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
비행기는 영국 북쪽에 위치한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 착륙했다.
글래스고에 이어 스코틀랜드 제2의 도시이자 약 50만 명이 살고 있는 에든버러는 고성이 있는 올드타운을 중심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건물이 모여 있는 영국 특유의 분위기가 나는 도시였다.
에든버러의 주민 대부분이 스코틀랜드인에다 인구의 5%를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인의 대다수가 인도와 파키스탄 출신이기에 한국인인 동민이 시내를 돌아다니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에든버러의 유명 명소를 둘러보다 로얄마일에서 에든버러 성 쪽으로 가다 조지 6세 브리지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다 보니 붉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카페가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동양인 손님은 처음이네요. 주문은 카운터에서 하시고 자리는 편한 곳으로 앉으시면 되세요.”
카페 내부에는 엘리펀트 하우스라는 이름을 따라 코끼리 그림과 장식이 있었고, 메뉴는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스코틀랜드 카페였다.
간단한 영국식 스콘과 아삼으로 내린 로얄밀크티를 주문한 동민은 엘리펀트 카페 구석진 자리에 앉자 잠시 피로를 풀었다.
에든버러는 여름인 7월에도 그늘에 들어가면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살짝 서늘한 느낌이 들었고, 홍차가 잘 어울리는 날씨를 가지고 있었다.
손님은 대부분이 동네 주민으로 보였는데 혼자 동양인에다 영국인이 보아도 잘생긴 외모의 동민이 나타나자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나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자와 눈을 마주쳤고, 간단히 인사를 했다.
“처음 보는 분인데 여기는 관광 오셨나요? 에든버러에는 동양인 관광객이 많지 않은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티가 많이 나나 보네요. 오늘 도착하긴 했는데 일 때문에 왔어요.”
“젊어 보이시는데 금융 쪽 일을 하시나 보네요.”
에든버러는 런던 다음으로 금융도시 역할을 하고 있어 은행 관련 종사자가 많이 있었다.
“투자 쪽 일을 하기는 하는데 주로 미디어 관련 투자를 해서 에든버러는 처음 와 보았네요.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한 작품을 찾기 위해 영국에 잠시 들린 거랍니다.”
“정말요? 저도 소설을 쓰고 있는데 언젠가 제 글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정말 좋겠네요. 아마도 힘들겠지만요.”
그녀는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다며 하늘을 나는 장면과 마법이 많이 나와 영화로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거라고 했다.
“요즘은 컴퓨터 그래픽이 많이 발달해서 불가능하지도 않을 거예요. 작년에 나온 주라식랜드는 보셨나요? 그 영화도 제가 직접 투자를 했었지요.”
동민이 스티븐 킴 작가를 만난 것과 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던 이야기를 해 주자 큰 관심을 보였다.
에든버러의 사람들은 스코틀랜드 악센트가 너무 강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웠는데 옆자리에서 소설을 쓰고 있던 여자는 영어 발음이 깔끔해 알아듣기 편했다.
“분명 에든버러 악센트가 있으신 것 같은데 발음이 선명하시네요. 공항에서부터 알아듣기가 어려웠거든요.”
“스코틀랜드 시골로 가면 저도 못 알아듣는답니다. 저는 몇 년 전에 포르투갈에서 영어 선생님을 했었는데 그때 또박또박 말하는 습관이 생겼네요. 당신은 누가 들어도 미국 서부 스타일의 발음을 가지고 있으시네요.”
“하하. 제가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긴 하죠.”
동민이 할리우드 이야기를 하자 흥미가 생긴 여자는 동민의 테이블로 자리를 이동해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저는 조엔 머레이라고 해요. 포르투갈에서 결혼했다가 싱글 맘으로 고향에 돌아와 보조금을 받으며 글을 쓰고 있는 평범한 에든버러 사람이죠.”
“육아와 집필이라는 가장 어려운 작업을 동시에 하시다니 대단하시네요. 저는 다니엘이라고 합니다. 한국인이에요.”
조엔에게 다니엘북스 대표라고 적힌 명함을 주었고, 출판사 대표라는 걸 본 그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제가 살면서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이시네요. 사실 저는 동양인과의 대화 자체가 처음이에요.”
“아무래도 에든버러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네요.”
“한국인은 전부 다니엘처럼 잘생겼나요?”
“하하. 감사합니다. 제가 가끔 영화에 출연도 해서 평균 이상이긴 하니 다 저처럼 생겼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올해 초 뱀파이어랑 인터뷰에서 동양인 뱀파이어로 출연했다고, 알려 주었고, 브래들리 피트와 탐 크루스, 리버 피닉서가 나온다고 하자 그녀가 관심을 가졌다.
동민이 할리우드에서 있었던 몇 가지 일을 이야기 해 주자 조엔이 재미있게 듣다가 자신의 현재 상황을 한탄했다.
그녀는 작년에 포르투갈에서 첫 딸을 출산하자마자 이혼하고, 에든버러로 돌아와 생활 보조금을 받으며 근근이 먹고 살고 있다고 했다.
허름한 단칸방에서 딸에게 줄 분유가 부족해 맹물만 준 적도 있고, 자신도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다고 했다.
탈의실 옆에서 무료로 나누어 주는 기저귀를 너무 많이 가지고 가는 바람에 직원에게 혼이 난 적도 있었는데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에 집에서 가까운 카페에 나와 예전부터 생각해온 아이디어를 가지고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원고가 거의 완성되었는데 한 번 읽어 봐 주시겠어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어차피 완성되면 출판사에 보내야 하는데 조금 미리 한다고 생각하죠.”
동민이 조엔에게 원고를 받아 빠른 속도로 읽고는 그녀에게 피드백을 주었다.
“솔직히 말해도 괜찮죠?”
“네. 출판사 대표로서의 피드백을 원하고 있어요.”
“독자층이 조금 애매한 것 같아요. 아이들을 위한 소설을 쓰셨는데 읽기가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주인공이나 사건 등 구성은 정말 좋아요. 내용을 바꾸지는 말고 성인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소설이다 생각하고 수정하시면 금방 출판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정말인가요? 하긴 아이들이 읽기에는 문장이 길 수도 있겠네요.”
조엔은 살짝 고집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워낙 상황이 좋지 않아 처음 보는 동민의 조언을 편견 없이 받아들였다.
이후로도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녀의 작품 내용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동민은 완벽한 모범 답안을 말해 줄 수 있었다.
“다니엘과 작품 이야기를 하다 보니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네요. 저도 조엔의 작품이 완성되면 꼭 읽어 보고 싶네요. 그리고 가능하면 저희 출판사와 계약을 하면 좋겠고요.”
“아직 완성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해 주시니 정말 고맙네요. 사실 지금은 받아 주기만 한다면 아무 곳이나 계약을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딸 아이 신발을 하나 사주고 싶은데 돈이 정말 없거든요.”
조엔 머레이는 올해 말 원고를 완성하고, 출판사를 찾아다니는데 아이들이 읽기에는 소설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게 된다.
일 년간 12번의 거절을 당한 뒤 13번째로 찾아간 소규모 출판사 블룸베리에서 500부를 찍어 출판하게 되고 원고료로 2,500파운드(약440만 원)을 받게 된다.
겨우 500부만 인쇄된 초판은 이후 엄청나게 가격이 오르게 되는데 경매에서 한 권에 1억 3천만 원으로 낙찰된다.
당연히 소설은 초초대박을 터트리는데 블룸베리 측은 처음에 5만 부만 팔아도 많이 파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5억 부에 달하는 판매량을 기록한다.
처음에는 100만 부가 팔렸다는 말에 편집장과 직원들이 엄청난 대박이라며 좋아하다가 해외로 수출이 되면서 수백만, 수천만 부를 넘기자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중소 출판사였던 블룸베리는 이 소설 덕에 거대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고, 직원들도 돈방석에 앉게 된다.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했던 이 소설은 그녀를 억만장자로 만들어 주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시리즈가 된다.
그녀의 소설은 어린 독자뿐만 아니라 폭넓은 성인 독자까지 끌어들이고, 현대 청소년 문학의 초석으로 불린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릴 만큼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고 21세기 판타지, 아동문학, 청소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 된다.
에든버러에서 정부가 주는 생활 보조금을 받으며 살던 싱글 맘 작가는 소설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면서 전 세계가 알아주는 유명 작가가 되어 성을 구매하고, 멋진 남편과 재혼하고, 재혼한 남편과 아이들을 낳고, 대영제국 훈장까지 수여하며 그야말로 인생 승리자가 된다.
블룸베리 출판사와 계약을 할 때 남자아이들은 여자가 쓴 책을 읽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필명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할머니의 이름과 처녀 때 성을 가지고 와 J.J. 롤린이라는 작가명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녀가 쓴 핸리 포터는 출간 이후 4년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21개의 상을 수상하는 등,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명성과 부를 한 번에 쓸어 담게 된다.
첫 출간 4년 만에 영화로도 만들어지기에 동민은 그녀의 스토리를 자세히 알고 있었다.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책이 불티나게 팔리게 된다.
핸리 포터가 영화화될 때 영화감독으로 동민과 친한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아이들을 잘 다룬다는 이유로 뽑히게 된다.
재미있는 일화로는 영화가 영국에서 촬영되어야 하고, 영국 출신의 배우만 나올 수 있다는 J.J. 롤린의 요청으로 모든 배우가 영국인으로 나오는데 단 한 명 크리스 콜럼버스의 딸이 핸리 포터의 팬이라는 이유로 아빠 찬스를 활용해 엑스트라로 출연한다.
“조금 즉흥적이긴 하지만, 저희 출판사와 계약하시겠어요?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좋은 작품이 탄생할 것 같아서요. 원하신다면 선인세를 드릴 수도 있어요.”
“정말요? 제 글을 출판해 주실 수 있으신 건가요?”
동민이 조엔 머레이에게 계약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고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작가님의 생활이 안정되어야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겠죠? 이미 90% 이상 글이 완성된 것 같으니 퇴고는 안정적인 상황에서 하시는 게 좋겠네요. 대신 제가 영화 투자를 주로 하고 있다 보니 2차 저작물 판권을 구입하고 싶네요.”
동민은 나중에 돌려받는 선인세 말고, 아예 영상 판권을 구입하고 싶다고 했고, 갑작스러운 영화 이야기에 그녀가 혼란스러워했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그녀와 바로 계약을 할 수 있어 보였지만, 동민은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한 발짝 물러서기로 했다.
“당장 결정하시라는 건 아니에요. 제 명함을 드렸으니 이쪽으로 연락 주시면 되시고, 계약은 저희 회사 직원이 계약서를 가지고 찾아올 겁니다.”
“지금 농담하시는 거 아니시죠?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동양인이 출판사 대표이고 저와 계약을 하시겠다고요?”
“그러게요. 저도 이렇게 인연이 될 줄은 몰랐네요. 제가 촉이 좋은 편이라 조엔 작가님의 글에서 대박의 냄새가 나는 걸 그냥 넘어갈 수가 없네요.”
아직 믿지 못하고 있는 조엔 머레이에게 좋은 작품을 읽게 해 줘서 고맙다며 1천 파운드를 보답으로 주었고, 그녀는 꿈인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팔을 꼬집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까지 날아온 동민은 J.J 롤린의 집필 장소로 유명해지는 엘리펀트 하우스 카페로 찾아와 그녀를 발견하고, 우연을 가장해 옆자리에 앉아 성공적으로 계약을 유도했다.
동민은 엄청난 대박 계약을 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 만남으로 원래 역사와 다르게 핸리 포터에는 잘생긴 동양계 남학생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그 남학생은 김치를 자주 먹는 것으로 나오게 된다.
< 115 > 끝
ⓒ 돈많을한량
=======================================