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 >
드디어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한 제시카를 축하해 주고,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감독을 만나 보기로 했다.
이번 영화에서 경험을 쌓은 제시카는 이후 카메룬 제임스 감독이 연출하게 되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주연급 배우로 성장하게 된다.
전 세계 인종이 조금씩 보이는 독특한 외모와 귀여운 얼굴과 탄력 있는 몸매로 감독들의 관심을 받게 되지만, 늘지 않는 연기력으로 인해 제시카의 입지는 빠르게 줄어들게 된다.
‘너무 유명해 지는 것 보다 적당히 연기 생활을 하다가 빨리 물러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오히려 나한테는 좋은 거기도 하고.’
전생과 다르게 제시카의 연기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지 않기를 기대하며 그녀의 대본을 확인해 주고 있는데, 삼촌이 평소에 잘 보이지 않는 흥분된 표정을 동민을 찾았다.
“동민아! 박세니 선수가 US 여자 오픈에 참가하게 되었단다! 내가 살아생전 한국 선수가 US Open에 출전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구나. 거기다 얼마 전에는 메이저 대회인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까지 했단다.”
삼촌은 로스앤젤레스 한인 골프회에서 활동중이었고, 박세니 선수가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에서 신인으로 출전해 역대 2번째에 해당하는 와이어 투 와이어(1라운드부터 최종 라운드까지 1위로 마무리 하는것)를 달성 하면서 바로 그녀의 후원회를 결성했다.
미국에서 세탁소로 자리를 잡으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긴 했지만, 동민의 등장으로 삼촌 역시 재산이 몇 배나 증가 했고, 휴일마다 고급 필드에 골프를 치러 다녔다.
“아주 힘들게 갤러리 티켓을 두 장 구했단다. 너도 같이 보러 가자구나. US Open에서 우승을 하기는 힘들겠지만, 뛰어난 선수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거다.”
박세니 후원회에 속해 있긴 하지만, 삼촌은 아직 신인인 그녀가 US Open에서 우승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삼촌은 어렵게 구한 거라며 내일 시합이 시작되니 출발 준비를 하라고 했고, 동민은 박세니를 보기 위해 LPGA US Open이 열리는 윈스콘신에 있는 블랙 울프 런 골프 클럽으로 갔다.
“이렇게 재미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너무 재미있는데요?”
“그렇지? 거기다 US Open은 티켓도 비싸고 아무나 갤러리로 참여할 수 없는데다 갤러리를 위한 프로그램도 잘 준비되어 있어 특별한 거니까, 모든 투어가 이렇다고 생각하면 안 돼.”
차분하고 무료할 거라고 생각했던 US Open은 한두 점 차이로 순위가 뒤바뀌기도 하고, 예상 밖의 멋있는 샷이 종종 나오기도 하면서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박세니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긴 했지만, 시합중인 선수를 위해 따로 자리를 마련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갤러리로 참석한 삼촌을 알아보고는 꾸뻑 인사를 해 주었다.
첫째 날은 데이비스와 윌리암스가 -3타로 공동 1위를 했고, 박세니와 스파이딩이 -2타로 공동 3위를 기록하며 끝이 났다.
두 번째 날에는 박세니가 초반에 두 번의 버디(-1)를 기록 하면서 -4타까지 내려갔지만, 중간에 보기(+1)를 치는 바람에 -3타로 일정을 마무리 했다.
전날 공동 3위였던 그녀는 다른 선수들의 부진으로 단독 선두로 올라갔지만, 아직 이틀이나 일정이 남아 있었다.
“동민아. 박세니 선수가 생각보다 너무 잘 하는 구나. 아직 일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러다가 우승을 하는걸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면 좋긴 하겠지만, 마지막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골프니 차분하게 응원하도록 해요.”
삼촌은 박세니가 단독 선두에 오르자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세 번째 날에는 골프 클럽에서 진행하는 여러 이벤트가 열러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지만,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어 선수들에게는 힘든 하루가 예상되고 있었다.
박세니 선수는 첫 번째 훌 부터 난관에 부딪혀 보기를 기록하면서 -2타로 기록이 줄어 버렸다.
그러던 중 10번 홀에서 벙커 바깥 아주 좋지 못 한 위치에 공이 떨어지면서 더블 보기(+2)를 기록해 버렸고, 최종 기록이 0이 되었다.
세 번째 라운드 중반에서는 네우만이 -1타로 선두에 오르게 되었고, 박세니는 0타로 이븐을 기록 하면서 2위에 자리를 잡았다.
3위부터는 +2타로 격차가 있었고, 1위와는 단 1타 차이를 두고 있었다.
“오늘 첫 번째 홀에서 시작이 안 좋더니, 결국 벙커에서 더블 보기를 기록하는 바람에 선두를 빼앗겼구나.”
“그래도 신인이 US Open에서 2위를 기록 하는 것도 대단한 거예요.”
“그렇긴 하지만, 어제만 해도 단독 1위였는데 아쉬운 건 어쩔 수 없구나.”
“아직 나머지 라운드가 남아 있으니 희망을 가져 보도록 해요.”
바람이 강해서 그런지 후반부에서도 선수들이 샷을 치는데 힘겨워했고, 선두였던 네우만이 연거푸 실수를 하면서 +2타로 맥케이와 공동 2위를 기록했다.
박세니 역시 +1타까지 기록이 내려갔지만, 날이 좋지 않아서 인지 다른 선수들이 오버타를 많이 쳤고, 덕분에 선두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오늘 초반에 더블 보기를 하면서 조마조마 했는데, 선두 자리를 지켜 내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내일만 잘 마무리를 하면 박세니 선수가 우승을 할 수도 있겠구나.”
“내일은 파이널 라운드라 선수들이 많이 지쳤을 거예요. 변수가 많이 생길 수도 있는데 박세니 선수가 집중력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어느새 마지막 라운드인 넷째날이 밝았고, 박세니는 4번 홀에서 더블 보기를 기록 하면서 순위가 떨어져 버렸다.
경쟁을 하던 선수들도 보기나 더블 보기를 기록 하면서 타수가 늘어났지만, 박세니와 동갑인 20살에 동양인인 제니가 파이널 라운드에서 집중력을 선보이며 1위로 치고 올라왔다.
그러던 중 제니가 버디 기회를 놓치더니 보기를 기록했고, 박세니가 14번 홀에서 버디를 기록 하면서 다시 1위로 올라갔다.
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후반부로 갈수록 갤러리 석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왔고, 삼촌은 긴장감에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시 제니와 박세니는 동점을 이루어 공동 1위를 기록했고, 마지막 18번 홀에서 제니가 먼 거리에서 친 퍼팅을 성공 시키면서 단독 선두에 올라갔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성공 시킬 줄은 생각도 못 했구나.”
“10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그것도 18번 홀에서 버디를 치다니 제니라는 선수도 대단하네요.”
박세니도 버디를 기록하며 다시 공동 선두에 올라섰고, 마지막 18번 홀에서 버디를 기록한 수 있는 퍼팅이 구멍을 돌며 튕겨 나오면서 연장전에 들어갔다.
“연장전이라니 재미있긴 한데, 심장에 너무 안 좋은 것 같구나.”
“너무 집중하셔서 그래요. 그래도 연장전에서 이기게 된다면 정말 짜릿하긴 하겠네요.”
두 선수만 겨루는 연장전은 빠르게 진행 되었고, 제니가 첫 번째와 두 번째 홀에서 버디를 기록하면서 -2타로 격차를 벌렸다.
박세니는 파(0)를 기록하면서 0타로 따라가다 3번째 홀에서 보기를 치는 바람에 +1타까지 벌어졌다.
“세 타나 차이나다니 아무래도 힘들 것 같구나.”
하지만, 제니는 5번 홀에서 또 다시 버디를 기록하면서 -3타로 격차를 벌렸다.
다행히 6번 홀에서 제니가 더블 보기를 치는 바람에 격차가 줄어들었지만, 박세니도 버디를 잡지 못하고 파나 보기를 치면서 절반인 9번 홀을 마무리 할 때는 2타 차이로 뒤쳐져 있었다.
후반부에서 뒷심을 발휘한 박세니가 11번 홀과 12번 홀에서 연속으로 버디를 잡으면서 +1타로 공동 1위에 올라가자 삼촌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아직 모르는 거야. 어쩌면 박세니 선수가 해 낼지도 몰라.”
전반부에는 희망이 없어 보였는데 어느새 동점으로 따라잡자 또 다시 기대를 하게 되었다.
드디어 14번 홀에서 박세니가 또 다시 버디를 기록했고, 선두로 치고 올라갔지만, 바로 다음 홀인 15번에서 보기를 치는 바람에 동점으로 내려와버렸다.
박세니가 쫓아가면 제니가 도망을 갔고, 마지막 18번 홀에서 -1타로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선타를 친 제니가 그린 가까이 어프로치를 했지만, 박세니의 공은 해저드 바로 옆에 무성하게 자라있는 풀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물에 빠진 것과 마찬가지인 위치라 패널티를 물고 공을 옮겨 쳐야 했지만, 박세니는 신발을 벗더니 양말까지 벗어 던지고 물속으로 들어가 골프 클럽을 잡았다.
사람들은 검게 타버린 그녀의 피부와 대조적으로 빛나는 하얀 그녀의 발을 보고 그녀의 노력이 보이는 듯 했고, 물속에서 그녀가 날린 어프로치 샷이 그린 가까이 떨어지자 모두 환호를 질렀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제니가 파만 기록해도 우승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이전 대통령인 조지 부시가 삼촌과 동민 옆에서 함께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
긴장 때문인지 제니의 퍼팅에 힘이 너무 들어가 버렸고, 보기를 기록 하면서 또다시 박세니와 동정을 이루게 되었다.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내지 못하게 되자 LPGA US Open 역사상 최초로 서든데스에 들어갔고, 10번 홀에서 같은 아시아 출신의 20살 동갑인 두 선수의 우승을 다투는 시합이 시작 되었다.
번 홀은 두 선수 모두 파를 기록했고, 11번 홀에서 선타를 친 제니가 가까운 위치에서 퍼팅을 했지만, 버디를 놓치고 파를 기록했다.
다음 순서인 박세니는 10미터 가까이 되는 거리가 있는 그린에 공이 있었지만, 먼 거리에서 홀의 정 가운데로 퍼팅을 하면서 긴 승부의 막을 내렸다.
박세니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며 캐디로 참가한 아버지와 포옹을 했고, 제니는 박세니를 축하해 주었다.
“세상에 정말로 박세니 선수가 우승을 해 버렸어.”
기나긴 시합에 지치기도 했지만, 감동받은 삼촌은 눈물을 흘렸고 함께 전설이자 레전드가 되는 시합을 지켜 본 동민 역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특히 마지막 18번 홀에서 물에 들어가지 않고, 포기함으로서 준우승을 할 수도 있었지만, 까맣게 탄 종아리와 대비되는 하얀 발을 보이면서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샷을 날리면서 재연장전에 들어가 결국 우승을 하게 된 것이다.
아직 어린 박세니가 우승을 할 수도 있다는 소식에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방송으로 시합을 시청했고, 그녀의 이 모습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상징이 되면서 IMF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이로서 박세니는 박호찬과 함께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르게 되었고, 대한민국 5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공익광고에 이 장면이 들어가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
“동민아 어서 가서 축하해 주자구나.”
벅차오르는 감정에 눈물을 흘리던 삼촌은 후원회원 자격으로 그녀에게 축하 인사를 하러 갔고, 동민도 박세니 선수에게 축하한다며 멋진 경기를 보여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US Open에서 우승을 하시다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다니엘 킴이시죠? 후원회장님에게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정말 잘 생기셨네요.”
“박세니 선수도 오늘 필드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빛이 났습니다. 우승 기념 선물로 앞으로 쭉 김치를 후원하고 싶네요.”
그렇게 박세니 선수의 골프 가방에는 다니엘 김치 로고가 새겨지게 되었다.
< 210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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