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그토록 원하던 그 빌어먹을 신에게 갔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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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그토록 원하던 그 빌어먹을 신에게 갔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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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그토록 원하던 그 빌어먹을 신에게 갔으면 좋겠네.
2023.07.13.
“죽기 직전이거나, 시체 같은 몰골이더군.”
크라이어의 신랄한 평가는 더도 덜도 아닌 딱 사실 그대로의 감상이었다.
그레타는 단기간에 살이 지나치게 많이 빠져 옷으로도 감춰지지 않을 만큼 뼈가 불거져 있었고, 얼굴은 잿빛이었으며 간헐적으로 코에 피가 비치기도 했다.
적의 약화는 기뻐할 만한 소식이었지만, 올리비아는 전혀 신나지 않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눈빛만 보면 여하간 큰일이 나겠어. 아니, 큰일을 칠 거 같아.”
장례 송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그레타의 살의 어린 시선이 빼곡히 박혔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찜찜하고 오물이 묻는 느낌에 기분이 더러웠다.
올리비아의 뺨이 굳고 눈꼬리도 서서히 위로 치켜 올라가자 크라이어가 한 가지 제안했다.
“오늘 밤에라도 가서 물어볼 수 있다만.”
올리비아는 전혀 받아들이고 싶지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제안이었다.
“그럼 그렇게 해. 라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 저 여자에게 갔다가 당신이 다신 돌아오지 못할 거 같아서 말이야.”
그레타에게 눈을 주지 않으려고 보니타의 관만 노려보는 올리비아는 진심이었다.
저런 몰골에 저런 눈빛? 크라이어가 자진해서 다가가면 저처럼 바짓가랑이를 잡는 게 아니라 발목을 물어뜯어서라도 놓아주지 않으리라.
그럴듯한 근거나 복잡한 추리 같은 것도 필요 없었다.
그저 올리비아는 알았다.
저건 전쟁터에서 흔하게 보던 정말로 확 돌아버린 눈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 옆에 꼭 붙어 있어. 저 여자 근처에도 가지 말고.”
그녀의 강경한 말에 크라이어는 칼로 후비는 통증이 일어나는 낙인의 고통을 기꺼워하며 수긍했다.
이윽고 시간은 많았지만, 허술하게 준비된 장례식에도 끝이 다가왔다.
“……하여 신의 품으로 돌아가심을 기쁘게 여기시고…….”
“어느 신에게 돌아갔는지 모르겠지만, 그토록 원하던 그 빌어먹을 신에게 갔으면 좋겠네.”
송사의 마무리를 듣는 올리비아가 작게 빈정거리자 크라이어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눌러 참아야만 했다.
“황녀 전하. 이쪽으로 와 주십시오.”
송사가 모두 끝나고 이제 관 위로 흙을 덮기 전, 이번 장례식을 갑작스럽게 떠맡게 된 탓에 지금도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후작 가문의 방계가 올리비아를 찾았다.
그녀는 가장 먼저 준비된 하얀 국화를 집어 들고 182.88cm 땅 아래에 자리한 관을 내려다보았다.
더 이상 어떤 감상도 없이 올리비아는 들고 있던 국화를 미련 없이 툭 던져 넣었다.
이로써 몇 번의 회귀 전부터 지금까지 빌어먹을 신을 위해 제국과 대륙, 인간을 저버린 자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리고 나머지도 역시 이렇게 땅에 처박혀 영영 나오지 못하게 되겠지.
아니,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야지.
직선으로 이루어진 올리비아의 치맛자락이 펄럭이며 관을 지나치자, 사람들은 그 뒤를 이었다.
모두가 헌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데도, 그레타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레타의 시선 역시 올리비아가 나타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에게 박혀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눈에 띄기만 해도 얼굴을, 저 입술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건만.
정작 올리비아는 자신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레타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했다.
더해서 저 저주스러운 빨간 머리 곁을 지키는 크라이어가 야속했지만, 그런데도 그를 손에 넣고 싶다는 마음만은 더 강렬해졌기에 고통스러웠다.
어느샌가 벌어진 그레타의 입술 사이로 핏물이 번진 이가 드러나고 짐승의 울음과 비슷한 소리가 울렸다.
혹자는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라고 가질 수 없는 사랑의 좌절과 분노를 표현했다.
하나, 그레타는 아무리 절규하고 분노하더라도 그런 발상은 절대로 떠올리지 못했다.
신의 선택을 받은 첫 번째 전사를 어찌 자기 손으로 해하겠는가.
그러니 그의 배신에 문자 그대로 뼈가 갈리고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이 배가 되더라도, 크라이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저 여자. 황녀. 볼셰이크의 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니, 용서할 필요가 없었다.
호위, 호위, 호위! 그놈의 호위라는 명목으로 크라이어 님을 강제로 제국으로 데리고 온 여자.
-뿌드득.
이를 부술 듯이 갈아붙이는 그레타의 눈은 시뻘겋게 물들었고, 속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신의 의지다. 신의 불이요, 신의 정화다.
황녀는 그 어느 것보다 고통스럽고, 처참하지만, 영광된 피를 뿌리게 되리라.
신경을 긁는 이가는 소리와 함께 드문드문 번진 핏자국 외에는 무채색인 그레타의 입술 사이로 허연 입김이 새어 나왔다.
그녀의 속에서는 큰불이 정수리까지 닿을 만큼 크게 타올라서 온몸이 뜨거울 법도 하건만, 지독하게 추웠다.
그리고 그런 그녀와 꽤 먼 거리에 있는 올리비아는 황제의 명대로 귀족들의 징징거림을 적당히 받아주고 있었다.
“그러니 폐하께 이 부분을 좀 제대로 설명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말한 그대로라면 폐하께서도 시간을 내주시리라 믿소. 자, 그러면 이만 가야 할 시간이로군.”
저를 잡으려고 눈치싸움을 하는 이들을 아주 간단히 뿌리친 올리비아는 숫제 제 등을 뚫어 죽일듯한 살기 어린 시선에 흘러나오는 헛웃음을 삼키며 느릿하게 마차로 향했다.
“그레타가 결심한 큰일이 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암살 시도는 올 거 같아.”
허탈한 웃음기가 섞인 농담에 크라이어는 별다른 답 없이 그녀의 모자를 벗겨냈다.
“응?”
“비가 올 거다.”
그가 올리비아의 머리 위에 로브를 씌우기 무섭게 빗방울이 후둑,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입에서는 김이 나오도록 시린 날이었지만, 누군가는 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유달리 따뜻한 날이었다.
***
하인데르 후작의 장례식이 열렸던 날 이후, 후작 가문은 내부가 안정될 때까지 문을 걸어 잠갔고 시간이 흘렀다.
큰 사건 사고 없이 여느 때와 같이 흘러가는 일상을 보내는 이들은 오늘도 더딘 아침을 깨우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그런 이들보다 더 일찍 더 격하게 움직이는 황실 기사단은 이미 새벽 훈련을 끝내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던 참이었다.
“케슬란. 어이, 케슬란 못 봤어?”
“저기 가고 있네.”
“아 그렇군. 케슬란! 이봐!”
이 정도면 돌아보겠거니 하면서 소리를 조금 높여 불렀지만, 그는 전혀 듣지 못한 듯 일정한 보폭으로 멀어졌다.
“어라, 못 들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이제는 꽤 멀어진 케슬란의 뒤통수에 대고 그를 불렀던 기사단의 동료는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그의 곁으로 파란 머리가 바짝 다가섰다.
“아 이런 씨! 왜 이렇게 붙어?”
“그렇지? 못 들을 리가 없는데 그냥 무시하고 간단 말이지.”
“무슨 소리야.”
“케슬란 말이야. 전부터 그러더니 요즘 더 심해졌더라고. 불러도 답을 안 하질 않나,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멍하게 있질 않나.”
너무 가까운 파란 머리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낸 동료가 투덜거렸다.
“그거야 네가 쓸데없는 소릴 하니까 그렇지. 나도 네 말의 반은 넘게 걸러 듣는다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 늦었네. 난 간다.”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저으며 동료가 떠난 자리에 혼자 남은 파란 머리가 눈 사이를 잔뜩 좁히며 케슬란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야. 눈은 또 왜 그렇게 뜨고…….”
그 무렵,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 목적지를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 케슬란의 얼굴은 평온했다.
지나치게 평온해서 기묘할 만큼 그의 걸음은 올발랐고,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와 잠시 스치며 묵례하는 이들은 그가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 건가? 라는 짧은 생각과 함께 지나칠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케슬란이 우뚝 멈춰 섰다.
-똑똑.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노크한 그는 허락이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열린 문 너머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했지만, 케슬란의 표정은 문을 열기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그 얼굴 그대로 문을 착실하게 닫고, 코피를 흘리면서 피를 토해내는 그레타에게로 향했다.
“커, 커헉. 커허헉.”
보통 사람이 본다면 기겁할 정도로 많은 피를 토해내는 그레타와 두 걸음 거리로 가까워진 케슬란은 그대로 멈춰 섰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기에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관심 없는 것 같기도 했고,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후…… 후으후으.”
그후로도 몇 분간 더 피를 토해낸 그레타는 일어날 힘이 없어 주저앉은 채 그대로 있었지만, 티슨과 케슬란 둘 중 누구도 그녀를 부축하거나 손수건을 건네지 않았다.
얼마간 혼자 헉헉거리며 입에 고인 핏물을 뱉어내고 턱에 흐른 피를 닦은 그레타가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왔구나.”
“네.”
반말을 내뱉으며 대충 손을 휘적이는 그레타를 향해 케슬란이 입만 벌려 답했다.
그 모습이 목재를 재료로 한 되다만 인형 같아서 소름 끼쳤지만, 티슨은 아예 관심이 없었고 그레타는 오히려 즐거워했다.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해 봐. 오늘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의 일도.”
황실 기사 중 큰 신임을 받는 케슬란의 입에서 결코 나와서는 안 될 내밀한 정보가 쏟아졌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레타는 그런 정보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그런 질문으로 얻으려고 했던 건 케슬란이 제 말을 그 어떤 거부 없이 즉시 시행하느냐, 마느냐 여부였기 때문이다.
케슬란이 입을 다물자 그레타는 흡족한 얼굴로 그를 향해 손짓했다.
그녀 앞에 무릎을 꿇은 케슬란이 눈을 한번 깜박거리자, 그레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늘이 마지막이 되어야 할 텐데.”
이 이상 힘을 쓰다가는 정말로 몸 어느 부분이 떨어져 나가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 멈출 생각은 없다. 멈출 거였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
황녀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열망이 신의 힘을 쓰고 갚아야 할 대가에 대한 불안을 순식간에 잠식했다.
그레타는 케슬란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안을 헤집고 또 헤집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입술 사이로 기이한 음율을 가진 언어가 흘러나와 케슬란의 헤집어진 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케슬란이 이 방에 들어서고 몇 시간이 흘렀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