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2화 (2/185)

────────────────────────────────────

1회차의 첫날

“멀쩡히 워크샵 가다가 이게 무슨 일인가···.”

머리가 반쯤 벗겨지신 김 부장님은 주변을 둘러보며 일어섰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이 시점이 어디인지를 떠올렸다.

‘첫날! 이 기이한 세상에 떨어진 첫날이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경위도 떠올렸다.

‘SUV를 타고 워크샵을··· 가다가, 산사태··· 산사태에 휘말려서··· 그리고··· 갑자기 뭔가 번쩍했던 것 같은데···.’

자그마치 50년 전의 일이라 그런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제대로 기억은 안 난다.

“이봐, 서 대리.”

‘회귀했으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서 대리.”

‘보통 회귀물을 보면, 미래 지식으로 잘 먹고 잘 살던데. 내가 아는 미래 지식은··· 주 씨네 딸이 30년 뒤에 태어난다, 그런 작은 일들밖에···.’

“서은현 대리!!!”

“핫, 전 과장님. 죄송합니다. 잠시 당황했어서.”

나는 전명훈 과장의 고함에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서 대리.

하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직급이라,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보는 저 얼굴을 떠올렸다.

전명훈 과장.

전명훈.

내가 다니던 회사, SJD 컴퍼니의 전무 전명철의 조카.

나이는 나보다 3살 많은 32살 주제에, 낙하산으로 벌써 과장 자리를 꿰찬 녀석이었다.

‘50년 전에는 상당히 싫어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5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얼굴이라 생각하니 굉장히 반갑다.

어찌 되었든 50년 만에 다시 보는 고향 동포가 아닌가?

잘 지내 보자,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짜악!

전 과장이 갑자기 내게 따귀를 날렸다.

“서 대리! 이 개새끼야, 차 운전 똑바로 안 해!!”

“아···.”

나는 멍하니 따귀를 맞고, 방금 전 머릿속에 떠올렸던 고향 동포 같은 생각을 싹 지워 버렸다.

잊고 있었다.

이 놈은 개새끼다.

“이 새끼, 너 때문에 이게 뭐야! 조난당했잖아! 이, 이 새끼가···!”

전명훈이 화가 나서 내게 달려들려 할 때였다.

오 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말렸다.

“이보게, 그만하게. 그 산사태는 뭐 서 대리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잖나.”

내 기억으로 차차 50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래, 나는 분명··· 회사 SUV를 운전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차장님은 화도 안 나십니까! 서 대리 저 자식이 졸음운전 해서 이 사단이 난 거 아닙니까! 여기는 또 어디고, 우리 SUV는 또 다 어디 갔고! 우리, 저놈 때문에 조난 당한 겁니다!”

그리고, 나는 그래.

분명 졸음운전을 했다.

‘그런데, 졸음 운전을 했던 이유가···.’

전명훈.

저 자식이 내게 워크숍 하루 전 자기가 미뤄 논 업무를 내게 짬을 맡겨 놓아서, 밤을 새웠어서였다.

“졸음운전을 할 거면, 남한테 운전대를 넘기든지 했어야지!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이야!”

그리고, 또 생각해 보니.

‘원래··· 운전 담당은 전명훈 아니었나.’

그렇다. 원래 운전 담당은 전명훈이었었다. 하지만 전명훈이 뒷자리에서 여직원들에게 작업을 걸겠답시고, 나를 반강제로 운전대에 앉혀 놨었다.

“저 답답한 새끼 때문에! 우리가! 조난 당한 거라고요!”

아.

점차 50년 전의 기억이 똑똑히 살아난다.

그때는 하도 당황했고,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전명훈에게 사죄를 했었다.

나 자신도 내가 잘못한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50년 전의 이 기억을 찬찬히 되돌려보니.

‘전명훈 저 새끼··· 양심이나 수치심 같은 걸 아예 느껴본 적이 없나?’

나는 분명 몇 번이나 전명훈, 혹은 여직원들에게 잠시 운전대를 잡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하지만 전명훈 저 자식이 자기도 운전대를 안 잡을 거면서,

여직원들도 운전대를 잡지 못하게 했었다. 내가 야간 작업 때문에 졸릴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고 대리인 내가 차장, 부장님한테 운전대를 잡아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졸린 몸을 이끌고, 전명훈에 의해 쉬지도 못하고 네 시간 동안 차를 몰아야 했었다.

그리고···.

“저··· 전 과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꼴에 입은 있다고. 그래, 서 대리 때문에 우리 지금 조난 당했으니까 양심이 있으면 사과는···.”

“미친 듯이 졸리긴 했습니다만. 제 기억으로 저는 커피로 수혈하면서 끝까지 차를 제대로 몰았었고. 산사태 날 때도 제가 피해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너무 커서 피할 틈도 없이 그대로 차가 휩쓸렸던 겁니다.”

분명, 나는 앞에서 흙이 떨어지길래 황급히 차를 멈춰 세우고 후진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산의 일면이 거의 통째로 무너지다시피 무너졌고, 내가 아무리 피해 봤자 피할 수 없었던 재해였었다.

“전 과장님 화나신 거 알겠습니다만. 지금 누구 탓할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자식이··· 지금 누구 앞에서 훈계질이야! 지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거 같은데···.”

“후···.”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회귀를 몰랐던 지난 삶.

나는 50년 동안 악착같이 살면서 참는 법을 배웠다.

강한 도적 떼가 나를 짓밟고 돈을 빼앗을 때 참는 법을.

흉악한 무림인이 내게 모욕을 줄 때 참는 법을.

지방 관리가 내게서 있는 것 없는 것 전부 빼앗아 세수를 징발할 때 참는 법을.

그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들 앞에서, 참는 것은 진리이다.

하지만.

“야.”

“뭐, 뭐? 야? 서은현 이 새끼가 지금.”

감당할 수 있는 것 앞에서 괜스레 허리를 숙이는 것은,

사내대장부가 아니라는 법 역시 배웠다.

“내 잘못 아니라 했잖냐. 적당히 해라.”

“차장님, 이거 놓으세요. 이 새끼가 진짜···!”

퍼억!

전명훈이 내게 달려와 얼굴을 후려쳤다.

그러나, 나는 얼굴을 맞자마자 녀석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 그대로 박치기를 박아 버렸다.

뻐어억!

“끄아악···!”

지난 삶.

무림인에게 몇 번을 맞았을까.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산적을 만나 얼마나 맞았을까.

흉년에 도적 떼가 들었을 때 어떻게 맞았을까.

맞고, 맞고, 또 맞아 왔다.

그 무식한 폭력 속에서, 나는 지금의 전명훈과 다른 이들에겐 없는 것을 하나 체득할 수 있었다.

폭력.

퍼억!

퍽!

뻐억!

첫 박치기가 통하자마자 나는 사정없이 달려들어 전명훈을 두들겨 팼다.

“억, 잠깐, 잠깐···!”

“이, 새끼가,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사람을 때릴 때.

얼굴을 때리면 맞는 사람은 그 공포감이 어마어마하다.

주먹에 의해 가려지는 시야, 그 사이에 오는 고통.

그리고 무자비하게 때리는 상대에 대한 공포.

나는 전명훈의 시야를 가릴 겸, 녀석의 눈 주변을 주먹으로 두들겨 팼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면, 입이라도, 닫고 있던가!”

한 대 때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있었던 전명훈에 대한 앙금들이.

시원하게 풀리는 듯했다.

50년이나 지났지만, 사내에서 전명훈이 내게 주었던 악랄한 괴롭힘들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잘, 잘못, 잘못했···.”

“후우···.”

그 오만한 전명훈의 입에서 사과가 나올 때쯤, 나는 구타를 그만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김 부장, 오 차장, 강 대리, 오 대리, 김 주임···.

모두가 두려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김 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해 왔다.

“서, 서 대리. 아무리 그래도 같은 사내 동료를 그 정도로···.”

“네,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순간 너무 욱해서 그랬습니다. 다들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그리고 어쨌든 운전자는 저였기에, 그때 조금 더 분발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사과드립니다.”

나는 깔끔하게 김 부장과 다른 직원들에게 허리를 숙이고, 사과했다.

사실 어차피 이 중에서 김 부장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아무도 볼 일이 없다.

하지만, 김 부장만큼은 결국 보게 된다.

‘그리고, 김 부장은 무공만 배우면 천하제일인에 도달할 사람이지.’

물론 범인들의 세상인 무림계 안에서지만.

내가 회귀를 했다 하더라도, 나는 괜스레 수도 문파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접었다.

‘수도 문파는 무슨. 난 영근이 없다.’

영근, 혹은 영질, 영통이라고도 불리는 것.

그것이 없다면 수도공법을 익히는 것도, 수도자들의 익히는 영력을 감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이번 생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저···.

‘저번 생보다, 조금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조금이라도 생기길 바라는 것.’

저번 생에서의 김 부장은, 무공을 익히고 나간 후.

아주 가끔 나를 찾아와서 술이나 한잔하고 가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절정고수에 오른 후에는 아예 찾아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다.

‘김 부장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면, 나에게 콩고물이라도 조금 떨어지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그에게 잘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 다들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전 과장이 너무 밀어붙인 것도 있지. 물론 그래도 서 대리 역시 너무 과하게 반응했어. 사과하게.”

“예, 부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나는 김 부장에게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인 후, 전 과장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전 과장님. 제가 너무 과격했습니다. 정말 사과드립니다.”

“너··· 이 새···.”

내가 다시 저자세로 나오자, 전명훈은 다시 기가 살았는지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내 눈빛이 서슬 퍼렇게 변하자, 결국 나와 눈을 피하고 입을 닫아 버렸다.

“그나저나 일단 숲속 같은데, 일단 걸어서 빠져나가 근처 마을이라도 찾아보는 게 어떤가?”

김 부장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하늘은 주홍빛으로 물들어, 곧 해가 질 것 같았고 바람도 쌀쌀해지고 있었다.

분명 상식선에서라면 김 부장의 말이 맞다.

하지만, 이곳에선 이제 기존의 상식은 버려야 한다.

‘수도자들이 신선이 되어 영생을 얻기 위해 날아다니고. 무림인들이 부와 명예를 위해 칼부림을 하는 세상.’

그것이 이 세계다.

그리고, 우리가 떨어진 이 숲은···.

나는 50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숲의 이름을 생각해 냈다.

‘등선향(登仙鄕).’

수많은 요수와 영수, 수도자들이 비승(飛昇) 하기 가장 좋다고 하는,

천지영기가 가장 많이 모인다는 비지였다.

등선향 인근에는 그 어떤 마을도, 도시도, 국가도 없다.

그러므로, 김 부장이 하려는 일은 무의미했다.

오히려 지금 더욱 중요한 것은.

‘곧 밤이 된다. 불을 피워야 해.’

나는 상념을 마치고 김 부장에게 말했다.

“부장님, 통화는 됩니까?”

“끄음··· 아무래도 신호가 먹통이군.”

“제 생각에는 신호가 먹통이면 구조도 힘들고, 저희 위치를 아는 것도 힘들 것 같습니다. 곧 밤이 되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마을을 찾는 것보다··· 오늘 밤은 여기서 묵을 준비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지금껏 닥치고 있던 전 과장이 조용히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업니까. 서 대리. 오히려 밤이 되면 위험하니 더더욱 마을을 찾아야지···요.”

“흐음, 제 생각에는 함부로 움직이는 게 더 위험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나는 근처에 있던 나무 중 높은 나무를 가리켰다.

“저 나무 위에 올라가서 근처에 마을이나, 혹은 도로라도 있나 한 번 보고 오지요. 근처에 아무것도 없다면 제 말대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 나무를··· 올라가라고? 누가 올라갈 거···업니까. 서 대리님입니까?”

“흠, 뭐. 저 밖에 나무 탈 줄 아는 사람이 없으면 그러지요.”

난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곤 근처에서 가장 높은 나무의 줄기를 잡고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이전 산에서 약초를 캐다 멧돼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때, 죽기 살기로 근처에 있던 튼튼한 나무로 올라간 적이 있었다.

현대인들은 평소에 나무를 올라갈 일이 없지만,

회귀 이전의 삶에서 온갖 난항을 겪었던 나는 손쉽게 큰 나무 위로 올라갔다.

“뭐가 보이나! 서 대리!”

저 아래에서 김 부장이 소리쳤다.

예상대로, 근처는 끝없이 펼쳐진 수해(樹海)였다.

도로나 마을은커녕 인간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요괴나 영물이 저 나무들 사이로 득시글거리지.’

나는 나무 위에서 소리쳐 대답하는 대신, 얼마간 자세히 주변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고 나무 아래로 다시 내려갔다.

“하하, 서 대리. 정말 나무를 잘 타는군. 족히 11미터는 되어 보이는 나무인데.”

“그나저나 이 나무는 무슨 종이지? 국내에서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김 부장이 내 어깨를 두들겨 주고, 오 차장이 내가 올라갔던 나무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손을 털며 본 것들을 말해 주었다.

“주변에 도로나 마을 같은 건 없습니다.”

“허어, 이상하군. 산사태에 휩쓸려서 이곳까지 왔다곤 해도, 근처에 고속도로가 있어야 정상일 텐데···.”

김 부장은 이상하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었고, 전 과장은 의심하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서 대리··· 제대로 보고 온 것 맞···습니까? 혹시 일부러 아무것도 없다고 한 건 아니겠지···요?”

“제가 미쳤다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저도 인가에서 편히 자고 싶지 숲속에서 노숙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 못 미더우시면 전 과장님이 올라가서 보시면 됩니다.”

내 말에 전명훈은 똥 씹은 듯한 얼굴로 물러섰다.

“제 생각에는 주변 탐사를 하더라도 우선 근거지를 만들어 놓고, 불이라도 피워 놓은 다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곧 밤이니까요.”

“맞는 말일세. 그럼··· 아, 우리 SUV도 찾아보지. 차 타고 산사태에 휩쓸렸는데, 상식적으로 근처에 우리 차가 없을 리가 없지.”

김 부장은 손바닥을 탁 치며 말했다.

하지만···.

‘이 곳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니까···.’

우리가 타고 왔던 SUV는 없다.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차를 찾아서 거기서 자는 건 어떤가? 차에는 워크샵 간다고 챙겨 놓은 물품들이 꽤 많으니까···.”

이번 워크숍은 사실상 소풍이나 다름없는 워크숍이었다.

때문에 캠핑용 도구나, 음식들이 SUV 안에 잔뜩 쟁여져 있었다.

하지만, 차는 없다.

‘물론 내가 회귀해서 아는데, 차가 없다고 말해 봤자 안 믿겠지.’

괜히 설득하느라 기운을 빼느니, 그냥 찾아보게 두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럼 팀을 나누죠. 한 팀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묵을 만한 곳을 찾고, 한 팀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차를 찾는 겁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다시 이곳으로 모이죠.”

나는 팀을 나누자는 의견을 내었다.

묵을 곳을 찾는 팀에는 나, 오 대리, 김 주임이 들어왔고.

자동차를 찾는 팀에는 김 부장, 전 과장, 오 차장, 강 대리가 들어갔다.

우리는 서로 나뉘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서 대리님. 묵을 곳이라고 했는데, 보통 그런 곳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

오 대리가 조심스레 물어 왔다.

아무래도 내가 전명훈을 두들겨 팬 것 때문에 조금 껄끄러운 것 같았다.

“산이나 숲에서 노숙은 위험합니다. 들짐승이나 산짐승이 습격할 수도 있고,

또 그렇다고 아무 곳에나 불을 놓으면 산불이 날 수도 있습니다. 제일 좋은 건 아마, 작은 동굴이겠죠. 아, 저런 곳요.”

“어머, 동굴이네?”

“바로 발견했네요? 운 좋다!”

물론 50년 전에 찾아갔던 동굴로 내가 자연스레 유도했던 것이다.

‘지난 삶에서는 몇 시간이나 헤매서 간신히 찾아낸 안식처였지.’

오 대리와 김 주임이 보기엔 운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지난 생에서도 안에 위험한 것도 없고, 머무르기 딱 좋았었지.’

나는 동굴을 보고는 근처에서 나뭇가지나 나뭇잎 같은 부스럼들을 긁어모았다.

“아, 서 대리님. 불 피우시려는 거예요?”

“불은 아니고, 산짐승이 밤에 덮쳐 올 수도 있고, 밤바람이 찬 것도 있으니까 입구에 바람막이를 만들려고요.”

나는 큰 나뭇가지와 작은 나뭇가지들을 엮어서 순식간에 동굴 입구를 요새처럼 덮어 버렸다.

김연 주임과 오혜서 대리는 놀랐는지 작게 탄성을 터트렸다.

“와아··· 서 대리님 능력자셨네요.”

“보이스카웃 같은 거 하셨나요?”

“아, 뭐··· 비슷하죠.”

보이스카웃이 아닌, 50년에 걸친 올드스카웃이겠지만.

“불은 어차피 이따가 김 부장님 라이터로 붙이면 되니까. 모닥불용 장작이나 모아볼까요?”

“어머, 완전 어릴 때 수련회 와서 했던 것 같아요.”

“맞아, 맞아. 그때 같다.”

두 여직원은 싱글벙글 수다를 떨며 나와 함께 장작으로 쓸 만한 검불이나 나뭇가지를 모았다.

얼마 후.

해가 질 때가 되었다.

“이제 슬슬 아까 공터로 가 보죠. 네 분도 그쪽으로 모이실 테니까요.”

“그래요~”

“네~”

나는 두 여직원과 함께 처음 떨어졌던 공터로 향했다.

얼마 후, 우리는 김 부장, 오 차장, 전 과장. 그리고 강 대리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SUV는 찾으셨나요?”

“···.”

김 부장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 차장과 전 과장 역시 얼굴에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강민희 대리 역시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아무 데도 없어요.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찾아봤는데, 하늘로 솟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더라고요. 아니, 상식적으로 차 타고 산사태에 휩쓸렸는데, 왜 우리는 빠져나와 있고. 차는 사라진 거죠?”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숲이 공포스럽기라도 한 듯.

“···어쩔 수 없죠. 일단 제가 하룻밤 지낼 만한 곳을 만들었는데 그쪽으로 가서 묵죠. 나머지 자세한 탐사는 내일 해 보는 걸로 하고요.”

“···그래요.”

나를 제외한 여섯은 침울한 표정으로 나를 따라 동굴로 왔다.

“어머, 이게 뭐야?”

“서 대리님이 만들어 놓으셨어요.”

“허, 서은현이 능력자로구만. 자연인 생활이라도 해 봤나 본데?”

강민희 대리는 내가 만들어 놓은 바람막이 겸 동굴 문을 보며 놀랐고,

오현석 차장은 작게 찬탄성을 터트리며 나를 칭찬해 주었다.

김 부장 역시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전명훈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기색이었으나, 피곤했는지 아무 말 없이 들어왔다.

“부장님, 라이터 좀.”

“아, 그래.”

김 부장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내가 모아 놓은 검불에 불을 붙였다.

우리는 동굴 안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둥글게 둘러앉았다.

연기는 내가 만든 바람막이에 난 구멍으로 딱 맞게 새어 나갔다.

“허어··· 어떻게 된 일인지, 거 참.”

“이게 상식적으로···.”

“···.”

모두 걱정되는지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꼬르륵

김연 주임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니, 그게···.”

“하하, 괜찮네. 다들 저녁은 못 먹었으니까···.”

나는 씨익 웃으며 나뭇가지를 모을 때 따 놨던 나무열매들을 건냈다.

“다들 배고프실 텐데. 이거 드셔 보세요. 아까 딴 겁니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 맞나? 독 있는 거 아니야?”

전명훈은 긴장이 풀렸는지, 다시 말을 놓고 나를 쏘아보며 물었다.

나는 싱긋 웃으며 열매를 까서 입에 넣었다.

“어렸을 때 약초학을 배운 적이 있어서요. 뭘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는 압니다.”

‘어렸을 때’라는 말에 어폐가 약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예전에 배운 건 맞으니까···.

내가 스스럼 없이 나무열매를 먹자, 김 주임도 조심스레 열매를 까서 먹어 보았다.

“와, 이거 꼭 생밤 같다.”

“오독오독 씹히죠? 많이 따 왔으니까 다들 드세요.”

그 모습을 보며 김 부장과 오 차장 역시 헛기침을 하며 내가 따 온 열매를 먹기 시작했다. 강 대리와 오 대리 역시 신나게 열매를 까먹었다.

오직 전명훈만이 못마땅한 듯이 나무열매들을 바라보다가, 피곤하다고 하며 먼저 드러누웠을 뿐이었다.

“하하, 이거 참. 심각해야 할 상황인데 우리 서 대리 덕분에 재밌게 보내는군.”

“내가 회사에서도 알아봤다니까. 얼마나 근면한가? 그, 서 대리가 운전하면서 피곤했던 것도 내가 알기로 바로 전날에 야간 근무했던 것 때문인 걸로 아는데···.”

“우리 대리님 완전 부지런하시죠~”

“아, 서 대리님 덕분에 캠핑 온 거 같네요.”

“그러게요.”

우리는 모두 화기애애하게 그날 밤을 보냈다.

나 역시 한껏 웃으며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건,

오늘 밤이 마지막일 테니까.

***

다음 날 아침.

나는 새벽 공기를 맡자마자 누구보다 일찍 눈을 떴다.

50년 전의 기억이 점차 생생히 기억난다.

‘첫날, 밤새도록 숲을 헤매다 겨우 동굴을 찾아서 기절하듯이 쓰러지고 난 다음 날. 아침부터 그것이 찾아왔었지.’

50년이나 지났지만, 그때의 공포와 충격, 그리고 고통은 끔찍할 만큼 생생하다.

나는 동굴 바깥의 바람막이를 열고 나갔다.

새벽 동이 트기 전이다.

나는 근처를 돌아다니며 통증과 지혈에 좋은 약초들을 캐냈다.

등선향이라 불리는, 영기가 충만한 숲이라 그런지 약초들의 상태가 어마어마하게 좋았다.

이건 차라리 영초(靈草)라고 해야 맞으리라.

그리고, 얼마간 동굴 앞에서 기다렸을까.

이 영역의 주인이 찾아왔다.

펄쩍!

집채만 한 덩치.

꼬리는 세 개였으며, 시퍼런 안광을 타오르듯이 흘리는 그것은,

새하얀 털을 가진 여우였다.

덜, 덜덜··· 덜덜덜···.

영역의 주인이 가진 위압감, 그리고 50년 전 당했던 일들.

그것들이 떠올라 몸이 절로 공포에 떤다.

하지만, ‘미래를 겪어 보았다’는 건 그 자체로 엄청난 이득이었다.

“수, 수, 숲의, 주인께. 인사. 올, 올립니다.”

난 절로 떨리는 턱을 짓씹으며, 천천히 여우에게 절을 올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숲의 주인을 만나면 올려야 하는 삼배이다.

이층집만 한 크기의 여우는 시퍼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독특한 향기를 지닌 인족이구나. 내 수천년을 살아왔음에도 너희 같은 향기를 지닌 인족을 본 바가 없다.]

“···.”

딱, 따닥, 따다닥···.

앞으로 저 괴물 여우가 할 짓에, 절로 턱이 떨려왔다.

그때였다.

여우의 인기척에, 자고 있던 이들이 깨어났다.

김 부장, 오 차장, 강 대리, 전 과장, 김 주임, 오 대리 등이 차례로 동굴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수순은 당연했다.

“꺄아아악!”

“괴, 괴물!”

“괴물이다!”

그 말에, 괴물 여우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커다란 두 눈을 흘겼다.

[너희 하찮은 인족은 볼 때마다 몽매한 지능과, 끔찍한 무례함을 가진 듯싶구나. 본래대로라면 전부 사지를 하나 뽑아 버렸겠지만···.]

덜, 덜덜···.

[너희 중 하나는 숲의 주인을 대하는 예를 아는 것 같기에 용서하마.]

괴물 여우의 시선이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절을 올렸던 내게 닿았다.

“저, 전부! 숲의 주인에게 예를 취하십시오! 이, 일단 빳빳하게 서 있지 말고 앉으십시오!!”

내가 소리치자, 다른 이들은 멍하니 서 있다가도 얼떨결에 나와 같이 무릎을 꿇었다.

여우의 눈이 내게 닿았다.

[예를 아는 인족이로다. 하여 함부로 벌을 내리지는 않겠으나··· 너희에게 나는 향기가 너무나도 독특하구나···.]

뚝, 뚝···.

여우의 입가에서, 끈적한 액체가 흘렀다.

침이다.

[너희 중 하나의 팔다리. 하나만 맛보게 해 다오. 하면 너희가 내 영역에 잠시 머무는 것을 허하겠다.]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