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121화 (106/265)

< 121 >

다음으로 동민이 선택한 영화 역시 범죄 수사물이었다.

항상 비가 내리는 회색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의 7대 죄악을 모티브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과 그를 쫓는 두 형사의 이야기였다.

올해 인지도가 많이 올라간 브래들리 피트와, 모건 후리먼이 주인공으로 선택되었고, 연쇄살인범으로는 유쥬얼 용의자로 유명해지는 케빈 스파이스가 맡게 되었다.

제작진은 영화 오프닝에 케빈 스파이스의 이름을 넣으려고 했지만, 초반부와 중반부 내내 얼굴이 나오지 않는 그는 유쥬얼 용의자를 본 관객이 자신을 범인으로 상상할 수 있다며 이름이 나오는 것을 극구 거부한다.

그래서 마지막 크리딧에는 케빈 스파이스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온다.

네오 느와르 장르를 설명할 때 항상 좋은 예시로 나오는 명작이 되는 일곱은 역대 최고의 범죄 스릴러 중 하나가 되고, 관객과 평단으로 부터 아주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를 읽는 내내 너무 소름이 끼쳤어요. 특히 마지막 엔딩은 너무 충격적이던 걸요?”

“그래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아요. 항상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보다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는 영화도 있어야죠. 거기다 촬영 감독이 다리우스 콘지라서 더욱 기대되기도 하네요.”

영화는 시종일관 음침하고 어두컴컴한 배경과 대낮에도 우중충한 날씨의 비주얼이 자아내는 하드보일드한 분위기가 아주 일품으로 나온다.

핀처 감독의 강박에 가까운 집착과 다리우스의 촬영으로 언제 보아도 아주 세련된 영상미가 나오는 작품이 완성된다.

자연광으로 어두운 공간을 찍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DVD가 아주 잘 나와서 오디오 비디오 마니아들에게는 화질 검증작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영상미가 뛰어나기도 하지만, 아주 훌륭한 캐릭터를 구축했고, 상징적이고 짜임새 있는 플롯과 반전과 스릴러 요소를 배치하면서 9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로 남게 된다.

“이렇게 분위기가 우울한데 흥행은 괜찮을까요?”

“명작이 완성될 촉이 왔어요. 분명 좋은 평가를 받을 거니까 흥행도 꽤 성공할 거예요. 거기다 제작비도 3,300만 달러밖에 안 들잖아요.”

일곱은 3,300만 달러라는 비교적 낮은 예산으로 만들어 북미에서만 1억 달러, 해외에서 2억 3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티켓 판매로만 제작비의 10배를 벌어들이게 된다.

재미있는 일화 중 하나는 브래들리 피트가 사건을 수사하다가 중반부터 팔이 부러져 후반부에는 깁스를 한 상태로 나오는데 그는 실제로 연기 도중 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이유로 그대로 연기에 살려 사용한다.

우울한 분위기와 배드 엔딩으로 일곱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었고, 동민은 10배의 수익을 내는 대작에 어렵지 않게 큰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투자 서류 작성을 마치고 다음으로 선택한 영화 역시 범죄 영화였다.

“오! 이 영화는 알 파치너와 로버트 드니러가 함께 나오는 영화로군요.”

“발 길머도 빼놓으면 안 되죠.”

이번에 선택한 영화는 열기라는 제목의 영화였는데 경찰이나 경찰의 감시를 뜻하는 시카고 지역 은어였다.

알 파치너와 로버트 드니러라는 최고의 연기파 배우가 함께 참여한 마이크 만 감독의 걸작 범죄 느와르 영화였다.

표면적으로는 최고의 경찰과 최고의 범죄자 간의 서로 쫓고 쫓기는 사투를 그린 느와르 영화였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과, 애인, 동료들과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그려, 관객들에게 남자에게 있어 일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하이라이트 은행털이 총격전 씬은 총격전 씬 중 단연 최고봉으로 꼽힌다.

총성도 더빙으로 후처리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녹음한 총성을 그대로 쓰면서 현장감을 아주 생생하게 전달하고, SAS 출신의 작가가 직접 참여해 대충 하는 총격전이 아닌 실전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시가지전을 보여준다.

워낙 인상 깊은 총격 장면이라 다양한 매체에서 이 장면을 오마주하게 되고, 심지어 이를 모방한 범죄도 몇 번 일어나게 된다.

현대 액션 영화의 교과서로 자리를 잡게 되는 열정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제작비로 6천만 달러가 들어간 열정은 미국에서 6,7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해외에서는 두 배인 1억 2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애매한 수익을 남기게 된다.

손익 분기점인 두 배 매출을 넘기긴 하지만, 그렇다고 동민이 만족할 만한 결과도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 역사에 남을 만큼 중요한 영화이기에 이번에도 적당히 1천만 달러만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설마. 이번은 아니겠죠?”

동민이 다음 영화 투자제안서를 꺼내자 닐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동민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액션, 모험, 스릴러 영화에요. 범죄자가 들어 있긴 하지만요.”

이상하게 이번에도 연속적으로 범죄 영화였지만, 분위기는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 가벼운 편이었다.

“부르스 윌리가 나오는 다이 할드 3편이군요.”

“새뮤엘 L. 잭선이랑 제러미 아이언도 나와요.”

동민이 다음으로 투자를 결정한 영화는 다이 할드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LAPD인 멕 클레인이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뉴욕에 휴가를 떠났다가 사건에 빠져드는 내용이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상당히 재미있는 요소가 많이 들어있고, 부르스 윌리와 새뮤엘 잭선의 입담이 아주 재미있는 영화였다.

전편에 비해 상당히 오랜 시간 뒤에 개봉한 후속작이었는데 그동안 기획안이 여러 개 나왔다가 모두 폐기되고, 맥 클레인이 뉴욕에 휴가를 왔다가 사건에 휘말린다는 시나리오가 마지막에 선택되었다.

액션 영화치고는 깨알 같은 디테일이 많은데 집중해서 영화를 보면 잔재미를 찾을 수 있다.

복선도 세심하게 깔려 있고, 각종 수학문제와 수수께끼, 상식을 활용한 트릭은 꽤 신선한 아이디어로 평가받게 된다.

특히 공원에서 물통으로 균형을 맞추는 게임은 수학 참고서와 각종 퀴즈쇼에 나올 만큼 인지도가 올라간다.

뉴욕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퀴즈쇼를 해결하는 장면도 재미있고, 부르스 윌리가 할렘에서 깜둥이가 싫어요 간판을 들고 돌아다니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액션 영화치고 액션 장면이 적다는 불평을 듣기는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백화점이 폭발하는 장면이나, 은행을 털기 위해 지하철역을 날려 버리는 장면은 충분히 블록버스터 할리우드 영화만의 장점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다이 할드 시리즈니 이번에도 좋은 흥행 성적이 나오겠죠?”

“기본 이상은 할 것 같아요. 브루스 윌리의 인지도가 해외에서도 꽤 높아졌으니 외국에서의 흥행도 잘 나올 것 같고요.”

다이 할드 3는 8천 5백만 달러의 제작비로 미국에서 1억 달러라는 기대 이하의 수익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해외에서 다이 할드 시리즈 중 최고 대박을 치면서 2억 6천 6백만 달러를 벌어들여 총 3억 7천만 달러라는 흥행 수익을 기록한다.

한국에서도 서울 관객 97만을 기록하며 큰 흥행을 하고, 일본에서는 95년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기도 한다.

이 영화로 브루스 윌리는 올해에 이어 한 번 더 홍보차 한국을 방문하게 되지만, 기자회견과, 행사에 연속으로 지각하면서 오히려 욕을 먹게 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브루스 윌리가 한국에 가지 않았나요?”

“5월 말에 할리우드 플래닛 기공식에 참석하러 갔을 거예요.”

“괜찮아 보이는 사업인데 왜 여기에는 투자 안 했어요? 아놀드도 찾아와서 투자하라고 부탁했었잖아요.”

“원래 연예인이 사업하면 다 망하는 법이에요. 영화 투자로 잘 벌고 있는데 왜 다른 걸해요.”

브루스 윌리는 동업을 하는 배우들과 외국 영화 수입사인 삼오필름과 합자해 할리우드 플래닛 한국 지점을 세웠는데 5월 말 기공식에 참가하기 위해 혼자 한국에 방문했다.

브루스 윌리가 고사에 참여해 제사상 앞에서 큰절을 하고, 직접 막걸리를 따랐고 돼지머리 입에다 100달러 지폐도 한 묶음 꽂아 넣었다.

그 후로 1년 뒤 1995년 5월 강남구 논현동에 할리우드 플래닛이 오픈하고 개장 행사를 열었는데 이때 장 클로드 반담과 신디 크로포드, 돈 존슨과 브루스 윌리가 방문해 큰 화제가 된다.

저녁 8시에 행사가 열리는데 수천여 명이 몰려오는 바람에 교통경찰 100명이 출동해 통제를 할 정도로 성공하고 처음에는 장사도 아주 잘된다.

하지만, 두 달도 안 가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는데 메뉴보다 디피와 기념품에 집중을 하다 보니 음식은 평범한데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게 받아 금방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게 된다.

게다가 12월에는 위생 상태 불량으로 서울시에서 영업 정지 처분까지 받게 되는데 결국 연말에 할리우드 플래닛 한국 서울점은 영업 7개월 만에 문을 닫게 된다.

동민도 전생에 한껏 기대를 가지고 할리우드 플래닛에 찾아가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일반 냉동 만두가 8개에 9,700원을 받았고, 햄버거는 1만 원이 넘고, 스테이크는 4만 원을 넘어 충격을 받았었다.

파스타도 2만 원대였는데 95년 평균 외식비의 2배 이상인 가격인데다 맛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맛도 지극히 평범했던 기억이 났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반응이 너무 좋던데요? 지금도 매장에 사람이 넘쳐 나고 있고요.”

“초반에야 신기하니까 한 번은 가 보는 거죠. 닐도 가 봤죠?”

“저야 당연히 가 봤죠. 오픈하기 전에도 초대받아 갔었어요.”

“음식은 먹을 만했어요? 그날 이후로 가서 음식 먹은 적 있어요?”

“하하. 그렇긴 하네요. 맛은 솔직히 조금 별로였는데 가격은 무지막지하더라고요.”

할리우드 플래닛은 1996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95개의 체인점을 오픈하고, 이후 300개로 늘린다는 목표를 발표한다.

하지만, 2년도 가지 않아 제정 문제에 빠지는데 처음에 제법 장사가 잘된다는 것에 현혹돼 너무 빠른 속도로 체인점을 늘리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운영 중인 체인점의 수익 구조와 개선점 등 내부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서둘러 매장을 늘려 외형을 키우는 데에만 집중하다 자금 문제에 빠져 버린다.

내부 문제 중에 결정적인 것이 식당인데 가격은 비싸고, 메뉴는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에 있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맛이 없어 사람들은 딱 한 번은 가지만 두 번 다시는 가지 않는 레스토랑이 되었고, 1999년 파산보호신청을 내면서 공식적으로 망했다는 발표를 한다.

작년과 재작년만 해도 슈워츠 아놀드제네거가 세탁소로 몇 번 찾아와 투자 요청을 했지만, 할리우드 플래닛의 결과를 알고 있는 동민은 영화에 집중하고 싶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사실 할리우드 플래닛은 영화에 나왔던 소품들을 전시해 동민에게는 꿈과 같은 공간이었지만, 현실과 꿈은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레스토랑 사업은 잘되면 큰돈을 벌지만, 한순간에 나락으로 갈 수도 있기에 절대로 발을 들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당연히 한식과 관련된 레스토랑이라면 어느 정도 적자가 나오더라도 한국을 홍보하기 위해 차리겠지만, 할리우드 플래닛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없어 보였다.

“안 그래도, 브루스 윌리 측에서 한국에 지점을 열었으니 잘 좀 이야기해 달라고 연락이 왔었는데 거절해야겠네요.”

“이전에 말한 대로 영화에 집중하고 싶다고 전해 줘요. 몇 년만 있으면 닐도 왜 내가 거절했는지 알게 될 거예요.”

< 121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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