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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은 무공천재(1)
나는 내가 있는 위치를 확인한 후, 아직도 기절해 있는 김 부장에게 다가가 흔들어 깨웠다.
“부장님, 김 부장님!”
“으, 으음···.”
김 부장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 대리. 여긴 또 어딘가···?”
“···여기는.”
나는 부장에게 대강 설명을 해 주었다.
그 곱사등이 노인이 우리를 공간 균열로 떠민 후, 눈을 떠 보니 이런 곳이었다.
아무래도 중세 중국 같은, 무림인들이 실재하는 세상 같다고 말해 주었다.
“···이젠 하도 많은 일이 일어나서, 뭐가 뭔지도 모르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차라리 이 모든 게 그냥 꿈이라고 해 주었으면 좋겠어···.”
김 부장의 얼굴은 한 10년은 더 늙은 듯 했다.
“···다행이라 해야 하는지, 아닌지 모르겠군. 아무 능력도 자질도 없어서 그 괴물 같은 존재들한테 잡혀가지 않은 게 좋은 건지, 아니면 그냥 버려진 건지···.”
“···.”
그에 대해서는 나 역시 모르는 문제였다.
지난 삶에서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 약초꾼이었을 뿐이니까.
이번 삶에서 자못 여유롭게 다른 이들과 사흘 동안 생존했다고는 해도,
그건 전부 회귀라는 능력 덕분일 뿐.
나라는 인간 자체는 크게 대단하지 않은 것이다.
“일단, 계속 이 골목에 있을 순 없으니 한번 나가 보지요.”
“···음, 알겠네.”
나와 김 부장은 서경성의 번화가로 나갔다.
온갖 종류의 인간들이 돌아다니는 서경성의 번화가는 현대의 번화가 못지않게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으음, 뭐라 그러는지 모르겠군. 전부 중국말 같은데, 게다가 왜 사람들이 우리를 흘긋거리는 겐가?”
“아마도, 입고 있는 옷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는 원래 입고 있던 상의를 김 주임의 송별회 식사 때 태워서 땔감으로 써 버려, 지금 상의에는 속에 있던 런닝밖에 없었다.
그리고 김 부장은 아예 이곳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등산복을 입고 있었기에 눈에 띄는 것 같았다.
“···큰일났군. 그나저나 서 대리, 중국말은 혹시 할 줄 아는가···?”
“예, 다행이도 중국어 연수를 받은 적이 있어서요. 들어보니 중국 남부 사투리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의사소통은 가능할 듯싶습니다.”
“오오··· 그것 참 천운이군···!”
물론 거짓말이었다.
이 세상의 언어는, 문자가 한자처럼 갑골문에서 시작되어, 한자와 생긴 게 비슷하다는 걸 제외하면 중국어와 완전히 다른 말이었다.
번체든 간체든 중국 어느 지역 사투리든, 이 곳에서는 안 통한다.
‘지난 삶에서는 기초적인 의사소통을 배우려고, 두 달동안 구걸을 하며, 근처 거지들에게 매달려서 말을 배웠었는데···.’
지금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계속 이 옷이면 눈에 띌 것 같으니 옷을 새로 사지요.”
“어, 어떻게 옷을 사나? 우리 돈이 여기서 통할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씨익 웃으며 답해 주었다.
“돈은 안 통하겠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면 약은 필요하겠죠.”
나는 근처에 있던 약방으로 들어가, 지혈초나 발열초, 해열초 등 잡다한 약초들을 약방에 팔았다.
내가 캔 약초 중 가장 저급하고, 등선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초들이었다.
물론 등선향에서 영기를 잔뜩 먹으며 오래도록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약초들이어서 기존 약초들보다 크기가 서너 배는 큰 약초였고, 나는 약방에서 상당한 돈을 받고 나왔다.
“하하, 서 대리. 역시 서 대리 능력이 여기서도 통하는군. 마, 많이 받은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나는 약방 주인이 준 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많이도 후려치는군.’
행색이 수상하다는 이유였다.
약초가 크고 양이 많아서 이 정도라도 받은 거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제대로 돈도 못 받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정도만 해도 옷 정도는 새로 살 수 있겠지만.
나는 직후 근처에서 가장 허름해 보이는 포목점에 들어가, 낡은 옷을 두 벌 새로 샀다.
우리는 평범해 보이는 옷이는 옷으로 갈아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물가가 어마어마하군.’
연산성보다 서너 배는 물가가 비싼 듯 싶었다.
덕분에 가지고 있던 돈을 모조리 써야만 했다.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하나? 서 대리.”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부장님. 아무래도 약초를 몇 번 더 팔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아까 찾아갔던 약방이 아닌 다른 약방을 찾아가, 약초를 다시금 팔았다.
아까와 같이 행색이 수상하다는 이유로 값을 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값을 후려쳐서 가격을 쳐 주었다.
나는 다시 한번 포목점으로 가 이번에는 조금 더 좋은 옷을 사서, 또 다른 약방으로 가 약초를 팔았다.
이번에는 내 옷을 본 약방의 주인이 값을 후려치지 않고 제대로 된 가격에 약초를 사 주었다.
나는 다시 한번 포목점으로 가서, 이번에는 비단옷을 사 입고 서경성의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상당히 커 보이는 약방으로 들어가 황주삼을 한 뿌리 팔았다.
“아, 아이고 대인. 이런 귀한 걸 저희 약방에 팔아주시다니···.”
약방의 주인은 비단옷을 입은 내게 굽신거리며, 두 손으로 황주삼을 받아들었다.
“내가 보기에, 적어도 팔백 년은 묵은 황주삼일세. 아무리 적어도 마제은 열 덩이는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아무렴요! 사실 이 정도라면 마제는 열다섯 덩이는 됩니다!”
“그래, 그렇겠지. 얼른 가져다주게나.”
나는 약방 주인의 인사를 받으며, 마굽 형태의 은을 열다섯 덩이를 받아 나왔다.
“허, 허허. 엄청나군. 서 대리. 이제 끝난 건가?”
“예, 뭐.”
아직도 황주삼은 몇 뿌리 더 있다.
게다가 방금 판 것은 제일 작은 삼이었다.
나는 부장님에게 비단옷을 사 준 후, 관청에서 가서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호패를 얻었다.
그리고 서경성 외곽에 조그마한 집과 땅을 사고 나니, 마제은은 한 덩이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오늘부터 여기에서 지내지요. 일단 기초적인 주거지는 확보했고, 부장님께 글자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정말 고맙네, 서 대리. 아니, 아니지.”
그는 조금 멋쩍은 듯 말했다.
“이제 회사 사람도 아니니, 서 대리라고 하는 건 맞지 않겠지? 뭐라고 부르는 게 좋으려나···.”
“···그냥 이름으로 불러 주십시오.”
“고맙네, 서은현이.”
나는 호칭을 정하고는, 그와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다.
“이만한 돈을 바로 구할 수 있던 건, 제가 그 숲에서 캐온 약초들을 팔아서입니다. 약초가 전부 떨어지면 의식주에 문제가 생길 텐데, 생계수단을 알아봐야 합니다.”
“어떻게 생계를 이어 가야 하려나··· 그래, 약초를 팔아서 은을 사고, 장사를 해 볼까?”
확실히.
기초 자금이 두둑한 지금이라면, 나름 중견 기업의 부장이었던 김영훈의 능력으로 입에 풀칠할 수 있을 정도로는 장사를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런 걸로는 안 돼.’
기왕 회귀를 한 것.
할 거면 조금 더 높은 곳을 노려 봐야 하지 않겠는가.
‘김영훈 부장은, 무공의 천재(天才)다.’
저잣거리에서 파는 삼류 차력용 무공을 몇 개월 만에 대성해서 강력한 무인이 되고,
차차 고급 무공을 배워서 결국 연국 무림계의 천하제일인에 오를 정도로.
그런 그에게, 처음부터 고급 무공을 가르치면 어떻게 될까?
‘천하제일도(天下第一刀)의 탄생을 30년은 앞당길 수 있어···!’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최대한 받아먹을 거다.
“부장님, 이 곳은 무림(武林)과 무공(武功)이 실존합니다.”
“음···!”
“그런데, 그런 곳에서 순진하게 장사만을 하다가, 무림 문파 간의 경쟁에 언제 휩쓸릴지도 모르지요. 하니, 최소한의 호신(護身)을 위한 무공쯤은 배우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그는 어쩐지 상기된 얼굴로 내게 물어 왔다.
“하, 하지만 무공이란 건 외인에겐 문외불출(門外不出)일 텐데 어찌 우리가 쉽게 배울 수 있겠나?”
무공을 배운다는 말을 듣자, 김 부장은 무협지에서 쓰일 법한 단어를 쓰며 눈을 빛냈다.
“아까 약초 한 뿌리에 은을 열다섯 덩이나 받았잖습니까.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건 없지 않겠습니까?”
“허험···!”
“물론, 그 전에, 문자부터 익히셔야겠습니다만.”
“흐음···.”
이후, 삼 개월간 나는 약초를 하나 더 팔아서 그걸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김 부장에게 말과 문자를 가르쳤다.
그 역시 생뚱맞은 세계에 떨어지고, 사원들과 헤어진 우울감을 학습으로 해소하려는지, 정말 온 힘을 다해 문자와 언어를 익혔다.
동시에 나는 삼 개월간 틈틈이 지난 삶에서 익혔던 삼류 무공인 천지심법의 호흡을 부장에게 건강용 호흡이라며 가르쳤다.
그리고, 삼 개월 후.
“최근 들어 아랫배가 간질간질하단 말이지. 그리고 집에 앉아만 있는데도 힘이 불쑥불쑥 나고 말이야···.”
‘놀랍군.’
나는 김 부장의 엄청난 성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천지심법은 말 그대로 기초 중의 기초 내공심법으로, 내공을 ‘쌓는 것’이 아닌, 단전의 기틀을 잡아 내공을 ‘느끼는 것’에 주안이 잡힌 심법이었다.
일반인은 천지심법으로 체내의 기(氣)를 느끼는 데에 팔 개월이 걸리는 것을, 김 부장은 삼 개월 만에 해낸 것이었다.
‘천지심법을, 대성(大成)해 버렸군.’
동시에 나는 약간 자괴감이 이는 것을 느꼈다.
나는 천지심법으로 기를 느끼게 될 때까지, 약 십삼 개월이 걸렸다.
일반인보다도 한참 둔재인 것이다.
삼류 무공에서야 고작 네 배의 차이이지만, 상승 무공으로 향할수록 나와 그의 재능 차이는 현격히 드러날 것이다.
“···그럼 문자와 언어도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으니, 이제 입문할 문파를 찾아보죠.”
“그러지. 하하, 이제 무공을 배우는 건가···!”
삼 개월 동안 김 부장에게 글자와 말을 가르치며, 나는 연국 서경성 무림 문파에 대한 조사를 해 보았다.
“중요한 문파는 일곱 문파가 있습니다. 참마종(斬魔宗), 계엄사(系俺寺), 월조방(越鳥房), 칠현문(七玄門), 아랑단(牙狼團), 암야회(暗夜會), 투룡보(鬪龍堡) 등이 서경성의 칠 대 문파로 꼽히더군요.”
나는 각 문파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참마종, 계엄사, 월조방, 칠현문 등은 정파로 분류되며,
아랑단, 암야회, 투룡보는 서경성에서 유명한 사파였다.
네 개의 정도 문파와 세 개의 사파 문파를 가리켜, 서경성에서는 사성삼마(四星三魔)라고 부른다 했다.
참마종은 검법과 도법을 주로 익히는 검파였으며, 계엄사는 불가 계통의 종교 문파, 월조방은 하오문 같은 정보 조직이었고, 칠현문은 역사가 깊어 이것저것 많은 무공을 섭렵하고 있었다.
아랑단은 실전 위주의 강맹한 투술을, 암야회는 서경성에서의 불법적인 일을 유통하는 과정에서 발전한 은신술과 신법 등을, 투룡보는 맨손 유술을 주로 익히는 문파였다.
“부장님은 어떤 문파가 가장 마음에 드십니까?”
어차피 김 부장의 재능이라면 어떤 문파를 가더라도 성공할 터다.
김 부장은 한치의 고민도 없이 문파를 정했다.
“참마종! 참마종으로 하지. 무릇 협객이라면 검법(劍法), 사내라면 도법(刀法)이 제격이 아닌가!”
‘지난 삶에서도 첫 무공으로 도(刀)를 집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군.’
좋은 선택이다.
천하제일도를 이뤘던 지난 삶에서의 재림이니.
나는 김 부장과 함께 참마종으로 향했다.
참마종의 본파는 서경성 동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커다란 장원 안에 자리를 잡은 참마종의 안쪽에서는 커다란 기합소리가 수백씩 들려오고 있었고, 입구에는 도(刀)와 검(劍)을 패용한 무사 두 명이 양쪽에서 문을 지키고 있었다.
“정지, 본문에는 어떤 일로 찾아오셨소?”
입구를 지키는 호위 무사들은 우리가 입은 비단옷을 보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이 분은 저희··· 큰형님이신데. 참마종의 명성을 듣고 참마종의 무(武)를 배워 보고자 찾아오셨습니다.”
“흠···.”
문지기의 눈이 김 부장을 향했다.
머리는 반쯤 벗겨졌고, 배가 통통하게 튀어나와 있는 장년인.
“···음, 미안하지만 그 나이에 이르렀으면 무공을 익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오.”
“하하, 그래도 한번 윗분과 대화를 해 보도록 하지요. 단순한 호신용 무공이라도 좋으니까요.”
난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호신용이라고 말이야 했지만, 몇 개월만 지나면 오히려 저 쪽에서 김 부장에게 상 승무공을 배워 달라며 사정을 하게 될 것이다.
문지기들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고는 문을 열어 주었다.
나와 김 부장은 얼마 후 참요당(斬妖堂) 당주(堂主) 허백이라는 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 호신용 무공을 배우고 싶으시다고···.”
“예, 기왕이면 호신용 무공이라도 최대한 좋은 물건으로···.”
나는 허백에게 준비해 온 비단함을 건넸다.
황주삼을 전부 팔아치워 얻은 은괴(銀塊) 스무 개 중 열다섯 개를 넣어 두었다.
허백은 비단함을 열어 은괴를 확인한 후,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험, 험··· 참요당 외문 제자로 넣어 주겠소. 그리고, 원한다면 내문 무공도 두엇 정도는 전수해드리지. 하지만, 엄연히 취급은 외문 제자로 할 것이오. 기부 입문을 했다고 해도 특혜는 없소. 또한··· 외문 제자는 둘 중 한 사람만 받겠소.”
“으음···.”
“흠···.”
김 부장은 생각보다 짠 대우에 인상을 찌푸리고 일어나려 했으나, 나는 그의 어깨를 슬며시 누르며 막고는, 허백에게 포권을 올렸다.
“당주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그 정도라도 충분하지요. 외문 제자로는 저희 큰형님···이 들어가실 겁니다.”
“험, 그럼 잠시 후 외문 제자들이 있는 외인당으로 오시오.”
허백은 거드름을 피우며 나와 김 부장을 두고 가 버렸다.
김 부장은 당황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으, 은현이. 나만 무공을 익히게 되면 무슨 의미인가? 이 정도로 비쌀 줄 알았으면 그냥 다른 문파로 갔어도 되는데···.”
“아닙니다. 부장님이 무공을 익히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요.”
“아니, 젊은 자네가 훨씬 무공을 익히기엔 적합할 텐데···.”
“···전 예전부터 운동은 잘 못 해서 말입니다. 저는 남은 은괴들로 사업을 하며 부장님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이게 제 일이고, 또 제 역할인 겁니다. 부장님은 부장님의 역할을 해 주시면 됩니다.”
“하지만···.”
얼마간 미안한 표정을 짓던 김 부장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 또한 최선을 다해 무공을 익혀서 자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겠네. ···늙은 몸에 제대로 초식이나 익힐 수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자신을 믿으십시오.”
“고맙네···.”
그렇게, 김영훈 부장은 참마종의 외문 제자가 되어, 외문 무공 몇 개와, 기부 입문의 특혜로 내문 무공 셋을 익힐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칠 개월이 지났다.
참마종이 발칵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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