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129화 (11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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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각의 기둥과 불단 사이에 있는 벽을 더듬거리자 다른 느낌이 느껴지는 벽을 발견했다.

“찾았다. 그런데 벽 안에 있어서 뜯어 낼 수가 없네. 그냥 주지 스님에게 말해 줘야겠다.”

진관사 칠성각 안에 들어있는 것은 일장기 위에 먹으로 태극 청색 부분과 건곤감리 4괘를 덧칠해 그린 태극기가 들어 있었다.

일장기를 거부하고 일본에 대한 강력한 저항 의지를 극대화한 표현이 담겨 있었는데 일장이 위에 그려진 태극기로는 유일한 사례였다.

왼쪽 윗부분 끝자락에 불에 탄 흔적이 있고, 총알에 찢긴 구멍이 곳곳에 뚫려 있어 3.1운동 현장에서 쓰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태극기는 여러 종이를 감싸고 있는데 1919년 6월6일부터 12월25일 사이에 발간된 신문들로 ‘신대한신문’, ‘독립신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경고문’으로 모두 5종 19점이 들어 있다.

진관사는 일제강정기 중요한 독립운동 근거지였는데 백초월 스님이 진관사와 마포포교당을 근거지로 삼아 전국 사찰을 왕래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그러한 이유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태극기와 여러 자료들이 칠성각 벽 안에 숨겨져 있었는데 2009년 보수공사를 하면서 발견된다.

국뽕 클럽 회장이었던 동민은 뉴스에서 보고는 관심이 생겨 자세히 알아보았고,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스님. 어젯밤에 꿈속에 조상님이 나와서 알려 주셨는데….”

미래에서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말할 수 없었기에 조상님을 팔았고, 동민의 이야기를 듣고 벽을 만져 본 주지 스님은 무언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다른 부분과 다르군요. 지금 벽을 뜯을 수가 없으니 내일 전문가를 불러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주지 스님은 동민에게 고맙다며 여러 번 말하더니 선물로 절에서 만든 반찬을 여러 가지 챙겨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해가 떨어지자 진관사에서 나와 숙소가 있는 남산으로 돌아갔다.

“다니엘. 그 절 이름이 진관사라고 했지? 오늘 내가 원하던 완벽한 식사를 한 것 같아. 이번 영화 홍보가 끝나면 다시 찾아 갈 거야.”

“거긴 유럽의 미슐랭 스타 셰프들도 자주 찾아가고, 왕족이랑 부호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에요. 오늘 먹은 식사는 아주 귀한 거니까 자랑해도 괜찮아요.”

“난 채식 같은 거 무시했었는데 오늘 먹은 음식은 무언가 특별하더군.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기분이야.”

리버 피닉서는 사찰 음식에 푹 빠져 있었고, 미국 입맛인 브래들리 피트 조차 진관사에서 먹은 요리를 칭찬했다.

“저녁을 특별하게 먹기는 했는데 설마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니겠지? 절에서 먹는 바람에 술을 마시지 못 했잖아. 아직 시간이 이른데 다음 스케줄은 없는 거야?”

“당연히 다음 스케줄이 잡혀 있죠. 조금 쉬고 있으면 대중을 피해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을 잘 아는 전문가가 올 거예요.”

아침부터 바쁜 일정을 소화했지만, 아직 이른 저녁이었기에 한국의 밤 문화를 경험해 보고 싶어 했다.

동민이 조금 여유가 있으니 쉬고 있으라고 했고, 다들 샤워를 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세 사람이 호텔로 찾아왔다.

“동민아! 오랜만이다. 여름에 한국 왔다면서 얼굴도 안 보이고 가면 어떡하냐?”

“형이 워낙 바빠 보여서요. 저도 이제 대학을 갔으니 자주 볼 수 있을 거예요. 형들도 잘 지내셨죠?”

호텔로 찾아온 세 사람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서대진과 아이들 이었다.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과 친하다더니 함께 한국에 방문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 네 덕분에 탐 크루스랑 술을 마실 수 있겠네.”

“클럽 VIP룸을 예약해 뒀으니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을 거야.”

탐 크루스와 브래들리 피트, 리버 피닉서가 쉬고 있는 방으로 서대진과 아이들을 데리고 갔고, 잘생긴 할리우드 배우를 보더니 놀라워했다.

“진짜 잘생겼네.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여기는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고 있는 밴드에요. 오늘 밤 안내를 해 줄 거예요.”

동민이 서대진과 아이들을 일행에게 소개했고, 다행히 서대진은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그들과 함께 일반인이 출입하기 힘든 클럽의 VIP룸으로 이동해 고급 과일 안주와 양주를 세팅했고, 술을 마시려 하자 탐과 브래들리, 리버 피닉서가 불만을 드러냈다.

“이런 건 미국에서도 얼마든지 먹고 마실 수 있는 거잖아.”

“이렇게 평범한 술자리 말고, 한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걸 원한다고.”

그들이 투덜거리자 서대진과 아이들이 당황했고, 동민은 다른 장소로 이동하자고 말했다.

“형. 막걸리 마시기 좋은 주점 없어요? 전집이 좋을 것 같은데.”

“전집이라면 좋은 곳이 있어. 많이 낡았는데 괜찮겠어?”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더 좋을 것 같아요. 사람도 별로 없겠네요.”

클럽에서 나와 찾아간 곳은 시장 안에 있는 허름한 전집이었다.

“그래. 이런 분위기가 더 느낌 있지. 한국에 왔는데 위스키를 마실 순 없잖아.”

“오! 아까 마셨던 어른을 위한 우유로군.”

잘생긴 할리우드 배우들이 능숙하게 젓가락질을 하며 전을 집어 먹는 모습을 보고는 서대진과 아이들이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분홍색의 동그란 건 뭐야? 맛이 묘한걸?”

“그건 소시지예요. 그런데 고기는 거의 안 들어갔고, 밀가루랑 생선으로 만들었을 걸요?”

“싸구려 음식 같은데 이상하게 입에 착 감기는데? 막걸리와도 아주 잘 어울려.”

브래들리 피트는 분홍 소시지를 좋아했고, 리버 피닉서는 깻잎과 버섯, 고구마로 만든 전이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탐 크루스는 고기와 생선 위주로 먹으면서 막걸리를 퍼부었고, 누군가 동동주를 가지고 오면서 동민은 정신을 잃었다.

“아이고 머리야. 어떻게 된 거지?”

정신을 차려 보니 동민은 부모님 집이 아닌 뱀파이어랑 인터뷰 배우들이 있는 호텔에 있었고, 다행히 일행들도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다.

“탐 일어나 봐요. 어제 아무런 일 없었어요? 기억이 안 나요.”

“너 생각보다 술이 약하더라. 그 사람들이랑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놀다가 호텔로 잘 돌아왔어. 걱정하지 말고 잠이나 더 자.”

동민이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사이 술이 오른 나머지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함께 즐겁게 놀았고, 서대진과 아이들로부터 다양한 술 게임을 배웠다.

“으어. 콩나물 국밥도 괜찮았는데 이 황태 해장국이 더 좋은 것 같아.”

“미역국도 미국에서 먹은 것보다 더 맛있는데?”

정신을 차린 배우들을 데리고 해장을 하러 갔고, 인터뷰 일정은 어제 모두 끝났기에 오늘은 한국을 떠나는 날이었다.

“학교 안 가고 우리랑 같이 가는 게 어때? 이틀 정도는 빠져도 괜찮지 않아?”

“이미 삼일이나 빠졌다고요. 일본은 셋이서 다녀와요. 거기는 내가 없으니 한국처럼 놀기는 어려울 건데 그래도 맛있는 식당이 많으니 대접을 잘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세 사람은 한국까지 온 김에 일본에도 들러 뱀파이어랑 인터뷰 홍보를 하고 가기로 되어 있었고, 동민은 혼자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 이었다.

일본에도 함께 가면 좋겠지만, 배우로 활동할 생각도 아니고, 괜히 일본에 갔다가 인지도가 높아질 것 같아 동행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돌아가서 보자. 이번 한국행은 덕분에 정말 재미있었어.”

“여유 있게 돌아보면 좋은데 일정이 너무 촉박하긴 하네요. 일본 잘 다녀오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봐요.”

동민은 엄마가 사준 제시카의 옷과 선물을 한가득 실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짧고 굵은 방한을 마쳤다.

원래는 탐 크루스 혼자 방한하여 영화 홍보를 했는데 개인적인 욕심에 브래들리 피트와 리버 피닉서를 데리고 갔고, 세 미남 배우의 방문에 한국이 아주 시끄러워졌다.

아직은 영화가 개봉하지 않았고, 인터뷰도 주말에 방송되기에 모르고 있었지만, 이번 방문으로 인해 동민은 한국에서 아주 유명해진다.

할리우드 유명 영화에 한국인이 출연한 것도 아주 큰 이슈인데 거기다 아주 매력적인 뱀파이어로 나와 수많은 여성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는 동민은 미국으로 돌아와 제시카에서 선물을 주고 학교에 다니며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동민아! 큰일 났어!”

“무슨 일이에요?”

학교가 끝나고 세탁소에 가자 쿠안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한국어가 꽤 능숙해져 있었고, 한국에 인터뷰를 다녀온 이후로는 다니엘이 아닌 동민이라고 불렀다.

“예상보다 영화 반응이 너무 좋아. 이번 여름에 워낙 쟁쟁한 영화가 많이 나와서 성적이 저조할 거라고 생각 했는데 1억 달러를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아!”

올해 여름 극장가는 사자왕과 포레스트 캄프, 짐 개리의 마스크, 카메룬의 트루스 라이, 해리슨 포드의 긴급명령이 휩쓸고 지나갔었다.

역대급으로 뜨거운 여름이었고 쿠안틴의 폴프 픽션은 추수감사절 시즌인 10월 4일 개봉했는데 미국에서만 1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하고 세계적으로 2억 1,300만 달러의 티켓 수익을 거두어들이게 된다.

저예산인 700만 달러로 만든 영화가 엄청난 수익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제작비의 대부분을 투자한 동민에게 돌아올 금액도 투자금의 수십 배에 달했다.

“거기에다 평점이 너무 좋아. 이번에는 여러 영화제에 출품작이 아닌 경쟁 부문으로 초대받았어.”

“확인해 봤는데 칸에서 꽤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아요. 기대해도 좋겠네요.”

매년 5월에 열리는 칸 영화제에서 94년 황금종려상을 받게 되는데 흥행과 비평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면서 쿠안틴은 본격적으로 명감독 반열에 올라간다.

동민 역시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폴프 픽션이 들어가기에 앞으로 활동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요즘은 조금씩 날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어.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해서 얼굴을 기억하나 봐.”

“쿠안틴이 독특하게 생기기도 했죠. 이번에 돈 많이 벌 것 같던데 축하해요.”

“돈은 나보다 투자자인 네가 훨씬 더 많이 받겠지. 그나저나 뱀파이어랑 인터뷰 홍보하러 한국에 잘 다녀왔어?”

한국에서 있었던 특이한 인터뷰와 음식 투어를 말해 주자 쿠안틴은 진관사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채식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한국 음식을 먹다 보니 채소에 눈을 뜨게 되더라고, 다음에 한국에 가면 거기 꼭 들려 봐야겠다.”

동민이 쿠안틴과 한국 이야기를 하는 사이 일본에 갔던 뱀파이어랑 인터뷰 멤버가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한 명은 다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진관사로 가고 있었는데, 채식과 동물보호에 진심인 남자 리버 피닉서였다.

“할리우드 세탁소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다니엘? 바로 받아서 다행이다.”

“리버에요?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

“나 한국에 다시 왔거든. 진관사에 지내면서 요리를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리버 피닉서의 갑작스러운 한국행에 동민이 당황했지만, 부모님에게 연락해 그가 사찰 음식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진관사는 비구니만 지내는 절이라 그곳에서 머물 수는 없었고, 부모님 집에서 지내며 한국에서 요리를 배우기로 했다.

한국에서 사찰 음식을 배운 리버 피닉서는 할리우드로 돌아와 채식 전문 레스토랑을 오픈하게 된다.

< 129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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