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119화 (104/265)

< 119 >

폴프 픽션의 쿠안틴 감독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남자는 2004년 칸 국제 영화제에서 늙은 소년이라는 영화로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린 박찬옥 감독이었다.

공동경비지역 JSS가 2000년에 흥행과 호평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단숨에 주목받는 감독의 자리에 오르는 그는 현재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미래에 한국 영화음악을 대표하는 음악감독으로 성장하는 조영옥과 함께 영화마을 프랜차이즈 비디오 가게를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홍콩 느와르와 약간의 B급 감성을 좋아하는 박찬옥 감독은 쿠안틴과 은근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금방 친해져 편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마지막에는 함께 소주를 한잔하러 가기로 했다.

“다니엘. 너도 같이 가자. 이분이 맛있는 포장마차를 알고 있다고 하네.”

“한국인이시죠? 너무 잘생겨서 국적이 헷갈리네요. 쿠안틴 감독님과 일행이시면 함께 가시죠.”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합류하겠습니다.”

“다니엘이 어리긴 해도 영화에 관한 지식이라면 저와 비슷할 정도로 똑똑하답니다. 저의 처녀작인 개들의 저수지부터 이번 영화까지 조감독으로 많이 도와주기도 했죠.”

쿠안틴의 설명을 들은 박찬옥 감독이 동민을 대단하다며 달리 보았다.

동민 역시 해외의 유명 감독보다 한국인으로서 더 대단하게 생각했던 두유노 클럽에 가입될 박찬옥 감독을 직접 만나고는 긴장하고 있었다.

기생벌레라는 영화로 한국 영화의 우수함을 널리 알리고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상을 싹쓸이하고 아카데미에서도 4관왕을 하는 전생에 감독 지망생이었던 동민에게는 영웅 같은 사람이었다.

“감독님은 예전에 한국에 오셨을 때 어떤 음식이 가장 인상적이셨나요?”

“다니엘이 데리고 간 마장동 축산시장이 가장 좋았네요. 그때 도축 장면을 허락받고 촬영하기도 했는데 가끔 돌려 보면 영감이 떠오른답니다.”

“아주 좋은 발상이군요. 저도 한번 가 보아야겠습니다.”

박찬옥 감독은 종로 3가 역 주변에 있는 포장마차로 안내했고, 쿠안틴과 동민은 레트로 감성이 아닌 정말 레트로인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와 닭똥집을 안주로 20도가 넘어가는 소주를 마셨다.

“묘한 분위기가 있군요. 샐러리맨의 노고와 삶이 녹아 있는 이동형 텐트 술집이라니. 영화나 드라마 배경으로 사용하기 딱이네요.”

“하하. 마음에 드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유명하지 않은 30대의 비디오 매장을 하고 있는 박찬옥과 함께 직장인들이 퇴근 후 술을 마시고 있는 포장마차에 있으니 동민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박호찬을 만났을 때도 이렇지 않았는데 현실적으로 가장 가까이서 존경하기도 하고 부러우면서 질투도 했었던 박찬옥은 그만큼 동민에게 특별한 존재였던 것이다.

“자네도 감독을 하고 싶은 거지? 이렇게 훌륭한 작품의 조감독을 했을 정도면 나보다 훨씬 더 실력이 뛰어나겠군.”

“영화에 순위가 어디 있나요? 작품 하나하나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비교할 수 없는 거죠.”

“하하. 자네 말이 맞지만,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와 지금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네. 작년에 주라식랜드를 보고 내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자네는 모를 걸세.”

박찬옥의 말대로 아직 한국 영화계는 갈 길이 멀었지만, 90년 후반부터 한 발짝씩 성장을 하면서 2000년도에는 꽤나 괄목할 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후로 계속해서 특유의 생태계가 형성되면서 2020년 이후로는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도 통하는 날이 펼쳐진다.

이번 생에는 동민도 두유노 클럽을 찬양하는 대중이 아닌 두유노 클럽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싶었다.

“거기다 USC 영화학과의 학생이라니 정말로 부럽군. 부디 뛰어난 선진 기술을 배워 한국에도 알려주길 바라네.”

“감독님도 계속해서 영화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으신다면 언젠가는 세계적인 감독이 되실 수 있으실 거예요.”

“하하. 비디오 매장에서 일하는 나에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쿠안틴도 처음 만났을 때는 비디오 매장 직원이었어요. 지금은 세계적인 감독으로 성장했잖아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죠.”

동민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찬옥 감독에게 계속해서 희망을 심어 주었다.

비록 3년 뒤에 촬영하고, 차세대 스타가 출연하는 사민조가 크게 망하기는 하지만, 2000년에는 결국 성공을 하게 되고, 그로부터 3년 뒤에 늙은소년으로 전 세계적으로 팬을 거느린 감독으로 성장하게 된다.

처음에는 박찬옥과 말을 편하게 하지 못했던 동민도 포장마차에서 술을 함께 마시다 보니 금방 친해졌고, 그도 영화적 지식과 앞으로의 미래가 창창한 동민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한국 음주 문화를 제대로 경험했고, 다음 날 동민은 밀려오는 숙취를 안은 채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갔다.

“아이고 머리야. 이번 일정은 정말 힘드네. 대학생이 되면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을 거라 좋아했는데 스케줄이 많아지면서 더 바쁜 것 같아.”

다행히 일등석을 타고 왔기에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바로 학교에 등교해야 했다.

아직 학기 초기에 다행히 진도를 많이 나가지 않았고, 보충 수업을 듣지 않아도 괜찮았다.

조금은 기대를 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USC 영화학과의 수업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

어느덧 실무라면 꽤나 경험이 쌓인 동민이지만, 영화 관련 대학 중 탑인 USC의 수업은 동민의 머릿속에 뒤죽박죽으로 들어 있던 지식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할리우드와 가까이 있는 학교이다 보니, 너무 이론에 치우치지도 않았고, 실무를 바탕으로 한 수업이 진행되면서 아주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다.

첫 학기부터 전공과목을 꽉 채워 듣는 동민은 시간이 날 때마다 워너 브라더 스튜디오로 가 드디어 시작한 친구들 드라마 촬영 현장을 관람했고, 배우들에게 김밥과 한국 분식을 제공했다.

주말에는 제시카를 만나 영화관과 쇼핑몰, 그리고 한인타운을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시즌이 돌아왔군요.”

“그러게요. 벌써 오늘이 왔네요. 올해 투자할 영화를 고른 게 얼마 전 같은데 시간이 금방 지나가네요.”

“올해 수익이 훌륭했는데 내년에도 이 정도만 결과가 나오면 좋겠네요. 그런데 정말로 워터랜드에는 투자하지 않을 거예요?”

이번 여름부터 닐은 동민에게 할리우드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워터랜드 영화 투자를 권유했었다.

“바다에 관련된 영화에 투자 잘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면서 여기 투자하라고요? 카메룬 감독님도 고생했는데 요즘 잘나가는 케빈 커스트너도 아마 힘들 거예요.”

시간이 흘러 가을이 찾아왔고, 95년에 개봉하는 영화에 투자를 결정하는 날이 다가왔다.

최근에 할리우드를 달구고 있는 영화가 있었는데 닐이 투자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본 케빈 커스트너의 워터랜드였다.

케빈 레이놀즈 감독이 연출하고 케빈 커스트너 주연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였는데 기후 변화로 인해 세계의 대부분이 물로 변한 지구에서 수생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한 주인공이 지구 최후의 육지를 찾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워터랜드는 제작비로 아주 유명해지는데 털미네이터 2편과 트루스 라이로 최대 제작비 기록을 세운 카메룬 감독을 뛰어넘는 영화가 된다.

원래는 1억 달러라는 비교적 상식적인 예산을 총제작비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촬영 도중 태풍을 만나는 바람에 세트(둘레 500m, 무게 1,000톤의 수상 도시)가 가라앉으면서 새로 만들어야 했다.

이로 인해 예산이 2배 가까이 뛰면서 1억 7,200만 달러로 최대 제작비 기록을 경신해 버린다.

아직은 태풍으로 세트장이 가라앉기 전이라 제작비가 폭증할 거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제작비만 증가하지 않았다면 미국 흥행 성적, 8,824만 달러, 해외 흥행 1억 7,600만 달러로 겨우 손익 분기점을 넘겼겠지만, 결론적으로 약 4천만 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그래도 시나리오를 보니 정말 괜찮아 보이던걸요?”

“나도 시나리오는 괜찮았어요. 개인적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수중 촬영도 어려운데 이렇게 대규모 세트장에 액션이 들어가는 영화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요. 촉이 좋지 않아서 투자 안 할 거니까 또 이야기 꺼내지 말아요.”

워터랜드는 태풍으로 세트장이 가라앉는 것 말고도 촬영 과정에 많은 문제가 생긴다.

케빈 커스트너는 촬영 도중 스콜을 만나 실제로 죽을 뻔하고, 음악 감독과 각본가가 중간에 교체되면서 혼동의 도가니에 빠진다.

결정적으로 친구 사이였던 케빈 레이놀즈와 케빈 커스트너는 촬영 내내 싸우는데, 급기야 케빈 레이놀즈가 중간에 떠나버리면서 후반작업을 케빈 커스트너가 마무리하게 된다.

여러모로 문제가 많고 적자가 나는 영화기는 하지만, 2차 시장에서 꾸준히 소비되면서 결국 적자는 탈출하게 된다.

초반에 워낙 높은 제작비와 촬영 도중에 발생하는 여러 사건으로 평가가 낮아지긴 하지만, 해양 모험활극이라는 새로운 소개를 개척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이 영화 이후로 비슷한 컨셉의 만화, 애니메이션이 나오게 되고, 수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도 워터랜드의 플롯을 따라간다.

거기에다 감독판 DVD가 나오면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평점이 오르기는 하지만, 3시간에 가까운 플레이 타임으로 다른 악명을 쌓기도 한다.

워터랜드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자 닐이 투덜거렸고, 동민은 다른 투자 포트폴리오를 내밀었다.

“이번에도 무명 감독에 무명 배우 영화네요. 올해의 짐 개리 같은 영화가 되는 건가요?”

“설마요. 짐 개리 같은 배우는 흔하지 않다고요. 그래도 할리우드에서는 스타가 어떻게 등장할지 아무도 모르긴 하죠.”

짐 개리는 94년 한 해에 3편의 영화를 연속으로 흥행시키면서 단숨에 스타로 자리를 잡았다.

동민이 선택한 영화에 나오는 배우도 짐 개리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영화로 할리우드에 확실히 얼굴도장을 찍게 된다.

“제작비가 6백만 달러라니 정말 저렴하긴 하네요. 이런 영화가 1억 달러만 넘겨줘도 대박인데 가능하겠죠?”

“스릴러 추리물이라 영화 장르상 그 정도는 힘들 것 같은데요? 제작비가 워낙 적으니 많이 벌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래도 영화는 재미있으니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죠.”

“카이저 소제라니 이름이 재미있네요. 확실히 시나리오 자체는 훌륭한데 영상화를 어떻게 할지 궁금하긴 해요.”

동민이 투자하기로 결정한 영화는 최고의 반전 영화로 꼽히게 되는데 브라이언 싱거 감독의 출세작이 되고 무명에 가까운 케빈 스파이스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주는 유주얼 용의자였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이 이 영화에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아 배급을 맡지 않으려 하는 바람에 상영관을 많이 확보하지 못하고 겨우 2,34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남긴다.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하지만, 워낙 저렴한 제작비인 600만 달러로 만들어졌기에 손해는 보지 않고, 2차 시장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으면서 꾸준히 수익을 벌어다 주게 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케빈 스파이스가 절뚝거리며 걸어가다 정상적으로 걸음이 변하는 장면은 관객을 소름 끼치게 만드는데 동민도 전생에 이 장면을 보면서 충격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 119 > 끝

ⓒ 돈많을한량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