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203화 (203/265)

< 203 >

이번에는 닐이 건네준 파일에서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고, 동민이 따로 챙겨온 투자 유치 서류를 꺼내들었다.

“이런 영화는 어떻게 찾은 거예요?”

닐은 동민이 건네준 서류를 빠르게 읽어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보였다.

“총 제작비가 6만 달러요? 이미 영화는 작년에 촬영을 마쳤네요?”

“홍보를 해야 하는데 홍보를 맡아줄 배급사를 찾고 있더라고요. 이건 촉이 와서 우리가 홍보와 배급을 진행하는 거로 하죠.”

“글쎄요. 6만 달러짜리 영화의 퀄리티가 얼마나 대단할 지 상상이 안 가는걸요? 거기다 호러 영화라니 벌써부터 의구심이 드네요.”

닐이 읽은 시놉소스에는 1994년 10월, 영화학과 학생 3명이 메릴랜드 주 버키츠빌 숲에서 다큐멘터리 촬영 중 실종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1년 뒤 그들이 찍은 필름만 발견되었고, 그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그들이 찍은 필름을 상영하는 영화라고 했다.

“설마 이거 진짜는 아니죠?”

“뒤에 읽어 보면 어떤 방식으로 촬영 했는지 잘 나와 있어요. 이건 일종의 마케팅이죠.”

영화를 제작한 방식은 3 명의 배우가 홈 비디오카메라를 핸드 핼드 방식으로 촬영한 것으로, 실제로 배우들이 숲 속에서 일주일간 그들끼리 머무르며 진행 했다.

제작진은 매일 헬리콥터를 타고 찾아와 지시사항을 쪽지로만 전해주었고, 밤에 몰래 찾아가 습격 하면서 배우들이 정말로 놀라서 도망가는 생생한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

중간에 배우들이 놀라거나 소리를 지르고 무서워하는 것은 모두 실제상황이라고 적혀 있었다.

“확실히 흥미가 생기기는 하네요. 이걸 사실처럼 마케팅 한다면 궁금해서라도 볼 수밖에 없겠어요.”

단돈 6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위치 블레어는 엄청나게 대박을 터트리는데, 가장 큰 이유는 마케팅에 있었다.

홍보를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고, ‘실제로 존재하는 숲의 마녀와 얽힌 전설의 진상을 규명하러 3명이 찾아갔으나 끝내 실종되었으며, 결국 그들의 영상 기록만이 발견되어 공개되었다.’는 설정을 만든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로 마케팅 기법을 활용해 허구의 마녀 전설을 마치 사실처럼 꾸미는데, 그 결과는 대박이었다.

심지어는 영화를 본 관객들 중에 메릴랜드 주 버키츠빌 숲에 마녀를 찾으러 가는 이들까지 생겨난다.

이후 모든 것이 제작자들이 만든 허구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관객들이 환불을 요청할 만큼 감쪽같이 속여 버린다.

영화 위치 블레어의 특징은 화면으로 보여지는 공포가 아닌, 심리적인 공포를 자아내는 것에 있는데, 홈 비디오를 핸드 핼드로 촬영한 기법은 웬지 이 영상이 진짜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인지 영화가 허구인줄 알고 보면 지루하기도 하지만, 모르고 본다면 정말로 푹 빠져서 감상하게 된다.

진실이 밝혀지면서 욕을 많이 먹기는 하지만, 이 영화가 남기는 임팩트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관객과 평론가의 평가는 모두 극찬 일색에 파급력도 엄청나서 아예 핸드 핼드 파운드 푸티지라는 장르 자체를 만들어 버린다.

위치 블레이 이후 ‘어디에 갔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그들이 찍은 필름만 남겨졌다. 이것은 그들이 남긴 기록이다.’라는 방식의 영화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게 되고,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는 만큼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는 감도 없지 않아 있게 된다.

위치 블레어의 백미는 단연 후반부에서 홍일점인 헤더가 완전히 자포자기 하여 참회 섞인 절규를 하는 장면인데, 이때 그녀가 콧물을 유난히 많이 튀기면서 여러 미디어에 패러디 되기도 한다.

“그럼 제작비 말고 홍보비는 얼마나 들어가는 거죠? 블록버스터 영화는 홍보에 수백에서 최대 천만 달러까지 쓰긴 하는데 여기에 그렇게 많이 쓸 수는 없잖아요.”

“위치 블레어는 입소문을 타게 만들어야 하니까, 온라인 커뮤니티와 잡지 위주의 마케팅을 하면 될 거예요. 이미 제작사에서 계획은 대충 세웠더라고요. 비용은 대략 60만 달러라고 하던데 여유 있게 70만 달러면 될 것 같네요.”

위치 블레어는 대략 6만 달러의 제작비와 기타 홍보비를 모두 합쳐 약 75만 달러가 들어가고, 전 세계에서 극장 흥행수익으로 2억 4,800만 달러를 거두어들인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마케팅 하나만으로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호러영화 사상 최저 제작비로 최대 대박 기록을 만들지만, 장르를 떠나서도 최소 제작비 대비 최대 매출 기록을 세우며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한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위치 블레어의 홍보와 배급은 저희 회사에서 진행하는 거로 하죠. 앞으로 본격적으로 홍보와 배급을 해야 하는데 사전 연습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영화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게 되는 위치 블레어에 배급과 홍보를 맡으면서 제작비 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을 쓰게 되었고, 높은 지분을 확보 할 수 있었다.

그렇게 1999년 개봉하는 영화 중에 가장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지는 위치 블레어를 마무리 지었고, 다음으로 같은 해 가장 많은 제작비로 만들어지는 영화를 살펴보았다.

“이 영화는 드라마로 재미있게 보았는데 이번에 영화로 만들어 지는군요. 서부 시대에 스팀펑크라니 남자들이 환장하는 주제죠.”

“소재는 확실히 좋은데 이번에도 제작비가 문제네요.”

“확실히 1억 7천만 달러면 적은 금액은 아니네요. 적어도 3억 4천만 달러를 넘겨야 장부상으로 손익 분기점을 넘기는 건데 아무래도 쉽지는 않겠네요.”

이번 영화는 빌 스미스와 케빈 클라인이 주연으로 나오는 SF 코미디 서부극으로 1960년대 중반에 TV 시리즈로 방송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웨스트 와일드 와일드라는 제목의 작품 이었다.

웨스트 와일드 와일드는 스팀펑크라는 단어가 생겨나기도 전에 나와서 새로운 장르를 탄생 시켰고, 꾸준히 인기를 끌면서 두 번이나 TV영화로도 제작 되었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북미에서 1억 1천만 달러를 벌고, 해외에서 1억 2천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달성 하면서 적자를 보게 된다.

영화판에는 세금을 줄이기 위한 분식회계나 가짜 영수증이 넘쳐났기에 제작비가 정확하게 1억 7천만 달러가 들지는 않았을 거니 사실상 적자는 보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수익을 남기지도 못 할 영화였다.

영화 자체는 나름대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은 편이지만, 각본과 스토리가 엉성하고 유치한데다 전개도 매끄럽지 않고, 코미디인지 호러인지 확실하지 않은 장르 역시도 큰 문제점이었다.

가벼운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는 꽤 높은 수위로 충격을 주게 되고, 대형 머신의 등장으로 스팀펑크 팬들을 만족시키긴 하지만, 대중성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나마 빌 스미스가 직접 부르는 주제곡이 정말 좋았는데, 빌보드 100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하고 뮤직비디오도 큰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면 웨스트 와일드 와일드에는 투자 하지 않는 거죠?”

“제작비 리스크가 너무 크네요. 이번 투자는 넘어가도록 하죠.”

“아무래도 카메룬 감독님의 타이탄익 정도의 대박을 터트리기는 힘들어 보이네요. 그럼 다음 영화로 넘어가죠.”

스팀 펑크의 창시작인 웨스트 와일드 와일드에는 제작비 투입을 하지 않기로 했고, 다음으로는 SF나 액션이 아닌 로맨틱 영화를 골랐다.

“이번에도 따로 알아본 영화에요? 영국 영화네요? 아! 줄리아나 로버트가 나온다는 그 영화로군요.”

동민이 따로 알아온 영국 영화는 흔히 남자들을 위한 신데렐라라고 불리는 작품으로 줄리아나 로버트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영국 배우인 휴이 그랜트가 출연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다.

이혼남이자 웨스트 런던의 노팅 힐에서 살고 있는 소심한 남자 휴이 그랜트는 노팅힐 시장 구석에 위치한 조그마한 여행서적 전문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기 영화배우 줄리아나 로버트가 우연히 그의 서점에 들어와 책을 사가고, 그는 잠깐 동안에 일어난 엄청난 사건에 어쩔 줄을 몰라한다.

몇 분 뒤 오렌지 주스를 사서 돌아오던 휴이 그랜트는 길모퉁이를 돌던 줄리아나 로버트와 부딪혀 그녀에게 주스를 쏟고, 근처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그녀를 안내해 씻고 옷을 갈아입게 한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그녀가 갑작스럽게 키스를 해주면서 잠을 설치게 된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로맨틱 드라마를 그리는 노팅 힐 서점은 동민에게 아주 특별한 영화였다.

크리스마스 영화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동민은 이 영화로 영어공부를 했고, 영어 공부를 위해 수십 번 넘게 반복해서 영화를 보면서 대사마저 대부분 외워버렸다.

‘노팅 힐에 가 보는 게 버켓 리스트였는데, 아직도 못 가봤네. 이번 기회에 한 번 다녀오긴 해야겠다.’

동민이 노팅 힐 서점의 추억에 빠져 있는 동안 닐이 시나리오를 읽어 보았고, 남자 주인공으로 휴이 그랜트가 나온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표했다.

“휴이 그랜트라면 몇 년 전에 차에서 매춘부를 고용했다가 경찰에 잡혀서 문제가 있지 않나요? 유명 모델인 엘리자베스 헐리와 사귀고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왜 그랬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되네요.”

“이슈가 되긴 했는데, 가장 자신 있는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정공법으로 문제를 해결 하려는 것 같아요. 아마 이번 영화가 중요하다는 걸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거니 최선을 다해 촬영할 것 같네요.”

휴이 그랜트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인기를 노팅 힐 서점에 출연하면서 다시 회복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을 해내면서 그가 어떻게 인기를 회복했는가에 대한 사회학 논문까지 나오게 된다.

어찌 되었든 영국식 로맨틱 드라마의 명가 워킹 타이틀 필름스에서 만드는 노팅힐 서점은 휴이 그랜트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이유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고, 동민은 총 제작비인 4,200만 달러 중 대부분을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앞으로도 꾸준히 인기 로맨틱 코미디를 만드는 영국 제작사와 이번 기회에 친분을 만들기로 했고, 런던에도 출장을 다녀올 생각 이었다.

‘주제곡이 참 좋았는데 샤를 아즈나브루의 원곡을 오랜만에 들어봐야겠네.’

노팅 힐 서점으로 다시 유명해지는 ‘그녀’라는 제목의 프랑스 곡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했고,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번에는 샤를 아즈나브루의 원곡이 아닌 엘비스 코스텔로가 부른 버전으로 나오지만, 오히려 현대적인 느낌으로 깔끔해 지면서 듣기에는 더 편해졌다.

“영국 영화에 투자하는 게 조금 까다롭긴 해도 처음은 아니니까 어렵지는 않겠네요. 얼마나 예산을 넣을 생각이세요?”

“절반은 투자 해야죠. 2,100만 달러를 투입 하는 거로 하죠.”

노팅 힐 서점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총 3억 6,380만 달러를 벌어들이기에 아주 좋은 투자처였고, 영국 영화이다 보니 세금을 줄이기에도 아주 용의했다.

“이번 계약은 나도 따라 갈 거예요. 런던에 한 번 가보고 싶긴 했거든요. 예전에 영국에 갔을 때는 일정이 빡빡해서 스코틀랜드만 들렸는데 이번 기회에 런던을 둘러보고 싶네요.”

“알겠습니다. 일정은 제가 확인하고 알려 줄게요. 그럼 노팅 힐 서점에는 2,100만 달러를 투자하는 거로 하도 다음 영화로 넘어 갈까요?”

< 203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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