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
이미 유명해져 너무나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브리트니는 로스앤젤레스에 공연을 하러 오면 만나기로 했고, 학교를 다니며 여유시간이 생길 때마다 크리스티나가 녹음중인 스튜디오에 놀러갔다.
“오늘은 제시카도 같이 왔네? 여자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었다고 들었는데 축하해.”
“고마워. 크리스티나도 데뷔 축하해. 오빠랑 같이 목란 영화 보러 갔는데, 노래 듣자마자 크리스티나인 거 알았어.”
두 사람은 함께 한국에 갔다 오면서 친한 사이였다.
크리스티나를 보러 자주 가는 것 같아 괜히 발이 저렸던 동민은 혹시나 제시카가 오해를 할 까 스튜디오에 데리고 갔고, 온 김에 댄스 연습을 하고 가라고 했다.
“제시카가 춤 센스가 있긴 하더라. 노래는 솔직히 못 부르지만.”
“제시카 정도 노래 실력이면 평균이야. 네가 너무 잘 부르는 거고. 일반인이랑 비교 하면 안 되지.”
몇 년 뒤 제시카가 댄스 영화에 단독 주인공으로 출연하기에 미리 연습을 꾸준히 시켰고, 다행인지 제시카도 안무 연습을 좋아해 스튜디오에 놀러 가는 걸 좋아했다.
제시카가 스튜디오에 자주 놀러가게 되면서 동민은 발걸음을 줄였고, 다시 학교와 세탁소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김 감독님. 식사는 좝섰어?”
“김치찌개 먹었어요. 쿠안틴은 밥 먹었어요?”
“아직 안 먹었어. 리버 레스토랑에 밥 먹으러 같이 가자.”
동민은 이미 밥을 먹었지만, 같이 가달라는 쿠안틴 때문에 오랜만에 리버 피닉서의 사찰 음식점으로 향했다.
“쿠안틴 또 왔네? 오늘은 다니엘도 같이 데리고 왔구나.”
“쿠안틴이 자주 오나 봐요?”
“요즘은 거의 매일 찾아오고 있어. 뉴욕에 한식당을 오픈 할 거라면서 영업 비밀을 훔쳐가고 있어.”
한국에 은근 자주 찾아가고 있는 쿠안틴은 동민 때문인지 입맛이 완전 한국사람으로 변했고,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뉴욕에 한국 식당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뉴욕에 오픈 하는 거예요?”
“여기는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소주를 마셔야 하는데, 로스앤젤레스는 운전을 해야 하잖아. 뉴욕은 걸어 다닐 수 있으니 레스토랑을 운영하기에 더 좋은 환경인 것 같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쿠안틴은 뉴욕에 한 식당을 열었다가 관리 소홀로 결국 문은 닫게 된다.
이번에는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식당을 오픈한 꿈에 부푼 쿠안틴과 한식 메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영화로 주제가 넘어 갔다.
“쿠안틴은 다음 작품 준비는 안 해요? 브라운 제키 개봉이 작년 이니까, 마지막으로 연출을 한 지도 2년이나 지났어요.”
“당장은 계획이 없어. 급하게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각본을 써 보려고. 일단 내년에는 연출이 아닌 제작에 도전해 보기로 했어.”
쿠안틴은 97년에 개봉한 브라운 제키를 마지막으로 한 동안 공백기를 가지다 2003년에 되어서야 그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빌 킬로 돌아오게 된다.
“제작을 하려면 자본이 많이 필요할 건데, 자금은 충분해요?”
“꼭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라는 법은 없지. 내가 저예산 영화 전문가니까 경험삼아 도전해 보려고.”
“설마 직접 출연했던 슬래시 영화 후속편을 만들려는 건 아니죠?”
“어떻게 알았지? 아직 공개하지 않았는데?”
쿠안틴은 96년 조니 클루니와 함께 출연한 새벽에서 황혼까지의 후속편의 제작에 참여하려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B급 슬래시 영화의 광팬이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 제작을 직접 진행해 보고 싶어 했는데, 딱히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 한다.
새벽에서 황혼까지 1편은 1,900만 달러로 제작되어 2,570만 달러의 흥행에 그쳤지만, 2차 시장에서 매니아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지면서 큰 수익을 거두게 되었다.
생각보다 2차 시장의 수입이 짭짤하다는 걸 깨달은 쿠안틴은 새벽에서 황혼까지 후속편을 두 편이나 제작하게 된다.
하지만 후속편은 1편과 관련이 있다고는 하지만, 프리퀄 형식으로 만들어져 스토리상 관련도 없고, 저예산의 한계인지 재미도 많이 떨어져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다.
쿠안틴은 2편의 실패에도 멈추지 않고, 3편까지 제작에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더욱 과거로 돌아가 서부극을 만들어 버린다.
시간대가 반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2편은 강도단이 경찰을 피해 잠적하다 뱀파이어에 물려 경찰과 한바탕 싸우는 내용이고, 3편은 1편에서 살해당하는 뱀파이어 영황 산타니코 판데모니움의 탄생 비화를 다룬다.
“제작이라면 저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니 궁금한 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물어봐요.”
“넌 넘쳐나는 예산으로 돈을 펑펑 써가면서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거잖아. 나처럼 열정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랑 비교하면 안 되지.”
쿠안틴은 동민이 가락지의 제왕 제작을 시작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어떻게 보면 동민에게 자극을 받아 새벽에서 황혼까지 제작을 시작한 것 같았다.
“연출에는 투자할 수도 있겠지만, 쿠안틴이 직접 제작하는 거니 투자는 기대하지 말아요.”
“이 정도는 나 혼자서 진행할 수 있으니 투자할 생각이나 하지 말라고. 이번에 대박을 내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마.”
쿠안틴은 새벽에서 황혼까지와 뉴욕에 오픈 할 레스토랑으로 대박을 터트릴 거라며 큰 소리를 치다가 은근슬쩍 가락지의 제왕 세트장을 준비 중인 뉴질랜드에 구경 하러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쿠안틴과 종종 만나며 영화 이야기를 나누었고, 제시카와 함께 크리스티나의 스튜디오를 놀러 다니다 보니 기말 고사 기간이 금방 다가왔다.
“다니엘. 내 예상보다 한국이 훨씬 더 빠르게 IMF 대출 상환을 마무리 했구나.”
오랜만에 워런트 버핏에게 연락이 왔고, 전생과 다르게 대한민국은 IMF로 부터 지원을 받은지 딱 1년 만에 모두 상환해 버렸다.
이전과 달라진 거라고는 동민이 대한민국 외환 국채를 조금 사들인 것과 회사는 튼튼하고 전망이 밝지만 단기 자금 부족으로 인해 도산할 뻔한 회사들을 살려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작은 도움이 수많은 실업자를 줄여주었고, 정부에서도 그 만큼 사회 보장 지출이 줄어든 데다 세수가 늘어나면서 빠르게 대출을 상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동민이 부실한 기업까지 살려준 건 아니었기에, 많은 회사가 문을 닫아야 했고, 역시나 실직자가 급증 했지만, 전생과 비교해서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일 년 투자한 것 치고는 수익률이 엄청 나구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데, 잘 했구나.”
“한국이 금방 회복 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제가 2년간 한국에 있어서 위기가 보이기도 했고, 다시 일어날 것도 알 수 있었어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의 도움이 큰 것 같더구나. 예측해서 투자한 것도 있지만, 투자함으로서 위기에서 살려준 걸 보니 훌륭한 투자를 한 것 같아 뿌듯하구나.”
원래 동민은 투자나 금융 쪽 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영화 투자일을 오랫동안 해 왔고, 워런트 버핏과도 수년간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이번 대한민국에 투자한 것은 워런트 버핏이 담당자를 소개해 줘서 쉽게 진행하기도 했지만, 동민이 진행 사항 전반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잡음 없이 빠른 시간에 투자금의 몇 배나 되는 수익을 벌어들이게 되었다.
“수익금이 대출금액을 넘어섰던데, 전액 상환 할 건가?”
“아니요. 원금의 절반만 조기 상환하고 나머지는 분할 납부 할 거예요. 남은 절반은 저작권 수익으로 충분히 값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럼 남은 금액은 요청한데로 주식에 투자할 생각인가?”
“네. 부탁드린 기업들의 주식을 모와 주세요.”
작년에 워런트 버핏에게 부탁해 거액의 자금을 대출 받아 한국 금융위기에 배팅을 한 동민은, 대한민국의 빠른 회복으로 1년 만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아직 정리하지 않은 자산이 많이 남아있었기에 모두 정리하고 나면 투자금의 4배에서 5배가량 수익이 발생할 예정 이었다.
일차적으로 회수한 자금의 절반은 원금 상환에 쓰기로 했고, 나머지 절반은 한창 과열되고 있는 닷컴 버블에 투자하기로 했다.
“다니엘. 참견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네가 기술주에 투자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지금은 내가 보유하고 있는 다우존스 종목들이 수익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나스닥이 폭등하고 있지만, 기업 가치와 상관없이 무분별하게 자금이 투입 되면서 주가가 올라가는 전형적인 버블장 이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회사 이름에 닷컴만 가져다 붙이면 상한가를 치는 지금 상황이 절대 정상일 수는 없겠죠. 버블이 터지기 전에 전부 정리 하도록 할 게요. 오랫동안 투자할 생각은 없어요.”
“이 세상에 고점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계속해서 오르다가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로 버블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단다.”
“저도 위험한 건 알고 있어요. 딱 일 년만 더 투자하고 전부 정리하도록 할 게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인터넷이 민수용으로 풀린 이후 1990년대에 들어 인터넷의 보급이 늘어났고, 미국에서 첨단주로 인터넷, 통신 관련 기업들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태동기를 넘어 성장기로 들어선 인터넷 사업은 투자자들에게 뜨거운 감자였고, 조만간 인터넷 산업이 기존 산업을 뛰어넘어서 전부 장악할 거라는 맹목적인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인터넷 사업체들은 막대한 투자자를 끌어 모았고, 코즈모 닷컴이나 팬츠 닷컴, 슈즈 닷컴 등 기존 산업에 닷컴을 붙인 기업들은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자 받았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 되면서 기술주와 코스닥은 1년에 100% 이상 성장하는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워런트 버핏은 여전히 기존의 방식대로 기반 산업과, 소비재 기업에 투자 하면서 평생 먹을 욕을 이때 다 듣게 된다.
수많은 투자가들이 버핏에게 왜 눈앞에 보이는 엄청난 수익률의 기술주에 투자하지 않느냐며 거센 비판을 쏟아 부었고, 심지어는 버크쇼 해더웨이의 주주에게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버핏은 주변의 권유와 협박, 설득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다 결국 뚜껑이 열리고 만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썰물이 빠지면 누가 여태껏 발가벗고 헤엄쳐왔는지 비로소 알 수 있다’라고 하신 건 잘 봤어요. 제가 그 중에 한 명인 것 같긴 하지만, 썰물이 빠져나가기 전에 꼭 탈출 할 게요.”
“그래. 네 돈이니 마음대로 해야지 어떡하겠니. 나는 미리 경고 했으니 타이밍 놓쳤다가 원망하기 없기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막대한 이익에 눈이 돌아가 자금을 쏟아 붙고 있는 지금, 오로지 기업의 가치만을 평가해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대로 투자를 진행하는 버핏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투자금을 날리더라도 회복 할 수 있는 정도의 자금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버블이라는 건 잘 알고 있으니 항상 주시하고 있을게요.”
< 213 > 끝
ⓒ 돈많을한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