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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우……웃어? (41/146)

#41. 우……웃어?2022.01.20.

하지만 그의 답을 올리비아는 너무나도 당연해서 딱히 다른 답을 할 필요도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넘기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16549711739876.jpg“말해 봐. 마법사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어? 그 돌아버린 놈을, 어? 어……?”

거기까지 내뱉은 올리비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만 뻐끔거렸다. 일단 질러놓긴 했지만, 마법사를 상대로 그녀가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으니까. 그녀는 이제 진심으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레타인지 나발인지가 안내인이면서 건방을 떨 때 모르는 척 머리채라도 잡을걸. 뻐끔거리는 그녀의 턱을 손수 닫아준 크라이어가 고개를 저었다.

1654971173988.jpg“아무 일도 없었어. 있을 수가 없었지.”

아리송한 그의 말에 올리비아가 제 턱을 잡은 그의 손을 잡아 내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16549711739876.jpg“뭐?”

1654971173988.jpg“마법사는 죽었으니까.”

16549711739876.jpg“뭐?”

그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바로 이해할 수 없었던 올리비아가 되묻자 크라이어는 덤덤히 반복해주었다.

1654971173988.jpg“마법사가 죽었다.”

16549711739876.jpg“뭐어!”

마침내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한 올리비아가 마치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했다. -스륵.

16549711739876.jpg“어? 으……으아!”

과연 최고 귀빈에게 주어진 왕궁의 방이라고 해야 할까. 올리비아가 벌떡 일어나는 순간. 지나치게 보드랍고 매끄러운 이불이 가는 발목을 휘감으면서 그녀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으니까. 아니, 고꾸라지기 전에 크라이어의 품에 안겼으니까.

1654971173988.jpg“후우.”

옅은 한숨을 내쉰 크라이어가 제 품에서 미동도 없는 올리비아를 향해 물었다.

1654971173988.jpg“괜찮나.”

하지만 올리비아는 신음조차 흘리지 못한 채 끙끙 앓느라 답을 내지 못했다.

1654971173988.jpg“황녀?”

의아하게 그녀를 부르는 크라이어의 검붉은 눈동자에 ‘걱정’이라는 감정이 희미하게 스몄지만, 올리비아는 보지 못했다. 눈앞에서 별이 반짝거릴 만큼 코가 아팠으니까. 이윽고 간신히 그의 가슴팍에서 얼굴을 떼어낸 올리비아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크라이어의 가슴께를 더듬었다.

16549711739876.jpg“당신 가슴 대체 뭐야. 철판이라도 대고 다니는 거 아니지?”

침대 아래로 추락해 얼굴부터 착지하기 전에 잡아준 건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었지만, 차라리 바닥에 얼굴을 박았다면 이보다는 덜 아팠……. 올리비아의 생각은 크라이어의 짧은 한마디에 싹둑 잘려나갔다.

1654971173988.jpg“간지럽다만. 더 더듬어도 철판 같은 건 없다.”

덤덤하다 못해 태연한 그의 말의 말과 달리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제야 깨달은 올리비아의 반응은 매우 격했다.

16549711739876.jpg“으아아!”

만세라도 하는 것처럼 양손을 번쩍 든 그녀 본능적으로 그에게서 멀어지려 했지만, 허리가 잡혀 있는 이상 그건 바람이었을 뿐. 어떻게든 허리를 한껏 뒤로 젖힌 채 그에게서 멀어진 올리비아는 황망한 얼굴로 일단 사과를 건넸다.

16549711739876.jpg“미안.”

코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그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민망했다. 그녀는 차마 크라이어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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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 끝까지 빨갛게 익어버린 올리비아를 지그시 바라보던 크라이어는 피식 웃어버렸다. 고작 몇 분. 아니, 어쩌면 올리비아가 그를 향해 ‘다녀왔냐.’라는 일상적인 인사를 건넨 순간. 어째서인지 그레타와 함께 있을 때 그의 발치부터 목까지 차올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게 만들었던 지독하게 구역질 나는 진흙, 아니 뻘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씻겨 사라졌다. 왜 돌아왔을까. 어째서 올리비아에게로 돌아온 걸까.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눈앞에 있는 말도 안 되게 집요하고 대담하며, 이젠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고 제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던 이 황녀의. 올리비아의 곁에 있는 것에 길들여졌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그녀를 떠나거나, 그녀가 그를 떠나는 것을 참을 수 없을 만큼. 어쩌면 타의로 인해 강제로 부활하여 노예 신세가 된, 과거의 기억조차 없는 크라이어가 ‘현재’를 살아간다고 실감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존재가 올리비아 뿐이기에 이토록 놓을 수도, 놓고 싶지도 않을지 모른다. 아니, 이유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검붉은 눈동자는 끝을 알 수 없이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지만, 그 눈에는 오롯이 올리비아만이 담겨 있었다. 이윽고 크라이어는 필사적으로 제 눈을 피하는 올리비아의 머리카락 끝을 잡고 살짝 튕겼다.

1654971173988.jpg“됐다. 일부러 한 것도 아니니까.”

16549711739876.jpg“으응. 미안. 다음부터는 눈 똑바로 뜰게.”

시무룩하게 답하는 올리비아에게 크라이어는 입가에 장난스러운, 그래, 무려 장난스러운 미소를 건 채 물었다.

1654971173988.jpg“눈을 똑바로 뜨고 만진다는 건가?”

16549711739876.jpg“아니야! 내가 언제 만진다고 했……!”

1654971173988.jpg“하!”

다음 순간 올리비아의 눈이 더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방 전체를 울리는, 그녀의 귀에도 선연하다 못해 아주 시원하게 내리꽂히는 웃음소리의 주인이 다름 아닌…….

16549711739876.jpg“우……웃어?”

크라이어였으니까. 그의 웃음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올리비아의 눈은 지진이 난 듯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거 맞나? 아니, 마법사가 죽었으니 큰일이 있긴 했지만. 그건 좋은 일 아니야? 아닌가? 혼란에 빠진 올리비아는 곧 더욱 혼돈에 빠져들었다. 왜 웃는 거야? 웃는 거지? 웃고 있잖아? 저 크라이어가 소리를 내면서 웃잖아? 머리? 머리를 다쳤나? 저 인간이?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인간은 아니잖아? 죽이면 죽였지, 절대 누구한테 맞고 다닐……. 온갖 생각이 휘몰아치는 올리비아의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기가 잦아든 그가 올리비아를 향해 고개를 흔들었다.

1654971173988.jpg“왜 그런 못 볼 걸 본 표정이야.”

16549711739876.jpg“당신 웃는 거 처음 봐. 아니,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큰 소리로 웃는 건 처음. 머리 다친 거 아니지?”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표정에 크라이어는 다시 소리를 죽여 웃었다.

1654971173988.jpg“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는다만.”

올리비아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말을 내뱉은 크라이어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1654971173988.jpg“일단 내 기억으로도 소리 내면서 웃은 건 처음이군. 그보다.”

16549711739876.jpg“아니지. 그보다가 아니지! 당신이 소리 내서 웃었는데 그보다가 붙을 만한 일이 뭐가 있어!”

올리비아의 반문에 크라이어는 숨 쉴 틈도 없이 답했다.

1654971173988.jpg“그레타가 마법사를 정화했다고 하더군.”

16549711739876.jpg“어? 정화? 정화라면……. 아…….”

그들이 말하는 ‘정화’가 온 대륙에 있는 인간들을 싸그리 죽여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한 올리비아가 신음을 삼켰다. 결국 마법사는 자신의 딸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지 않나. 동정의 ‘동’자도 떠오르지 않지만, 고약한 상황이긴 했…….

16549711739876.jpg“어? 마법사가 죽었다면, 혹시 낙인에도 어떤 변화가?”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크라이어의 쇄골 부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낙인이 찍힌 자리에서 일어나는 극심한 통증에도 크라이어는 눈 한번 깜박하지 않고 답했다.

1654971173988.jpg“아무것도.”

그에 올리비아는 크라이어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그에게 다가서지도, 그에게서 물러나지도 않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네 번이나 그에게 죽임을 당하고도 돌아온 제 팔자도 사납기가 둘째가라면 서럽지만, 그렇다고 그의 절망이나 고통을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꼭 공감해야만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 위안조차 건넬 수가 없어서……. 한동안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렸다. 그러다 문득 올리비아가 그의 소맷자락을 슬그머니 당겼다. 그 어색하지만, 기묘하게 자연스러운 손길에 크라이어의 입매가 한순간 아래로 무너져내렸다. 의미를 부여하기에도 우스운 사소한 손짓. 그를 돌아 세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힘. 그리고 뜬금없이 다른 말을 속삭이는 거의 들리지도 않는 작은 목소리까지.

16549711739876.jpg“배고프지 않아?”

어느 것 하나 극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올리비아를 만나 제국에서 보내온 일상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그 아무것도 아닌, 돌아서면 잊어버릴 사소한 일분일초가. 저 깊은 무저갱에 떨어져 벗어날 수 없는 늪을 기던 크라이어를 단숨에 위로, 더 위로 끌어 올렸다. 그는 눈을 깊이 감았다 뜨며 덤덤히 답했다.

1654971173988.jpg“뭐라도 먹으러 갈까.”

  *** 마법사가 죽었다는 사실 외에는 그 어떤 소득도 없이 국장의 첫날이 지났다. 엄숙한 장례가 진행되는 가운데, 가장 앞줄에 선 올리비아는 명치께를 매만지고 있었다. 지난밤. 배를 채우러 몰래 방을 나선 두 사람은 곧 주방에 도착했다. 사용인을 부르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지만, 그 죽은 동태 같은 눈을 하고 있던 사용인들을 부르고 싶지 않았기에 한 선택이었다.

16549711739876.jpg‘으음, 역시 준비된 요리 같은 건 없네.’

  주방을 기웃거리던 올리비아는 크라이어의 손에서 흔들리는 빵과 치즈를 보고 활짝 웃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꺼낸 아무 말이었지만, 그와 방을 떠나는 순간부터 정말로 배가 고팠으니까. 그가 건넨 빵과 치즈를 오작오작 씹으며 배를 채우는 올리비아의 귀로 나지막한 경고가 흘러들어왔다.

1654971173988.jpg‘그레타와는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크라이어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지만, 묻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마법사를 ‘정화’랍시고 죽여버린 여자이지 않나. 보통 미친 게 아니야. 등 뒤를 타고 흐르는 오한에 올리비아는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그래. 마주치지 말자. 미친 사람은 무서우니까 피해 가는 게 맞는 거야. 게다가 이유는 말하지 않은 크라이어가 덧붙였지 않나.

1654971173988.jpg‘그 여자, 황녀가 거슬리지 않냐고 묻더군.’

  미친 것이 지칭하는 황녀가 두 사람일 리가 없을 터. 양팔에 돋아난 소름을 우아하게 문지른 올리비아는 장례가 끝난 후, 제 주위로 구름떼처럼 모여드는 타국의 인사들을 능숙하게 상대했다. 국장이니만큼 본격적이고 심도 깊은 논의 보다는 그저 수박 겉핥기 같은 가식적이고 서로를 탐색하는 이야기만 오가는 가운데. 누군가 불쑥 생뚱맞은 화두를 던졌다.

16549711892047.jpg“지난번 대회의의 주제 말입니다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흥미를 보이는 이는 없었다. 이미 무사히, 잘 치러진 대회의를 꺼냈으니까. 하지만 단 한 사람, 올리비아가 그 주제를 단숨에 낚아챘다.

16549711739876.jpg“주제 말인가요?”

그리고 이 자리에서 누구라도, 한 번이라도 말을 붙여 보고 싶은 이가 누구인가. 바로 대륙 유일의 제국. 볼셰이크의 유일한 황녀이자 차기 황제인 그녀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회의에 관한 말을 한마디씩 꺼냈다. 한 명이 딱 한마디만 꺼내도 사람이 워낙 많으니 처음 화두를 내뱉은 이가 다시 말할 기회를 얻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다. 겨우 다시 입을 열 수 있게 된 그가 물었다.

16549711892047.jpg“일정이 바뀌기 전까지는 전혀 다른 주제였는데, 전하께서 일부러 바꾸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세계 평화.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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