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138화 (123/265)

< 138 >

동민은 처음 보는 운전병이 나타나 자신을 포스타 차량에 태워 어디론가 이동하는 상황에 황당했지만, 나쁜 일로 잡혀가는 것 같지는 않아 조금 긴장을 풀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갑작스럽게 호출을 받아서요.”

“참모총장님께서 김동민 이병을 호출하셨습니다. 지금은 육군 본부로 참모총장님을 뵈러 이동하는 중입니다.”

설마 했던 대답이 돌아오자 왜 육군참모총장이 자신을 불렀는지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설마 대한민국 육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서대진과 아이들의 사인을 받아달라고 하지는 않겠지?’

차에서 내려 운전병을 따라 가자 정말로 육군참모총장의 사무실로 이동했고, 거기까지 가는 길에만 별을 달고 돌아다니는 장성을 10명 이상 마주쳤다.

“김동민 이병을 데리고 왔습니다.”

운전병이 사무실 문을 열고 보고하자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있던 참모총장이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이병! 김동민!”

“관등성명은 되었으니 여기 편하게 앉게나.”

단전에 힘을 모아 관등성명을 하려고 하는데 31대 육군참모총장인 윤남용 대장이 동민에게 소파에 앉으라며 말을 끊었다.

군대 밖이라면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이겠지만, 아무리 동민이라도 현역 이등병인 상황에서 포스타 앞에 혼자 있자 긴장이 되었다.

“커피 마시나? 오늘은 편하게 이야기를 하려고 불렀으니 너무 긴장하지 말게나.”

동민은 괜찮다고 했지만, 육군참모총장이 직접 믹스커피를 만들어주었다.

“군 생활은 어떤가? 아직 이등병이라 힘들긴 하겠지만, 알아보니 자네 평가가 아주 좋더군. 타고난 군인이라는 소리도 들렸네.”

설마 참모총장이 말뚝을 박으라는 소리를 하는 건가 하고 동민이 긴장하고 있자 그가 편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등병이 여기에 호출된 것은 자네가 처음이군. 내가 왜 자네를 불렀는지 알고 있나?”

“이병. 김동민. 잘 모르겠습니다!”

“큰 소리로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네. 편하게 말하라니까. 자네가 오기 전에 잠깐 알아봤는데 입대 전 경력이 화려하더군. 군 면제를 받을 수도 있었을 건데 바로 입대를 하다니 정말 훌륭한 젊은이야.”

윤 참모총장이 아무리 편하게 말을 해도 동민이 계속 긴장을 하고 있자 그가 본론을 꺼냈다.

“사실 이 자리에 있으면 은근 청탁이 많이 들어온다네. 대부분 관련 기업이나 정부에 연관된 청탁이고 인사에 관한 것도 들어오는데 장성이나 고위 간부 청탁이 들어오지만, 이등병 청탁을 육군참모총장에게 직접 한 경우는 자네가 처음이군.”

누군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에게 동민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는 것인데 아무리 고민해 봐도 관련된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웬만하면 상대방도 이런 부탁을 하지 않을 거고, 나도 듣지 않겠지만, 이번에 부탁한 사람이 워낙 중요한 인물이라 흘려들을 수가 없더군. 누구인지 알고 있나?”

“잘 모르겠습니다.”

“무려 나와 같은 4성 장군이 부탁을 했다네. 별의 수는 같지만, 권한은 나보다 훨씬 더 높은 사람이지.”

동민이 알기로는 4성 장군은 해군과 공군에 한 명씩 있고, 합동참모의장이 있긴 하지만,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었다.

부모님과 연관이 있었더라면 전생에 이미 알았을 건데 전혀 접점이 없었다.

동민이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고민을 하고 있자 윤 참모총장이 정답을 알려 주었다.

“한미연합군사령관이 직접 찾아와 자네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더군. 내 사무실에 미군 4성 장군이 찾아온 것도 처음인데 그가 와서 한다는 말이 얼마 전에 입대한 이등병을 잘 부탁한다는 말이니 나도 당황했었네. 혹시 자네를 카투사로 보내줄 수 없는지도 물어보더군. 자신의 개인 사병으로 쓰고 싶다면서 말이지. 혹시 생각이 있으면 말하게나.”

“아닙니다. 저는 대한민국 육군에서 복무하고 싶습니다.”

한미연합군사령관이 자신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에 잠시 당황했지만, 육군참모총장 앞에서 카투사로 보내달라고 할 수는 없기에 순간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하하. 듣기는 좋네만, 자네가 원한다면 보내줄 수 있다네. 병사 한 명을 보내고, 한미연합군사령관에게 빚을 씌울 수 있다면 아주 큰 역할을 하는 거라네. 그나저나 개리 사령관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깐깐하게 생긴 사람이 그런 부탁을 하니 정말 궁금하더군.”

아무리 고민해 봐도 개리 E. 럭이라는 사람은 동민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제가 모르는 분입니다. 아마도 제 지인 중에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흠.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러고 보니 할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했다고 했지? 거기서 소개받았을 확률이 높군.”

떠오르는 사람이 몇 명 있었지만, 확실하지 않았기에 누구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미연합군사령관이 자신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아주 든든해진 동민이었다.

“어찌되었든 자네의 안위는 한미연합에 아주 중요한 사항이 되어 버렸네. 내가 말은 해 두겠지만,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혹시 어려움이 있거든 언제든지 이야기하게나.”

육군참모총장이 군 생활을 챙겨주겠다는 이야기에 동민은 지금 하고 있는 안무 연습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사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들어 보도록 하지.”

동민의 부탁을 들은 윤 총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힘든 자리를 마련했는데 예상보다 너무 평범한 부탁을 하는군.”

“그것 외에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알겠네. 아마도 개리 사령관도 따로 만날 것 같은데 잘 이야기 해 주길 바라겠네.”

대화를 끝낸 참모총장은 다시 의전차량에 태워주려 했지만, 동민이 부담스럽다며 일반 차량을 타고 싶다고 말했다.

부대로 복귀한 다음 날 동민은 위문열차 백댄서 병에서 군 홍보 영상 촬영 부대로 보직을 변경받을 수 있었다.

“티오가 없는데 신병이 들어왔네? 안 그래도 손이 부족했는데 잘 왔어.”

“너 샌드 시계에 나왔던 독사 아니야? 연예 병사인 것 같은데 왜 여기로 왔지?”

급하게 보직이 변경되긴 했지만, 참모총장의 지시라서 그런지 아무런 문제 없이 바로 진행되었다.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부대는 같은 건물에 있어 걸어서 이동했다.

앞으로 근무할 작업실은 아직 국방 TV가 나오지 않은 시기라 장비가 아주 열악했다.

라디오 방송은 꾸준히 나오고 있어, 라디오국에는 인원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영상 부대는 주로 홍보 영상이나, 정훈 교육용 영상을 만들고 있어 겨우 3명이서 모든 일을 하고 있었다.

시설이 낙후되고 장비가 오래되긴 했지만, 선임들의 간섭이 별로 없어 동민은 아주 만족했다.

그래도 기기를 다루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는데 나름 통신보안이 걸려있는 데다 워낙 옛날 기계라 사용법이 단순 무식하면서도 따라야 하는 규칙이 많이 있었다.

“처음에는 조작법을 배우느라 몇 주는 고생하는데 이번 신병은 하루 만에 다 익혔네?”

“이전에 다른 편집기기를 많이 만져봐서 금방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아주 완벽한 신병이 들어왔어. 편집 말고 다른 것도 할 줄 알아?”

동민이 기획과 촬영, 편집까지 할 수 있다고 하자 선임들이 아주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연기도 잘하지 않나? 연기자치고는 기술이 너무 뛰어난걸?”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어릴 적부터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영화에 몇 번 출연하게 되었다고 설명해 주었고, 다들 영화에 관심이 있던 터라 동민의 경험담을 아주 신기해하며 들었다.

동민이 한국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 어느 정도 시샘을 받았겠지만, 할리우드에서 상상도 못 할 사람들을 만나 작업을 했기에 신병이더라도 잘 챙겨 주었다.

그렇게 기본 교육을 받으며 고급 테크닉을 조금씩 알려주는 만족스러운 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뉴스에서 속보로 아주 끔찍한 소식이 속보로 올라왔다.

“헉. 저게 어떻게 된 거냐?”

“대구에서 큰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대구에서 백화점 공사를 하다 인부가 실수로 가스관을 파손시켰는데 이때 누출된 가스가 하수관을 통해 대구 지하철 1호선 상인역 공사장으로 유입되었다.

가스가 한동안 지하철 공사장에 괴어 있다가 폭발을 일으켰는데 50미터에 달하는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400미터가량의 건설 현장이 무너져 내린다.

이 폭발으로 인해 101명이 사망하고, 202명이 부상을 당하면서 3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차량도 150대 파손되며 건물도 80여 채나 파손을 당하게 된다.

“올해 초에는 일본에서 큰 지진이 나고 지난달에는 일본 지하철에서 독가스 테러가 나더니 이번에는 한국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하네?”

“상황이 보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여러 방송국에서 실시간으로 나오는 뉴스를 보니 아주 끔찍한 상황으로 보였다.

사고 현장이 학교 근처인 데다 등교 시간인 바람에 학생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고, 방송에는 피 묻은 책가방과 불에 탄 교과서가 나오면서 전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지하철 공사장이다 보니 큰 철골 자재가 많이 있었고, 특히 도로를 덮어 놓은 대형 철판이 날아다니면서 아주 끔찍한 참사를 만들었다.

등굣길에 날벼락을 맞은 학생들이 큰 화를 입었고, 현장이 붕괴하면서 추가적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작년에는 성수 대교가 무너지더니 이번에는 지하철 공사장이 폭발하네. 부실 공사라고 하더니 상황이 많이 심각한 것 같은데?”

“영상이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현장 상황이 너무 잔인해서 지상파에는 자세한 영상이 나오지 않았지만, 부대에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인지 필터를 거치지 않은 영상이 올라왔다.

충격적인 참상을 보고 동민은 이미 전생에서 알고 있던 사고가 발생하자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는 사고이지만, 무언가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러고 보니 상품백화점 붕괴도 올해 일어나는구나. 생각도 못 하고 있었네. 부모님이나 아는 사람이 가면 안 되는데. 이건 어떻게든 미리 조치를 취해야겠다.’

동민이 군대에 입대한 95년에는 여러 사건이 터졌는데 작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시작으로 반년 만에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사고가 발생한다.

일본에서도 대규모 지진으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얼마 전에는 사이비 종교에서 지하철 테러를 저지르면서 큰 인명피해가 생겨났다.

성수 대교 붕괴와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로 인해 전 국민이 부실 공사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데 두 달 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지은 지 5년도 되지 않은 백화점이 무너져버리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오늘 발생한 대구 참사에서는 100여 명이 사망하지만, 상품 백화점 붕괴 사고에는 500명 이상이 사망하게 되는 대참사가 일어나기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군대에 있는 이등병의 신분으로 참사를 막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다.”

< 138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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