걸친 후, 곱사등이 노인은 우리를 가리켰다.
우우웅!
우리 뒤쪽에 있는 허공에 시커먼 균열이 일어나더니, 나와 영훈 형님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나는 약초들을 챙기고, 영훈 형님은 도망치려다가 괴인의 힘에 잡혀서 결국 그 너머로 던져지고 말았다.
나는 공간 균열 너머, 김 주임이 우리에게 손을 뻗는 것을 마지막으로,
저번 삶과 마찬가지로 정신을 잃었다.
***
정신을 차리자, 어두운 동굴 속이었다.
“이곳은···.”
이번에도다.
괴인이 무작위로 우리를 전송시킨 덕분에, 아주 사소한 나비 효과로 전혀 다른 곳에 떨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천천히 동굴 안쪽에서 빛이 보이는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숲이군.”
그랬다.
이번에 떨어진 곳은 나무가 빽빽한 숲이었다.
그러나 등선향과 같은, 그 특유의 기묘한 느낌은 없었기에, 확실히 그 바깥으로 나온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후우···.”
나는 자리에 앉아 지난 사흘 동안 운용했던 천지심법을 운용했다.
천지심법은 단전을 활성화시키고, 기를 느끼고 조종하게 해 주는 기초 중의 기초 심법.
많은 무림인은 무공을 익히기 전 꼭 천지심법을 익히고는 했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아마 연국이 아닌 완전히 다른 곳일 수도 있고, 사람이 사는 곳까지 가려면 몇 날 며칠이 걸릴지도 모른다.
“으적, 으적 으적···.”
나는 등선향에서 캐 두었던 팔백 년 묵은 황주삼을 꺼내서 씹어 삼켰다.
우우웅···.
강력한 기운이 단전에서 휘몰아친다.
지난 삶에서는 황주삼을 캤어도, 알고 있는 내공심법이 천지심법밖에 없어 황주삼을 내가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무림맹 책사로 몇십 년을 구르며, 쓸만한 내공심법은 많이도 알고 있지.’
나는 지난 삶의 영훈 형님이 내게 맞춰서 만들어 준,
단악검법과 쌍을 맞춘 내공심법.
용맥기공(龍脈氣功)을 운용했다.
쿠우우우―
웅혼한 기운이 내 내공으로 녹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강력한 기운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탓에, 기운을 제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장장 40년을 똑같은 내공심법으로 운용했다.
내공심법의 운용이 어려울 리가 없다.
체내의 경락과 혈도들을 따라, 40여 년간 운용해 왔던 용맥기공의 길을 다시 만들어 낸다.
쿠웅!
쿠웅!
쿠웅!
막힌 혈도들을 뚫어 가며, 기운이 내 몸을 일주천했다.
비록 천지심법으로 이틀간 어느 정도 몸을 깨끗하게 했다곤 해도, 역시 지금의 몸 자체는 인스턴트와 니코틴에 찌든 몸인 탓인지 쉽게 혈도를 뚫기가 쉽지 않았다.
“후우···.”
나는 적당히 소주천을 마친 후, 근처에서 적당한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근처의 날카로운 돌로 나무를 박박 갈기 시작했다.
내공을 불어넣은 돌로 나뭇가지를 갈자, 나뭇가지는 삽시간에 톱밥을 떨어 내며 적당한 크기의 목검으로 변했다.
“이 정도면 쓸 만하겠군.”
부웅, 부웅!
나는 목검을 들고 단악검법의 검세를 펼쳐 보았다.
이류에 간신히 턱걸이를 한 정도의 검형이 내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지난 생에선 순수한 실력은 이류 평균이었지만,
아무래도 죽기 전에는 검을 오랫동안 잡지 않은 탓인지 검 끝이 많이 무뎌진 느낌이었다.
‘물론···.’
부웅!
콰드득!
목검에 내공을 불어넣어 바로 앞에 있는 아름드리나무를 향해 단악검법을 펼치자, 목검이 그대로 아름드리나무를 파고들어 밑동의 절반을 잘라내 버렸다.
‘이 정도로도 며칠간 산에서 살아남기는 가능하겠지.’
요괴와 영물이 드글드글하던 등선향이 아니라면, 이류 수준에 이른 내 검 실력만으로도 생존은 가능했다.
그때였다.
“서, 서 대리··· 방금 그거··· 뭔가? 뭐가 어찌된···.”
영훈 형님, 아니.
아직은 김영훈 부장인 그가, 내게 당황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어, 어떻게 목검으로 나무를··· 그 괴력은 또 뭔가?”
“아··· 이거 말입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한 후, 적당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기연(奇緣)입니다.”
“기, 기연?”
“예, 저 동굴 안에 있던··· 왠 서책을 집자, 서책이 불타면서 서책의 내용과 그 기운이 제게 스며들어왔습니다. 어떤··· 한 무인이 수도자라는 존재의 힘을 빌려, 자신의 무공을 후학에게 전하기 위해 만든 기이한 물건인 듯싶습니다. 저는 그 덕분에 단번에 그 무공의 계승자가 된 셈이고요.”
“허, 허억···!”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그는 나흘에 걸쳐 하도 말도 안 되는 일들만을 겪은 탓인지 그 역시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이세계에 떨어지고, 집채만 한 여우한테 자기 부하 사원의 팔이 뜯겨 나가고, 하늘을 나는 괴인들이 나타나 부하 직원들을 납치해 가고, 시커먼 공간 균열에 떨어지기까지 한 이 상황에 못 믿을 게 뭐가 있겠느냐만···.’
나는 속으로 실소를 지으며, 김영훈 부장에게 상황을 이해시켜 주었다.
우리는 현재 곱사등이 노인에 의해 전혀 다른 곳으로 떨어졌다.
근처에는 민가가 없으니, 민가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이동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무공이 있는 것 같으니, 알려 주겠다 등···.
김영훈 부장은 마지막으로 한 말인, ‘무공을 알려 주겠다’에 꽂힌 것인지 그렇게 절망적인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나는 그에게 천지심법과, 이 세계의 기초 어휘.
그리고 기본 혈자리들을 알려 주며, 그와 함께 숲을 빠져나갔다.
***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나는 우리가 있는 위치를 유추하며, 기어코 인근 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연국(鸢國)이로군···.”
나는 연국의 성 중 하나인 용혈성(勇穴城)에 도착하며,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괴인은 무작위로 우리를 계속 던져 놓는다. 하지만··· 그 무작위의 범위는 연국(鸢國)을 벗어나지 않는군.’
이웃 국가인 성제국, 벽라국 등 다른 국가도 많다.
게다가 딱히 그 괴인이 우리를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계속 연국 안으로만 떨어지는 거지?’
어떠한 이유가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한 운(運)인건가?’
만약 이것이 그저 우연이라면.
‘운명(運命)···.’
나는 어쩐지, 어떤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운명’이라는 단어에 조금 더 촉이 오는 걸 느꼈다.
‘나는, 분명 지난 삶에서. 회귀를 하기 전의 삶과 정확히 같은 날. 같은 때에 죽었다.’
그게 말이 되는 일일까?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고,
완전히 다른 의료 수준과 영양 수준을 유지하며 산 지난 삶이었다.
그러나 나는 회귀 이전과 완전히 같은 날 같은 시에 죽은 것이다.
‘내게 주어진, 수명(壽命)이 거기까지인 건가.’
어쩌면 나에게 허락된 운명이 딱 거기까지였는지도 모른다.
운명.
굉장히 형이상학적이고, 도저히 생각하기 싫은 것이었지만···.
어쩌면, 모든 존재를 이끄는 운명이란 것은 어쩌면 정말로 실재하는지도 몰랐다.
‘···지금으로선 알 수 있는 게 아니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김영훈 부장과 함께 성에 들어갔다.
나는 인근 약방에서 약초들을 팔아치우고 그 돈으로 호패와 옷, 집을 마련했다.
‘기본적인 건 마련했으니, 이제 다시 단기적인 목표를 잡아야 한다.’
첫날 단기적인 목표로 오기조원에 이르는 걸 잡았다.
오기조원에 이르러야 수도자의 오행영근을 각성할 수 있고, 그래야지만 수도공법을 익혀 수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기조원을, 이번 생에 못 이룰 수도 있어.’
지난 생.
영훈 형님의 옆에서 그를 계속 따라다녔기에 조금 감각이 이상해지긴 했지만, 원래 절정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따내는 경지가 아니었다.
삼화취정도, 오기조원도 마찬가지였다.
‘절정 안에서도 상당히 경지가 나뉘고, 그 경지를 하나하나 넘는 것만도 벅차다는 게···.’
일반적인 절정 고수들의 의견이었다.
게다가 나는 안 그래도 무공에는 재능이 없는 둔재다.
아무리 시간을 들이더라도 이번 생애에 일류 고수조차 찍기 힘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역시···.’
나는 새로 산 집의 뒤뜰에서, 내가 알려준 단악검법을 본인이 어느새 개량해서 도법으로 연습하고 있는 김영훈 부장을 쳐다보았다.
단악검법은 지난 삶에서 제대로만 익히면 절정 고수에 이를 수 있는 무공이라고, 영훈 형님이 직접 말한 검법이었다.
아마 김영훈 부장의 재능이라면, 단악검법으로 6개월 안에 절정고수에 오를 것이다.
‘영훈 형님··· 아니, 김영훈 부장님을 최대한 빨리 절정 고수로 올려놓는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그것이 내가 절정까지 이르는 길을 최대한 단축하는 지름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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