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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살포시 숟가락을 올리고 돌아온 동민은 닐에게 J.J. 롤린과 핸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계약 마무리를 부탁했다.
“이번에는 출판 계약이에요?”
“출판 계약이 중요하긴 한데 영상 판권도 확보해야 해요.”
“계약금은 얼마나 줘야 하는 거죠?”
“처음부터 너무 많이 주면 의심할 수도 있으니 1만 파운드로 계약하고 판매 부수에 맞춰 인센티브를 주는 거로 해 주세요.”
닐이 책 판매는 돈이 안 된다고 투덜거리며 장거리 비행에 올랐지만, 핸리 포터가 얼마나 큰 흥행을 하는지, 자신에게 떨어질 보너스가 얼마인지 알게 되면 고마워할 것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동민은 올해 구입한 포드 머스탱 보스 429를 타고 샌디에고로 향했다.
“한국에서 가본 적은 있는데 미국에서 열리는 행사는 처음이네. 일본이 유명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덕 중의 덕은 양덕이라고 하니 재미있겠지?”
동민은 샌디에고 컨벤션센터에 도착했고,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컨벤션센터에 진을 치고 있었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모여든 샌디에고 코믹콘(San Diego Comic-Con International)은 미국 코믹스 덕후들에게 가장 유명한 만화와 관련된, 책, 캐릭터, 영화 등 모든 예술작품에 대한 소식과 관련 행사를 진행하는 대규모 박람회였다.
만화책 행사로 나름 긴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1970년부터 시작된 샌디에고 코믹콘은 처음에는 단순히 코믹북 관련 행사로 시작했지만, 코믹북이 영화화되기 시작하면서 할리우드와 연관이 깊은 행사로 발전한다.
이번만 해도 별들의 전쟁이나 털미네이터, 코난 더 바바리안 등 할리우드 작품 코스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일본의 코믹 마켓(코미케)에 비하면 입장객이 1/10 수준이었지만, 경제 규모를 비교하면 일본의 10배를 넘어 100배에 가까운 거대한 행사였다.
“미국에 와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여 있는 건 처음 보네.”
땅이 넓은 미국인만큼 인구 밀도가 낮았는데 코믹콘 행사장에는 다양한 사람들도 북적이고 있었다.
입장 줄만 해도 엄청나게 길었는데 마불 코믹스의 대주주인 동민은 VIP 관계자로 일반 관람객이 가지 못하는 길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앞으로 역할이 더 중요해질 샌디에고 코믹콘을 둘러보았다.
코스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자 동민도 한복을 입고 갓을 쓰거나 초록색, 핑크색 추리닝을 입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25년은 더 기다려야 한국 콘텐츠가 유행하기에 이번에는 참기로 했다.
“찾았다 저기 있었네.”
엄청나게 넓은 부스를 돌아다니다 가락지의 제왕 부스를 발견했고, 열성적으로 토론 중인 톨키니스트 사이에 동민이 찾고 있던 사람을 발견했다.
복슬복슬한 수염을 기르고 있는 그는 둥글둥글한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산타 할아버지 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다.
“어서 오시게. 자네도 판타지의 시초인 가락지의 제왕을 사랑하는 지성인인가?”
“절대 반지를 파괴하기 위한 여정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호빗이랍니다.”
“아주 훌륭한 젊은이로군. 톨키니스트의 평균 연령이 너무 높아 걱정하고 있었는데 역시 명작은 나이를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
동민이 가락지의 제왕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를 몇 가지 이야기하자 부스에 있던 이들이 기뻐하며 동민을 환영했다.
“가락지 원정대에 합류할 자격을 가지고 있군.”
동민은 진성 톨키니스트들에게 할리우드에 살고 있는데 가락지의 제왕 영화화가 천천히 진행 중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며 정보를 조금 풀어 주었다.
그러자 톨키니스트들이 흥분했고, 동민은 아직 논의가 시작된 단계라며 기일이 걸리겠지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기대를 심어 주었다.
“그게 정말인가? 나도 방송 작가 생활을 오래 해서 어느 정도 정보를 접하긴 하는데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로군.”
“영상 판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직접 들었어요.”
가락지의 제왕은 5년 뒤 제작 발표를 하게 되니 거짓말도 아니었고, 영상 판권은 동민이 가지고 있기에 원래 역사대로 진행할 생각이었다.
“아주 귀중한 정보를 가지고 있군. 반갑네, 나는 조지 L.L. 마르틴이라고 하네.”
“저는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다니엘이라고 합니다.”
동민이 조지에게 출판사 명함을 건네자 그가 반가워했다.
“동종 업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이었군. 나는 SF 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판타지나 호러 시나리오도 많이 집필했었지. 지금은 장편 판타지를 쓰고 있다네.”
재미있는 외모를 하고 있는 조지 L.L. 마르틴은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였는데, 샌디에고 코믹콘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코믹콘 1회에 최초로 참가 신청을 한 사람이라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코믹콘에 참가했다며 동민에게 자랑했고, 오랜 코믹스팬으로서 판타스틱 4 코믹스에 독자투고를 했다가 자신의 글이 실리면서 창작에 관심을 가지고 이쪽 길로 빠져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저는 드래곤이 나오고, 왕좌에 도전하는 계략과 음모가 난무하는 아주 차가우면서 잔혹한 판타지를 좋아해요.”
“취향이 아주 훌륭하군. 마침 내가 딱 그런 내용의 글을 쓰고 있는데 한번 읽어 보시겠나?”
조지 마르틴은 자신이 쓰고 있는 원고의 초반부를 동민에게 보여 주었고, 소설의 제목은 불과 얼음의 노래라고 적혀 있었다.
불과 얼음의 노래는 한 계절이 몇 년 동안 지속되는 세계를 무대로, 칠왕국의 왕위를 두고 내전과 권력 암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마법과 용이 부활하고, 북쪽 장벽 넘어 정체불명의 생명체의 위협이 커져 가는 이야기였다.
여러 캐릭터들의 시점을 통해 기존 선악 구도와 판타지 요소를 최소화한 현실적인 배경과 치밀한 전개, 디테일한 중세 유럽 묘사가 어우러진 대작이었다.
딱히 꼽을 수 있는 주인공 없이 여러 캐릭터들의 시점을 이야기를 뛰어난 필력과 중독적인 재미로 풀어 나가고 있었다.
핸리 포터만큼은 아니지만, 불과 얼음의 노래는 1억 부가 팔리며 미국을 대표하는 판타지로 자리를 잡게 된다.
불과 얼음의 노래는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왕좌의 전투라는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불과 얼음의 노래는 1996년 1부작이 발표되는데 조지 마르틴은 1991년부터 집필을 시작했다.
처음 작품이 출간된 이후로 2년 동안 3부작을 쓰며 나름 부지런한 집필 활동을 하지만, 이후로는 글 쓰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수많은 팬들의 원망을 사게 된다.
미래에는 마감을 끔찍하게 못 지키는 것으로 유명해지는데, 글은 안 쓰면서 블로그 활동은 열심히 하고, 매년 풋볼 드리프트 분석 글을 아주 자세하게 올리면서 독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다.
불과 얼음의 노래 1부가 96년에 나오고 3부는 98년에 나오는데 4부는 2005년이 되어서 겨우 출간하고 5부는 2011년에 출간한다.
사실 조지 마르틴의 글 쓰는 속도가 느린 것도 있지만, 자신의 소설이 점점 더 유명해지면서 부담감을 많이 가지게 된다.
자신의 소설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매우 흡족하다는 말을 남기고, 드라마의 내용이 소설을 따라잡지 못하게 2016년 전에는 6부를 출판하고, 2017년에는 시리즈를 완결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하지만, 5부 이후로 6부는 동민이 회귀하기 전까지 결국 나오지 못하고 드라마가 먼저 완결되어 버린다.
기다림에 지친 팬들이 고도 비만에 1948년생인 작가의 건강을 걱정하며 생에 시리즈가 완결될 수 있을까 걱정을 하지만, 조지 마르틴은 자신은 팔팔하다며 재수 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화를 낸다.
동민 역시 그의 소설과 드라마를 아주 좋아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를 감금해서라도 마지막 편을 볼 결심을 했다.
그와 계약을 해서 대박을 터트리기 위해 샌디에고에서 열리는 코믹콘까지 찾아오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불과 얼음의 노래 완결을 쓰게 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자네 나를 왜 그렇게 무서운 눈빛으로 보는 건가?”
“어떻게 하면 이렇게 훌륭한 글을 쓰실 수 있는지 신기해서 본 거예요. 오해하지 마세요.”
“분명 그런 눈빛이 아니었는데?”
잠시 오한을 느낀 조지 L.L. 마르틴이 의심스러워했지만, 동민이 빠르게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런데 미리 출판 계약을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정신 비율은 좋게 해 드릴게요.”
“자네가 좋은 안목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내가 신생 출판사와 계약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네. 이래 봬도 출판 업계 인맥도 꽤 가지고 있거든.”
할리우드에서 오랜 기간 방송작가 생활을 해 온 조지 L.L. 마르틴은 알고 있는 출판사가 많이 있었고, 그는 메이저 출판사와 계약을 맺을 자신도 있었다.
동민이 마음에 들긴 했지만, 출판 계약을 맺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조지 마르틴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동민은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고 대응책을 준비해 왔다
핸리 포터와 가락지의 제왕이 손에 들어왔는데 마지막 조각인 불과 얼음의 노래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직 글을 완성하지 않았는데 퇴고가 끝나기 전에는 계약을 할 생각이 없다네. 편집자가 내 글을 가지고 참견하는 건 정말 싫거든.”
“그렇다면 저로서는 오늘 반드시 계약을 받아내야겠네요. 글을 완성하신 다음에는 다른 출판사와 경쟁을 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사실 그의 말대로 소설이 완성되었을 때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권유하는 것이 더 좋지만, 그때는 동민이 다른 일로 바쁠 예정이라 직접 찾아와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조지 마르틴은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동민은 준비해 온 미끼를 그에게 던졌다.
“가락지의 제왕 부스에 계신 걸 보니 진성 톨키니스트신 것 같은데 영화로 만들어질 때 참여하실 수 있도록 해 드릴 수 있어요.”
“자네가 어떤 수로 나를 참여시키겠다는 건가?”
조지 마르틴이 관심을 보이자 영상 판권을 직접 구매한 사실과 영화로 만들 때 현장 체험을 시켜 주겠다고 했다.
“흠. 믿기 힘들지만, 만약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분의 작품에 손을 대고 싶지 않네. 내가 가락지의 제왕을 사랑하는 만큼 원작을 존중해야 해.”
본인 스스로 창작을 하는 작가이기에 다른 작가, 거기다 가장 존경하는 작가의 작품에 손을 대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가락지의 제왕 미끼를 거부하자 동민은 마지막으로 비장의 수를 꺼내었다.
“어쩔 수 없네요. 혹시 제 출입증을 보셨나요?”
“자네 목에 걸려 있는 것 말인가? 그러고 보니 게스트가 아닌 호스트 출입증이로군.”
안경을 고쳐 쓴 조지 L.L. 마르팅니 동민의 출입증을 읽다 깜짝 놀라 했다.
“자네 출판사 대표라고 하더니 마불 코믹스와 관련된 출판사였나?”
“출판사는 독립된 사업체라서 마불이랑 관련은 없는데 제가 마불 대주주라서 관계자 자격으로 참여하게 되었네요.”
소싯적부터 마불 코믹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조지 마르틴이 동민의 폭탄선언을 듣고는 입을 벙긋거리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했다.
< 116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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