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187화 (187/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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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민은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민망해졌는지 주제를 바꿔 한국에서 만들어질 영화에 관해 물어 보았다.

“한국에서 괴수 영화를 만들 거라면서요? 그것도 할리우드에서 촬영을 할 거라고 하던데요?”

“충무로에서도 몇 명만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역시 동민은 소식이 빠르구나.”

“할리우드 현지 촬영관련해서 사전 조사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어서요.”

“김기덕 감독님의 1967년 작 영가리를 리메이크 하는 거로 알고 있어.”

“주라식랜드랑 조만간 개봉할 고질나로 사람들의 눈이 많이 높아졌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대괴수 영가리는 김기덕 감독이 1967년에 만든 작품으로 무려 오영일과 이순재, 남정임이 주연으로 연기했었다.

당시로서는 비교적 큰 예산인 3천만 원에 만들어졌고, 일본 토에이의 특촬물 전문가 6명을 초청해 촬영했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전차와 전투기들이 거의 다 자위대 장비이지만, 한국군 장비로 마킹을 해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전형적인 60년대 영화로 내용상 반공물로 간주되기에 종종 어이없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정극영화 중심이던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SF/특수효과/장르물이고 많은 제작비를 들인 만큼 역사적 가치도 크고 흥행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60년대 감성이 느껴지긴 하지만, 꽤 재미있었지. 배우들의 젊은 모습이랑, 옛날 말투를 보는 것도 흥미로워.”

“영화광 아니랄까봐 그걸 다 기억하는 거예요?”

“나나 호준이는 당연히 알고 있지만 동민이 넌 대괴수 영가리를 알 나이가 아닌데?”

“이번에 리메이크 작품을 만든다고 해서 원작을 찾아 봤죠. 삼촌이랑 부모님도 알고 계셨고, 꽤 유명 했더라고요.”

사실 심영래가 연출하는 영가리는 대괴수 영가리의 리메이크작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전작 괴수 영화를 특촬물로 만들었다가 크게 실패한 뒤 특수효과를 모두 CG로 만들고, 배우도 전원 외국인으로 제작한다.

처음부터 해외 개봉을 염두에 두었기에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는데, 캐스팅을 할리우드 업체에 외주를 맡겨서 인지 전원 무명 초짜 배우들이 대거 참여하고 엄청난 발 연기를 선보이게 된다.

“영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긴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괴수 특촬물에 집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이제는 조금 더 작품성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지.”

“저는 괴수물 좋아해요. 대신 현대적인 재해석을 더해야 하겠죠. 결국은 그만큼 각본이 중요하더라고요.”

미래에 한강에 나타난 괴수 영화로 흥행기록을 갱신하는 봉호준 답게 영가리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고, 금방 심오한 대화가 오갔다.

동민은 영화 보다는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기획상품으로 만든 치킨너겟이 더 유명해 지고, 훨씬 더 많은 수익을 거두는 사실을 잠시 떠올렸다.

“요즘 유명한 영화는 따로 있던데 시뤼는 어때요? 최근에 촬영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시뤼가 지금 한국 영화판에서 가장 유명하긴 하지. 배우들을 모조리 캐스팅하는 바람에 다른 영화들이 어려워졌다고 하다라고.”

대한민국 영화 역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는 시뤼 작년 겨울부터 제작에 들어가 일 여년간 준비를 마친 다음 1999년 개봉 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한국 영화라고 하면 볼 영화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시간 때우기 위해 보거나, 할리우드나 홍콩영화 좌석이 매진되면 보는 취급을 받아왔다.

스크린쿼터제로 그나마 한국 영화의 명맥을 이어갈 수는 있었지만, 흥행에 크게 성공하는 작품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 상섬그룹의 영상산업단에서 사업을 철수하기 전 마지막으로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 시뤼였는데 아직 IMF의 여파가 남아 있기에 다들 100만 관객이나 넘길 수 있을까 하고 예상했다.

막상 영화를 개봉하니 관객 동원 속도가 너무 빨라 제작진도 당황하게 되고 예상치의 7배에 가까운 693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흥행 기록을 달성하고, 지금까지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인 103만 명의 서편제를 아득히 넘어서고, 역대 영화 최고 흥행작인 타이탄익의 서울 관객 226만 명을 넘긴다.

시뤼 이후 한국 영화도 돈을 내고 볼 만한 재미있는 영화 대우를 받게 되고, 무엇보다 영화로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예시를 보여주면서 영화 산업에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제가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비에 투자해서 돈을 버는 건 알고 계시죠?”

“일 년에 만들어 지는 수백 편 중에 성공할 영화만 골라야 하는 거잖아. 블록버스터 영화는 제작 규모가 커서 잘못 투자했다가는 회사가 휘청거린다던데?”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영화는 얼마나 돈을 쓰는 거야?”

“이번에 타이탄익이 제작비 기록 갱신을 하긴 했는데 블록버스터 기준으로 1억 달러 정도 드는 것 같아요. 평균은 5천만 달러 라고 생각 하시면 되겠네요.”

영화 한편을 만드는데 지금 환율 2천원을 적용하면 1천억 원에서 2천억 원이나 들여 영화를 만든다는 말에 두 사람이 기겁 했다.

타이탄익은 제작비 2억 달러의 벽을 넘어섰다고 하자 4천억 원이라는 단위는 상상도 되지 않는 다며 혀를 찼다.

“그나저나 제가 이런 일은 오래해서 어느 정도 촉이 있거든요. 이번에 만드는 시뤼도 대박이 날 것 같아요. 두 분 혹시 여유자금이 있다면 한 번 투자 해 보세요.”

“나는 작년에 영화 만드느라 여기저기서 돈을 빌린 상황이라 투자는 생각도 못하겠네. 호준이도 충무로에서 막내 작가 생활 하고 있으면 돈이 없을 건데?”

봉호준은 알고보면 금수저 출신이라 여유자금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박찬옥의 말데로 박봉 중의 박봉으로 유명한 충무로 막내 작가라 수입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어디 보자. 아마 시뤼 제작비가 23억 정도 될 거예요. 홍보비까지 포함하면 30억 정도 들겠네요.”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네가 구체적인 제작비를 어떻게 알아?”

“제가 하는 일이 이런 거라서 척 보면 알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역대급 예산이라고 하는데, 150만 달러면 할리우드에서는 독립영화 수준이네요.”

할리우드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적은 금액으로 보이지만,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는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상섬그룹 영상사업단에 투자를 받았지만,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했다.

일단 배우들의 개런티를 인센티브 형식으로 후불로 정했고, PPL도 본격적으로 받아들여 거의 모든 장면에서 스폰서의 로고가 등장한다.

주연 배우인 한성규 마저 출연료를 겨우 2,500만 원만 받고 인센티브로 45만 관객 돌파 시 1인 당 500원을 받기로 했는데, 그 결과 러닝 개런티로 12억 원을 받게 된다.

“그래서 너도 시뤼에 투자 하려고?”

“아니요. 저는 할리우드에서 투자 하는 거로 충분해요. 한국 영화에 투자해서 대박이 난다고 해도 금액 대 자체가 달라서 티도 안 나고, 미국 법인이 한국 영화에 투자하려면 은근 복잡해서 시도하고 싶지 않네요. 두 분이 저 대신해서 투자해 주세요. 제작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요.”

동민이 박찬옥과 봉호준에게 1억씩 줄 테니 대신 투자를 해 달라고 했고, 명의를 빌려주는 대신 돌아오는 수익금의 절반만 받겠다고 말했다.

“그럼 너한테 너무 손해 아니야? 그러다 1억도 못 받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한국 영화에 기부 했다고 생각해야죠. 그런데 아마 대박 날 것 같네요. 세금 문제도 복잡하니 세후 수익의 절반만 주시면 돼요.”

두 사람은 얼떨떨해 했지만, 동민의 돈 인데다, 이번 기회에 영화에 투자하는 경험도 한 번 해 보고 싶었기에 제안을 받아 들였다.

“돈 많은 동생을 알고 있으니 좋네. 다음에 내가 영화 만들면 투자해 줄 거야?”

“작년에 만든 영화를 보니 고민을 해 봐야겠네요. 시나리오 보고 마음에 들면 투자할 수도 있고요.”

동민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성장하는 두 사람과 늦게까지 영화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 출국하기 전 시간을 내어 SN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남을 만나러 갔다.

“잘 왔네 동민 군. 자네가 제대를 한지 벌써 일 년이나 지났군.”

“수남 대표님은 아주 잘 지내신 것 같던데요? 새로운 도전이 아주 잘 통했더라고요. 회사도 많이 성장 하셨겠어요.”

“아이들이 열심히 해 주기도 했고, 사랑을 받으면서 바쁘게 지내고 있긴 한데, 나라가 힘들어 지면서 살짝 성장에 발목을 붙잡힌 상황이네.”

이수남이 키우는 남녀 아이돌 그룹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10대와 20대의 구매력을 재평가 하게 되었지만, 국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나빠지면서 정품 음반을 사지 않고, 불법적으로 테이프와 씨디를 복사해서 듣는다고 말해 주었다.

“원래도 불법 음원시장이 크긴 했어도, 팬이라면 정품 음반을 구매했는데, 확실히 구매 지수가 떨어지고 있어. 콘서트도 하고 싶은데 나라 상황이 안 좋아 고민이 많다네.”“아마 당분간 불법 복제는 계속 이어질 거예요. 제가 알아보니까 MP3라고,디지털 음원이 조만간 발표 될 건데 파일 형식이라 복사하기가 정말 편하거든요. 지금은 힘들더라도, 팬덤을 쌓으셔서 콘서트랑, 굳즈 판매에 집중 하시는 게 매출에는 더 도움이 될 거예요.”

그나마 SN 엔터테인먼트는 남녀 아이돌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상황이 양호한 편이었지만, 다른 기획사는 아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아이돌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시대라 1세대 아이돌 치고 가난하게 데뷔하고, 고생을 하지 않은 이들이 없지만, 그 중에도 특히 고생한 그룹이 지금 일산 어디에선가 힘들게 살 고 있었다.

갓식스라는 남자 5 여자 1명의 혼성그룹으로 준비 중이던 아이들은 97년 중순 서초구 양재동의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도 있었는데,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회사 사정이 급격하게 기울었고, 양재동 연습실을 빼고 일산에 있는 숙소로 보냈다.

너희들끼리 연습하면서 살고 있으라는 통보와 함께 얼마 후 지원도 끊기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겨울인데 고생하고 있겠네. 찾아가서 장이라도 봐 줘야겠다.’

이수남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떠오르는 아이돌 그룹이 있었고, 그들을 만나러 수소문을 하여 일산으로 찾아갔다.

“우와! 여기 일산 맞아? 완전 시골인데?”

동민이 기억하는 일산은 인프라가 잘 갖춰진 신도시였지만, 아직은 아파트촌만 있는 산과 들, 논밭으로 둘러싸인 시골 이었다.

갓식스가 머물고 있는 숙소는 외각에 있는 낡은 건물에 반 지하였는데, 건물 뒤에는 묘지가 있었고, 절대 사람이 살 곳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혹시나 하고, 문을 두드리자 거지 같이 꼬질꼬질한 남자 아이들이 문을 열고 나왔다.

“회사에서 온 거예요? 배가 너무 고파요. 왜 전화 안 받는 거예요? 수도가 얼어서 물도 안 나와서 씻지도 못 해요.”

아이들은 수도가 얼어서 씻지를 못해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까지 걸어가 화장실에서 겨우 씻고 지낸다고 말했다.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극한생활을 하고 있는 연습생들을 직접 보자 예상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이었고, 동민은 그들을 데리고, 일산 구도심에 있는 목욕탕으로 갔다.

“일단 씻고 나와요. 나는 장을 좀 보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정말로 굶어 죽을 뻔 했어요.”

아이들이 씻는 동안 동네 마트에서 대용량들로 장을 본 다음 숙소에 가자 한 여자아이가 집을 치우고 있었다.

“어? 처음 보는 얼굴인데, 혹시 회사에서 오셨어요?”

동민이 식재료를 잔뜩 가지고 나타나자 여자 연습생이 기쁜 얼굴을 했고, 동민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중간에 하차했다는 연습생이 이 사람 이였구나.’

< 187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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