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 >
배우들은 촬영이 끝나고 모두 돌아갔지만, 동민의 진짜 작업은 이제 부터였다.
“계약은 촬영까지 이었으니 이제 돌아 가셔도 괜찮아요.”
“촬영에 참여 했으니 영상이 완성될 때까지 지켜 볼 책임이 있죠.”
“저도 어떤 영화가 탄생할지 옆에서 확인하고 싶네요.”
웨즈 엔더슨과 크리스토퍼 놀람은 계약이 끝났음에도 남아 편집 작업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제작비 상한선이 정해져 있었기에 두 사람에게 일당은 못 주지만, 숙식을 제공하기로 했고, 두 감독은 친구가 편집 현장에 놀러왔다고 생각하라며 단편 영화 ‘김치남’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너희들은 안 가냐?”
“미국까지 왔는데 여행도 하고, 조금 놀다 가야죠. 여름 방학은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김동민 병장님.”
동민을 도와주기 위해 한국에서 찾아온 군대 후임들도 남아 있었고, 그들은 편집 작업에 손을 보태줄 수 없어 미국 서부를 여행하며 잠시 작업실에 들려 진행 상황을 구경했다.
“동민아. 네가 부탁했던 배경 음악이 완성 되었어. 일단 후보로 쓸 수 있는 여벌의 곡들도 만들어 보았으니까 마음에 드는 걸 쓰면 될 거야.”
“역시 형이 있으니 든든하네요. 음악이 있는 거랑 없는 거랑 차이가 크거든요.”
“나도 좋은 스튜디오 만들어 놓고, 작업을 많이 하지 못 했는데 덕분에 기기도 사용하고 처음으로 영화 음악도 만들어 봤네.”
“그런데 정말 무료로 곡을 주셔도 괜찮아요?”
“네가 상업 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학교 과제용 단편 영화인데 돈을 받기도 그렇지 않니?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쓰렴.”
동민이 다른 감독들과 함께 서대진이 만들어 온 배경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 서대진은 에메넴이 작곡한 주제곡을 들어 보았다.
“와우! 미국에 이렇게 렙을 잘 하는 백인이 있었나? 이 사람 누구니? 어떻게 작업 의뢰를 한 거야?”
“에메넴이라는 힙합 가수인데, 언더에서 활동할 때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에요. 지금은 아마 닥터 드류랑 계약을 해서 더 이상 개인 작업을 의뢰하기는 힘들 거예요.”
“닥터 드류라면 그 프로듀서 닥터 드류 이야기 하는 거야? 엄청난 사람에게 곡을 받았구나.”
서대진이 감탄할 만큼 에메넴이 만들어 준 곡은 대단했지만, 그가 만들어온 배경 음악도 영화와 궁합이 훌륭했다.
“다니엘. 곡들이 정말 괜찮은 걸? 영화랑 잘 어울리는 게 이대로 쓰면 되겠어.”
“이상하면 어쩌나 걱정 했는데, 다행히 이정도면 쓸만 하군.”
한국에 자주 가는 쿠안틴은 서대진을 알고 있었지만, 웨즈 엔더슨과, 크리스토퍼 놀람은 그냥 로스앤젤레스에서 음악 작업을 하는 한국 뮤지션이라고 생각했다.
세 사람 모두 음악 선택을 까다롭게 하기로 유명한 감독 인데, 다행히 모두들 서대진이 가지고 온 곡들을 만족해했고, 동민에게 어떤 곡을 어디에 삽입할 건지를 물어 보았다.
동민이 주도적으로 촬영과 편집을 진행하긴 했지만, 자신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세 감독이 모이자 여러 부문에서 의견이 달라졌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 보니 조금 씩 완성도가 높아져 갔다.
그래도 동민의 생각과 방향이 90% 이상 적용 되었고, 작은 디테일에서는 뛰어난 세 사람의 조언을 받아들여 작업을 이어갔다.
자주 의견을 나누다 보니 작업이 중단되는 일이 빈번했지만, 모두 편집에는 베테랑 이었고, 상영 시간이 짧은 단편 영화라서 그런지 일주일 만에 모든 작업이 완료 되었다.
“세상에. 내가 이런 괴작의 탄생에 한 몫을 거두었다니, 기쁘면서 부끄럽고, 뿌듯하면서도 쑥스럽군.”
“이정도면 최고의 B급 영화로 역사에 남을 수 있겠군. 김치가 워낙 유명하지 않아 마이너로 묻힐 확률이 높긴 하지만, 김치라는 주제만 빼면 독립 단편 영화 중에 이정도 완성도를 가진 영화를 찾기는 어려울 거요.”
“다니엘 군은 자신의 첫 작품을 어떻게 생각 하나요?”
김치 히어로라는 혼돈의 카오스가 가득한 캐릭터를 탄생시키긴 했지만, 영화에 국뽕적인 요소가 가득 담긴 이스터 에그도 여러 개 숨겨 두었고, 정말이지 남에게 보여주지만 안으면 최고의 만족을 안겨주는 작품이 탄생했다.
“저는 2000% 만족 하고 있어요. 대중적인 평가나 흥행은 1도 신경 안 쓰고 오로지 만들고 싶은 것에만 집중해서 만들었거든요. 예산 문제로 조금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이런 영화에 자금을 쏟아 붙는 것도 욕먹을 일이겠죠. 여러분들 덕분에 자아를 실현할 영화를 만들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 드려요.”
동민의 감사 인사에 선명한 자신의 색깔을 가진 세 감독 역시 공감했고, 100%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데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다니엘. 이상하긴 해도 이렇게까지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영화제에 출품이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수상을 하게 되면 극장에서도 꽤 준수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영화가 완성 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숨은 공로자인 닐이 편집이 끝난 영화를 보고는 계속해서 상영을 하자는 설득을 했다.
“특히 액션 장면들은 비평가나 대중들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거예요. 좋은 쪽으로요. 분명 홍보하기에도 좋은 포인트가 될 거고요.”
“이 영화는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포함되어있어서 발가벗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기분이에요. 처음부터 상업적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이건 영원히 묻어 두는 거로 하고, 이번 경험을 살려서 졸업하고 상업 영화를 만들 때 참고하면 될 거예요.”
모두들 최소한 영화제에라도 나가 보는 게 어떻겠냐며 설득 했지만, 한국과 관련 된 내용이긴 하지만, 너무 미래 암시적인 요소가 많아 절대 대중에게 공개할 수가 없었다.
결국 모두들 영화의 주인인 동민의 의사를 받아 들여야 했고, 짧지만 즐거운 경험 이었다며 많이 배우고 간다며 다시 보기로 약속하고 떠났다.
“너희들도 이제 한국 가야지?”
“이제는 작업이 끝났다고 한국으로 쫓아내는 거예요?”
“그럼 남아서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고 돌아가. 비행기 표는 예매해 줄 테니까. 원하는 날짜 말하고.”
군대 후임들은 확실히 미국 스태프에 비해 행동도 빨랐고, 눈치도 영특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경험이 많은 할리우드 작업자들과 처음에는 실력차이가 많이 났지만, 빨리 배웠고, 촬영을 원활하게 진행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저희는 뉴욕이랑 동부 구경하고 돌아 갈 게요. 다음에 또 영화를 만들면 꼭 불러 주세요.”
“그래. 그때는 정식으로 고용해서 부를 테니 영어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렇게 동민의 사단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그들은 동민이 나누어 주는 경험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편집이 끝났다며? 필름 보내달라고 하니까 보안상 복사본을 만들 수 없다니 내가 출연한 영화를 보기도 힘이드네.”
“미안해요. 원본 하나만 있고, 사본을 만들기 애매해서 보내 줄 수가 없었어요.”
영화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직접 보고 싶다며 세탁소로 찾아왔고, 가장 먼저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 조니 데브와 리버 피닉서, 호아킨 피닉서가 영화를 관람했다.
“이게 뭐라고 말 하기는 어렵지만, 김치라는 주제는 확실하네. 영화를 보고 나니 머릿속에 김치 이미지가 선명하게 각인 되어 버렸어.”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를 먹어야겠네.”
세 사람은 영화 잘 봤다며 다른 작품을 만들게 되면 또 불러 다라며 돌아갔고, 다음으로는 주인공으로 출연한 휴이 잭맨과 라이온 레이놀즈가 완성된 ‘김치남’을 보러 왔다.
“내가 저런 옷을 입고 김치를 휘두르는 걸 보니 쪽팔리면서도 무언가 멋있고, 뿌듯하면서 부끄러운 기분이 드네.”
“나도 내면에 숨어있던 관종의 씨앗이 발아한 느낌이네요. 액션 장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혔네요.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보다 격투 장면은 더 멋있어요. 일본 에니메이션이랑 실사를 합친 느낌이라고 할까?”
두 주연 배우는 전반적으로 만족을 표했고, 자신들의 포트폴리오에 포함 시키겠지만, 김치남이 상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안타까워했다.
“나도 똑 같은 기분이에요. 그래도 차마 공개하기에는 아직 얼굴이 충분히 두껍지 못 하네요.”
이 영화는 분명 A 아니면 F를 받을 거라며 두 배우가 돌아갔고, 약속대로 마불 코믹스의 영화에 출연 시켜 주겠다고 했다.
이후로도 출연했던 배우들이 찾아와 영화를 보고 갔고, 앤젤리나와 드류 배리무어도 재미있다며 다음에 또 출연해 주겠다며 떡볶이를 먹고 갔다.
“오빠가 김치 연합의 대장이었네?”
“그렇지. 김치 공장에 내거니까 히어로들을 지원해 주는 김치 연맹의 맹주로 내가 출연했어.”
“얼굴이 나왔으면 좋았을 건데, 몸만 보여도 멋있긴 하네.”
제시카는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이 등장 할 만 한 역을 찾아보았지만, 철두철미한 동민의 시나리오에는 독보적인 연기력으로 영화를 정말로 B급으로 만들어 버릴 제시카가 맡을 역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위기를 잘 넘긴 동민은 영화가 재미있다며 상영을 했으면 좋겠다는 여자친구의 부탁 역시도 거절했고, 미래에 인터넷상에 영상을 올릴 수 있는 날이 오면 주요 장면을 편집해 올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아직 뮤튜브가 나오려면 더 기다려야 하지? 언제 웹 사이트가 만들어 지는지 기억이 안 나네.’
구골에는 이미 초기 투자를 마쳤고, 혹시나 하고 뮤튜브 주소를 종종 입력하고 있었지만, 아직 사이트가 나오지는 않았다.
뮤튜브가 서비스를 시작하는 년도는 2005년이기에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고, 동민은 뮤튜브가 생겨나면 이번에도 투자를 할 생각 이었다.
제시카가 동민이 만든 영화를 관람하고 돌아가자 뮤튜브 사이트 주소를 입력해 보며 넷플랙스와 구골, 아마존, 뮤튜브에 관한 생각을 했다.
“일단 2000년 1월까지는 온라인과 관련된 회사에 계속해서 투자를 해야지. 한국에 돈을 많이 넣긴 했지만, 저작권료도 꾸준히 나오고 출판사에서 예상보다 훨씬 더 수익이 많이 나와서 다행이야.”
친한 배우들이 세탁소로 찾아와 영화를 보고 가자 이번에는 소문을 들은 감독들이 동민의 영화를 보기 위해 세탁소로 찾아왔다.
“두 분이 같이 오실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어서 오세요.”
“한국에서 함께 작업을 한 사이니 자네가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는 데 안 볼 수가 있나?”
“마이크 베이 감독님도 요즘 한 창 잘 나가시던데 어떻게 시간을 내셨네요.”
올해 여름 아마게돈을 개봉한 마이크 베이 감독은 비평단에게 좋지 못 한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극장 수입은 5억 달러를 향해 달려가며 관객들에게는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함께 온 토니 스캇 감독은 빌 스미스가 주연으로 에너미 오그 스테이츠라는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두 감독은 동민이 만든 ‘김치남’을 시청 하더니 영화가 끝나고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독립 단편 영화이다 보니 자네의 전문 분야인 군사 장비가 나오는 장면을 만들 수는 없었겠군.”
“학교에서 예산의 상한선을 정해 놔서 이 정도가 한계였어요. 이것도 꼼수를 많이 부린 거예요.”
“이상한 컨셉의 히어로는 주목을 받기 싫어서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가? 우리도 한국에 잠시 있었으니 김치는 잘 알고 있지만, 일반 대중은 이해하기 힘든 영화를 만들었군.”
두 감독은 학교 교수님 보다 더 살벌하게 동민의 영화를 물고 뜯고 씹으며 분석했다.
< 197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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