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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신의 입을 찢으면 어떻게 될지 알아보러 갔다 올게. (121/146)


#121. 신의 입을 찢으면 어떻게 될지 알아보러 갔다 올게.
2023.05.22.



“전하, 저 앞에 있습니다.”

“들렸어?”

이렇게 작게 속삭였는데? 라는 뒷말을 듣지 않아도 알아챈 아이작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들립니다. 주인님께서 공격하시기 직전에 속삭임으로 방향을 알려 주셨거든요. 듣지 못하면 그대로.”

제 목을 손날로 슥 긋는 아이작을 향해 굉장히 안타까운 시선을 던진 올리비아가 목을 가다듬었다.


“그래. 음. 당장 푹 쉬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니요! 보고 하겠습니다. 하고 말고요! 저 정말 최선을 다했단 말입니다!”

이제까지 힘이 모자라 꽤 작은 소리만 내던 아이작이 갑작스럽게 큰소리로 외쳤다.

그 기세에 밀린 올리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빠르게 허했다.


“말해봐.”

아이작은 일단 실종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있는지 알렸다.


“찾지 못한 자들은 아마도…….”

말끝을 흐린 아이작이 올리비아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녀는 눈을 꾹 감은 채 계속하라는 신호만 보냈다.

실종자들의 꼬리를 밟아 왕궁으로 오는 동안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이다.

피웅덩이가 고여 있다가 말라붙은 흔적이나, 잘린 신체 일부분을 발견했을 때부터 모든 실종자를 살려서 집으로 보내겠다는 목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제국의 가장 높은 곳에서 그들을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짊어진 황녀로서 참담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아직 숨 쉬는 이들이라도 구해야만 한다.


“실종자들을 탈출시킬 계획이 있어. 필요한 걸 구해야 할 거야.”

“그 부분은 맡겨주십시오. 다음은 그…… 제단입니다만.”

당장이라도 보고를 불로 뿜을 기세였던 아이작은 막상 제단에 관해 말을 할 때가 되니 연신 마른침을 삼키며 입만 벙긋거렸다.

그 모습만으로도 심각함을 느낀 올리비아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어…… 황녀 전하. 그…….”

“듣고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크라이어가 허리를 잡아 뒤로 당긴 후에야 아이작은 지나치게 부담스러울 만큼 가까이 다가온 그녀를 피할 수 있었다.

올리비아가 뒤로 당겨지자마자 아이작의 입이 터졌다.

제단에서 겪었던 일의 공포와 후유증보다 눈앞에 있는 크라이어가 뿜어내는 살기가 훨씬 더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공포는 공포로 덮는다. 라는 있는지 없는지 모를 진리에 기댄 아이작의 보고는 거침없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모든 보고가 끝났다.


“생각했던 제단이 아니네.”

“네. 보통 신전에 있는 그런 제단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입안이 마른 아이작이 혀끝으로 제 잇몸을 툭툭 치며 덧붙였다.


“신이라는 게 있기는 있더군요. 그런 기괴함은 머리털 나고 처음 느껴봤습니다.”

진절머리를 내는 아이작의 얼굴이 전보다 더욱 창백하게 질렸다.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은 올리비아가 곧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정말 고생 많았어.”

그 군더더기 없는 치하에 아이작의 낯에 조금 생기가 돌다가 직후에 들린 무심한 목소리에 크게 경기했다.


“수고했다.”

무표정한 크라이어가 그의 어깨를 툭 짚었기 때문이다.

여우눈에 가려졌지만, 아이작의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껏 크라이어 아래에서 구르면서 칭찬은커녕 괜찮다, 아니다. 라는 말조차 들어본 적 없었건만!

꾸역꾸역 제단까지 기어들어 가서 그 고생을 한 보람이 느껴지다 못해 좀 무서울 지경이었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얼어붙은 아이작은 올리비아가 움직이자 저도 모르게 물었다.


“가시려고요?”

어디로 가는지 굳이 입에 담지 않았지만, 묻는 아이작도 답하는 올리비아도 목적지가 ‘제단’임을 알고 있었다.


“응. 가봐야지.”

아이작은 주제 넘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끝내 걱정을 내뱉고야 말았다.

크라이어야 당연히 걱정이고 나발이고 불지옥에서도 홀로 살아남을 양반이니 괜찮겠지만…….


“음. 괜찮을 거야.”

그런 그를 향해 올리비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웃어주었다.

아이작이 식은땀을 흘리며 전한 ‘제단’의 심각성을 경시한 것도, 그의 걱정을 넘기려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게 입 같은 거라면 오히려 다행이지. 당장 찢어 버릴 수 있을 테니까.”

“네? 찢…… 네?”

황녀 전하의 입이 황녀 전하답지 않게 굉장히 험하다는 사실은 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입을 찢…….

황망한 얼굴을 한 아이작의 어깨를 도닥거린 올리비아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신의 입을 찢으면 어떻게 될지 알아보러 갔다 올게.”

 

***

왕궁을 가로질러 신전의 입구까지 가는 길은 대단히 쉬웠다.

크라이어는 아이작보다 더 은밀히 움직였고, 올리비아는 그런 그와 함께 다니는 것이 익숙했으니까.

이윽고 노르덴국 왕궁의 중앙에 마련된 거대한 신전을 앞에 둔 올리비아가 기가 찬 웃음을 내뱉었다.


“이게 뭐야.”

예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심지어 이런 걸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건가? 싶을 만큼 덩굴이나 다른 조형물로 가리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올리비아는 비로소 아이작의 보고가 무슨 뜻인지 명확히 알았다.


‘이쪽으로 발걸음하는 이들이 모조리 죽어 나가니 이 방향으로 시선도 돌리지 않는답니다.’

‘그럼 건설에 관여했던 이들도.’

‘네. 물 나르던 잡부까지 모조리 다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말은 실종이라고 하지만…….’

 
정말로 미친 것들이 아닌가. 미쳐도 곱게 미치던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좋을 대로 부려 먹고, 그들은 원하기는커녕 알지도 못했던 비밀을 안답시고 전부 죽여?


“인간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올리비아는 분노와 당혹감이 뒤섞인 한숨을 내 쉬다가 고개를 휙휙 저었다.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다.

더 큰일이 나기 전에 막아야만 하니까.

한 치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이 신전의 안으로 빨려들 듯 사라지는 올리비아의 작은 등을 바라보던 크라이어도 이내 그녀의 그림자를 밟았다.

***

겉모습만큼은 아니지만, 단기간에 지하에 세웠다고는 믿기 힘들 규모의 신전을 가로질렀다.

거의 뛰듯이 걷는 올리비아는 오로지 ‘제단’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신전의 벽에 새겨진 고대신을 향한 찬양이나, 그들이 바라는 이상향, 언제인지 모를 죽은 역사 따위에 줄 시선 한 조각도 아까웠다.

어른거리는 불이 그녀의 걸음걸음에 빨려들 듯 사라지길 한참.

앞으로 나아갈 줄밖에 모르던 올리비아의 다리가 우뚝 멈췄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뒷목을 더듬거리다 양손으로 제 팔을 문질렀다.


“하……하아.”

작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하얀 입김을 보는 올리비아의 뺨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 있었다.

그녀의 뒤를 쫓던 크라이어도 어느새 바로 곁에 서 있었다.

일렁거리는 불빛을 따라 그의 얼굴은 언뜻 일그러지는 것 같기도 했고, 무표정한 것 같기도 했다.


“흐우우웁.”

하지만 올리비아는 오래 멈춰 있지 않았다.

크게 숨을 들이켜고 앞으로 뻗기를 거부하는 다리에 힘을 줘 힘껏 땅을 밟았다.

그렇게 한 걸음 내디디자 그녀의 눈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으, 으아아. 으어.”

몇 걸음 더 신전의 안쪽으로 들어간 올리비아는 목 졸린 짐승의 그것과 닮은 신음을 듣고 아랫입술을 사려 물었다.

아이작이 말했던 사람들이다. 실종자들. 그리고 그들의 꺼질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는 건.

올리비아는 마치 누가 그러라고 속삭인 것처럼 어느 한 점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 구덩이가 있었다.

어둠마저 빨아먹을 듯 음침하고 질척거리는 마치 그 부분만 도려낸 듯한.

아니, 저걸 구덩이? 구멍이라고 해야 하나? 마치 땅에 묻어 지워지지 않을 얼룩 같은…….

확실히 평범한 제단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였다.

무언가를 거창하게 쌓아 올리기는커녕 일정한 형태도 갖추지 않은 제단이라니.

심지어 크기와 모양이 울렁거리면서 변하는 것 같기도 했다.

올리비아는 일단 제단을 제쳐두고 실종자들부터 살폈다.

아이작의 말대로 어디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 보였지만, 제정신인 사람도 없었다.


‘제단으로 가고 싶어 하는 욕망 자체는 멀어지고 나니까 사라지더군요.’

일단 여기에서 빼내기만 하면 나아질 가능성이 컸다.

아주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입맛은 소태를 씹은 듯 썼다.

늘 그렇듯 사건에 휘말리거나 사고를 당하는 이들은 그저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을 뿐이니까.

눈이 흐릿하고 초점도 없는 실종자에게서 시선을 뗀 올리비아가 다시 제단으로 향했다.

그녀 걸음은 신전으로 들어설 때와 마찬가지로 거침없었지만, 전보다 한결 조심스러웠다.

제단 주변을 샅샅이 살핀 후, 올리비아는 눈에 새파란 불을 담은 채 제단 자체에 집중했다.

눈빛으로 무언가를 태울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제단이 활활 불타 사라졌을 터.

얼마간 시간을 들여 시커먼 얼룩인지 구덩이인지 모를 것을 들여다보던 올리비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아이작이 말했던 그런 이상한 구역질 나는 느낌은 안 들어.”

제단을 보는 이들을 유혹하여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고 했었나.

그저 몸을 던져 편해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끓는다고 했었는데…….

저런 거에 뛰어든다고?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정말?

올리비아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제단 근처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렇지만 역시나 그냥 막연히 기분이 더럽기만 할 뿐.

제 발로 제단에 기어들어 가고 싶은 지독한 욕망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이들과 확연히 다른 자신의 상태에 안심과 불안이 동시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뭐……. 그런 이상한 욕구가 들지 않는 편이 좋겠지. 다행이라고 해둘까.

고대신과 관련된 것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았으니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게다가 모르는 게 약. 이라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당부도 있지 않은가.

아는 게 힘이 될 수도 있지만, 세상에는 모르는 편이 더 나은 것도 있는 법.

찜찜하긴 했지만, 좋지 않은 방향은 아니었기에 올리비아는 긍정적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다만, 고대신과 그레타에게 한방 크게 먹여주고 싶었던 터라 이 제단을 파괴할 방법을 찾았으면 하는데…….

뭔가 제대로 된 만듦새가 있었다면 박살을 내는 식으로 시원하게 망칠 수 있겠지만, 손은커녕 발끝도 대기 꺼림칙한 저건 어떻게 해야 할까.

몇 번이나 살폈지만, 혹시 놓친 것이 있을까 봐 다시 제단에 시선을 박은 채 올리비아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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