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142화 (127/265)

< 142 >

동민이 받은 명함에는 MBS 방송국 주철한 PD라고 적혀 있었다.

“너 오늘 복귀한다고 했더니 내일 찾아오겠다고 하더라. 이등병치고는 찾는 사람이 정말 많구나.”

담당 장교의 말대로 다음 날 오전 국방 홍보대로 주 PD가 동민을 만나러 직접 찾아왔다.

“네가 동민이구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만나서 반갑구나, 주철한이라고 한단다.”

“안녕하세요. 일요일 밤에는 잘 보고 있습니다.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가 뭐라고 얼굴에 금칠을 해주니? 아쉬워서 찾아온 사람이 나인데.”

주철한 PD는 사람 좋아 보이는 서글서글한 얼굴에 열정이 느껴지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만수가 네 이야기를 많이 해 주더라. 그 녀석이 고등학교 다닐 때 내가 신입 국어 선생님이었거든.”

“교직에 계시다가 방송국으로 이직하신 거예요? 대단하시네요.”

동민은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MBS의 간판 PD인 주철한을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최만수와 사제지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미래에 방송국장이 되는 손석히 아나운서의 자형이기도 하지.’

그는 현제 MBS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일요일 밤에라는 프로그램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었고, 동민은 자신에게 찾아온 이유도 잘 알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전에 동민 군이 촬영한 UDT 다큐멘터리와 해군 홍보영상을 봤는데 너무 잘 찍어서 도움을 받으려고 찾아왔어. 내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 초반에 부대 소개 영상이 매주 나오는데 동민 군 실력이면 지금까지 만들어온 영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작품이 나올 것 같아서. 이미 방송국이랑 군대에는 협조 요청을 마쳤고, 자네만 결정 내리면 된다네. 강요하는 건 아니고, 함께했으면 해서 부탁하려고 찾아왔어.”

“안 그래도 군대에 있는 장비로 촬영하는 데 한계가 있었는데 그런 부탁이라면 제가 감사하죠. 당연히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전에 촬영한 UDT 훈련의 경우 방송국 장비와 촬영 팀이 있어 그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 낼 수 있었지 군대에 있는 장비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동민이 상부에 촬영 장비를 사 달라고 할 수도 없어 난처한 상황이었는데 때맞춰 주 PD가 찾아와 자신의 팀에 합류해 달라고 한 것이다.

“다행이군. 이미 상부에는 이야기를 마쳤으니 바로 다음 주에 촬영을 진행하도록 하세. 이번에 찾아갈 부대는 81mm 박격포 부대니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준비하고 있게나.”

화력! 더 많은 화력을!

대한민국 군대 중 최강 부대를 꼽으라고 한다면 여러 의견이 나오겠지만, 화력 면에서는 포방부 아니 포병부대가 가장 강력하다.

한국 지형 특성상 산악 지형이 많기에 곡사 형태의 박격포가 유리한 상황인 데다 수도인 서울이 북한과 가까운 이유로 방어 형태의 포 위주 운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해군이나 공군의 경우 세계적으로 군사력이 밀리지만, 육군포병 화력만큼은 세계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포방부 소개 영상 촬영을 한다는 소리에 동민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날뛰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 팀에 합류하는 것으로 알고 다음 주에 사람을 보낼 테니 해당 부대에서 보게나.”

“제가 시나리오 몇 개를 준비해도 괜찮을까요?”

“우리도 준비하겠지만, 후보는 많을수록 좋으니 마음껏 준비하게나.”

주 PD가 돌아가고, 동민은 포방부 홍보 및 소개 영상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만들어 보았다.

“여기는 지난 UDT 훈련 다큐멘터리와 홍보 영상을 만든 김동민 이병입니다. 앞으로 우리 프로그램에 합류하기로 했으니 잘 대해 주세요.”

아주 드물게 현역병이 방송국 인원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복무를 하게 되었고, UDT 영상을 보았던 스태프들은 동민을 격하게 환영해 주었다.

사전 회의에 참석한 동민은 분위기를 파악할 겸 얌전히 있다가 너무 틀에 박힌 군대 영상을 만들려는 제작진에게 준비해 온 콘티를 보여 주었다.

“재미는 있는데 너무 파격적이지 않을까?”

“장교들이 보기에는 경박할 수는 있겠지만, 일반인과 군대를 가야 할 젊은 친구들의 입맛에 맞춰 만들어 보았습니다.”

“확실히 81mm 박격포는 기피 보직이라 티오가 항상 부족하다고는 하더군. 편견을 바꾸기에는 좋은 시도일 수도 있겠어.”

박격포병으로 차출되면 모두들 위로를 할 정도로 세간에 흉흉한 소문이 돌았는데 81mm는 진짜 보병들의 무덤이었다.

크게 포판, 포다리, 포열로 나뉘는 81mm 박격포는 각각 10kg이 넘었는데 가장 무거운 포신은 15.5kg이었다.

박격포 특성상 직접 들고 행군을 하며 훈련을 해야 했는데 최대한 전시상황에 비슷한 훈련을 하다 보니 산악 지형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중에서도 포다리가 가장 최악인데 계속 풀리는 다리와 가늠자 거치대, 고정나사 등 여기저기 튀어나오고 움직이는 곳이 많기 때문에 들고 다니기 지랄 맞았다.

무거운 것보다 튀어나온 부분이 어깨를 누르면서 어정쩡한 자세로 운반해야 했고, 관절 분쇄기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다.

이렇게 병사들을 갈아 버리는 박격포이지만, 그만큼 가성비가 뛰어나고 전시에 유용하게 운영되는 병과이다 보니 대한민국 육군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보도록 하지. 자네 시나리오대로 촬영해도 겹치는 장면이 꽤 있으니 그 부분은 영상을 공유하면 될 것 같고, 현역 포병들에게 두 가지 영상을 보여주고 직접 선택하도록 하면 되겠네.”

“네 알겠습니다. 놀랄 만한 영상을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 PD의 허락을 받은 동민은 포병 부대에 부탁해 소대 하나를 지원받았고, 병사들에게 시나리오를 건네주며 연기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일주일 뒤 두 가지 버전의 영상이 완성되었고, 스태프들이 모여 시청하는 시간을 가졌다.

“깔끔하게 잘 만든 것 같은데? 박력 있고, 국방부에서도 만족할 만한 영상으로 만들었네.”

방송국 팀에서 만든 포병 부대 소개 영상은 FM 형식으로 일사불란한 병사들이 능숙하고 빠른 모습으로 박격포를 발사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확한 사격과 폭발하는 표적 장면을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포방부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정석적인 영상이 끝나자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다음으로 나올 동민의 영상을 기대했다.

“제가 기획한 영상은 군대 홍보라기보다는 기피되고 있는 포병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시청해 주시길 바랍니다.”

동민의 간단한 소개 이후 영상이 재생되자 묵직한 베이스의 힙합 음악이 흘러나왔고, 낮은 앵글로 탄약고에서 병사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나오면서 할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음악에 맞춰 수백 수천발의 포탄 앞에서 병사들이 랩을 했고, 포신 양쪽에 포판을 달아 벤치 프레스를 하면서 갱스터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영상 초반부에는 나쁜 남자의 모습을 잔뜩 보여 주다 강한 남자로 변한 병사들이 화끈하게 박격포를 발사하는 장면으로 넘어갔고, 강력한 폭발과 함께 날아가는 포탄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다.

수백 개의 박격포가 동시에 발포하는 장면도 편집해서 만들었는데 보는 이들은 막강한 화력에 압도되었고, 탄착되는 장면은 외계 괴생명체가 공격당하는 것과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으로 바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짧은 액션영화를 본 것 같네요.”

“너무 재미있긴 한데 국방부에서 허가해 주지 않을 것 같은데요?”

“군 고위 간부가 아닌 입대 전의 젊은 남성을 타깃으로 만들었으니 포병의 이미지를 개선하기에는 이 영상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동민이 만든 충격적인 영상을 보고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끝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현역 포병들이 직접 선택하게 두 가지 영상을 보여주기로 했다.

결과는 당연하게 동민의 압승이었고, 국방부에서는 공식 홍보 영상은 방송국에서 만든 것을 사용하고, 군내 행사나 입대 홍보 시에는 동민이 만든 영상을 사용하기로 결정 내렸다.

“처음부터 기대하기는 했는데 상상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냈어. 확실히 해외 힙합 뮤직비디오를 보는 느낌이야. 반응이 대단하던걸?”

“사실 제작 허가를 못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원까지 해 주셔서 만들 수 있었네요.”

“이번 행사에서 수천 명의 포병 앞에서 자네 영상을 틀기로 했으니 반응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겠네.”

부대 소개 및 홍보 영상은 MBS에서 방송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앞부분에 들어가는 것이었고, 동민은 본격적인 행사를 보기위해 함께 연병장으로 이동했다.

행사가 시작되자 방송국에서 만든 영상이 먼저 나왔고, 연이어 동민이 만든 영상이 나오자 포병 병사들이 환호했다.

바로 이어 군인들이 최신 유행곡에 맞춰 춤을 추었고, 오프닝 무대가 끝나자 키가 작은 사회자나 나와 인사말을 했다.

“안녕하세요. 전국에 계신 국군 장병 여러분. 그리고 수많은 시청자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 하셨습니까. 국군 장병 여러분의 뜨거운 함성과 밝은 미소를 듣고 보기 위해서 강원도 전방 부대까지 찾아온 여러분의 뽀빠이 인사받으세요. 필승!”

동민이 합류한 군인 위문 예능 프로그램은 MBS에서 기획해 1989년부터 시작된 우정의 부대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주철한 PD의 대표 작품이기도 하고, 방송 초기에는 군대 위문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을 수가 없다며 찬밥 신세를 받았지만, 예상 밖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MBS의 대표 히트작으로 자리를 잡았다.

프로그램 진행자로 뽀빠이 이상룡이 마이크를 잡았고, 군인들을 넘어 전국민이 즐겨 보는 방송이었다.

“대한민국 포병의 화력이 막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고질라를 잡을 정도로 강력한 줄은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넘어 지구를 지키는 역전의 용사입니다.”

“와~~~!”

오프닝 영상을 본 진행자가 재미있는 멘트를 했고, 우정의 부대를 손꼽아 기다린 병사들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격한 호응을 보냈다.

“먼저 여러분을 위한 무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랄라의 날개 잃은 선녀!”

한창 활동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4인조 혼성그룹 랄라가 나오자 연병장이 떠나가라 함성이 쏟아져 나왔고, 꽤나 노출도가 있는 의상을 입은 여가수가 안무를 할 때마다 병사들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정도로 집중해서 무대를 관람했다.

랄라의 위문 무대가 끝나자 병사들이 무대에 올라와 장기자랑을 했고, 상품인 포상휴가를 쟁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끼를 발산했다.

다음으로 청순 글래머로 인기 있는 탤런트 김예수가 나와 장병과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상품으로 병사들 간의 경쟁을 시켰고, 우승한 병사는 모든 이의 부러움을 샀다.

“김예수 씨 같이 예쁜 분을 보니까 어떻습니까?”

“반갑습니다.”

김예수와 데이트권을 획득한 병사가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이며 빵 터지는 대답을 했다.

“어머니께 한 말씀 해 주세요. 좋은 며느릿감 데리고 간다고요.”

진행자의 재치 있는 말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병사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큰 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니~! 갑니다~!”

김예수가 병사와 팔짱을 끼고 무대 밖으로 나가자 어느덧 마지막 코너가 다가왔다.

“지금 무대 뒤에는 여러분의 어머니 한 분이 먼 길을 올라와 아들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 142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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