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
다음으로 나온 메뉴는 타우린이 많이 함양되어 있어 자양강장에 좋은 산낙지였다.
산낙지 탕탕이로 만들어져 접시 위에서 꿈틀거리는 낙지를 보고는 리버 피닉서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비교적 비위가 좋은 탐 크루스와 브래들리 피트도 난감해했다.
“저거 살아 있는 거 아니야?”
“방금 바로 잘라서 살아 있어요. 피로 회복이랑 몸에 좋으니 그냥 먹으면 돼요. 양념도 혀에 붙으니 삼키기 전에 꼭 씹어서 죽이고 삼켜야 해요.”
“한국인은 왜 이런 걸 먹는 거야?”
육식을 반대하는 리버는 자리를 피해 버렸고, 브래들리와 탐도 먹기를 꺼려 하자 동민이 당근을 내밀었다.
“맨정신으로 먹기 힘들면 마법의 음료를 마시면 되죠.”
투박하게 생긴 양은 컵에 뽀얀 색의 음료를 따라 주었고, 탐과 브래들리가 마셔 보더니 마음에 들어 했다.
“우유인 줄 알았는데 어른을 위한 우유였군. 이렇게 좋은 걸 왜 할리우드에서는 알려주지 않았어?”
“이건 쌀로 만든 발효주인데 금방 상해서 미국까지 보낼 수가 없어요. 한국에 있을 때 많이 마시고 가요.”
막걸리가 들어가자 용기가 솟아오른 탐이 먼저 산낙지에 도전했다.
“으악. 혀에 달라붙었어. 입 속에서 꿈틀거리는 게 기분이 이상해.”
“설명하지 말라고, 토할 것 같으니까.”
탐이 먹자 어쩔 수 없이 산낙지에 도전한 브래들리가 오만상을 다 쓰며 먹었다.
“볼에 붙어서 안 떨어져. 이런 걸 왜 먹는 거야?”
브래들리는 투덜거리며 먹다가 삼키더니 계속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많이 이상했는데 먹다 보니 괜찮은걸?”
동민까지 합류해 산낙지를 금방 해치웠고, 다음으로 시장 떡볶이와 어묵을 먹었다.
“어쩜. 어묵을 먹는 모습이 멋있다냐? 오늘 내 두 눈이 호강하는구먼. 총각 이건 서비스니까 많이 먹어.”
먹기 위해 영화배우를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브래들리 피트는 음식을 맛깔나고 멋있게 먹었는데 그가 기다린 꼬치에 꿰어있는 어묵에 간장을 발라 먹는 모습조차 너무 멋있었다.
시장 이모가 그 모습을 보고는 서비스라며 꼬마김밥과 튀김을 주셨고, 떡볶이 양념에 찍어 가며 다들 맛있게 먹었다.
“확실히 미남들이 먹으니 분식도 달라 보이긴 하네요.”
“맛있게 먹는 건 좋은데 영화 관련 질문은 안 하시나요?”
박진용은 아직 신인에다 어려서 그런지 매끄럽게 인터뷰 진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미남 스타들이 시장에서 먹방을 찍은 장면이 담겼기에 방송국에서 오히려 더 좋았다.
이번에도 영화에 관련된 인터뷰는 대충 조금만 했고, 주로 먹방을 찍으며 인터뷰를 모두 마쳤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 음식은 다양하게 먹어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오니 처음 보는 음식이 많네요.”
“이 막걸리라는 술을 미국에 수출해 주세요.”
미래에 유명 가수이자 기획사 대표가 되는 박진용과의 인터뷰도 잘 끝냈고, 마지막 멘트도 영화 이야기가 아닌 음식 이야기로 마무리 지었다.
인터뷰 겸 점심식사가 끝나고, 이번에는 시사회가 열리는 영화관으로 이동했다.
한국에서 머무르는 일정이 짧기에 상당히 타이트한 스케줄이 짜여 있었고, 동민은 짧은 시간이라도 활용하기 위해 독특한 인터뷰를 준비했던 것이다.
영화관에서는 평범하게 시사회와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는 주로 탐 크루스와 리버 피닉서, 브래들리 피트에게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자 동민이 단순한 통역가가 아닌 영화에 나오는 배우라는 것을 확인했고, 엑스트라라고 하기엔 비중이 꽤 있었기에 동민에게도 질문이 많이 들어왔다.
“예전에 구리스에 출연했던 아역배우시라는 말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뱀파이어랑 인터뷰에는 어떻게 나오게 되셨나요?”
“함께 오신 배우분들과는 친하신가요?”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가요?”
대충 대답을 때우고 통역에 집중하려 했지만, 동민에게 관심이 집중되자 답변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닐 조던 감독님과 친분이 있는데 출연 제의를 받아서 영화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추가적으로 활동할 계획은 없습니다.”
평론단 중에는 쿠안틴과 함께 인터뷰를 보았던 비디오 매장을 운영 중인 박찬옥 감독도 있었고, 그가 동민을 알아보고는 반가워했다.
기자들이 계속해서 질문을 해 왔지만, 시사회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기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국이라 그런지 다니엘이 우리보다 인기가 많은걸?”
“그러게. 이렇게 된 거 너도 본격적으로 연기를 해 보는 게 어때? 너 정도면 기본 연기력도 있는 편이잖아.”
“동양인으로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난 연기보다 디렉팅에 관심이 있으니 나중에 내가 영화 만들면 카메오로 나와 주기나 해요.”
“하하. 다니엘이 영화를 만든다면 당연히 출연해야지.”
시사회가 끝나고, 간단한 인터뷰를 한 번 더 하고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한국에서는 식사 시간이 가장 기대되는걸? 이번에는 어디로 가는 거야?”
“매번 탐이랑 브래들리 위주로 갔으니까 저녁은 리버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려고요.”
채식주의자인 리버 피닉서가 탐 크루스와 브래들리 피트 위주로 짜인 메뉴로 고생하고 있었기에 그를 달래줄 필요가 있었다.
특히 살아서 꿈틀거리는 낙지를 보고는 입맛이 떨어져 그는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채식 식당으로 가는 거야?”
“비슷하긴 한데 조금 더 특별한 곳으로 갈 거예요.”
리버 피닉서가 채식을 먹으러 간다는 말에 좋아했고, 육류를 좋아하는 탐 크루스와 브래들리 피트의 얼굴은 반대로 어두워졌다.
영화 시사회가 열렸던 충무로에서 밴을 타고 은평구로 이동해 북한산 초입으로 들어갔다.
“도시에서 조금만 이동했는데 산이 나오네?”
“한국은 산 풍경이 신비로우면서 아름다운걸?”
처음에는 투덜거리던 두 사람은 예쁘게 가을 단풍이든 북한산에 도착하자 기분이 좋아졌고, 목적지인 북한산 진관사에 내리자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했다.
“우와! 개울이랑 다리, 절이 너무 아름답게 어울려 있어.”
“공기가 상쾌한 게 건강해지는 기분이 드는군.”
진관사는 서울 중심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은데다 삼각산의 풍광이 절을 감싸고 있어 아주 아름다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거기에다 진관사는 여자 스님들만 머무는 비구나 도량이다 보니 사찰이 아주 정갈하게 정리되어 더욱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진관사는 사실 한국보다 외국의 유명 셰프에게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들이 상류 사회에 진관사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몸에 좋은 음식을 찾는 유럽의 왕족과 상류 사회에 소문이 나게 된다.
태국 공주도 진관사를 좋아하고, 세계적 자선사업가로 유명한 니콜라스 베르그루엔도 진관사를 찾았다.
벨기에 여왕인 마틸드 필리프와 부탄 공주, 리차드 기어 같은 할리우드 배우도 진관사에 식사를 하기 위해 들렀고, 외국의 정치인과 건축가, 해외 유명 셰프들의 성지가 되는 곳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도 따로 찾아오고, 백악관의 부주방장도 요리를 배우기 위해 진관사를 방문한다.
“절 건물이 영화에 나오는 오래된 건물 같은데 얼마나 된 거야?”
“고려 8대 임금인 현종이 1010년 진관대사를 위해 여기다 절을 지었다고 하니까 천 년이 조금 안 되었네요.”
나무로 지은 건물이 천 년이나 되었다는 이야기에 세 사람이 놀라워했고, 고즈넉한 절을 구경하고 있으니 주지 스님과 스님들이 반겨 주었다.
“어서 오시지요. 흡혈귀가 찾아온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과연 여성들을 유혹하기에 아주 뛰어난 외모를 하고 계시군요.”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흡혈귀 연기를 하긴 했지만, 다들 착한 사람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을 걱정하는 건 아니고, 우리 스님들이 여러분을 보고 심마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랍니다.”
여자 스님만 있는 곳이다 보니 잘생긴 할리우드 배우들이 온다는 소리에 조금은 기대를 하고 있었고, 천상계의 외모를 가진 탐 크루스와 브래들리 피트, 리버 피닉서를 보고는 얼굴에서 인자한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아직 음식을 준비 중인데 괜찮으시면 직접 손을 보태 보시겠습니까?”
동민이 물어보자 리버 피닉서는 당연히 주방을 보고 싶어 했고, 탐 크루스와 브래들리 피트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며 좋아했다.
“이건 물에 불려 놓은 서리태 콩입니다. 맷돌에 넣고 갈아야 하는데 맷돌의 어이를 돌려주시겠습니까?”
브래들리 피트가 맷돌을 돌리자 스님이 연두색의 서리태 콩을 넣었고, 아주 연하고 예쁜 녹색의 콩국이 흘러나왔다.
“여기에 잣과 깨를 갈아 넣은 물을 함께 넣어주면 고소한 콩국이 만들어지지요.”
깨끗한 맛과 적당한 탄력을 가진 면 위에 예쁘게 썬 오이를 고명으로 올려 주었고, 색을 살리기 위해 붉은색의 고추도 장식해 주었다.
브래들리 피트가 갈아준 콩국을 넣어주자 연한 연두색의 콩국수가 만들어졌고, 깔끔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무장아찌가 반찬으로 올라왔다.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았기에 어떤 맛일지 궁금해했고, 콩국수를 먹더니 다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간이 살짝 약하긴 한데 오히려 건강하면서 기분 좋은 맛이 나는 것 같아.”
“이거야. 내가 원하던 음식이 여기 있었어.”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브래들리 피트가 몸이 정화되는 것 같다며 좋아했고, 리버 피닉서는 눈을 감은 채 콩국수를 음미하고 있었다.
“건장한 남자분들이 정갈한 저희 음식을 맛있게 드셔 주시니 기쁘군요. 여러 음식을 준비했으니 천천히 즐겨 주세요.”
물이 맑고 좋은 진관사는 수백 개의 장독이 있는 만큼 간장과 된장, 고추장이 유명했고, 장아찌 종류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었다.
진관사가 특히 음식으로 유명해지는 이유 중에는 6백 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수륙대재 덕분이기도 한데, 땅 위, 물속의 모든 의지할 곳 없는 영혼들과 아귀를 위해 법요를 엮고 음식을 공양하는 행사인 수륙재를 꾸준히 행하면서 수백 년간 사찰 음식을 만들어 온 것이다.
“다니엘. 쌀밥에 이상한 풀이 들어 있는데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이건 곤드레라고 하는 나물인데 이걸로 밥을 하면 향긋한 맛이 난다고 하던데 정말 맛있긴 하네.”
곤드레밥과 정관사의 유명 음식인 여러 종류의 두부 요리를 먹으며 모두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고, 진관사의 대표 메뉴인 두부찜 포증은 브래들리 피트와 탐 크루스도 고기보다 맛있다며 좋아했다.
식사가 끝나고 전통차를 마시자 모두 너무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좋아했고, 채식에 진심은 리버 피닉서는 동민에게 쉴 새 없이 음식 질문을 했다.
스님들에게 훌륭한 사찰 음식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며 기념사진을 여러 장 함께 찍었고, 리버 피닉서는 꼭 다시 찾아오겠다며 연락처까지 물어보았다.
동민은 열심히 통역을 해 주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빠져 나왔고, 사찰 안쪽에 위치한 칠성각으로 몰래 찾아갔다.
할리우드 유명 스타들이 와서 그런지 자그마한 칠성각에는 아무도 없었고, 동민이 불단과 기둥 사이에 있는 벽을 더듬었다.
“여기 어딘가 비급이 숨겨져 있을 건데.”
< 128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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