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145화 (130/265)

< 145 >

육중한 굉음을 뿜어내는 1,200마력짜리 MTU MB-871 Ka-501 수랭식 디젤엔진이 35톤을 넘어서는 10m에 가까운 쇳덩어리를 최대 시속 65km/h로 움직이는 모습은 남자의 본능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갓 완성되어 깔끔한 도장을 입힌 K-1 새 차(?)도 좋지만, 야지에서 진흙과 먼지를 뒤집어쓴 야성적인 모습도 마초적인 매력을 뿜어내었고, 차량으로는 다니기 힘든 언덕과 물을 건너 충격파를 발산하며 44구경장 120mm 활강포를 쏘아내는 장면은 카타르시스의 쾌감을 선사했다.

“영화 필름으로 촬영하고, 현장에서 직접 녹음을 뜨니 현장감이 차원이 다르네요.”

“이렇게 대규모로 탱크가 기동하고 발포하는 모습을 찍을 기회는 흔한 게 아니야. 두 번 다시 없을 수도 있으니 촬영할 때 잘 담아 두어야 해.”

토니 스캇 감독의 말처럼 대한민국같이 전차와 박격포를 진심으로 운영하는 나라는 많지 않았고, 좋은 지역에서 수십 수백 대의 기갑 차량들이 동시에 발포하는 모습도 북한과 가까운 거리에서 대치하고 있는 한국인 아니라면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맛깔 나는 할리우드식 화면을 잘 뽑아내기로 유명한 토니 스캇 감독은 공군과 해군을 거치면서 부쩍 실력이 늘어난 동민의 보조를 받자 훨씬 더 정교하고, 살아있는 듯 한 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

기갑 부대 특유의 압도적이고 파괴적인 느낌을 살려내고 대한민국 국뽕도 한 스푼이 아닌 한 움큼 집어넣고 홍보 영상을 만들고 있는데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오더니 조금씩 가까이 다가왔다.

“저건 미군 시누크 수송 헬리콥터인데요? 미군 측에서 누가 오나 보네요.”

대한민국에는 많은 주한미군 기지가 있었고, 을지포커스 같은 한미연합 군사 훈련도 매년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육군 홍보 영상을 만들고 있기에 미군에서 찾아올 사람이 없었는데 누군지 궁금해하고 있으니 착륙한 시누크에서 키가 큰 금발의 백인 남자가 캐주얼한 복장에 선글라스를 쓰고 내렸다.

“다니엘. 이런 영상을 만드는데 나를 안 부르면 어떡하나.”

“새로운 영화 만드느라 바쁠 줄 알았는데 여기는 어떻게 온 거예요?”

“닐에게 이야기를 들었지. 마침 주한미군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찾아올 수 있었어.”

시누크를 타고 나타난 사람은 올해 나쁜 아이들로 성공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감독 타이틀을 단 마이크 베이였다.

“안녕하세요. 토니 스캇 감독님. 여기서 뵈니 반갑네요.”

“자네였군. 그래. 이런 환경을 좋아할 만한 사람이라면 자네가 빠질 수 없지.”

두 사람은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고, 다른 감독의 등장에 토니 스캇이 싫은 티를 냈지만, 폭약을 다루는 그의 실력은 인정하고 있었다.

“확실히 자네가 합류한다면 더 화려한 영상을 만들 수 있겠어.”

“화력. 더 많은 화력을 투입할 수 있겠네요. 합법적으로 전차를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되죠.”

자동차 추격 장면과 화약이 폭발하는 장면, 로보트가 변신하고 싸우는 장면까지 잘 만드는 마이크 베이 감독 역시 기갑부대 영상을 만들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쫒아내지는 못 하겠군. 자네 실탄을 발사하는 탱크에 타 본 적은 있는가?”

“있겠습니까? 설마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건 아니겠죠?”

토니 스캇 감독의 물음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 마이크 베이에게 군복을 입히고, 보호 헬멧과 귀마개를 착용시킨 다음 K-1 전차에 탑승시켜 직접 실탄을 발사하는 장면을 바로 앞에서 보게 해 주었다.

콰쾅!

엄청난 충격파를 발산시키며 흙먼지를 일으키는 전차에서 내린 마이크 베이가 동민과 토니 스캇에게 돌아와 말했다.

“세상에. 잠시 영혼이 빠져나갔다가 돌아온 것 같군요. 살짝 지린 것 같기도 하고요. 충격량이 엄청난데 이걸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대단하지? 저 육중한 쇳덩어리가 움직이는 모습도 멋있지만, 120mm 포탄을 발사할 때는 오금이 저릴 정도라니까.”

화력 덕후 두 사람은 신나하며 어떻게 영상을 만들지 떠들었고, 마이크 베이의 합류로 대한민국 육군 홍보 영상은 한층 더 화려하게 만들어졌다.

“엄청난 걸 만들어 버렸네요.”

“이 정도면 지구 방위대 수준인데? 허위 과대 포장으로 고소를 당하지는 않겠지?”

“모두 현 대한민국 육군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체로 촬영했고, 몇 장면만 군사기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수정했으니 오히려 더 안전하죠.”

“문제는 기밀 유출을 막기 위해 수정한 장면이 너무 멋있다는 거죠.”

살짝 애매한 몇 장면이 포함되었지만, 군 검열에는 모두 통과되었기에 문제될 만한 사항은 없었다.

오히려 문제라고 한다면 이번 홍보 영상으로 인해 수뇌부의 기준이 너무 높아져 다음에 작업할 이들이 고생하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토니 스캇과 마이크 베이가 돌아가면 그 작업을 할 사람이 바로 동민이었다.

“재미는 있었지만, 예상보다 한국에 너무 오래 있었군. 약속대로 500만 달러 투자는 받아 가도록 하지. 김치는 시도해 보겠지만, 좋아할지는 모르겠군.”

“나도 토니 감독님이랑 같이 돌아가야겠어. 이번에 개봉한 영화 반응이 좋아서 다음 영화 일정이 잡혔거든. 션 코넬리랑 니콜라스 게이지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야. 이번에도 투자할 거지?”

마이크 베이가 토니 스캇의 이야기를 듣고 눈치 없이 자신의 영화에도 투자하라고 했는데 동민은 생각해 보겠다며 일단 돌아가라고 말했다.

내년에 개봉하는 알바트레스라는 영화는 니콜라스 게이지를 본격적인 슈퍼스타로 만들어 주고, 마이크 베이 역시 자신의 스타일을 정립하게 되는 영화다.

신입 감독으로는 달성하기 힘들 3억 3천만 달러라는 커다란 수익을 거두기에 당연히 투자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단 토니 스캇 감독이 돌아가면 따로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럼 우리는 이만 가도록 하지. 다니엘 자네도 남은 군 생활 건강하게 잘 마치고 할리우드에서 보도록 하세. 마음껏 촬영할 수 있는 이런 군 생활이라면 할 만한 것 같기도 하군.”

“난 그 건빵이라는 간식 좀 챙겨 줘. 튀겨서 설탕을 뿌리니까 정말 맛있더라.”

군용 건빵을 잔뜩 선물 받은 마이크 베이와, 국방부 홍보 대사로 인정받아 훈장까지 받은 토니 스캇 감독이 할리우드로 돌아갔고, 동민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방송계와 영화계에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군인의 신분이기에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고, 우정의 부대 주 피디에게 로비가 많이 들어왔다.

“동민군이 대단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세계적인 감독님과 그렇게 까지 친할 줄은 상상도 못 했네.”

“두 감독님은 사실 별로 친한 사람은 아니에요. 카메룬 감독님이랑, 팀 볼튼 감독님, 스필버그 감독님이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알아왔고, 나혼자 집에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님이랑도 꽤 오랜 기간 함께 작업을 했네요. 작년에 상을 받은 쿠안틴 감독이랑은 데뷔하기 예전부터 친했고요.”

“쿠안틴 감독님 작품에는 조감독으로 활동까지 했다면서? 네 이야기 듣고 영화 마지막 크레딧에 찾아보니 정말로 다니엘 킴이라고 있더라.”

두 감독이 다녀간 이후로 동민을 바라보는 주철한 PD의 눈에서는 꿀이 떨어졌고, 우정의 부대 기획에도 동민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번 홍보 영상을 너무 잘 만들어서 방송에 나가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기대되면서도 걱정되네.”

“공군 영상 반응은 어땠어요?”

아직 해군과 육군 영상은 방송에 나오지 않았고, 가장 먼저 만들었던 공군 영상은 우정의 부대 오프닝 영상으로 방영되었다.

“파일럿의 인기가 엄청나게 올라갔다고 하더라. 원래도 공군 사관학교에서 파일럿 지망생이 많았는데 중, 고등학교에서 장래희망으로 파일럿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데.”

“저도 그 나이에 그 영상을 봤으면 그랬을 것 같네요. 톱건 만드신 감독님이라 그런지 분명 한국이 맞는데 한국이 아닌 것처럼 멋있게 나왔더라고요.”

하지만, 처음 한국군과 호흡을 맞춰 만든 공군 영상보다 요령이 생긴 해군 홍보 영상이 훨씬 더 국뽕이 들어가 멋있게 완성되었고, 두 번의 협업으로 능숙해진 데다 마이크 베이까지 합류한 육군 영상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뭐. 잘 만들어졌으면 좋은 거죠.”

“그렇긴 하지. 원래도 우정의 부대는 군대 협조를 잘 받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VIP 대우까지 해 주더라고. 그리고 너도 아마 포상 휴가 받을 수 있을 거야. 저번에 육군 본부에서 연락이 와서 다녀왔는데 네 이야기를 하시더라고.”

국방홍보원에서도 토니 스캇 감독의 방한은 동민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대중에게 긍정적인 군 이미지를 심어주고, 현역 군인에게는 자부심을 주는 홍보 영상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기에 특별 포상 휴가를 줄 거라고 했다.

“일병. 김동민. 부대 복귀를 신고합니다!”

“그래. 매번 다른 부대 돌아다니면서 훈련 촬영하느라 고생이 많다. 이번 홍보 영상은 위쪽에서도 반응이 아주 좋더라.”

우정의 부대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촬영하다 보니 용산에 있는 국방홍보지원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토니 스캇 감독이 돌아가면서 큰 프로젝트가 끝났기에 부대로 복귀했더니 주철한 PD의 말대로 9박 10일짜리 포상 휴가가 동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대는 네가 없어도 잘 돌아가니까 일병 휴가 더해서 써도 돼.”

“감사합니다. 혹시 복무 중에 해외에 다녀오는 것이 가능합니까?”

“가족이 해외에 있을 경우 가능한데 너는 부모님이 한국에 계시지만, 미국에서 쭉 살아왔고, 함께 거주했던 친척 방문 목적이면 가능하겠다. 원래 부모님이 해외에 계시면 비행기 비용도 지원이 나오는데 넌 아마 받기 힘들 거야.”

“괜찮습니다. 그러면 이번 휴가에 잠시 미국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부모님이야 방송국과 부대를 오가면서 종종 뵈었고, 이번 기회에 미국에 다녀오기로 했다.

“로스앤젤레스에 갔다 온다고? 그래. 제시카가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건데 갔다 오는 것도 괜찮겠구나.”

“엄마가 옷이랑 악세사리 선물 사 뒀으니 주고 오려무나.”

동민이 휴가 동안 미국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부모님도 허락하셨고, 오랜만에 제시카도 볼 겸 놀래켜 주기 위해 미리 말하지 않고 몰래 미국으로 출발했다.

“비행기 값 지원해 줬으면 이코노미 탔어야 했을 건데, 내 돈 내고 일등석 타는 게 더 편하지.”

이상한 곳에 국뽕이 있는 동민은 한국군 군복을 입고 퍼스트 클라스에 올랐고, 승무원과, 승객들이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공항에서도 미국에서 볼 수 없는 한국군 군복을 입은 동민을 다들 쳐다보았다.

시선을 은근 즐기던 동민은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닐의 차를 타고 삼촌의 세탁소로 이동했고, 한동안 운전하지 못한 자신의 머스탱을 몰고 제시카가 진학한 고등학교로 찾아갔다.

피부도 살짝 그을리고, 몸이 좋아진 동민이 군복을 입고 학교에 나타나자 학생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았고, 한국에서야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군복이 미국에서는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제시카가 어디 있으려나? 점심시간이니 카페테리아에 있겠지?”

제시카를 찾기 위해 카페테리아로 가자 그동안 조금 더 성숙한 제시카가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몰래 다가가고 있는데 미식축구 쿼터백으로 보이는 3학년이 나타나 제시카에게 작업을 걸었다.

< 145 > 끝

ⓒ 돈많을한량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